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100년의 버드나무, 글로벌 신약으로 피어나다
유한양행 창립100주년 특집… 영원한 버드나무, 유일한 박사
입력 2026.06.19 06:00 수정 2026.06.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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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산업. 그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한 거인이 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사회에 환원하고, 대한민국 기업 최초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며 "정직, 이것이 유한의 영원한 전통이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던 선구자, 바로 고(故) 유일한 박사다.

약업신문TV는 유한양행 창립 100주년 기획으로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조선에 '건강'이라는 희망을 심었던 유일한 박사, 그리고 그의 신념이 이어져 온 유한양행 100년의 위대한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1904년, 아홉 살 소년 유일한은 단돈 100달러를 품고 태평양을 건넜다. 14살의 나이에는 네브래스카의 한인 소년병학교에 입학해 군사훈련을 받으며 조국 독립의 꿈을 키웠고, 1919년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에서는 결의문을 공동 작성·낭독하며 전 세계에 조국 독립의 열망을 호소했다.

이후 미국에서 식품회사 '라초이(La Choy)'를 세워 청년 갑부로 거듭났지만, 1925년 귀국한 그의 눈앞에 펼쳐진 조국의 현실은 처참했다. 의사 한 명이 만 명을 감당해야 했고, 정체불명의 약과 마약 성분 진통제가 민중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결국 1926년, 유일한 박사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좋은 약을 국민 곁에 두겠다'는 일념으로 유한양행을 창업한다. 가짜 약과 맞서기 위해 당대 최고 제약사의 의약품만을 깐깐하게 엄선해 들여왔고, 1933년 동양 여성 최초 미국 소아과 의사 자격을 취득한 아내 호미리 여사와 함께 자체 제제 의약품인 '안티푸라민'을 탄생시켰다. 놀랍게도 식민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만주와 중국, 동남아시아 각지에 12개의 해외 거점을 구축하며 일찍이 글로벌 제약기업의 비전을 품었다.

제약인으로서의 사명감은 치열한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미군 전략정보국(OSS)의 한국 담당 고문으로 활약했고, 1945년 쉰 살의 나이로 OSS의 한반도 극비 침투 작전인 '냅코 작전'에 특수 공작원(암호명 'A')으로 자원해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광복 후 기업 경영에서도 그의 강직함은 빛났다. 이승만 정부의 초대 상공부 장관직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고, 밖에서도 안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유리창 경영'으로 기업인의 본분에 충실했다. 단 1원의 탈세도 없는 깨끗한 장부로 1968년 업계 최초 모범 납세 기업에 선정되어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으며, 1960년대에는 전후 국민 생명을 앗아가던 항결핵제 원료 국산화에 성공하며 제약 주권을 굳건히 지켜냈다.

경영의 중심은 철저히 '사람'이었다. 1936년 한국 기업사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해 사원들에게 공로주를 나누어 주었고, 1957년 국내 업계 최초로 학연·지연을 배제한 능력 중심의 사원 공개 모집을 실시했다. 1962년에는 정부 촉구보다 무려 12년이나 앞서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이러한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유한양행은 창업 이래 1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노사분규도 겪지 않는 기적 같은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나아가 1969년에는 자신의 혈연을 철저히 배제하고 평사원 출신의 조권순 전무에게 사장직을 넘기며 대한민국 기업 역사상 최초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탄생시켰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

1971년 영면에 든 그는 가족의 자립을 위한 최소한의 자금을 제외한 14만 941주의 전 재산을 공익재단에 기증하며 세상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딸 유재라 여사에게는 학교 안의 땅을 물려주며 학생들이 드나드는 동산으로 꾸며달라고 당부했고, 유 여사 역시 1991년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대를 이은 헌신을 보여주었다.

이 고귀한 유산으로 설립된 유한재단은 지난 50여 년간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약 370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며 창업자의 뜻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
 '세계 인류를 구할 신약을 개발하겠다'던 유일한 박사의 100년 전 포부는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유한양행이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빚어낸 폐암 표적 항암제 '렉라자'가 2024년 8월, 국산 항암제 사상 최초로 미국 FDA의 높은 장벽을 넘어선 것이다.

혁신의 과실은 곧바로 사회로 향했다. 유한양행은 렉라자가 건강보험 급여를 받기 전까지 약 900명의 환자에게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항암제를 조건 없이 무상으로 제공했다. '좋은 약은 모두가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창업 이념의 실천이었다. 오늘날 유한양행은 자녀 1인당 1,000만 원의 파격적인 출산지원금을 도입하며 저출산 위기 극복에 동참하고 있다.

수입 약을 선별하던 작은 약방에서 시작해 글로벌 혁신 신약을 개발하기까지. 유한양행의 100년은 단순한 기업의 역사가 아니라, 질병을 넘어 민족을 치유하고자 했던 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이 피어난 위대한 궤적이다. 이윤을 사회에 돌려주는 참된 기업, 100년을 지켜온 유일한 박사의 굳은 약속은 다가올 새로운 100년에도 세상을 치유하는 영원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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