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골격은 그대로, 원자 하나만 바꾸는 '단일 원자 편집' 새 신약개발 길 열다
분자 골격 유지한 채 원자 하나만 교체하는 합성 전략 제시
기존 합성 경로 재설계 없이 SAR 탐색 가능성 확대
신약 후보 라이브러리 확장 속도·효율 개선 기대
입력 2026.02.10 06:00 수정 2026.02.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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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화학과 박윤수 교수가 ‘단일 원자 편집’ 기술 개발로 세종과학상을 수상했다.©약업신문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 고작 점 하나지만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신약 개발도 마찬가지다. 분자 골격을 유지한 채 원자 하나만을 교체해, 약효와 독성의 균형을 다시 설계하는 접근이 기존과 다른 신약 합성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사)과학의전당이 세종대왕의 과학적 업적을 기리고 차세대 과학자를 발굴·양성하기 위해 제정한 세종과학상 시상식이 최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생명과학 분야 정충원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화학 분야 박윤수 KAIST 화학과 교수가 각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자에게는 각 1억원의 상금(연구지원금 성격)과 메달·상패가 수여됐다.

이번 시상식에서 제약바이오 업계의 시선이 특히 집중된 인물은 박윤수 교수다.  그의 연구는 신약 개발에서 오랫동안 병목으로 지적돼 온 ‘분자 골격 편집’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합성 방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약 후보 물질의 구조-활성 상관관계(SAR)를 정밀하게 탐색하려면, 분자 내 특정 원자 하나가 약효와 독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실제 합성 현장에서는 단일 원자 효과(single-atom effect)를 검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골격 내부의 핵심 원자를 바꾸기 위해서는 합성 경로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했고, 이는 시간과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요인이었다.

박 교수는 이 지점을 신약 개발의 구조적 병목으로 짚었다. 그는 발표에서 “의약품 분자를 구성하는 다양한 원자 중 단 하나만 바뀌어도 항암 특성을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발암 물질이 되기도 한다”라며 “신약 개발의 핵심은 바로 이 ‘점 하나’를 어떻게 정밀하게 찍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 연구팀이 제시한 해법은 ‘단일 원자 편집’이라는 새로운 합성 개념이다. 완성된 분자 골격을 유지한 채, 특정 위치의 원자 하나만을 선택적으로 제거·치환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산소 원자를 포함한 오각 고리 구조인 퓨란(furan)에서 산소(O) 원자 하나만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질소(N)를 도입해 피롤(pyrrole) 구조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핵심은 빛으로 작동하는 촉매다. 아크리디늄(acridinium) 계열 광촉매를 활용해 가시광 조건에서 반응을 유도했고, 이 촉매는 일종의 분자 가위처럼 작동해 특정 원자만을 정밀하게 편집한다. 기존처럼 분자 골격을 해체하고 재조립하지 않아도 되는 접근이다.

이 연구는 글로벌 과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로 평가받는 사이언스(Science)에 2024년 10월 ‘Photocatalytic furan-to-pyrrole conversion(광촉매를 이용한 퓨란의 피롤 전환)’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또 별도의 해설 코너(Perspective)를 통해 학술적 파급력도 조명됐다. 완성된 고리 골격 내부의 단일 원자를 상온·상압 조건에서 선택적으로 교정했다는 점에서, 기존 합성 방법론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영역을 실질적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다.

특히 이 연구는 제약바이오 산업에 신약 후보를 다루는 방식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이제 후보 물질을 바꾸기 위해 반드시 처음부터 다시 합성해야 하는 구조는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약물 후보 라이브러리에서 원자 하나만을 바꿔 다양한 변형 후보를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면, SAR 탐색의 속도와 효율은 크게 달라진다. 비용과 시간 부담이 컸던 골격 편집이 실험실 수준에서 보다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는 셈이다.

이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주목해 온 스캐폴드 편집(scaffold editing) 전략을 한 단계 더 미세한 수준으로 끌어내린 접근이기도 하다. 화이자나 머크 등 빅파마가 구조 다양성 확보를 위해 고민해 온 문제에 대해, 기초 과학 차원의 새로운 도구를 제시했다는 의미다.

세종과학상을 제정한 과학의전당 박규택 이사장은 “세종과학상은 정부나 특정 기업이 아닌, 과학의 가치를 공감하는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드는 상”이라며 “대한민국 미래 과학을 책임질 젊은 연구자들의 도전을 응원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밝혔다. 

신성철 전 KAIST 총장은 “세종과학상이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상으로 자리매김해 세계적 연구 성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수상 소감에서 “단일 원자 편집은 고부가가치 유기물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기초 원천 기술”이라며 “신약 개발과 신소재 개발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과학의전당 주최 ‘제1회 세종과학상’ 현장.©약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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