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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흔히 퀴리 부인이라 불렀다. ‘라듐’을 발견한 여성 과학자 이야기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자세한 사연이나 뒷이야기는 왠지 낯설다. 국내 창작진이 그녀를 소재로 창작 뮤지컬로 만들었다. 바로 뮤지컬 ‘마리 퀴리’다.뮤지컬의 제목이 퀴리 부인이었다면 오히려 홍보에는 더 큰 도움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무대의 제목은 ‘마리 퀴리’다. 누군가의 배우자가 아닌, 그러니까 결혼하면 자신의 이름이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당당히 한 시대를 살다간 여성 과학자 마리 스크워도프스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로 알려진 그녀의 조국은 사실 폴란드다. 1867년생이었던 그녀가 살던 시대의 폴란드에선 여성에게 제대로 된 교육이나 사회참여의 기회가 제한됐다. 뛰어난 재능과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은 물론 언니의 학비까지 마련해야 했고,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으로 유학을 와서 여성 최초로 이 대학의 물리학 박사가 됐다. 당시 소르본느에는 6000여명의 남학생이 있었지만, 여학생은 단 200여명에 불과했으니 그녀가 겪었을 차별과 고난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녀를 이해하고 함께 연구를 진행한 것은 동료이자 남편이었던 피에르 퀴리다. 평생을 함께했지만, 정작 첫 노벨상이었던 물리학상 수상 당시 연단에서 감사 연설을 할 수 있던 것은 남성이었던 남편뿐이다. 1906년 불의의 사고로 피에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마리 퀴리는 라듐과 방사선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고, 결국 1908년 노벨 화학상마저 수상한다. 자신의 생애에 노벨상을 두 번이나 그것도 다른 분야에서 수상을 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사실 무대에서 ‘역사’는 좋은 이야깃거리다. 뮤지컬로 재연된 사료들은 공연이라는 변주를 통해 새 생명을 얻어 되살려진다. 이미 알고 있던 과거의 사건들이 문화적인 양식을 빌어 재구성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역사 소재 뮤지컬이 각광받는 이유다. 영웅담이 인기를 누리는 것도 그런 배경 탓이다.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해서 무대 위로 구현해내는 과정은 늘 흥미진진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어떠했을 것이라 짐작했던 선입견 속 인물들이 시대적 환경이나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것은 극적인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역사의 영웅이 현대적 해석을 빌어 요즘 시대상에 맞는 인물로 다시 환생되는 경우도 뮤지컬에서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전 일주일간의 행적을 그린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아르헨티나 비운의 국모 이야기를 담은 ‘에비타’, 구한말 일본 낭인의 손에 목숨을 잃은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그린 ‘명성황후’나 ‘잃어버린 얼굴 1895’,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그려낸 ‘영웅’ 등이 그래서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뮤지컬들이다.역사적 사실을 넘어 작가적 상상력까지 더해 흥미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발상의 전환이 빚어내는 발칙한 상상들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암살범들이 등장해 각자의 사연을 들려주는 ‘어쌔신스’, 일본 개화기의 풍경을 시공을 초월한 노래와 이야기로 재구성한 ‘태평양 서곡’, 욕지거리를 하는 세종대왕이 등장해 한글창제의 비화를 들려주는 ‘세종 1446’이 그런 경우들이다.과거를 극화하고 ‘비틀기’의 미학이 더해진 무대가 선보일 때면 언제나 역사 속 진실을 둘러싼 공방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생산물들을 이해하고 즐기는 방식은 역사적 사실의 고증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 비록 이야기 소재는 역사에서 비롯됐지만, 사실 대부분 무대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현재 그러니까 오늘날의 저간의 사정들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공식만 잘 파악한다면 사극은 뮤지컬 창작의 좋은 보고이자 모티브가 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문화산업속 진리다.뮤지컬 ‘마리 퀴리’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만하다. 극적인 긴장감과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키는, 그래서 실제 역사속 사실(fact)과 가상의 이야기(fiction)을 버무리는 팩션(faction)의 재미가 더해졌다. 이 작품속 재미난 상상은 바로 마리 퀴리와 우연히 만나 평생 우정을 나누는 또 다른 폴란드 이민자 여성 안느 코발스키다. 프랑스로 이민 오는 기차 속에서 가방 속 깊숙이 넣어두었던 조국의 흙을 서로 나누는 장면이나 한참 세월이 지나 라듐의 부작용을 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등에서 묘사되는 두 여성의 우정은 꽤 묵직한 감동을 객석으로 전한다. 무대라서 가능했던 재미난 유추와 해석 그리고 발칙한 상상의 결과물들이다.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과학적 지식을 활용한 제작진의 아이디어도 신선하다. 극중 칠판에 적는 주인공 마리 퀴리의 과학 공식이 그렇다. 초연 당시 실제로 공학도이자 카이스트 출신인 김태형 연출이 진짜 공식을 외워서 흑판에 적게끔 배우들에게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여자 주인공 마리 퀴리 역의 배우 리사가 “고등학생 시절 과학시간보다 대사를 외며 더 진지하게 공식을 암기했다”는 너스레를 들려주기도 했다. 과학은 실험과 결과 그리고 과학적 사고에 기인한 인과관계의 증명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무대를 통해 과학자의 인간적인 면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과학을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큰 명제를 곱씹게 만든다. 여성서사로 재구성된 마리 퀴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기는 이유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대본과 음악이 폴란드로 수출된 좋은 기록도 있다. 제작사 인 라이브는 “2026년 폴란드 서부 비엘코폴라스카주에 있는 포즈난 극장에서 현지 배우들이 폴란드어로 막을 올리는 역사적인 초연을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몰 라이선스 방식으로 수출되는데, 창작 뮤지컬로서는 슬로바키아에서 공연됐던 뮤지컬 ‘투란도트’에 이은 두 번째 유럽 진출이다.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아뮤즈도 올해 도쿄 텐노즈 은하극장과 오사카 우메다 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 가극단 다카라즈카 출신의 스타 배우 마나키 레이카가 주인공 마리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뮤지컬 ‘마리 퀴리’의 글로벌 흥행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래저래 반가운 소식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3-12-22 0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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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장뒤뷔페, grand-maitre-of-the-outsider, 1947세련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를 지닌 ‘원생미술(原生美術)’을 우리는 아르브뤼(Art Brut)라고 부른다. 최근엔 이건용 작가가 국민일보와 여는 ‘발달장애 작가발굴’도 ‘아르브뤼 예술상’이고 다양한 발달장애 작가들의 활동이 ‘아르브뤼 작가군’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북미나 유럽에는 지체장애 혹은 발달장애 작가들을 위한 ‘미술장터’ 혹은 미술전시가 활발한 데 비해, 국내에는 아직도 ‘장애/비장애’라는 인식 속에서 정상 범주의 예술이 아닌 ‘비주류의 방식’으로 통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서구 역사 속의 아르브뤼와 한국 내 발달장애 작가들의 전시 활동, <우리들의 블루스>의 ‘정혜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전후예술의 반성이 낳은 순수로의 길, 장 뒤뷔페 세바시에 출연한 <우리들의 블루스> 영희역, 정은혜 작가 원래 아르브뤼는 프랑스의 화가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가 1945년에 만든 용어로, 아마추어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일종의 순수한 미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뒤뷔페는 어린이나 정신병자 또는 소박한 미술가 등 교양이나 전통적 미술에 거의 영향받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고도로 훈련되고 의도적인 직업 화가들의 작품보다 훨씬 솔직하고 창조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특성을 하나의 기법으로서 도입하였다. ‘날 것 그대로의’, ‘다듬지 않은’, ‘야만적인’이라는 뜻의 ‘brut’는 서구적인 ‘지(知-이성)’가 배제되거나 그것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 본능과 무의식에 의해 창조된 산물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르브뤼는 2차대전 이후 ‘아카데믹한 서구사회에 대한 반성’의 차원으로 발전했고, 반교양주의적·반문화적·반예술적인 입장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후 서구의 지적 풍토를 재생시키기 위한 기폭제로서 인정되었다. 국내 발달장애 작가들의 행보와 현실인식 이건용과 함께하는 '아르브뤼미술상' 전시포스터 성수동 ‘공간 와디즈’는 2023년 11월 28일부터 12월 3일까지 발달장애 작가 15인의 남다른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예술가에게 발달장애는 ‘남다름 혹은 색다름’으로 평가된다. 발달장애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순수로의 회귀를 꿈꾼 아르브뤼와 달리 예술성과 세계관을 있는 그대로 선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열린 행성 프로젝트 2023-미디어 콜라보레이션’ 전시는 공통적으로 순수하면서도 원색적인 색채들이 작가들마다 다른 자기 개성화의 길을 보여주었다. 전시 주제는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의 세계’. 작가들의 내면세계가 담긴 작품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에너지가 신선한 영감과 감동을 준다. 이 전시는 권태웅, 권강희, 김기혁, 김용원, 김지우, 브라이언박, 피터안, 윤다냐, 이동민, 이민서, 이은규, 이해, 장형주, 정성준, 한성범 등 한국과 미국의 발달장애 아티스트 15명이 참여했다. 평면작품과 작품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페인팅, ASMR·AI 보이스 레코딩·모션그래픽·3D 애니메이션 등 미디어 컬래버레이션 작품들이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발달장애 예술가를 소개하는 ‘열린 행성 프로젝트’는 2012년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 7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개최됐고, 서울 전시 후 내년 1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진다. 사실 이들을 향한 다양한 행보들은 이 기관뿐 아니라, 장애라는 편견을 뛰어넘으려는 ‘발달장애작가들의 어머님’들이 만든 ‘아르브뤼 조합’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며 소속 작가시스템을 정착시키려는 운동이 한창인데, 이는 단독행동보다 집단지성의 에너지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연동되는 힘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 작가와 함께하는 ‘아르브뤼미술상’ 공모(올해 2회째)도 성황리에 마감됐다. 신경다양성(발달장애 등) 신진 예술인의 참여 기회를 넓히기 위해 제2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은 한국의 1세대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 작가와 공동 주최해 복지의 대상으로 인식됐던 장애 예술을 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상 이름은 프랑스 화가 장 드뷔페가 아마추어·어린이·자폐·정신질환 등의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미술 세계를 ‘아르브뤼’라고 명명한 데서 땄다. 소통을 통한 큰 치유, 포용의 초상들 '정은혜' 정은혜 작가의 자화상정은혜 작가는 선천적으로 다운증후군과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성인이 된 이후 장애인 교육 시설 지원이 없어지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단절을 맞이했고, 퇴행이 오고 중복된 정신질환과 조현병, 틱 등이 생기면서 급기야 환시와 환청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그때 만난 그림과의 만남 다른 이들보다 늦은 23살 때의 일이다. 정은혜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지민(영옥 역)의 쌍둥이 언니 영희 역을 맡아 소화하며 강렬한 존재감으로 화제가 되었던 극중 캐릭터이다. 전시장에서 본 정은혜 작가의 성향을 많이 반영한 캐릭터였다. 실제 작가는 캐리커처를 그려온 현역 화가이자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출신이다. 경기 양평의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2016년부터 초상화를 그리며 지금껏 노희경 작가를 포함해 4,500여 명의 얼굴을 그려 전시한 <니얼굴>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작가에게 유일한 소통은 바로 그림이었다. 눈이 오고 비가 와도 사람들과 만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가와 부모님은 함께 문호리 마켓을 지켰다. 그림 속 인물들을 그려나가며 자기만의 세계가 확장되면서 조현병 증세가 사라졌고, 최근에는 파소갤러리와 워킹하우스뉴욕이 기획한 《해의 시선》(서울문화재단 후원전시)을 개최했다. ‘은혜씨가 사랑하는 작업들’이란 이름으로 모아 놓은 작품들은 군산 이성당 프로젝트와 골목풍경부터 엄마와 할머니, 친한 이모들 등 작가를 아껴주는 가족과 지인의 얼굴, 가장 친한 친구인 반려견 지로, 자화상 등까지 다양하다. 뉴욕전시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강아지 ‘지로’정은혜의 어머니(장차현실 작가)도 홍익대 동양화과를 나온 작가다. “은혜가 그림을 시작한 게 23살 때였으니 이제 10년이 되었다. 나 역시 20년 넘게 만화를 그리고 있는 창작자이지만 딸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잡지의 광고 사진을 따라 그린 스케치 한 점에서 시작된 명쾌한 선들과의 조우, 그렇게 시작된 초상화들은 ‘우리들의 블루스’의 흥행 이후 비주류, 이른바 소외된 계층의 ‘다름’을 특별한 작품들로 인식토록 만들었다. 사실 정은혜는 변한 것이 없다. 달라진 것은 작품을 보는 사회적인 시선이다. 이러한 작가들의 다각적 행보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모범적인 사례로서, 이들이 국내 미술계에도 ‘장애작가’가 아닌 ‘창조적 아티스트’로서 읽힐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3-12-15 1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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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2025년에 서거 5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D. Shostakovich, 1906-1975)를 기념하는 페스티벌이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얼마 전 전해졌습니다. 2025년 5월 15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리는 이 페스티벌에서는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모든 교향곡과 협주곡, 현악 사중주 그리고 2개의 오페라 등이 연주될 예정입니다.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D. Trifonov, 1991- )와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G. Capuçon, 1981- )등 화려한 협연자들이 등장할 협주곡 무대도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지만 페스티벌의 중심은 아무래도 15곡에 이르는 교향곡 연주이겠지요.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A. Nelsons, 1978- )가 대부분의 관현악 음악회를 이끌게 되는 이 페스티벌에는 총 3개의 오케스트라가 참여합니다. 그가 상임 지휘자로 있는 두 개의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Leipzig)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Boston Symphony Orchestra), 그리고 이 두 오케스트라의 아카데미 학생들로 이루어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입니다. 그런데,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 (Symphony No. 7 “Leningrad”) 공연에는 특별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바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합 오케스트라이죠. 각각 1743년과 1881년에 창단되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함께 한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연합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상당히 드물게 열립니다. 그 공연들 중에는 정치 사회적인 울림이 큰 공연들이 제법 있었음을 금방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1989년 가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하여 그 해 12월에 열린 음악회입니다. 번스타인(L. Bernstein, 1918-1990)이 제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지요. 이듬해 이스라엘에서는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인 독일과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두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Israel Philharmonic Orchestra)가 함께 연주하는 감동적인 무대가 열렸습니다. 검은 자켓을 입은 베를린 필 단원들과 하얀 자켓을 입은 이스라엘 필 단원들이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2000년에는 서울에서 2002년에는 평양에서 KBS 교향악단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이 함께 연주했던 것이지요. 물론 이보다 보통의 음악회에 가까운 연합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있는데 한 예가 2005년에 베를린과 빈에서 열렸던 베를린 필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의 합동 공연입니다. 당시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였던 래틀(S. Rattle, 1955- )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아쉽게도 음악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단발성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2019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첫 합동 공연을 지휘하고 있는 넬손스 © Winslow Townson/www.bostonglobe.com서두에 언급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보스턴 심포니의 합동 공연이 여타의 공연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이벤트 성격이 강한 단발성의 공연들과는 달리 이 두 오케스트라의 합동 공연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오고 있는 두 단체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공식적으로는 ‘동맹(Alliance)’라고 표기되는 두 오케스트라의 협력 관계는 2017/2018 시즌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두 오케스트라는 여러가지 의미있는 작업들을 함께 해 왔습니다.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한 후 완성된 작품을 두 오케스트라가 그들의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도 주요 작업 중 하나입니다. 한 오케스트라가 의뢰된 작품의 세계 초연을 담당하면, 다른 오케스트라는 유럽 혹은 미국 초연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지요. 교류의 측면에서도 의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라이프치히에서는 <보스턴 주간(Boston Week)>을, 보스턴에서는 <라이프치히 주간(Leipzig Week)>을 만들었는데 이는 이를테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보스턴에 가서 연주한다는 방문연주의 의미이기도 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두 오케스트라가 각자 강점을 갖고 있는 레퍼토리를 바꾸어 연주해본다는 의미였습니다. 예를 들어 라이프치히 주간에는 보스턴 심포니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유명한 레퍼토리인 바흐(J. S. Bach, 1865-1750)의 작품을 연주하고, 보스턴 주간에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20세기 미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었지요. 또, 마치 교환학생 제도처럼 두 오케스트라의 몇몇 연주자들이 일정 기간 동안 상대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프로그램도 멋진 발상으로 기록됩니다. 이에 덧붙여 실내악 공연을 비롯, 강연과 토론 프로그램도 진행되었습니다. 두 오케스트라의 이런 활발한 교류는 소속된 아카데미들 사이의 교류로도 이어져 젊은 음악가들도 보다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요. 두 오케스트라의 협력은 이미 2019년에 보스턴에서 열린 최초의 합동 공연으로 빛을 발했습니다. 적어도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인지 그 이후로는 교류의 측면에서 크게 주목받는 소식이 줄어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 들려온 2025년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벌 소식은 두 오케스트라 사이의 교류가 여전히 지속됨을 보여주는 듯하여 반갑습니다. 두 오케스트라의 긴밀한 협력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2025년에 있을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벌은 협력 관계의 화려한 피날레가 될까요, 아니면 또다른 도약의 커다란 발판이 될까요? 모범적인 협력 사례로 오래도록 기억될 이들의 관계가 앞으로 더욱 풍성한 결실을 맺어가기를, 그리고 이러한 의미 있는 협력이 다른 곳에서도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추천영상: 2019년 가을에 보스턴에서 열린 두 오케스트라의 첫 합동 공연에서 첫 순서로 연주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축전 전주곡 (Festliches Präludium)>입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에 오르간까지 참여하는 큰 편성의 작품이며 지나치지 않은 웅장함과 무게감이 멋진 화성과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남기지요. 이 연주는 넬손스가 두 오케스트라를 번갈아 지휘하며 남긴 슈트라우스의 오케스트라 작품집 음반에 수록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jbjE00PpE8 <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3-12-08 1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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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작곡가 올라퍼 아르날즈(Olafur Arnalds)가 바라본 클래식 사진: 올라퍼 아르날즈와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 북유럽 아이슬란드 출신의 작곡가 하면 영화 <조커>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힐뒤르 그뷔드나도티르를 비롯해서 요한 요한슨, 올라퍼 아르날즈가 떠오른다. 이들의 음악은 클래식, 펑크,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고 있으며 현재 코어 클래식의 범주에도 자연스럽게 안착하는 중이다. 클래식 레이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도이치 그라모폰은 일찌감치 대담하고 실험적인 요한 요한손의 작품을 녹음해 왔고 힐뒤르 그뷔드나도티르의 음악 또한 도이치 그라모폰이 내놓은 영화<타르> OST앨범 속에 수록되어 있다. 현재 북유럽 출신 작곡가들은 북구 특유의 광활한 자연미와 여백, 투명하고 독창적인 사운드를 바탕으로 북유럽 정취와 감성을 내뿜으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음악을 요리에 비유하자면 마치 조미료를 안 쓴 좋은 재료 본연의 맛이 나는 음식 같다고나 할까. 아이슬란드 출신의 올라퍼 아르날즈는 1986년생으로 클래식의 실내악과 전자음악을 혼합하여 미니멀한 스타일의 음악을 쓰는 작곡가다. 하드코어 메탈밴드 드럼 연주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 답게 팝과 일렉트로닉을 오가며 음악적 자양분을 쌓아왔지만 결국 그의 관심은 클래식 음악에 닿게 되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지 않은 대중에게 클래식은 늘 닫혀 있다. 클래식 음악에 영향을 받은 내 음악을 통해 대중이 클래식에 대한 마음을 열었으면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클래식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물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대목이다.과하지 않고 디테일하게 조율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피아노, 어쿠스틱 현악기 같은 악기들을 조합한 그의 독창적인 체임버 음악은 현대미와 고전미를 동시에 발산하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음악과 기술의 섬세한 조합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것이다. 2013년 음반 ‘For Now I Am Winter’로 그는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를 석권했으며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최우수 TV 음악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최근 한국무대에 자주 오르고 있는 막스 리히터의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는 2012년 바로크의 비발디 시계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큰 호응을 얻었는데 마찬가지로 3년 뒤 아르날즈는 쇼팽을 선택하여 현대적인 각색을 시도했다. 그가 쇼팽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인터뷰에서 그는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와 함께 쇼팽을 들었고 할머니가 임종을 맞을 때에도 쇼팽의 음악이 흘렀다"며 쇼팽이 자신에게 각별했던 이유를 설명했다.2015년 그가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와 함께 내놓은 앨범 '쇼팽 프로젝트'는 쇼팽과 쇼팽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작곡한 아르날즈의 곡들이 조화를 이루며 믹싱 기술을 활용한 현악기와 전자음악, 노이즈가 가미된 21세기 쇼팽 버전이다. 그의 철학이 흥미로운데 그의 관심사는 "쇼팽을 더 완벽하게 연주하기보다는 쇼팽을 다르게 연주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세련된 스타인웨이 피아노 소리보다도 오히려 술집의 평범한 피아노 소리가 더 흥미로울 수 있다는 과감한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아르날즈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다양한 피아노를 사용하며 일부러 빈티지한 징비로 녹음했다고 한다.) 새로운 시도에 둔감한 클래식에 돌직구를 날리기도 하는 그의 말속에 클래식이 좀더 과감한 시도를 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읽혀진다. 예를 들어 아르날즈는 2대의 어쿠스틱 피아노가 미디를 통해 소리를 내는 마스터 건반과 서로 연동되어 자동으로 소리를 내는 스트라투스(Stratus)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그의 실험정신이 여실히 드러난다. 막스 리히터의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는 기존 음악을 붙이고 자르며 리듬적인 요소를 강조시키는 과감한 변주가 돋보이는데 아르날즈는 기존 쇼팽의 선율에 손대지 않으면서 쇼팽으로부터 받은 영감에 의거, 새로 작곡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현장감을 중시하는 그답게 일상 잡음, 노이즈 같은 소리들을 음악의 한 부분으로 포용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이 음반은 9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입부에 해당하는 'Verses'는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에 영감을 받아 작곡했으며 현악기가 연주한다. 이어서 다음 트랙에서는 원곡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Largo)이 흐른다. 그다음 이어지는 녹턴의 선율은 피아노 대신 바이올린이 연주하며 이 선율을 차용하여 아르날즈가 작곡한 음악이 다음 트랙에서 이어진다. 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스토리처럼 쇼팽과 쇼팽에게서 영감을 받은 아르날즈가 서로 교차하며 연주된다. 이 음반은 결국 영국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현재까지도 기존 쇼팽을 그 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섬세하게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장르적 순도를 중요시하는 클래식계에 참신한 자극으로 평가받고 있다 . 한국무대에서도 이 곡을 접할 날을 기대해 본다.트랙 5번의 수록된 녹턴 in G Minor는 바깥의 빗소리를 비롯하여 일상 소음이 피아노 연주와 어우러지며 현장감 있으면서도 빈티지한 감성을 자극한다. 콘서트라면 잡음으로 치부될 수 있는 소리들이 오히려 피아노 연주를 방해하지 않고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시도라고 여겨진다.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vIHJMaRQfwo&list=OLAK5uy_mx8ECLrrOy8KaZbm_ttnEBvhyc1d0QAm4&index=5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3-12-01 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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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돌아왔다. 은퇴를 두 번이나 번복한 셈이지만 그의 컴백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따뜻하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언론 배급 시사회를 포함, 홍보가 없는 것이 홍보였는데도 사전 예매량이 30만 장에 달했고 개봉 첫 날만 25만 명이 영화를 관람했다. 그러나 개봉 며칠 만에 실관람객의 별점 평가는 곤두박질쳤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난해하다는 후기가 많다. 요약하자면 엄마를 화재로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가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된 아버지의 고향에서 비범한 왜가리의 안내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들에서 보아왔던 독특한 캐릭터들과 판타지 설정은 그대로 살아있지만 톤 앤 매너가 완전히 다른 것이 문제다. 특유의 유머나 박진감 넘치는 모험담이 아니라 어둡고 우울한 정서가 흐른다. 제작기간도 정해놓지 않고 마음에 들 때까지 완성도를 높인 작화도 그 심리적 부대낌을 상쇄시키지는 못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포스터 미니멀한 음악에 대해서도 의견은 갈린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오래 호흡을 맞췄고 불멸의 스코어도 많이 작곡했건만 히사이시 조가 이번 작품을 통해 들려주는 것은 화려한 선율이 아니라 악기와 음의 움직임을 극도로 단순화한 미니멀 음악이다. 즉 장식적인 악기나 음은 완전히 배제하고 애초에 사운드 이펙트와 함께 디자인된 음악이 주를 이루는데, 음악만 따로 들어 보면 작곡과 연주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집요할 정도로 세심하게 해당 장면에 맞춰 컨트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음악도 서사에 주석을 달아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흐르는 요네즈 켄시의 ‘Spinning Globe’만큼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 있는 이 애니메이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났어/ 그날과 변함없는 다정한 얼굴로 지금도 어딘가 먼 곳에/ 바람을 맞으며 달려 잔해 더미를 넘어/ 이 길의 끝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 평생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던 거장에게 애니메이션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진짜 은퇴작으로서 해야만 될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그러나 앞 일은 알 수 없다. 몇 년 후 그의 신작이 개봉한다면, 우리는 또 기꺼이 티켓을 예매하지 않을까. 윤성은의 Pick 무비 정지영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소년들’ 영화 소년들 포스터 정지영이라는 이름이 한국영화계에서 갖는 의미는 크다. 1946년생인 그는 치정 스릴러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3)로 데뷔한 후, 80년대 후반부터 사회성 짙은 드라마를 선보여왔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조명한 ‘남부군’(1990), 베트남 참전 용사의 파괴된 내면과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하얀 전쟁’(1992), 영화에 미친 할리우드 키드의 지난한 일생을 그린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만으로도 그의 필모그래피는 꽤 묵직하다. 그런 그의 21세기 첫 연출작, ‘부러진 화살’(2011)은 부당하게 검거된 한 교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법정드라마로, 2012년 1월 개봉 당시 많은 관객들의 공분을 사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부러진 화살’의 성공은 청각장애학교의 폭력 실화를 담은 ‘도가니’(2011)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진실을 규명하고 대중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 하나의 현상으로 회자된다. 이후, 그는 군부독재정권의 폭력성을 고발한 ‘남영동 1985’(2012), 론스타 게이트를 쉽게 풀어낸 ‘블랙머니’(2019) 등 비슷한 결의 영화들을 선보여왔다. 모두 실화 기반의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다. 그가 4년만에 내놓은 신작, ‘소년들’은 ‘부러진 화살’과 가장 유사한 맥락에 있다. 누명을 쓰고 수감 생활을 했던 소년들이 뒤늦게나마 자신들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목소리를 낸다. 첫 사건은 1999년에 일어났고, 재심은 2016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화는 17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럽다. 배우들의 머리는 희끗해졌고 경찰서의 집기들도 바뀌었지만, 내부의 강압적인 분위기는 과거와 현재가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한 슈퍼에서 강도치사사건이 발생한다.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주인 할머니가 사망하고 현금과 금품을 갈취한 것이다. 사건 9일 만에 동네 소년 3인이 용의자로 검거되고 자백과 함께 수사는 종결된다. 그러나 이 때 강력반 수사반장으로 부임한 ‘황준철’(설경구)은 한 제보전화를 계기로 재수사에 나선다. 어긋난 진술, 조작된 증거가 발견되자 준철은 수사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전북청 수사계장 ‘최우성’(유준상)을 비롯한 책임자들이 그를 협박하고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윤미숙’(진경) 마저 그를 외면하면서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17년 후 형을 마친 세 명의 소년들이 변호사를 선임한 미숙의 설득으로 결백을 밝히려 하면서 수사는 다시 시작된다. 현재로 시점이 옮겨지면, ‘소년들’은 용기에 관한 이야기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지나간 일이라고 해서 간과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용기가 이 사건에 관계된 모든 인물들에게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개과천선하여 가족까지 꾸린 진범에게는 자신이 살인자임을 고백해야 하는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다. 영화는 딜레마에 서 있는 여러 인물들의 내면을 추적하면서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정지영 감독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 부재한 정의와 양심을 건드리면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이런 부당한 사건이 내 가족과 이웃에게 벌어질 수 있음을 보다 더 강조한다. 데뷔 4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 그는 할 말이 많이 남은 듯하다. 영화에 대한 애정, 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변함 없는 열정에 갈채를 보낸다. <필자소개>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3-11-24 0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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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세종의 아들, 세조 한국 전쟁 당시, 대구로 이전했다가 서울 명동에 자리 잡았던 국립극장은 1973년 남산 자락에 터를 잡아 신축 개관하고 현재에 이른다. 남산 이전 50주년을 기념하는 연말 기획 공연 <세종의 노래: 월인천강지곡>이 오는 12월 무대에 오른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 등을 비롯해 300여 명이 무대에 오르는 대규모 칸타타로, 손진책(연출)․박범훈(작곡, 지휘)․국수호(안무) 등 원로 예술가들이 진두지휘하는 대작을 만날 기회다. 세종의 노래: 월인천강지곡 ©국립극장 누리집) 즈믄 가람 비추는 달의 노래, 『월인천강지곡』은 책 세 권 분량의 찬불가(讚佛歌)다. 세종 임금이 먼저 떠난 소헌왕후 심씨를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의 아내이자 문종과 세조의 어머니이고 단종과 예종의 할머니이기도 했던 소헌왕후는 세종 28년인 1446년에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의 자택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던 수양대군은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담은 『석보상절』을 편찬했는데, 세종이 그 내용에 맞추어 부처의 공덕을 노래로 읊은 것이 월인천강지곡이다. 상․중․하 세 권 중, 오늘날까지 전하는 것은 190여 곡이 실린 상권 그리고 중권의 낙장(落張) 몇 장뿐이다. 훗날 세조가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함께 엮어 『월인석보』를 간행함으로써, 월인석보에 실린 곡까지 모두 합해 440곡가량이 현전한다.소헌왕후는 왕자였던 충녕군과 혼인해 8남 2녀를 두는 동안 세자빈이 되고 왕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희대의 성군을 지아비로 두었으나 시아버지에 의해 친정이 숙청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두 임금의 어머니이자 두 임금의 할머니이기도 하였으나 아들과 손자가 왕이 되는 것을 생전에 보지는 못하였다. 그의 사후에 일어난 골육상잔의 비극 역시 보지 못한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세조실록 총서의 첫 장을 읽어보면, 폭군으로 기억되는 세조의 이면과 아버지 세종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등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 보인다. 활쏘기와 말타기가 고금에 뛰어났으며 역학, 산학, 음률, 의술, 기예 등이 모두 그 묘(妙)를 다하였는데, 이를 숨기고 남 위에 오르려 하지 않으니 세종이 이를 기특히 여기고 사랑하여 그 대우를 다른 아들들과 달리하였으며, 군국대사(軍國大事)에는 반드시 참여토록 하였다. 여러 가지 정황상 세종이 호전적이고 야심만만한 자신의 둘째 아들을 경계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지만, 사서의 기록에는 아들의 능력과 재주를 인정하고 아끼는 아버지 세종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 음악과 관련한 기록들도 적지 않다. 세조가 악기를 연주하여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고 세종이 이를 칭찬하였다는 내용, 세조가 귀신이 부는 퉁소 소리를 듣고 그 음높이를 맞추었다는 내용, 세종이 송나라 음악 이론가가 쓴 악서 『율려신서』를 보라고 권하며 “이러한 큰일은 네가 힘써야 한다”고 하는 내용 등은 세조가 음악에 조예가 깊고 재주를 타고났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음률에 밝았던 이들 부자가 함께 이루어낸 또 하나의 작품이 종묘제례악으로 쓰이는 음악 ‘정대업’과 ‘보태평’이다. 세종이 만들어 회례연 등에 일부 사용했던 악무(樂舞)를 세조가 국가의 대사인 종묘 대제를 치를 때 쓰는 음악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에 관해 『국조보감』 세조조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세조가 처음 즉위하여 처음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와 음복연을 베풀며 보태평과 정대업의 춤을 보고 ‘이것을 보면 조종의 창업이 어렵고 세종의 제작이 거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며, ‘세종께서 하늘이 내려준 성지로 여러 악무를 제작하셨는데, 이를 미처 쓰지 못하였으니 지금 일으키지 않는다면 폐기되고 말 것이다. 이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이후 세조는 세종조의 정대업, 보태평에 악무를 추가하거나 가사를 바꿔 짓고, 악기 편성을 달리하는 등 음악을 여러 차례 정비해 절차에 맞는 제례악으로 탈바꿈시킨다. 세조 10년인 갑신년 1월 14일, 세조실록의 기사는 ‘임금이 종묘(宗廟)에 친히 제사하였는데, 새로 만든 정대업(定大業)ㆍ보태평(保太平)의 음악을 연주하였고, 그 의식은 이러하였다’ 하고 시작한다. 기사에는 종묘 제례의 절차가 방대한 분량으로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제사를 마치고 돌아온 임금은 신하들에게 술을 하사하며, ‘세종(世宗)의 유의(遺意)를 이루어 매우 기쁘다.’고 하였다. ‘내가 근래에 병이 들어 동작하기 어렵다. 의주(儀注)를 고쳐 될 수 있도록 간략하게 만들어 아뢰도록 하라.’고도 하였다. 그로부터 4년 후, 찬탈해 오른 왕위에 겨우 십 년 남짓 머물렀던 세조는 아들인 예종에게 왕위를 넘긴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패륜한 자의 마음과 그 자식이 지어 올린 음악을 들으며 제사상을 받았을 부모의 마음, 선대의 신위 앞에 꿇어 엎드렸을 그 속내까지, 무엇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찰나의 잘못으로 그러하지 않았을까, 돌이킬 수 없었던 일을 그렇게나마 속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형제는 몰라도 부모만큼은 늙고 병들어 엎드린 자식을 애달피 여기지는 않았을까. 인간사의 내력을 짚어가다 보면 더없이 단정한 음악을 듣는 가운데에도 복잡다단한 생각들이 스치곤 한다.송신례(送神禮)는 조상의 혼령을 보내드리는 절차다. 세조가 악을 짓고, 최항으로 하여금 노랫말을 쓰게 한, 송신하는 악의 마지막 구절은 이러하다. ‘내 발을 제겨디디고 멀리 바라보니, 공벽(空壁)이 아득하도다.’ <필자소개>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3-11-17 08: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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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뮤지컬 ‘렛미플라이’ 공연장면 ©프로스랩뮤지컬 ‘렛미플라이’가 올가을 또 한 번 아름다운 달나라 여행을 시작했다. 2022년 초연 이후 1년 만에 올라온 두 번째 무대로 이번 시즌 역시 작품 고유의 몽글몽글하면서도 따스한 감성에 한층 깊이를 더한 모습으로 돌아와 더욱 반갑다. 뮤지컬 ‘렛미플라이’는 지난 1월 16일 열린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400석 미만), 음악상(작곡), 남자 신인상(이형훈)까지 총 3관왕을 달성하며 웰메이드 한국 창작뮤지컬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한 작품이다. 2018년 7월 ‘우란이상 공연예술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에 착수한 후 거듭된 리딩과 수정 작업을 거쳐 2020년 트라이아웃 공연으로 기대를 모았는데, 초연 당시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받고 빠르게 입소문을 타면서 입지를 다졌다. 흥미로운 소재를 바탕으로 펼쳐진 동화 같은 이야기, 재미와 감동을 넘나드는 음악, 배역에 완벽하게 녹아든 배우들까지 무엇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알찬 뮤지컬 ‘렛미플라이’는 뮤지컬에 처음 도전하는 배우 박보검이 선택한 작품으로도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이번 재연에는 박보검을 포함해 김태한, 김도빈, 이형훈, 방진의, 윤공주, 최수진, 안지환, 신재범, 나하나, 홍지희, 임예진이 무대에 올라 꿈같은 시간여행을 선사한다. 뮤지컬 랫미플라이 공연장면 ©프로스랩배경은 1969년 밤이다. 아폴로 11호가 달을 향해 날아오르던 날, 동네 최고라 손꼽히는 수선쟁이 남원은 서울에서 으뜸가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 한 통을 기다린다. 사랑하는 정분이의 응원과 함께 중고 라디오를 고쳐 달 탐사 비행 소식을 듣던 두 사람은 간절히 기다리던 소식을 뒤늦게나마 접하게 되고 남원은 정분이와 펼칠 미래를 꿈꾸며 부푼 마음으로 내일 맞이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런 남원의 눈앞에 훤히 떠 있던 달이 점점 커지고, 남원은 깜짝 놀라 정신을 잃고 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때쯤, 선희 할머니 집 마당에 누운 채 가까스로 눈을 뜬 그는 빨리 학원 시험을 치러 서울에 가야 한다면서 정분을 애타게 찾는다. 하지만 하얗게 센 머리를 한 남원이 마주한 현실은 바로 지금이 2020년이라는 사실이다. 달밤에 벌어진 기이한 사건 때문에 낯선 모습으로 변한 남원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실마리를 찾고자 미래 탐사를 시작하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에피소드들이 차곡차곡 쌓여 뮤지컬 ‘렛미플라이’를 완성한다. 렛미플라이는 결과나 성취에 주목하기보다 과정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각 인물의 선택에 따라 나아갈 방향을 잡아간다. 물론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한 결과와 마주치거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도 남겠지만, 작품 속에 등장한 사람들은 그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찾는다. 우주비행사를 꿈꿨으나 버거운 현실에 순응하는 일을 선택한 정분은 그 대신 사랑을 얻었고, 남원 또한 자신의 선택에 따른 삶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런 그가 작은 바늘 하나를 손에 들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로 세상에 맞서거나, 인생을 이룬 조각들을 하나씩 기워낸다는 설정은 마치 평범한 우리가 각자 가진 능력으로 과거를 거쳐 오늘을 지나 내일로 향해 나아가는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저마다 딛고 선 자리에서 꿈을 피워낼 용기와 확신을 얻을 수 있던 까닭은 나만큼이나 소중한 대상이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뮤지컬 ‘렛미플라이’는 청춘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토대로 과거의 선택이 모여 만든 오늘 역시 더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는 말로써 모두의 마음을 감싼다.작지만 정감 가득한 무대는 겹겹이 쌓인 추억의 흔적과도 같고 밤하늘에 조용히 반짝이던 별들 역시 청춘의 꿈처럼 빛을 내며 오랜 잔상을 남긴다. 또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노인 남원과 청년 남원, 정분과 선희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성격 변화, 넘버 배열, 의상 등에서 각각 대비되는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귀에 감기는 음악과 어울린 드라마적 요소 역시 뚜렷해서 뮤지컬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듯하다. 뮤지컬 ‘렛미플라이’는 지난 9월 26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개막해 오는 12월 10일까지 계속된다. <필자소개>최윤영 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 바 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 왔고 현재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3-11-10 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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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여성 작곡가 세실 샤미나드의 플루트 협주곡을 소개하며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곡가 세실 샤미나드(Cécile Chaminade)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 세실 샤미나드(Cécile Chaminade). 클래식 애호가라 자부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그녀가 작곡한 플루트 협주곡의 첫 소절을 들려주면 "아! 이 음악" 할 만큼 이름은 생소하지만 우리에게 친근한 클래식 작품 한 곡을 남겨놓은 작곡가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활동했다. 현재는 남녀 구분없이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활동하지만 19세기의 여성 작곡가들은 음악활동에 있어 제약이 많았다. 남성 중심의 사회적 통념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였던 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 멘델스존'이 대표적인 예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괴테의 찬사를 받았던 그녀였지만 아버지로부터 동생의 장래를 위해 음악의 길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으며 작품 출판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결국 그녀가 작곡한 가곡집은 동생 펠릭스 멘델스존의 이름으로 출판되기도 했다니 직업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파니 멘델스존보다 반세기 후에 활동했던 작곡가 샤미나드의 경우는 좀 달랐다. 1857년 파리 출생으로 마찬가지로 '연주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완강했던 아버지를 두었던 그녀. 하지만 샤미나드는 반대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고집했고 400여곡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작곡했으며 대부분이 출판되었다는 사실. 그녀는 결국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살롱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1908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미국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글로벌하게 성공을 거둔 작곡가였던 것이다. 1913년에 여성 작곡가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소규모의 가곡과 피아노 소품이 주를 이루는 살롱음악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이 좌지우지하던 대규모 콘서트장과 달리 살롱은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음악은 섬세한 감성과 우아한 서정성이 돋보인다. 여성취향이라는 세간의 평이 음악적 한계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공감을 자아내며 대중을 매료시켰다. 당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그녀의 팬이었을 정도로 프랑스와 영국에 걸쳐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샤미나드의 작품을 녹음한 바 있는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는 한 인터뷰에서 "혁신적이진 않지만 높은 퀄리티의 음악으로 뛰어난 악상이 매력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라고 평했다. 아쉽게도 그녀의 작품들은 20세기 중반을 지나 대부분 잊혀졌지만 현재 그녀의 소품 피아노곡과 가곡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근 영국의 가디언지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여성 작곡가들을 조명하면서 다시 리사이틀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작곡가 샤미나드의 가곡들을 조명한 바 있다. 작곡분야에 있어 남성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당시 시대적 한계를 극복해냈던 그녀의 진가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녀의 플루트 협주곡 D Major (Flute Concertino in D Op.107)는 샤미나드라는 이름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준 유일한 작품으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02년 파리 음악원 콩쿠르를 위한 작품으로 의뢰를 받아 탄생한 이 곡은 고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곡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플루티스트였던 남자친구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리자 복수심을 담아 일부러 연주하기 어렵도록 높은 난이도의 곡을 썼다는 것이다. 현재는 플루티스트들 사이에서 콩쿠르, 입시곡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기도 하다. 10분이 채 안되는 짧은 곡 안에 샤미나드 특유의 다채롭고 우아한 프랑스 감성과 화려한 플루트의 기교가 조화롭게 녹아있는 작품으로 짙어가는 이 가을에 꼭 들어보길 권한다.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Lnr5XD5dj_0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3-11-03 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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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편지 읽는 재미가 소극장의 매력으로 완성되다 /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뮤지컬하면 으레 대극장의 화려한 무대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화려한 궁중 무도회에 드레스를 차려입은 배우들이 우아한 사교춤을 추는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이 뮤지컬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많은 배우가 나오지 않지만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뮤지컬들도 적지 않다. 바로 소극장 뮤지컬이다. 우리나라에선 객석수 500석 남짓이면 중극장, 200~300석 규모거나 그보다 작으면 소극장이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키다리 아저씨 공연장면 객석 수가 적으니 수익성도 소규모일 것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리다. 공연의 매출은 한 회에 얼마나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가와 이를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가에 따라 매출이나 수익 규모가 달라진다. 소극장 뮤지컬이라 해도 장기적으로 혹은 안정적으로 공연될 수 있다면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게다가 소규모이니 대형 세트나 비주얼 효과를 위한 장비를 설치할 수 없고 등장인물도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인건비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몸집이 가벼우니 지역으로 공연을 이어가는 투어 프로덕션을 꾸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작품만 좋다면 오래 공연되며 매출도 안정적으로 기록할 수도 있는 ‘효자’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출연 배우가 적다는 말은 그만큼 집중이 잘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아무래도 여러 명이 꾸미는 무대가 아니기 때문에 역으로 관객의 시선을 모으기에 더 유리하다. 무대 장치나 세트, 비주얼 효과에 대한 의존보다 배우 자체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그를 향한 관객이 시선이 더 강렬하다. 대부분 이런 부류의 작품들에서는 “어떻게 저 많은 대사와 상황을 숙지할까?” 싶을 만큼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 몇 안 되는 배우들의 찰떡같은 호흡에 감탄을 금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무대에 오롯이 집중하기 좋고, 이야기의 내면과 깊이를 따라가기 용이한 형식이라는 방증이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바로 그런 재미가 담긴 작품이다. 출발점은 물론 유명한 베스트셀러로부터 비롯됐다. 제루샤 애벗이라는 고아 소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후원자 ‘스미스’씨의 도움을 받아 대학에 진학한 후 꿋꿋하게 자신이 원하는 일과 사랑을 찾아가는 인생의 여정을 만나게 된다. 후원의 조건은 일상을 담은 편지를 써서 정기적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었는데, 먼발치에서 그림자만 보고 키다리 아저씨(영어 소설의 원제목은 다리가 긴 아저씨란 의미의 Daddy long-legs이다)란 별명을 생각해냈던 제루샤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자신의 경험은 물론 시시콜콜한 일상 속 체험까지 모두 스미스씨에게 적어보낸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고아 소녀의 대학생활 적응기는 때로는 흐뭇하고 또 때로는 안쓰러운 그러나 시종일관 밝고 희망 넘치는 열정을 보여줘 미소짓게 만든다. 전형적인 성장 스토리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독자들은 키다리 아저씨의 존재를 알지만 여주인공은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그래서 전지적 작가 시점에 있는 독자들이 오히려 발을 동동 구르며 아쉽고 안타깝게 되는 재미가 무엇보다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소설의 재미를 소극장 뮤지컬답게 2인극의 형식적 틀을 이용해 효과적이고 집중력있게 구현해내는데, 편지를 쓰는 제류샤와 그 편지를 읽는 제르비스의 묘한 뉘앙스와 말투의 변화, 그리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감동받는 극 전개가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키다리아저씨 공연 장면 원작 소설은 미국의 여류 소설가인 진 웹스터의 작품이다. 1912년 세상에 첫 선을 보였는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대리체험으로 사랑받고 있다. 사실 원작 소설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우울한 수요일’에서는 어둡고 우울한 고아원에서의 생활이, 2부 ‘키다리 아저씨 스미스 씨에게 보낸 제루샤 애벗 양의 편지들’은 고아원을 벗어나 대학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고 우정을 키워가는 제루샤의 일상과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뮤지컬에서는 주로 2부의 내용들이 등장한다. 서간체 소설을 무대용 뮤지컬로 꾸몄다는 면에서는 창작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도 다소 일맥상통한 특징이 있지만 정말 편지의 형식적 틀을 적극 활용한다는 면에서는 구성이나 형식적 측면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1인칭으로 노래하는 제루샤와 그녀의 이야기를 3인칭으로 읽어가는 키다리 아저씨의 묘한 화음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형식적 틀이자 동시에 두 사람의 교감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매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로맨스 역시 무대에서는 더 할 나위 없이 감미로운 구성과 음악들로 실감나게 펼쳐진다. 뮤지컬을 처음 세상에 선보인 것은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벤츄라 카운티에 있는 루비콘 극장이다. 작품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미완의 트라이 아웃 프로덕션을 선보이며 업그레이드의 과정을 거쳐 결국 대서양 건너 영국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2012년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이후 2015년 오프 브로드웨이의 데븐포트 극장에서 개막돼 마침내 뉴욕 입성을 이뤄냈다.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완성도를 더해왔지만 늘 여주인공 제류샤 역으로는 메간 맥기니스라는 배우가 출연했다는 부분도 독특하다. 그녀는 ‘레 미제라블’에서 에포닌 역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었던 촉망받던 실력파 뮤지컬 배우였는데 작품의 초기 개발단계서부터 매료돼 제작과정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제루샤는 누구보다 메간”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인기 배우가 이렇듯 초기 개발단계부터 참여해 본인의 예술가적 이미지와 배우로서의 완성도, 작품에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경우를 사실 영미권이나 브로드웨이 공연가에선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경우다. 우리 시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 아쉽고 또 부럽다. 중장년층이라면 TV용 일본산 만화영화로 기억하는 추억의 콘텐츠도 있겠지만, 무대용 뮤지컬에선 그때 그 시절의 이미지보다 젊고 풋풋한 느낌이 강조된, 그래서 요즘 세대들에게 더욱 잘 어필할 것 같은 캐스팅과 해석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남녀의 ‘케미’와 ‘썸’타는 이야기가 간질간질한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책만큼이나 재미있는 무대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3-10-27 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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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장르 양시영, Genre: Yang Si Young' (10.4-31/삼청동 갤러리1) 양시영 작/ 야곱의 사다리 /500호 삼청동에 자리한 갤러리1(대표 최사라)에서는 10월4일부터 31일까지 《장르 양시영 'Genre: Yang Si Young'》 전시를 미국 뉴욕전시와 더불어 개최한다. 작위적이지 않은 그 자체의 영혼그림을 그리는 양시영은 영감이 없으면 창의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 순수한 직관을 치열한 정면응시로 이뤄내는 작가다. 디테일이나 기술보다 ‘자신이 직관한 대상 그대로를 순수한 에너지로 풀어내는 작업들’, 편견만 배제된다면 작가의 나이나 프로필은 전혀 고려되지 않을 작품이다. 양시영 작가는 구상성 있는 인물 외에도 꽃이나 경험한 도시의 외적 에너지를 마음이 닿는 대로 표현한다. 대상 인물의 특징은 눈을 감지 않고 치열하게 세상을 응시한다는 점이다. 많은 인물들이 늘 곁을 지키는 양작가의 어머니를 닮았다. ‘장르 양시영’ ‘양시영 화풍’ 같이 자기 개성화의 길로 끌어주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은 하나의 방향을 향한다. 공공재(公共材)로서의 양시영이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을 여는 것, 선입견이 배재 된 ‘독립 존재로서의 양시영 작가’로 우뚝 서는 것이다. 흔히 자폐 스펙트럼 작가들의 예술활동은 에너지가 자기 안에 집중돼 있어 타인과의 소통이 불편하지만, 양시영은 새로운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을 관찰하고 크기 제한이 없는 500호까지 확장된 ‘자기 세계의 가능성’에 늘 도전한다. 자폐작가라는 편견? 영감으로 확장된 가능성을 그립니다. 양시영의 인물들은 내면의 가능성을 외연으로 확장해 ‘자신’을 벗어난 ‘영적 세계-직관한 대상 인물’ 등을 끊임없이 증식시키는 ‘창작의 확장’을 보여준다. 과감한 표현은 스케치나 계획에 따른 일반 작가들과 다른, 초현실주의와 아르브뤼(Surrealism and Arbrue)가 좇고자 하는 ‘순수한 내면의 표출’이다. 미학자 안느 수리오(Anne Souriau)는 ‘표현(expression)’을 “지각적이고 감각적이며 물질적 행위에 의해서 외부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삶에 속하는 정신적 에너지가 추상적인 사고나 아이디어로 표명되는 것이며, 심리적인 상태를 외부에서 보이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양시영의 작업은 절대적인 주관성에 의존하는 감성 표현으로, ‘색채들의 강도-섬세한 선과 터치-창작의 제스처와 작업과정’ 등이 ‘무계획의 순수’ 속에서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일반 작가들의 고의적인 결핍과 구별돼야 한다. 일반 작가들이 중성적이고 상징적인 몇몇 대상물을 반복해 제시함으로써 자신을 정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창작행위라는 것이다. 양시영 작 / thinking Womwn광주의 작은 교회공동체를 10살 때부터 다니면서 세상을 향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온 작가는 시리즈를 통해 ‘종교’를 ‘삶’으로 확장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작품의 특징은 초기 화선지 작업에서 벗어나 디테일을 위한 ‘튜브 드로잉(Tube Drawing)’으로 자신만의 마티에르를 확립한 것이다. 스미는 종이작업들이 내면의 자기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라면, 선의 마티에르를 올리는 양각 작업은 외부로 확장하는 자신감 넘치는 ‘작가의 경험’을 반영한다. 과감한 직선과 원형의 도트 작업들이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조하는데, 자기 패턴의 발견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같은 대가들이 획득한 작가의 개성화 형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양시영의 직관, 치열한 개성화의 길 작가의 개성화 과정에 도움을 준 가장 큰 계기는 '아트 스튜던트 리그 오브 뉴욕(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 1875년 설립)'에서의 수학이다. 아티스트와 아마추어 모두를 위한 수업프로그램은 ‘연령-인종-학력’을 제한하지 않으며, 한국화가로는 박길웅·김창열이, 해외 유명 화가로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로이 리히텐슈타인(Roy Richtenstein)·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e)·마크 로스코(Mark Rothko)·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등이 있다. 양시영은 이 학교에서 다양한 이벤트와 갤러리 전시, 편견 없는 작가교류 등을 경험하면서 ‘성역(聖域)없는 문화의 자율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획득했다.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같이 자연/도시와 결합한 ‘인종-남녀노소’를 넘나드는 ‘신표현적 자기발견’의 계기와 만난 것이다. 해외에서 양시영 작가는 한국의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난 움직임들에 감화를 받았다. ‘오일 스틱-아크릴릭’까지 확장된 작업들은 ‘유화-스프레이-조각’으로의 확장을 예고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는 ‘색상-작품구도-도구을 잡는 패턴’ 등을 자유롭게 유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캔버스의 크기 따위는 크던 작던 중요하지 않다. 치열한 정면 응시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차별 없는 세상에 도전장을 던지는 것이다. 전시회 작업 준비중인 양시영 작가.양시영은 1980년대를 강타한 독일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의 대표주자인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를 떠오르게 한다. 사회주의 체제에 반대하며 초창기부터 기존의 관습에 저항하는 작품을 선보인 작가로, 자신이 속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추상미술·아카데미즘 등 당대 미술계의 흐름에 반하는 ‘거꾸로 된 오브제, 과장된 인체의 표현’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굳이 양시영을 구상 초상 계열작가로 구분한다 해도, 사실 작가의 세계는 아카데믹과 아마추어의 장점을 섞은 ‘프로암(프로+아마추어)’의 정체성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에곤 쉴레(Egon Schiele),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의 자화상에서 엿보이는 이유는 ‘시적(市籍) 직설’이 작품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직설화법에 대해 “양시영 작가는 배후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기보다 솔직한 자기표현을 통해 스스로를 선과 형태로 변형하는 ‘양시영 만의 장르’를 만든다.”고 평한다. 자신의 장애를 트라우마의 반작용, 이른바 ‘창작의 돌파구’로 삼아 독창성과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고유의 예술적 형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25세 약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작가의 작업실엔 방대한 전작의 모티프들이 작품에 통합되면서 절묘한 레퍼런스를 만들고 있다. 정해진 형식에 속박되지 않는 끊임없는 ‘숭고(Sublime)와 확장의 가능성’들을 선보이는 것이다. 손의 직관을 따른 개성 어린 작업들은 ‘글로벌한 독립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한 교두보가 아닌가 한다. 우리 모두 편견을 지우고 양시영 작가가 던지는 의미 있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3-10-24 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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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처음의 각별함만약 여러분이 어떤 음악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 음악회에서 연주될 작품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경우 보통 두 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그 작품을 미리 들어보는 등 작품에 대해 알아보고 음악회에 가는 것, 그리고 음악회에서 처음 작품을 접해보는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유튜브와 같은 웹사이트로 인해, 모르는 작품을 음악회에 가기 전에 미리 들어보고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일이 참 편해졌습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에 자리잡기 전에는, 어느 작품에 대해 알려면 음반과 책을 구입하거나 빌려야 가능했지요.모르는 작품을 미리 들어보고 음악회에 가는 것의 장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해당 작품에 대한 생소함이 줄어들어 음악회에서의 집중력을 높여주고, 그로 인해 작품 감상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작품을 자세하게 알지 못해도, 그 작품에 나오는 주요 선율들을 알면, 그 선율들이 나오는 순간을 기대하게 되고, 기대하던 선율이 나오는 순간순간을 즐기게 되지요. 또한 미리 들어볼 때의 연주와 음악회에서 듣는 연주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그렇다면 모르는 음악을 음악회에서 처음 접하는 것의 장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여러 답변들이 있겠지만, 생소하게 들리는 음악의 흐름 속에서 예상치 못한 놀라움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말러(G.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제7번을 처음 들었을 당시의 필자의 경험을 나누어보려 합니다.필자가 말러의 이 작품을 처음 들었던 때는 2002년 5월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에서 열린 지휘자 아바도(C. Abbado, 1933-2014)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회에서였지요. 젊은 시절 빈에서 지휘 공부를 했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자주 지휘했으며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상임 지휘자로도 활약했던, 빈이라는 도시와 인연이 깊은 아바도가 상임 지휘자로서는 마지막으로 베를린 필을 지휘하는 공연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음악회였습니다. 당시 필자는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이 다섯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음악회로 향했습니다. 사실, 필자의 관심은 작품보다 아바도에 쏠려 있었지요. 청중석의 높은 열기와 집중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가운데 시작된 말러의 일곱번째 교향곡은 어느새 한 시간을 넘겨 마지막 부분으로 향했는데, 그 흐름은 매우 명확해서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 처음 들어도, ‘이렇게 거대한 클라이막스를 이루며 음악이 마지막으로 향하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윽고 마지막 음이 강하게 울리며 작품이 끝나겠다고 예상했던 순간, 예상과는 다른 화음이 울리며 필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마치,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멈칫하는 느낌이었지요. 당연히 끝날 것이라 예상했던 순간에 음악이 마무리되지 않자, ‘어?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끝이 아닌가?’ 하고 잠시 의문과 약간의 혼란에 휩싸이던 찰나, 갑자기 폭죽이 터지듯 마지막 음이 짧고 강하게 울리며 음악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홀이 떠나갈 듯한 박수와 함성이 뒤를 이었습니다. 2002년 5월, 상임지휘자로서 마지막으로 베를린 필을 지휘했던 아바도. © Cordula Groth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이 마무리되던 몇 초 동안의 음악 흐름은 필자에게 너무나 큰 놀라움을 안겨주어 오래도록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는데, 시간이 흘러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작품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음악회에 갔어도 이런 충격을 받을 수 있었을까? 분명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을 미리 들었더라면, ‘아바도는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지휘할까?’와 같은 해석의 영역에 더욱 관심이 쏠렸겠지요. 20여년 전의 음악회에서 느꼈던 지금도 생생한 놀라움은, 이 작품을 음악회에서 처음 접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 작품을 미리 유튜브 등을 통해 알아보며 처음 들었어도 마지막 부분은 놀라움을 안겨 주었겠지만, 음악이 눈 앞에서 라이브로 생생하게 울려퍼지는 공간에서 느꼈던 놀라움의 강도와는 차이가 있었겠지요. 그 음악회 이후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을 접할 때마다 드는 아쉬움은, 그 어떤 훌륭한 연주를 들어도 마지막 부분에서 20여년 전 그 날의 놀라움과 감탄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누군가 유튜브에 공유한 그 날의 연주를 다시 들어도 그렇습니다.테너 도밍고(P. Domingo, 1941- )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성악가로서의 경력을 막 시작하던 스무 살 무렵, 푸치니(G.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조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는데, 당시 그는 이 오페라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리허설에서 이 작품의 합창곡 <달이 왜 이리 늦게 나오는지>가 울려퍼질 때, 그 순간의 음악이 그에게 더할 수 없이 심오한 감동을 주었으며, 생애 가장 감동적인 경험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냉정하게 본다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실력이 뛰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했음에도 말이지요.모르는 작품을 미리 들어보지 않고 음악회 현장에서 바로 마주하는 것이 늘 이러한 놀라움과 감동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때로 어떤 작품은 지루하게 느껴지며,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하지요. 모르는 작품을 음악회에 가기 전에 들어보는 것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몰랐던 작품을 음악회에서 직접 마주해보는 것도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입니다. 평생 각별하게 기억에 남을 놀라운 순간이 아직 알지 못하는 그 음악의 흐름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추천영상: 본문에 소개되었던 말러의 교향곡 제7번 공연 실황 음원입니다. 2002년 5월 13일 빈의 무직페어라인에서 열렸으며, 아바도가 상임지휘자 자격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베를린 필을 지휘했던 의미있는 공연입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박수 소리가 예사롭지 않은데, 뜨거운 관심 속에 열린 음악회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음질이 최상은 아니고, 영상이 아니어서 무척이나 아쉽지만, 음악회 당시의 열기가 잘 전해지는 음원입니다. 이 음악회가 정식 영상물로 남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게 되네요.https://www.youtube.com/watch?v=avQuBd_n_68 <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3-10-13 1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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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푸치니의 실내악 속에 오페라가 들린다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의 실내악곡들을 조명하며 이탈리아가 낳은 위대한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르는 단연코 오페라. '라보엠',' 투란도트', '나비부인','토스카' 등등 수 많은 명작들을 후세에 남기며 주옥같은 선율미를 뽐내는 악상으로 아직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베르디를 계승하는 작곡가로 통한다. *사진 캡션: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받는 푸치니의 젊은 시절 워낙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존재감이 크다 보니 푸치니가 작곡한 대작 오페라 외의 작품들이 주목받긴 쉽지 않을 터. 현재 종종 무대에 오르고 있는 그의 현악사중주 '국화(Crisantemi)'를 비롯하여 몇몇 단출한 실내악곡들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19세기 후반 무렵 작곡된 실내악 작품들이 오페라 작곡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 또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의 실내악곡들은 대부분 현악사중주다. 1880년 밀라노 콘서바토리 재학시절부터 그는 간간이 실내악곡들을 작곡하며 다채로운 악상과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는 기회로 삼았다. '국화'는 그의 대표적인 현악사중주곡으로 그의 친구였던 아마데오 공작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작곡한 Elegy(애가)다. 하룻밤 안에 작곡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두 개의 주제를 갖고 있으며 애조를 띈 멜로디가 감정선을 부각시킨 구조 속에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데 오페라 특유의 극적 요소들이 엿보인다. 그가 3년 뒤 세상에 내놓은 오페라 <마농 레스코> 4막에 현악사중주 '국화'의 선율이 등장하는데 실내악 작품 속에 시도했던 반음계적인 음형을 오페라에 적절히 인용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참고로 <마농 레스코>는 그에게 '베르디를 계승할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안겨다 준 작품이다. 3개의 미뉴에트(3 Minuetti)라는 직품 또한 눈여겨 볼만 하다.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 심플한 미뉴에트의 형식 속에 감미로운 선율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당시 평단은 "고상하고 세련된 음악으로서 능숙함과 우아함이 넘친다"라는 호평을 내놓았다. 흥미롭게도 각 악장은 평소에 알고 지냈던 인물들이었던 카푸아의 빅토리아 공주,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우구스토 미켈란젤리 그리고 평생 친구로 지냈던 지휘자 파올로 카리냐니에게 헌정되었다. 이 작품 또한 오페라 <마농 레스코>에 인용되었는데 미뉴에트 1번과 3번이 2막에 인용되었고 두 번째 미뉴에트는 오케스트라 합주 부분에 녹아있다. 이전에 실패를 맛보았던 푸치니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끔 해준 오페라 <마농 레스코>의 성공은 이처럼 소소한 실내악곡들에서 쌓은 내공을 통해 빛을 발했다고도 볼 수 있다. 푸치니의 작은 실내악곡들 속에 살아 숨 쉬는 푸치니 특유의 선율미와 다채로운 악상들. 훗날 오페라의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가 거쳐갔던 궤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명히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미국의 플레이빌지는 "푸치니가 작곡한 실내악 속에서 오페라의 내러티브가 읽혀진다"라는 평을 내놓은 바 있다. 큰 스케일의 장중한 오페라 속에 등장하는 음악을 소소한 실내악곡들 사이에서 찾아내고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3개의 미뉴에트(3 Minuetti)은 모두 합쳐 1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러닝타임을 갖고 있다. 공주의 자태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이면서도 우아한 미뉴에트 1번과 푸치니 특유의 감미로운 선율이 돋보이는 미뉴에트 2번의 트리오 부분에서 그의 비범한 재능이 여실히 드러난다. 각각 다른 매력을 가진 세 곡을 연달아 들어보기를 권한다.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qgIvmgtKARQ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3-10-06 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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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70년대 히트쏭! ‘밀수’의 삽입곡들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나 외롭지 않다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 날이/ 빨리 왔을 뿐이네’ ‘밀수’(감독 류승완)를 보고 나오면서 흥얼거리게 되는 곡,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의 일부다.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 일행이 통쾌한 승리를 거둔 후 흘러나오는 시원한 박경희의 목소리가 바다 풍경에 청량감을 더한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밀수’에는 이 곡 뿐 아니라 신중현, 산울림을 비롯해 그 시절 우리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뮤지션들의 음악이 다수 삽입되어 있다. ‘앵두’(최헌), ‘하루아침’(한대수), ‘연안부두’(김트리오), ‘님아’(펄시스터즈), ‘무인도’(김추자), ‘바람’(김정미),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김추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산울림) 등 당대의 인기가요들이 곳곳에 흘러나오면서 감칠맛을 내니, 이 정도면 감독이 주크박스 영화를 의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류승완 감독이 각본 단계에서 이미 삽입곡들을 정해놓았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대중음악의 삽입은 영화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주고, 그 시절의 정서를 소환하는데 유용하다. 또한, 소위 ‘OO의 테마’ 대신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곡들로 캐릭터 또는 그 신의 감정선을 표현하기 때문에 훨씬 직설적인 반면 관객들의 상상을 제한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밀수’는 류승완 감독 특유의 유머감각과 통통 튀는 리듬감이 도드라지는 영화이니만큼 삽입곡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춘자와 진숙의 정서적 유대감을 대변하는 ‘앵두’, ‘권상사’(조인성) 캐릭터를 그대로 묘사한 듯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도 적절했지만 잔인한 칼부림 신에서 흘러나오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두 차례 다른 편곡으로 들을 수 있는 ‘무인도’가 가장 인상적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의외의 장면에 삽입되어 대위법적 효과를 준다면 ‘무인도’는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인 것처럼 영상과 밀착되어 있다. 방식은 달라도 두 곡 모두 스코어의 기능은 다하고 있는 셈이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뮤지션 장기하는 처음 영화음악을 맡아 삽입곡들 사이의 스코어 작곡 및 전체적인 연출을 맡았다. 이번 작업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개성이 분명한 뮤지션이니만큼 다음 영화음악 작업에서는 좀 더 그의 색깔을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 윤성은의 Pick 무비 / 현실 공포가 온다, ‘타겟’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대되기도 했던 ‘잠’(감독 유재선)은 남편의 수면장애로 비롯된 신혼부부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남 일 같지 않은’ 현대인들의 불안감, 층간소음 등의 문제가 소재화되어 등장인물들의 괴로운 상황에 십분 이입하게 된다. ‘그녀의 취미생활’ 또한 폐쇄적인 마을에서 발생하는 스릴러물이다. 가정폭력과 같은 사회적 이슈가 담겨 있고, 서로 다른 두 여성이 맺게 되는 연대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신혜선, 김성균이 주연을 맡은 ‘타겟’(감독 박희곤)은 중고거래 사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 더 오싹하다. 전국민이 중고거래 앱 하나쯤은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중고거래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온라인을 통한 중고거래는 같은 동네 주민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신용’을 기반으로 한다. 비대면 거래의 경우 선입금 후배송 시스템이 대부분이고 대면 거래는 얼굴을 알게 되는데다 만남의 효율성을 위해 연락처를 교환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신변노출의 위험성을 다분히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빈틈을 이용한 사기 범죄 건수와 금액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2022년 기준 경찰에 신고된 것만 하루 평균 228건에 달한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피의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타겟’의 ‘수현’은 중고거래 사기를 당한 후 경찰에 신고하지만 대응이 미흡한 것을 보고 혼자 인터넷을 뒤져 사기범의 행적을 알아낸다. 수현이 그가 남긴 게시물에 댓글을 달며 잠재적 고객들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응징하자 사기범은 수현에게 시키지 않은 음식 배달을 시작으로 사생활 침해까지 점점 더 심하게 수현을 압박해 온다. 수현이 저항하면 할수록 범행은 악랄해지고 물리적 위협까지 느낀 수현은 분노보다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사안의 심각성을 느낀 경찰이 수사를 맡지만 늘 한 발짝 늦게 범인의 그림자만 좇을 뿐이다. 영화는 초반에 이것이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나에게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위기감은 관객들을 이 영화에 몰입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범인이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라 살벌한 살인마임이 밝혀지는 중반부부터 ‘내 이야기’라는 흡입력은 다소 떨어진다. 물론, 묻지마 살인이 횡행한 지금, 어떤 범죄든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있는 안전지대는 없겠지만 말이다. 치안이 닿지 못하는 영역들,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닥칠 수 있는 공포 등을 대리 체험하고 나면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그러나 적어도 약 100분간의 러닝타임에서 느슨해지는 부분은 발견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필자소개>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3-09-25 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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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좌충우돌 시골소녀 상경기를 무대로 재구성 / 뮤지컬 ‘속속들이 모던한 밀리’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인기가 높은 뮤지컬 장르가 있다. 바로 코미디다. 공연장 나들이는 누구에게나 신나고 특별한 체험이고 그래서 모처럼 찾아간 뮤지컬 무대에서 왁자지껄 웃고 즐기는 체험은 비할 데 없는 추억이 되곤 한다. 영미권 공연가를 돌아보다보면 가장 흔히 등장하는 홍보 문구도 ‘Hilarious!’라는 표현이다. 공연장 주변 거리에 어느 언론사 혹은 평론가가 이런 표현을 썼다는 식의 자랑스런 홍보문구판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말로 ‘아주 우습고 재미있다’는 표현이다. 배꼽 잡느라 혼났다 쯤으로 의역할만하다. 아더왕의 전설을 영국의 인기 코미디언 팀인 몬티 파이튼이 재구성한 영화 ‘몬티 파이튼과 성배’를 다시 무대로 탈바꿈시킨 ‘스팸어랏’, 몰몬교도 이야기를 촌철살인의 포복절도할 스토리로 재구성한 ‘북 오브 몰몬’, 무조건 망해야 성공할 수 있는 어느 기획자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우스꽝스럽게 덧붙인 ‘프로듀서스’, 1960년대 발티모어를 배경으로 모든 종류의 선입견과 편견을 타파한다는 주제 속에 통통하고 귀여운 매력의 주인공 트레이시가 TV스타로 등극하는 이야기를 그린 ‘헤어스프레이’ 등이 2000년대 들어 큰 인기를 누렸던 대표적인 코미디 뮤지컬의 사례다. 신나고 웃고 박수치고 환호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부류의 작품들이다. 우리 관객들에겐 낯선 제목의 뮤지컬 ‘속속들이 모던한 밀리(Thoroughly Modern Millie)’도 빼놓을 수 없다. 1967년 만들어진 원작 영화를 무대화한 이 뮤지컬은 ‘모던하다’는 한마디에 목숨이라도 걸었던 1920년대 영미권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미국 시골마을인 캔자스시티 출신의 밀리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고향으로 돌아가는 왕복 버스 티켓을 찢어버린다. 반드시 뉴욕에서 ‘모던’하게 성공해서 부잣집 사모님이 되겠다는 다짐을 이뤄내겠다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길거리에서 만나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대도시의 현실을 일깨워주는 평범한 청년 지미다. 처음 희망대로 백만장자와 결혼하겠다는 밀리의 꿈은 이뤄질지, 지미와의 순수한 사랑을 또 어떻게 전개될지, 함께 여성들만 기거하는 호텔에서 지내던 절친 도로시의 행방불명에는 또 어떤 사연이 숨겨있는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시골 소녀의 좌충우돌 서울살이가 인기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 혹은 TV 드라마로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은 엇비슷한 줄거리의 ‘미국판 코믹 상경기’인 셈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뮤지컬 ‘속속들이 모던한 밀리’는 동명 타이틀 영화가 원작이다. ‘스팅’, ‘리틀 로망스’ 등을 연출했던 조지 로이 힐이 메가폰을 잡고, 주인공인 밀리 역으로는 ‘메리 포핀스’, ‘사운드 오브 뮤직’ 등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줄리 앤드류스가 등장해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렸다. 영화는 당시 6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4,000만달러의 박스 오피스 기록을 수립, 거의 7배에 가까운 잭팟을 터트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스크린에서의 흥행은 오스카상 7개 부문의 노미네이션 그리고 최우수 작곡상의 수상을 기록하며 절정을 이뤘다. 작곡자는 스티브 맥퀸이 주연을 맡아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던 영화 ‘대탈출’의 음악을 만들었던 엘머 번시타인이 참여했다. 무대용 뮤지컬에서는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번시타인의 음악들을 적절히 편곡하고 활용해 추억 속 콘텐츠의 화려한 부활을 완성시키는 묘미를 담아내기도 했다. 이제는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상으로 비춰질지도 모르지만 뮤지컬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미국에서 여성이 도시로 찾아와 직업을 구하고, 남성에 의한 구애의 대상이 되는게 아니라 본인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찾아나선다는 내용은 이 작품이 등장했던 시기를 감안하자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사실 당시 미국 젊은이들에게 ‘모던’이라는 말은 곧 현재하는 모든 질서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작품의 제목으로 쓰이고 있는 ‘속속들이 모던하다’는 문장의 의미는 ‘모던’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마치 하나의 유행과 감성, 또 신세대적 사고방식을 모두 새롭게 또 신선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자했던 그 시기 미국 젊은이들의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를 반영한 특별한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공연 포스터 그렇다고 작품 자체가 철학적 혹은 시대적 배경의 반영만 담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뮤지컬로 다시 제작된 ‘속속들이 모던한 밀리’는 브로드웨이 코미디 뮤지컬의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다고 평가받을 만한 완성도와 재미를 담아내 큰 화제가 됐다. 특히 관객으로 하여금 배꼽을 잡게 만드는 갖가지 세심한 연출들이 뮤지컬 곳곳에 배치돼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자면 가로로 등장했던 호텔 전광판이 중국어가 등장하자 세로로 뒤바뀌며 위에서 아래로 글을 읽는 중국식 활자문화를 재치있게 반영해 객석에서 폭소가 나오게 만든다던지, 사무실 여성 직원들에게 업무시간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 다그치던 미스 플래러니가 오히려 여성이라 공감을 가게 만드는 노랫말을 다른 여성 출연진들과 함께 부르며 몸매와 어울리지 않는 현란한 탭댄스 실력을 선보이는 극적 반전의 장면은 극장이 떠내려갈 듯한 폭소를 불러일으키는 재미를 선사해준다. 특히 이 뮤지컬의 대중적 인기는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고 평가할만하다. 매 장면 무릎을 치게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 무대를 보고 익살을 즐기는 재미를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밀리가 꿈에 그리던 스타일의 보스 - 트레버 그래이든 사장을 만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비서로서의 업무처리 능력을 알아보려 사장의 말을 타이프로 받아치는 속도 테스트가 등장하는데, 일명 ‘스피드 테스트’(Speed Test)를 치르는 장면이 전개된다. 코믹한 무대적 표현은 변형된 탭댄스로 한층 웃음을 자아낸다. 즉, 타이프 치는 소리를 책상에 앉아 스텝으로 리듬을 두드리는 탭 댄스의 발 박자 소리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더해 타이핑된 편지를 속사포처럼 다시 읽는 트레버의 노랫말은 그 장면 자체로 객석으로부터 환호와 박수를 자아내는 익살과 해학을 담아내 미소짓게 만들기도 한다. 뮤지컬 ‘속속들이 모던한 밀리’는 굳이 형태적으로 구분해보자면 무비컬로 구분지을 수 있다. 하지만, 무대는 영화의 그것을 넘어 흥미로운 재창작의 노력을 더해 새롭고 참신한 무대적 기법의 활용을 통해 인기를 누렸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유명 원작을 재활용할 때도 단순한 재연의 수준을 넘어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콘텐츠에 다시 새로운 생명력을 더해야 한다는 흥행 뮤지컬의 성공 방정식을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최근들어 드라마나 영화 등의 무대화가 늘어나고 있는 우리 뮤지컬계의 입장에서도 곰곰이 곱씹어 생각해봐야할 흥미로운 뮤지컬 창작의 기본 공식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3-09-22 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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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삶을 향한 위로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바람에 차가운 기운이 실렸다. 거침없이 세를 키우던 초록도 기운이 쇠한다. 자연도 마감의 시간에 돌입한 듯하다. 여름 끝자락에 백중(百中)이 있다. 불가에서는 승려들의 여름 기도인 하안거(夏安居)가 끝나는 백중날을 전후로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올린다. 부처의 제자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수행승들에게 공양을 올린 데서 유래하여, 해마다 음력 7월 15일이 되면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치러진다. 유명을 달리한 모든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천도재(薦度齋)로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합동 제사라 할 수 있다. 백중은 마지막 김매기를 마치는 '호미씻이'의 날로 예로부터 농부들의 명절이기도 했다. 여름내 구슬땀을 흘리며 매진했던 생업을 잠시 내려두고 목전에 둔 수확의 계절을 자축하며 풍요로운 결실을 기원하는 날이었다. 여염에서는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망자의 넋을 달래고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무하는 날이 백중이다. 추모 의식이 축제의 형태를 띠는 예는 오래된 기록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수서(隋書)』 「동이전」 」 고려조(高麗條)에는 ‘처음과 끝에는 슬피 울지만, 장례 때에는 북 치며 춤추고 음악을 연주하며 죽은 이를 보낸다’고 적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상가(喪家)에서 노래판을 벌였다거나 풍악을 울렸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진도 다시래기 상여놀음의 한장면 현존하는 사례로는 상여놀음을 들 수 있다. 상여놀이, 빈상여놀이, 호상놀이라고도 하며, 지역에 따라 생여도듬, 손모듬, 대돋움, 대뜨리, 대울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무병장수하며 행복하게 살다 간 사람의 초상일 때 출상 전날 빈 상여를 메고 노는 놀이이다. 북이나 장구 등을 치며 집집마다 돌아다니기도 하고 상여꾼들이 상엿소리를 하며 마당을 돌기도 한다. 망자를 떠나보낸 이들을 위로하는 한편 상여꾼들이 서로 입과 발을 맞춰보는 예행연습을 겸한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도의 다시래기도 일종의 상여놀음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이야기가 담긴 가무악극의 형태를 띠며 아이를 낳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점이 흥미롭다. 청송 추현상두소리 상엿소리는 죽은 이를 이승에서 떠나보내며 마지막으로 부르는 노래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대목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상엿소리는 망자의 여한과 유족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 외에 상여를 나르고 묘지 만드는 절차에서 일꾼들의 힘을 북돋우는 노동요로서도 기능한다. 일련의 과정들에서 이름을 따 행상소리, 영장소리, 달구소리, 회다지소리 등으로도 불린다. 상여꾼들이 메기는소리와 받는소리로 나누어 노래하는데 지역에 따라 메기는소리를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거나, 여성 상여꾼이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횡성 회다지소리 상장례 문화가 바뀜에 따라 오늘날 상여 행렬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상두계를 조직해 마을에 초상이 나면 상여를 함께 옮기던 상여꾼들도 없고 대부분의 상엿소리 역시 시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공주와 부여 등에서는 지난해와 올해 시연 행사가 열렸고 지역의 장례 문화를 특화한 횡성회다지소리축제는 올해 35회를 맞이했다. 지난해 나온 「남도무형문화예술시리즈 12 상여소리」 음반에는 6~70년대 연구자들이 채록한 옛 상엿소리 음원 열일곱 곡이 담겨 있으며, 국악아카이브 사이트(archive.gugak.go.kr)에서 들어볼 수 있다. 한편 「황민왕의 비나리」 음반에 실린 ‘상여소리’는 고성오광대 제5과장의 상엿소리를 들소리 2집 음반 「너허넘차」에 실린 ‘너허넘차’와 ‘산정풍류’는 경기도 양주와 포천의 상엿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곡들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잠시 붙잡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필자소개>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3-09-15 1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