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신약개발⑧ - 정부지원의 문제점과 대책
강창률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식품의약품안전청 자문·평가위원
·(주)펜제노믹스 대표이사
`시행착오 수용·과감한 투자' 기업문화 부재
자본력·우수인력 부족 국내 신약개발 한계
세계 제약산업은 최근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무한 경쟁 시대의 새로운 생존 전략과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행위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국내 제약산업 발전을 범국가적으로 어떻게 구상하고 실천해 나가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런점에서 신약 개발에 있어 국내 산업의 취약점을 분석하고,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신약개발의 정부지원 사업의 의의와 문제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편 범국가적인 신약 개발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것은 국내 제약산업의 성장과 신약개발에 있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정부지원 사업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세계 제약산업의 최근 변화 추이
세계 제약산업의 변화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첫째의 변화는 수년전부터 나타나고 있는 대형 제약 회사간의 인수, 합병이다. 이는 아주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왜 합병이 쉽게 이루어 지는가 하는 점이다.
다양한 측면에서 인수, 합병의 장점을 분석할 수 있겠지만 신약 개발과 관련된 측면에서만 본다면 신약 개발의 포트폴리오를 확보함으로써 지속적인 성장을 꾀하고 경쟁대상의 제품을 축소시킴으로써 개발되고 있는 제품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것이다. 한편 집중적으로 소수의 제품에 투자함으로 나타날 수 있는 실패의 부담을 덜어 주는 효과도 매우 크다할 수 있다.
두번째의 변화는 신약개발 주체들의 역할 분담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신약 개발 주체라함은 대학 혹은 연구소, 벤처기업, 대기업을 뜻한다. 그림1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대학 및 연구소는 신약 개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약물 작용점의 발굴 등에 연구가 집중되어 있다. 이런 대학들의 연구비는 주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대학 및 연구소의 연구가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목표를 두고 있다기 보다는 특정 질환의 발병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근거를 찾으려는 연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이 실제로 신약 개발에 가장 기본이 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그림 2 참조).
미국의 경우 이런 현상을 가장 현저하게 볼 수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 (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의 연간 예산은 한국 정부 예산의 약 20퍼센트에 해당되고 거의 대부분이 연구에 쓰여지고 있다. 이 예산 중 일부는 자체의 연구에 쓰여지고 있고 나머지는 각 대학과 연구소에 연구비로 지출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비는 거의 대부분이 인간의 질환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대학과 연구소에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우수한 연구 결과가 신약 개발의 좋은 아이디어를 창출하게 하고 이는 미국의 제약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 우위를 장기간 확보할 수 있는 근간이 되어 왔다.
신약 개발 주체의 또 다른 축은 바이오 벤처기업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유럽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며 최근에는 국내 및 일본에서 이런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바이오 벤처기업은 신약개발에 있어 중개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학의 연구결과를 활용하여 신약 개발의 실질적인 후보 물질을 도출하고, 전임상 및 초기 임상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은 소수의 연구 인력을 가지고 있지만 특정 질환에 연구를 집중하고 독자적인 기술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따라서, 급속히 발견되는 새로운 사실들을 신속하게 활용하여 질환치료에 이용될 수 있는 후보물질의 도출이나, 새로운 치료 기술의 개발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런 후보 물질들은 제약 대기업에 기술 이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제약 대기업들은 신약 개발에 있어 기초 연구나 후보 물질을 도출하는 초기 단계의 R&D는 가급적 줄이는 경향이 현저해지고 있다.
대기업들은 바이오 벤처회사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검증된 후보 물질이나, 새로운 치료 기술을 도입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런 전략은 재정적인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제품 개발의 실패 확률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제품 개발의 포트폴리오 구성에 융통성을 둘 수 있기 때문에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기업의 역량을 새로운 제품 확보, 후기 임상, 마케팅에 집중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세번째의 변화는 그림2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수십만종의 물질을 in vitro 및 in vivo 시험을 행하여 효능을 우선 검증하고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과정을 활용하여 왔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많은 시간과 자본이 소요되며, 성공 가능성도 불확실한 면이 있었다.
최근에는 질환 관련 유전자 기능 분석을 행하여 약물 작용점을 먼저 확보한 후에 후보 물질을 도출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확실한 기전 (mechanism)에 근거한 신약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 항암제로 쓰이는 글리벡이 이런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유전체 연구, 유전자 기능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이 대학, 바이오 벤처 혹은 제약 대기업간 공동 연구로 수행되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에 있다.
신약개발에 있어 국내 산업 구조의 현실
신약 개발은 우수한 연구 인력과 풍부한 자본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 제약 기업은 신약 개발을 하는데 있어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개개 기업의 매출액이 적고 이익률이 낮아서, 장기적으로 신약 개발에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둘째는 신약 개발에 필요한 경험이 풍부한 우수한 연구 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이다. 물론 최근에 몇 개의 대학에서 우수한 연구 인력을 배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신약 개발의 경험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직도 성숙한 연구 인력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수 연구 인력을 산업체로 유인할 수 있는 요인도 부족한 상태이다.
셋째, 신약 개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패를 수용하기 어려운 기업의 문화이다. 지금까지 국내 제약 기업은 이미 선진 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의약품을 기술 도입, 혹은 자체 생산에 의해 제품을 출시해 왔기 때문에 실제로 제품 개발에 거의 실패가 없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신약 개발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수행되어야하고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패의 가능성이 있는 사업을 기업에서 과감하게 추진하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기업의 문화가 정착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넷째, 국내 대학 및 연구소가 국내 제약 기업에 제공될 수 있는 신약 개발의 기초가 되는 아이디어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바이오 벤처기업이 국내에 많이 설립되어 있지만 실제로 신약 개발과 관련해서 후보 물질을 도출하고 이를 제약 기업과 협력해서 개발하는 경우도 매우 적은 실정이다.
상기에서 지적한 여러 종류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기업에서는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점이 극복될 수 있도록 각 개인 기업 차원 이상의 범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신약개발을 위한 정부지원 사업의 의의와 문제점
신약 개발 사업에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우선, 정부가 제약 산업을 국가의 주요 산업으로서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제약산업의 발전을 위해 신약 개발에 정부의 지원을 시작하고 매년 이를 확대해가고 있다는데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결과는 정부의 지원이 몇 개의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게 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못지 않게 국내 제약 기업에서 신약 개발에 관련된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고, 각 기업의 신약 개발 노하우를 축적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내 신약 개발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제약 기업에 신약 개발의 의지를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정부지원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신약 개발이 대체로 세계적인 신약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보다는 국내에서 활용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신약 개발의 주체는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정부 지원이 신약 개발에 관련된 여러 주체에 골고루 지원되었다기 보다는 제약 기업에 치우쳐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인 성과를 얻는데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하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학이나 벤처 기업에서 신약 후보 물질을 연속적으로 발굴하게 하는데 정부 지원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지원사업은 우수한 소수에 집중되기 보다는 다수의 기관에 골고루 나누어 주는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왔다. 이는 경쟁력의 우위보다는 보다 많은 집단에게 기회의 폭을 넓혀주는 장점도 있지만, 연구 인력이나 연구 인프라가 부족한 기관에도 지원됨으로써 별 성과없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문제점도 지적되어져야 할 것이다.
R&D 장기 육성 세계 경쟁력 확보
제약기업 탈피 대학·연구소등 지원영역 확대
범국자적 신약개발전략에 있어 정부지원의 역할
국내 모든 산업에서 세계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인식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국내에서의 신약 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은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가야 할 것이다. 이에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에 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제안하면서 정부의 지원이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첫째, 신약 개발에 있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품이나 기술에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실제로 제약 산업뿐만 아니라 국내의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중요한 주제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 주도 국책과제의 목표 설정, 과제 선정, 과제 평가에 있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냐 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R&D를 중심으로 신약 개발을 하는 기업에 정부 지원이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국내에는 수백개에 이르는 제약 기업이 있지만 이들 기업중에는 신약 개발의 의지가 강하고 우수한 연구 인력을 확보하고 신약 개발에 필요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따라서, 신약 개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정부 지원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체적으로 기업의 미래를 신약 개발과 연계하여 발전하려는 기업에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이는 제한된 예산의 정부 지원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우수한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은 근본적으로 부족한 것을 보완해 주는 의미보다는 신약 개발의 장기적 투자에 따른 재원 부족이나 신약 개발 투자에 따른 위험성을 낮추어 줌으로써 기업 신약 개발의 강한 의지를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신약 개발에 있어 정부 지원이 제약 산업의 구조 조정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아직도 국내 제약 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신약을 개발하는데 있어 필요한 자본 여력이 부족한 상태이고 우수한 연구 인력 및 연구 인프라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선진 외국처럼 기업의 합병이나 인수가 자발적으로 활발하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고, 기업간의 R&D의 전략적 제휴도 거의 없는 것이 국내의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신약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각 기업의 자본이 합쳐져서 세계적인 경쟁을 한다면 국가 차원에서 보다 효율적인 신약 개발 체계가 구축될 뿐 아니라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정부의 지원이 기업의 합병 혹은 R&D 합병, 신약 개발의 전략적 제휴 등을 활발히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넷째, 앞에서 언급되었던 신약 개발의 다양한 주체를 정부가 인정하고 단기적인 측면에서 제약 기업의 신약 개발을 지원하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대학, 벤처기업의 신약 개발 지원을 해야할 것이다. 특히, 대학에의 지원은 신약 개발 자체에도 의미가 크지만,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여 제약 기업과 벤처기업에 공급하는데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편집부
2003.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