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경실련, 일반약 슈퍼판매 주장…‘용두사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주최한 ‘일반의약품의 약국 外 판매 토론회’에서 경실련 스스로가 일반약 슈퍼판매 주장에 대한 꼬리를 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정승준 경실련 보건의료위원(강원의대 생리학 교수)은 발제에서 국내 의료소비자의 의식변화, 자가 치료(Self-Medication)의 필요성, 외국의 슈퍼판매 사례 등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며 일반의약품의 슈퍼판매를 주장했다.
그러나 박인춘 대한약사회 홍보이사, 홍승권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김자혜 소비자 시민의 모임 사무총장 등의 토론이 이어지면서, 토론회 분위기는 의약품의 접근성 보다는 안전성이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반전됐다.
결국 정승준 위원은 “일반약 중에서 슈퍼판매가 가능한 의약품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며 사실상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입장을 표명, 자가당착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 경실련, “약물 오남용…안전성ㆍ유효성 검사로 통제 가능”
경실련 정승준 위원은 의약품의 슈퍼판매 주장에 대한 근거로 의료소비자들의 의식변화, 외국의 슈퍼판매 사례 등을 제시했다.
우선 정 위원은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화제, 해열제, 진통제, 드링크류 등 일반의약품의 OTC전환에 대해 76%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이 일반약 슈퍼판매를 찬성하고 있다는 것.
또한 정 위원은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일본 등에서는 이미 일반약의 슈퍼판매를 허용하고 있다”며 외국의 일반약 슈퍼판매 현황을 제시,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권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약물 오남용이나 부작용 등을 이유로 슈퍼판매를 반대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정 위원은 “약물의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의 이유로 접근제한을 한다면 오히려 보건의료에 대한 편의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약물의 오남용 문제는 안전성과 유효성 검사를 통한 통제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접근성, 편의성 보다 안전성이 우선
그러나 정 위원의 주제발표 이후 박인춘 대한약사회 홍보이사, 홍승권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김자혜 소비자 시민의 모임 사무총장 등의 토론이 이어지면서, 토론회의 분위기는 의약품의 안전성이 중요하다는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박인춘 홍보이사의 반론은 둘째치고서라도, 홍승권 교수와 김자혜 사무총장까지도 “의약품의 접근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의약품의 안전성 확보 및 사회적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소비자들이 슈퍼판매를 원한다는 소비자시민모임의 설문조사 결과를 김 사무총장은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김 사무총장은 이 설문조사 결과를 소비자들의 슈퍼판매 요구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의약품 안전성에 관한 부분을 강조하는데 사용했다.
김 사무총장은 “소비자들이 처방전 없이 의약품을 구입할 때 고려하는 6항목 중 ‘약 포장/용기에 소비자 정보표시’를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며 “의약품의 접근성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의약품에 대한 성분 표시, 효능, 부작용에 대한 중요 정보가 소비자에게 잘 보일 수 있도록 제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중에는 아예 “소비자들이 의약품의 슈퍼판매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접근성보다는 안전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접근성이 아닌 안전성이 보다 중요한 항목임을 꼬집어 말했다.
홍승권 교수도 일반약의 슈퍼판매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긍정적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노인과 청소년 등의 ‘연령제한’과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고려할 때 반드시 복용중인 약물을 종합 검토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며 “약을 남용하는 노인과 청소년 등에 대해서는 구입을 제한하는 등의 연령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홍 교수는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계층은 병의원 보다 약국, 약국보다는 편의점에서 나름대로 드링크제 등으로 몸의 고단함을 달래고 있다”며 “사회경제적 조건과 노동 및 환경조건의 개선 없이 이들은 약물 의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 이들 계층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 마련이 선행돼야 함을 피력했다.
◇ ‘경실련-체인협회’만 슈퍼판매 주장
이어 열린우리당 김춘진 의원, 보건복지부 오창현 사무관 역시 의약품의 접근성 보다는 안전성에 더욱 후한 점수를 주는 토론을 진행했다.
김춘진 의원은 슈퍼판매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로인한 사회적 혼란이 야기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오창현 사무관 역시 국민의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복지부 본연의 임무를 거론하며 단계적인 추진 의사를 밝혔을 뿐이다.
유일하게 안승용 한국체인스토어협회 부회장만이 경실련의 주장에 동의, 소비자의 Needs 반영과 의약품 유통구조상의 비경제성을 언급하며 일반약의 슈퍼판매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한국체인스토어협회가 편의점협회와는 달리 오후 10시~11시 사이에 문을 닫는 소매점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슈퍼판매가 시행된다 할지라도 그 실효성에 있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경실련 정승준 보건의료위원은 “일반의약품이 슈퍼판매가 될 경우 그 품목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며 “그 몇 개의 품목들조차도 판매 장소에 대한 규제를 철저히 해야 하며 전문가들의 검증과 보건당국의 협의를 통해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언급, 일반약 슈퍼판매가 필요하다는 애초의 주장과는 다소 동떨어진 결론을 내렸다.
손정우
2007.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