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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터뷰 ] 뮤지컬배우 이경수 "토종 창작뮤지컬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에서 골빈당 수장 십주역(役)맡아 열연 뮤지컬 배우 이경수는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사무엘>, 미스사이공<투이>, 세종1446<전해운>, 라이온킹<심바> 등 수많은 뮤지컬 공연의 주요 배역을 맡아오면서 훌륭한 가창력과 더불어 다양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고 깊이있게 소화해내는, 믿고 보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이달 초 막을 올린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에서 골빈당 수장 십주역(役)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이경수 배우를 약업신문이 만나 배우로서 평소 느끼고 있는 생각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 보았다. <편집자> 뮤지컬 배우 이경수 © 약업신문 2019년부터 무대에 오른 창작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외쳐 조선>은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 역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3년 올해로 세번째 공연이 지난 6월9일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작품의 시작부터 함께하셨죠. 뮤지컬 배우 이경수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성공비결과 창작 뮤지컬이 가진 의의는 무엇입니까? 성공비결을 말씀드리자면 우선 극히 보기 드문 우리 소재의(물론 가상의 조선이지만)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이기에 이런 평가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특정인물을 혹은 특정 사건을 다룬 작품이 아닙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가상의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속에 시조라는 것을 통해 그 안에서의 자유로운 생각들과 소통이 가져다주는 삶의 유익함, 혹은 응당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에 의해, 어떤 세력들에 의해 억압당하는 세상이 오게 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또 일깨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수 있겠지요.여기까지는 굉장히 무겁고 정치적일 것 같은 그런 이미지들이 떠오르실 겁니다. 하지만 극 속에 존재하는 상황과 특히 음악과 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기존의 틀을 깨지만 너무 튀지도 않고 적절히 눌러주며 만든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서울예술대학 재학생들이 학교에서 의기투합해서 만든 신선하지만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작품을 PL엔터의 송혜선대표가 직접 보고 이걸 세상에 보여야겠다 생각해 팀을 꾸린게 그 시작입니다. 신선한 작품이 있었고 그 작품을 제작자의 뛰어난 감각으로 세상으로 끌어낸 합이 우선 이 작품의 첫번째 성공비결이하 할수 있습니다.그리고 많은 창작팀들 특히 이우형 조명감독의 아이디어는 단연 으뜸입니다. 그리고 뛰어난 감각을 지닌 음악감독과 음악, 기가 막힌 절제의 아이디어를 지닌 안무, 그리고 안무감독. 나이 많은 사람들과 젊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아주 독특한 작품인거죠. 세대를 벗어나 구성원 모두 마음을 열고 의기투합한것이 두번째 성공비결이라 생각합니다.그리고 작품을 너무 사랑해주시는 관객분들이 많이 계셔 주신것이 세번째 성공비결입니다. 창작뮤지컬이라는 것이 가진 의의는 아무래도 주인의식일 겁니다. 이건 누가 뭐라해도 내꺼다. 이기심과 자만이 아닌 굉장히 뛰어난 집중력이고 사랑인것이지요삼성전자에서 핸드폰 만들때 그냥 만들지 않았겠지요. 저희도 그렇습니다. 주어진 파트안에서 그냥 최선을 다하고 실수도 해보고 또 조합해보고 이렇게 만들어지는게 창작의 묘미라고 할수 있지요. 창작의 반대는 기존의 것들을 그대로 가져오는 라이센스 작품(레미제라블, 미스사이공 등등)입니다. 매우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다 정해져 있어서 아이디어를 내기에는 좀 무리가 따르지요 , 재미있는건 그런 라이센스 작품조차도 처음에는 창작이었다는 점이지요. 창작은 정말 힘들고 기가 쏙 빨리는 작업인데 그래도 하는건 위에서 언급한 주인의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웨그 에이지:외쳐 조선>에서 맡은 배역(캐릭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뮤지컬 배우 이경수는 믿고 보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기 까지, 뮤지컬 배우로서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무대에 오르는지 궁금합니다. 시조가 금지된 세상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시조를 통해 백성들과 소통하는 골빈당의 수장 십주역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연습을 많이 합니다. 특히 대사와 노래연습을 많이 하는데 비중은 대사가 60, 노래가 40정도입니다. 대사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대사를 올바르게 잘 하면 노래도 잘 되더라구요. 예전 데뷰초에는 복기를 안하고 그냥 공연하곤 했는데 지금은 항상 복기를 하고 공연을 합니다. 그래야 맘도 편하고 몸도 풀립니다.공연직전엔 멍때리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는 등 저 자신만의 루틴대로 공연을 준비합니다. 극장가는 도중 차 안에서 목은 다 풀었다고 해도 컨디션이 100%인 날은 아예 없습니다. 스트레칭은 공연 중에도 계속합니다. 꼭 야구선수 이치로같이 그냥 막 합니다. 연습기간이 끝났다고 연습이 끝이 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인거죠 석달 넉달 똑같은 대사를, 똑같은 노래를, 똑같은 움직임을 해야 하는게 어디 보통일인가요. 지금껏 다양한 뮤지컬 무대에 서 왔는데 최근에는 그중에서도 창작 뮤지컬 참여 비중이 꽤 높아 보입니다. 배우가 보는 창작 뮤지컬의 매력, 그리고 한국 창작 뮤지컬이 관객들로부터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뮤지컬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큽니다. 뮤지컬 노래도 우리 대중음악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작곡 작사부터 시작이겠죠. 작곡을 할때 음 밑에 붙는 말이 한국어냐 영어냐의 차이가 큽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다른나라에서 가져온 작품들은 영어나 다른 언어로 작곡되어 진 악보가 우리말로 번역을 하는겁니다. 이것과 처음부터 우리말로 악보가 쓰여진것의 차이는 엄청난거지요. 이건 소리 내어 불러보고 움직여보면 정확히 알게됩니다. 그러면 이게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의 문제로 드러날 수 있겠지요. 바로 여기서 말씀드린 주인의식 같은것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관객분들도 아시는거죠. 말이 정말 살아있는 우리 말이구나 이런것들을요. 그게 결국 재미라는 걸로 드러나는것이지요. 저도 나이가 들면서 이런 소중함을 알게 되고 또 이런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걸 아니까 더욱 더 마음이 가게 되는것이구요. 2022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을 비롯하여 참신한 소재의 완성도 높은 뮤지컬에 많이 참여하셨습니다. 좋은 뮤지컬이 탄생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반대로 아쉬운 점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발전을 위해 덧붙이고 싶은 의견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창작뮤지컬이 공연되는 숫자는 우리나라가 단연 월드 챔피언입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연습실이나 그 밖의 인프라는 너무 아쉽습니다. 특히 공연 연습실은 정말 이렇게 부족해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것들이 좀 개선된다면 관객분들에게 좀 더 좋은 컨디션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창작진의 아쉬움은 우리 소재가 너무 부족하다는겁니다. 창작뮤지컬이 아니라 한국적 창작 뮤지컬이 많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우수한 창작진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창작진이 우선 있어야 하겠지만 대본 음악 안무 그리고 연출, 배우 스텝들, 그리고 훌륭한 제작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훌륭한 제작자 쪽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세상에 소개하는건 제작자가 하는거니까요. 개인적으로 기억이 가장 많이 남는 역할은 지금하고 있는 십주, 얼마전에 끝난 윌리엄들의 사무엘 그리고 여명의 눈동자 장하림, 리타 의 베뻬 역이 마음속 깊이 들어와 있네요. 아하 그러고보니 모두 다 창작이네요. 더 나이들기 전에 노래가 많이 어려운 작품 좀 더 해보고 싶습니다. 개인적 일정은 8월 말까지 외쳐조선이 서울에서 올라가고 그 후 여러 지방도시에서 공연 될 예정입니다. 우선 몸 관리 잘 하고 머리 좀 식힐 겸 가족들과 여행도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좋은 작품에서 또 다시 인사드리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6-23 1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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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 뮤직시네마
올드팝과 함께 한 시리즈의 종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 시리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구성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크게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Volume 3’ 만큼은 다르다. ‘가오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실관람객들의 평가가 좋다. 제임스 건 감독이 경쟁사라 할 수 있는 D.C 스튜디오로 옮기기 전에 ‘영혼을 갈아넣었다’고 직접 말했을 만큼 공들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원작에서는 조연에 불과했던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오갤 Volume 3’도 그 동안 전사(前史)를 알 수 없던 너구리 ‘로켓’의 과거가 등장한다는 것이 다른 시리즈와의 차별점이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가오갤’ 멤버들의 우정, 실패작이라는 이유로 먼지처럼 사라질 뻔했던 어린 로켓의 슬픈 과거 사이에서 영화의 삽입곡들은 톤 앤 매너를 때로는 만들고, 때로는 전환시키면서 큰 역할을 한다. 1,2편도 올드 팝이 많이 사용되었지만 3편은 음악이 등장인물처럼 전면에 등장해 대사에도 인용되고 서사에도 깨알 같은 영향을 미친다. 가장 인상적인 곡을 꼽으라면 오프닝에 깔리는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일 것이다. 국내에서는 라디오헤드의 곡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라 귀에 익숙한데,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일렉트릭 기타가 사용되었지만 영화에 삽입된 노래는 한국, 호주 등 일부 국가에 한해 발매된 CD 에 수록된 어쿠스틱 버전이다. 멤버들의 무기력하고 우울한 일상이 느린 롱테이크로 펼쳐지는 첫 장면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마지막 장면에 깔리는 곡은 역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도그 데이즈 아 오버(Dog Days Are Over)’다. 몽환적 느낌의 보컬, 기묘한 가사를 그대로 시각화한 것 같은 뮤직 비디오를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가오갤’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원래 명곡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행복해 보여서 더 눈물이 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의 피날레와 함께 기억될 것 같다. 윤성은의 Pick 무비 한 발짝 떨어져야 보이는 것들, ‘드림 팰리스’ 볼만한 한국영화가 없다거나 한국영화가 많이 개봉조차 하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상업영화에 국한된 얘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볼만한 한국 독립영화는 언제나 극장에 걸려 있었다. 극히 소수의 스크린에서, 지극히 불편한 시간대에 상영되는 까닭에 관객들의 접근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흙 속의 진주처럼 자신을 발견해주기 바라며 빛나고 있는 작품들이 늘 존재하기는 했다. ‘드림 팰리스’(감독 가성문)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범죄도시 3’(감독 이상용)의 아성에 밀려 스크린을 많이 잡지는 못했어도, 일단 이 영화를 선택한 관객들은 만족감을 느끼며 극장을 나올 것이다. 그 만족감은 사실, 기쁨이나 감동이 아니라 씁쓸함에서 나온다. 산업재해, 부동산 등 우리 사회의 굵직한 이슈들을 촘촘하게 엮어낸 이 영화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사고들로 두 시간의 러닝타임이 휙 지나가 버린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 있는 순간들과 그 결과 봉착하게 되는 매운맛의 딜레마는 관객들을 적잖이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독립영화에서나 느낄 수 있는 예술적 감흥의 하나이자 궁극적으로 이만큼 현실과 밀착해 있는 영화를 감상했다는 데 대한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은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하다가 합의금을 받고 농성텐트에서 나온다. 얼마 후, 합의금으로 마련한 미분양아파트 ‘드림 팰리스’에서 녹물이 쏟아져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함께 농성하던 친한 동생, ‘수인’도 일련의 사건 끝에 합의금을 받기로 한다. 혜정은 선한 마음으로 수인이 합의금 받는 일부터 드림 팰리스 사는 일까지 도와준다. 그러나 아파트 입주민들은 집을 헐값에 분양하는 건설사에 대한 항의로 집을 싸게 산 사람들이 이사오지 못하도록 아파트 입구를 지킨다. 혜정과 수인 사이에 감춰져 있었던 오해가 불거지고 갈등이 커져가는 사이, 두 사람은 농성텐트 회장의 부고를 듣게 된다. 혜정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죽은 남편이 사고를 내지 않았다고 믿었기 때문에 합의금을 받았고, 수인에 대한 미안함과 애정 때문에 수인의 아이들을 돌봐주었으며, 합의금을 받는데 같이 가주었고, 아파트도 싸게 살 수 있게 마음을 썼다. 그러나 혜정의 선행들은 대개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었고, 그녀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서툴렀다. 산업 재해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 앞에서 자기 자식을 감싸거나 농성텐트 회장의 장례식장에 아들과 함께 가는 등의 행동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수인이 그 점을 신랄하게 지적하기 전까지, 혜정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이삿짐 트럭을 단지내로 못 들어오게 막는 입주민들도 그 커뮤니티 안에만 있으면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관객들에게 자기 객관화의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한 발짝 떨어져 스크린 안의 인물들을 바라보면 혜정의 뻔뻔스러움과 입주민들의 웃지 못할 촌극이 입체적으로 떠오른다. 혹시 나도 저런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한 컷 한 컷 의미 있는 작품이다. <필자소개>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3-06-23 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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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영화를 가져와 무대용 뮤지컬을 만들다, 뮤지컬 ‘나인 투 파이브’해마다 여름이면 대구를 찾는다.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DIMF)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세계 각국의 뮤지컬을 만나는 게 매력이자 재미다. 지금까지 딤프를 찾은 작품들은 인도, 중국, 슬로바키아, 러시아, 태국, 대만, 일본, 카자흐스탄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바쁠 정도로 다양한 국적과 문화, 정서 그리고 언어를 반영해왔다. 축제라서, 축제니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올해로 17회를 맞은 딤프가 선택한 개막작은 영국 뮤지컬 ‘나인 투 파이브’다. 젊은 비서와 바람난 남편으로부터 이혼까지 당한 가정주부 주디는 난생 처음으로 회사의 말단직이 돼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주디의 직속상관은 능숙한 워킹 우먼 바이올렛이다. 능력으로는 회사에서 가장 뛰어나지만, 성차별주의자면서 남성우월주의자인 프랭클린 하트 주니어 사장은 그녀를 늘 승진자 명단에서 제외시킨다. 바이올렛은 그런 사장에게 염증과 분노를 느끼지만,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바꾸기 어려워 힘들어 한다. 이야기의 세 번째 주인공은 사장의 미녀 비서인 도렐리다. 아름다운 그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유부녀지만, 하트 사장은 온갖 선물 공세를 펼치며 그녀에게 매일같이 추파를 던진다. 게다가 사장의 이런 행실 탓에 도랠리는 회사에서 방정치 못한 여자라는 억울한 소문의 주인공이 됐고, 동료로부터 따돌림마저 당한다. 결국 바이올렛과 주디 그리고 도랠리는 사장의 부당함에 맞서 스스로의 권리와 인격을 되찾기 위한 계획을 감했다. 하트 사장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결심한 것이다. 의기투합한 세 여인은 사장을 납치하고, 회사의 적폐를 하나씩 고쳐나간다. 그녀들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뮤지컬은 흥미진진하게 그녀들의 모험담을 들려준다. 나인 투 파이브’는 1980년 제작된 미국산 코미디 영화가 원작이다. 연출을 맡았던 콜린 히긴스는 파트리샤 레스닉과 대본도 공동 집필했던 오리지널 크리에이터다. 영화는 제인 폰다(주디), 릴리 톰린(바이올렛) 그리고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 컨트리 여가수 돌리 파튼(도랠리)을 주인공으로 발탁하며 인기를 누렸다. 특히, 주제가를 부르고 또 비서인 도랠리로도 직접 영화에 등장해 인생 연기를 펼쳤던 돌리 파튼은 일약 글로벌 스타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이런 부류의 작품을 스타 비히클이라 부르기도 한다. 몇몇의 스타가 중심이 돼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극 형식인데, ‘나인 투 파이브’가 바로 전형적인 사례다. 1000만 달러의 예산으로 제작된 영화는 1억 330만 달러라는 티켓 판매 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영화 ‘나인 투 파이브’는 전미영화협회(AFI, American Film Institute)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 100선에서 74위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의 인기는 TV시리즈물로도 이어졌는데, 5시즌동안 지속된 TV 드라마는 영화와 마찬지로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 제목과 똑같은 유명한 주제가는 사실 돌리 파튼이 직접 작곡했던 노래다. 영화가 개봉되자 2주 동안 빌보드 핫 100에서 1위에 올라 돌리 파튼의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노래가 됐으며, 그래미상에서 “그 해의 컨트리 송”, “그 해의 여성 컨트리 가수” 그리고 오스카상 주제가상에 후보로 오르는 쾌거를 기록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의 음반은 400만장 이상 팔려나가 플래티넘 음반으로 기록됐다. 뮤지컬이 만들어진 것은 2009년이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미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작품 제작 소식은 인구에 회자되며 관심을 끌었다. 물론 이런 배경 덕분에 무대화가 이뤄지기 훨씬 이전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2005년 미국의 인기 토크쇼인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한 돌리 파튼은 영화 ‘나인 투 파이브’의 뮤지컬화가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고, 본인이 음악을 작곡하고 있다고 인터뷰를 진행해 뮤지컬 제작을 공식화했다. 2007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독회(reading)가 열렸고, 그해 여름 뉴욕에서 다시 독회가 열려 본격적인 제작이 임박함을 알렸다. 워낙 인기가 많던 주제가는 무대에서도 여전히 이목을 집중시켰고, 돌리 파튼이 무대용 뮤지컬을 위해 직접 새롭게 작곡한 여러 노래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답게 초연은 LA에서 막을 올렸다. 이 무대에는 앨리슨 제니(바이올렛), 스테파니 J.클록(주디), 메간 힐트(도렐리) 등이 참여해 첫 선을 보였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공동집필을 했던 파트리샤 레스닉이 뮤지컬에도 참여해 작품의 원작을 고스란히 무대로 옮기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연출은 뮤지컬 ‘위키드’와 ‘라스트 쉽(스팅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등을 만들었던 조 만텔로가 가세했다. 초연 당시 폭발적인 흥행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추억하는 대중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인기를 누렸고, 반년여의 공연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딤프를 찾았던 영국 버전의 뮤지컬은 대서양 건너 웨스트 엔드에서 시도된 새로운 버전이다. 런던 중심가의 럭셔리한 숙소인 사보이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중소규모 공연장 사보이 씨어터에서 2019년 2월 막을 올린 영국의 뉴 버전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셧다운이 시행된 2020년 3월까지 큰 인기를 누리며 좋은 흥행을 기록했다. 특히 인기 미국 드라마 ‘베이워치’의 주인공인 데이빗 하셀호프가 하트 부사장으로 등장해 특유의 능글거리며 거들먹거리는 연기로 인기를 모았다. 웨스트 엔드에서 부활한 뮤지컬의 인기는 글로벌 시장으로도 확산돼 호주 프로덕션의 흥행으로 이어졌다. 2020년 시드니에서 막을 올렸던 호주 프로덕션은 브리스베인, 멜버른, 아들레이드로 투어가 진행되며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뮤지컬의 등장은 음반의 인기로도 이어지고 있다. 브로드웨이 초연 멤버들의 음성이 담긴 ‘나인 투 파이브’ 뮤지컬 음반은 2009년 7월 발매됐는데, 뮤지컬의 흥행으로 인기를 누리며 그해 그래미상 최우수 뮤지컬 쇼 앨범 수상 후보에 오르게 만들었다. 본상 수상은 불발했지만 음반의 인기를 꽤나 높아 뮤지컬 애호가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사랑을 받았다. 요즘 글로벌 공연가에 무비컬의 인기가 거세다. 아무래도 2차원의 영상이 무대라는 입체 공간에서 재연되는 재미가 남다른 매력을 잉태해내기 때문이다. ‘나인 투 파이브’의 인기도 마찬가지다. 코믹하게 전개되는 여자 주인공들의 복수 스토리는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이끌어낸다. 시원하고 통쾌하다. 공연으로 재탄생한 무대용 뮤지컬이 사랑받는 이유다. K영화는 좋은 소재가 되지 않을까. 고민해볼 문제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3-06-23 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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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단오제 그리고 단오굿초여름 뙤약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면, 어릴 적 보았던 단옷날 풍경이 떠오른다. 천변을 따라 포장을 치고 난장이 튼다. 현수막을 단 애드벌룬이 멀리서도 단오장의 위치를 가늠케 한다. 구경꾼들을 따라 줄지어 장 구경을 하다보면, 그네 뛰는 곳과 씨름하는 곳도 만나고 노상에서 펼쳐지는 가면극이나 굿판도 만난다. 단옷날 밤에는 옥상에 평상을 펴놓고 앉아 불꽃놀이 구경을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신나는 축제가 며칠씩 계속되었다.설, 추석이 연중에 가장 큰 명절이지만 양기가 천지에 가득 찬 날이라 그 못지않은 가절이 단옷날이었다. - 최명희 <혼불> 중음력 5월 5일은 단옷날이다. 단오는 설, 한식,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다. 풍요의 계절에 맞이하는 추석이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불리듯, 만물이 왕성하게 생장하는 단오 역시 천중가절(天中佳節)이라 불렸다.음력 날짜인데다 설이나 추석처럼 연휴가 주어지지 않아, 오늘날 단오는 잊은 채 지나치기 십상이다. 단옷날 행해지던 세시 풍속과 민속놀이도 현대인의 일상에서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단오제가 열리는 축제의 현장에서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거나 단오떡을 맛보고, 그네뛰기·씨름·줄다리기와 같은 단옷날의 민속놀이를 구경하거나 함께해볼 수 있다. 음력 5월 5일을 전후로 열리는 강원 강릉과 경북 경산, 전남 영광의 단오제는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전통문화축제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왼쪽부터) 강릉단오제 중 조전제(朝奠祭), 경산자인단오제의 여원무에 등장하는 화관, 법성포단오제의 용왕제(龍王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그중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릉 단오제는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 목록에도 등재되어 있다. 동해안의 마을 축제 중 가장 큰 행사로, 예로부터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두루 아우르며 민관이 조화롭게 합심해 축제를 이어왔다. 강릉 단오제는 단옷날을 한 달 앞둔 음력 4월 초닷새에 신에게 올릴 술을 빚는 것으로 시작한다. 열흘 후 술이 알맞게 익으면, 대관령 산신당에서 제사를 올린다. 이때 제의의 대상인 대관령 산신은 김유신 장군이다. 그 다음에는 신이 내린 신성한 나무[神木]를 모신 국사성황 행차가 국사성황당·구산성황당·학산성황당 등을 차례로 들러 서낭굿을 벌이며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국사여성황당으로 향한다. 영신제를 지낸 후, 남대천변에 마련된 제단으로 자리를 옮기면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된다. 성황신의 행차가 이어지는 여정에는, 국사성황으로 받들어지는 범일국사와 여성황신 정씨 처녀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학산 마을의 처녀가 해가 떠 있는 우물물을 마시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범일국사의 탄생 설화다. 역사 속 범일국사는 강릉 학산마을에서 태어나 신라 말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사굴산문을 연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여러 왕이 국사로 청하였으나 고사하고 강릉에 남아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고 한다. 살아서는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고승이 죽어서는 단오굿의 주신 자리를 꿰찬 셈이다. 사후에 국사성황이 된 범일국사는 정씨 처녀의 아버지 꿈에 나타나 딸과 혼인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처녀의 아버지는 거절하지만, 호랑이에게 잡혀가고 만 정씨 처녀는 여성황신이 되어 지금껏 국사성황 곁을 지키고 있다. 단오제에서는 유교의 제례와 단오굿뿐 아니라 강릉 인근에서 전해오는 다채로운 문화유산들을 연행한다. 우리나라 전통극 가운데 유일하게 무언극으로 행해지는 관노가면극, 강문동의 서낭굿인 강문진또배기제, 강릉 학산마을에서 전승하는 김매기소리인 학산 오독떼기 등이 그것이다.‘한장군놀이’에서 이름이 바뀐 경산자인단오제에는, 여장을 하고 누이동생과 함께 화관을 쓴 채 춤을 추며 왜적을 물리쳤다는 한장군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한장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한장군대제, 왜적을 물리치는 장면을 재현한 여원무女圓舞, 팔광대탈춤과 단오굿 등이 이어진다. 한장군대제를 지내러 가는 가장 행렬과 여원무에서 등장하는 화관이 매우 이색적이다.한편, 법성포는 조기 파시(波市)가 크게 서던 곳이다. 파시는 생선이 제철일 때 열리는 어시장이다. 난장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바닷사람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굿판이 벌어지고, 부녀자들의 뱃놀이와 예인들의 경연대회가 더해지며 규모와 내력을 갖춘 축제가 되었다.<왼쪽부터 2023 강릉단오제: 단오, 보우하사 2023 경산자인단오제 2023 영광법성포단오제: 단오, 만사형통2023 굿음악축제: 단오굿 포스터5월 24일 신주 빚기로 시작된 강릉단오제는, 6월 20일 영신제부터 25일 송신제까지 풍성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은 6월 18일부터, 단오굿은 21일부터 축제가 끝날 때까지 매일 볼 수 있다. 6월 8일 신주 빚기 행사를 마친 경산자인단오제는 단옷날인 6월 22일부터 24일까지 이어진다. 22일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종목들과 함께 단오 행사들이 열리고, 토요일인 24일에는 여원무, 팔광대, 호장행렬 등 일정이 한 번 더 예정되어 있다.단오 당일 산신제와 학술대회로 문을 여는 법성포단오제는 용왕제, 당산제와 수륙대제, 선유놀이, 숲쟁이 전국국악경연대회 등을 연이어 개최하며 25일 폐막식까지 40여 개 프로그램을 빼곡하게 채웠다. 6월 30일부터는 국립남도국악원에서 ‘단오굿’을 주제로 한 굿음악축제가 열린다. 단옷날인 6월 22일까지 참가 신청을 할 수 있고, 참가자들에게는 2박 3일간 숙식을 제공한다. 6월 30일에는 법성포단오굿을, 7월 1일에는 강릉단오굿을 야외공연장인 달빛마당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강릉·자인·법성포 세 지역 단오굿의 음악을 다루는 학술회의는 7월 1일 오전에 열린다. <필자소개>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3-06-22 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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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동화약품의 신진작가 후원, 여름 부채의 새로운 활명(活明) 가송예술상 본선작가 10인의 접전, ‘여름생색 展’ 전시포스터 © 동화약품여름 부채가 떠오르는 계절이 왔다. 더위를 가시게 하는 부채는 바람을 일으켜 오물과 재앙을 날릴 만큼 청정하여 병귀(邪)를 쫓는다 했다. 실제로 동화약품(대표이사 유준하)의 ‘활명수(살릴活-생명命-물 水)’는 손에 쥐는 접선(摺扇; 손부채)을 로고로 삼아, 생명의 활력을 만드는 캠페인과 예술후원에 힘을 실어 왔다. 여름생색’展 은 신진 작가 발굴과 지원, 전통 문화 계승을 위해 제정된 ‘가송 예술상’ 공모전 본선 진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자리로 꾸몄다. 이 전시를 향한 약업계의 평가는 고무적이다. 예술과 삶을 잇는 ‘새로운 미감’이 기업브랜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고유 접선의 현대적 재해석, 개성화를 향한 새로운 방향성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깐 생각하니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내도다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끄리 - 『고금가곡』, 작자 미상 전해 내려오는 다양한 문헌에는 신부가 초례청(醮禮廳)에서 단장하여 수줍음을 가리는 빨간부채와 신랑이 백마에서 내려 신부집에 들어설 때 안면 하단을 가리는 파란부채 등이 나오는데, 예로부터 부채는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규방 문화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6월 1일부터 12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여름생색’展은 신진작가 발굴과 지원,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제정된 ‘가송예술상’ 공모전의 본선진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가송예술상은 예술계의 숨은 인재 발굴과 후원을 통해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2012년 제정됐다. 2023 가송예술상은 만 49세 이하, 3년 이내 개인전 또는 단체전 1회 이상의 경력을 가진 작가를 대상으로 하며, 부채 장인과의 콜라보레이션 부문과 ‘접선(摺扇; 접는 부채)’ 주제 부문으로 접수하여 1차 포트폴리오, 2차 심층면접을 통해 본선 진출 작가를 선발했다. 이후 완성된 작품을 바탕으로 오는 6월 1일 최종 심사를 통해 대상, 우수상, 콜라보레이션상 수상자를 선정, 최종 수상자 3인에게는 상금 및 상패가 수여됐다. 역대 가송예술상 대상 수상자는 최준경(2012년), 정찬부(2013년), 송용원(2014년), 최은정(2016년), 강태환(2018년), 김원진(2021년) 작가 등이다. 2023 가송예술상 대상작 릴리 리(Lili Lee) 작가의 <이어질 리邐>'젊은 예술계리더를 발굴한다는 취지답게, ‘2023 가송 예술상’ 대상으로 릴리 리(Lili Lee) 작가의 <이어질 리邐>'가 선정됐다. 우수상은 최희정, ADHD 작가, 콜라보레이션상은 김다슬 작가가 수상의 영광을 이었다. 전시명 ‘여름생색’은 ‘여름 생색은 부채요, 겨울 생색은 달력이라(鄕中生色 夏扇冬曆)’는 속담에서 유래했다.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온 우리나라 고유 전통 예술인 접선(摺扇, 접는 부채)의 예술적 가치 향상과 대중화를 목적으로 2011년에 시작한 부채 전시회는 올해로 8회째 이어오고 있다. 윤현경 상무의 야심찬 기획, 부채작품을 통한 한국미의 동시대성 확보 대상 <이어질 리邐>는 접선을 샤머니즘을 통한 주술적 이동순간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고전의식에서의 퍼포먼스와 무복, 무구 등을 현대의 복잡다단한 시각적 파편요소로 재해석해 ‘네트워크 시대’의 비가시적 요소와 결합한다. 백남준의 다양한 시대해석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은 부채가 다양한 의미에서 현대화되듯 전통의식과 현대문화를 자연스럽게 잇는 ‘기업철학’과도 잘 어울린다. 전시를 총괄 기획한 윤현경 상무는 “문화를 소재주의로 바라보던 시대는 끝났다. 가송예술상은 자기개성화로 재치를 발휘한 신진작가들을 발굴하여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문화공존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동화약품의 정신이 예술로 새로운 창발을 일으키는 새시대의 에너지와 만나기 바란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로 열지 못했던 가송예술상의 앞날을 보는 본선전시라고 할 수 있다. 가송예술상 운영위원 김노암 예술감독은 “기업과 예술이 만나면 꽃을 피운다”며 “접는 부채인 접선은 하나의 소재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은유적 상징”이라고 평한다. 전통과 현대의 의미에 대한 작가들의 고유한 관점과 정의가 여름생색展을 통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미와 통찰을 통해 우리시대의 생성과 소멸, 관계와 공감을 이끌어 가는 매개체로 본 것이다. 인사아트센터 1층 본전시장과 2층 제2전시장에서 선보인 전시들은 설치, 미디어아트, 회화 등이 구현된 다차원적 시각을 담았다. Lili Lee, ADHD, 서지혜, 문서진, 김민호, 이웅철, 정희정, 최희정 그리고 내 유일 접선장(摺扇匠) 김대석 장인과 협업한 콜라보레이션 부문은 김다슬, 이경민의 작품이 선보였다. 전시는 공식 홈페이지(www.dongwhaart.co.kr)에 공개될 온라인 전시투어 영상과 VR전시관을통해 비대면으로도 전시를 즐길 수 있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3-06-15 1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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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바이올린 없는 오케스트라만약 오케스트라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오케스트라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오케스트라의 역사에 대해 설명할 수도 있고 유명한 오케스트라 작품들을 소개하며 듣는 이의 관심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많은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설명은 역시 오케스트라 악기 구성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케스트라 안에 어떤 악기들이 있고 또 그 악기들은 어떤 음색을 지니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지요. 이 설명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악기는 무엇일까요? 십중팔구 바이올린일 것입니다. 바이올린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악기이고 작품의 주요 선율을 연주하며 오케스트라 전면에 배치되어 청중의 시야에 가장 가까우니 다양한 오케스트라 악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이런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 편성에서 빠진다면 어떨까요? 다른 악기도 아닌 바이올린이 없는 오케스트라의 풍경은 무척 생경하게 다가옵니다. 많지는 않지만 바이올린이 빠진 편성으로 이루어진 명곡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첫 번째 소개할 작품은 바로 브람스(J. Brahms, 1833-1897)가 작곡한 <독일 레퀴엠 (Ein deutsches Requiem, Op. 45)>입니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인 레퀴엠에 통상적으로 사용되던 라틴어 텍스트 대신 브람스가 성서에서 직접 고른 독일어 텍스트를 사용하여 <독일 레퀴엠>이라 불리우는 이 작품은 1861년부터 1868년까지 작곡되었으며 총 7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편성의 측면에서 가장 독특하며 주목할 만한 악장은 바로 바이올린이 빠져있는 1악장입니다. 사실 이 작품의 전체 편성 중에서 클라리넷, 트럼펫, 그리고 팀파니도 첫 악장에 등장하지 않지만 바이올린이 빠진 것만큼의 관심을 받지는 못합니다.바이올린이 제외된 음색의 매력을 가장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은 1악장 중에서도 시작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합창이 처음 등장하기 전까지 첫 14마디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게 되는데, 선율은 더블베이스의 아주 낮은 음부터 시작하여 비올라의 중음까지 서서히 쌓아 올라가다가 이내 점차 하강합니다. 두 대의 호른이 긴 음가로 조용하고 부드럽게 현악기들을 감싸는 가운데 세심하게 배분된 더블베이스, 첼로, 그리고 비올라 성부에서 울리는 선율은 먹먹한 슬픔과 따뜻함을 동시에 담고 있지요. 이 선율이 잦아들면 합창이 고요하게 이 작품의 첫 텍스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röstet werden)”를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슬퍼하는 이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음악에서 바이올린의 높은 음역에서 파생될 수 있는 화사함이나 화려함, 혹은 강렬함이 방해가 된다고 브람스는 생각했던 것일까요? <독일 레퀴엠>의 첫 악장, 특히 첫머리를 들을 때마다 바이올린을 배제한 브람스의 선택이 얼마나 탁월한 것이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독일 레퀴엠> 이전에도 브람스는 바이올린이 없는 편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작품은 1850년대 후반에 작곡한 <세레나데 2번 (Serenade No. 2, Op. 16)>으로, 피콜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그리고 호른이 포함된 관악기에 비올라와 첼로, 그리고 더블베이스로 이루어진 현악기가 어우러진 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밝고 온화한 인상을 주는 이 작품에서는 목관악기들의 따스함과 싱그러움이 유난히 돋보이는데 만약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되었다면 이렇게 목관악기들의 음색이 잘 살아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브람스 이전에도 바이올린이 제외된 편성의 작품을 남긴 작곡가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흐 (J. S. Bach, 1685-1750)는 그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번 (Brandenburg Concerto, No. 6, BWV 1051)>에서 바이올린을 제외하였지요. 괴테(J. W. v. Goethe, 1749-1832)의 시 <물 위의 정령들의 노래 (Gesang der Geister über den Wassern)>에 음악을 붙인 슈베르트(F. Schubert, 1797-1828)의 남성 합창곡(D. 714)은 다섯 성부(비올라2+첼로2+더블베이스1)로 이루어진 중저음 현악 앙상블의 반주로 중후한 매력을 더했습니다.바이올린 없는 오케스트라 편성을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작곡가 브람스(좌)와 포레(우)(출처: 브람스-britannica.com/포레-wikipedia.org)바이올린이 빠진 오케스트라 편성이라는 측면에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과 함께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포레(G. Fauré, 1845~1924)가 작곡한 <레퀴엠 (Requiem, Op. 48)>일 것입니다. 온화한 분위기로 유명한 이 작품은 1888년 처음 완성되었고 1893년과 1900년에 걸쳐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개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악기 편성의 변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편성이었지만 두 차례의 개정을 거치며 편성은 커졌는데 처음부터 계속 존재했던 파트는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하프 그리고 오르간이었지요. 처음에는 3악장 <상투스(Sanctus)>에서 솔로가 나오는 것 외에는 등장하지 않던 바이올린은 편성이 가장 확대된 1900년 판본에서도 총 7개의 악장 중 4개 악장에만 등장합니다.독특한 점은 이 4개 악장에서 바이올린이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비올라 파트 1의 음들을 같이 연주하도록 되어 있고, 다른 음들을 연주하더라도 비올라가 연주하는 음역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유일하게 독자적인 선율을 연주하는 악장은 3악장 <상투스>인데, 1900년 이전 판본에서 높은 음역대에서 연주되던 솔로 선율은 1900년 판본에서는 대부분 한 옥타브 아래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함께 연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드러움은 더해졌지만, 이전 판본에서 볼 수 있었던 바이올린의 고음역에서 느껴지는 빛나는 아름다움은 줄어들었지요.사실, 1900년에 이루어진 개정을 정말 포레가 의도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어서, 개정판에서도 존재감이 약한 바이올린 파트가 작곡가의 계획이라고 100% 확신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처음 탄생될 때부터 바이올린 파트가 거의 없었고 작품에서 부드럽고 온화한 정서가 강조되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존재감이 약한 바이올린 파트는 이 작품 특유의 정서를 위한 포레의 의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오케스트라에서 중심이 되는 악기라고 누구나 떠올리기 마련인 바이올린을 배제하면서도 매력있는 음색과 정서를 창조해낸 작곡가들과 작품들이 존재합니다. 바이올린이 없는 오케스트라 편성 뿐 아니라, 흔하지 않은 이색적인 편성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찾아 들어보며 그 독특한 음색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추천영상: 하이팅크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합창단을 지휘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공연 실황입니다. 명곡들이 그러하듯이 <독일 레퀴엠>의 모든 악장이 참 훌륭한데 먹먹함 가운데 따뜻하고 깊은 위로를 전해주는 듯한 첫 악장의 느낌은 정말 각별합니다. 차분하게 그 위로를 전해주는 하이팅크의 지휘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감상해 보세요.https://www.youtube.com/watch?v=Hwm2PEL2bno&t=265s<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3-06-08 1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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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간결한 대비에 담긴 깊이, 뮤지컬 ‘데스노트’ 2023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포스터 ©오디컴퍼니(주)‘정의(正義)’란 무엇인가를 정의(定義)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동안 수많은 석학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사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연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정의인지 아득해지게 마련이다. 이때, ‘정의는 어디에’를 부르짖던 한 청년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법은 인간 사회의 기준이며, 법이 없다면 정의를 지킬 수 없다’라던 선생님에게 ‘권력은 단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고등학생은 우연히 주운 데스노트를 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단죄 대상은 법이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 범죄자였으나, 결국 그도 점차 중심을 잃고 만다.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겠다’던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시대의 정의’란 과연 무엇이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뮤지컬 ‘데스노트’가 변함없는 인기에 힘입어 앙코르 공연을 이어간다. 올 초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4관왕을 차지한 뒤 지난 3월 28일부터 서울 샤롯데씨어터 앙코르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데스노트’는 2022년 공연 당시 주연을 맡은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과 더불어 뉴 캐스트 이영미, 김용수, 장지후 등과 함께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워낙 평이 좋은 데다, 마니아도 많은 작품이라 좀처럼 잔여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오는 6월 18일 서울 공연이 마무리되면 6월 30일부터 대구에서 새로운 여정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만화 ‘데스노트’를 원작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시리즈물로 제작된 동명 영화로도 상당히 유명해서 대중에게 꽤 익숙한 콘텐츠이기도 하다. ‘데스노트에 이름이 쓰인 자는 죽는다’란 조건 아래,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고 싶은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이하 라이토)와 정체를 숨기고 활약하는 명탐정 엘(L)의 대결이 팽팽하게 이뤄지는 극으로, 무대 위에 펼쳐진 한 편의 체스 게임과도 같은 전개가 무척 흥미롭다. 물론 원작과 다른 결말 때문에 이에 대한 반응은 다소 갈리는 편이나 무엇보다도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고 좋은 넘버가 많은데다, 남다른 실력을 지닌 배우들의 작품 해석과 소화력이 대단해서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뮤지컬이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소품 대신 영상미를 충분히 활용한 무대도 몰입감을 높이는 데 주된 역할을 한다. 사실 ‘데스노트’의 무대는 무척 단순하다. 공간 벽과 천장, 바닥을 LED 패널로 채워 신과 인간세계를 넘나들면서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방식이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온통 검게 물든 빈 무대를 배경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시계 초침이 제각각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 시계 초침은 사신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간의 수명을 의미한다.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힌 자는 40초 만에 사망하게 된다는 극 중 설정에 따라 시간을 맞춰 움직인다고 하는데, 그러다 공연 시작이 다가오면 이 초침들이 어지러이 돌아가다가 일시에 멈추면서 전부 사라진다. 뮤지컬 ㄴ데스노트 공연 한 장면 ©오디컴퍼니(주)캐릭터 성격을 반영해 색상으로 구분한 것 역시 재미있다. 먼저 라이토와 엘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엄밀히 보면 두 사람 모두 정의롭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캐릭터다. 그릇된 정의를 실현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방향성을 잃어버린 라이토나,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쓰는 엘 모두 결코 바람직하게 행동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비적 설정을 뚜렷하게 나타내기 위해 작품은 라이토에게 어둠을, 엘에게는 상대적으로 밝은 빛을 부여했다. 그래서 라이토가 입은 의상 색상이나 방에 쓰이는 색은 어둡고 따뜻한 컬러, 반대로 엘의 의상과 방 꾸밈에는 눈부시게 하얗고 차가운 컬러가 쓰였다. 이름에 빛(Light)을 담은 주인공 라이토에게 반대 설정이 들어간 점도 눈에 띈다. 사신 류크와 렘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재미를 위해 인간 세상에 데스노트를 떨어뜨려 막대한 혼란을 초래한 류크는 검은색, 오랜 관찰 끝에 존재의 가치를 깨달은 사신 렘은 흰색 옷을 입는다. 여기에 더해 작품에서는 선이 중요한 의미를 담는다. 장면을 전환할 때 검은 배경 위로 선이 그어지며 공간을 구분하는 장면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때 라이토와 엘은 서슴없이 그 선을 넘나드는 반면 다른 등장인물들의 경우 주어진 공간 안에서만 머무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각 캐릭터가 가진 신념이나 가치관을 어떻게 여기고 따르는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 단서다. 또 직선으로 표현되는 류크의 공허한 내면과 달리 따스한 렘의 마음은 곡선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모습은 렘이 미사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기 시작하는 2막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그리고 라이토를 사이에 둔 채 위아래로 그어진 선에 맞춰 서서 애틋한 마음을 담아 ‘나의 히어로’를 노래하는 사유와 미사의 무대도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처럼 뮤지컬 ‘데스노트’는 흥미로운 소재만큼이나 재미있는 볼거리, 여러모로 의미 있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바탕으로 풍성한 감상을 선사한다. 덧없는 싸움 끝에 남은 것은 결국 포용과 용서의 메시지다. 남은 기간, 뮤지컬 ‘데스노트’가 제시한 물음표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필자소개>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3-05-26 1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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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파블로 카잘스 서거 50주년을 맞이하며 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잘스와 바흐의 운명적 만남 :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성사된 백악관 콘서트 바르셀로나의 한 고서점에서 13세 소년이 발견한 악보뭉치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첼로의 성자, 평화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가 소년시절 우연히 발견한 이 악보는 다름아닌 첼로의 구약성서라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 170여년 긴 잠에 빠져있던 이 작품을 발견한 순간부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파블로 카잘스에게 인생의 나침판이자 동반자로 함께했다. 1876년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알았으며 11세부터 첼로에 매진하여 바르셀로나 시립 음악학교에서 호세 가르시아의 가르침을 받았다. 독자적인 첼로 운지법을 스스로 고안해 낼 정도로 그는 10대 나이에 이미 비범한 재능을 보인 첼리스트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생계를 위해 '카페 '토스트'라는 작은 선술집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그를 발견한 작곡가 이삭 알베니스를 통해 궁정의 개인비서였던 기예르모 모르피 백작를 소개받게 되었고 그의 후원으로 왕실의 장학금을 받고 마드리드 음악원에 진학했다. 3년간 그는 첼로뿐 아니라 왕궁의 커리큘럼을 배우며 엘리트 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훗날 카잘스는 단순히 악기를 잘 다루는 연주자를 초월해 소통에 능한 예술가로서 정치인을 비롯하여 각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세계 각지의 연주 활동을 통해 프랑코 독재정권에 항거하기도 했다. 카잘스는 13세 소년시절 발견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언감생심 성급하게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악상기호도 적혀있지 않았고 오류도 존재했으니 작품의 해석에 있어 난관이 많았을 터. 1901년 이 위대한 걸작을 온전히 세상에 발표하기까지 12년이란 긴 시간동안 끊임없이 탐독하고 연습에 임했던것이다. 그는 결국 몇 세기에 걸쳐 한낱 연습곡 정도로 알려졌던 이 작품을 부활시키며 결국 6개의 모음곡을 완전체로 첼로의 구약성서 반열에 올려놓았다. 독주악기로서의 첼로의 위상을 한껏 드높혔음은 물론이다. 카잘스는 바흐에 대해 설명하며 "가장 빛나는 한 편의 시와 같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예만 들어도 바흐를 차갑게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1898년 파리의 라므뢰 관현악단과의 성공적인 협연 데뷔 이후, 첼리스트로서 탄탄대로를 걸으며 무반주 모음곡을 주 레파토리 삼아 전 세계 콘서트홀을 누비기 시작했다. 소년 카잘스가 처음 이 작품과 조우한지 47년이 지난 1936년, 60세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음반 녹음이 착수되었다. 영국의 유명한 에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모음곡 2번과 3번이 녹음되었고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프랑스로 이주한 카잘스는 파리에서 녹음을 이어갔다. 결국 1939년이 되서야 녹음이 완성되었고 이 녹음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음반으로 현재까지도 인정받고 있다. 20세기의 위대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카잘스가 연주하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면 그의 해석과 다르게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라며 카잘스에 대한 경외감을 드러냈다.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랑코 독재정권이 들어서자 프라드라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망명, 평화를 위한 구호금 모금 연주회를 제외하곤 거의 10여년 동안 항의의 표시로 공개연주를 거부했던 평화주의자 카잘스. 그가 다시 공개석상에서 첼로를 꺼내 들게 된 계기 또한 역시 그의 삶의 음악적 동반자였던 바흐의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페스티벌이었다. 죽기 직전까지도 매일 무반주 모음곡을 연습했으며 임종 직전까지도 제자 이스토민에게 무반주 모음곡을 청했다고. 이쯤이면 카잘스가 바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바흐가 13세의 소년 카잘스를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가 남겼던 유명한 말. "바흐를 매일 연주하면 그다지 외롭지 않다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1717년~1723년 사이에 작곡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각각의 모음곡들은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로 이루어진 모음곡의 기본 틀에 프렐류드(전주곡)와 몇 개의 춤곡이 추가되어 모두 6개의 악장으로 이뤄져 있다. 모음곡 2번의 프렐류드는 뭉근하게 심연을 건드리는 곡으로 기품이 넘친다. 각종 드라마, 영화에 삽입되어 익숙한 모음곡 1번의 프렐류드와는 결이 다른 묵직함이 삶의 숙연함을 자아낸다. * Youtube linkhttps://www.youtube.com/watch?v=Wa5yony2CeA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3-05-26 1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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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공연과 산책 공연장에서 일하면서도 공연 관람 권하기를 주저하게 되는 때가 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꽃은 만발한 이맘때. 미세먼지까지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화창한 날씨에 어두컴컴한 공연장으로 들어오시라 손짓하는 것은 왠지 열없는 일 같아 서두에 국악원 뒷산의 안부를 먼저 전하곤 한다. 아까시나무꽃이 온통 만개하였으니 산책 한번 다녀가시라고. 공연이 끝날 즈음의 산바람과 꽃향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명소, 남산 역시 좋은 계절을 맞이했을 터이다. 남산은 서울타워를 꼭대기에 이고 있는 랜드마크이면서 동네 뒷산 같은 정감이 살아있다. 산세가 나지막하고 10킬로에 가까운 순환 산책로가 있어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사계절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봄이면 남산 벚꽃길이라 불리는 길가에는 줄지어 선 벚나무 고목들이 일제히 꽃을 피운다. 학교 다닐 때엔 북쪽 산책로를 따라 길 끝에 있는 국립극장에 공연을 보러 가곤 했는데, 꽃비가 내리는 어스름 무렵의 산책로는 때로 공연 관람의 주목적이 되기도 했다. 남산 산책로에서 이어지는 또 한 곳의 공연장은 서울남산국악당이다. 남산골 샌님들이 깃들어 살았을 남산 자락에 한옥 마을 조성 사업이 시작된 것은 30여 년 전의 일이다. 한옥 다섯 채를 이전, 복원하고 정자와 연못 등이 갖추어진 전통 정원을 꾸몄다. 1994년에는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한 타임캡슐이 전통 정원 남쪽에 묻히기도 했다. 2007년에는 전통 가옥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긴 국악 공연장, 서울남산국악당이 개관했다. 산책하기 가장 좋은 계절, 서울남산국악당은 가족 단위 관람객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어린이날 시작한 ‘남산소리극축제는’ 5월 13일(토)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닭들의 꿈, 날다>와, 20일(토) 창작하는 타루의 <말하는 원숭이>로 이어졌다. 꿈을 위해 양계장을 탈출한 닭들의 모험기를 그린 <닭들의 꿈, 날다>는 제1회 창작국악극대상 최우수 작품상을 거머쥔 창작 판소리극이다. 타루가 2016년 초연한 <말하는 원숭이> 역시 매년 무대에 오르는 인기작으로 지난해에도 국립민속국악원, 서울돈화문국악당 등에서 초청받아 공연한 작품이다. 남산 율방 (Ⓒ: 서울남산국악당 누리집) 한편, ‘엄마아빠행복프로젝트’를 부제로 단 시민국악강좌 <남산율방>도 6월부터 시작한다. 5~7세 어린이와 양육자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전통 놀이 체험을 하는 동안 엄마나 아빠는 전통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6월 3일(토)과 17일(토), 7월 1일(토)의 프로그램이 모두 다르며 오전 11시와 오후 4시, 하루 두 차례 진행된다. 남산골 한옥콘서트 고요(古謠) vol. 1 (Ⓒ: 남산골한옥마을 누리집) 전통 정원 동편의 관훈동 민씨 가옥에서는 2022년 전 석 매진의 기록을 세웠던 <남산골 한옥콘서트>가 올해도 ‘고요(古謠) vol. 1’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보다 전통 음악에 집중한 모양새다. 5월 18일(목)부터 6월 1일(목)까지 매주 목요일 열리는 공연에는 안이호, 김율희, 강효주, 성슬기 등 실력 있는 소리꾼들이 출연해 한두 가지 악기의 단출한 반주에 맞춰 전통 성악의 진수를 선보일 예정이다. <필자소개>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3-05-19 1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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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댄스 시퀀스가 아름답던 추억의 명화를 무대로 소환하다, 뮤지컬 더티 댄싱1960년대 미국. 순진한 소녀 프랜시스는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차 별장을 찾는다. 시시한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에 싫증을 느낄 무렵, 그녀는 우연히 청춘남녀의 비밀 댄스파티를 목격한다. 욕망 가득한 몸짓과 화려한 춤사위가 돋보이는 더티 댄싱이었다. 그곳에서 프랜시스는 휴양지의 댄스 선생인 자니를 알게 된다. 자니는 곤경에 처해 있다. 댄스 파트너였던 페니가 원치 않은 임신으로 춤을 추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그를 돕고 싶은 마음에 프랜시스는 부모 몰래 자니로부터 춤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첫사랑도 경험한다. 문제는 의사였던 프랜시스의 아버지가 페니의 임신이 자니 때문이라고 오해를 한 것. 엎친데 덮친격으로 휴양지에선 도난사건이 벌어지고, 자니는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프랜시스는 그의 알리바이를 위해 밤새 함께 춤 연습을 한 사실을 고백하게 되고, 화가 난 프랜시스의 아버지는 자니를 해고하도록 휴양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극의 마지막, 모든 오해가 풀리고 프랜시스와 자니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마지막 춤 그리고 기가 막힌 리프트를 성공하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1987년 개봉해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영화 ‘더티 댄싱(Dirty Dancing)’의 줄거리다. 지금은 뮤지컬로 탈바꿈해 사랑받고 있는 인기 콘텐츠이기도 하다.더티댄싱 의 한 장면 영화는 에일리 아돌리노가 연출을 맡았었다.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춤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인물로 우리에겐 또다른 히트 영화 ‘시스터 액트’의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두 작품 모두 음악에 대한 해석이 남달랐던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빅스크린용 영화들이다. 특히, ‘더티 댄싱’은 5백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돼 2억 1390만 달러의 박스 오피스를 기록해 자그마치 40배가 넘는 수익을 달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0년대말 영화계를 휩쓸던 로맨스 붐의 단초를 마련했던 작품이라 인정할 만하다. 영화의 3/4이 춤에 대한 내용이거나 춤추는 장면이 등장했던 이 영화는 가정용 비디오만 100만개 이상이 팔려나간 최초의 영화였으며, 영화음악이 수록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앨범은 더블 플래티넘 어워즈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뮤지컬로 탈바꿈된 것은 2004년부터다. 시드니에서 막을 올렸던 호주 프로덕션이었는데 무대로 다시 만나는 클래식 러브 스토리(The Classic Story on Stage)라는 부제가 뒤따랐다. 무대는 아무래도 영화의 매력을 고스란히 이식하기 위한 다양한 특수효과와 비주얼 장치를 추가하는 노력을 잊지 않았는데 덕분에 65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미 영화를 추억하고 있는 중장년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하는 부담이 작용한 셈인데, 덕분에 무대는 마치 입체로 재구성된 영화를 만나는 듯한 재미를 담아내 마니아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일으켰다. 6개월여 기간 동안 이어진 초연 무대는 총 20만명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흥행을 달성했고, 독일, 네덜란드, 캐나다, 영국 등에서 각각의 독립적인 프로덕션이 꾸며지는 글로벌한 성공을 이뤄냈다. 배우에 얽힌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패트릭 스웨이지는 원래 어려서부터 춤을 자주 접했던 환경에서 자랐다. 사실 그의 어머니는 발레리나 출신이고, 아버지는 발레 스쿨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부인인 라이자 니에미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녀가 15살 때부터 스웨이지의 어머니에게 발레를 배웠던 학생이었던 탓이다. 스웨이지는 ‘더티 댄싱’으로 일약 세계적인 영화배우로 등극했고, 3년 후에는 우리에게 ‘사랑과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익숙한 영화 ‘고스트(Ghost, 1990)’에서 데미무어와 함께 등장해 명실상부한 영화계 최고의 인기 스타로 인정받게 된다. 그와 함께 스크린을 장식했던 제니퍼 그레이의 별난 개인사도 호사가들에겐 유명한 가십이다. 미국의 유명 뮤지컬 배우인 조엘 그레이의 딸이었던 그녀는 뽀글뽀글한 곱슬머리로 사춘기 첫사랑을 경험하는 프랜시스 베이비 역할을 완성해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웨이지가 ‘고스트’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1990년, 그녀는 잘못된 성형수술의 후유증으로 심지어 가까운 친구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변화를 겪게 된다. “나는 유명인(Celebrity)으로 수술에 들어가 무명배우로 그곳에서 나왔다”며 “마치 증인보호 프로그램으로 들어가 나란 존재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라고 밝혀 주변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더티댄싱 의 한 장면 뮤지컬로 각색되며 스웨이지가 그려냈던 극중 인물을 과연 누가 재연해낼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무대를 주름잡으며 사랑받았던 초연 배우는 시드니 댄스 컴퍼니의 멤버이자 무용수였던 조셉 브라운이었다. 유려한 춤 솜씨는 말할 나위 없고, 공연 도중 웃옷을 벗고 상체를 드러내 잔 근육까지 보여주며 춤을 추다가 여성관객과 눈이 마주치면 윙크까지 날리는 여유와 낭만으로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2000년대 초반, 직접 만나러 찾았던 런던 공연장에서 극에 심취한 영국 여성이 “공연 끝나고 뭐하니?”라며 큰 소리로 환호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배우도 갑작스런 상황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쩔쩔매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이 뮤지컬의 압권은 당연히 엔딩 씬의 리프팅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균형을 잡기 위해 바다에서 연습을 하다가 남녀 배우가 파도속으로 쓰러지는 반복된 연습 끝에 마침내 휴양지 공연장 객석 통로에서 멋지게 성공해내는 장면으로 환희를 느끼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무대용 뮤지컬로 탈바꿈되며 정말 공연장 통로에서 리프팅을 시연해낸다는 점이다.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꼼짝없이 관객 머리위로 쓰러질 깜짝 놀랄 장면이지만, 매번 실수없이 구현해 내며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영화음악으로도 큰 인기를 누렸던 ‘내 인생 최고의 순간(The Time of My Life)’가 목 놓아 불리어지면 공연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해진다. ‘더티 댄싱’의 우리말 공연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무척이나 보고픈 무대 위 명장면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3-05-19 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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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박물관 60주년, 위창 오세창 서거70주년 기념해 ‘수장고’ 활짝 열려 한국미의 레이어를 ‘명품도자-한국 현대추상’과 매칭해 선보여1964년 개관한 성균관대 박물관(관장 김대식)이 동아시아학술원(원장 김경호)의 존경각(尊經閣)과 손잡고 ‘국가지정유물’ 등 주요 소장품을 선보이는 《성균관의 보물, Layers of culture》(5월 23일~2024년 3월 31일)를 개최한다. 2000년 동아시아학술원의 출범과 함께 개관한 존경각은 동아시아학 연구의 기반 조성과 효율적 지원을 위하여 설립한 동아시아학 전문 자료정보센터로, 본래 명칭은 조선조 성종 6년(1475년) 성균관(成均館)에 설립되어 수백 년 동안 성균관 유생(儒生)들의 학문 연구를 지원하였던 최초의 대학도서관에서 유래한다. 현재 존경각은 고전서적(古典書籍) 8만여책과 동아시아학 관련 학술서적 및 일반자료 1만여권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존경각이 소장한 국가지정보물과 서화, 6m에 달하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사주당이씨의 태교신기(胎敎新記), 심산선생 친필 간찰 등이 최초 공개된다. 특히 두 기관이 소장한 ‘중요 소장품’들을 어제와 오늘/비교·대조라는 ‘한국문화의 다층구조(Layers of K-culture)’ 속에서 살펴봄으로써 유물을 인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것이다.한국문화의 레이어를 열다. 6미터 대동여지도 실견 기회Layers of Culture(문화의 레이어)라는 부제는 최근 ‘한국 전통문화의 미적 구조’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말로, 전통건축·복식·배채로 표현된 초상화와 고려불화·도자 및 칠기, 고문서 등 내·외연의 깊이를 구조적으로 설명하는 ‘미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존경각은 성균관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수많은 고서적을 보관해 왔으며,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이들의 가치는 교육적 활용과 전시를 통해 발굴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전시는 크게 1부 존경각의 보물, 2부 박물관의 보물, 3부 한국미의 레이어라는 시각에서 구성한다. 특히 2024년은 박물관설립 60주년, 2023년은 위창 오세창 선생 서거 70주년에 해당되므로 ‘전시 속 전시’로서 다양한 신수 유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문화 지킴이’로서의 ‘성균관대학교’의 위상을 제고하고자 한다. 최초의 태교서 사주당이씨의 『태교신기』1부 존경각의 보물에서는 기축년(1589, 선조22) 7월 29일부터 그해 9월 27일까지 승정원(承政院)을 통해 처리된 왕명의 출납, 행정 사무 등이 기록된 ‘선조기축년사초(宣祖己丑年史草)’가 공개된다. ‘기축일기’는 현재 남아 있는 ‘승정원일기’보다 앞선 시기의 자료이며, 현존하지 않는 임진왜란 이전에 작성되었던 ‘승정원일기’의 일면을 볼 수 있는 희귀한 사료이다. 총 5책 50권으로 구성된 춘추경좌씨전구해(春秋經左氏傳句解)는 발문과 간기를 통해 1431년(세종 13) 경상도 청도에서 원판본을 번각한 완질이 확인되지 않은 고간본(古刊本)이다. 주목할 자료는 태교의 중요성을 깨달아 그 이론과 실제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최초의 태교법 사주당이씨(師朱堂李氏, 1739∼1821)의 ‘태교신기’로, 경서와 의학서에 종합한 저술이다. 위창 오세창의 근묵 (박물관 소장)2부 박물관의 보물에서는 보물로서의 가치를 받고 있는 위창 오세창(1864-1953)의 ‘근묵(槿墨)’(1,136점, 34첩) 관련 유물과 김천리 개국원종공신녹권(金天理 開國原從功臣錄券) 등이 선보인다. 위창이 80세가 되던 해인 1943년에 완성한 근묵은 우리나라를 뜻하는 ‘근역(槿域)’과 먹으로 쓴 글씨를 의미하는 ‘묵적(墨蹟)’의 결합어로, 한국 역대 명사들의 진적을 모은 서첩이다. ‘근역서휘(槿域書彙)’(1911)와 더불어 한국 역대 인물의 친필 진적을 싣고 있는 보물로 평가받는다. 공신녹권(功臣錄券)은 태조 4년(1395)에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공로가 있는 김천리(金天理)에게 공신도감에서 발급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근묵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존경각 소장의 ‘대동여지도’의 신유본(1861년, 철종 12) 22첩을 입체적으로 세워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제1첩은 지도제-방안표-온성부지도-지도표-도성도-경조오부 순서로 구성되어 있어 지도유설과 제2첩의 통계표가 결질되어 있다. 가채본으로 지도표는 적색, 주황색과 청회색 물감을 이용하였으며 군현 경계는 황색으로 가채하였다. 도 경계가 굵은 적색 실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소장자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제13첩의 한성부는 별도의 가채를 하지 않았지만 도성 내부는 적색 물감으로 채색되어 있다. 존경각은 1475년(성종 6) 성균관 내에 설립된 도서관으로 시작하였으며 1946년 성균관대학의 부설도서관이 되었다. 지도에 도서관장 직인이 찍힌 것으로 보아 광복 이후에 구입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도자와 매칭된 ‘포스트 단색화’, ‘김근태·김택상·김춘수·박종규’ 3부 Layers of K-Art에서는 한국미의 다층구조를 보여주는 '도자와 매칭된 동시대 한국추상미술'을 선보인다. 최근 글로벌하게 주목받는 후기 단색화의 대표작가인 김택상(청자), 박종규(상감청자), 김근태(분청사기), 김춘수(청화백자)를 매칭해 해외 뮤지엄 한국관 전시에 활용될 만한 수준 높은 전시구성을 선보인다. 이들 작가들은 서울 프리즈·홍콩 바젤 아트페어 등 세계미술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후기 단색화의 대표작가들로, 겹침과 스밈의 정제된 변주 속에서 ‘한국 전통미에 근거한 여러 겹의 레이어’를 작품의 방법론으로 삼는다. 서양화의 칼로 그은 듯한 면(面) 중심의 모노크롬과는 완전히 다르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시대의 조형의식을 평생에 걸쳐 연구한 작가들이다. 도자기의 유약과 어우러진 한국토양의 바탕을 층으로 쌓듯 겹치고 스미는 현상은 물질시대 속에서 추구해온 ‘한국 전통문화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공통된다. 이들은 ‘K-Art’의 다이내미즘을 보여주는 글로벌한 시대 속에서 유행과 거리를 둔 차원 높은 전통과 정신주의를 작품의 근간으로 삼는다. 한국미의 원형을 다채로운 변주 속에서 보여주는 창작활동을 ‘성균관대박물관이 소장한 명품자기’와 매칭 해 지속가능한 창작미학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3-05-12 1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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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한 번의 음악회, 두 번의 합창 교향곡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이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라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내년이면 초연된 지 꼭 200주년이 되는 <합창 교향곡>은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작품이지만 사실 이 작품의 연주를 준비하는 것도 그리고 이를 감상하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이 작품의 연주를 위해서는 오케스트라에 합창단과 4명의 성악 독창자들이 참여해야 하니 오케스트라만 연주되는 보통의 교향곡 연주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연주시간도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소요되니까요. 브루크너(A. Bruckner, 1824~1896)나 말러(G. Mahler, 1860~1911)처럼 장대한 교향곡을 작곡한 이들이 후대에 나타났지만, <합창 교향곡>은 여전히 연주에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연주 시간도 긴 교향곡들 중 하나입니다. 이런 <합창 교향곡>이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연달아 연주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연주자들과 청중들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는 꼭 연주 시간과 체력 문제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합창 교향곡>을 연달아 연주한다면 연주 시간은 두 시간 반이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이겠고 전체 음악회는 휴식 시간 포함 3시간 정도 걸리겠지요. 물론 보통의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이는 매우 긴 시간이지만 사실 이 정도는 우리가 오페라나 뮤지컬을 관람할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음악 안에 내재되어 있는 드라마가 완결되었는데 이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합창 교향곡>은 듣는 이에게 벅찬 감격을 선사하며 매듭지어지는데 그렇게 끝난 음악을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고 감상해야 한다는 것은 이 작품을 좋아한다고 해도 지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번의 연주회에서 <합창 교향곡> 두 번 연주하는 것을 성사시킨 지휘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최초의 직업 지휘자로서 19세기 후반에 큰 명성을 떨친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 1830-1894)입니다. 뷜로는 놀랍게도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네 번이나 이런 독특한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그 시작은 1880년 12월, 독일 마이닝엔 궁정 오케스트라를 지휘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뷜로는 그 해 가을부터 이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활약하기 시작했지요. 1885년까지 뷜로가 마이닝엔에서 상임 지휘자로 있는 동안 <합창 교향곡>은 1881년과 1884년에 그의 지휘 아래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연주되었습니다. 뷜로가 마지막으로 <합창 교향곡>을 연달아 지휘했던 때는 1889년으로 이 때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습니다. 마이닝엔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당시 뷜로는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였지요. 지휘자 한스 본 뷜로 (©: Encyclopædia Britannica) 뷜로는 왜 이렇게 독특한 기획을 하였던 것일까요? 그의 목적은 두 가지였는데, <합창 교향곡> 외 다른 작품을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합창 교향곡>에 더 많은 리허설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것과 청중에게 이 작품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녹음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이어서 사람들이 <합창 교향곡>을 감상하려면 음악회에 오는 수밖에 없었으니 뷜로의 두 번째 목적은 어쩌면 이해가 가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정말 의아한 것은 첫 번째 목적인데, 음악회에서 다른 작품을 연주하지 않고 <합창 교향곡>만 한 번 연주해도 리허설때 이 작품에 전력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굳이 두 번일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합창 교향곡>이 연주된 몇몇 음악회의 프로그램을 보면, 각각 약 15분과 40분이 소요되는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제3번>과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뒤에 <합창 교향곡>이 배치되어 있는 등 오늘날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긴 경우들이 있지만, 반대로 <합창 교향곡>만 있거나 길지 않은 서곡과 <합창 교향곡>이 배치된 경우들도 있으니까요. 아마도 우리는 뷜로의 베토벤 음악을 향한 열정에서 그의 이 기획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당대의 손꼽히는 베토벤 음악의 해석가였던 뷜로는, 1880년 10월 마이닝엔 궁정 오케스트라에 취임한 후, 11월부터 7주 동안 매주 일요일에 음악회를 열어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과 주요 관현악 작품들, 그리고 협주곡들까지 연주해내는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80일간의 베토벤 여행 (Reise um Beethoven in 80 Tagen)’이라 일컬은 이 일정의 마지막이 바로 <합창 교향곡>을 두 번 연주하는 것이었지요. 이 모든 일정을 위해 뷜로와 오케스트라는 무려 약 200번의 리허설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궁금한 것은 뷜로가 <합창 교향곡>을 한 음악회에서 연달아 지휘했을 때 두 연주 간에 해석상의 차이가 존재했는지의 여부인데, 마이닝엔에서의 한 음악회에 참석했던 이로부터 두 번째 연주에서 첫 번째 연주 때와는 다른 템포 설정에 대한 언급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뷜로가 이 작품을 연달아 지휘하며 해석상의 차이를 두고자 시도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뷜로는 <합창 교향곡>을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지휘한 유일한 지휘자일까요? 흥미롭게도 뷜로 이후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이 지휘자의 이름은 발터 담로쉬(W. Damrosch, 1862-1950)인데 그는 1909년 3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뉴욕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뷜로가 이전에 했던 이 기획을 실현시켰습니다. 담로쉬는 1887년 여름 뷜로에게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세세하게 배웠던 경험이 있으니 뉴욕에서 열렸던 그 음악회는 다분히 뷜로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이었겠지요. <합창 교향곡>을 한 음악회에서 두 번 연달아 연주하는 기획. 물론 다시 실현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만약 가능성이 있다면 그 때는 전반부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원곡을 연주하고, 후반부에는 이를 말러가 편곡한 버전으로 연주해보는 기획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훗날 누군가가 오래전의 뷜로처럼 대담하게 이 기획을 실현 시켜 주기를 바래봅니다. <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3-05-08 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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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두 바로크 작곡가의 예상치 못한 반전 작곡가 알비노니와 마르첼로의 <아다지오>스필버그의 영화<파벨만스>에 등장하는 마르첼로의 '아다지오'선율 17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하면 떠오르는 바로크 시대 작곡가는 비발디뿐 일까? 베네치아 출생의 두 작곡가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와 '알레산드로 마르첼로(Alessandro Marcello)'는 17세기 동시대를 살며 공교롭게도 '아다지오'의 느린 악장으로 현재까지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클래식 작곡가들로서 서로 닮은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바흐처럼 생계를 위해 작곡해야 했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각각 부유한 사업가,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나 전업 작곡가가 아닌 진지한 취미활동으로 작곡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바로크 작곡가들에게 음악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작품들이 편곡되기도 했다. 일례로 위대한 바로크 작곡가 바흐는 알비노니가 작곡한 주제로 푸가를 쓰기도 했으며 마르첼로의 작품들도 편곡한 바 있다. 최근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의 백미로 손꼽히는 주인공의 영상 편집씬에 선곡되어 주목받았던 클래식은 다름 아닌 바흐 협주곡 D단조 BWV 974의 2악장 '아다지오'로 잘 알려진 곡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빛내주었던 이 애잔한 음악은 본래 알레산드로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D단조를 바흐가 건반악기로 편곡한 것이다. 이 작품은 알레산드로 마르첼로의 작품으로 밝혀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에테리오 스틴팔리코'라는 가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실명이 누락 되었고 바흐는 비발디의 작품으로 오인하고 편곡하다보니 한동안 비발디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1920년대에 이르러 오보에 협주곡으로 복원한 출판업자가 유명한 전업작곡가였던 동생 베네데토 마르첼로의 이름으로 표기하는 바람에 동생의 작품으로 알려졌다가 결국 1716년에 출판된 협주곡집에 인쇄된 알레산드로 마르첼로의 이름이 발견되면서 원작자가 밝혀지게 되었다. 마르첼로가 작곡한 멜랑콜리하고 우수 어린 오보에 협주곡의 2악장 '아다지오'는 여전히 현대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수많은 영화 뿐 아니라 공연의 단골 레퍼토리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토마소 알비노니 또한 '아다지오 g 단조'로 잘 알려진 작곡가이며 이 곡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참혹했던 보스니아 내전 당시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라는 첼리스트가 희생자들을 기리며 전쟁의 폐허 속에서 첼로를 꺼내 들고 연주한 곡이 바로 아다지오인데 그 만큼 이 곡은 전세계인들에게 아픔과 위로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마르첼로의 아다지오와는 다른 비장함이 묻어나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제음악으로 쓰이며 이례적으로 전곡이 편집 없이 연주되는 장면을 잊을 수 없는데 죽음과 고독, 위로의 내러티브를 완벽하게 전달해내는 이 곡의 저력을 새삼 실감한 바 있다. 여기서 놀라운 반전. 이 곡은 사실 알비노니의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음악학자 레모 지아조토가 폐허가 된 드레스덴의 한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알비노니의 자필 악보 스케치를 토대로 현악합주와 오르간 편성의 곡을 완성했던 것. 흥미롭게도 이 사건은 알비노니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기저에 깔린 바로크 양식을 바탕으로 낭만 음악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나는 이 곡은 현재 음악학자 지아조토의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알비노니가 작곡한 원본은 사실 아무도 확인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여전히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위작으로 판명이 났지만, 그는 50여편의 오페라와 다양한 장르의 기악곡들을 작곡했으며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독주악기 오보에의 위상을 드높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오보에 협주곡들은 아직까지도 연주되고 있다. 작곡가 마르첼로도 마찬가지로 오보에라는 악기를 무척 선호했고 그의 몇 안되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협주곡집 '라 체트라(La Cetra)'는 6개의 오보에 협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악을 생계수단이 아닌 고상한 취미 삼아 딜레탕트(dilettante) 작곡가의 삶을 살았던 두 작곡가들이 소품 같은 단 한 곡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많은 생계형 작곡가들과 달리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간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알비노니가 아다지오라는 위작으로 유명세를 타지 않았다면 마르첼로의 아다지오를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바흐가 건반악기로 편곡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그들의 이름이 현대인들의 뇌리속에 남아있을까? 역시 사람은 내일 일을 알 수 없다.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파벨만스>에서 영화 속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영상편집 장면에서 주인공의 어머니가 연주하는 바흐 협주곡 D단조 BWV 974의 2악장은 언급했듯 마르첼로 오보에 협주곡을 바흐가 쳄발로로 편곡한 곡이다. 알레산드로 마르첼로의 오리지널 버전, 오보에 협주곡 D단조의 2악장 '아다지오'를 추천한다. 익숙한 피아노 버전과는 다른 오보에 특유의 애잔함과 센티멘탈한 감성이 몰입감을 더한다. *유튜브 추천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A0jNtvTr5AU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3-05-02 1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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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부끄럽고 싶지 않았던 음악가 - 류이치 사카모토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장암 투병 끝에 지난 3월 28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번 칼럼은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작곡가로, 예술가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그를 추모하며 그가 걸어온 궤적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1971년 도쿄 예술대학 음악학부에서 클래식 음악을 작곡한 그는 전형적인 클래식 학과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중음악에 눈을 돌려 Yellow Magic Ochestra(YMO)를 결성,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영화배우,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며 인지도를 높인 그는 음악적 관점을 바꿔 영화음악에 관심을 두며 자신이 출연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OST ‘Merry Christmas Mr. Lawrence’로 영화음악 작곡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그리고 1987년, <마지막 황제> 영화음악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하며 본격적으로 영화음악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 세계는 섬세하고 정교하며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서정적이었다.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류이치 사카모토:에이싱크>에서 보여 준 그의 음악 세계를 통해 선율을 넘어 소리 그 자체로 음악의 개념을 확장시켰고, ‘지속되는, 사라지지 않는 소리, 약해지지 않는 소리’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며 “언제 죽어도 부끄럽지 않을 음악을 남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음악뿐만 아니라 환경과 인류의 재앙에도 목소리를 높인 사회 운동가이기도 했다. <류이치 사카모토:코다>에서는 그가 쓰나미에 살아남은 피아노를 조심스레 어루만지고 연주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자연이 조율해 준 쓰나미 피아노’라는 그의 표현은 자연이 던지는 메시지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부터는 환경 사회 운동가로서 음악인인 자신의 정체성을 살린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피해지역 아동들과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매년 오케스트라 및 음악 축제를 개최하고 환경 단체 ‘모어트리즈(More trees)’를 설립해 사회․정치적 현안을 다룬 시위에 직접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또, 후쿠시마를 직접 방문해 방사능의 심각성을 알렸고 별세 2주 전까지 기고하던 도쿄 신문 칼럼을 통해 ‘원전 회귀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더 나아가 도쿄도의 메이지진구 인근 재개발 사업에서 수천 그루의 나무가 사라지는 문제에 대해 도지사 등 대표 5명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은 음악인이었다. 2011년 내한 공연에서는 새로운 연주 기법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음악회를 열기도 했고 2017년에는 영화 <남한산성>의 OST에 참여한 바 있다. 특히 <남한산성> OST 참여 동기가 독특했는데, 인터뷰를 통해 “한국 음악, 특히 판소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새롭게 배워보자는 제안에 참여를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실 그와의 인연이 즐겁고 좋은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희열의 곡 ‘아주 사적인 밤’이 그의 곡 ‘Aqua’와 표절 시비가 일어나 국내외 음악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이 5~10% 정도 가미한다면 훌륭하고 감사한 일이다”라며 오히려 유희열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거장의 애티튜드를 보여주기도 했다. 2020년 보그 인터뷰에서 “인터뷰를 한국어로 해내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비록 실현되지 못했지만 여러 한국 아티스트들과의 작업을 통해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왔다. 그는 평생 음악이 가진 한계를 고민하고 그 속에서 음악의 힘을 온전하게 구현해내고자 노력했던, 언제나 ‘지금’을 사는 음악가였다. 자서전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에서 “아무리 실제로 겪거나 느낀 것을 표현해도 그것이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음악 세계의 소유가 되어 둘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가 생긴다.”라는 그의 말은 진정 음악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직면한 한계에 순종하지 않고 언어와 수식으로 다룰 수 있는 주제들, 가령 비동시성․소수․양자물리학 등과 같은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가 정해 둔 정체성 혹은 타인이 규정해 주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며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곤 한다. 그러나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럴 때마다 ‘이게 내가 좋아하는 것인가?’, ‘다른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일까?’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자신을 극복하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해 온 사람이었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직업적으로나 개인으로서나 이토록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한계를 함부로 예단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한계에 직면했을 때 오히려 한 걸음 더 애써 나가아가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뛰어난 아티스트를 넘어 ‘지금 이 순간’, 시대가 원하고 바라던 인간상을 보여주었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이 몹시 아쉽지만 그의 음악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기니까.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3-04-21 1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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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가려진 역사를 새로 쓰다 / ‘식스 더 뮤지컬(SIX The Musical)’ 한국어 공연 “너의 사랑 따위 필요 없어. 자유롭게 날아오를래!”헨리 8세의 여섯 부인이 화려한 팝스타로 환생했다. 한때 하늘과 다름없었을 남편이자 왕에게 ‘너’의 사랑 따위 이제 필요 없다고 외치는 파격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게다가 저마다 가진 개성을 뚜렷하게 살린 스타일링에 당당하면서도 멋진 퍼포먼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가창력은 번쩍이는 에너지로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지난 3월 31일부터 한국어 공연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뮤지컬 최신작 ‘식스 더 뮤지컬(SIX The Musical)’ 이야기다. [식스더뮤지컬] 최초한국공연 포스터(아이엠컬처 제공)2017년 영국에서 탄생한 ‘식스 더 뮤지컬’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던 역사를 유쾌하게 비틀어 무대 위로 올린 작품이다. 물론 역사적 고증도 잊지 않았다. 대신 시대적 변화가 작품 안에 충실히 포함됐다. ‘MZ세대 창작진’이라 불리는 토비 말로우와 루시 모스가 의기투합해 만들었는데 94년생인 두 사람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동문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 내 뮤지컬 소사이어티에서 함께 활동하던 그들은 신인다운 패기로 발전을 거듭했다. 이후 2019년 웨스트엔드에서 정식 데뷔 무대를 갖고 이듬해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한 ‘식스 더 뮤지컬’은 제75회 토니어워즈 최우수 음악상, 최우수 뮤지컬 의상 디자인상을 거머쥐었다. 그 밖에 각종 시상식에서 현재까지 총 11관왕을 달성한 이 작품은 눈에 띄는 이력과 더불어 그야말로 ‘핫(Hot)한’ 뮤지컬로 떠올랐다. 이어 2023년에는 아시아 최초 무대로 한국을 꼽으면서 지난 3월 약 3주간의 내한 초연을 마무리 짓고,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을 연이어 무대에 올렸다. 3월 3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COEX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개막한 ‘식스 더 뮤지컬’ 한국어 공연은 오는 6월 25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마치 콘서트를 떠올리게 만든 공연은 생생한 라이브 밴드의 연주에 맞춰 80분 동안 펼쳐진다. 아라곤, 불린, 시모어, 클레페, 하워드, 파라는 이름을 얻게 된 튜더 왕가 여섯 왕비는 그동안 헨리 8세에 가려져 미처 전하지 못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이혼’, ‘참수’, ‘사망’, ‘생존’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 인생은 언뜻 봐도 심상치 않다. 마이크를 잡고 무대 위에 선 그들은 ‘누가 과연 가장 힘들고 끔찍한 삶을 살았는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리고 그 중 으뜸이라 꼽힌 사람이 리드보컬 역할을 맡기로 한다. 혹시나 이들과 관련된 역사를 잘 알지 못해도 전혀 문제없다. 거칠면서도 꽤 친절한 설명이 줄곧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때로는 약간의 비속어도 듣기 불편하지 않을 만큼 쓰인다. 그간의 녹록지 않던 인생을 압축한 ‘아이엠 송(I’m song)’을 부르는 모습을 보다 보면 저절로 응원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캐릭터별 포스터 모음<사진 =아이엠컬처 제공> 매력적인 여섯 명의 주인공 캐릭터를 설정하는 과정에 인기 팝스타들이 영감을 줬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먼저 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으로 가장 오랜 기간 왕과 결혼 생활을 유지한 아라곤은 비욘세와 샤키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왕의 형수였다가 남편이 사망한 뒤 그 동생과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깜짝 놀랄 일인데 역사서에 전해진 이야기를 보면 마치 당장이라도 그가 리더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만 같다. 아라곤은 고향인 스페인과 가톨릭의 분위기를 살려 만든 금빛과 검은색의 갑옷 형태 의상을 입고 무대에 등장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사랑받는 손승연과 이아름솔이 이 역을 맡았다. 그런 아라곤을 왕비 자리에서 밀어내고 국교를 바꾸면서까지 결혼에 성공한 두 번째 부인 불린은 에이브릴 라빈과 릴리 알렌을 모델 삼았다. 양옆으로 귀엽게 말아 올린 머리에 강렬한 초록색 의상을 입고 자유분방하게 무대를 누비는 불린 역에는 김지우와 배수정이 캐스팅돼 배역과 완벽히 어울린 모습을 연출한다. 왕이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낳았지만 아이를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 시모어는 박혜나와 박가람이 맡았다. 돌처럼 굳건한 사랑을 노래한 시모어 캐릭터에는 아델과 시아 이미지가 반영됐다. 또 오직 결혼을 위해 먼 타국에서 건너왔다가 초상화와 실물이 다르다는 이유로 혼자 성에 남겨진 클레페 역은 김지선, 최현선이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로 흥을 돋운다. 비교적 합리적인 이혼 절차를 밟는 데 성공해 싱글 라이프를 멋지게 즐기던 클레페에게서 금세기 가장 성공한 여성 래퍼라 손꼽히는 니키 미나즈가 겹쳐 보인다.여섯 왕비 중 가장 어린 다섯 번째 부인 하워드는 김려원과 솔지의 무대로 만날 수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면, 분홍빛 의상을 입고 긴 머리를 높이 올려 묶은 하이틴 팝스타처럼 꾸민 하워드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사랑을 뒤로한 채 그저 왕의 결정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마지막 왕비 파는 서정적이면서도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며 마치 ‘불행 격전지’ 같던 무대를 포근하게 감싼다. 유주혜와 홍지희가 그려낼 파의 모습은 엘리샤 키스로부터 본떴다.빌보드 캐스트 앨범 순위 1위를 기록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던 넘버들도 원어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번역한 가사 덕분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Ex-Wives’로 시작해 ‘Mega Six’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인 리듬과 멜로디에 실려 알아듣기 쉽도록 전달된 이야기는 그들 모두 ‘주인공’임을 분명히 한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왕의 여인이 아닌, 진정한 여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존재 자체로 눈부시게 빛난다. 새로 쓰인 여왕들의 놀라운 허스토리(Herstory)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퀸덤에 합류해 보기 바란다. <필자소개>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3-04-21 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