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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이 서울에서 올 시즌 두 번째 여정을 시작했다. 지난 3월 말부터 약 두 달 반에 걸친 기간 동안 부산 한국어 초연을 먼저 선보인 ‘오페라의 유령’은 약 한 달간의 휴식기를 갖고 지난 7월 21일 서울 샤롯데씨어터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이번 서울 공연부터는 배우 최재림이 유령 역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면서 같은 배역을 맡은 조승우, 전동석, 김주택과 함께 4인 4색의 무대를 완성해 또 한 번 기대를 모은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서울 공연은 오는 11월 17일까지 계속된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클래식 뮤지컬의 대명사이자 한국 뮤지컬 역사에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영국 출신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대표작 중 하나다.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원작은 유령이라 불린 의문의 존재에 관한 사건을 현실과 결부시킨 추리 소설 형태를 갖췄다. 뮤지컬과는 상당히 다른 점이 많지만 직접 경험한 듯한 생생함과 놀라운 상상력이 더해진 소설이라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뮤지컬은 1986년 9월 웨스트엔드 초연, 그리고 1988년 1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으며 고전미를 살리면서도 현대적 감각까지 놓치지 않아 ‘명작 중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아름답고도 강렬한 음악, 흥미로운 전개, 비극적 사연을 기반에 둔 인간 본성의 가치 탐구 등 뮤지컬이 선보일 수 있는 매력을 두루 갖춘 걸작답게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 사상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우며 잘 만든 작품이 가진 힘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비록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여행 수요 감소와 수입 급감 등 여타 사정으로 인해 지난 4월 16일을 끝으로 잠시 막을 내리게 됐지만, 지금도 웨스트엔드 전용 극장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유령의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으니 놀라운 신화는 계속해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오페라의 유령 공연장면 © 에스앤코작품은 얼굴 반쪽을 마스크로 가린 채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유령과 새로운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리고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귀족 청년 라울의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음악의 천사’를 자처하며 크리스틴에게 다가갔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랑에 고통을 느낀 유령이 집착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가다 결국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과정이 눈앞에 환상처럼 펼쳐진다. 놀라운 무대연출도 ‘오페라의 유령’을 빛내는 요소다.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 이후 세월이 흘러 다시 빛을 찾은 거대 샹들리에가 가림천을 걷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분노한 유령에 의해 객석 가까이 추락하는 연출은 언제 봐도 전율이 일 정도로 짜릿하다. 또 안개 자욱한 호수 위로 솟아오른 촛불과 그 사이를 유유히 지나는 배, 2막 오프닝을 장식하는 가면 무도회 등 잊지 못할 장면들이 뚜렷한 이미지로 각인된다. 올해 선보인 한국어 공연의 경우, 2009년 재연 이후 무려 13년 만에 찾아온 무대라 더없이 소중하다. 그만큼 캐스팅부터 시작해 기술적인 향상을 더한 오리지널 디자인 무대 준비, 디테일을 살린 의상과 소품 제작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캐릭터가 품은 서사를 감성 연기로 완벽하게 설명해낸 조승우,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크리스틴을 장악한 최재림, 아이처럼 순수한 열정과 사랑에 목마른 어른 남자가 공존하는 전동석, 어긋난 사랑을 무서운 집착으로 되돌려준 김주택 등 각각의 유령들과 크리스틴(손지수·송은혜), 라울(송원근·황건하) 역을 맡은 배우들의 매력이 확실히 달라서 새로운 조합으로 보는 재미도 있다. 또 한국어 공연 초·재연 유령 역을 맡았던 윤영석(무슈 앙드레 역)과 2009년 재연 무대에 이어 다시 ‘유령’과 인연을 맺은 이상준(무슈 피르맹 역) 콤비의 유쾌한 무대 역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만큼, ‘오페라의 유령’이 선보일 무대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유령의 초대에 응해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분명 잊지 못할 추억과 감동의 무대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필자소개>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3-09-08 0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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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
‘백조의 호수’의 진화 안무가 프렐 조카쥬의 백조의 호수 공연 한 장면 지난 6월 말, 모던 발레계의 거장 앙쥴랭 프렐조카쥬가 4년 만에 방한했다. 2020년 첫 선을 보인 프렐조카쥬의 ‘백조의 호수’는 LG아트센터 기획공연 패키지 중 하나로 국내의 많은 발레 팬들이 기대를 모은 공연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약 200여년간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발레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나 1877년 2월 볼쇼이 극장 초연 당시에는 실패로 끝나버린 작품이었다. 실패작으로 영영 묻힐 뻔한 이 작품을 소생시켜 지금까지 사랑받게 만든 사람은 마린스키 극장의 예술감독 마리우스 프티파와 안무가 레프 이바노프였다. 그들은 화려하기만 했던 의상에 변화를 주고 2,4막의 비중을 늘려 줄거리를 강화했으며, 특히 2막에 백조의 날갯짓을 닮은 군무를 추가해 인물의 상징성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변화 덕에 ‘백조의 호수’는 지금까지 다양하게 재해석되며 대표적인 발레 작품 중 하나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백조의 호수’는 원작이 분명하지 않으나 러시아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지그프리트 왕자가 악마 로트바르트의 저주에 걸린 오데트 공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형태의 러브스토리로 둘의 사랑의 힘이 저주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처연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결말이 주인공들의 죽음으로 그려지지만 동시에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는 점에서 새드엔딩과 해피엔딩 두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초기 볼쇼이발레단의 안무는 오데트가 마법에서 풀려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어 러시아에 정치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방영되기도 했다. 반면 1986년 파리 오페라발레단은 로트바르트의 승리로 오데트와 로트바르트가 함께 승천한다는 새드엔딩으로 재해석되었다. 안무가 매튜존의 백종의 호수 공연의 한 장면 그 밖에도 ‘백조의 호수’는 끊임없이 재해석과 재창조를 되풀이해왔다. 1995년 매튜 본은 남성 백조가 등장하는 ‘백조의 호수’를 등장시키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고, 이후 2005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주인공 빌리가 발레리노의 꿈을 꾸게 되는 계기로 등장하기도 했다. 2011년 영화 ‘블랙 스완’에서는 주인공이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오딜이라는 1인 2역을 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심리스릴러 장르로 재해석되어 주연 나탈리 포트만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쾌거를 안겨주었다. 또, 국내에서 제작된 2016년 애니메이션 ‘신비 아파트’에서는 발레리나 귀신 마리오네트 퀸의 테마곡으로 백조의 호수가 사용되기도 했다. 영화 블랙스완 포스터 앞서 언급한 백조의 호수 작품들은 대다수가 원작이 가진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거나 인용되는 선에 그치고 있다. 이에 반해 프렐조카쥬의 작품은 고전에서 백조와 호수가 가진 의미에서 벗어나 ‘현재’라는 시대성을 부여하고 최근 강조되는 환경을 새로운 주제의식으로 끌어당겼다. 그리하여 악마 로트바르트는 호수의 화석을 캐내 부를 축적하려는 개발자로, 지그프리트의 아버지는 로트바르트의 동업자로 등장한다. 오데트는 환경운동가, 지그프리트는 시추 장비 개발회사 후계자 등 역할에 현대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해 주제의식을 강하게 어필했다. 더불어 백조 의상은 종이접기에서 영감을 얻어 주제의식의 반영 뿐만 아니라 백조의 깃털을 연상시켜 무대연출의 아름다운 요소로써 매력을 더했다. 프렐조카쥬의 백조의 호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대담한 무대연출로 관객을 장악한다. 별도의 무대장치 없이 오로지 LED화면을 통해 계속 변화하는 무대와 새롭게 작곡한 음악과 클래식의 결합은 관객들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경험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프렐조카쥬는 인터뷰를 통해 “호수는 물을 상징하며 이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천연자원이다. 이에 대한 질문이 백조의 호수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주제다.”라고 전하며 백조의 호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에 있어 환경이 소스가 된 이유를 밝혔다. 이렇게 참신한 시도는 프렐조카쥬 이전에도 있었다. 1995년 초연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레의 통념을 깬 새로운 시도로 회자되며 사랑받고 있다. 깃털 바지를 입은 근육질의 남성 백조 무용수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 매튜 본의 작품은 발레리노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힘 있는 점프와 안무로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더불어 그 역시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옮겨 표현해 영국 왕실에서 왕자와 여왕과의 관계를 풍자하고 런던 뒷골목이 등장한다. 이는 기존의 백조의 호수가 갖고 있던 우아함과 다소 거리가 멀지만 그래서 더욱 색다르고 매력적인 연출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백조의 호수 뿐만 아니라 고전 작품들은 왜 끊임없이 각색되고 재창조되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일까. 고전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작품’을 뜻하는 것으로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공통된 감정을 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사랑, 분노, 배신이 농축된 희노애락의 표현은 고전만이 가진 힘이며 이에 매료된 많은 연출가들과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러브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고전에서 현대적 의미를 재발견하며 백조의 호수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현대의 관객들은 이후에 등장할 ‘새로운 고전의 탄생’을 목도할 준비를 마쳤다. 연출가들의 새로운 시도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3-09-07 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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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베토벤의 가장 인기없는 교향곡? 발명가 메첼이 발명한 트럼펫 모양의 보청기를 사용했던 베토벤 '소박함'을 간직한 베토벤 교향곡 8번 베토벤 교향곡이 음악사를 통틀어 관현악의 금자탑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독보적인 예술적 성과라는 사실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터, 9개의 교향곡 모두 각각 다른 예술적 개성과 영감을 담아낸 자타공인 불후의 명곡. 하지만 1~9번 중에 8번은 유독 인기 없는 교향곡으로 통한다. 5번 교향곡과 더불어 가장 자주 연주되는 7번과 베토벤의 기념비적인 교향곡 9번 <합창>사이에 낀 8번의 태생적 한계일까? 1814년 빈 초연 당시 베토벤 7번과 함께 연주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초연 당시 대성공을 거두었던 7번 교향곡과 비교 대상이 되었고 당시의 빈의 음악신문(Allgemeine musikalische Zeitung)은 "청중으로부터 그리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라고 전했다. 혹자는 이 작품에 대해 진지성이 결여된, 베토벤스럽지 못한 교향곡이기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베토벤 본인의 평가는 어땠을까.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그의 제자 체르니가 베토벤에게 8번 교향곡이 7번보다 인기가 없는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이에 베토벤의 대답은 이랬다. "7번보다 8번이 훨씬 낫기 때문이지." 현재까지도 아홉 개의 교향곡 중 가장 손이 안 가는 교향곡으로 통하는 교향곡 8번. 하지만 이 작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보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8번이 베토벤의 '위대함'을 대변하기에 역부족으로 비취지는 이유는 교향곡의 스케일이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26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가진 이 교향곡은 아홉 개의 교향곡 중 가장 짧으며 2관 편성으로 사이즈도 작다.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교향곡 7번이 작곡가 리스트로부터 '리듬의 신격화'라는 평을 들을만큼 리듬의 극치감을 맛보게 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면 이 작품은 기쁨의 정서를 담고 있는 친밀감이 물씬 풍긴다. 실제로 베토벤은 8번을 '작은 F major 교향곡'이라고 불렀다. 이 작품은 다른 교향곡에 비해 유니크하다. 작품이 쓰여진 1812년은 청력 상실이 상당히 진행되어 효과도 신통치 않은 트럼펫 모양의 보청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며 절망감과 씨름하며 곡을 써 내려간 시기였다. 하지만 의외로 베토벤 특유의 고뇌의 흔적이나 인간승리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베토벤은 현실을 초월한 내면의 유쾌한 세상을 꺼내 보이며 ''서프라이즈!''를 외치는 듯 하다. 아무리 심오한 철학적 해석을 더한다고 해도 이 작품의 악상은 늘 밝고 즐겁다. 1812년 이 작품을 작곡할 당시, 그의 절친이었던 베티나 브렌타노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음악은 사람의 영혼으로부터 불을 붙여야 한다"라는 내용과 궤를 함께 하듯 느린 서주 없이 쾌조의 불꽃을 쏘아 올리며 달리는 빠른 3/4박자의 1악장은 하이든 풍의 유쾌함과 활기찬 음악어법이 돋보인다. 익살과 유머를 살린 2악장, 민속적인 렌들러풍의 3악장에서 느껴지는 정겨운 정취 그리고 마지막 4악장은 스케르초 풍의 악상과 예측불가한 전조진행으로 고전파의 전통양식을 패러디한다. 이 교향곡 속에는 보통 자리잡고 있어야 할 '느린 악장'이 존재하지 않는데 2악장은 '알레그레토'템포로 제법 빠르며 작정하고 익살스러운 음악어법을 구사한다. 느린 2악장이 자아내는 선 굵은 감정선보다는 좀처럼 보기 힘든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악장이다. 고전미에 위트 있는 반기를 내비친 듯한 제스처랄까. 8번은 클래식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스트라빈스키는 3악장 트리오 부분의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해 "비할 데 없는 아이디어"라고 극찬했으며 차이콥스키는 4악장을 베토벤 음악 중에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았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었던 위대한 극작가 버나드 쇼도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8번 교향곡에 대해 "모든 점에 있어서 교향곡 7번보다 8번이 낫다"라고 평한 바 있다. 베토벤은 유일하게 이 작품을 그 누구에게도 헌정하지 않았다. 자신만을 위한 '소박한' 교향곡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WcgxxciDdy0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3-09-01 1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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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명작으로 잊는 여름더위, 내셔널갤러리특별전 對 사유의 방 10만명이 다녀간 전시비결, 다시 못볼 명작의 향연1300년전 아시아의 생각하는 사람? 반가사유상과의 대화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인 가운데 뜨거운 더위를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시기는 가장 뜨거운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을 달구고 있다.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2023.10.9.)은 한국과 영국 수교(1883년) 140주년을 기념하여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를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전시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카라바조, 푸생,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 렘브란트, 고야, 터너, 컨스터블, 토마스 로렌스,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갱, 반 고흐 등 서양 미술 거장들의 명화 52점을 만날 수 있다. 개막 이후 한달 동안 하루 평균 2600명씩 찾아 10만 명을 가뿐히 돌파한 전시로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들었던 르네상스시대 회화부터 관람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인상주의 회화까지를 다채롭게 조망한다. 이와 맞물려 또다른 인기를 끄는 사유의 방의 두 안주인은 바로 ‘국보 반가사유상’이다. 최근 한류가 전세계적 인기로 부상한 가운데 상설전시실의 인기스타인 이들을 보기 위해 ‘1300년된 한국의 생각하는 사람(?)’을 찾는 외국인들도 눈에 띈다. 동·서 명작의 향연속으로 풍덩 감성을 던져보자.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인간의 시선으로 15~20세기 초 유럽 회화의 흐름을 살피는 이번 전시에서는 서양미술 명작을 통해 미술의 주제가 신으로부터 사람과 우리 일상으로 향하는 모습을 조명한다. 전시는 시간대별로 입장 인원을 제한해서 반드시 사전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최근엔 표가 좀 풀리기 시작해 8월7일 이후 부터 여유가 있다. 관람 포인트들을 짚어보면, 전시는 4부 구성으로 중세 이후 르네상스부터 종교와 신에 머물러 있던 거장의 시선이 어떻게 변화되어, 인상주의 시기까지 닿아가고 있는지를 선보인다. 라파엘로, 성모자와 세례 요한(가바의 성모) <1부.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 파트에서는 라파엘로 ‘성모자와 세례 요한(가바의 성모)’을 픽했다. 전성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궁에서 ‘아테네 학당’을 그리던 시기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크시대 하면 네덜란드가 대표적인데, 네덜란드 그림들이 강조한 독특한 느낌들이 주목할 만하다. 분열된 교회, 종교개혁으로부터 탈피한 자유, 플랑드르 지역이 자본주의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술품 시장이 형성되고, 정물화-풍속화-풍경화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시장이 만들어진다. 요아킴 베케라르 <4원소> 가운데 물그림, 그림을 소비하는 주체가 시민임을 보여준다. 플랑드르 화가 알베르트 코이프는 평화로운 네덜란드 풍경을 그린다. 과학시대의 발견과 인간의 시선으로 내려온 시대를 보여준다. 카라바조, 도마뱀에 물린 소년 <2부.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의 대표작은 카라바조의 <도마뱀에 물린 소년>으로, 강렬하고 극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 꽃병에 꽂힌 장미꽃을 만지다가 그 안에 숨어 있던 도마뱀에게 물려 놀란 소년을 그렸다. 명암의 극적인 대비로 회화지만 조각 같은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렘브란트, 63세의 자화상 <3부.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에서 주목할 최고의 작품은 ‘렘브란트 63세 자화상’이다. 다빈치와 함께 17세기 유럽 회화 사상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하르멘츠 반 레인 렘브란트는 1632년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정착한 이후로, 약 10여 년간 명성과 부를 누리며 최고의 초상화가의 삶을 살았다. 또한 그는 50점 이상의 유화와 30점 이상의 에칭, 셀 수 없이 많은 드로잉으로 자화상을 제작했는데, 이를 통해 렘브란트는 자아성찰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1669년에 그린 <63세의 자화상>으로 렘브란트가 죽은 마지막 해에 그려진 것이다. 렘브란트는 일생동안 많은 자화상을 회화와 동판화로 남겼는데, 말년에 이들을 많이 없앴다. 마네, 카페 콩세르의 한구석 관람장면 (© 한국해외문화홍보원) <4부.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에서는 에두아르 마네의 <카페 콩세르의 한구석>을 추천한다. 19세기 말 파리에서 사는 삶의 한 장면을 담고 있는 '카페 콩세르'는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담배와 술을 즐기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가벼운 노래와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특히 인상주의와 관련 있는 예술가들과 문필가들이 만나던 세련된 장소라고. 마네는 1872년부터 188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기 있는 카페 콩세르, 식당, 카페 등의 내부와 테라스, 정원 등을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렸다. 최근 한국에서 영국전시를 하는 것처럼, 영국내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풍성하다. 빅토리아앤 알버트 뮤지엄의 한류전시가 8개월간 끝난 이후 더 그런 열풍이 불고 있다. 이달만해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BBC Proms 2023에서 이름을 올렸고, 다음달 27일까지 ‘한류 수출시장 다변화’를 촉진하는 차원에서 ‘2023 K-콘텐츠 엑스포 인(in) 영국’과 코리안 뮤직 페스티벌 등의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해외 관광객들의 찬사, 사유의 방에서 만나는 나의 발견 내셔널갤러리전을 봤다면 한국적인 방도 꼭 보기를 권장한다. 최근 반가사유상 굿즈를 통해 많은 관심을 받고있는 반가사유상들은 상설전시실 2층 초입에 있어 언제나 내 안을 돌아보는 ‘명상장소’로 각광 받는다. 혹자들은 이 작품을 보고 서양식 생각하는 사람(로댕)이라고 말한다. 사유의 방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한 공간이다. 어둡고 고요한 복도를 지나면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얹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을 만나볼 수 있다. 뛰어난 주조기술을 바탕으로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넘치고,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근엄한 반가사유상의 모습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고뇌와 깨달음을 상징한다. 이제는 문화재 지정번호가 없어졌는데. 과거 두 반가사유상은 ‘국보 78호’, ‘국보 83호’로 불렸다. 제작된 시기도 비슷하고 둘다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이지만, 종교적 도상보다 시공을 초월한 인간 사유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유의 방, 국보 반가사유상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머리에 쓴 보관(寶冠)이다. 왼쪽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탑처럼 보이는 장식이 솟아 있는 이 보관은 태양과 초승달을 결합한 특이한 형식으로 흔히 일월식(日月蝕)이라고 한다. 이 형식은 원래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관에서 유래했는데, 비단길을 통해 동쪽으로 전파되면서 보살상의 보관으로 바뀌었다. 오른쪽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머리에 삼산관(三山冠) 또는 연화관(蓮花冠)이라고 불리는 낮은 관을 쓰고 있다. 상반신에 옷을 전혀 걸치지 않은 채 단순한 목걸이만 착용하고 있다. 단순하지만 자연스럽고 분명한 얼굴 표현이 절제되면서도 강건한 미감을 드러낸다.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일본 교토 고류지(廣隆寺)의 목조반가사유상과 매우 닮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삼국의 불상이 고대 일본으로 전래된 유력한 증거로 꼽힌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 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3-08-25 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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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추억속 인기 밴드의 음악을 실감나게 재연하다_뮤지컬 다시 동물원. 뮤지컬 다시 동물원의 한 장면 그 친구와 동물원 ‘혜화동’,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널 사랑하겠어’... 주옥같은 노래들이 한 곡씩 등장할 때마다 탄성에 가까운 감탄이 터져 나온다. 마니아 관객이라면 창기, 준열, 기영, 경찬 같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듣고 미소를 흘려보내기도 쉽지 않다. 물론 이른 나이에 명을 달리한 ‘그 친구’의 모습이 눈에 밟혀 더욱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감상 포인트이자 매력이다. 뮤지컬 ‘다시 동물원’이다.‘동물원’이 처음 데뷔했던 건 1988년이다. 음악을 좋아해서 취미로 시작한 대학생 밴드였지만 시대를 적시는 감성어린 노래들은 오래지 않아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세를 얻었다.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김창기,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음식점 수입에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기도 했던 박기영, LG소속 연구원이었던 박경찬, 신한과학에서 일하는 유준열과 영화 시나리오 작가 겸 프로듀서가 된 배영길 등 음악활동과 별개로 각자의 직업 세계도 존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이들을 부를 때 단순한 포크 밴드보다는 직장인 밴드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전업 음악인의 길을 걸어가려던 김광석은 솔로로 독립해 데뷔했고, 대중들로 큰 사랑을 받다가 1996년 돌연 세상을 떠난 일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뮤지컬은 바로 그 동물원의 이야기와 김광석이라는 이름 대신 ‘그 친구’라 불리는 멤버와의 사연을 담담히 들려주는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다시 동물원’은 뮤지컬계의 글로벌한 트렌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서도 존재감이 남다르다. 바로 주크박스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왕년의 음악을 가져와 극적인 구성에 맞춰 이야기를 들려주는 복고와 향수가 접목되기 쉬운 뮤지컬의 인기 형식이다. 대표적인 주크박스 뮤지컬로는 우리나라 중장년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아바(ABBA)의 원곡들로 꾸민 ‘맘마 미아!’가 있다. 아바의 음악들, 특히 가사를 바꾸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 활용하면서 마흔살 엄마 도나가 스무살 딸 소피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렸다.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스토리는 마치 아바의 노래들이 이 스토리의 무대를 위해 이미 혹은 미리 쓰여진 것은 아닌가싶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아바의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 미아!’를 두고 뮤지컬계의 재앙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맘마 미아!’ 자체로는 노랫말을 바꾸지 않고 재미난 이야기를 꾸미는 기발한 완성도를 보여줬지만 이로 인해 훗날 너무 많은 억지 춘향식 스토리의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다. 대부분 음악적 매력에 치중할 뿐 헐거운 이야기 구조에 느닷없는 극적 전개가 뮤지컬의 완성도를 오히려 반감시킨다는 주장이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뮤지컬계에서는 ‘탈 맘마 미아!’의 열풍도 있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유명 가수의 왕년의 히트 대중음악을 무리 없이 무대로 끌어올 것인가의 여부가 주크박스 뮤지컬의 완성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관건으로 등장하게 됐다. 가장 주요한 방법 중 하나는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 가수의 이야기를 무대로 끌어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마케팅 전략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포 시즌스의 음악으로 만든 ‘저지 보이스’다. 포 시즌스 멤버들이 모두 뉴저지 출신이라 저지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뮤지컬은 포 시즌스가 어떻게 밴드를 결성했고, 인기를 누렸으며, 갈등을 겪다가 헤어졌는가를 히트곡의 연대기적 나열을 통해 무리없이 보여준다. 극의 말미에서 우여곡절 끝에 불려지게 된 노래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스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you)’도 흘러나온다. 무대 위 극 전개가 지극히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그 시절 그 노래를 즐겨 들었던 사람들까지도 공연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일석이조의 자연스런 홍보 전략이 맞아떨어지는 양수겸장의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유브 갓어 프랜드(You’ve got a friend)’로 유명한 여성 싱어 송 라이터 캐롤 킹의 노래로 꾸며진 뮤지컬 ‘뷰티풀(Beautiful)’이나 내슈빌의 썬 레크드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제리 리 루이스, 쟈니 캐시 등이 마지막 녹음을 하는 날 풍경을 그린 ‘밀리언 달러 쿼테트(Million Dollar Quartet)’도 같은 맥락으로 글로벌 흥행을 누린 작품들이다. 가수들의 개인사를 줄거리로 수많은 히트곡들의 탄생 비화를 들려주는 형식을 보여준다. 뮤지컬 다시 동물원의 한장면 그 여름 동물원 댄스 ‘다시 동물원’도 마찬가지다. 소재로 쓰인 동물원의 노래도 그렇거니와 이야기 전반에 담겨있는 복고와 향수의 소재와 주제들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새삼 반갑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무대에서 펼쳐지는 사건들도 남다른 재미를 담아낸다. 단지 음악만이 아니라는 의미다. 80~9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소재와 이야기, 사건들이 이어져 무대를 즐기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대학생들이 만나 밴드를 꾸미고 꿈을 펼치는 풍경이라든지, 디스코텍을 돌아다니며 부킹(?)을 했던 젊은 날의 모습들, 소주잔을 기울이며 정을 나누는 세상살이 등이 고스란히 재연된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외치는 DJ 이문세, 동네 교회오빠를 짝사랑하는 여고생의 말 못할 사연이 담긴 엽서 한 장, 기타 하나만 있으면 부러울것 없던 그 시절 젊음이들의 낭만 등도 펼쳐진다. 무대에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액터 뮤지션 뮤지컬의 형식이다.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탓에 무대 아래쪽에 별도의 연주석이나 반주팀이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 일부에서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을 두고 경비를 절감하기 위한 자본가의 꼼수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돈’ 계산만으로 이러한 실험을 재단하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다. 형식적 일탈과 실험이 오히려 별스럽고 특이한 예술적 체험을 가져오는 탓이다. 더군다나 ‘그 여름 동물원’같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입장에서 액터 뮤지션 뮤지컬의 형식은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장치이자 환경을 조성해준다. 이야기 자체가 대학생 밴드의 실제 경험을 다루기 때문이다. 물론 사정이 이렇다보니 배우들의 노래나 연기 못지않게 악기를 다루는 연주 실력이 무대의 매력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도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2015년 초연 당시 창기 역으로 등장했던 실제 여행스케치 객원 멤버 임진웅이나 가수로도 활동한 바 있는 이정열은 특유의 가창력과 기타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줘 인기를 누렸던 좋은 사례였다. 네 번째로 다시 꾸며지는 2023년 앙코르 무대에서는 탈렌트 임호, 초연부터 같은 역할로 나왔으며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히든 싱어’에서 ‘그 친구’의 목소리와 너무도 비슷한 소리를 들려줘 세간에 화제가 됐던 최승열 등이 등장해 좋은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복고풍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왕년의 K팝들이 다시 사랑받고 있다. 덕분에 꼭 그 시절에 대한 향수나 추억이 없는 젊은 관객들도 발 박자를 맞춰가며 이야기 따라보는 재미를 만끽하기 어렵지 않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글로벌 흥행 신화가 우리 창작 뮤지컬 안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자못 궁금하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3-08-18 1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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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특별함 여름은 우리에게 어떤 계절일까요? 여름은 작열하는 태양과 무더운 날씨, 매번 안타까운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장마와 태풍을 대면해야만 하는 계절이지만 방학과 휴가, 그리고 산과 바다로 떠나는 여행이 있어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기다리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음악가들,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름은 어떤 계절일까요? 물론 다양한 대답이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대답을 많은 이들에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름은 페스티벌이 열리는 계절”이라는 것이지요.여름이면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음악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다른 계절도 있는데 하필 여름에 대부분의 페스티벌이 열리는 이유는 그 때가 많은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의 비시즌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그들의 시즌은 가을에 시작해서 이듬해 초여름에 마무리됩니다. 그리고는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까지의 두세 달 정도가 (대개 7~8월) 비시즌이 되지요. 이 비시즌의 시간을 활용하여 많은 단체들이 페스티벌에 참가합니다. 어떻게 보면 시즌이 끝나고도 일이 계속되어 시즌과 비시즌의 구분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상당수의 페스티벌이 유명한 휴양지나 야외 무대처럼 정규 시즌 중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독특한 장소에서 개최된다는 점이나 활력 넘치는 페스티벌 특유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것은 음악가에게도, 청중에게도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합니다.페스티벌의 규모와 성격은 다양합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er Festspiele)처럼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연주회, 그리고 리사이틀 등 성악과 기악 분야 모두를 포함하는 페스티벌이 있는가 하면 루체른 페스티벌(Lucerne Festival)처럼 오페라 없이 주로 기악 분야에 집중하는 페스티벌도 있고 바그너(R. Wagner, 1813-1883)의 작품을 다루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er Festspiele)처럼 특정 작곡가에 집중된 페스티벌도 있지요.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며 많은 이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페스티벌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입니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란 이름 그대로 페스티벌을 위해 만들어진 오케스트라를 뜻합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일년에 한 번 특정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기 위해 결성되었다가 예정된 몇 차례의 음악회가 끝나면 해체되지요. 이 과정을 페스티벌이 열리는 해마다 반복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페스티벌마다 각자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따로 없는 대신 한 오케스트라가 특정 페스티벌의 메인 오케스트라를 맡는 경우도 많은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와 탱글우드 페스티벌(Tanglewood Music Festival)에서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Boston Symphony Orchestra)가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003년 공연 장면 (출처: 루체른 페스티벌 홈페이지<lucernefestival.ch> 사진: Priska Ketterer) 오늘날 가장 유명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로는 1876년 첫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결성되었으며 1886년이래 이 페스티벌의 오케스트라로 자리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ayreuther Festspielorchester), 2003년 아바도(C. Abbado, 1933-2014)의 지휘로 많은 화제 속에 시작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Lucerne Festival Orchestra), 그리고 젊은 음악가들이 모여 그들의 에너지를 가득 발산하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Verbier Festival Orchestra) 등이 있습니다. 이들의 연주는 많은 영상물로도 접할 수 있지요. 다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습은 그들이 연주하는 바그너의 오페라 영상 속에서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오페라 영상의 특성상 영상의 중심이 가수들이 활약하는 무대에 있다는 것, 오케스트라가 청중석 어디서도 보이지 않게 설계된 것으로 유명한 바이로이트 축제극장(Bayreuther Festspielhaus)의 구조, 그리고 촬영에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오케스트라 피트(오페라 연주에서 오케스트라가 자리하는 곳)에 기인하지요.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특별함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선 희소성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상설 오케스트라와는 달리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한 해에 몇 차례만 그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에서 들을 수 있으니까요. 물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경우처럼 페스티벌 이후 몇몇 도시로 연주 투어를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무척 제한적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구성도 우리의 흥미를 이끄는 점 중 하나입니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오케스트라 음악가들입니다. 즉, 그들은 시즌 중에는 본인이 속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다가 비시즌에 특정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로 모이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자연히 평상시 볼 수 없던 독특한 조합의 오케스트라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는 청중에게도 음악가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지요.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특별함은 휴가를 마다하고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로 향하는 음악가들의 자발성,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이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고 있는 비올리스트 타냐 크리스트(T. Christ, 1966- )나 바이올리니스트 코르비니안 알텐베르거(K. Altenberger, 1982- ) 등이 인터뷰에서 직접 언급한 내용인데, 이 자발성과 기쁨은 일차적으로는 청중보다는 음악가의 측면에서 바라본 특별함이지요. 그러나, 이 특별함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통해 결국 청중에게 생생하게 전달될 것이 분명합니다.올 여름에도 다양한 페스티벌이 개최되고 또 그 안에서 많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들이 활약할 것입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페스티벌과 그 오케스트라에 머무르겠지요. 이들이 펼쳐 보이는 음악으로 인해 보다 풍요로운 여름이 되기를 바래봅니다.추천영상: 아바도의 지휘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입니다. 2003년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이 오케스트라가 첫 선을 보였던 음악회에서의 연주이지요. 새롭게 탄생한 오케스트라의 다채롭고 섬세하며 생동감 가득한 연주는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지휘자와 음악가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생생한 열기 또한 일품인 이 연주를 감상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SgSNgzA37To <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3-08-11 1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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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디즈니의 심볼, 미키마우스가 악수를 청한 지휘자혁신과 도전의 지휘자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 등장하는 지휘자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 1940년에 제작된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 깜짝 등장하는 지휘자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 제작자들이 만화 캐릭터 속에 그의 지휘 제스처를 심어놓을 정도로 그는 수퍼스타 지휘자였으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미국을 대표하는 5대 악단 중의 하나로 키워낸 장본인이었다. 어두운 전체 조명 속에 자신의 손과 머리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달라고 주문했던 그의 쇼맨십과 독보적인 인기가 그를 설명하는 전부였다면 그는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서지 못했을 터. 보수적인 클래식계에서 아티스트의 대중적인 행보가 두드러지면 가벼운 이미지로 소비되기 십상인데 그는 다방면에 크리에이티브함을 발휘하며 94세의 나이에 타계하기까지 늘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며 후대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디즈니와 지휘자 스토코프스키1903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를 졸업한 그가 1905년, 23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왔을때 그를 알아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 건 뉴욕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이름을 알리던 그가 아내의 권유로 지원한 신시내티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부임하면서부터이다. 클리블랜드의 한 신문사는 그에 대해 "젊은 나이에도 불구, 창의적인 천재가 가진 불꽃을 엿볼 수 있었다"라고 평하며 그의 가능성을 점쳤다. 결국 그는 1912년 펜실베니아주의 이름없는 지방악단이었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맡아 26년간 이끌며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으며 명실상부 미국을 대표하는 일류 오케스트라 반열에 올려놓았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하면 떠오르는 것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필라델피아 사운드'다. 윤택하면서도 화려한 사운드가 일품인데 스토코프스키의 조련 아래 발현되기 시작했다. 레전드 중의 레전드 지휘자로 불리우는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이 사운드의 비밀을 캐고 다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 무엇이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만들어낸 것일까. 몇가지 요인을 들어보자. 우리가 상상하는 좋은 오케스트라의 현악합주는 하나된 일사불란한 움직임인데, 스토코프스키는 놀랍게도 단원들로 하여금 각각 다른 보잉(활주법)으로 연주하게 함으로써 긴 음악적 프레이즈와 개성있는 색채를 부각시켰다. 또한 자리배치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는데 지휘자를 중심으로 좌우에 배치되었던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을 지휘자 좌측에 나란히 연주하게끔 배치함으로서 바이올린 그룹의 화려한 색채와 고음의 일치감이 극대화 되었다. 결과적으로 왼쪽은 고음, 오른쪽은 저음악기를 배치하는 이 포지셔닝은 전형적인 미국식 배치로 자리잡게 되었고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동시대성을 중요시했던 그는 전위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쇤베르크 생전에 그가 작곡한 모든 오케스트라 작품을 지휘할 정도로 동시대 작곡가 소개에도 적극적이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비롯하여 스트라빈스키의 수많은 관현악 작품들의 미국 초연을 도맡았으며 그의 말년까지 참신한 작품에 대한 그의 목마름은 끊임없었다. 청중에게 생소한 초연곡들을 정규 레퍼토리에 포함시킨다는건 여러모로 모험이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대중성을 갖춘 지휘자지만 대중의 인기에 좌지우지하지 않았던 그의 면모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기존 작품들에 대한 재해석, 재창조를 시도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던 스토코프스키는 바흐의 유명한 오르간곡들을 직접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하여 무대에 올렸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는데 훗날 유럽 투어 중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편곡한 바흐를 접하고 관객은 열광했지만 미국 평단은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말한 바 있다.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 등장하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BWV565)는 그가 편곡한 작품이며 새로운 관현악적 색채감을 뽐내며 현재까지도 무대에 오르고있다. 미국 내 클래식 음악의 저변확대를 위해 오케스트라 창단에도 힘을 쏟았는데 올 아메리칸 유스 오케스트라, 헐리우드 볼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이 잘 알려져 있다. 1962년, 나이 80에 이르러 창단한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젊은층의 콘서트 유입을 목표삼아 티켓 가격을 낮췄고 재정적자는 자신의 돈으로 메꾸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기도 했다. 미래의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문화적 유산을 염두에 둔 행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플레이빌지는 '어떻게 스토코프스키가 미국에서 관현악 음악을 대중화 시켰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그가 미국 음악계에 끼친 영향력을 조명한 바 있다. 디즈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서 디즈니의 심볼 미키마우스가 그에게 악수를 청한건 그의 끝없는 도전정신에 대한 경의를 표한 것이 아니었을까. 디즈니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스토코프스키가 편곡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는 오르간이 뿜어내는 장엄한 사운드와는 다른 다채로운 관현악의 색채감을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버전이다. 심플한 관현악 편곡 속에 화려한 현악기를 주축으로 따뜻한 목관과 무게감있는 금관이 어우러지며 큰 스케일의 감동을 선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0i2l9DQt_QY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3-08-02 1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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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국악이 궁금할 때 : 웹진(Webzine) ‘일정한 이름을 가지고 호를 거듭하며 정기적으로 간행하는 출판물.’ 잡지의 미덕은 첫 장부터 마지막 한 장까지 꼼꼼하게 정독(精讀)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마음에 드는 제목의 기사만 골라본 후 버려도 부담이 없고 좋아하는 필자의 연재 기사 한 꼭지 때문에 매달 사서 모으게도 되는 것이 잡지다. 특정 분야를 다루는 전문지의 경우, 초심자와 애호가가 지닌 배경지식의 간극이 크고 홍보의 기능을 겸하는 경우가 많아 아예 기획 단계부터 여러 층위의 독자를 염두에 둔다. 입문자를 위한 읽을거리부터 마니아의 지식욕을 충족할 기사까지 단계별로 촘촘히 준비하는 것이다. 국악 잡지도 그렇다. 국악 이론서보다 쉽고 가벼우며 기발한 기획과 기상천외한 편집으로 무장한 전통 예술 관련 잡지들을 뒤적이다 보면 편집자가 지나왔을 고뇌의 시간이 문득 행간에서 느껴지곤 한다. 그리하여 고백건대 국악 잡지를 만들 때 가장 유용한 지침서 역시 경쟁 관계에 있는 잡지들이다. 월간 국립극장 1950년 문을 연 국립극장은 1977년 4월에 소식지 ‘월간 국립극장’을 창간한다. ‘극장예술, 국립극장 소식, 국립중앙극장, 갈채’ 등의 제호를 거쳐 새천년을 맞이한 경진년(庚辰年)에 ‘국립극장 미르’라는 이름을 얻는다. ‘국립극장 미르’는 월간지로 2020년 12월까지 20년간 다채로운 공연계 소식을 담아왔다. 통권 371권의 소식지를 발간한 국립극장은 다시 한번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를 꾀한다. 종이책에서 웹진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이다. 2021년 7월호가 창간호인 국립극장의 웹진은 첫 소식지의 이름을 되살려 ‘월간 국립극장’이 되었다. 2023년 7월 현재 통권 25호를 발행한 ‘월간 국립극장’은 ‘내일의 전통(Spotlight)/무대, 탐미(Stages)/안목의 성장(Insight)/극장 속으로(Into theater)’ 등 단출하게 4개 섹션으로 나뉜다. ‘내일의 전통’이 대체로 시의성 있는 공연 예술계의 현안을 다룬다면 ‘무대, 탐미’에는 국립극장 공연의 소개와 감상이 주로 실린다. 앞의 두 표제에 속한 칼럼의 소재가 ‘국악’으로 범위를 좁혔다면 ‘안목의 성장’만큼은 외연을 넓혀 흥미로운 연재 기사들을 싣고 있다. 지난해 연재한 ‘몸짓언어’는 다소 추상적인 춤의 언어를 구체화한다. 춤사위와 몸짓에 담긴 의미를 소개하고, 국립무용단 단원들이 직접 참여해 촬영한 춤동작 이미지를 함께 게재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올해 시작한 ‘예술가의 한 마디’는 예술가가 남긴 한 마디를 화두 삼아 그의 생애를 되짚어 보는 칼럼이다. 라흐마니노프부터 황병기까지 동서양의 경계를 두지 않고 음악가를 선정, 소개한다. 월간 국립극장(https://webzine.ntok.go.kr) 사이트에서 웹진 과월호는 물론, 국립극장 미르까지 PDF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다. 국립극장을 비롯해 국공립 도서관 등에는 소량 제작한 인쇄 책자가 비치되어 있으며, 인터넷 교보문고 사이트에서도 POD(Publish on demand, 고객 주문에 따라 인쇄본으로 제작하는 맞춤형 소량 출판) 서비스를 통해 인쇄본을 구매할 수 있다. 월간 공진단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전통 예술의 보급과 저변 확대, 대중화 및 콘텐츠 개발, 해외 교류 활동 등을 지원하기 위해 2007년 ‘국악문화재단’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월간 공진단’은 2018년 7월부터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웹 매거진이다. 같은 이름의 한약을 떠올리게 하는 콘셉트로 ‘현상진맥’, ‘명약실록’, '전통처방전', '연희약방', '추천명약' 등의 표제를 사용했다. 한약 냄새 풀풀 날 것 같은 예스러운 인상을 주지만 웹 매거진의 특징을 십분 살려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다양하게 탑재하고 있다. 퀴즈 게임을 하듯 자신에게 맞는 답변을 고르면 공연이나 음악 등을 추천해주는 ‘추천명약’을 비롯해 전통 예술인들이 자신의 인생 책 일부를 낭독해주는 ‘소리탐독’ 등 다중 매체를 요모조모 알뜰히 활용한 코너들이 많다. 클릭 한 번으로 칼럼에서 소개한 음원이나 공연을 바로 감상하고 공연 예매 페이지, 음반 상세 소개 페이지 등에 접속할 수 있는 것도 웹진만의 강점이다. 한편 월간 공진단의 메인 페이지에서는 ‘월간 공진단’과 ‘공진단 블랙’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2019년부터 발행한 공진단 블랙은 '익명의 비평'라는 매우 흥미로운 콘셉트로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듬해부터는 이름을 밝힌 비평가들의 글을 게재하고 있지만 시의적절한 국악계 담론을 채택해 다루며 문제의식을 일깨우고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장으로 역할하고 있다 월간 공진단(https://webzine.kotpa.org) 찜통더위가 예고된 올 여름, 장마와 뙤약볕, 태풍을 모두 견뎌야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터이다. 바깥 활동은 하늘이 청명하고 바람이 서늘해지는 계절로 잠시 미뤄두고, 조금이라도 덜 더운 곳에 차분히 자리 잡고 앉아 독서삼매에 빠져볼 일이다. 더위 스트레스를 해소하든 더위로 인한 불면증을 이겨내든, 독서(讀書)야말로 혹서(酷暑)를 이기는 가장 멋진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필자소개>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3-07-25 1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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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미션’(1986), ‘시네마천국’(1988), ‘러브 어페어’(1994)… 분명 더 있을 것이다. 당신이 흥얼거릴 수 있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스코어들이. 그래서 한스 짐머는 그를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라고 말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가 영화음악가로서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의 음악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엔니오 모리꼬네를 모델로 영화음악을 시작했고 수많은 관객들이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영화를 보았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쥬세페 토르나토레, 2023)는 지난 2020년 여름에 타계한 위대한 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를 향한 열정적 헌사다. 156분에 달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엔니오 모리꼬네가 트럼펫을 불던 음악학교 시절부터 차근차근 그의 인생을 반추한다. 덕분에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의 이력들, 음악의 뒷 이야기들이 밝혀진다. 가령, 그가 학창시절 초반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던가, 그의 스승인 고프레도 페트라시는 모리꼬네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영화음악 작곡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클래식 작곡가들에게 영화음악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모리꼬네는 훌륭한 순수음악 작곡가이기도 해서 틈틈이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도 했다. 존 바에즈의 ‘Here’s to you’를 작곡했다는 사실도, 스탠리 큐브릭과 함께 일할 뻔 했지만 무산된 사연도 새롭다. 이 다큐에는 모리꼬네의 영화음악들이 끊임없이 흐르고 쟁쟁한 감독과 음악가들이 그의 작업을 평가해주기 때문에 영화사적인 관점에서의 의미도 큰 작품이다. 출연자들의 리스트를 보지 않고 영화부터 감상하면 뒤로 갈수록 더 쟁쟁하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터뷰이들의 등장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연출은 엔니오 모리꼬네와 30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하며 명화들을 합작해온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맡았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대표작은 끝까지 ‘시네마천국’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그의 걸작 리스트에는 이 다큐멘터리도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아무런 기교 없이 엄선된 자료들과 뛰어난 구성만으로 모리꼬네의 명성에 걸맞는 영화가 완성됐다. 영화팬들이라면 필람해야 할 작품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전설이여, 안녕!,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그가 돌아왔다. 액션 어드벤쳐 장르의 대명사가 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제임스 맨골드, 2023)에는 막 퇴임을 맞은 교수, 인디아나 존스(이하 ‘인디)가 역사를 바꾸고자 하는 나치 일당과 마주치면서 떠나게 되는 모험담이 담겨 있다. 4편격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스티븐 스필버그, 2008) 이후 15년 만이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인디는 저 익숙한 중절모에 가죽 재킷을 입은 채 세계 곳곳을 누빈다. 바다로 뛰어들고, 동굴 암벽을 기어오르고, 채찍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에서는 젊은 시절 못지 않은 열정과 집념을 발견할 수 있다. 80대가 된 해리슨 포드의 액션이나 5편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실 스케일과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은 현대 블록버스터 못지 않다. 일례로, ‘미션 임파서블: 코드 레코닝 Part1’(크리스토퍼 맥쿼리, 2023)과 견주어 보면 기차 액션신, 도시 안 카레이싱 신 등이 거의 유사하게 짜여져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고대 유물에 새겨진 비밀코드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련된 느낌이 덜한 것은 1969년을 배경으로 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어쩌면 실망감 또한 해리슨 포드의 40대, 스티븐 스필버그의 40대, 그 어떤 유사한 경쟁작도 없이 참신하기만 했던 초기 3부작과 비교했을 때 드는 감정일 것이다. 그만큼 ‘인디아나 존스’의 경쟁상대는 ‘인디아나 존스’ 밖에 없다. 1981년, ‘레이더스’부터 시작된 인디의 모험은 42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전설’이 되었다. ‘인디아나 존스’ 4편의 시리즈로 6개의 오스카상을 거머쥐었으며, 인디는 엠파이어지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화 캐릭터’에서 쟁쟁한 슈퍼히어로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레이더스 마치’는 모험을 떠나는 인디의 모습과 함께 각인되어 중장년층이라면 전주만 들어도 아는 몇 안되는 스코어(score) 중 하나다. 관객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훨씬 지대하다. 유년 시절 인디를 보고 자란 이들은 한 번쯤 고고학자를 꿈꿨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 모험심을 갖게 되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5편 밖에 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단한 아우라다. ‘운명의 다이얼’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최종편으로 팬서비스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공동제작에 존 윌리엄스 음악이라는 크레딧만으로 설렐 수밖에 없는데, 전편들을 다 합친 것 이상의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액션 시퀀스를 늘렸고, 존 라이스 데이비스(살라), 카렌 알렌(마리온) 등 기존 시리즈의 등장인물을 소환해 추억을 돋운다. 달라진 점이라면 종교성이 강한 유물을 찾았던 기존 시리즈와 달리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만든 다이얼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시간의 순환과 여행이라는 소재는 동시대 블록버스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시리즈의 과거를 돌아본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인디는 그가 동경해왔던 아르키메데스의 시대에 머물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인디가 현실에서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생을 보낸다는 결말은 따뜻하면서 먹먹하다. 이로써 인디, 그리고 해리슨 포드는 그와 함께 나이들어 온 중장년의 관객들을 향해 완벽한 이별의 인사를 한 셈이다. 아쉽지만 크레딧이 다 올라가면 관객들도 그를 보내줘야 한다. 그러나 전설에 대한 찬사를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동시대 영화 비평가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역할이 아닌가 싶다. <필자소개>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3-07-20 1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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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대학 축제가 나아갈 길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던 축제들이 올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하늘길이 열리고 마스크를 벗어 던진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곳저곳으로 떠나기 시작한 올해 봄, 오랜만에 한국의 대학 캠퍼스들도 축제로 들썩이며 화제를 모았다. 한국의 대학 축제들은 동아리나 과별로 부스를 열어 다양한 이벤트나 주점, 음식점을 운영하고 연예인들의 공연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대학들마다 공연 라인업에 따라 축제의 화제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성균관대학교 웹진 실무단의 인터뷰에 따르면 “외부인보다는 좀 더 성균인에 집중된 축제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는 의견도 다수 존재한다. 이런 반응은 비단 성균관대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축제가 열리는 대학들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의견이기도 하다. 필자가 현재머무르고 있는 싱가포르에서도 대학 축제들이 열린다. 그중 ‘NUS Arts Festival’은 학생이 중심이 되는 축제로, 대학부설기관인 ‘Center For Arts’에서 공연장 및 홍보를 비롯한 행정지원을 통해 학생들이 전문적으로 공연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NUS Arts Festival 프로그램 중 하난인 ‘Moonrise’올해 NUS Arts Festival은 ‘Spaces Between’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어 6,700여 명의 관객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찾았다. 800여 명이 모여 20개의 공연, 영화 상영, 토크쇼 등을 진행한 이 축제는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활동 중인 졸업생들이 스태프로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사격한다. 졸업생과 재학생들의 협업이 돋보였던 ‘Moonrise’의 경우 NUS 산하의 용쇼토우 음악원(Yong Siew Toh Conservatory)의 피아노과 졸업생과 사운드․영상 엔지니어들이 함께 완성한 크로스오버장르 공연물로 축제의 메인테마 ‘spaces between’를 ‘장르를 아우르며 넘나든다’는 의미로 해석한 신선한 작품이었다. 사이버공간 내 왕따를 주제로 한 연극 ‘End of the line’ 역시 재학생들과 전문가들의 협업이 돋보였던 공연으로 연극동아리 재학생들이 배우, 연출, 무대를 담당하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해 공연을 완성했다. 더불어 예술경영을 전공한 재학생들이 축제 전반에서 자원봉사자로 활약하며 공연 진행의 전체적인 구성을 현장감 있게 배우며 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 그 밖에 졸업생이 꾸미는 무대로 NUS 법대 졸업생이자 유명 배우인 Jo Tan이 1인칭 연극 ‘The Future Show’는 재학생들이 전문 배우의 연극을 좀 더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도록 소극장에서 단 40명의 관객만을 수용해 진행되었다. NUS Arts Festival 프로그램 중 하난인 ‘End of the line'축제에서 또 하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컴퓨터공학과 2학년 학생이 전자 음악 ‘OmnIVerse: The Fourth Dimension’을 작곡해 연주한 것으로 관객들이 자유롭게 공연장을 드나들며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정형적인 공연의 형태를 벗어나 관객들의 관람폭을 넓히면서 학생들의 역량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 도운 것은 ‘즐긴다’는 축제의 의미와 학생들의 주체성을 모두 존중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대학에도 몸담았던 필자에게는 NUS의 Arts Festival이 꽤나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올해 재개된 대학 축제는 코로나로 답답함을 느꼈던 대학생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17,000원에 판매되는 연세대 응원단 축제표가 인기가수의 참석으로 인해 35만원에 암표로 거래되고, 관객석에 대학생 대신 아이돌 팬들이 앉아있는 현실은 대학 축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축제를 단순히 유흥의 연장선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현상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초청하는데 쓰이는 개런티가 일정부분 재학생들의 등록금에서 충당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축제 주인의 자리를 대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NUS Arts Festival은 학생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학교와 학생이 주체가 되어 열리는 축제로, 대학축제의 본질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관객 수가 적고 신나지 않을 수 있다. 교내 규정에 주류금지가 명시되어 있다보니 국내 대학축제와 비교해 분위기가 사뭇 조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재학생과 졸업생이 피땀 흘려 준비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고, 그 성취감이 온전히 학생들에게 되돌아간다는 점에서 축제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재개된 대학 축제가 성숙한 문화로 발전하기 위해 학생들과 관객 모두 ‘축제를 어떻게 만들고 즐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인생에 다시 없을 귀중한 순간을 학생들이 함께 일궈낸 소중한 추억으로 채워야하지 않겠는가.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3-07-14 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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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천재 음악가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나다_뮤지컬 모차르트 부르봉 왕가의 프랑스와 더불어 제국주의 시대 유럽의 한 축을 이뤘던 나라는 바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다. 오랜 세월 유럽의 강자로 군림했던 탓에 지금은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한 볼거리 넘실대는 유럽의 관광 대국으로 통한다. 특히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는 고도(古都) 짤쯔부르크는 가히 관광 명소라 불릴 만하다. 천혜의 자연과 고풍스런 시가지, 언덕 위 높이 자리한 옛 성곽의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사실 세계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모차르트 때문이다. 짤쯔부르크는 그가 태어나 청년시절을 보냈던 장소다. 덕분에 이 도시를 찾으면 모차르트의 생가나 유년시절 가지고 놀았다는 건반악기, 청년시절 아버지의 강요로 근무했던 짤쯔부르크 성당의 오르간 등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젊은 모차르트는 그의 짧은 생애동안 짤쯔부르크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건만 이 도시는 지금까지도 모차르트를 떠나보내지 않은 채 흠모와 연정으로 삼아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뮤지컬 모짜르트 공연장면 ©EMK무대용 뮤지컬로 만들어진 ‘모차르트’도 재미있는 문화자원이다. 으레 뮤지컬하면 무조건 반사처럼 브로드웨이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작품은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히 오스트리아산 뮤지컬이다. 친절하게 이야기를 설명하는 극 전개방식의 영미권과 달리, 이 오스트리아 뮤지컬은 모차르트를 새겨놓은 짤쯔부르크의 기념품처럼 장면과 장면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메시지를 촘촘히 박아 넣는 세련된 포장술을 보여준다. 마치 ‘대중음악으로 만든 오페라’같다. 물론 오랜 세월 클래식의 본령으로 군림하던 역사와 전통이 반영된 탓이자 그들의 음악적 자존심의 발로다.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유럽 뮤지컬들로는 프랑스 뮤지컬로 구분될 수 있는 노트르담 드 파리와 로미오와 줄리엣, 십계, 체코 뮤지컬로 구분할 수 있는 햄릿, 잭 더 리퍼, 드라큘라 그리고 오스트리아 뮤지컬인 모차르트,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 등이 있다. 오랜 세월 서구 역사의 주축을 이뤄온 탓에 음악적 전통이나 무대 예술의 완성도가 남다른 매력과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고 안정할 만한데, 뮤지컬 ‘모차르트’는 그중에서도 오스트리아의 문화산업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유럽 뮤지컬의 특징은 연극적 전통이 강한 영미권과 달리 오페라의 영향을 받은 음악극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특히, 수려한 선율의 몇 번만 들어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좋은 노래가 대거 등장해 음악듣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뮤지컬 안에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구체적으로 구현시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뮤지컬 넘버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작곡을 하거나 연주를 하는 모습을 무대에서 그것도 라이브로 재연해 감탄을 자아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화려한 선율의 뮤지컬 넘버와 이를 목 놓아 부르는 소름 돋는 가창력이 가장 적절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덕분에 이 뮤지컬은 찢어지는 듯한 고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풍부한 성량이 뒷받침되는 배우들에게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고약한 별명을 얻게 됐다. 물론 성공적으로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남자 주인공이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전형적인 뮤지컬 작품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모차르트가 소재인 뮤지컬이니 그의 관현악이나 클래식 선율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은 단지 소품처럼 몇몇 장면에서만 짧게 등장할 뿐 거의 모두 뮤지컬을 위해 새롭게 작곡된 노래들이 등장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차르트와는 크게 상관없는 뮤지컬용 노래들인 셈이다. 요즘 문화산업에서 흔히 활용되는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마케팅 전략이 대부분 그러하듯 ‘원 소스’의 대중성이나 유명도가 아닌 ‘멀티 유즈’의 파격과 창조적 변신이 즐길 거리이자 묘미다. 모짜르트 공연장면 ©EMK국내 초연당시 뮤지컬 모차르트는 기록적인 흥행으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좀체 팔리지 않는다는 세종문화회관 3층 객석마저도 깨끗이 매진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바로 ‘시아준수’로 유명한 동방신기 출신의 아이돌 스타 김준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겪게 된 사건(?)이었다. 요즘 뮤지컬에는 아이돌 스타 한 두 명이 약방의 감초처럼 캐스팅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흔한데 따지고 보면 모차르트의 흥행신화가 안정적으로 고착화시킨 한국 뮤지컬의 트렌드라 부를만하다. 물론 스타가 등장한다고 무조건 흥행이 보장되거나 작품성이 뛰어나지는 것은 아니지만 궁합이 맞는 스타와 뮤지컬이 성공적으로 결합하게 되면 그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입증시켜준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2023년에 막을 올리고 있는 앙코르 공연에서도 여전히 화려한 캐스팅의 영향력은 유효하다. 팬텀싱어 출신의 이해준, EXO의 리더였던 수호, 엔플라잉의 유회승, 미스터 트롯 출신인 김희재가 모차르트로 나온다. 관록의 민영기와 함께 콜로라도 대주교로 등장하는 베이스바리톤 길병민도 있다. 젊어진 출연진의 모습이 신선한데, 어느 출연진의 조합이냐에 따라 조금씩 감동의 깊이도 달라지는 특성을 보여준다. 배우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지만 사실 이 뮤지컬의 진짜 감상 포인트는 따로 있다. 바로 무대라는 가상공간이 구현해내는 극적 상상력이다. 찢어진 청바지에 길게 땋은 레게 머리를 한 모차르트가 그렇다. 물론 요즘 사람들 눈높이에 맞게 새롭게 정의된 천재 음악가의 이미지다. 무대 위엔 별난 존재도 있다. 모차르트의 주변을 맴도는 꼬마 아마데다. 모차르트의 분신이자 창조의 원천인 이 꼬마는 실존인물이 아닌 상상속 캐릭터다. 사실 모차르트는 신동이라 불렸다. 천으로 눈을 가린 채 묘기 부리듯 오르간을 연주하거나 교향곡을 작곡하는 등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음악적 감수성을 보여주며 주변 귀족들이나 재정후원자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냈다. 물론 평범한 음악가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 레오폴드에게 모차르트는 좋은 사업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귀족들 앞에 묘기부리는 듯 음악을 만들고 연주해야했던 그의 유년시절은 그 자체로 정신적인 압박과 의무감이 투영된 아픔이었다. 모차르트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꼬마 아마데의 정체성은 바로 이런 모차르트의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한 무대적 해석이다. 모차르트의 팔목에서 피를 찍어내 오선지에 작곡을 하던 꼬마 아마데가 결국 마지막 장면 천재의 죽음에서 그의 심장에 날카로운 펜촉을 꽂게 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한 무대속 이미지다. 결국 젊은 천재 모차르트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만 했던 천재의 비애와 피를 짜내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작가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뮤지컬이라 만날 수 있는 이 작품 최고의 장면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3-07-14 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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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매혹 그 이상의 경지, 뮤지컬 ‘시카고’ 오리지널 투어 내한때때로 사람들은 진실보다 단순히 보이는 것에 더 열광하곤 한다. 품위가 상실된 시대에서 인간답게 갖춰야 할 사회 통념이나 기본적 예의는 더 이상 과거의 도덕적 잣대로 지켜지지 못한다. 뮤지컬 ‘시카고’가 바로 그런 어두운 현대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유흥과 환락의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진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블랙 코미디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을 훤히 비춘다. 살인과 탐욕, 부패, 폭력, 사기, 간통, 배신에 이르기까지 온갖 자극적인 소재가 다 담긴 작품이지만 신기하게도 보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이 놀라운 ‘쇼’에 환호하고 열렬한 박수를 보낼 뿐이다. 작품이 의도한 대로다. 뮤지컬 시카고 공연공연 ©신시컴퍼니뮤지컬 ‘시카고(CHICAGO)’가 브로드웨이 개막 25주년 기념 오리지널 투어 팀의 공연으로 한국을 찾았다. 6년 만에 성사된 이번 공연은 지난 5월 2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개막해 오는 8월 6일까지 약 두 달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작품답게 대중적 관심도 상당한데, 이를 증명하듯 공연장 주변은 뮤지컬 ‘시카고’ 오리지널 공연을 보기 위해 발길을 옮긴 관객들 덕분에 일찍부터 북적였다.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로, 1920년대 보드빌 무대를 실감 나게 옮겨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카고 트리뷴 지 기자이자 희곡작가였던 모린 달라스 왓킨스는 1926년 쿡 카운티에서 열린 한 공판에 영감을 받아 연극(원제 ‘A Brave Little Woman’)을 탄생시켰다. 이후 무성영화로 먼저 제작된 뒤 새로운 양식과 모습을 갖춰 뮤지컬이 됐고, 1996년 우리가 보고 있는 지금의 ‘시카고’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이지만 연극적인 특성이 강한 데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아 여타 뮤지컬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지녀 더 특별하다.브로드웨이의 전설과 같은 오리지널 연출가이자 안무가 밥 파시가 만들고 앤 레인킹이 가다듬은 관능적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안무, 무대 중앙을 차지한 14인조 빅밴드의 라이브 연주로 듣는 재즈 음악은 뮤지컬 ‘시카고’의 사그라들 줄 모르는 인기를 유지하는 힘이다. 덕분에 뮤지컬 ‘시카고’는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오래도록 공연되고 있는 미국 뮤지컬이라 기록되고 있다. 또 토니상, 드라마 데스크, 올리비에 어워즈 등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시상식에서 무려 55개 부문 이상 수상 기록을 올리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뮤지컬 시카고 공연 포스터 보드빌 무대 댄서를 꿈꾸던 주부 록시 하트는 남편 몰래 만나던 정부(情夫)를 총으로 쏴 죽이고 붙잡힌다. 여성 죄수들만 모인 쿡 카운티 교도소는 철저히 마마 모튼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곳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가 확실한 이곳엔 뮤지컬 ‘시카고’의 문을 화려하게 여는 벨마 켈리도 수감 돼 있는데, 그는 남편과 여동생의 부적절한 관계를 목격하고 두 사람을 살인한 죄로 갇힌 뒤 흥미로운 재판 과정 덕분에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벨마가 이렇게 언론과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배경에는 ‘속물 변호사’ 빌리 플린의 조력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내게 오직 소중한 것은 사랑뿐’이라며 달콤하게 노래하지만, 실제 그가 관심을 두는 건 오로지 돈이다. 록시 역시 빌리의 변호를 받아 무죄 선고를 받고자 바보처럼 순진한 남편을 움직여 수임료를 마련하고, 빌리는 록시의 살인사건을 각색해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또 록시가 확실히 주목받을 수 있도록 인정 많은 기자 메리 선샤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도 성공한다. 이 때문에 벨마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리고 록시가 의도한 대로 모든 상황이 흘러가는 듯하나, 새로운 죄수의 등장으로 인해 록시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과연 이런 변화 속에서도 그들이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 또 어떤 방법으로 교도소를 빠져나오게 될지를 지켜보는 것이 2막의 감상 포인트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지닌 죄수들은 “내가 한 것은 살인일 뿐 유죄는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여기에 남성 중심 사회를 살아갔던 당대 여성들의 애환, 진실 탐구는 뒷전으로 한 채 흥미 위주의 이슈만 쫓다 중심을 잃고 표류하고 만 저널리즘, 과거 미국 형법 제도의 모순점, 천박한 물질만능주의 등이 한데 어울려 오직 ‘시카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신랄한 풍자와 비판의식을 제시한다.공연에는 자막 서비스가 함께 제공되는데, 자막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인물에 따라 글씨체를 달리하는가 하면, 필요에 따라 글씨에 그러데이션 효과를 주면서 표현 의도를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특히 ‘Cell Block Tango’와 ‘Mister Cellophane’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밖에도 뮤지컬 ‘시카고’는 매력적인 요소가 정말 많은 뮤지컬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단순함 속에 넘치는 생명력, 감각적이면서도 놀라운 쇼 비즈니스에 흠뻑 빠져들어 보길 바란다. <필자소개>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3-07-07 1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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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나이듦에 대하여얼마 전 빈에 위치한 세계적인 연주홀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의 SNS에 사진 몇 장이 올라왔습니다. 올해 81세가 된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M. Pollini, 1942- )가 6월 15일에 가졌던 리사이틀 사진이었지요. 폴리니는 작년과 올해 건강상의 이유로 많은 연주회들을 취소해야 했습니다. 그 연주회들 가운데에는 작년과 올해 연이어 취소했던 서울에서의 리사이틀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아쉽게 했지요. 빈에서의 리사이틀 역시 작년에 취소된 이후 다시 열린 것이었습니다. 쇤베르크(A. Schönberg, 1874-1951)와 슈만(R. Schumann, 1810-1856), 그리고 쇼팽(F. Chopin, 1810-1849)의 작품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이 끝난 후, 앙코르로는 쇼팽의 발라드 1번이 연주되었습니다. 고령의 나이에, 그것도 오래도록 아파서 연주 활동에 지장이 있었던 폴리니가 앙코르로 거의 10분 가까이 걸리는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연주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올해 6월 빈에서 열린 폴리니의 리사이틀 (출처: Musikverein Wien Facebook/©Julia Wesely)열광적인 기립박수로 마무리되었다는 폴리니의 빈 리사이틀 사진에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나이든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조금은 창백하고 수척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고, 등도 많이 굽어 있는 듯 했습니다. 2013년 그가 연주하는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황제>를 직접 보았을 때, 그의 등이 생각보다 많이 굽어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흘렀으니 그의 등이 그 때보다 더 굽어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겠지만, 더 굽어진 등을 보는 안타까움도 더 커졌지요.고령의 폴리니 사진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이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무엇이 현재의 폴리니처럼 고령의 음악가들을 계속해서 무대로 이끄는 것일까요? 80세가 넘은 나이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역보다는 은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립니다. 더구나 폴리니처럼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던 인물에게는 더욱 그렇지요. 물론, 80이 넘은 나이에도 세계적인 무대에 계속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음악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빛나는 업적을 쌓아왔음을 방증하지만, 그렇게 빛나는 업적을 오래 쌓아 왔다면, 보통의 생각으로는 경제적인 면에서도 큰 걱정이 없을 테니, 적당한 나이에 은퇴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 결코 이상한 그림은 아닐 것입니다.무대에 선다는 것은 어느 나이대에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고령의 음악가들에게는 신체적인 기능의 저하라는 어려움이 추가됩니다. 이는 지휘자보다는 기악 연주자에게, 그리고 연주자보다는 성악가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오기 마련이지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신체적 기능의 저하는 한 음악가가 전성기에 선보일 수 있었던 빛나는 기교를 어느 정도 퇴보시키며, 연주 중 실수가 나올 가능성을 높입니다. 또한, 악보를 외우는 것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요. 10년 전 당시 71세의 폴리니가 연주했던 <황제 협주곡>을 떠올려보면, 맑고 빛나는 음색과 유창한 흐름이 감탄을 불러일으켰지만, ‘폴리니’라는 이름에 썩 어울리지 않는 적지 않은 미스터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청중들은 그의 연주에 큰 박수를 보냈지만, 만일 젊은 연주자가 <황제 협주곡> 연주에 이 정도의 미스터치를 냈다면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지요.고령의 나이가 되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신체적 기능의 저하와 이것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도 음악가 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고령의 음악가들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 Casals, 1876-1973)는 96세로 사망했던 1973년까지 지휘자로서 무대에 올랐습니다. 케네디(J. F. Kennedy, 1917-1963) 대통령 앞에서 연주해 화제를 모았던 1961년 백악관 리사이틀 당시 그의 나이는 84세였죠. 바이올리니스트 나탄 밀스타인(N. Milstein, 1904-1992)은 1986년 82세의 나이에 결국은 마지막이 된 리사이틀에서 연주했습니다. ‘결국은 마지막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그 리사이틀 당시 느꼈던 왼손 엄지 손가락 통증으로 인해 은퇴의 수순을 밟아야 했기 때문이지요. 만약 불의의 부상이 없었더라면 그의 커리어는 조금 더 연장되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M. Pressler, 1923-2023)는 9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했는데, 2013년 90세의 나이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처음 공연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왜 고령의 음악가들은 무대에 오를까요? 지극히 단순한 혹은 너무 이상적이기만 한 대답일 수 있으나, 그들이 지난 수십 년간 연주하고 지휘해 왔음에도, 청중에게 전달하고 싶은 무언가가 여전히 그들의 마음에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무언가는 세월이 흘러간다고 저절로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애쓰고 끈질기게 탐구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겠지요. 이 관점에서 볼 때, 누군가 고령의 카잘스에게 그가 계속해서 연습하는 이유를 묻자 그가 한 대답 “왜냐하면 내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는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오랜 세월 음악을 위해 애쓴 음악가들의 무대를 만나는 것은 진정 설레고 벅찬 일입니다. 젊은 시절의 빛나는 화려함은 다소 옅어졌을지라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무르익어간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아니 어쩌면 그들의 젊은 시절의 음악보다 더 우리를 매료시킵니다. 고령의 나이에 무대에서 음악에 몰입하는 모습은 우리를 숨죽이게 하지요. 고령의 음악가들이 선보이는 가슴 벅찬 무대를 더 풍성하게 접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추천영상: 2019년 77세의 폴리니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 2악장입니다. 40여년 전에 그가 같은 작품을 녹음한 음반이 오래도록 명반이라고 불리우는 가운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새롭게 녹음했지요. 주제와 변주로 이루어진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을 풍부하고 생생하게 이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중간중간 보여지는 음악에 몰입한 그의 표정이 감동적이기도 하지요.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무산된 그의 내한공연이 다시 성사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EJ6WFV2J5LY<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3-07-07 1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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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KAL(코리안아트런던) 2023, 한류의 新 다이내미즘 7.6-22, 영국 런던 Mall Galleries KAL 2023 행사포스터 제2회 ‘KAL(코리안아트런던, 예술감독 황록희) 2023’이 7월6일부터 22일까지 영국 런던 Mall Galleries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회화·혼합 매체·사진·판화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의 풍부한 미술사를 바탕으로 신선한 시각 언어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기대할 만하다. 국내와는 다른 시각에서 ‘화려한 가운데 절제된, 다이나믹한 동시대 한국미술의 다양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K-Art를 통한 교류와 협력의 장 전시는 헤드 큐레이터 Genie Ahn, 현지 큐레이터 Vittoria Beltrame, Seulki Yoo가 진행한다. 주 전시장인 몰 갤러리는 런던 SW1 영국 예술가 연맹(Federation of British Artists)이 관리하며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과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 사이 런던의 번성하는 예술 및 유산 지구의 문화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다. 4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곳은 구상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저명한 왕립미술협회의 전시를 주최하고 아트페어, 경매, 개인전, 그룹전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협력갤러리인 헤이스팅스 컨템포러리(www.hastingscontemporary.org)는 많은 현대 영국예술가, 국제적으로 저명한 전시 프로그램을 가진 장소로 유명하며 수년에 걸쳐 현대영국미술의 중심에 있어왔다. 알레프 컨템포러리(www.alephcontemporary.com) 역시 2019년에 설립된 런던에 기반을 둔 순회 현대미술 갤러리로, 신진 및 중견 예술가들이 거쳐 갔다. 협력기관인 4482[SASAPARI](www.4482.co.uk)는 한국과 영국의 다양한 문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두 국가의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선보인다. 상징적인 숫자인 '4482'(영국, 44, 한국, 82)는 한국과 영국의 국가번호로 이 단체는 양국 간의 예술적 소통을 촉진, 통합 및 기념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번 KAL의 아티스트에는 Painting에 최나리, 남진현, 이케이, 우미란, 남상운, 홍지영, 애니쿤, 이원석, 김동진, 이하진, 홍지연, 김정민, SUU, 임선옥, 허채림, 조덕환, 이규원, 홍형표, 박경묵, Ellyang(엘리양), J 류, 양순영, 이준원 등이 참가한다. Mixed media에는 유충목, 윤제원, 이진석, MeME, 신소라, 김성희가, Sculpture에는 김민찬, Print에는 조미정, 정주은, Product Design에는 곽종범이 참가한다. 최나리작가 Hojakdo by the fireplace acrylic on Canvas 120x195 2022 제1회 KAL에서 큰 반향을 불어온 남상운 작가는 심오한 신비를 드러낸 강렬한 울트라 마린을 통해 몽환적인 색조와 연꽃잎의 유토피아적 상징성을 결합한 풍자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동양적 정서 속에 내재한 다이나믹한 정서가 세속적 욕망을 좇는 우리 삶의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해준다는 것이 대체적인 현지인들의 평가다. 만화 캐릭터를 예술적인 방식으로 끌어낸 전통형식의 그래픽 팝을 선보이는 최나리는 인간의 식욕과 욕망을 다양한 일상 환경에서 볼륨감 있는 신체미학과 두꺼운 검은 윤곽선을 사용해 표출한다. 풍자적인 한국민화 장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까치호랑이 그림은 전통성과 현대성을 가미한 권력 서열식 풍자화로 형상화되었다. 애니쿤(한성진)은 동아시아 어린이들의 추억을 상징하는 장난감과 만화로봇들을 어른들의 상상력 속에서 대중문화와 팝의 현재성으로 재해석한다. 동심을 자극하는 세련된 상징 속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저절로 ‘동시대 한국미술의 오늘’을 진단케 한다. 김성희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디지털프린트·파스텔·크레용, 펜·아크릴·수채화 물감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다. 다양한 기술 및 재료와의 융합은 한국, 일본, 영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예술이 곧 자신의 일상표현이라는 작가에게 KAL에서의 전시는 자신의 현재를 드러내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KAL, 동시대 한국작가들의 글로벌 인큐베이터 코리안 아트 런던(KAL)은 갤러리스트 황록희가 이끄는 새로운 아티스트 페어로, 한국예술문화단체연합회(FACOK)의 지원을 받아 동시대 한국아티스트 30여명을 런던 웨스트엔드 중심부의 몰갤러리(총 450제곱미터의 세 공간)에서 선보이는 행사이다. 2022년 FAD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황 감독은 “현대 기술은 한국의 문화적 전통을 크게 변화시켰지만, 정체성과 문화의 실천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작가들은 한국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경험을 포스트모던 한 세계관으로 가져오면서도 작업을 통해 한국 거장들의 기법을 재생산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Modern technologies have vastly shifted cultural traditions in South Korea, yet a longing for identity and practice of culture remains. The artists bring their experiences of South Korean culture and tradition into a postmodern world, yet they enjoy reproducing and reconstituting Korean Masters’ techniques through their work.)”고 설명했다. 애니쿤, Adult Block Rest 2023 162x130cm Acrylic on Canvas 황 감독은 강원도 뮤즈 갤러리의 CEO로 한국의 세계적 수준의 시각 및 공연 예술을 홍보하기 위해 KAL을 설립했으며 다양한 해외 순회 전시에 중점을 두고 있다. Mews Gallery는 FACOK과 협력하여 영국과 호주에서 새로운 형태의 대안적 전시를 성공적으로 조직하면서 성장 중인 아트 인큐베이팅 기관이다. K-WAVE를 중심으로 한 역동적인 한국문화, 특히 K-pop과 K-drama는 세계 창조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한국미학의 영향은 단순한 소재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정신주의를 근간으로 한 세련된 미감 속에서 2022년 첫 프리즈 아트페어를 성공적으로 이끈 바 있다. 한류 정체성을 프리즈의 고장인 런던에서 다시금 되새기려는 황 감독의 노력은 런던의 한인 디아스포라를 뛰어넘어 K-컬처의 팬들과 V&A의 엄청난 영향 속에서 영국을 강타할 차세대 미술작가를 데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창의적인 교류를 장려하고 예술가들에게 런던 예술계에 자신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최상의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해 KAL은 전시회 기간 다양한 작가와 평론가를 현지로 초대해 다양한 행사를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황감독은 “KAL은 단순한 아트페어가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의 글로벌리즘을 보편화와 개성화의 종합 속에서 보여줌으로써, 영국을 필두로 한 세계미술의 장에 동시대 작가들의 데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은 작은 움직임일지 모르지만, 지속적인 홍보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세계를 향한 ‘한국미술의 대표적 플랫폼’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OREAN ART LONDON 2023 INTRODUCES 30+ KOREAN CONTEMPORARY ARTISTS TO THE UKCurated by Genie AhnVittoria Beltrame and Seulki Yoo Mall Galleries to host a new 17-day fair of contemporary art from South Korea: 6 – 22 July, 2023Instagram: @koreanartlondon Website: www.koreanartlondon.com Korean Art London (KAL) is a new Artists Fair led by gallerist Rok Hee Hwang working with three curators who include renowned Korean academic, author and broadcaster Genie Ahn. Supported by the Federation of Artistic & Cultural Organisation of Korea (FACOK), Hwang is bringing 30+ contemporary South Korean artists to Mall Galleries in the heart of London’s West End. The fair will take over all three of the gallery’s spaces (totalling 450sqm). Korean Art London 2023 will be the first in a series of annual KAL fairs. In a 2022 interview with FAD Magazine, Hwang said:‘Modern technologies have vastly shifted cultural traditions in South Korea, yet a longing for identity and practice of culture remains. The artists bring their experiences of South Korean culture and tradition into a postmodern world, yet they enjoy reproducing and reconstituting Korean Masters’ techniques through their work.’ Hwang is the CEO of Mews Gallery, Gangwon-do, which she founded to promote the world-class visual and performing arts of Korea, with a focus on international touring exhibitions. Mews Gallery, in partnership with FACOK, has a successful history of organising contemporary art shows in the UK and Australia. 기타 전시에 관해서는 하단주소 참조. @koreanartlondon | info@koreanartlondon.comhttps://www.artsmediacontacts.co.uk/amc/pr.php?id=10140https://www.koreanartlondon.com/ <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3-06-30 1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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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드레스덴에서의 3일, 그 절박함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사중주 8번에 대하여 지휘자 카라얀과 쇼스타코비치2차세계대전 당시 드레스덴 공습을 결정한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이후 대규모 폭격으로 인한 폐허 속에 널부러진 시체들의 처참한 광경을 담은 영상물을 보고 몸서리 쳤다고한다. 1960년 드레스덴을 방문한 쇼스타코비치가 전쟁사의 가장 잔인한 폭격으로 기억될 이 공습의 폐해를 실제로 목도하고 쓴 작품이 현악 사중주 8번이다. 15개의 교향곡과 15개의 현악 사중주를 작곡한 쇼스타코비치.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 두개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과 현악 사중주를 통틀어 현악사중주 8번은 압축적인 음악적 밀도와 극적인 호소력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중주로 손꼽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억압과 죽음의 심리적 압박을 겪는 와중에 써내려간 그의 자전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소련 당국의 요청으로 드레스덴을 찾은 쇼스타코비치의 방문목적은 영화 <Five Days, Five Nights>의 음악을 작곡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의 영감을 자극한 건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드레스덴 그 자체였다. 불과 3일만에 현악 사중주 8번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전쟁의 참상을 음악 속에 담아내려는 그의 창작의지와 더불어 정치적 억압이 곧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이 작품을 묘비명으로 지인에게 제안했을만큼 절박한 상황이었음을 말해준다. 이 작품이 갖는 자전적 무게감은 쇼스타코비치의 지인이었던 평론가 이삭 글리크만과 주고 받은 서신의 내용에 중에 여실히 드러난다. "언젠가 내가 죽고 난 후 그 누구도 나를 추모하는 곡을 쓸 것 같지 않아 내가 나를 위해 쓰겠다". 5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모든 악장이 연결되어 있는데, 네 음으로 이루어진 D-S-C-H 모티브가 모든 악장을 관통한다. 독일식 이름 Dmitri Schostakovich에서 D,S,C,H 이니셜을 추출, '레-미 플렛-도-시' 음들로 구성된 모티브를 만든 것이다. 이는 이름을 음형에 새겨 자신을 드러낸 것이며 작곡에 임할때 늘 스탈린 정권의 입맛을 고려해야 했던 그의 은근한 반항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가 과거에 작곡했던 굵직한 명곡들의 주제를 음악 속에 차용하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교향곡 1,5번, 첼로협주곡 1번,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등 공산정권과 줄다리기했던 긴 인고의 세월 속의 수많은 음악적 흔적들을 악보 곳곳에 심어놓은 것이다. 4악장에서 모든 현악기들이 일제히 거칠게 포효하는 듯한 '세 음'의 반복은 듣는 이로 하여금 공포심을 유발시키기도 하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아들에게 불시에 들이닥칠지 모르는 'KGB의 노크'를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구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였기 때문에 늘 감시대상이었 던 그가 느꼈을 공포, 불안감이 음악 속에 드러난 것이다. 2악장의 그 유명한 '유태인 테마'는 그의 피아노 트리오 2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나치가 주도했던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되곤 한다. 스탈린 정권 치하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오랫동안 현실과 예술의 양극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쇼스타코비치. 악보에 명시된 "파시즘과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며"라는 규범적인 헌정사 이면에는 자신의 묘비명을 떠올렸을만큼 절박했던 자신의 심경을 음악 속에 풀어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5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중단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2악장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마치 활이 부러질 것 같은 기세로 격정적으로 질주하는 유태인 테마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소환한 듯 한번 들으면 뇌리속에 각인되어 뜨거운 울림으로 심연을 파고든다.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EeQiacb9NA4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3-06-30 10: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