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화이자, ‘노바스크’ 약가인하 행정심판 청구
한국화이자가 보건복지가족부를 상대로 국내 약가제도에 대한 행정심판을 제기, 화이자-복지부 간의 정면대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국화이자는 복지부를 상대로 “특허가 남아있는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해 제네릭이 시판된다고 약가를 20% 인하하는 것은 특허를 침해할 수 있는 잘못된 제도”라며 3월 10일자로 ‘국민권익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복지부는 한국화이자의 행정심판 청구에 대한 답변서를 국민권익위원회에 곧 제출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4월부터 국민권익위원회의 본격적인 심리가 진행돼 이르면 5월 중순, 늦어도 6월 중순경에는 그 결과나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화이자, 국내 ‘약가제도 자체’에 문제제기
한국화이자가 제기한 행정심판의 타깃은 최근까지 고시형태로 존재하다가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신의료기술 등의 결정 및 조정 기준 일부개정안(이하 개정안)’이다.
제네릭이 나왔을 때 오리지널 약가를 20% 인하한다는 내용의 이번 개정안은 제네릭社가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될 때까지 제네릭을 시판하지 않겠다”고 하면 오리지널 약가를 그대로 두고, 반대로 제네릭社가 “특허와 관계없이 제품을 당장 팔겠다”고 하면 1회에 한해 오리지널 약가를 20% 인하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한국화이자가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제네릭社가 제품 판매를 선언했다고 해서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를 20%깎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화이자 홍보팀 관계자는 “현행 약가제도에는 불합리한 측면이 존재한다”며 “특허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상의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취지에서 행정심판을 냈다”고 밝혔다.
반면 복지부는 “입법예고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화이자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취지는 ‘특허권의 존중 여부 문제가 아니라 의약품의 가격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의 문제라는 것.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국가기관이 특허권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특허보호를 중심에 놓은 것이 아니라 약가의 결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시장상황을 최대한 반영해 약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고, 이것은 특허권 존중과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왜 ‘행정심판’인가?
‘노바스크’에 대한 화이자-복지부 간의 대결에서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지점은 한국화이자가 법원소송이 아닌 행정심판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노바스크’ 제네릭 시판을 선언한 국제약품과는 ‘특허심판원-특허법원-대법원’을 거치는 전형적인 법원소송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반면, 한국화이자는 복지부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심리를 거치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이는 화이자로선 ‘손해 볼 것 없는 외통수 전략’이라는 견해가 많다. 행정심판의 경우 만약 국민권익위원회가 한국화이자의 손을 들어주게 되면, 복지부로선 더 이상의 이의제기도 못하고 한국화이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반면 한국화이자는 행정심판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추가적으로 법원 소송을 통해 복지부를 또 다시 압박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 관계자는 “화이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덜한 행정심판을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복지부를 압박할 수 있겠지만, 복지부 입장에서는 화이자의 태도가 얄미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초반부터 양측의 기 싸움이 팽팽해 보인다”고 바라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화이자의 이 같은 움직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 및 보건당국 관계자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애초 역할이 서민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고통을 덜어주라고 만들어 놓은 곳인데, 매출액만 수십조에 달하는 다국적 기업이 억울하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한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이번 행정심판의 내용 자체가 국내 제약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행정심판 같은 절차로 간단히 처리되는 것 보다는 보다 심사숙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화이자와 국제약품 간의 소송에서 2심 판결이 국제약품의 손을 들어준 이상 화이자가 승소할 가능성이 낮은 것도 행정심판을 제기한 이유라고 생각된다”며 “제약사간 소송에서 어렵게 되자 복지부 제도 자체를 뜯어 고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화이자가 이기면 어떻게 되나?
만약 국민권익위원회가 화이자의 손을 들어주게 되면, 일단 이번 ‘신의료기술 등의 결정 및 조정 기준 일부개정안’ 속의 오리지널 약가 20% 인하 문구는 사라질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오리지널에 대한 제네릭 허가 및 시판과 관계없이 특허권이 존속하는 한 오리지널의 약가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에 관해서는 ‘특허권의 보호’라는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도 있지만, 아무래도 약가에 관한 문제이다 보니 ‘건강보험재정 불안’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시각도 많아 보인다.
화이자가 이기게 되면, 건강보험재정의 약제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오리지널 약의 약가인하 요인 중 하나가 사라지게 되고, 결국 약제비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더군다나 올해부터 향후 5년간 특허 존속기간이 만료되는 오리지널 품목이 수백 개에 이른다는 점에서, 화이자의 이번 시도는 적어도 특허 존속기간까지 만이라도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를 유지하려는 노림수라는 의견까지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미 제네릭 발매가 가시권에 들어온 리피토의 경우 등을 감안해서 약가인하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계획으로 보인다”며 “화이자가 복지부에 행정심판을 걸어올 때 약가인하에 대한 집행정지가처분신청을 내지 않은 것을 봐도 당장의 노바스크보다는 향후 특허분쟁이 예상되는 오리지널 약가인하를 막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어차피 건강보험재정이 한정돼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정 안정화를 위해 오리지널에 들어가는 돈과 제네릭이나 개량신약에 들어가는 돈을 조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오리지널 약가의 유지가 국내 제약사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손정우
2008.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