글로벌
美·유럽, R&D 투자 격차 갈수록 확대
"오늘날 미국과 유럽이 매년 과학기술 분야의 R&D에 투자하는 비용규모는 1,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열렸던 유럽 제약산업협회(EFPIA) 연차총회에서 톰 맥킬롭 회장이 연설한 내용의 요지이다. 아스트라제네카社의 최고경영자인 맥킬롭 회장은 이번 총회에서 로슈社의 프란츠 B. 휴머 회장에게 바톤을 넘겼다. 다음은 이번 총회에서 맥킬롭 회장이 언급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과 유럽은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2.4% 정도를 R&D에 투자했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이 GDP의 2.9%를 R&D에 투자하고 있는 반면 유럽은 1.9%에 머물러 있다. 오는 2010년에 이르면 유럽이 GDP의 3%를 R&D에 투자할 것이라는 목표치의 달성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해 주는 수치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유럽에서 제약산업은 R&D 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종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 유럽계 제약기업들에 비하면 미국 제약기업들이 R&D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유럽계 제약기업들은 R&D에 총 210억 유로를 투자해 미국 제약기업들의 290억 유로를 크게 밑돌았다. 또 1990년 이래로 미국 제약기업들의 R&D 투자비는 4배가 증가했지만, 유럽 제약기업들의 그것은 2.6배에 그쳤다.
이제 유럽은 더 이상 R&D 투자의 허브(key destination)가 아니다.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저조한 데다 혁신적인 연구 성과물에 대한 보상이 부족하고, 시장은 본연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며, 규제는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의 경우 한해 270억 달러를 R&D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 중 상당부분이 기초연구에 배정되고 있다. 반면 같은 성격으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한해 투자하는 R&D 지출액은 45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 EU에서는 바이오메디컬 분야의 연구에 대한 통합된 전략도 없고, 기술·훈련 및 교육에 대한 투자는 만성적으로 저조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는 연구성과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지난 1980년 당시 개발된 10개 신약당 8개가 유럽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현재는 2개 꼴에 그치고 있는 형편일 정도다.
획기적인 연구성과물에 대한 보상이 미흡하다는 것은 지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개발되어 나온 각종 신약의 매출점유율을 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에 이들 신약들은 전체 매출액의 70%를 미국에서 올린 반면 유럽이 점유한 몫은 고작 18%였다.
그러니 두뇌와 기업이 미국으로 유출되고 있는 현실은 전혀 놀라울 것이 없는 자연스런 귀결이다. 중국도 북미지역으로의 두뇌유출이 심한 편이지만, 그들은 결국에는 조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반면 유럽에서 유출된 두뇌들은 미국에서 완전정착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지적해야 할 중요한 문제점은 유럽이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단일시장을 지향하고 있는 EU 집행위원회와 독자성을 지향하고 있는 EU 회원국들 사이의 시각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누구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본다.
단일시장의 형성에 실패함에 따라 지금 유럽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는 엄청난 왜곡이 눈에 띄고 있다. 각국이 저마다 의약품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려 들고 있고, 결과적으로 유럽대륙 전체의 약가가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양자 사이에 끼어 제목소리를 내지 못한 제약기업들은 비록 지난 10여년 동안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오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맥락에서 볼 때 "죄는 없지만 방관자"(innocent bystander)였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앞길에 순전히 악재만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회(EP) 선거와 EU 집행위원회의 새로운 구성, 10개국의 EU 회원국 신규가입 등이 잇따르면서 바야흐로 변화의 기회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EU의 핵심 회원국들은 최근 경쟁력 향상과 개혁에 대한 지원확대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으로 EFPIA는 유럽 제약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유도할 변화가 절실함을 계속 주창할 것이다. 이를 위한 3가지 핵심골자는 ▲EU의 연구기반을 강화하고 ▲획기적인 신약들에 대해 환자들이 신속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며 ▲정치적·법적 환경을 제약산업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이덕규
2004.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