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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베토벤의 전쟁 영화 OST? 베토벤의 전쟁 교향곡 <웰링턴의 승리>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군을 지휘했던 웰링턴 공작181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된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 Op.91. 15분 남짓한 곡이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때 고전시대에 영화가 존재했다면 영화 OST로 제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베토벤의 음악이 생생하게 묘사한 군대행진과 전쟁씬은 20세기 흑백 시대극 배경음악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 전쟁 교향곡 '웰링턴의 승리'는 스페인 비토리아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한 웰링턴 장군이 이끌던 영국군의 승리를 기념하는 작품으로 메트로놈을 발명한 멜첼이 의뢰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초연 무대에 100여명의 연주자가 참여했고 살리에리,훔멜,마이어베어와 같은 빈의 주류 음악가들이 연주자로 합세했으며 대포, 소총 소리까지 안배하여 극적효과를 배가시켰다. 드라마틱한 음악 속에 스펙터클한 효과를 노린 웰링턴의 승리는 베토벤 교향곡 7번과 함께 연주되었으며 연주회는 대중의 뜨거운 환호 속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전세가 나폴레옹 대군과 맞서던 동맹군쪽으로 기울고 있었던 기류도 작용했을 터. 그렇다면 현시대에 이 작품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결과적으로 몇 안되는 작품성이 결여된 베토벤의 그저 그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연주가 되는 경우도 드물다. 20세기 중반 클래식 작곡가들을 집대성한 책으로 잘 알려진 <Men of Music>이라는 책에서 웰링턴의 승리는 ‘돈벌이를 노린 형편없는 작품'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작품이 평가절하된 이유를 몇 가지를 꼽자면 전쟁을 주제 삼아 음악이 가벼운 표제음악적 셩격을 띄고 있다는 것. 전쟁의 서사에 결부하여 음악이 극적 내용에 치중하다보니 예술적 심미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평가받는다. 또 다른 이유는 베토벤 특유의 구조적 혁신을 찾아보기 힘들고 음악적 밀도도 낮은 편이다. 화성적으로는 대부분 예상가능한 진행을 견지하고 대위법적인 진행 또한 치밀하지 않다. 피상적인 효과에 치중했다는 평이 지배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을 한편의 단편 전쟁 영화에 흐르는 영화음악을 떠올리듯 현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일단 이 곡에 대한 관점은 스펙터클한 요소가 부각된 이벤트적인 목적성을 가진 작품이라는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공연의 목적 자체가 부상병의 사기 고취와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함이 아닌가. 애초에 상업성을 고려했던 베토벤은 두둑히 수입을 챙길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총 2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의 주제는 <전투>다.전쟁을 알리는 시그널과 함께 영국군의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이어서 좀 더 경쾌한 템포의 프랑스군의 행진이 뒤를 잇는데 다이나믹을 통해 효과적으로 거리감을 묘사하며 점점 가까워지는 군대의 행진을 묘사했다. 각 나라를 상징하는 군가와 더불어 격렬한 전투장면이 음악으로 생생히 묘사되는데 특히 '돌격 행진곡(Sturm Marsch)'은 오늘날의 전투씬 배경음악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현대적 감성이 묻어난다. 또한 곳곳에 안배된 소총과 대포소리가 현장감을 더한다. 전투가 잦아들며 프랑스군의 패전 기색이 음악에 묻어나는데 베토벤은 템포를 늘리고 키를 단조로 바꿈으로써 우울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한다.흥미롭게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쟁 영화 <덩케르크> 후반 장면에 영국을 상징하는 배경음악으로 에드워드 엘가의 '님로드'가 쓰이는데 템포를 늘리고 질감을 현대적으로 변형시킨 영화음악 작곡가 한스 짐머의 음악적 내러티브와 묘하게 닮아 있다. 2부의 주제인 <승리 교향곡>에서 베토벤은 영국의 국가 'God save the King'을 쉽고 단순한 관현악법으로 풀어내고 대중의 취향을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국가 선율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위기가 연출하는데 pp로 시작하는 단촐한 푸가토에서 점진적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음악은 '베토벤'다운 대가적인 면모가 드러남과 동시에 짜릿한 감흥을 선사한다.베토벤의 전쟁 교향곡 '웰링턴의 승리'는 각 잡고 듣는 진지한 음악이 아님에는 분명하나 전쟁 상황 속으로 대중들을 몰입시키고 승리감을 선사하는 심플하고 명확한 음악어법을 통해 대중성을 꾀한 베토벤의 상업적인 작품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유럽 시대극 전쟁 영화의 OST를 감상하듯 동시대적 감성으로 이 작품을 감상해도 큰 무리가 없다. 깊이와 심미성을 추구하는 베토벤의 음악이 있는가 하면 '웰링턴의 승리'와 같은 대중의 눈높이에 부합한 베토벤의 음악이 있다. 추구하는 목적성이 다를 뿐 모두 가치있는 음악이다. 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R_ibES7i-HU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4-04-05 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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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특별인터뷰> 데뷔음반 발매기념공연 갖는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탁월한 연주력과 폭넓은 음악성으로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오는 1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데뷔음반 발매를 기념하는 공연을 갖는다. '한수진 리사이틀 with 워너클래식'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날 공연은 멘델스존과 프랑크, 그리고 비발디와 몬티 등의 작품들로 채워진다. 또한 유럽에서 활동한 연주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OTO)과 함께 연주하고 피아니스트 신재민과 호흡을 맞추는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공연을 앞둔 한수진 연주자를 최근 약업신문이 만나 이번공연의 구성과 레퍼토리, 그리고 그녀의 음악관에 대해 들어 보았다. <편집자> 4월15일 열리는 한수진 공연 포스터 워너클래식에서 ‘An die Musik’ 라는 타이틀의 데뷔 음반 발매를 앞두고 있다. 소감을 듣고 싶다.- 음반 제목을 ‘음악에 붙여’라고 한 것처럼 첫번째 음반인 만큼 작곡가와 저와 팬들을 하나로 이어준 사랑하는 음악 자체에 헌정하는 마음으로 준비했기에 그 첫 모습이 과연 어떻게 비칠지 설레임 가득하게 기다려집니다. 세계적인 음반사에서 내놓는 첫 음반이라는 점에서 매우 각별할 것 같다. 음악가로서 레퍼토리 선정을 비롯하여 음반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본인의 음악적 방향성이 궁금하다.- 음반을 듣는 분들을 마치 연주회에 모신 것 같은 의도로 음반 구성을 리사이틀 형식으로 했고, 제 인생에 소중한 기억들을 담은 곡들로 프로그램을 꾸몄습니다. 첫 곡인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376은 저의 음악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셨던 펠릭스 안드리예브스키 선생님과 11살 때 처음 공부했던 곡이고 연주할 때 늘 곡 안에 담긴 스토리가 너무 예쁘고, 신나기도 하고, 천진난만하기도 해서 모차르트를 만나는 느낌이 들어 최근까지 연주해왔던 인생 동반자같은 곡이예요.둘째 곡인 프랑크 소나타는 18살때 런던 위그모어홀 독주회에서 연주한 곡이어서 의미있고,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 같은 곡이라 늘 제 가슴을 뜨겁게 하고 어느덧 제 아이덴티티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비버 파사칼리아는 이순열 평론가님께서 저에게 매우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추천해 주셔서 곡을 탐구하는 동안 그 안에서 수많은 보물같은 순간들을 발견하게 되어 여러분과 나누게 되었습니다. 슈베르트 ‘음악에 부쳐'는 가사내용이 특히 긴 치료로 암흑같은 터널 속에 있었던 시기의 저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고 동시에 제 고백과도 같아 성악곡이지만 수록하게 되었습니다. 4월 1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데뷔 음반 발매 기념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 공연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음반 발매 기념 리사이틀이지만, 반드시 음반에 수록한 작품으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1부는 음반에 수록된 프랑크 소나타를 피아노와, 2부는 워너 클래식스와 논의한 끝에 일반적이진 않지만 규모를 키워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결정했고, 청중분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비발디 '사계'를 선곡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씨는 최근 작곡가 막스 리히터가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비발디 사계 연주로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이끌어낸 바 있다.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바로크 시대의 비발디 사계가 가진 매력이 궁금하다.- 비발디 사계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을 소리로 그려낸 듯한 그래서 소리만으로 자연을 경험하게 하는 특별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실제로 악보를 보면 비발디가 음표뿐 아니라 시로 어떤 자연의 모습을 표현해야 하는지 간단한 다이렉션을 주어 연주자가 거기에 담긴 자연의 소리들을 상상력을 통해 전달하게 되죠. 사계가 연주되기 시작하면 연주자와 청중 모두가 비발디가 이끄는 다른 시간과 공간 속으로 빠져들어 거기서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고 경험하며 힐링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비발디의 고마운 의도 아니었을까 싶어요. 유럽에서 활동한 연주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과 꾸준히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번 데뷔 음반 발매 기념 공연에 함께하는 소감은?- 첫 리허설을 잠시 해보았는데 이전에도 느꼈듯이 많은분들이 저와 같은 유럽의 배경 속에 음악활동을 해온 분들이라 호흡이 자연스럽게 맞는 것 같고 그래서 앞으로 함께할 여정이 많이 기대됩니다. 특히, 한 마음으로 같은 결의 언어로 음악을 풀어내려는 센스와 열정이 있는 오케스트라여서 곡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습니다.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와 한수진. 세계적인 명기로 잘 알려진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공연장에서 다양한 작품과 함께하는 악기와의 관계가 각별할 것 같다. 사용하는 악기와 만나게 된 계기와 악기의 특징이 궁금하다.- 저의 멘토이셨던 사랑하는 (고)로즈마리 라파포트(전 영국왕립음대 바이올린 교수이자 퍼셀음악원 설립자)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세계적인 현악기딜러인 찰스 비어께 저에게 가장 좋은 악기를 찾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셨고 찰스 비어의 소개로 익명의 악기 소장한 분으로부터 1666년산 스트라드를 받아 평생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미스 스트라드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성격이 비교적 덜 까다로운 악기이지만 가끔은 미스 스트라드가 맞춰달라는 요구도 한답니다. 소리가 매우 깊고 맑습니다. 특히 고음이 참 예쁘고요. 제가 악기를 전혀 연주하지 못했던 5-6년간의 시절에도 조용히 제곁을 지켜준 고마운 친구이고 그래서 저에겐 소을 메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올린스트 한수진은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2위 입상과 함께 음악평론가상, 방송 청취자상 등 7개의 부상을 받으며 크게 주목받았다. 이후 코리안 심포니와 정명훈 지휘로 한국 무대에 데뷔했으며, 안드라스 쉬프, 기돈 크레머, 프란스 헬머슨 등과 실내악을 연주하고 런던 심포니, 포즈난 필하모닉,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 등과 협연하면서 국내외 다양한 무대에서 왕성한 연주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또한 외교부 문화외교 자문위원 및 한-태도국 정상회의 자문위원 등 한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예술가로 대내외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2023년 대한민국예술원 젊은예술가상 음악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현재 1666년 산 Antonio Stradivarius로 연주하고 있다.
2024-04-02 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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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https://youtu.be/kv1EbzOSNN8?feature=shared시, 그림 그리고 음악 시 '섶섬이 보이는 방'은 나희덕 시인에게 소월시문학상을 안겨준 작품 중 하나다. 과거 그 방에 살았던 화가 이중섭의 삶이 시의 주된 내용이다. '게를 그리는 아고리',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 질 때까지 놀았다' 등의 표현은 시인의 상상력이 화가가 남긴 그림들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예술 작품이 모티브가 되어 또 다른 작품을 낳은 셈이다. 시의 제목은 이중섭이 그린 그림,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중섭은 한국 전쟁 중에 제주도 서귀포에서 가족들과 피란 생활을 했다. 당시의 피란 생활은 누구에게나 고달픈 일이었겠으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이중섭에게는 가족과 함께 보낸,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이때 그린 것으로 알려진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그의 그림 중에서도 평화롭고 아늑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생활고로 인해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제주 생활이 끝나고 이중섭은 가족과 헤어져 홀로 남겨졌다. 천신만고 끝에 일본으로 건너가 있던 가족과 재회하였으나 며칠 만에 다시 헤어지고 만다.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삼 년 남짓 버텨낸 그는 끝끝내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한다.이건희 회장이 소장하고 있던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2021년 제주도에 기증되어, 이중섭미술관에서 보유하고 있다. 이중섭의 가족이 살던 서귀포 집 근방에 자리 잡은 이중섭미술관에서는 섶섬이 내려다보인다. 주변의 풍광은 달라졌어도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는 섶섬만큼은 그의 그림에서처럼 한가로이 푸른 바다에 잠겨 있다.국악곡 중에도 같은 제목의 창작곡이 있다. 계성원 작곡가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작곡가는 한때 이 한가로운 풍경 안에 있었던, 그리고 이후 그 풍경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살았을 화가의 삶을 거문고와 18현 가야금에 담아 음악으로 표현했다.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두 악기가 선율을 주고받으며 전개하는 명주실의 울림은, 흔들리는 물결 위에 흔들림 없이 솟아 있는 섬과 함께 위태로웠던 시대에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자 했던 화가의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곡은 가야금 연주자 정길선의 「가야금 창작음악 작품집Ⅱ」에 수록되었으며, 유튜브를 통해 여러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 대금 연주자이자 지휘자이기도 했던 이상규 작곡가는 정악과 민속악을 아우르는 풍성한 음악적 자산을 기반으로 백여 곡을 창작해 창작 국악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신석정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들이 많다. 작곡가에게 대한민국 작곡상 대통령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 역시, 신석정 시인의 시 ‘대바람 소리’에서 받은 감동을 악보에 옮긴 동명同名의 대금 협주곡이다.시인 신석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그리고 제일의 전원시인이라 일컬어진다. 자연물이나 전원생활에서 소재를 찾은 그의 시들은 목가적이고 서정적이라는 평을 주로 받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식민 치하에서 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삶의 이력을 훑다 보면 지사志士와 같은 시인의 면모가 시에 스며있음을 깨닫게 된다. 신석정 시인의 마지막 시집 제목이기도 한 시 ‘대바람 소리’에서,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하고 악지론의 마지막 구절을 읊는 화자의 모습에서는 야욕이나 탐욕 따위와 맞서는 초연함 혹은 결연함마저 느껴진다.작곡가 이상규는 2004년 회갑을 기념해 작곡집 두 권을 엮고, 2006년 대금 곡들로만 엮은 세 번째 작곡집을 낸다. 작곡집의 부제는 ‘대바람소리’로, 첫머리에도 대금 독주곡 ‘대바람소리’의 악보를 실었다. 관현악과의 협주곡을 가야금, 장구 반주와 함께 연주하게끔 편곡한 곡이다. 대금 협주곡 ‘대바람소리’ 도입부는 현악기로 은은하고 느긋하게 시작해 관악기와 만나며 풍성해지고, 대금 독주로 이어진다. 대금은 특유의 청명한 음색을 청중에게 또렷이 각인시키며, 배경 음악처럼 잔잔하게 그리고 때로는 웅장하게 고조되는 관현악과 조화를 이룬다. 일본식 이름과 일문 시 쓰기를 거부하고 평생을 시작時作과 교육에 헌신한 시인과 국악 관현악단의 가운데에 지휘자로 우뚝 서 있는 백발의 작곡가. 대금이 홀로 연주하는 고요한 선율을 듣다 보면 그 두 사람이 언뜻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유튜브에는 작곡가가 직접 지휘한 KBS국악관현악단(1996년)과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2009년)의 ‘대바람소리’ 연주가 남아있다. 이중섭 ‘섶섬이 보이는 풍경’(서귀포시 공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kv1EbzOSNN8?feature=shared ‘섶섬이 보이는 풍경’(작곡 계성원/가야금 문세미/거문고 나선진) (KBS전주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q0sYyN7qtMw?feature=shared 대금 협주곡 ‘대바람소리’(작곡․지휘 이상규/대금 박용호/ KBS국악관현악단)(KBS국악관현악단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e8iZAsSFJrU?feature=shared <필자소개>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4-04-02 1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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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음악으로 완성한 현실 동화, ‘웡카’ 어릴 적, 로알드 달 원작의 ‘찰리와 초콜릿공장’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평생 그 상상력을 잊지 못할 것이다. 로알드 달이 창조한 공장은 온갖 신기한 초콜릿과 사탕들이 만들어지는 곳으로, 괴짜 공장장 윌리 웡카와 팔뚝 크기만한 움파룸파족을 만날 수 있는 환상의 세계다.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하고 조니 뎁이 주연을 맡았던 2005년작이 가장 유명하다. 지난 1월 말에 개봉해 3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길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웡카’(감독 폴 킹)는 원작에 없는 윌리 웡카의 전사(前史)를 창작해 뮤지컬로 구현한 작품이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와도 내용상 이어지는 부분이 거의 없는, 동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다. 웡카는 고아에 빈털터리지만 누구나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길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는 디저트의 성지인 ‘달콤 백화점’에 자신만의 초콜릿 가게를 열기로 한다. 그러나 사기꾼들에게 휘말려 하룻밤에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기성 초콜릿 기업가들이 공무원까지 매수해 가며 웡카의 일에 훼방을 놓자 그는 위기에 빠지고 만다. 그럼에도 늘 긍정적이고 밝은 웡카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룰 방도를 찾아낸다. 동화책을 펼쳐놓은 듯 아기자기한 마을과 뮤지컬 넘버들이 잘 어우러지며 젊은 웡카의 파란만장한 창업 스토리를 완성시킨다. 음악을 맡은 조비 탈보트는 코미디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작곡가로, 깨알 같은 유머부터 블랙코미디까지 ‘웡카’의 다양한 상황들과 그에 따른 인물들의 감정을 음악으로써 탄탄하게 뒷받침해냈다. 특히, 기존의 웡카 캐릭터와 달리 ‘웡카’의 웡카는 순박하고 때묻지 않은 청년이기 때문에 그가 부르는 노래들은 클래식한 코드 진행을 기본으로 하되 현대 악기를 섞어 편곡한 점이 눈에 띈다. 티모시 샬라메의 소년미, 달콤한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잘 알려진 노래는 중독성 강한 ‘움파룸파 송’일 것이다. 이 노래는 사실 1971년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감독 멜 스튜어트)의 움파룸파 노래 후렴구의 가사와 멜로디를 활용한 곡인데, 단순한 리듬과 멜로디 때문에 한 번만 들어도 쉽게 따라부를 수 있어 어린 관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출연 분량은 적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휴 그랜트의 코믹한 모습도 티모시 샬라메의 꿈꾸는 듯한 미소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어떤 노래든 한 편의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해준다면 제 몫을 해낸 것이 아닐까. 윤성은의 Pick 무비현생은 다음 생의 전생, ‘패스트 라이브즈’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이 되면서 그간 국내에 개봉되지 않고 있던 후보작들이 하나, 둘 베일을 벗고 있다. ‘기생충’(감독 봉준호, 2019)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후, 윤여정 배우가 ‘미나리’(감독 정이삭, 2020)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인들에게 아카데미 시상식은 심리적으로 한층 가까워졌다. 그러나 재작년과 작년의 후보작 리스트에서 우리 영화나 영화인들은 찾을 수 없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1)이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할리우드 내부에서도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있었지만, 아카데미의 벽이 높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러나 올해는 한국계 감독들이 두 명이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2023)의 셀린 송 감독과 ‘엘리멘탈’(2023)의 피터 손 감독이 그 주인공들이다. ‘엘리멘탈’은 작년 6월에 개봉해 723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바 있지만, ‘패스트 라이브즈’의 한국 개봉은 상당히 늦은 편이다. 작년 초,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되었을 때부터 극찬을 받은 데다 유럽과 아시아권 몇몇 나라들에서는 이미 개봉했기 때문에 국내 영화팬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코 앞에 두고서야(3월6일 개봉) 극장에 걸린 ‘패스트 라이브즈’는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오묘한 빛깔을 가진 영화다. 12살의 ‘해성’(유태오)과 ‘나영’(그레타 리)은 단짝 친구이자 서로의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나영의 부모님이 캐나다로의 이민을 결정하면서 두 사람은 기약 없이 헤어지고 만다. 12년 후, 나영은 SNS를 통해 해성이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그 때부터 이들은 자주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키운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현실을 먼저 직시한 나영이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연락을 끊자고 제안하고, 이들의 관계는 다시 긴 공백기를 맞이한다. 그렇게 또 한 번의 12년이 흐른 어느 날, 해성은 나영을 만나러 뉴욕으로 간다. 나영이 7년 전에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와의 재회는 해성의 인생에서 한 번쯤 꼭 필요한 도발이었던 것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같은 동네에서 자랐던 두 사람이 다른 공간과 문화에 놓이게 되면서 걷게 되는 사뭇 다른 인생을 보여준다. 해성은 군대에 갔다 왔고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을 했고 아직 부모님과 살고 있다. 노라라는 새 이름이 생긴 나영은 혼자 뉴욕에 정착해 작가 에이전시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한다.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뭔지 모를 아쉬움 이외에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인연과 전생(past lives)에 대한 관념 뿐이다. 헤어지기 직전에 두 사람은 그들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영, 아니 노라의 남편을 바로 옆에 두고 나눈 그 대화가 아슬아슬하면서도 기어이 선을 넘지 못하는 것은 그들 사이에 떨어져 있었던 시간만큼이나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둘 다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성도 노라도 자신이 행복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믿을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 그러니 할리우드 영화인들에게 어쩌면 이 영화는 MZ세대 버전의 ‘카사블랑카’(감독 마이클 커티즈, 1942)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1995)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감히 멜로드라마의 고전들을 복기시킬 만큼 셀린 송 감독은 세련된 감수성으로 세 남녀의 복잡미묘한 시선을 잘 포착해냈다. 8천 겹의 인연이 현생을 결정하는 것처럼, 단선적으로 보이는 내러티브 안에는 여러 층위가 있어 다양한 해석도 가능하다. 아카데미상 수상여부와 관계없이 서정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필자소개>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윤성은의
2024-03-25 1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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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A+ 천사들과 괴짜 선생의 유쾌한 반란, 뮤지컬 ‘스쿨 오브 락’ 월드투어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최신작이자 또 다른 히트작, 뮤지컬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 월드투어가 한국 관객들의 마음을 로큰롤의 물결로 물들이고 있다. 뮤지컬 ‘스쿨 오브 락’ 공연장면 ©애스앤코2019년 한국 초연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스쿨 오브 락’ 월드투어는 지난 1월 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여전히 강력한 에너지와 생생한 라이브 연주로 재미 그 이상을 선사한 작품은 오는 3월 24일까지 예정된 서울 공연을 마친 후, 4월 2일부터 마지막 도시인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 2주간의 여정을 이어간다. ‘스쿨 오브 락’은 2003년에 개봉한 잭 블랙 주연의 동명 코미디 영화로 유명세를 탔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 등으로 잘 알려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꿈을 잃지 말라’는 희망적 메시지와 함께 커다란 인기를 끌면서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뮤지컬은 이런 영화를 바탕으로 무대에 어울리는 옷을 갖춰 입으며 2015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새롭게 탄생했다. 뮤지컬에 담긴 넘버들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직접 작곡했고, 공연은 모두 100% 라이브로 진행된다. 그는 이 작품을 가리켜 ‘음악이 가진 힘에 관한 이야기’라 말했다. 실제로 작품에서는 클래식부터 시작해 팝, 파워풀한 록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폭넓게 만나볼 수 있으며, 배우들 역시 오페라 아리아와 발라드 등을 소화해 내면서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펼쳐 보인다. 공연 포스터 © 에스앤코 공연장에 들어서면 푸른 빛의 강렬한 조명이 무대 양옆을 밝힌 가운데 어두운 무대 중앙에 놓인 드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절친한 친구를 대신해 신분을 속이고 명문 사립학교 호러스 그린의 대리 교사로 근무하게 된 듀이 핀은 록 밴드에서 퇴출당한 뒤 생활고에 허덕이는 빈털터리 기타리스트다. 언젠가 반드시 록 음악으로 성공하리라는 생각 외에는 별다른 고민조차 없어 보였던 듀이에게, 엄격한 규율과 규칙으로 무장한 학교는 새로운 도전정신을 일깨워 준다. 그것은 바로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과 록 밴드를 꾸려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일이었다. 명문대 진학만을 목표로 학업에만 충실했던 아이들은 듀이의 가르침에 따라 클래식 악기 대신 전자기타와 키보드, 드럼 등을 다루며 선생님과 부모님 몰래 경연대회 준비를 시작한다. 온몸이 부서질 듯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듀이와 함께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영캐스트들은 대부분 5, 6세부터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독학으로 악기를 익혀 밴드 활동을 하는 ‘리틀 빅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160분 동안 이어진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는 열정과 뛰어난 실력으로 무대 위를 누비는 평균 연령 12.5세 영캐스트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저절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 든다. 브로드웨이에서 듀이 역으로 데뷔한 이후 월드투어를 이끌며 “잭 블랙 그 이상의 에너지”라는 찬사를 받은 코너 글룰리도 반갑다. 한국 월드투어 재연과 함께 5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그는 원작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과 변함없는 열연으로 ‘자격 없는’ 괴짜 교사이자 꿈 많은 아티스트를 그려냈다. 땀과 열정으로 가득한 코너 글룰리의 무대는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의 중심을 탄탄히 잡아주는 핵심이다. 뮤지컬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 등장한다. 소통의 부재가 만연한 사회에서 좀처럼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가족들, 언제나 1등 만이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고 말해온 세상, 뛰어넘기 어렵게만 보이는 각종 장애물까지 놀랍도록 우리 현실과 똑 닮았기 때문이다. 록 음악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힘이자 연결을 위한 매개로 작용한다. 그때 그 시절, 젊은 세대를 위한 언어로 기능하며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진 헤비 록 사운드는 음악이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하지 말라는 것은 전부 해버리라”면서 “외치고 부르짖고 다 때려 부수자”던 아이들의 외침은 어느새인가부터 단순히 권력자에게 맞서기를 주문하듯 들리지 않는다. 결국 우리를 붙드는 궁극적 요인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고, 끊임없이 꿈꾸며 계속해서 노력하기를 작품은 말하고 있다. 언젠가 찾아올 기적의 순간,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이 보낸 응원은 가슴 한편에 접어둔 추억의 페이지로 펼쳐져 꿈을 향해 달리기 위한 동력이 될 것이다. <필자소개>최윤영 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 바 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 왔고 현재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4-03-13 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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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 막스 리히터와 틸다 스윈튼현재 클래식의 연금술사로 불리며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슈퍼스타급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막스 리히터.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이라는 '비발디 사계'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가 2012년 앨범으로 발매되어 22개국 클래식 차트 1위를 석권하며 막스 리히터라는 이름을 클래식계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루핑, 리듬의 변칙적 구성 등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에 담긴 참신한 작곡 기법 외에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작곡 기법이 있는데 낭독조의 육성과 현악 체임버 사운드를 결합한 것이다. 가디언지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클래식 앨범'으로 잘 알려진 <The Blue Notebooks> 속에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를 낭독하는 여배우 틸다 스윈튼의 목소리, 9번째 앨범<Voices> 속에 등장하는 세계인권선언문에 등장하는 다양한 언어의 목소리들. 막스 리히터 특유의 일렉트로닉 요소들이 가미된 현악 앙상블과 조화를 이루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육성과 음악을 조합시킨 작곡 기법으로 궤를 함께하는 음반으로서 비교적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앨범이 하나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텍스트를 담은 그의 세 번째 앨범으로 타이틀은 <Songs from before>. 하루키의 세계관을 닮은 막스 리히터의 면모가 엿보이는 음반이다.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연결고리가 선뜻 와 닿지 않을 수 있는데 막스 리히터는 평소에 지인들로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했다고 한다. 마침 막스 리히터가 공연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하루키의 소설책 하나를 구입하는데 그 책의 제목이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이다. 하루키와의 첫 만남인 셈. 막스 리히터는 한 인터뷰에서 "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루키의 세계관에 반했으며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그는 해변의 카프카, 스푸트니크의 연인, 1Q84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을 하나씩 탐구해 나아갔는데, 막스 리히터의 미니멀리즘에 대한 안목이 있다면 하루키의 문학이 막스 리히터가 추구하는 음악과 정서에 부합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하루키 특유의 문체는 소박하지만 강렬하게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점이 포스트 미니멀리스트 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매우 닮아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 우아하지만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며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하루키의 철학이 와닿는다"라고 했다. "현재의 문화 트렌드는 '더 큰 스케일, 더 큰 소리, 더 많이'로 요약될 수 있는데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덧붙임과 함께.세 번째 음반 <Song from before>에서 그는 노르웨이의 숲, 태엽 감는 새 연대기 등 하루키의 소설에서 텍스트를 추출하여 음악 속에 배치했고, 막스 리히터와 절친한 뮤지션이었던 로버트 와이엇이 낭독을 맡았다. 영국 주요 평단으로 부터 영국배우 틸다 스윈튼이 참여했던 <The Blue Notebooks>의 작곡 양식을 이어받아 텍스트와 음악이 조화롭다는 호평을 받았는데 특히 절제된 구성 속에 음악적 긴장감을 유도하는 서사적 흐름이 놀랍다.예를 들어 두번째 트랙 'Flowers for Yulia'의 도입부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라디오 노이즈 효과음을 바탕으로 하루키의 소설 <댄스 댄스 댄스>의 텍스트가 낭독된다. "I'd venture into the city with the first gray of dawn and...". 텍스트가 묘사하는 동틀 무렵 도시 속의 적막한 기운이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묘사되고 있고 이어 등장하는 다소 스산한 바이올린의 고음(高音)이 텀을 두고 반복을 거듭하며 몰입감을 더하는데 멀리 비현실적으로 들렸던 사운드가 말미에 바로 앞에서 실연으로 들리듯 선명한 사운드로 전환되는 효과가 압권이다.하루키의 대표적인 세계관인 비현실과 현실의 '모호함'이 음악 속에 드러난 게 아닐까. 음악과 텍스트 낭독의 조합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작곡 양식이지만 소박함 속에 거장다움이 서린 창작물을 내놓는 두 창작자의 닮은꼴이 앨범 <Song from before> 속의 음악에 특별함을 더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동시대 문화와 소통하며 시류를 반영하여 작품 속에 녹여내는 막스 리히터의 행보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4-02-29 1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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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오래 사랑받던 오페라를 뮤지컬로 환생시키다_뮤지컬 렌트뮤지컬 렌트의 원작은 다름 아닌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이다. 푸치니의 대표작중 하나인 ‘라 보엠’은 190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가난한 시인 루돌프와 수예 바느질로 연명하는 독신 처녀 미미의 슬픈 사랑을 그리고 있다. 뮤지컬은 이 작품의 배경을 20세기 뉴욕으로 바꾸었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가난한 시인 루돌프는 뮤지컬에선 대중음악가이자 로커인 로져로 탈바꿈됐고, 미미는 밤무대 무희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다. 화가였던 마르첼로는 독립영화를 꿈꾸는 젊은 독립영화 감독지망생인 마크가 됐고, 화려한 가수 무제타는 스트리트 퍼포머인 모린이, 집주인이었던 브누아는 대중음악 작곡가를 꿈꾸는 벤자민으로 변신했다. 등장인물들이 현대적으로 바뀌면서 이야기 역시 요즘 젊은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극적인 변화를 겪게됐음을 두말할 나위 없다.사실 바뀐 것은 등장인물뿐만이 아니다. 이야기의 소재들도 아주 현대적인 내용으로 탈바꿈됐다. ‘라 보엠’에서 파리 몽마르뜨 언덕에 사는 젊은 예술가들을 괴롭혔던 것이 추위와 배고픔, 가난 그리고 결핵이었다면, 20세기 뉴욕의 젊은 예술가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에이즈를 야기한다는 HIV 바이러스, 마약, 동성애나 양성애 그리고 뮤지컬 제목으로도 쓰인 ‘렌트’ 그러니까 우리말로 의역하자면 집세 혹은 월세쯤 되는 사악한 물질만능주의다. 예술가를 꿈꾸며 뉴욕에서 가난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젊은 예술가들의 고뇌와 번민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막을 올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젊은 예술가들의 치열한 이야기는 나라나 국경, 언어에 장벽이 없음을 증명시켜줬다. 다만, 국내에서는 초연 당시 객석 수가 많은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막을 올려 원작이 지니고 있던 가난하지만 꺾이지 않는 예술가들에 대한 실험정신은 반감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렌트’를 보여주기에는 너무 화려한 극장이었다는 불만인 셈이다. 원래 이 작품은 미국에서 첫 선을 보일 때에도 오프 브로드웨이의 소극장에서 초연됐던 탓에 화려한 세트나 장식보다 중독성 강한 음악으로 더 유명세를 누렸던 전력이 있다. 변화 없는 단출한 소규모 세트는 열혈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른바 ‘렌트 정신’의 구현이라 불리며 이 작품만의 매력으로 평가받았다. 오프 브로드웨이를 벗어나 뉴욕 중심가의 네덜란드 극장으로 공연장이 옮겨질 당시 ‘렌트’가 매력을 잃었다고 불평을 토로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줄거리는 화려하지 않은 무대가 훨씬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렌트’는 제작자인 조나단 라슨을 빼놓고 말하기 힘들다. 스스로가 가난한 젊은 예술가였던 라슨은 뮤지컬이 막을 올리기 하루 전날, 서른다섯의 나이에 급성대동맥혈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나친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렌트’의 주된 모토는 ‘오직 오늘밖에 없다(No Day But Today)’는 대사로 빈곤하고 어려운 일상 속에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페라와 달리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인 미미가 되살아나는 것도 바로 이런 주제의식의 반영 탓이다. 하지만 누구도 라슨의 삶이 이런 메시지의 실증적 사례가 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결국 조나단 라슨은 작품을 통해 예견된 삶을 살다간 전설적 인물이 됐다.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 2005년의 일이다. 무대 버전의 뮤지컬이 처음 등장한 것이 1996년이었으니 꼭 10년 만에 시도다. 영화의 연출은 ‘나홀로 집에’, ‘해리 포터’, ‘나인 먼스’, ‘판타스틱 4’등으로 유명한 크리스 콜럼부스가 맡았는데, 그는 대부분의 뮤지컬 초연 배우들을 스크린에서도 다시 기용해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원래 공연에서 오리지널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오리지널 캐스트 그러니까 초연 배우가 나오는 무대를 일컫는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영화는 말 그대로 ‘오리지널’ 뮤지컬 캐스트를 발탁해 영상화한 경우라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두 명의 주요 배역 - 미미와 조앤은 초연 배우 대신 젊은 여배우들로 대체됐는데, 10년여 세월이 흐른 탓에 초연 배우들이 원작에 적합한 젊은 모습을 더 이상 보여주기 힘들다는 프로듀서의 판단 때문이었다는 후문이 있다.등장하는 배우는 무대나 영화나 비슷하지만, 이야기를 펼치는 방식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있다. 일반적인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제작방식 - ‘익숙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시 새로운’ 콘텐츠의 재가공이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대사 보다 음악으로 진행됐던 무대 버전과 달리 영화에서는 자주 노래를 끊고 대사를 등장시키는, 그래서 보다 원활히 이야기의 배경을 납득시키는 방식이 선택됐다. 덕분에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고 무대에서만 즐길 수 있는 노래들도 있다. 또, 노래가 나오는 순서가 바뀌거나 영화만의 장면들도 추가됐는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무대와 영화를 비교해가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꼽아보는 감상법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무대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떄문인지 영화평론가들로부터는 극과 극의 상반된 리뷰를 받았지만, 컬트영화 팬들로부터의 호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오늘날까지도 스테디셀러로서 사랑받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의 공연은 지난 2008년 9월 7일 12년간 5124회의 연속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투어나 라이선스 버전은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말 공연을 포함해 ‘렌트’는 22개 언어로 번안돼 무대다 꾸며지는 진기록도 세웠다. 1996년에 발매된 오리지널 뉴욕 캐스트의 두 장짜리 음반도 뮤지컬이 궁금하다면 일부러라도 들어볼만하다. 두 장짜리 전곡수록 앨범은 마치 뮤지컬의 장면을 그대로 들려주는 것처럼 극적 전개를 뺴놓지 않고 담아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보너스 트랙이다. 맹인 흑인가수 스티비 원더가 출연진과 함께 부른 노래가 특별히 추가됐기 때문이다. 영혼마저 울린다는 스티비 원더의 하모니카 연주는 그야말로 감탄스럽다. ‘렌트’의 주제가 격인 노래는 ‘사랑의 계절들(Seasons of Love)’다. 일 년을 분으로 환산하면 525,600분으로 이뤄져있는데, 이 수많은 시간들을 사랑으로 채워보라는 노랫말이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는 백미를 이룬다. 뮤지컬에서 음악의 역할이 왜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멋진 노래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4-02-23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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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서촌 활성화 이끄는 아트의 위력, 마켓+비엔날레+미술관 연동한 기획의 장(場)”서촌(西村)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있는 지역을 뜻한다. 조선 시대에는 한성부 북부에 속하는 지역으로 2010년대 들어서는 세종마을(世宗―)로도 불리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왕족과 사대부, 중인들의 거주지로,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문인과 예술인이 자리 잡았다. 청와대가 국민품으로 돌아온 이후 더욱 각광 받는 서촌의 범위는 비교적 명확하다. 동쪽 경계는 경복궁, 서쪽은 인왕산, 남쪽은 사직로, 북쪽은 창의문과 북악산이다. 전통과 현대를 근대예술인들의 네트워크가 이은 이곳에 최근 새로운 길잡이의 아트스페이스가 들어섰다. 이름하여 ‘아트스페이스 서촌’ 아직 경계가 불분명한 이곳은 ‘실험적 동시대미술 기획으로 알려진 신제현 작가’가 메가폰을 잡았다. 아트스페이스 서촌, 살롱 중심의 네트워크 문화를 되살리다. 근대 살롱문화를 되살린 뉴트로 네트워크, 아트스페이스 서촌,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7)어느덧 청와대가 개방된 지 2년이 지났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 청와대 인근은 엔데믹 이후 북적이는 외국인들과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문화향유공간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청와대 권역의 K-관광 랜드마크 선포식을 열고 청와대 인근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 관광자원을 바탕으로 K-클라이밍, K-푸드, K-컬처, 전통문화 등을 주제로 10개의 테마별 도보 관광코스를 소개했다. 이러한 다양한 K-문화스퀘어(Culture Square) 현상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실험적 전시와 장르구분없는 네트워크의 장을 통해 확살될 수 있다. 2023년 봄 개관을 앞두고 있는 아트스페이스서촌은 지하1층~지상4층으로 이루어진 ‘예술놀이터’ 같은 공간이다. 청년 실험미술을 10여년 째 선도하고 있는 신제현 작가는 이곳을 동시대 예술의 다층적 실험과 전통의 현대화를 통한 ‘한국미의 발굴’, 청년작가 발굴을 위한 다양한 활동 등을 예고했다. 디렉팅을 맡은 신 작가는 “아트스페이스 서촌은 신진작가 인큐베이팅과 컬렉터 교육을 통해 동시대 미술 작가를 컬렉터들에게 소개하고 국제적인 작가를 발굴하여 세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으로 나아가려 한다.”고 밝혔다. 근대살롱문화를 되살리는 뉴트로 네트워크의 공간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One Year Project-회전하는 소리들, 신제현의 열린 공간해석 개관전 ‘일년 프로젝트’(2024년 2월중순~3월 31일까지)는 신제현 작가가 매년 새롭게 그림을 덧그리는 일 년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고백이다. 매년 변화하는 그림을 통해 작품과 함께 진화하는 작가는 ‘아트스페이스 서촌’과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애니메이션과 같은 미래를 구현한다. 2023년 제14회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과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에 노미네티스 된 신작가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청년 작가로 꼽힌다.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담론들을 주제로 삼아온 신작가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전통 미술 재료나 음악, 무용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대표작으로는 버려진 물건들로 악기를 만드는 <시간의 소리>와 배채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히든 사이드>, <마리를 찾아서> 그리고 10년 후면 사라지는 섬 또는 경제 관련 데이터를 자개 기법으로 표현한 <윤슬>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사라져가고 버려진 물건과 정보들을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마치 서촌의 과거를 오늘에 되살려 미래지향적 네트워크로 연결하겠다는 공간해석과도 연결된다. 신제현 작가 현장작업 이미지(출처_서울문화재단 공식 블로그)대표작 <히든 사이드>는 투명한 유리나 아크릴 판에 역순으로 그림을 그리는 배채법을 사용한다. 배채법은 얇은 비단이나 종이의 뒤에 채색을 하여 은은하게 색이 묻어 나오게 하는 한국의 전통기법이다. 신제현은 이 전통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투명한 판에 역순으로 그려 그림이 완성되면 이 그림을 반대로 돌려서 벽에 건다. 전통적인 서구 회화의 방식으로 본다면 캔버스의 바닥에 깔려 보이지 않는 밑 색이 가장 전면에 보이고 마지막에 칠한 색이 가장 뒤로 오게 되는 것이다. 마치 디아섹(diasec) 액자처럼 납작하게 눌린 물감들은 수백 번 수천 번의 덧칠을 통해 겨우 미끄러운 투명 아크릴 판위에 안착된다. 이 물감 덩어리들은 사실 회화라기보다는 아주 얇은 조각에 가까울 것이다. 마치 수행을 하듯 그린 그림들은 길게는 3년에 걸쳐 그리기도 한다. 이번 전시제목은 One-year project는 2005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작업으로 해마다 레이어를 올리며, 분류법칙에 따라 형식과 감각을 업데이트 하는 방식을 따른다. 컬렉터가 가져가면 끝나는 프로젝트로 나이테처럼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작업이 특징이다. 신제현 작가 One Year Project-회전하는 소리들 전시장 전경 우리가 신제현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미적 쾌감”을 건드리는 방식을 통해 하이엔드와 로우엔드의 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아카데믹의 허수’를 드러내는 기분을 공유하는가 하면, 한국전통 악기들을 라이프 퍼포먼스와의 결합을 통해 연결하고, 불평등한 위계관계의 해석을 통해 언어나 소리들을 시각화적으로 연결하는 작업 등을 선보인다. 전통미가 담긴 카테고리들이 다양하게 얽혀있는 서촌의 카테고리들이 신제현의 작가정신과 융합하는 느낌이다.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이전 세대까지 이어온 전통의 정체성을 글로벌한 브랜딩 속에서 공유하려는 시도, 정체성을 찾기 어려운 ‘혼돈과 가능성의 시대’에 외딴섬이 아닌 누구나 머물며 흔적을 남기는 신공간 창출은 작가가 향후 만들어갈 ‘융합형 프로젝트’와 함께 소개될 예정이다. 필자메모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4-02-16 1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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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카라얀의 테스트1986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베를린 필)의 악장으로 이제 막 서른을 넘긴 폴란드 출신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선임되었습니다. 그는 1957년부터 1985년까지 거의 30년 동안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역임한 전설적인 인물, 미셸 슈발베(M. Schwalbé, 1919-2012)의 후임이었지요. 그런데, 그가 본격적으로 악장의 역할을 시작하기도 전에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 v. Karajan, 1908-1989)이 그를 악장으로 선임한 오케스트라의 결정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었지요. 카라얀은 오케스트라에 “만일 이 바이올리니스트가 악장 자리에 앉는다면, 나는 즉시 떠날 것”이라는 강경한 어조의 전보를 보냈습니다. 1980년대 초반 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S. Meyer, 1959- )의 수석 연주자 선임 문제를 놓고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온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갈등은 점차 증폭되어서, 1980년대 중반 양측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카라얀은 당시 새 단원을 선발하는 오디션도 신경쓰지 않았지요. 아마도 카라얀은 악장 오디션에 참석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새 악장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던 듯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해도 카라얀은 종신 상임지휘자로서 베를린 필을 30여년 동안 이끌어 오고 있었으니, 오케스트라는 카라얀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었지요. 오케스트라 측은 새로운 악장에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악장 직을 수행하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불편하고 부담 가득한 이 상황에서 그는 문제될 것 없다며 분명하게 “Yes!”라고 대답했습니다.어느덧 카라얀이 이끄는 공연의 첫 리허설. 새로 선임된 악장이 악장 자리에 앉아있는 가운데, 카라얀이 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긴장이 흘렀고, 카라얀은 지휘자 자리에서 그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천천히 악수를 청했지요. 이윽고 리허설은 시작되었습니다. 카라얀은 떠나지 않았습니다.카라얀이 후에 “전도유망한 연주자이고, 그의 마음은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칭찬할 정도로 그의 신뢰를 얻은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은 다니엘 스타브라바(D. Stabrawa, 1955- ). 이렇게 베를린 필의 악장이 된 그는 2021년까지 35년간 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약하게 됩니다.당시 스타브라바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젊은 그가 세계 음악계에서 절대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카라얀이 자신을 악장으로서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에 화도 나고 위축될 법도 했겠지만, 그는 인터뷰에서 당시 ‘난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음을 밝혔습니다. 편안하게 느끼며 자신의 음악을 연주했는데, 이것이 카라얀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지요.그렇다면, 카라얀은 왜 처음에 스타브라바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일까요? 그의 실력에 의문을 품어서였을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베를린 필의 악장으로 선임될 정도라면 그 실력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요. 이에 대해 카라얀이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스타브라바는 이것이 일종의 테스트가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그가 쟁쟁한 음악가들이 모여 있는 베를린 필의 악장에 적합한 강인한 정신력을 갖춘 사람인지 카라얀이 그만의 방식으로 알아보려 했다는 것이지요.리허설에서의 다니엘 스타브라바(사진: Monika Rittershaus/www.berliner-philharmoniker)마치 압박 면접 같았던 카라얀의 테스트를 잘 통과한 스타브라바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카라얀의 큰 신임을 얻었습니다. 카라얀이 그의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을 정도였지요. 이는 카라얀이 무척 좋아하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 Strauss, 1864-1849)의 <영웅의 생애 (Ein Heldenleben)>를 지휘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는데, 당시 스타브라바는 아직 수습기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악장이 연주하는 거대한 바이올린 솔로가 있고, 카라얀이 총애했던 전임 악장 슈발베는 이 솔로를 탁월하게 연주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여러모로 젊은 신임 악장의 솔로에 관심이 집중되었을 이 공연에서 스타브라바는 멋진 연주를 선보이며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카라얀이 정말 울었다고 회고했지요. 이 성공의 비결을 질문받았을 때, 스타브라바는 웃으며 “슈발베에게 레슨을 두 번 받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는데, 그가 이 작품을 잘 연주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스타브라바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 이를테면 템포나 프레이징에 대한 인식이 카라얀과 비슷하다는 것을 카라얀도 알아서 자신이 카라얀의 큰 신임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면에는 위의 일화에서도 드러나듯 열심히 배우며 노력하는 자세가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도 초창기 악장 시절은 자신이 오케스트라를 리드한다기 보다는 오케스트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던 때라고 회고했지요.스타브라바가 악장으로 활약한 35년 동안 베를린 필은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카라얀의 뒤를 이어 클라우디오 아바도(C. Abbado, 1933-2014, 재임 1989-2002), 사이먼 래틀(S. Rattle, 1955-, 재임 2002-2018), 그리고 현재 상임을 맡고 있는 키릴 페트렌코(K. Petrenko, 1972-, 재임 2019- )까지 총 4명의 상임 지휘자가 이끌었습니다. 처음 악장이 되었을 때 백발의 카라얀과 함께 했던 젊은 스타브라바는 세월이 흘러 그 자신이 백발이 되어 그보다 어린 페트렌코를 맞이했지요. 한 악장이 4명의 상임 지휘자 아래에서 활약했다는 것은 적어도 20세기 중반 이후의 베를린 필 역사에서 유래 없는 일인데, 이는 33년 동안 이어진 카라얀의 긴 재임기간(1956-1989)에 기인합니다. 일례로 초창기 카라얀 시대에 악장이 된 슈발베는 아직 카라얀이 상임 지휘자로 있을 때 은퇴했지요. 베를린 필에서 활약하는 총 4명의 악장 중 얼마 전까지 유일하게 카라얀과 아바도 시대를 거쳤던 스타브라바가 은퇴함으로써, 베를린 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베를린 필 단원 전체를 보아도 카라얀 시대부터 활약하는 이들의 수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지요. 이는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변화이지만,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아온 이의 부재는 늘 아쉬움을 느끼게 합니다.베를린 필 악장 이전의 경력까지 합하면 40년이 넘는 오케스트라 음악가 커리어를 마감한 스타브라바. 실내악 연주자와 지휘자로서도 활약하고 있는 그의 음악 여정이 어떻게 마무리될까요? “모든 공연에서 최선을 다하기 원했다”는 마음가짐으로부터 우러나온 그의 음악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을 미소짓게 하기를 기대합니다.추천영상: 2020년 5월, 악장 은퇴를 1년 앞두고 있던 스타브라바 헌정 음악회 중 드보르작의 현악 3중주 영상입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아쉽게도 청중이 없는 홀에서 녹화만 되었지요. 2대의 바이올린과 1대의 비올라를 위한 독특한 편성의 이 작품을 그는 베를린 필에 있는 다른 두 명의 폴란드 연주자들과 함께 선보였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토프 폴로넥, 비올리스트 이그나치 미에츠니코프스키) 담백하게 그리고 유려하게 흐르는 그의 바이올린 소리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 연주를 감상해 보세요.https://www.youtube.com/watch?v=srYTGG6XpRY <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4-02-08 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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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교향시를 창시한 노년의 리스트리스트의 교향시 3번 <전주곡>에 대하여빈 국립음대 지휘과를 졸업할 무렵, 빈 신년음악회가 개최되는 무직페라인 황금홀에서 개최될 졸업 연주회의 레퍼토리를 교수님과논의하던 시점이었다. 기대되고 설레는 무대인 만큼 선곡에 각별히 신경 쓸 수밖에. 10분에서 20분 남짓 할당된 시간에 맞는곡을 선곡하는데 리스트의 교향시 3번 '전주곡(Les Preludes)'은 길이도 적당하고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자주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교수님들은 그 곡은 되도록 피했으면 한다는 언급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흐른 후, 이 작품을 공부하게 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러시아 침공시기에 나치 프로파간다 음악으로 쓰였던 것이다.리스트의 교향시 13개 중에 단연 명곡으로 손꼽히는 교향시 3번 전주곡.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진지한 철학이 녹아있는 이 작품은 리스트 사후, 작곡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치 선전의 수단으로 전락했으며 종전 이후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전쟁의 여파가 아니었다면 현재 교향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 유럽에서는 현재까지도 연주되는 빈도수가 작품의 놀라운 완성도에 비해 높지 않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시벨리우스 등 기라성 같은 후배 작곡가들의 교향시가 압도적으로 많이 연주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교향곡(Symphony)은 익숙하지만 교향시(Symphonic Poem)라는 개념에 대해 짚어보자. 리스트가 창시한 교향시는 단악장 형태로 주로 회화적·시적 내용을 음악으로 묘사한, 제목이 붙은 표제음악이다. 형식의 구애 없이 표제를 주제 삼아 관념을 악상으로 묘사하는 작곡방식을 따른다. 교향시 3번의 <전주곡>이라는 표제는 프랑스의 시인 라마르틴의 쓴 <시적 명상>에 나오는 시구 한 문장 "인생은 죽음에서 비롯된 미지의 찬가에 대한 전주곡들’에서 발췌했다. 한마디로 우리의 삶이 죽음을 향한 전주곡이라는 것이다.리스트는 이 작품을 '사랑', ' 시련', ' 안식', '투쟁'이라는 4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 구성하여 인생의 여정을 그려냈다. 도입부는 숙연함이 서린 피치카토로 시작하여 전체를 관통하는 '세 음'으로 이루어진 모티브를 제시하고 곧이어 첼로와 호른의 선율이 주도하여 1부의 주제인 사랑을 노래한다. 몰아치는 인생의 격량을 표현한 알레그로 템포의 2부에 이어 목관악기가 목가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서서히 현악기와 합을 이루며 축제 분위기로 고조되는 기쁨의 안식을 노래한 3부가 펼쳐진다. 영웅적인 분위기의 4부는 금관 팡파르와 함께 인생의 고난에 굴하지 않고 항거하며 전진하는 인간승리의 위대함을 담은 행진곡으로 대미를 장식한다.결과적으로 이 교향시의 가장 큰 매력 꼽자면 단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각각 주제가 명확한 다악장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20분이 채 안 되는 교향시 안에 4가지 삶의 주제를 서사적으로 풀어낸다는 건 쉽지 않은 과제일 터. 잘못하면 음악이 중구난방으로 부산 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곡가 리스트의 대가다움을 엿볼 수 있는 그의 핵심역량은 오직 '세 음'으로 이루어진 모티브 하나를 사용하여 다양한 선율로 변주해 나가며 곡 전체를 관통하는 통일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곡의러닝타임이 길지 않고 군더더기 없는 낭만적인 음악적 서사를 경험해 볼 수 있으니 현대인이 듣기엔 안성맞춤이다.독일 나치가 러시아 진격을 위한 프로파간다 음악으로 이 작품의 모티브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리스트가 안다면 경악할 일이다. 이 작품을 독일 무대에 다시 세운 유태계 지휘자 바렌보임은 "전쟁을 알리는 팡파르로 쓰였던 리스트의 명곡, 교향시 3번 전주곡>의 훼손된 가치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생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는 명곡을 전쟁의 선전도구로 둔갑시키는 전쟁. 전쟁은 늘 나쁘다. *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jb2bkVQwtBs<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4-02-02 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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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흥행 영화가 무대를 통해 새 생명을 얻다_뮤지컬 시스터 액트 뮤지컬 시스터 액터 공연 장면 칼럼을 통해 몇 차례 언급했듯이 영화가 원작인 뮤지컬을 부르는 용어가 있다. 바로 무비컬이다. 영화를 의미하는 무비와 뮤지컬의 합성어다. 최근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뮤지컬의 대표적인 장르중 하나다.무비컬은 양수겸장의 매력이 있는 시도다. 이미 대중성이 검증된 콘텐츠이다보니 영상물의 판권을 갖고 있는 영화사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거의 없는 안전한 실험이고, 관객 입장에서도 어떤 이야기와 볼거리가 등장하는지는 물론 본인의 취향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은 다른 문화 콘텐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티켓 가격이 비싸고, 누구나 자신의 소비가 효용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기에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무비컬도 바를 바 없다. 이미 좋아했거나 알고 있는 영화속 이미지를 무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때, 대중은 쉽게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하지만, 함정도 있다. 원 소스의 유명세에만 기대 안일하게 무대를 꾸민다면 멀티 유즈의 매력을 찾기 힘들다는 원칙이다. 그러니까, 홍보는 쉬울지 모르지만 여간해선 관객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유수의 무비컬들이 갖가지 특수효과와 볼거리로 작품을 포장하며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 노력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대만의 특별하고 신기한 경험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무비컬은 ‘원작만 못한’ 재미없는 콘텐츠로 추락하기 십상이다. 뮤지컬 ‘시스터 액트’는 그런 의미에서 흥행 공식에 충실한 대표적인 현대 무비컬이라 부를 만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원작은 1992년 만들어진 동명 타이틀의 영화다. 범죄현장을 목격한 밤무대 여가수 들로리스가 증인보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수녀원에 몰래 숨어 지내다 우연히 수녀들의 합창단을 지휘하게 된다. 조용히 신분을 감춰도 위험한 처지였지만, 타고난 끼와 순수한 수녀들의 모습이 그녀를 꿈틀거리게 만든 것이다. 잊혀져가던 성당에는 수녀 합창단을 보러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마침내 TV 뉴스에까지 다뤄지며 유명세를 얻는다. 문제는 덕분에 범죄조직도 그녀의 은신처를 알게 됐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사건은 잘 마무리되고, 엔딩 씬에서 교황까지 찾아온 미사에 ‘주님을 따르겠어(I will follow him)’를 멋지게 합창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우리나라에서도 명절 때면 단골로 안방극장에 등장했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메가폰을 잡았던 에밀 아돌리노 감독은 사실 영화팬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1987년 영화 ‘더티 댄싱’을 만들었던 바로 그 연출자이기 때문이다. 패트릭 스웨이지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시킨 이 영화 역시 음악과 춤이라는 요소를 잘 포장해 그만의 매력을 뽐낸 작품이었고, ‘시스터 액트’와 마찬가지로 무비컬로도 탈바꿈돼 글로벌 공연가에서 인기를 누렸다. 같은 감독의 영화 두 편이 모두 무대로 꾸며지며 대중적 지지와 환호를 이끌어 낸 셈이다. 그가 만든 영화들이 얼마나 음악적 감수성이 뛰어난지 미루어 짐작케 한다.무대로 만들어진 ‘시스터 액트’의 제작자는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우피 골드버그다. 아마도 자신의 최고 히트작을 무대화하겠다는 개인적인 신념과 예술 정신이 빚어낸 성과가 아닐까 추측된다. 몇 주일 한정기간이었지만 우피 골드버그가 직접 무대에 등장해 관객들과 직접 만나 열정을 불사르기도 했다. ‘시스터 액트’가 무대용 뮤지컬로 꾸며진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무대 관계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영화의 묘미는 사실 감동어린 반전의 합창을 근간으로 한 것이었고, 합창이나 노래를 감상하는데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펼쳐지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녀들이 한 가득 등장해 멋들어진 합창 장면을 연출해내는 무대가 시도되었고, 무비컬의 성공에 관한 대표적인 사례중 하나가 됐다. 자칫 단순해보일 수 있는 무대 비주얼을 극복하기 위해 재미난 시도들도 더해졌다. ‘시스터 액트’가 선택한 방법은 변복술이다. 객석의 관객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르게 수녀들의 검은 의상이 황금빛 합창복이나 혹은 반짝이 무대 의상으로 뒤바뀌는 재미를 목격하게 된다. 물론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대만의 재치였고, 관객들의 반응도 기대이상이었다. 우리나라 공연계에서도 수녀들이 등장해 인기를 누렸던 소극장 뮤지컬이 있었다. 바로 ‘넌센스’다. 오랜 기간 다양한 제목과 내용으로 변화되면서 폭넓은 연령의 관객들로부터 사랑받았던 적이 있는데, ‘시스터 액트’는 바로 그런 순진하면서도 귀여운 수녀들의 이미지를 재연해냄으로써 인기를 누리게 된 최신작 대형 뮤지컬이 됐다.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의 유명 합창들이 무대에서는 재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 윌 팔로우 힘’이나 ‘오! 해피 데이’는 그래서 무대에서는 만날 수 없다. 자세한 내막까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공연에서의 활용을 둘러싼 저작권 문제가 원활히 해결되지 못한 이유 탓이 아닐까 여겨진다. 사실 무비컬을 만들다보면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디즈니의 ‘라이언 킹’에서는 그래서 ‘라이언 슬립스 투나잇’이 짧게 등장하고, 뮤지컬로 각색된 ‘더티 댄싱’에서도 ‘쉬스 라이크 더 윈드’를 만날 수 없다. ‘아기공룡 둘리’가 뮤지컬로 초연될 당시, ‘요리보고 조리보고’로 유명한 애니매이션의 주제가가 등장하지 못했던 것도 비슷한 배경 탓이다.대신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서는 새로운 작곡이 더해졌다. 디즈니의 만화영화 ‘인어공주’, ‘알라딘’, ‘미녀와 야수’ 등을 작곡한 알란 멘켄이 참여해 뮤지컬다운 음악들로 다시 포장되는 변화를 더한 것이다. 수녀합창단이 한 옥타브씩 소리를 높여 노래를 배우는 ‘레이즈 유어 보이스’나 엔딩 뮤지컬 넘버인 ‘스프레드 더 러브 어라운드’는 이렇게 탄생된 이 뮤지컬의 히트 넘버들이다.요즘 코로나 19로 연기됐던 두 번째 내한공연의 막을 올리며 인기몰이가 한창인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는 우리 배우 김소향도 참여해 특유의 가창력과 미소짓게하는 코믹 연기로 박수갈채를 이끌어내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도 활동한 바 있는 그녀의 과거 도전이 영어권 배우들과의 멋들어진 조화로 잘 녹여져 반갑고 또 흥미롭다. 대중이 바라고 원하는 내용을 무대에 재연해냄으로써 흥행과 돈벌이를 모두 쫓는다는 무비컬의 제작 실험은 당분간 세계 공연가에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형 무비컬을 꿈꾼다면 관심있게 지켜볼만한 일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4-01-26 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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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삶을 들려주는 마지막 연주,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 생전의 류이치 사카모토 작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연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감독 소라 네오)는 암 투병 중이던 그가 자신이 작곡한 곡 중 20곡을 엄선하여 녹음하는 장면을 오롯이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공연 실황과 달리 조명과 카메라, 마이크만 설치된 적막한 스튜디오에서 그는 그랜드 피아노 한 대와 마주해 있다. 피아노 선율뿐 아니라 그의 힘겨운 숨소리, 페달 소리까지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하나의 음악이 된다. 투병기간동안 공연을 거의 갖지 못했던 그는 마지막 연주에 그의 인생을 담았다. 블랙 앤 화이트의 영상 안에서 진중하게 건반 하나하나를 눌러가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클래식 전공자에서 테크노 그룹의 리더로, 영화음악 작곡가로, 실험적 음악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쉬지 않고 달려온 거장의 생애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원전 반대,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회 활동가로서의 면모까지 합쳐지면 그의 일대기는 더욱 입체적이 된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듯 웅장하게 다가오는 피아노 소리, 그토록 완벽하면서도 따뜻함과 겸손함이 묻어나는 그의 연주에 점점 머리가 숙여진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접 기획한 이 특별한 콘서트 영상은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낸다는 스튜디오, NHK 509에서 2022년 9월에 8일 동안 촬영했고, 하루 3곡 정도를 2~3번의 테이크를 거쳐 완성해 냈다. 병마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예술은 인간의 운명을 넘어선다는 진리를 말해주듯 류이치 사카모토는 침착하고 정확하다. 혹자는 그에게 최초의 동양인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던 ‘마지막 황제’(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87)의 ‘레인(Rain)’이 연주 리스트에 없다는 걸 아쉬워할지 모르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그는 자신의 음악과 인생이 다큐멘터리 밖에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무리 훌륭해도 고작 스무 곡일 뿐이다. 그의 이야기를 하려면 100분의 공연은 짧아도 너무 짧다. 윤성은의 Pick 무비 앞으로의 100년을 향한 디즈니의 첫 작품, ‘위시’ 모든 국민들이 행복한 나라가 있다. ‘로사스’ 왕국에 사는 이들은 그들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 훌륭한 나라를 건설한 ‘매그니피코’왕을 존경하고 있으며,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도 로사스의 자랑을 멈추지 않는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뭔가 이상하다. 모든 국민이 행복해하며 사는 나라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그것도 지도자에 대한 불만 하나 없이? 혹시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이나 동화 속 나라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보수적인 가치관으로 이상향을 실현시켜 왔던 디즈니사의 작품이라면 어떨까. 놀랍게도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서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위시’(감독 크리스 벅, 폰 비라선손)는 바로 이런 편견에 정면으로 맞선다. 21세기 들어 용감한 왕자가 미인을 차지하는 이야기에서 탈피해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를 추구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처럼 급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이 기업의 또 다른 방향성과 가능성을 본 것 같아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된다. 매그니피코 왕(크리스 파인)은 열여덟 살이 되는 국민들에게 소원 하나를 받아 비밀의 방에 저장해 둔다. 그리고 왕국의 기념일마다 비눗방울처럼 떠다니며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 소원들 중 하나를 이루어준다. 총명하고 용감한 ‘아샤’(아리아나 데보스)는 왕의 비서로 발탁돼 그 방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게 된다. 그러나 아샤는 왕이 선택적으로 꿈을 이루어 준다는 사실, 그 기준은 왕국이나 왕의 존재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지 않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예쁘게만 보였던 수 많은 꿈방울들은 국민들의 잊혀진 꿈이자 대부분은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매그니피코 왕을 동경해왔던 아샤는 태도를 바꿔 그에게 도전장을 낸다. 국민들이 자신의 꿈을 되찾아 각자 이루어 가게 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이른바, ‘꿈의 해방’을 위해 아샤와 그녀의 친구들, 마법의 별 등이 뭉쳐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한다. 소원을 이루어 주는 마녀를 찾아가 그 대가로 목소리를 바쳐야만 했던 인어공주는 ‘위시’에서 소원을 빌고 나면 통치자가 그것을 이루어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로사스의 국민으로 바뀌어 있다. 그들은 진정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잊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 수 있고, 꿈을 되찾게 해줄 유일한 존재를 찬양한다. ‘위시’는 매그니피코 왕을 전체주의적 통치자와 동일시하면서 그런 왕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민중의 각성과 봉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여성들의 각성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바비’(감독 그레타 거윅, 2023)의 중심내용과도 상통한다. 이처럼 최근 할리우드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한 주제의식도 강렬하지만 100주년 기념작인 만큼 그림체도 음악도 역대급이다. 수 많은 꿈들이 부유하는 신이나 별들이 밤하늘을 밝히는 신은 환상적이고, 어둠의 마법을 쓰는 왕이 타인의 꿈을 하나씩 삼킬 때마다 더 막강한 힘을 갖게 되는 장면은 공포물처럼 연출되었으며, 국민들이 함께 저항하는 장면에서는 감동의 전율이 느껴진다. 동시대에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게 될까. PC주의의 폐해는 계속 지적되고 있고, 어쩌면 ‘위시’가 말하는 정의도 논쟁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을 보면서 부디 기성세대보다는 기존의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보다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필자소개>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4-01-19 1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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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삼천포는 근대 이후 사천군 삼천포면, 사천군 삼천포읍을 거쳐 삼천포시로 승격하였으나 1995년 사천군과 통합되면서 현재의 경상남도 사천시가 되었다. 삼천포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삼천포항, 삼천포대교 그리고 진주삼천포농악에는 옛 지명 ‘삼천포’가 남아있다. : 진주삼천포농악 ©문화재청진주삼천포농악은 1966년, 농악 중에서는 처음으로 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진주에는 예인집단인 솟대쟁이패의 농악이, 삼천포에서는 마을굿의 농악이 전승되었다. 이웃하고 있는 진주와 삼천포의 농악단은 경연대회에 함께 참가하는 등 교류를 이어가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며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다. 진주삼천포농악의 연희 순서는 1차 오방진풀이, 2차 얼림굿, 3차 덧배기 벅구놀음, 4차 길군악, 5차 영산다드래기, 6차 멋벅구놀음(먹벅구), 7차 등맞이굿, 8차 앉은 벅구놀음, 9차 호호굿놀이(점호굿), 10차 개인 영산놀이, 11차 별굿놀이(별달거리), 12차 흩음굿(허튼굿)까지 이어진다. 12차로 구성되어 문화재 지정 당시 '농악12차'라 이름했던 것을 '진주농악12차', '진주농악'으로 바꾸어 불렀고, 1993년 삼천포에 전수교육관을 지으며 '진주삼천포농악'으로 바뀐 명칭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무형문화재를 지정하는 경우 해당 문화재의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를 인정해야 한다. 보유자와 보유단체는 해당 문화재의 기능과 예능 등을 전형(典型)대로 체득, 실현하는 주체가 된다. 우리가 흔히 판소리 인간문화재, 서도소리 보유자, 처용무 예능보유자 등으로 부르는 이들이 보유자이며, 사단법인 형태의 보존회들이 보유단체에 속한다. 아리랑처럼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형문화재도 있다. 이는 '공동체 종목'이라 부른다. 기․예능을 보유한 보유자나 보유단체 등은 문화재의 보전과 진흥을 위해 전수교육을 실시할 의무가 있다. 이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심사에 통과해 이수증을 받은 사람을 ‘이수자’로 인정한다. 이수자 중 심의를 거쳐 보유자나 보유단체와 함께 전수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을 ‘전승교육사’라 한다. ‘전승자’는 이수자와 전승교육사, 보유자 등을 모두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진주삼천포농악으로 바꿔 말하면, 진주삼천포농악의 보유자와 전승교육사, 보유단체인 (사)진주삼천포농악 보존회 등이 주축이 되어 농악을 이어가기 위한 전수교육을 실시하는데 소정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심사 과정을 거쳐 이수증을 받은 이들이 바로 이수자들이다. 오는 2월 1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진주삼천포농악 이수자들의 공연 <늙은 이수자전 – 붉은꽃>이 열릴 예정이다. 이수자들 가운데에서도 만 45세 이상의 중견 예인들이 무대에 선다. 누리집에 공연의 상세 내용은 게재되어 있지 않지만 '농악에 청춘을 불태웠던 지난날로 회귀하여 다시금 그 뜨거웠던 열정과 신명으로 푸진 한 판을 만들어 보려 한다.'고 공연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진주삼천포농악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치고, 삼색 띠를 두른다. 참여자 전원이 전립을 쓰고 채상이나 부포를 돌리는 것은 다른 지역 농악과의 차별점이다. 전립은 주로 조선 시대 군사들이 썼던 모자를 가리키는데, 진주에서 전해오는 진주검무, 진주삼천포농악에서 모두 전립을 갖추어 쓴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장단이 빠르고 군악(軍樂)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점, 연희의 동작이 힘차고 화려한 무예의 동작을 닮았다는 점 역시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남해안의 삼천포, 임진왜란 격전지였던 진주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맥락을 함께 짚어야 이해할 수 있다. 해가 바뀌었지만 새해 벽두부터 세상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 치러야 할 전쟁에 돌입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려받은 가락을 온전히 몸에 새기느라 치열했을, 늙은 이수자들의 공연에 한 자리 끼어 앉아보면 전쟁 같은 삶을 다독이는 법을, 혹은 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웃음과 신명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조금은 깨닫게 되지는 않을까. 오랜 세월 열정과 신명을 체화한 그들의 푸진 한 판이 점점 궁금해진다. <필자소개>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4-01-12 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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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공연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고대 로마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는 인생에 관해 많은 명언을 남겼다. 그는 인간의 삶을 평온하게 영위하기 위한 노력으로 하루를 충실히 살라 말했고, 다시 돌아가거나 멈출 수 없이 흐르는 시간이기에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또 인생을 험난한 항해에 비유하며 언제 격노할지 모를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도록 목표를 뚜렷하게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의 삶은 마치 바다 위에 놓인 작은 배처럼 물밀듯 밀려온 고난과 고통을 감당해야 했지만, 모든 진실을 알고 난 뒤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옳을지를 분명히 정함으로써 다시 찾은 인생의 가치를 빛낸다. 세네카의 가르침과 더불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공통 메시지도 바로 여기에 있다.프랭크 와일드혼과 잭 머피 콤비의 활약으로 탄생한 뮤지컬 ‘몬테크리스토’가 한층 더 새로워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2010년 초연 이래 올해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복수극의 대표작이라 손꼽혀 온 작품답게 역동적인 서사와 거대 스케일로 오래도록 사랑받은 작품이다. 이번에는 특히 ‘All New Monte(올 뉴 몬테)’를 기치로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져 기존에 관람했던 관객들에게는 더 큰 만족감을, 이 작품을 처음 만나는 관객들에게는 놀라운 감동을 선사할 만큼 준비를 탄탄히 했다. 우선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 소설을 더욱 충실히 구현하면서 흐름이 훨씬 자연스러워졌고, 등장인물들의 배경과 심리 묘사가 더해져 전개도 더 촘촘해졌다. 또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체적으로 세련된 느낌을 가미했을 뿐만 아니라, 무대 세트와 의상에도 대대적인 변화를 주었다. 당시 시대적 배경에 알맞은 19세기 복식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의상은 공들인 무대와 빈틈없이 어울리며 시각적 만족감을 준다. 무엇보다도 무대를 깊게 쓰면서 무대 바닥에 경사를 주고, 회전 무대장치를 중앙에 배치해 극적인 순간을 더 극적으로 연출해 몰입감을 높인다. 이처럼 여러모로 놀라운 변화를 시도한 작품답게 캐스팅 또한 이목을 끌었다. 먼저 마르세유의 촉망받는 선원이었으나 운명의 장난에 휘말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후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난 청년 에드몬드 단테스(몬테크리스토 백작) 역은 이규형, 서인국, 고은성, 김성철이 맡았다. 그리고 그런 에드몬드의 약혼녀로서 이를 질투한 몬데고의 계략에 의해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되는 메르세데스 역은 선민, 이지혜, 허혜진이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최민철, 강태을, 김성민, 우재하, 이한밀, 김대호, 김용수, 서범석, 전수미, 박은미 등이 ‘몬테크리스토’의 항해에 함께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 역을 맡은 이규형, 서인국, 김성철, 고은성배우 ©EMK뮤지컬컴퍼니.항해 도중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선장을 구하기 위해 잠시 외딴 섬에 정착했던 일은 모두의 삶에 예상치 못한 파도가 돼 거침없이 몰아친다. 그러나 하필 그곳은 나폴레옹이 유배됐던 엘바섬이었고, 나폴레옹은 에드몬드에게 무엇인가 적힌 쪽지를 건네며 누군가에게 꼭 전달해 주기를 부탁한다. 마침 이러한 장면을 목격한 당글라스는 차기 선장 자리를 두고 자신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에드몬드가 못마땅해 마음에 담아둔다. 그러고는 마르세유로 복귀한 후, 메르세데스를 홀로 마음에 품은 몬데고를 자극하려는 의도로 비밀스런 카드를 사용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메르세데스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약혼식을 올리려던 에드몬드는 억울한 누명을 써 끌려가고 당글라스와 몬데고, 빌포트 검사장의 계략에 의해 샤토디 감옥에 투옥된다. 이유도 모른 채 끌려온 감옥에서 무려 14년이란 세월을 보낸 젊은 선원은 어느새 자신의 이름마저 흐릿하게 기억할 정도로 절망에 빠졌지만, 우연히 자신의 방을 찾아온 괴짜 신부 파리아와 만나 수많은 가르침을 받고 사건의 진실을 깨닫는다. 그 뒤로 복수심에 불타올라 탈옥을 계획하던 에드몬드는 세상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고, 파리아 신부 덕분에 숨겨진 보물을 손에 넣으며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작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분노와 복수 대신 희망을 말한다. ‘정의는 갖는 자의 것, 사랑은 주는 자의 것’이라는 대표 문구처럼 사랑과 용서로 모두를 포용하는 모습은 신의 그 어디쯤과 닿아있는 모양새다. 악한 자들을 응징하는 일이 결코 자신의 구원이 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분노는 모두를 불태우기 충분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얽혀버린 실타래 역시 풀릴 줄 몰랐다. 하지만 그토록 복잡했던 여정의 끝에 느낀 허망함이라는 물음표에 결국 사랑이 답이 돼준다. 그 옛날 풋풋했던 청년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은 후대로 내려와 알버트와 발렌타인으로 이어지고, 가려진 진실이 드러나면서 아픈 과거 뒤에 새로운 삶이 펼쳐질 가능성을 마주하게 한다. 메르세데스에게 주어진 면죄부도 이번 시즌부터는 확실히 다르게 읽힌다. 복수 의지로 가득 찼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다시 에드몬드 단테스라는 정체성을 되찾게 되는 과정은 그래서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언제나 그대 곁에’와 같이 작품의 정체성과도 같은 넘버들 또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2024년 새해를 맞아 다시금 돛을 올려 힘차게 기세를 돋워야 할 요즘,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와 함께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소개>최윤영 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 바 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 왔고 현재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4-01-11 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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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김 / 모멘텀 클래식
혁신보다는 영국 전통을 선택했던 작곡가 본 윌리엄스클래식 레퍼토리에서 '종달새'하면 대개 하이든의 현악 4중주를 떠올린다. 교향곡과 더불어 하이든이 확립한 현악 4중주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명곡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종달새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는 1악장 도입부의 바이올린 선율이 새소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물론 곡에 붙은 부제가 작품의 흥행이나 악보판매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출판사의 입김도 작용했을 터.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활동했던 작곡가 레이프 본 윌리엄스가 작곡한 '종달새의 비상'은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종달새'에 비해서 인지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주류 바이올린 협연 레퍼토리로 인정받고 있는 곡이다. 새의 몸짓을 탁월하게 악상으로 그려낸 작곡가의 역량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영국 민요조의 노래들이 자아내는 신비감과 특유의 바이브 덕분에 단악장 협주곡 레퍼토리로서는 이례적으로 본 윌리엄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그의 음악적 성향이 잘 드러난 곡이다. 젊은 시절의 본 윌리엄스 본 윌리엄스는 1872년생으로 영국 국립음악원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영국 민요 800여 곡을 수집하고 연구할 정도로 영국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하고자 노력했다.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막스 브루흐와 관현악법의 대가 모리스 라벨을 사사한 그가 1908년 파리에서 영국으로 돌아와 착수한 작업은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학자 시인 A.E. 하우스먼의 시 <슈롭서의 청년>에서 6개의 시를 발췌, 음악을 붙여 연가곡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영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민요를 채집하여 관현악곡으로 편곡하는 작업 또한 열심이었다. 대중에게 익숙한 작품으로 영국 민요를 기반으로 작곡한 '푸른 옷소매 환상곡', 16세기의 영국 작곡가 토마스 탈리스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토마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영국의 근원을 탐구하고 알리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표작들이다. 이러한 작곡 스타일은 그의 실내악, 교향곡을 비롯하여 장르의 구분 없이 발견된다.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영국의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 마게이트에서 날아오르는 종달새의 모습을 보고 악상을 떠올렸다고 밝힌 본 윌리엄스. 이 작품은 1887년 영국의 시인 조지 메러디스가 발표한 시에 영감을 받아 작곡에 착수한 곡으로 본 윌리엄스의 자유분방 리듬과 영국 민요조의 선율이 어우러진 곡이다. 새의 몸짓을 담은 도입부의 자유분방한 바이올린 독주를 시작으로 민요풍의 모티브와 2개의 테마가 제시되는데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에 동화되었던 그답게 중세의 선법적인 요소가 돋보이며 목가적이면서도 신비로운 곡의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초연 당시 더 타임즈 지는 "시간의 바깥에 서서 꿈꾸는듯 했다"라고 평했다.물론 그의 음악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가 과거의 음악에 심취해 있다 보니 모더니즘이 대두되던 당시 상황에서 고리타분한 작곡가로 인식되기도 했으며 한 비평가는 그의 음악을 언급하며 "문을 내다보는 소 같다"는 평을 내놓았다. 본 윌리엄스는 "자신의 음악에 등장하는 선율이 본인의 것인지 과거 민요에서 따온 선율인지 헷갈린다"라고 고백했을 정도로 영국 튜더왕조 시대의 교회음악을 비롯하여 영국 선조들의 문화적 유산에 심취해 있던 사람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국 민족주의 음악을 연구하고 고수했던 그였기 때문에 현재는 가장 영국적인 국민 작곡가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영국 전통 민요조가 물씬 풍기는 '종달새의 비상'은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1920년이 돼서야 초연되었으며 연주는 당대 영국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마리아 홀이 맡았다. 관현악 버전은 1921년 공개되어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내었고 지금까지 본 윌리엄스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본 윌리엄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20년간 종달새의 비상은 영국의 Classic FM에서 발표하는 명예의 전당에서 늘 최상위권을 지켰다"라고 전한 바 있다. 특히 이 곡은 전 국가대표 김연아의 선수시절 2006~2007년 시즌 프리 스케이팅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곡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당시 주류였던 독일, 프랑스의 음악을 자양분 삼긴 했으나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전통을 기반으로 영국적으로 승화시켜 그만의 독자적인 음악어법을 완성시킨 본 윌리엄스. 한국에서 듣기 힘든 작곡가로 손꼽히지만 앞으로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와 더불어 더 자주 무대에 오르길 기대해 본다.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과 함께 2024년 한 해를 멋지게 비상해 보면 어떨까.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IOWN5fQnzGk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3-12-29 09: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