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있어도 못 쓴다" 애타는 환자들… 신약 접근성 '가치 평가' vs '재정 건전성' 팽팽
외자사·환자단체 "OECD 최하위 접근성, 획일적 ICER 탈피하고 급여 장벽 낮춰야"
국내 제약업계 "혁신 신약 우대 전무, 제네릭 약가 인하로 토종 R&D 생태계 위협"
보건당국 "100일 신속등재·유연계약제 안착 주력… 사후평가로 재정 지속가능성 방어"
입력 2026.06.01 06:00 수정 2026.06.0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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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은 토론회 전경©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정부가 제약 생태계 혁신과 환자 접근성 강화를 외치며 약가제도 개편의 칼을 빼 들었지만, 정작 산업 현장과 환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혁신 신약에 대한 실질적 우대는 빠진 채 제네릭 약가 인하에만 초점이 맞춰진 데다, 신속 등재를 뒷받침할 가치 기반 평가 등 알맹이가 빠져 있어 자칫 국내 제약산업의 R&D 동력만 훼손될 수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29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국민의힘 백종헌 국회의원 주최 ‘신약 접근성 확대와 제약 혁신의 균형: 환자 보장성 강화 방향'을 주제로 포럼이 개최됐다. 정형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은 2부 토론 세션에서는 새 약가제도를 둘러싼 각계의 날 선 공방이 오갔다.

글로벌 제약업계와 환자단체는 '시간'과 '평가 지표'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며 신속한 정책 집행을 호소했다.

최인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전무는 "최근 10년간 글로벌 신약 460개 중 한국의 신약 허가율은 33%, 급여 적용 비율은 22%로 OECD 평균을 크게 밑돈다"며 "글로벌 최초 출시 후 1년 이내 국내에 도입된 신약 비율은 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100일 신속등재 제도가 단순 심사 기간 단축을 넘어 평가·협상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며 "희귀질환·항암제 특성상 획일적인 ICER(점증적 비용-효과비) 중심 평가를 벗어나, 미충족 의료수요와 사회·경제적 편익을 반영하는 가치 기반 평가와 '적응증별 가치 인정 약가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시간은 환자에게 제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다"며 절박함을 토로했다. 

정 사무총장은 "국내 헬프라인 등록 희귀질환 중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95%에 달하며, 약이 있어도 까다로운 급여 기준으로 인해 접근성이 막혀 있다"고 꼬집었다. 

허가가 되어도 급여가 불발된 특발성폐섬유증, 성인 환자가 나이 차별을 받는 신경섬유종, 재발을 2회 이상 겪거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투여가 가능한 시신경척수염증 및 중증근무력증 사례를 열거하며 환자가 애타게 원하는 것은 좋은 제도가 아니라 치료제 그 자체라고 호소했다.

국내 제약업계를 대변한 박선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보험정책실장은 이번 개편안의 세밀한 맹점을 파고들었다.

박 실장은 "혁신형 기업이 개발한 제네릭에 대한 우대 방안은 존재하지만, 만성질환 위주인 국내 개발 '신약'에 대한 우대는 전무하다"며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제네릭 개발만 보상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기등재 약가 인하로 전반적인 약가 수준이 낮아지면 토종 신약의 시장 진입은 더욱 험난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퇴장방지의약품 가산 제도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박 실장은 "현재 정책 가산이 약가의 10%가 아닌 '적정 이윤의 10%'로 설계되어 있어 실제 가격 반영액이 턱없이 낮다"며 "원가 산정 절차의 투명성 확보와 함께 현재 약가 기준 10% 이상의 실질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원료 직접 생산 기업 약가 우대 요건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박 실장은 "생산 효율성을 위해 원료 합성을 자회사나 계열사로 분리하는 것이 합리적인 산업 구조임에도, 개편안은 '자사 직접 생산'만 우대하고 있다"며 "자회사를 통한 국산 원료 사용을 인정하되 정기적인 사후관리를 도입하는 절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과정에서 직원 개인의 일탈로 인한 리베이트 결과 책임을 법인이 연대해 자격이 취소되는 구조의 개선도 강하게 요구했다.

제도를 집행하는 정부와 기관들은 정책 진행 상황을 공유하며 '재정 지속가능성'과 '사후관리'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김형민 국민건강보험공단 신약관리부장은 "코리아 패싱을 막기 위해 지난 4월부터 도입된 '약가 유연계약제'를 통해 5월 기준 12품목이 계약을 체결, 6월 1일부터 적용을 앞두고 있다"고 성과를 밝혔다. 

100일 신속등재 시범사업에 대해서도 "단순 협상이 아닌 산정에 준한 계약을 통해 기간을 단축하며, 경제성 평가 생략 수준을 고려해 최저가 90% 선에서 총액 기반 계약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 부장은 "신약 투입 증가에 대비해 약품비 증가 요인을 다각적으로 모니터링하는 피드백 체계가 필요하며, 한정된 재원을 중증 질환에 우선 배분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종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평가부장은 신속 등재 이후의 '사후관리'를 핵심 과제로 꼽았다. 

이 부장은 "희귀질환 특성상 근거 생성이 어려운 만큼, 등재 후 사후평가를 통해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을 검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기등재 약가 인하에 대해서는 "외국 대비 제네릭 약가가 높고 품목이 난립해 비가격 경쟁이 심화되면서 불필요한 건보재정이 소비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개편안의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산업계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혁신형 기업에 인하 특례 기간을 부여하고 필수 약제를 우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자회사 생산 인정 등은 지속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부임한 강준혁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거시적인 정책 조율을 약속했다. 

강 과장은 "희귀질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문제를 접할 때마다 제도가 더딘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혁신 신약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약가제도뿐만 아니라 금융, 세제 지원, 유통 구조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번 3월 개선안은 제네릭 인하뿐만 아니라 수급 불안정 의약품 개선과 신약 접근성 강화 방향이 모두 담긴 종합판"이라며 "제도 개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인 만큼, ICER 임계값 개선이나 다적응증 약가 산정 등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방안을 지속해서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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