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의사회는 운명이었죠"
길리어드 Associate Director 방지훈 이사
입력 2012.10.17 06:30 수정 2012.10.17 07:12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스크랩하기
작게보기 크게보기
봉사활동이나 사회공헌 활동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물품이나 금전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고 시설을 찾아가는 직접적인 봉사도 있다. 최근에는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재능기부도 활발하다.

수많은 봉사활동, 사회공헌 활동에 가볍고 무거운 것은 없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오지나 보건의료취약지역에서 생명을 살리는 의료봉사활동은 어딘가 숭고해 보인다.

그런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취재차 만난 길리어드의 방지훈 이사가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활동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든 생각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였다. 

국경없는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 MSF)는 1971년 프랑스에서 의사와 기자들에 의해 설립된 국제 의료 인도주의 비영리 독립단체다. 

60여개 국에서 분쟁, 질병, 영양실조, 자연 재해, 인재에 고통 받는 사람들과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긴급 구호를 실시하고 있다. 

당장 인터뷰 약속을 잡고 만난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한 질문은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였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못할 것 같았어요."

감염내과를 전공한 그는 대학 때부터 어떤 형태로든 국제보건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고. 

미국 템플의과대 병원에서 5년간 일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제약사에서 일하다가 국경없는 의사회 한국지부의 파견프로그램에 대해 알게됐다.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다라는 생각에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던 회사도 마다하고 2011년 5월 아르메니아로 떠났다. 지금은 부인이 된, 당시 오랫동안 사귄 여자친구도 한국에 그대로 둔채 말이다.

아르메니아는 터키와 이란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지난 1991년 당시 소련(현재 러시아)으로부터 독립한 나라다. 

기본적인 보건의료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취약계층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국경없는 의사회에서는 이 지역을 다제내성결핵 관리지역으로 보고 의사들을 파견하고 있다. 

방지훈 이사 역시 이 지역에서 다제내성결핵환자들을 돌보는데 주력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달라고 하자, 방 이사는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정말 많다며 잠시 고민했다. 

"다제내성결핵 환자는 한번에 15알에서 20알 가량의 약을 먹어요. 그래서 부작용이 많아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20%쯤 돼요. 한 남자 환자가 있었는데 다제내성결핵과 뇌수막염으로 치료하기도 매우 어려운 케이스였어요. 다제내성결핵도 한단계 더 심각한 결핵이었죠. 사실 진단 당시에는 곧 죽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환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약을 먹었고 증상도 점차 호전됐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알고보니 그 환자의 아내가 매일 약을 매일 먹여줬더라고요. 신기하게 부작용도 적게 나타났고요. 아르메니아를 떠나올 당시, 상태가 많이 호전돼서 아마도 지금쯤이면 완치됐을거라고 생각해요."

국경 없는 의사회 및 아르메니아 정부 관계자와 함께
그 남자 환자는 상태가 호전되며 프로그램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됐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다제내성결핵 치료제는 가격이 비싸다.

일반 결핵은 약 100불 정도 수준이면 되지만 다제내성결핵환자에게 들어가는 총진료비는 거의 1억원에 육박한다. 결핵은 특히나 전염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치료를 중단할 수도 없는 질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호전될 수 없는 환자를 안타깝게도 프로그램에서 제외시켜야만 하는 경우가 필연적으로 생기곤 한다.  

방 이사의 기억에 남는 환자도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처음 아르메니아에 도착했을 때, 그 환자는 약을 먹지 않겠다며 문제를 일으켰다. 

다제내성결핵과 HIV 환자로 그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방 이사는 약을 복용하지 않겠다는 그 환자를 매일 같이 설명하고, 또 설명해주자 그제서야 그 환자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심지어 설명해줘서 고맙다라는 인사까지 건넸다. 방 이사는 "그 환자에게 관심을 갖고 계속 설명해주자 약을 먹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알고보니 환자는 자신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을 복약 거부로 표현했던 것 뿐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환자는 정기적인 침검사에서 더이상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단계라는 판정을 받고 말았다.  

매주 의료진들이 모여 하는 회의에서 결국 그 환자는 프로그램에서 빼기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에서 빠진다는 것은 사형선고와 마찬가지.

직접 그 이야기를 전해주던 방 이사에게 그 환자는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라며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아르메니아에 갔을 당시 약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어요. 하루에 새로 진단되는 환자만 10명에서 15명인데 한달에 4명분의 약만 공급할 수 있는 상태였죠. 어떤 여대생 결핵환자는 감염정도가 다른 환자에 비해 경미해서 2달 가량 기다려야 했는데 그 기간동안 매일 약을 달라면서 울었어요. 저 역시 환자들이 죽고 매일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지쳤던 것 같아요."

결핵 병원 마지막 방문날, 통역사와 함께
많이 지쳐있던 그에게 함께 활동하던 룸메이트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많은 경험과 감정을 공유했고, 눈물도 흘렸다.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에게도 많은 힘을 얻었다. 

룸메이트들의 조언에 따라 아르메니아 생활 7개월이 지나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그래도 항상 힘들고 지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주말이면 아르메니아 시내를 나가 구경을 했다. 동양인이 없는 지역에서 그는 모두의 관심 대상이었다. 호기심 많은 꼬마들은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곳에서 맛보았던 체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는 7개월 간의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을 마치고 2011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경험을 토대로 길리어드를 선택해 입사, 현재 만성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왜 길리어드를 택했을까.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을 하면서 약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약이 없어서 환자도, 의사도, 나라 전체가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죠. 흔히 말하는 유병율이 높은 병이 아니라 유병율이 적고 외면시 되는 여러 감염 질환 약을 개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제약사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길리어드는 저의 그런 가치관과 많이 부합한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한번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언젠가 다시 한번 해볼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당분간은 비리어드에 집중하려고요. 하하"
전체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기사 더보기 +
인터뷰 더보기 +
설덕인 원장, “천연물 기반 질염 치료제 개발할 것”
웨스트파마슈티컬서비스 “주사제 ‘용기·투여 시스템’까지 검증 필수”
창고형 약국 공세…'가격으론 못 이긴다' 동네약국 생존법은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산업]"국경 없는 의사회는 운명이었죠"
아이콘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관한 사항 (필수)
  - 개인정보 이용 목적 : 콘텐츠 발송
- 개인정보 수집 항목 : 받는분 이메일, 보내는 분 이름, 이메일 정보
-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 기간 : 이메일 발송 후 1일내 파기
받는 사람 이메일
* 받는 사람이 여러사람일 경우 Enter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최대 5명까지 가능)
보낼 메세지
(선택사항)
보내는 사람 이름
보내는 사람 이메일
@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산업]"국경 없는 의사회는 운명이었죠"
이 정보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
스크랩한 정보는 마이페이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