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제약업계 2005년 10대 뉴스
2005년은 세계 제약업계에 거대품목들의 줄이은 특허만료와 안전성 이슈화 등으로 위기론이 급속히 확산된 해였다. 이에 따라 주요 제약기업들의 경영실적에도 파장을 미쳐 구조조정 착수가 속속 발표되어 나왔다. 후속신약 개발의 차질과 조류 인플루엔자·사스의 창궐 속에 항암제와 백신 분야가 부상했는가 하면 의약품 광고패턴에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예년과 달리 빅딜급 M&A가 성사되지 않은 것은 눈에 띄지 대목이었다. 다음은 본지가 선정한 올해 세계 제약업계의 10대 뉴스이다.
1. 제약산업 위기론 확산
줄줄이 터져나온 블록버스터 제품들의 특허만료와 안전성 문제의 돌출, 제네릭 제형들의 거센 도전, 후속신약 개발의 차질 등이 마치 시리즈물처럼 이어지면서 올해 제약업계에는 위기의식이 확산되었다.
이 같은 현실은 개별 제약업체들의 경영실적과 주가에도 먹구름이 끼게 했다. 결국 화이자, 머크&컴퍼니, 와이어스,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 쉐링푸라우 등 미국 굴지의 제약기업들이 앞다퉈 영업인력 감축이나 공장폐쇄 등 구조조정을 위해 메스를 뽑아들기에 이르렀다.
제약업계에 위기론이 고개를 들면서 투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제약산업에 대한 신뢰도 또한 적잖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는 등 파장을 드리웠다.
이에 따라 제약업계에서는 1990년대의 '화려한 시절'을 뒤로 한 채 '선택과 집중의 전략'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경향이 역력히 감지되고 있다.
2. 줄줄이 특허만료 '질풍노도기' 진입
올해는 오는 2009년까지 블록버스터 제품들의 줄이은 특허만료로 인한 '질풍노도기'가 시작되는 첫해로 꼽히고 있다. 항응고제 '플라빅스'(클로피도그렐), 콜레스테롤 저하제 '프라바콜'(프라바스타틴), 항생제 '지스로맥스'(아지스로마이신), 패치형 진통제 '듀라제식'(펜타닐) 등 7개 제품들이 제네릭 제형들의 도전에 직면한 상태.
이와 관련, 영국 런던에 소재한 제약정보 전문업체 어치 퍼블리싱社(Urch Publishing)는 지난 9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미국과 유럽에서 한해 매출총액 600억 달러대에 달하는 40여 제품들이 특허만료에 직면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허가 만료되면 제네릭 제형들이 1~2년 이내에 기존 오리지널 제품의 시장을 최대 80% 수준까지 잠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앞으로 제약업계에 미칠 파장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는 지적이다. 항우울제 '푸로작'(플루옥세틴)의 경우는 단적인 사례. 특히 특허만료에 따른 영향이 가장 광범위하게 나타날 해로는 2006년과 2007년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화이자社의 콜레스테롤 저하제 '리피토'(아토르바스타틴)와 일라이 릴리社의 정신분열증 치료제 '자이프렉사'(올란자핀)이 특허소송에서 승소한 것은 메이저 제약기업들이 제네릭업계의 공세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3. 머크, '바이옥스' 리콜 메가톤급 후폭풍
2004년 9월말 관절염 치료제 '바이옥스'(로페콕시브)가 회수조치된 데에 따른 파장은 올해 머크&컴퍼니社는 물론이고 제약업계 전체에 깊숙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머크는 2차례에 걸쳐 내놓은 구조조정 플랜을 통해 오는 2010년까지 총 45~50억 달러에 이르는 비용절감案을 실행에 옮길 예정이어서 뼈를 깎는 고통분담이 예고되고 있고, 지난 5월에는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바이옥스'를 복용한 후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7,000여건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당해 치열한 법정공방이 현재진행형이다.
'바이옥스'의 리콜은 또 같은 계열의 치료제인 '쎄레브렉스'(셀레콕시브)와 '벡스트라'(발데콕시브)에도 불똥이 튀었다. 이 때문에 '쎄레브렉스'의 경우 매출이 절반 수준으로 급락했으며, '벡스트라'는 끝내 '바이옥스'와 같은 길을 걷는 비운을 맞아야 했다.
4. 찬밥 설움 항암제·백신 '황금 비즈니스' 햇빛
핵심제품들의 줄이은 특허만료와 후속신약 개발의 차질 속에 그 동안 시장볼륨이 작거나, 수익성이 낮은 탓에 소외받았던 항암제·백신 분야가 올들어 부쩍 '황금 비즈니스'로 떠오를 기세를 내비치기 시작해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던 옛말을 실감케 했다.
항암제의 경우 인간게놈의 해독 등 기술적 진보와 고가(高價)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이점, 상대적으로 경쟁에 대한 부담이 적은 현실 등을 등에 업고 일약 메이저 제약기업들의 R&D 격전장으로 부각되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머크&컴퍼니, 와이어스, 쉐링푸라우 등 지금까지 눈에 띄는 항암제를 보유하지 못했거나, 아예 전무하다시피 했던 메이커들이 앞다퉈 이 분야에 뛰어들었을 정도다.
돈안되는 비즈니스라는 인식 속에 찬밥 설움을 면치 못했던 백신사업도 생화학 테러에 대한 공포 확산, 인플루엔자 창궐 위기감 고조, 조류 인플루엔자·중증 급성 호흡기계 증후군(SARS)의 돌출 등 '21세기版 페스트' 출현이 우려되는 현실 속에 새로운 돌파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노타비스와 글락소가 이 시장에 가세했는가 하면 글락소와 머크는 자궁경부암 예방백신 개발경쟁을 전개해 백신 분야에 대한 인식전환을 견인했다.
5. 조류 인플루엔자 덕분 중고신약 '타미플루' 날갯짓
스위스 로슈社의 '타미플루'(오셀타미비르)는 원래 지난 1999년 FDA의 허가를 취득했던 인플루엔자 예방·치료용 항바이러스제. 발매 이후 거의 사장되다시피 했던 '타미플루'는 올들어 조류 인플루엔자의 확산을 저지할 최선의 대안으로 부각되면서 일약 스포트라이트가 쏠려 대표적 중고신약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코자 '타미플루'를 비축하려는 각국 정부의 주문이 쇄도했기 때문.
이 과정에서 원개발사인 미국 길리드 사이언시스社(Gilead Sciences)가 발매 초기의 판촉활동이 미흡했던 만큼 일체의 권한을 회수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아 갈등을 빚었는가 하면 일본을 중심으로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편 로슈측은 '타미플루'의 공급확대를 강구해 세계보건기구(WHO)에 상당량을 무상제공하고, 일부 국가 및 제약기업들에 대해 제네릭 생산을 허용하는 등 '친절한 로슈'의 이미지를 심는 부수적 성과도 올릴 수 있었다.
6. 노바티스, 기업사냥 시리즈로 '시선집중'
예년에 비해 빅딜급 M&A가 눈에 띄지 않았던 올해 스위스 노바티스社는 잇단 문어발식 기업사냥으로 단연 주목받은 제약기업이었다. 실제로 메이저 제약기업들 가운데서는 드물게 일찍부터 제네릭 분야에 깊숙히 손길을 뻗친 메이커로 손꼽혀 왔던 노바티스는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올들어 독일 헥살社(Hexal), 미국 이온 랩社(Eon Lab),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社의 북미시장 OTC 사업부 등을 줄줄이 인수했다.
이를 통해 노바티스는 이스라엘의 테바 파마슈티컬 인더스트리社(Teva)를 제치고 잠시나마 세계 최대 제네릭 메이커에 등극하기도 했다. 여기에 인도 시플라社(Cipla)를 인수할 것이라는 루머까지 고개를 들었다. 게다가 11월 들어서는 미국의 바이오테크놀로지·백신메이커 카이론社를 인수키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노바티스는 처방약·제네릭·OTC 등 3개 사업부문에서 '환상의 삼중주'를 울려퍼뜨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7. 아스트라제네카, '삼중고'로 홍역
아스트라제네카社는 항응고제 '엑산타'(자이멜라가트란)의 FDA 허가지연과 폐암 치료제 '이레사'(제피티닙)의 생명연장효과 입증 실패, 콜레스테롤 저하제 '크레스토'(로수바스타틴)의 안전성 문제 돌출 등 삼중고가 불거지면서 올해 혹독한 홍역을 치러야 했다.
한해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릴 블록버스터 드럭으로 발돋움이 기대되었던 미래의 간판품목 후보약물이었던 '엑산타'와 '이레사'의 차질은 올초 미국시장을 담당하는 영업인력 중 10%를 감원하는 직격탄으로 이어졌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또 자사의 '크레스토'와 회수조치되었던 바이엘社의 '바이콜'(세리바스타틴)과의 차별성 부각에 부심해야 했다.
급기야 지난 7월 톰 맥킬롭 회장이 올해 말로 퇴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후임으로는 데이비드 R. 브레넌 부회장의 승계가 내정됐다. 특히 맥킬롭 회장의 퇴진이 내정된 이후 글락소스미스클라인社와의 합병추진說이 불거져 나와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8. 처방약 광고 새 트렌드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미국의 올해 상반기 처방약 광고시장이 6년만에 소폭이나마 뒷걸음질친 것으로 나타나고, 의약품 광고매체의 무게중심이 TV로부터 타깃지향성 측면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한 인쇄·출판물로 권력이동하는 등 광고패턴 변화의 조짐이 뚜렷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특히 잇따라 불거진 거대제품들의 리콜과 안전성 논란의 여파로 의약품 광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드러나자 '쎄레브렉스'의 광고중지가 결정되는 등 제약업계의 광고전략은 자의반타의반으로 더욱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현실에서 제약업계가 선택한 것이 '소프트-셀'(soft-sell) 전략.
특정제품에 대한 홍보보다 질병에 대한 전반적 이해도를 높이는 내용의 교육적인 메시지와 은근한 메타포(metaphor)를 담아 설득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진실게임' 의혹만 부추길 소지가 있는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는 '약장사'식 광고를 지양하려는 이 전략은 제약기업들로 하여금 의약품 광고에 쏟아지던 비난과 부정적 인식을 비껴갈 돌파구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9. 고개숙인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 일어나~
1998년 5월 데뷔한 '비아그라'(실데나필)가 이듬해 10억 달러 고지를 훌쩍 넘어서며 폭발적인 붐을 조성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장밋빛 미래를 점치는 예측이 팽배했다. 2004년에는 '비아그라' 한 품목만으로도 한해 4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을 정도.
그러나 2003년 '시알리스'(타달라필)와 '레비트라'(바데나필)가 가세했음에도 불구, 지난해 25억 달러대를 형성했던 발기부전 치료제의 세계시장 볼륨은 올들어 벌써 포화상태에 도달한 듯한 조짐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한 예로 미국시장의 1/4분기 매출·처방건수 증가율이 겨우 1%에 그쳤을 정도.
이 같은 현실은 발기부전 치료제들이 비동맥 전방 국소빈혈성 시신경장애(NAION) 부작용으로 인해 드물게나마 시력상실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불거진 것에 한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직도 대다수의 남성들이 발기부전 증상에 대해 상담하고 치료법을 찾으려는 열린 자세가 미흡한 현실이 불식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10. 美, 응급피임약 OTC 전환 허용논란 '뜨거운 감자'
이른바 '모닝 애프터 필'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통용되고 있는 응급피임약의 OTC 전환 허용 여부는 올 한해 미국에서 줄곧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찬·반 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바아 파마슈티컬스社(Barr)에 의해 제기되었던 '플랜 B'의 OTC 전환 요청에 대해 FDA가 최종결정을 거듭 연기하자 여성단체가 FD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는가 하면 FDA 커미셔너가 전격교체되는 데도 빌미를 제공했다는 분석까지 따랐을 정도였다.
이 문제는 또 개인적 신념이나 종교적인 이유 등에서 비롯된 약사의 조제거부권 허용문제와도 결부되어 논란의 범주를 확대시켰다.
이와 관련, 지난 4월 캐나다가 응급피임약의 OTC 전환을 승인했고, 미국에서도 '모닝 애프터 필'의 자유로운 구입을 허용하는 州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이덕규
200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