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기등재약 토론회’ 심평원 ‘판정승’
지난 19일 진행된 고지혈증 치료제 ‘기등재의약품 목록정비 토론회’에서 다국적의약산업협회(이하 KRPIA) 등 제약업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고지혈증 목록정비사업에 관한 연구결과가 잘못됐다며 논쟁을 벌였지만, 토론회는 사실상 심평원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됐다.
심평원 연구결과가 맞느냐 틀리느냐를 놓고 5시간동안 펼쳐진 논쟁에서 KRPIA 등은 심평원의 논리와 주장을 ‘확실히’ 뒤집을만한 근거를 내놓지 못했다.
실제 KRPIA는 지난 5월에 제시한 문제제기 내용을 되풀이해 주장한 반면, 심평원은 KRPIA가 제기했던 문제점을 반영한 ‘업그레이드’ 된 연구결과를 새롭게 제시하며 오히려 KRPIA의 지적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에 따라 심평원의 고지혈증 치료제에 관한 기등재약 목록정비 시범사업 연구결과 최종보고서는 이날 발표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일부 보완하는 선에서 작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그간 복지부가 ‘상황을 뒤집을만한 결정적인 문제가 발견된다면 재검토해볼 생각이 있다’고 밝혀왔던 것을 감안하면, 상황을 뒤집을만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이날 토론회 결과가 대부분 복지부 정책결정 과정에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토론회에서 로펌 ‘김&장’이 제기한 ‘약값은 재산권’이라는 법적인 문제가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향후 김&장을 필두로 한 KRPIA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KRPIA 말대로 해봤지만 대세에는 지장 없다
“제약업계가 지적한 것을 바탕으로 다시 분석한 결과 약간의 숫자 차이는 있었으나 (이전 연구결과의)경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기등재의약품 목록정비 토론회’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대표해 발제를 맡은 상지대 배은영 교수(왼쪽 사진, 전 심평원 연구원)의 말이다.
지난 5월 KRPIA가 심평원 연구에 대해 문제제기 한 내용을 그대로 수렴해 다시 한 번 연구결과를 검토해봤지만, 이전 연구를 뒤집을만한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내용 자체만 놓고 볼 때, 논쟁의 주요내용은 ‘메타분석의 간접비교에 따른 검정력 문제’와 메타분석 이후 ‘약값을 결정했던 LDL-C 강하효과 분석 문제’ 등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심평원 연구에 사용된 메타분석(Buchner et al, 1997) 방법이 간접비교 방식이어서 검정력(유의한 차이가 있고 없음을 구별해내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배은영 교수는 일단 “한계가 있고, 지적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배 교수는 연구과정에서 간접비교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검정력의 문제나 다중비교의 문제를 사전에 인지하고, 그 결과를 해석하는데 있어 주의를 기울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배 교수는 “증거가 불충분한 메타분석의 해석은 ‘현재의 증거로는 처리효과의 유의성을 확인할 수 없다’가 돼야한다고 지적한 KRPIA의 의견에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심평원 연구결과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배교수에 따르면, 심평원의 연구결과는 ‘현재의 증거로는 스타틴 간의 유의한 차이를 확인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심혈관계 질환 예방효과와 관련한 증거만으로는 경제성평가 방법을 선정할 충분한 근거가 없으므로 이차적 지표인 지질강하효과를 검토해 동등 혹은 유사한 지질강하효과를 나타내는 스타틴 용량을 기준으로 평가결과를 도출했다는 것이다.
연구의 첫째 목표점이었던 ‘심혈관계 질환 예방효과’ 차이 구별에 있어, 결과적으로는 KRPIA의 주장과 심평원 주장 모두 ‘알 수 없다’는 동일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연구목표였던 지질강하효과를 가지고 개별 약물의 약값 인하 정도를 판단했다는 것이다.
간접비교가 아니라 약물 간 다중비교를 해야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다중비교는 성격상 검정력과는 정 반대의 특성을 지니는 것이고, 메타분석에서 검정력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지적됐기 때문에, 보정할 필요가 없었고 또한 심평원의 결론에 영향을 미칠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한 스타틴계 약물의 개별 연구결과를 모아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연구결과들 간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질성’의 문제에 대해 배 교수는 “약물의 용량차이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며 “특히 아토바스타틴 10mg과 80mg은 용량차이 때문에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에 아토바스타틴 80mg을 제외하고 메타분석을 진행했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큰 경향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메타분석에 관한 논쟁에 이어 촉발된 지질강하효과(LDL-C) 분석에 대한 논쟁에서는 “메타분석 결과는 수십 쪽에 달하도록 보고서를 작성했으면서, 정작 약값을 결정한 지질강하효과에 대해서는 두 쪽에 불과하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심평원은 “보고서 분량이 적은 것이 충분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질강하효과에 관해서는 오히려 약물 간 1:1로 진행된 연구들이 풍부하게 나와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연구보고서들을 검토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지질강하효과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지질강하효과와 관련, KRPIA에서 “심평원이 지질강하효과 분석에 참고한 DERP 2006 논문에 결함이 있다”고 제기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심평원은 “KRPIA가 반영해달라고 제시한 Rogers 2007 논문을 포함해서 다시 지질강하효과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했지만,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심바스타틴20mg과 아토바스타틴10mg의 용량의 상대성 결과에 있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석의 문제이므로 (복지부의)정책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연구결과 정책결정수단 사용 ‘무리 없다’
심평원 연구결과에 대한 세부적인 논쟁이 마무리될 쯤, KRPIA 주인숙 상무는 “연구결과가 논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이번 연구를 수용하지 말고 정부와 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독립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기했다.
한국제약협회 쪽에서도 “지질강하효과만으로 약값을 결론내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며 “다시 한 번 토론의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심평원 연구에 참여한 자문위원은 “연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한다는 제약업계의 문제제기는 학문적인 측면에서는 고려해볼 수 있다”면서도 “결과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연구결과를 정책결정에 사용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자문위원도 “연구결과에 일부 문제가 있을 수 있어도 이는 완전한 오류가 아니며 큰 시각에서 이 자료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스타틴 약물들 간에 효과는 크게 차이 나지 않음에도, 약값은 큰 차이가 나고 있다는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복지부는 기등재약 목록정비가 꼭 필요한 사업임에 무게를 두면서도, 일단 사업이 시행된 만큼 되도록 제약업계와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절차를 통해 목록정비 사업을 추진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토로회 시작에 앞서 복지부 보험약제과 이태근 과장은 모두 발언을 통해 “약값에 대한 논쟁이 많지만, 포지티브 리스트가 시행된 이후부터는 특허기간이 만료되면 제네릭과 똑같이 취급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오늘은 승패를 가르는 자리가 아니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토론하는 자리이고, 오늘 의견 개진을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툴’로 목록정비가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 제약업계가 한두 가지 각론을 제외하곤 대부분 심평원의 논리를 넘어서지 못하는 등 눈에 띄는 결함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심평원이나 복지부가 제약업계의 ‘연장전’ 신청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다.
김&장 ‘약값은 재산권’ 문제제기…제약사 줄 소송 이어지나?
연구결과에 대한 논쟁과는 별도로, 김&장 로펌에서 제기한 ‘약값은 재산권’이라는 문제제기는 이번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이 향후 법정다툼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날 김&장은 ‘약값은 제약사에 있어 재산권’이고 따라서 약값인하는 제약사의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적인 다툼이 발생할 때 약값인하의 근거를 입증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토론 주제로 제시했다.
물론 김&장의 문제제기는 시간 관계상 토론되지 못했지만, 이 같은 문제제기는 제약사들이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에 대해 법정다툼도 불사하겠다는 ‘선전포고’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향후 다국적 제약사 등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반면 토론회에 앞서 환자 및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제약회사들의 반발은 지금까지 환자들,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부당하게 취해왔던 이윤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아우성에 지나지 않는다”며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을 조속히 시행하라”고 촉구해 김&장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편 고지혈증 치료제에 관한 기등재약 목록정비 시범사업은 심평원의 최종 연구결과 보고서가 복지부에 제출되면, 이를 바탕으로 오는 10월 복지부가 주관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될 예정이다.
손정우
2008.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