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세계는 OTC스위치 열풍…"두마리 토끼를 잡자"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약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전문약과 일반약이라는 두 종류의 약이 평행선을 이루며 존재한다.
의약분업 이후 극명해진 전문약과 일반약의 경계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두터운 장벽으로 남아있다.
특히 의약분업 이후 전문약과 일반약은 의사와 약사를 구분하는 기준처럼 여겨지며, 일반약에서 전문약으로 경계를 넘어선 몇 건을 제외하고는 결코 교류조차 없다.
이 같은 구조에서 일반약 활성화를 부르짖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이지 대답 없는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약 활성화 문제는 단순히 약사직능을 위한 부분이 아니라 셀프메디케이션 시대, 국민의 편의성과 보험재정 절감이라는 다양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시대적 흐름이기에 의약분업 10년을 맞은 지금쯤 깊이 있는 조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 재분류…의사처방 권력 최대 '벽'
우리나라에서 의사의 권력 그리고 의사가 지니고 있는 처방권은 절대 권력에 가깝다.
이 권력은 심지어 제도나 정책까지도 좌지우지 할 정도여서 좀처럼 의사에게 유리한 제도는 흔들리지도 바뀌지도 않는다.
스위치 OTC문제만 해도 그렇다. 당장 처방약이 줄어드는 의사 입장에서는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전문약과 일반약 구분은 의약분업 당시 기본적으로 의ㆍ약ㆍ정 합의를 통해 분류됐다"며 "이후 일반약에서 전문약으로 스위치 된 경우는 조인스 등을 비롯해 4건 정도가 있었지만 전문약에서 일반약으로 스위치 된 경우는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도 이러한 구조 상황에서는 스위치 OTC가 현실화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당장 일반약 OTC 얘기가 불거지면 의계 쪽에서는 전문약 스위치 카드를 꺼내들고 나올 것"이라며 "의약분업 10년을 지난 시점에서 재분류가 논의될 필요는 있겠지만 아직 큰 액션은 없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의약분업 10년을 돌아보면 전문약과 일반약의 신세는 극명하게 나뉘어 졌다"며 "회사에서도 그렇고 품목을 담당하는 담당자들끼리도 구분이 차이가 나는 상황이니 더 이상 말해서 뭐하겠냐"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처럼 의사와 의사의 처방권이 절대적인 나라에서 미국처럼 스위치 OTC가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것은 아직 먼 얘기"라며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반약이 활성 돼야 제약회사는 물론 정부의 재정, 국민의 호주머니까지 모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특히 "이 모든 문제와 해결 방법을 알고 있지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게 더욱 문제"라며 "10년이 지난 지금쯤 정부가 국민을 위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한 발짝 걸음을 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반약 OTC 미국이 '타산지석'
지난해 미국에서 '의료보험 개혁'은 오바마 정부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에 전력투구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2009년 한해를 뜨겁게 달군 핫이슈이자 ‘미국版 대운하 사업’격 논란거리로 단연 손꼽혔다.
한해 의료비 지출액만도 2,2000억 달러에 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점유율이 16%대에 달할 정도여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마치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
이에 따라 의료보험 재정을 절감하면서 불필요한 병ㆍ의원 내원 횟수를 줄이고, 과잉진료 및 과량투약을 방지해 비용지출을 억제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사회ㆍ경제적 압력도 갈수록 고조돼 왔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마다 큰 폭의 의료비 절감을 가능케 해 줄 처방용 의약품들의 OTC 전환을 '위기탈출 넘버원 카드'로 주목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OTC 제품들의 활발한 사용으로 인해 미국에서 매년 절감되고 있는 약제비 규모가 약 3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치가 이미 지난 2003년 공개된 바 있을 정도이다.
이와 관련 지난 2008년 9월 미국 소비자연맹(CU)이 총 1,000여 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무려 68%의 응답자들이 "현재 복용 중인 의약품을 가격이 저렴한 OTC 제품으로 바꿀 의향이 있다"고 밝혔던 것으로 드러나 시선을 집중시킨 바 있다.
제약기업들 내부적으로 볼 때도 간판급 제품들이 줄이어 특허만료시점에 도달하고 있는 반면 후속신약의 개발은 원활히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특허 보호막이 무장 해제된 제품들의 OTC 전환을 통한 라이프사이클 연장이 차선의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아울러 환자 측 관점에서 보더라도 IT 기술의 진보 덕분에 과거 같았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고급스럽고 다양한 첨단 의약정보들을 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스스로의 질병을 치료하는데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원하는 흐름이 세계 공통의 트렌드로 정착돼 가고 있다.
이에 따라 2000년대의 첫 10년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한 동안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던 처방용 의약품들의 OTC 스위치가 2006년 무렵부터 다시 활기를 띄면서 "OTC 스위치 잔치는 시작됐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한 예로 미국 뉴욕에 소재한 시장조사기관 칼로라마 인포메이션사는 지난 2008년 4월 내놓은 "처방약으로부터 OTC로 전환: 시장분석 및 제품관리전략" 보고서에서 2008~2013년 사이에 OTC로 전환된 콜레스테롤 저하제들이 연평균 127.5%에 달하는 놀라운 매출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2008년부터 201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항알러지제, 감기약, 콜레스테롤 저하제, 항균제, 위장관계 치료제, 탈모증 치료제, 편두통 치료제, 비 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 경구피임제, 골다공증 치료제, 호르몬 대체요법제, 과민성 방광 치료제, 발기부전 치료제, 수면개선제, 금연보조제, 바이러스성 감염질환 치료제 등 14개 약효군에서 OTC 로 전환되는 제품들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처방전을 발급받은 환자들 가운데 최대 40% 정도가 OTC 제품들로 대체구입하고 있으며, 미국 소비자들이 OTC 구입을 통해 한해 150억 달러 정도의 약제비를 절감하고 있다는 언급은 우리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일반약 활성화,국민ㆍ정부ㆍ기업 모두 '행복'
일반약 활성화에 대한 명분은 충분하다. 다만 앞으로 나갈 강력한 추진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어 문제가 된다. 어쩌면 강력한 제동장치에 발이 묶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물론 추진과 마찬가지로 제동에도 이유는 있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안전성 문제가 아닐까 싶다.
100% 안전한 의약품은 없다. 의약품은 동전의 양면처럼 유효성과 부작용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같은 이유로 KDI의 주장처럼 의약품 재분류, OTC확대가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에서도 손쉽게 판매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의약품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모든 제품의 관리는 의사와 약사의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오남용 등의 문제로 이어져 치료의 유익성보다 부작용이 더 크게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약분업 10년. 이제 지나온 10년을 교훈 삼아 다가오는 10년을 설계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의료비 절감을 비롯해 건강보험 재정절감, 경쟁증진 등의 효과를 도모할 수 있는 의약품 재분류를 통한 OTC 확대는 피할 수 없는 과제임에 분명하다.
임세호
2010.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