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화] 국악 Prologue!
국악인들의 공부 시간녹음 짙은 심심산골, 폭포수 떨어지는 계곡. 바위 위에 부채 하나 들고 서서 득음에 이르기 위해 독공하는 소리꾼. 국악인들의 공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스승이 노래 한 마디 하면 따라 부르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통 음악의 교육법은 현 시대에도 유효하지만 예술가가 평생을 갈고 닦아 이룬 예술적 성취만으로는 전통 공연 예술의 지평을 넓히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국립극장 청소년 창극아카데미(© 국립극장) 국악 전공생을 위한 직업 아카데미(©국립국악원)10여 년째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청소년 창극아카데미는 올해, 창극단 단원들의 판소리 교육 외에도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의 극작가․연출가 등이 합류해 통합 예술 교육을 진행했다. 공연의 전반적인 흐름을 경험케 함으로써 새싹 소리꾼들의 시야를 확장시키기 위함이었을 테다. 국립국악원은 지난해부터 국악 전공생을 위한 '직업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상․하반기 2회로 나누어 총 열두 개 강좌를 연다. 전공자라면 으레 관심을 갖게 될 공연과 음원 제작뿐 아니라 인접 분야인 방송과 영화, 게임 음악 그리고 홍보와 저작권 분야의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섰다. 국악 콘텐츠 기획과 제작에서부터 공공 예술 기관의 업무 프로세스에 이르기까지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전공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세상 속으로 뛰어들 채비를 돕는다.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미래의 다채로운 경로를 가늠해 볼 기회라면, 현장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영역을 세분화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된다.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올해 '전통공연예술 홍보 마케팅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전통공연예술 언론홍보지원’과 함께 ‘언론홍보 역량 레벨 업 교육’을 병행한다. 신청자가 보도 자료 초안을 작성하면 재단에서 이를 감수해 언론에 배포하고 SNS를 통한 홍보도 지원한다. 한 달에 한 번 홍보 전문가들이 나서 홍보 전략과 보도 자료 작성 방법 등을 교육한다. 한 차례 지원 사업에서 그치지 않고 수요자의 역량 강화 방안을 함께 모색한 사업이다. 보도 자료 등 홍보에 관한 교육이 공연 제작 과정에서 유용하다면, 4회째 접어든 국립국악원의 ‘국악 평론 쓰기’ 교육은 공연 후의 작품에 힘을 싣는 데 목적이 있다. 작품에 관한 담론을 만들고 비평하며, 논점을 제시해 더 나은 공연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 평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연극 <틴에이지딕>, 음악 공연 <함께, 봄>과 음악극 <합체>, 연극 <우리 읍내>와 <맥베스>. 2021년 초청 공연 <소리극 옥이>를 시작으로 국립극장이 성황리에 이어가고 있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혹은 무장애 공연이라 이름 붙인 작품들이다. 공연 관람에 장애 요소를 최소화한 공연들은 필연적으로 시간과 예산이 더 들게 마련이어서 국공립 기관이나 단체의 작품에서 우선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배리어 프리 공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고 소극장의 작은 공연들에서도 장면을 대사로, 배경 음악을 자막으로 설명함으로써 공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소리극 옥이(©국립극장) 맥베스(©국립극장) 접근성 높은 국악 공연 제작 워크숍(©국립국악원)국립국악원은 지난 6월, 전통 예술 창작자와 제작자 등을 대상으로 한 '접근성 높은 국악 공연 제작 워크숍'을 시범 운영했다. 한자어와 옛말, 사투리가 뒤섞여 진입 장벽이 높은 판소리나 창극 공연에 자막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정가나 민요의 가사도 자막으로 함께 보여주는 공연이 많다. 여기에 더해 시청각 장애인이나 지체 장애인들의 관람에도 제약이 없는 공연에 이르는 것이 이 교육의 목적이다. 참가자들은 사흘의 짧은 과정을 이수하고 2개 팀으로 나누어 소리극의 한 장면을 ‘접근성 높은 국악 공연’으로 구성해 무대에 올렸다. 소리꾼과 수어 연기자가 한 무대에 서고, 자막과 대사로 장면에 대한 설명을 더했다. 수어와 판소리.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두 가지를 짧은 기간에 모두 섭렵해 낸 참가자들의 고군분투가 오롯이 담긴 무대였다.앞서 소개한 교육 프로그램들은 궁극적으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무엇으로 어떻게 향유자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치열한 고민의 기회가 되었다면, 배움 끝에 얻어야 할 것은 그것 하나로 족하지 않을까.<필자소개>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4-07-19 10:28 |
![]() |
[문화] [인터뷰] 대구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백진현
창단 60주년 앞두고 작년 취임, 설득력 있는 해석과 연주로 호평 작년 10월 대구시립교향악단(이하 대구시향)의 제11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백진현씨가 취임했다. 백진현 신임 음악감독은 현재 대구시향의 수장으로서 정기연주회와 기획연주회는 물론 찾아가는 음약회 등 다양한 기획 의도에서 마련된 각종 프로그램을 소화하며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대구시향과 함께 교향악축제에 참가해 영국 클래식의 정수를 들려주며 참신한 프로그래밍으로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대구시향 호른 수석 출신으로 대구시향의 상임지휘자로 부임, 오랜 시간에 걸쳐 악단을 잘 이해하고 있는 지휘자인만큼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크게 기대된다. 최근 약업신문이 백진현감독을 만나 보았다. <편집자 주>백진현 대구시향 상임지휘자 ©KIMHYUKSANG - 취임 이후 공연 활동과 단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 온 소감을 들려달라. 또 대구시향 호른 수석 출신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악단을 잘 이해하고 있는 지휘자 입장에서 바라본 대구시향 고유의 특색과 악단의 잠재력에 대해 듣고 싶다. 백진현(이하 백) : 작년 11월 취임 연주회 이후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지난 몇 달간 다수의 정기연주회와 기획연주회, 찾아가는 음악회 등 숨 가쁘게 연주를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단원 개개인의 장단점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을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현재 대구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의 능력과 잠재력은 충분하며 연주자로서 기본적인 소양도 잘 갖추었기에 지휘자로서 이를 잘 이끌고 다듬어 나가는 무척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 대구시립교향악단 단원이 되었을 때 존경하던 음악 선배, 선생님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자랑스러웠다. 당시 ‘굶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음악인의 꿈을 꿨던 나의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의 단원들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나고 감회가 남다르다. 단원으로 시작해 호른 수석을 거쳐 지금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지휘자로서 이 악단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하다. 그동안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늘 함께 있었던 것처럼 고향에 돌아온 것 같다. 아무래도 지역 출신의 연주자가 많은 악단이라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낸 끈끈한 유대감이 있고 오랫동안 함께해 온 앙상블 역시 남다르다. 특히 대구시립교향악단의 현악 앙상블은 전국에서 내놓으라 할 정도로 훌륭하다. - 지난 4월 대구시향과 함께 교향악축제에 참가해 영국 클래식의 정수를 들려주며 참신한 프로그래밍으로 큰 관심을 받았고 특히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엘가 교향곡1번을 연주하며 설득력 있는 해석과 연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또 창원시립교향악단, 경북도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역임하였고 톈진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 객원 지휘자를 비롯, 국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섭렵하며 지휘자로서 쌓은 경력과 함께 앞으로 대구시향과 함께 이루고 싶은 예술적 비전과 중장기적 계획이 궁금하다. 백 : 음악가이자 지휘자로서 늘 추구하는 바는 이 세상의 모든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은 과거에서 현재로의 시간 여행이고 우리는 작곡가의 창작 의도에 충실한 연주를 통해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메신저이다. 따라서 그 시대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기까지 나름의 피나는 연구는 필수적이고 그 연구를 바탕으로 시민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연주력까지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결국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세계화, 국제화이며 미래를 위한 비전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재연의 예술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작곡가의 창작 의도와 작품의 본질을 파악하여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또한 연주자의 곡의 이해와 해석을 돕고 완성도 높은 연주,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무대를 위해 개인뿐만 아니라 연주단체의 실력까지 함께 연마해 나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작품의 본질을 이해하고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공공 예술단으로서의 좋은 지휘자가 아닐까 싶다. - 지휘자의 해석과 지시가 음악을 통해 이상적으로 구현되려면 단원들과의 합이 중요할 것 같다. 지휘자와 단원 간의 소통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백 : 결국 음악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상호 이해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전문 연주단체이고 연습실과 무대 위에서만큼은 철저하게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단원은 지휘자의 해석과 요구를 잘 수용하여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고 지휘자는 단원들이 어떤 부분에서 연주와 표현의 어려움을 겪는지 파악해 올바른 방향으로 잘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지휘자와 단원은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각기 다른 악기의 매커니즘을 토대로 음악적 동질성을 가져야 한다. 지휘자와 단원이 하나의 작품을 대할 때 함께 같은 색채로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음악적 소통이 아니겠는가. - 2024년 대구시향이 창단 6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작년 대구시향 창립공연을 재연하는 뜻깊은 공연을 지휘했으며 악단을 맡은 현 음악감독으로서 남다른 마음가짐일 것 같다. 대구시향 창단의 배경과 지나온 발자취를 간략하게 듣고 싶다. 아울러 국내 3번째 공립 교향악단으로서 대구시향이 대구지역사회에 어떤 기여를 해 왔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대구시향 단체사진 ©KIMHYUKSANG백 : 1964년, 서울 부산에 이어 탄생한 국공립 교향악단인 대구시립교향악단은 한국 전쟁 직후 음악을 통한 사회 운동에 앞장선 초대 상임지휘자 이기홍 선생을 비롯해 지역 음악인, 기업가, 행정가, 시민 등이 한마음으로 탄생시킨 지역 오케스트라라는 점에서 큰 자부심이 있다. 지역 문화예술 선구자들의 노력과 헌신, 희생정신 덕분에 지금의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있을 수 있고 그 뜻을 잘 받들고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은 지난 60년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대구시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사랑 속에 지역 오케스트라로서는 보기 드문 티켓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시민의 큰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지속해서 새로운 기획과 다양한 공연 레퍼토리로 관객에게 다가서고 있으며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을 선도하고 있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은 대구 경북 대표 오케스트라로서 지역민의 정서 함양과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 대중화, 문화 수준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음악창의도시 대구를 대표하는 예술단체로서 시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음악이 흐르는 도시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정통 클래식 음악을 레퍼토리로 하는 ‘정기연주회’와 다수의 ‘기획연주회’, 공연장을 벗어나 관객들에게 찾아가는 ‘시민행복콘서트’, 지역 클래식 음악계 유망주 발굴과 육성을 위한 ‘청소년/대학생 협주곡의 밤’, 청소년들의 교양과 감수성을 풍부하게 자극하는 ‘스쿨 콘서트’, ‘교실 음악회’ 등 연간 다채로운 공연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 1964년 출범한 이래 대구시향은 폭넓은 활동을 이어왔다. 교향악축제 초청연주, 타 시도 음악제 참가뿐 아니라 아시아, 유럽 등 해외 공연도 성황리에 마친 바 있다. 음악감독이 생각하는 대구시향이 나아가야 할 앞으로의 이상적인 방향성은? 백 : 결국은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이 대구시립교향악단의 나아갈 방향이다. 우리의 연주를 통해 시민과 문화적 소통, 공감대를 형성하고, 수준 높은 공연을 부담 없이 일상처럼 즐길 수 있도록 시민 문화 향수권을 신장하는 것이 공공 예술단체의 역할과 책임일 것이다. 클래식 입문자부터 마니아까지 다양한 관객층을 아우를 수 있는 시대별, 장르별 심도 있는 연주 프로그램을 통해 ‘대구시민 모두를 위한 교향악단’이라는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단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이 60년 역사와 전통 위에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 - 대구시향은 상당수의 공연이 전석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국내 어느 주요 악단보다 시민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는 오케스트라로 졍평이 나 있다. 많은 대구지역 클래식 애호가들이 대구시향을 찾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백: 대구는 시민들의 문화 수준이 매우 높고 클래식 음악을 정기적으로 관람하는 관객층 역시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한 마디로 문화예술의 토양이 비옥하다. 특히 지역에 우수한 음악대학이 다수 있는 데다 음악을 사랑하는 지역민의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연주가 매주 수시로 개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공연에 늘 관객이 함께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대구는 연주자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이 가득하다. 따라서 늘 더 좋은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 음악감독이 직접 기획을 이끈 참신한 공연들이 계획되어 있다고 들었다. 이번 8월에 독주악기 '피아노'를 조명한 대구국제피아노페스티벌 소개와 더불어 음악감독의 향후 계획을 들려 달라. 경주 포항 등 지역내 순회연주회에 나선 대구시향의 초창기 모습. © 1966년 경주극장백 : 1900년 3월,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한국 최초의 피아노를 대구 사문진 나루터에 내린 이후 피아노는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클래식 악기로 사랑 받아왔다. 피아노라는 독주 악기가 주인공인 ‘대구국제피아노페스티벌’은 세계 각국의 명연주자를 초청하여 그들의 개성이 묻어있는 차원이 다른 연주를 통해 피아노 협연을 공연의 일부가 아닌 전부로 오롯이 만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앞으로도 대구시립교향악단은 시민 모두가 클래식 음악을 어렵지 않게 접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새롭고 다양한 기획을 펼쳐나갈 계획이며 우수한 실력으로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을 선도해 나가겠다.
2024-07-10 10:46 |
![]() |
[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위대한 이상의 추락과 파멸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신을 믿어 지독하게. 하지만 그건 축복을 통해서가 아니야, 저주를 통해서지. 만약 신이 없다면 누가 이 세상을 이런 지옥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내가 추구하는 과학은 먼 미래를 열자는 것이 아니야, 지금 당장을 바꾸자는 거지. 죽음, 지옥, 운명, 저주! 이런 미신 같은 속박에서 벗어나 좀 더 훌륭한 인간의 세계관을 만들고 싶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단 하나의 미래’ 중) 신을 향한 인류의 도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진화를 거듭한 인류의 선택은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끝 모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윤리적 문제와 충돌하며 날 선 논쟁을 벌인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 빅터는 오직 신에게만 허용된 생명 창조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예견된 파멸로 향한다. 과거 흑사병에 걸려 숨진 어머니를 살리고 싶었던 어린 소년에게 날아든 돌멩이는 무엇보다도 아프게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빅터를 이끈다. 심지어 자신을 향해 무한한 신뢰를 보낸 친구를 희생하면서까지 말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캐스팅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2014년 초연된 뮤지컬로, 당시 제8회 ‘더뮤지컬 어워즈’에서 총 9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시즌을 거듭할 때마다 대단한 인기를 끈 작품이다.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올해부터는 EMK뮤지컬컴퍼니의 품에 안겨 한층 더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사할 것이라 예고돼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또 새로운 프로덕션과 함께하는 만큼 올 시즌 캐스팅은 신구 조화가 돋보인다. 쿼드러플 캐스팅을 선택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는 2014년 초연의 주역이었던 유준상을 포함해 신성록, 규현, 전동석이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박은태와 카이, 이해준, 고은성이 앙리 뒤프레 역을 맡았다. 그리고 선민, 이지혜, 최지혜(줄리아 役), 전수미, 장은아, 김지우(엘렌 役), 이희정, 문성혁(슈테판 役), 김대종, 신재희(룽게 役) 등도 함께한다. 지난 6월 5일에 개막한 이번 시즌 공연은 오는 8월 25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출간된 메리 셸리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흔히 프랑켄슈타인을 초록빛 피부를 가진 괴물로 오해하나, 이는 괴물이라 불린 피조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을 딴 제목이다. 작품은 신이 되기를 바란 인간과 그런 인간을 동경했던 피조물의 이야기를 바탕에 두고 인간 본성과 사회적 책무, 생명 가치의 중요성 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원작 소설과는 스토리부터 시작해 등장인물, 기타 설정까지 많은 부분에서 다른 면을 보이지만, 뮤지컬로 재탄생되면서 서사의 깊이를 더하고 작품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또 하나의 명작을 만들었다. 또 주요 등장인물 모두 1인 2역을 맡는데, 워낙 대조적인 캐릭터라 서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이처럼 좋은 작품이 한국 창작 뮤지컬이라는 사실은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우리’ 뮤지컬을 향한 기대감을 드높인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사진 ©EMK뮤지컬컴퍼니 175분간 쉴 새 없이 휘몰아친 전개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19세기 유럽, 스위스 제네바 출신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워털루 전쟁에서 ‘죽지 않는 군인’ 연구를 진행하던 중 ‘인간 사체 재활용’과 관련된 논문을 쓴 앙리 뒤프레와 만나 친구가 된다. 확고한 신념을 토대로 자신의 연구를 멈추지 않은 빅터에게 크게 감명받은 앙리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의 실험실에서 생명을 창조하기 위한 여정에 동참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과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실험 또한 중단될 처지에 놓이는데, 빅터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끝내 실험을 이어간다. 결국 제 손으로 피조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나, 완성된 피조물은 창조주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로 충격을 안긴다. 직감적으로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빅터가 그를 공격하지만 괴물은 홀연히 실험실을 떠나버리고, 3년의 세월이 흐른 뒤 애증으로 점철된 괴물의 핏빛 복수가 시작된다. 이처럼 묵직한 이야기로 여러 철학적 질문을 떠올리게 한 작품은 풍성한 음악과 어울려 더 큰 감동을 준다. 왕용범 연출 및 작사, 이성준 작곡가가 함께한 <프랑켄슈타인>은 유독 좋은 명곡이 많이 담긴 뮤지컬로 잘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글 앞머리에 담았던 ‘단 하나의 미래’, ‘너의 꿈속에서’, ‘난 괴물’, ‘혼잣말’은 각 캐릭터의 성격과 심리상태를 명확히 드러내면서도 멜로디까지 좋아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위대한 이상의 추락은 안타깝고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인간의 교만으로부터 비롯된 비극이 남긴 그림자가 채 걷히기도 전, 어둡게 막 내린 무대를 바라볼 때면 온갖 감정이 뒤섞여 묘한 기분이 든다. 특히 후반부 북극 장면은 배우마다 조금씩 전해지는 느낌이 달라 더욱 흥미롭다. 그래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의지를 지닌 인간이기에 가슴 아픈 이야기도 교훈이 된다. 이것이 바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가진 힘이다. <필자소개>최윤영 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 바 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 왔고 현재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4-07-05 11:46 |
![]() |
[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멘델스존이 그려낸 괴테의 바다 멘델스존의 서곡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에 대하여 그림 솜씨가 뛰어났던 작곡가 멘델스존이 그린 아말피 해안바다를 주제로 괴테가 지은 두 편의 단시(短詩)로부터 영감을 받아 멘델스존이 작곡한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Op.27> 서곡. 이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 매해 빈 신년음악회가 개최되는 공연장으로 잘 알려진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리허설을 참관하던 중이었다. 연습지휘자 자격으로 무대와 멀찌감치 떨어져 악보를 뒤적이던 차, 오케스트라 매니저로부터 상임지휘자가 급히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연습지휘를 맡아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았다.당시 세계적인 첼리스트 고티에르 카퓌송이 슈만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얼떨떨한 상태로 무대에 올라 리허설을 지휘했지만 워낙 협연자가 능숙하게 이끌어주어서 무사히 협주곡을 마칠 수 있었다. 협주곡 리허설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려던 찰나, 악장으로부터 멘델스존의 멋진 서곡 한 곡을 더 지휘할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 곡이 다름아닌 멘델스존의 서곡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였다. 준비가 덜 된 상태로 무대에 오르긴 했지만 신비감 넘치는 도입부와 힘찬 항해의 진취적인 악상에 매료되어 지휘하는 내내 떨리면서도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이 곡과 만났다. 1795년 창작된 두 편의 시 '고요의 바다'와 '즐거운 항해'는 내용적으로 정적 속의 바람없는 고요한 바다에 대한 선원들의 불안감과 바람을 타고 육지를 향해 전진하는 희망찬 항해가 대조를 이룬다. 두 편의 시 속에는 1787년 카프리 연안에서 정적 속의 고요한 바다를 마주한 괴테가 실제로 경험한 두려움이 선연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이어 다시 불기 시작한 바람으로 배가 육지를 향해 나아간다는 희망적 메시지가 담긴 시상은 간결하면서도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내용적으로 대비를 이루고 있는 두 편의 시에서 악상을 얻은 멘델스존은 1828년 두 시를 엮어 표제적인 성격을 띤 서곡으로 완성했다. 서곡은 1,2부로 나누어져 구분되어 있는데 1부 '고요한 바다'는 음악을 통해 회화적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절제된 다이내믹과 느릿한 성부의 움직임은 거대하지만 고요한 바다의 숭고함을 배가시킨다. 음악은 출렁거리는 바다를 묘사하는 전형적인 음형들은 배제한 채 고요한 바다에 감도는 적막한 분위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흥미롭게도 멘델스존의 '고요한 바다'는 시의 내용 속에 담겨있는 바람 한 점 없는 상황이 불안한 선원들의 정서보다는 전반적으로 장조의 밝은 기운이 서려 있으며 희망찬 항해를 앞둔 고요한 바다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고뇌와 번민보다는 유쾌한 기운과 온화함을 자아내는 멘델스존의 음악적 근거를 부유한 은행가 가문에서 태어난 유복한 배경에서 찾기도 하는데 이 서곡 또한 음악적 내용면에 있어서 바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즐거운 항해에 힘이 실려 있다. 2부에 해당하는 '즐거운 항해'에서 멘델스존이 희망의 시그널로 선택한 악기는 플루트로서 바람을 타고 나아가는 즐거운 항해를 예비한다. 이어서 목관악기와 호른을 통해 점층적으로 고조되며 현악기와 합세하여 희망찬 항해의 돛을 올린다. 서주에 제시된 모티브는 즐거운 향해서도 변형된 형태로 반복되는데 1,2부의 유기적인 연결을 도모하며 곡의 통일성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향해를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엮은 작곡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멘델스존은 괴테가 지은 시의 내용을 단순히 표제적인 성격의 음악으로 회화적으로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순환'이라는 내러티브를 의도한 듯 2부 '즐거운 항해'의 끝은 다시 고요한 바다의 풍경으로 돌아와 절제된 다이내믹으로 끝을 맺기 때문이다. 괴테의 시는 ‘이미 나는 육지를 본다!(Schon seh'ich das Land!)’라는 희망찬 구절로 끝을 맺지만 멘델스존은 고요하고 숭고한 바다로 끝을 그려낸다. 이 작품의 백미는 괴테의 시를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본인의 악상을 전개·발전시키며 작곡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표제음악을 뛰어넘어 유기적 구조와 절대음악적 요소들이 이상적으로 어우러진 명곡이라는 점에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터. "고요한 바다'에 등장하는 시의 한 구절, "어느 방향에서도 바람을 찾아볼 수 없다! (Keine Luft von keiner Seite!)". 바람 없이 나아갈 수 없는 배의 선원들의 망연자실한 외침은 언제 그랬냐는 듯 허공에서 사라지고 결국 배는 희망의 닻을 올려 육지로 향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요즘 우리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9VtHncrhYVc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4-06-28 13:11 |
![]() |
[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영화가 원작이면서 음악 듣는 재미도 담아내다 / 뮤지컬 ‘프리실라 - 퀸 오브 더 데저트’ 뮤지컬 ‘프리실라 - 퀸 오브 더 데저트’ 공연장면 문화와 예술에서는 발상의 전환, 새로운 사고와 인식이 진보를 이뤄내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기 장르나 형식도 적절히 뒤섞거나 새롭게 충돌시켜 오히려 흥미로운 형식적 실험을 추구하는 작품들이 늘 등장한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원작인 뮤지컬이라는 의미인 무비컬(Movical)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바의 음악으로 만든 ‘맘마 미아!’처럼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의 묘미도 함께 추구하는 작품들도 시도되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일석이조’요, ‘꿩 먹고 알도 먹는’ 복합적인 흥행 전략이 돋보이는 극적 구성인 셈이다.뮤지컬 ‘프리실라 - 퀸 오브 더 데저트’가 그렇다. 원작은 다름 아닌 스크린용 영화다. 1994년 발표된 호주 영화 ‘사막의 여왕, 프리실라의 모험(The Adventures of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이다. 주연을 맡았던 배우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요원으로 나와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호주 태생의 배우 휴고 위빙으로, 시드니에서 앨리스 스프링스까지 이어지는 사막 횡단 버스 여행 속에서 주인공 틱이 친구들과 함께 겪게 되는 일련의 모험과 여정을 다루고 있다. 로드 무비 형식의 이야기는 ‘틱’의 비밀을 하나씩 드러내며 흥미를 더해간다. 드레그 퀸(drag queen, 여장을 즐기는 남성 동성애자 혹은 여장 남자)인 그에겐 사실 부인이 있었고, 몇 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던 8살짜리 아들 벤자민이 존재한다. 어린 아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과 드레그 퀸이라는 직업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두려웠던 틱은 고민에 빠지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아무 편견 없이 가족이자 아버지로 받아들여주는 아들과의 감동적인 대면은 이 영화 최고의 감동을 자아낸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드레그 퀸의 이색 퍼포먼스로 포장된 화려한 이미지들이지만,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성적 소수자의 별난 모습이나 편견보다 보편적인 가족애 그리고 핏줄 찾기와 인간으로서의 공감대 형성이라는 휴머니즘의 감동이 따뜻하게 묘사되며 관객들을 눈물 흘리게 만든다.영화는 호주를 세계 영화계에 알린 기념비적 성과를 수립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로 일컬어지는 성적 소수자들은 ‘틀린’ 것이 아닌 ‘다른’ 존재일 뿐이며, 그들의 삶이나 사연에 대한 관심을 특정한 성적 성향의 사람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로까지 확장시킨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히게 됐다.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은 언론이나 평단으로부터도 긍정적인 반향을 이끌어냈고, 결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의상디자인상을 거머쥐는 성과마저 이뤄낸다. 2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총매출 2,967만 달러, 우리 돈로 환산하면 22억원의 제작비에 총 매출이 약 320억원을 상회하는 매출을 달성해 15배에 육박하는 수익을 창출한 흥행 대박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를 가져와 각색한 뮤지컬 버전이 처음 소개된 것은 2006년이다. 영상물이 만들어진지 꼭 12년만의 일이다. 뮤지컬은 영화를 만들었던 호주 제작진이 직접 참여해 작품의 일관된 메시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영화에서 채 다 못한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더해 그만의 매력을 더하는 작품으로 진화됐다. 익숙하면서도 다시 재미있고 새로워야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흥행 공식이 적절히 반영된 콘텐츠의 성공적인 진화라 평가할 만하다. 오히려 무대라서 더 재미있는 장점도 있다. 드레그 퀸 특유의 화려함이 그렇다. 영화에서도 큰 평가를 받았던 의상이 무대에서는 더욱 흥미롭게 재연된다. 여기에 360도를 LED로 치장한 버스 세트, 갖가지 화려한 비주얼 특수효과 등이 추가되면서 무대의 재미는 한층 배가됐다. 일반적으로 드레그 퀸 퍼포먼스에서는 배우가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입만 벙긋거리며 흉내를 내는 립 싱크를 활용한다는 점에 착안, 무대 위의 여장남자들도 우스꽝스레 과장되거나 특유의 분위기를 담은 무대 매너를 선보이며 노래는 여성가수가 대신 불러주는 한바탕 축제 같은 분위기를 선보였다. 사실 원 제목에서도 등장하는 퀸(Queen)이라는 용어는 본래의 ‘여왕’이라는 의미보다 여장 남성 동성애자 퍼포먼서를 일컫는 드레그 ‘퀸’에서 파생되어진 것인데, 무대는 이러한 의미에 어울리게 이색적이고 화려한 모양새를 마음껏 뽐내는 다양한 이미지를 과감히 선보인 셈이다. 뮤지컬 ‘프리실라 - 퀸 오브 더 데저트’ 공연장면 이색적인 시각적 장식에 더해져 백미를 이룬 것이 바로 음악이다. 뮤지컬로 각색되면서 프리실라는 새로운 음악 대신 잘 알려진 왕년의 대중음악을 극에 녹여 담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특성을 강조하게 됐다. 덕분에 무대에서는 티나 터너의 ‘왓츠 러브 갓 투 두 윗 잇’, 펫 샵 보이스의 ‘고 웨스트’, 바나나라마의 ‘비너스’, 주디 콜린스의 ‘보스 사이즈 나우’, 신디 로퍼의 ‘걸스 저스트 워너 해브 펀’, 글로리아 게이너가 부르고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 됐던 ‘아이 윌 서바이브’ 등 주옥같은 명곡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것도 그냥 서서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온갖 형형색색의 의상과 무대효과가 더해져 장관을 이뤄낸다. 화려하고 이색적인 장식들이 다양한 시각 효과에 덧붙여 재연되다보니 마치 브라질의 길거리 퍼레이드인 삼바 축제라도 온 것처럼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가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커튼콜에선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춤추며 즐기는 관객도 만날 수 있는 이유다. 뮤지컬 ‘프리실라, 퀸 오브 더 데저트’는 글로벌한 흥행을 이뤄냈다. 처음 시발점이었던 호주 시드니에서의 공연을 필두로 영국 런던, 캐나다 토론토, 뉴욕 브로드웨이, 이탈리아 로마와 밀라노, 브라질 상파울로, 스웨덴 스톡홀름 등이 이어졌으며, 현재도 영미권에서는 투어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국경과 언어, 도시와 지방 등을 초월한 전지구적 흥행은 물론 이 작품만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인간애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처음엔 이색적인 성정체성의 등장인물이 신기하고 별나 보이지만, 중국에는 그 이채로움 이면에서 인간적인 공감을 발견하게 되고 감동받는데 진짜 묘미가 담겨있다. 여기에 대형 무대의 코믹하고 다양한 볼거리, 친숙하지만 다시 새롭게 편곡된 왕년의 인기 대중음악들이 가져다주는 즐거움도 이야기의 묘미와 감동을 상승시켜주는 시너지를 발휘한다. 굳이 말하자면, 세 시간 공연의 입장권 가격이 아깝지 않은 전천후 종합 선물세트를 선물받는 느낌이다.실제 이 작품이 막을 올리는 해외 공연장들을 찾아가보면 어깨를 들썩이며 환호하고 즐기는 다양한 연령의 관객들을 어렵지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예 파티 차림을 하고 ‘즐기러’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도 적지않다. 덕분에 요즘 젊은 세대들의 표현을 빌자면 ‘불금’에 더 표구하기 힘든 작품이라는 재미난 평가도 있다. 이래저래 흥미로운 글로벌 뮤지컬 공연가의 재미난 풍경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4-06-21 10:32 |
![]() |
[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천재작가들의 톡특한 연동, 서촌 ‘이상의 집’ 콜라보 마주하지 못한 두 천재 작가, 시인 이상과 화가 김성룡의 창작열을 매칭한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문학과 미술의 경계를 뛰어넘는 혁신적 시도로 시인 이상의 ‘오감도’와 화가 김성룡의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통해 시공을 넘나드는 신선한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천재 시인 이상과 화가 김성룡은 시대를 달리했지만 이상의 환상적 초현실을 통해 세상의 풍파와 맞서는 창작에너지를 보여준다. <오감도, 그리오>는 시를 모르는 관람객들이 오감을 자극하는 그림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자체가 ‘다양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다. 난해한 언어유희와 신조어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이상의 내면세계를 화가 김성룡은 동시대의 파격미로 재해석한다. 오감도(烏瞰圖/五感圖), 처연한 싸늘함의 미학 천재시인 이상과 화가 김성룡, 시대를 달리한 이들의 언어는 ‘무섭다고 그리오’라는 오감도(烏瞰圖)의 언어유희처럼 환상적 초현실을 통해 세상의 풍파와 맞선다. 1934년 7월 24일자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된 연작시 <오감도>에는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며 ‘초현실의 초현실’을 논한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 중략 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러케뿐이모혓소.” 난해시로 일대 물의를 일으킨 오감도는 조감도(鳥瞰圖)의 징표를 부정적으로 바꾼 신조어(新造語)를 낳으며, 종래 시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파격미’를 보여준다. 총 15편의 연작시(連作詩)들은 제8호에 ‘해부(解剖)’, 제9호에 ‘총구(銃口)’, 제10호에 ‘나비’라는 부제를 제외하면, 부제 없이 일련번호로 구분돼 있다. 이는 보는 순간 사람의 감성을 삼켜버리는 ‘김성룡의 그림들’과 유사하다. 초현실주의를 넘어선 환상적 파격주의를 표방한 작품들은 반복, 반전에 의한 부정, 신조어 등을 사용한 ‘시인 이상의 시각화’라고 평해야 한다. 조감도(鳥瞰圖)는 미술용어로 공중에 떠 있는 새가 아래를 내려다 본다는 것을 뜻한다. 이상의 ‘오감도(烏瞰圖)’는 ‘조감도’라는 한자의 글자모양을 변형시켜 새로운 단어를 만든 것이다. 까마귀오(烏)와 새조(鳥)는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까마귀는 독특한 분위기를 통해 암울한 현대인들의 삶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체이다. 연작시 오감도에서 시적 화자는 스스로 까마귀를 자처하며 공중에 붕 떠 있다. 공중에 떠있는 까마귀의 시선과 각도로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는 설정은 ‘화가 김성룡’에게도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난해 시로 지목된 이상의 시는 언어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독자의 상상력만 증폭시킨다. 읽어도 알 수 없는 시, 보아도 알기 어려운 그림, 이러한 설정은 ‘천재들이 생략과 중첩을 통해 감추어 둔 현재적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비현실적 현실’의 풍자화, 금기를 금기하라! 김성룡은 연금술사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마술을 부린다. 김성룡의 ‘선(線/先)’은 시대정신이다. 여기서 선은 세상의 모든 것에 맞선, 앞선 시각이다. 작품에는 리듬이 있고 다양한 변주를 머금는 환상적 초현실이 존재한다. 평론가 이진명은 나무에 걸터앉아 허공을 보는 <랭보>라는 작품에서 “세찬 바람을 맞아서 크게 자라지 않은 나무 … 시인의 환한 이마를 가로지르는 세찬 바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제주에서 활동해 온 작가의 처연함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보듯 ‘시대에 맞서 싸우는 고독한 투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고흐에 대한 연민을 자화상처럼 옮겨낸 작품들에서도 이 시간과 저 시간을 가로지르는 ‘자의식의 과잉’이 자리한다. 김성룡 작품은 폭풍 같은 파격 에너지로 종래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일종의 연작시(連作詩) 같은 그림들은 전체적으로 긴장·불안·갈등·싸움·공포·죽음·반전 등으로 현실을 해체하는데 두려움과 절망에 맞선 현실을 ‘부릅뜬 역전(逆轉)’의 눈으로 표현한다. 석양의 기억들이 피 같은 색으로 물드는가 하면 키 큰 나무의 견고함이 해체된 선으로 해방됨으로써 자아를 느긋하게 풀어주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성과 컬러는 고흐와 고갱의 작품에 혜택을 입은 셈이지만 김성룡은 천연적인 컬러와 형태의 과격한 강화 속에서도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를 놓치지 않는다. 갤러리 끼 대표 이광기는 “이번 전시는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로 관람객들에게 창의적인 영감을 전하고자 한다. 시인 이상과 화가 김성룡의 만남은 융합과 창작의 시대를 여는 독특한 사유를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삶의 세계와 인간 가치의 회복을 모색하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김성룡의 작품은 파주 갤러리 끼(28점)와 서촌 이상의 집(2점)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는 6월 15일(오프닝 토요일 오후5시)에서 8월 3일까지 갤러리끼 파주(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521-2)에서 진행된다. (문의 010-8186-1059, @gallerykki/ 매주 일.월 휴관)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4-06-14 10:07 |
![]() |
[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1990년대 초반 평단과 대중의 커다란 호응을 얻은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 전집 음반이 탄생했습니다. 1990년과 91년에 걸쳐 녹음된 이 음반의 지휘자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 Harnoncourt, 1929-2016). 원래 첼리스트였다가 지휘자가 된 그는 작곡가 당대의 악기와 연주 관습 등을 살려 연주하는 원전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도 유명한 음악가였지요. 그가 1953년 설립하여 오래도록 이끌었던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Concentus Musicus Wien)은 현재도 세계적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원전연주 단체입니다.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은 원전연주 단체가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이 잇따라 발매되며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시기였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아르농쿠르도 베토벤을 다룬 것인데 악단 선택이 참 의외였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과 함께 하리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원전연주 단체도 아닌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Chamber Orchestra of Europe)를 선택한 것이었지요. 1981년 창단된 이 오케스트라는 아르농쿠르와의 베토벤 교향곡 녹음 당시에는 비교적 신생 악단이었습니다. 또 단원들의 평균연령이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젊은 단체였지요. 아르농쿠르는 왜 오래도록 함께해온 자신의 악단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춘 관록있는 오케스트라도 아닌, 이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선택했던 것일까요? 아르농쿠르는 이에 대해 흥미로운 언급을 하였습니다.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이전에 베토벤의 교향곡들을 연주한 경험이 실질적으로 없는데 이는 다른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에는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놀라움의 경험은 음악가 스스로에게 무척 귀중한 것인데 이는 베토벤 연주를 계속 해왔던 다른 오케스트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고도 했지요. 다른 오케스트라에서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닐테니까요. 사실, 아르농쿠르의 이 말은 조금 의아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단원들이 젊다고 해도 그들이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한 경험이 아예 없었을까요? 베토벤의 교향곡 모두를 연주해본 단원은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오케스트라 레퍼토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의 교향곡들 중 일부는 연주해본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르농쿠르와의 작업 이전에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클라우디오 아바도(C. Abbado, 1933-2014)의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2번을 연주한 기록이 있기도 하지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리허설하고 있는 아르농쿠르 (2010년) ©Werner Kmetitsch/Chamber Orchestra of Europe Homepage 아르농쿠르의 말을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일년 내내 활동하는 상설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모여 집중적으로 리허설과 공연을 하는 오케스트라입니다. 단원들은 오케스트라 단원이기도 하지만 독주자, 실내악 연주자 혹은 교수로서의 활동에 적극적인 경우가 많지요.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보면 아르농쿠르의 말은 이 오케스트라에는 아직 그들만의 베토벤 연주 전통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아르농쿠르는 자신만의 베토벤 해석을 마음껏 공유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를 원했고 그런 그에게 젊고 실력이 출중한 연주자들로 구성되었으며 베토벤 연주는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이 기존의 오케스트라보다 확연히 적을 수밖에 없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최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음악에 대한 아르농쿠르의 해박함과 오랜 시간 쌓여진 관록이 패기 넘치는 젊은 앙상블과 만나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낸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풍부한 경험을 통해 관록이 쌓여간다는 것은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많은 긍정적인 부분들을 갖고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연주에서의 안정감도 보장될 확률이 높아지지요. 어느 연주단체에 그들만의 연주 전통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이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과 관록이 때로 지나친 익숙함이 되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요. 많은 스케줄을 소화해 내야 하는 보통의 오케스트라의 경우에 특히 그렇습니다. 아바도는 한 대담에서 유서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리허설하며 기존의 어떤 것을 바꾸고자 했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단원들도 있었지만, 어떤 단원들은 ‘우리는 항상 이렇게 연주한다’고 항변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바도는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고 덧붙였지요.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상임 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 v. Karajan, 1908-1989)의 뒤를 이어 1989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가 된 아바도는 취임한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녹음합니다. 이 전집은 새로운 시도와 해석으로 많은 주목과 찬사를 받았는데 이 시기의 베를린 필은 카라얀 재임시절부터 있던 단원들 중 상당수가 이미 은퇴하고 아바도의 재임 기간에 새로 입단한 젊은 단원들 수가 많이 늘어났던 때였습니다. 그만의 새로운 시도와 해석이 카랴얀의 방식에 익숙한 단원들이 대부분이었을 때 큰 무리없이 가능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물론 관록있는 연주 단체가 변화에 늘 부정적이라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것에 안주하는 것보다 어렵기 마련이어서 변화와 새로움의 시도는 더 많은 노력과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지요. 분명 쉽지 않지만, 이러한 시도 끝에 관록과 패기, 익숙함과 새로움의 조화가 잘 이루어질 때, 우리는 아르농쿠르와 아바도의 베토벤 음반과 같은 의미있는 결과물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추천영상: 아르농쿠르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제5번 1악장입니다. 기존의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소리를 대신하는 단단하고 투명한 울림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두터운 현악기 소리에 가려지곤 했던 관악기 소리가 보다 선명한 것도 커다란 매력입니다. 많은 찬사를 받았던 이들의 베토벤 연주를 감상해 보세요.https://www.youtube.com/watch?v=SQO-rZ8LMJw <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4-06-07 11:46 |
![]() |
[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콜드송 (The cold song)헨리 퍼셀의 오페라 <아서왕>을 빛낸 겨울의 아리아 사진 제목: 헨리 퍼셀의 아리아 '콜드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국의 국민가수 스팅흥미롭게도 영국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헨리 퍼셀의 '콜드송 (The Cold Song)'을 처음 접한 건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출신의 가수 스팅이 부르는 현대적인 리메이크 버전이었다. 클래식에 일가견이 있고 평소에 바흐를 추앙해 왔던 팝가수 스팅다운 시도라는 생각과 함께 이 곡이 불러일으키는 '스산함'에 단번에 도취 된 바 있다. 이 노래는 특유의 모던한 바이브 덕분에 장르의 벽을 허물며 다양한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었고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다양한 헐리우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이는 분명 바로크 시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클래식의 시대적 초월성일 것이다. '콜드송'으로 잘 알려진 이 노래의 원제는 '무슨 힘으로 (What power art thou)'로 1691년에 완성된 퍼셀의 오페라 <아서왕>의 3막에 등장하는 아리아다. 아서왕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중세 시대의 전설 속 인물로 색슨족을 물리친 브리튼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는 판타지적 인물로 중세 영웅서사의 큰 축이었고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가며 판타지 문학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아서왕의 서사에 등장하는 원탁의 기사나 카멜롯, 멀린 같은 단어들은 중세 기사문학에 대한 일가견이 없어도 누구나 한번은 접해봤을 터. 아서왕의 전설은 수 세기를 거쳐오며 다양한 문학적 소재로 활용되어 누구에게나 친숙한 편이다. 영국 바로크를 대표하는 작곡가 퍼셀의 세미 오페라 <아서왕>은 총 5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색슨족의 왕 오스왈드에게 납치된 약혼녀 에멀린 공주를 구하기 위해 브리튼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선 아서왕이 색슨족과 싸워 승리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세미 오페라는 연극적인 대사와 음악이 분리되어 조합된 형태의 오페라로서 영국의 왕정 복고시대에 유행했다.) 오페라의 내용 속에는 신화적 요소들이 다분하기 때문에 음악이 신비감을 더하는데 콜드송은 깊은 숲속을 배경으로 한 3막 2장에 등장한다. 사랑의 신 큐피드가 겨울의 정령, 콜드 지니어스를 잠에서 깨우는 과정에서 콜드 지니어스가 부르는 아리아 콜드송은 마지못해 잠에서 깨어나는 겨울의 정령이 추운 날씨 속에 늙고 지친 자신의 서러운 처지를 한탄하며 자신을 다시 잠들게 놔두라는 엄포성 가사를 담고 있다. 이 오래된 바로크 시대의 아리아가 현시대 아티스트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21세기 동시대 작품같은 '현대미'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일단 절제된 현악 반주와 쳄발로 사운드 위에 선율미가 느껴지지 않는 음표들을 건조하게 나열하는 듯, 한음 한음 끊어 부르는 주 멜로디는 분명 미니멀리즘의 음악어법과 궤를 함께 하며 세밀하게 감지되는 불협화음 또한 현대미를 배가시킨다. 덧붙여 전형적인 바로크풍의 화성 진행을 뛰어넘는 독자적인 화성 전개는 지극히 미니멀한 노래에 긴장감을 더하며 곡의 캐릭터에 멋지게 일조한다. 콜드송은 베이스를 위한 아리아지만 존재감 있는 캐릭터로 폭넓은 인기를 구가하며 카운트 테너, 바리톤, 메조 소프라노 등 음역대에 구애받지 않고 널리 불려지고 있다. 3분 남짓한 곡이지만 한번 들으면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겨울의 음악이다. 가수 스팅의 대중적이면서도 아카데믹한 해석과 클래식 성악가들의 오리지널 바로크 버전을 비교해 보면서 들어보는 것도 감상의 묘미다. *유튜브 링크1. https://www.youtube.com/watch?v=TNbKx2x3a9U2.https://www.youtube.com/watch?v=Q8K8wFk-tn8&list=RDQ8K8wFk-tn8&start_radio=1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4-06-03 08:23 |
![]() |
[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시리즈와 함께 떠오르는 테마곡이 되길, ‘범죄도시4’‘범죄도시4’가 개봉 20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에 이런 프랜차이즈 영화가 등장한 것은 산업적으로 의미가 큰 일이다. 나왔다 하면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어디 쉬운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는 더 쉽지 않을 것이다. 2편과 3편이 모두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으니, 이 시리즈는 트리플 천만 관객 동원이라는 과업을 달성한 것이다. 시리즈마다 개개인의 호불호가 갈리기는 해도, 관객수가 증명하듯 ‘범죄도시’는 이제 ‘007’, ‘미션 임파서블’, ‘분노의 질주’처럼, 일정 정도의 재미를 보장해주면서 대중들에게 광범위하게 사랑받는 액션 영화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에는 있고, 이 영화에는 아직 없는 게 있으니, 바로 메인 테마 곡이다. 악당을 때려눕히는 마석도(마동석)의 강펀치가 시원한 타격감으로 관객들을 흥분시킬 때, 흘러나와야 할 친숙한 음악이 진작 있어야 했다. 그런데 ‘범죄도시4’에 드디어 그런 음악으로 기대할 만한 스코어가 등장했다. 영화의 마지막 액션 신에서 마석도가 두 명의 악당을 때려잡느라 일등석을 초토화시킬 때 나왔던 ‘파이널 퍼니쉬먼트’(final Punishment)는 강한 비트의 드럼에 일렉트릭 기타의 멜로디가 소리지르듯 얹히면서 귀에 강렬하게 박히는 곡이다. ‘범죄도시4’의 음악을 담당한 윤일상 감독은 김범수의 ‘보고싶다’,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등 인기가요를 다수 만들어온 대중음악 작곡가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본인의 밴드를 만들어 음반도 내고 있으며, 단편영화에도 참여하는 등 전방위적 음악가로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상업영화 음악감독으로는 ‘안시성’(감독 김광식, 2018)으로 데뷔해 54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일조했다. 노래곡과 영화음악은 완전히 다른 공정으로 만들어짐에도 불구하고 윤일상 감독은 데뷔작부터 남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그의 비범한 음악적 재능과 센스를 계속 입증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 작곡가들이 팀으로 일하는데 반해, 작곡부터 믹싱까지 혼자 해결하는 작업 방식도 놀랍다. ‘범죄도시 4’의 음악이 인상적이었다면,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연출 강윤성, 2022)의 음악도 다시 들어보시길 권한다. 이미 좋은 평가가 많았던 인트로 음악 뿐 아니라 장면마다의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고조시키는데 사용된 90여곡의 음악들이 하나하나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졌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영화, ‘미지수’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돈구 감독이 신작을 냈다. 그가 300만원으로 만든 첫 장편 데뷔작, ‘가시꽃’(2012)은 베를린영화제에 초대되어 영화는 돈이 아니라 이야기로 말한다는 사실을 새삼 곱씹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 다음 작품은 100배 이상의 예산으로 김영애, 도지원, 송일국 등 중견 배우들을 캐스팅해 만들 수 있었고(‘현기증’), 재작년에는 손현주 배우가 주연을 맡은 ‘봄날’이 개봉되기도 했다. ‘미지수’는 벌써 데뷔 10년이 넘은 이돈구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이자 첫 멜로 영화다. 다섯 번째 장편이라면 이제 기성 감독의 냄새가 풍길 만도 한데, ‘미지수’에는 그런 게 없다. 신인 감독이 찍어 놓은 것처럼 다소 어설프게 느껴지는 신들도 보인다. 오히려 ‘현기증’(2014)이나 ‘봄날’이 더 매끄러웠던 걸 보면 의도한 느낌도 있다. 그런게 아니라면 첫 멜로드라마라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애초에 이 장르가 감독과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가 맞기는 한걸까. 이 69분짜리 영화를 보는 동안 떠오르는 단상들은 영화의 구조만큼이나 계속 꼬이고 헝클어진다. 영화가 시작한 지 50분이 지날 때까지 ‘미지수’에는 연인은 등장하지만 연인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화의 중심에는 그들의 로맨스가 아니라 현실과 환상의 중간계쯤에서 일어난 듯한 사고와 죽음이 놓여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공간에서는 이들과 무슨 관계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치킨집 부부가 등장한다. 아내는 비만 오면 배달 사고 걱정으로 히스테릭해지는 남편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 남편에게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영화는 끝나기 20분 전까지 별다른 단서를 주지 않고 두 부부의 갈등만 묘사한다. 작은 실마리가 있다면 연인 중 남자의 이름이 ‘우주’고, 남편이 우주 발사체 소식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네 사람과 두 개의 플롯을 연결시킬지 미지수로 진행되던 영화는 결말부에서 이들을 꽤 자연스럽게 봉합시키며 진한 감정을 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치킨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우주는 비가 많이 오던 날 배달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연인이었던 ‘지수’와 치킨집 부부, 그리고 우주의 엄마는 마음 속에서 우주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성 사진과 달리 붉은 빛이 강한 우주를 배경으로 우주인 한 명이 외롭게 떠다니는 영상이 오프닝을 비롯해 여러 번 삽입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지수의 우주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순식간에 최루성 멜로드라마가 된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와 남겨진 사람들의 죄책감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해석은 계속 확장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영화가 다소 헐겁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영화 전체가 스스로 명확하게 규정되기를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맨스 자체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기억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지가 잘 보일 때까지, ‘미지수’는 끝나지 않는 영화다. <필자소개>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4-05-24 09:16 |
![]() |
[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관객 참여형 뮤지컬의 정석,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한 장면 © (주) 쇼 노트이머시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이 재연으로 돌아왔다. 2021년 한국 초연 당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 작품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없었던 아쉬움은 완전히 털어냈다. 그만큼 더 야심차게 준비했다는 이야기다. 레프 톨스토이의 명작 ‘전쟁과 평화’를 바탕에 두고 새롭게 창작한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방대한 분량 가운데 일부만을 발췌해 무대에 어울리는 옷을 입혀 만든 작품이다. 원작에는 러시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1812년 전쟁과 당시 각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삶과 고뇌, 미래에 대한 좌절과 희망 등도 엿보인다. 그런 만큼 매우 복잡하고 어렵지만, 다양하게 그려낸 인간 군상과 그들의 심리 묘사를 토대로 각자 인생을 마주하는 자세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뮤지컬은 피에르 베주호프와 볼콘스키 공작 가문 이야기를 중심으로 나타샤, 아나톨 등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와 심리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원제가 ‘나타샤, 피에르 & 1812년의 위대한 혜성(Natasha, Pierre & The Great Comet of 1812)’인 것을 보더라도 뮤지컬이 원작 중 어느 부분에 집중하고 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다만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러시아 소설로부터 출발한 작품인 만큼 등장인물의 이름과 관계를 빠르게 파악하기 쉽지 않아, 소설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전쟁과 평화’를 먼저 접해본 적이 없는 관객이라면 ‘프롤로그’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공연장 벽면에 비치된 인물관계도나 프로그램 북, 리플릿에 담긴 자료를 미리 챙겨봐 두는 것도 좋다. 배경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으로 인해 여러모로 혼란스럽던 1812년 모스크바다. 러시아 백작의 서자로 태어난 피에르는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귀족이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이자 아나톨의 누이인 엘렌은 남편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일상을 즐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귀족 사회로부터 느낀 피로와 환멸, 삶에 대한 회의감으로 늘 술에 취해 권태롭게 살아가고 있던 피에르에게 순수함의 상징이던 나타샤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은 그가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머시브 공연답게 관객들을 작품 안에 끌어들이는 과정도 자연스럽다. 관객의 몰입을 높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이머시브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 작품 안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게 한다. 그래서 날마다 다른 관객 성향이나 참여도에 따라 느낀 바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특히 ‘그레이트 코멧’은 무대 디자인부터 일반적인 뮤지컬과는 큰 차이를 두었다. 우선 가운데 둥근 원을 중심으로 상하좌우로 겹친 원의 형태를 한 무대 바닥을 넓게 설치했다. 각각의 원마다 높낮이를 다르게 하고 일부 좌석은 원안으로 삽입해 ‘코멧석’이라 불리는 특별석을 마련해 두었는데, 이 좌석은 일반 객석과 반대로 무대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색다른 관극 경험을 이끈다. 뮤지컬 그레이크 코멧 공연 장면 ©(주)쇼 노트 출연진 역시 배우와 악기 연주자를 넘나들며 액터 뮤지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본 공연 시작 전 프리쇼가 펼쳐지는데, 이왕이면 여유롭게 공연장에 도착해 프리쇼를 충분히 즐겨보기를 추천한다. 배우들이 무대와 객석으로 하나둘씩 등장해 관객과 눈을 맞추며 말을 걸고,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어느새 작품 안에 깊숙이 빠져들게 되는 경험은 놀라우리만치 새롭고 수줍으면서도 재미있다. 이때 연주되는 간주곡은 마치 1812년 모스크바의 클럽 한복판을 연상케 한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순간은 여럿 있다. 배우의 손에 이끌린 관객은 사랑의 편지를 전달하는 매개 역할을 하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인으로부터 청혼을 받는 등 극 중 상황을 현실로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작품은 실행 가능한 범위 안에서 관객 참여형 뮤지컬의 특성을 살려 끊임없이 소통하는 형태를 갖췄다.또 ‘그레이트 코멧’은 팝, 일렉트로닉, 클래식, 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여타 뮤지컬에서 쉽게 만나보기 힘든 독보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끔 낯설게 느껴지는 구간도 있지만,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도구적 개념에서 무척 혁신적인 시도로 다가온다. 지난 3월 26일 서울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오는 6월 1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피에르 역에는 하도권, 케이윌, 김주택이, 나타샤 역은 이지수와 유연정, 박수빈이 맡는다. 또 나타샤의 마음을 사로잡은 탕아 아나톨 역으로는 고은성, 정택운, 셔누가 이름을 올렸으며, 소냐 역 효은, 김수연, 엘렌 역 전수미, 홍륜희도 함께한다. 이밖에 류수화, 주아(이상 마리아 D역), 윤지인(마리 역), 최호중, 심건우(돌로코프 역), 유효진(발라가 역), 오석원(안드레이, 볼콘스키 역) 등이 한층 더 뜨거워져 돌아온 ‘그레이트 코멧’을 완성한다. 예년보다 한층 더 뜨거운 계절이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올 상반기, 다시 찾은 일상에 넘치는 활기를 불어넣어 줄 작품을 꼭 한번 보기 바란다. <필자소개>최윤영 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 바 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 왔고 현재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4-05-17 09:43 |
![]() |
[문화] 국악 Prologue!
오월, 여자들의 소리 사십여 년 전 오월의 광주 이야기를 다룬 공연 두 편이 관객과 만난다. 5월 첫 주, 서울 모노드라마 페스티벌 참가작으로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한 <지정남의 오월 1인극 환생굿>(이하, 환생굿)과 2024 남산소리극축제의 네 번째 메인 공연으로 5월 18일 두 차례 서울남산국악당 무대에 오르는 <방탄 철가방-배달의 신이 된 여자, 배달순>(이하, 방탄 철가방)이다.환생굿 4월, 광주에서의 이틀 공연이 모두 전 석 매진된 <환생굿>은 서울에서 나흘간 펼쳐진 공연도 매진 사례를 이어갔다. 굿을 배운지 얼마 안 된 무당이 단골 식당 사장의 의뢰를 받아 망자의 환생을 위해 굿을 펼치는 내용으로, 화순의 능주 씻김굿과 버무려 풀어낸 창작 굿극이다. 이들은 환생굿을 통해 망자뿐 아니라 1980년 5월 광주에서 이름도 없이 스러진 영혼들과 이름이나 흔적을 지운 채 상처 속에 살다 죽은 이들을 소환해낸다. 고풀이, 길닦음 등 능주 씻김굿의 절차를 빌려와 공연 틈틈이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가족을 찾아 나선 간절함, 차마 이웃을 외면하지 못한 선의에 죄의 굴레를 씌웠던 시대의 비극이 객석을 공명케 하고, 망자로 분한 관객들이 진혼鎭魂과 해원解冤의 시간을 공유한다.마당극 배우이자 방송 진행자로 유명한 지정남이 연출과 극작까지 맡았다. 광주에서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사회를 도맡아 본 실력으로 생생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1인 3역을 능란하게 소화해낸다. 그는 이 공연을 위해 능주 씻김굿을 1년여간 공들여 배웠는데, 실제 그의 스승이기도 한 능주 씻김굿 보유자 조웅석 명인이 공연의 악사이자 초짜 무당의 스승 역할로 함께 무대에 선다. 능주에서 이름난 세습무계의 전승자인 조웅석 명인은 징․대금․태평소 연주와 구음 등으로 극의 음악을 이끄는 한편,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객석의 폭소를 이끌어 내는 일품 연기를 선보인다. 5월 11일(금)에는 마당극 운동 50주년을 기념하여 부산 신명천지소극장에서 공연하였으며, 6월 14일(금)에는 앙코르 공연으로 광주에서 관객과 다시 만날 예정이다. <방탄 철가방>은 1인 창작 판소리극 <방탄 철가방 – 배달의 신이 된 사나이>의 여성 버전이다. 첫사랑 애경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던 주인공 ‘최배달’이, 단짝 친구 애경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주인공 ‘배달순’으로 바뀐 것. 2014년 8월,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사나이’ 버전은 4회 공연 전 회차가 매진되었고, 극작과 소리를 맡았던 소리꾼 최용석은 이 작품으로 그해 말 열린 창작국악극대상 시상식에서 남자창우상을 수상했다. 또 10년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이데일리 문화대상․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에서 우수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곡은 황호준 작곡가가 맡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최용석이 연출을 담당하고, 소리꾼 정상희가 배달의 신, 배달순 역에 도전한다.신의 경지에 이른 자전거 타기 실력으로 광주 짜장면 배달계의 고수가 된 주인공은 5월 어느 날 광주 금남로에 닥친 대재앙에 ‘배달로 평탄작전’에 돌입하며 시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시민군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전남도청으로 짜장면을 배달하는 주인공과 동료들은, 전남도청에서 밥을 하던 <환생굿> 속 여인들과 꼭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2024 남산소리극 축제 포스터 지난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소리극으로 프로그램을 꾸렸던 서울남산국악당은 올해 남산소리극축제의 테마를 ‘여설뎐女說傳’으로 하고, ‘싸우는 여자들의 소리’란 부제를 붙였다. 5월 18일(토) <방탄 철가방>까지 총 여섯 개 작품이 이어진다. 세상의 난제 혹은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솔의 기억>(5.8.)은 이화여대 한국음악과의 전통 성악 전공 학생들로 이루어진 앙상블 ‘이화Sori’가 만든 작품이다. 김수미 명창이 야외마당에서 선보인 <유관순 열사가>(5.9.)는 월북한 명창 박동실이 지은 창작 판소리 ‘열사가’ 중 하나로,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진두지휘한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창작하는 타루의 공연 <정수정전>(5.11.)은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여성 영웅 소설을 원전으로 했다. 남장을 하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대장군이 되는 여걸의 일대기를 다뤘다. 또 제주의 여신을 앞세워 환경 문제를 이야기할 사부작당의 <청비와 쓰담 특공대>(5.15.),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김학순의 투쟁을 담은 <별에서 온 편지_김학순가歌>(5.16.)도 관객을 기다린다. <필자소개>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4-05-13 17:13 |
![]() |
[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20분 안에 담긴 거대한 드라마 시벨리우스의 마지막 교향곡 바이올린을 안고 있는 젊은 시절의 시벨리우스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이 교향곡을 빈에서 처음 접했을 때 가장 생경했던 점은 짤막한 곡의 길이와 엔딩답지 않은 엔딩이다. "이게 곡의 끝이라는 건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갑작스러운 결말. 후기 낭만주의 시대에 20분짜리 교향곡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게 주지의 사실. 마지막 교향곡이라는 점에 굳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지만, 이례적인 단일악장 구조의 20분 남짓 짧은 길이가 시벨리우스의 음악 인생을 응축시켜 놓은 듯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데 1시간을 훌쩍 넘기는 교향곡 못지않은 음악적 밀도와 서사를 자랑하며 결코 가볍지 않은 교향곡임에도 불구하고 시벨리우스 교향곡에 관심 있는 클래식 입문자에게 선뜻 권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닐센, 그리그와 함께 북유럽 3대 작곡가로 손꼽히는 민족주의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탁월한 교향시와 더불어 클래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으로 현재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곡가다. 특히 시벨리우스의 전원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교향곡 2번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24년 교향곡 7번이 초연 무대에 오를 때 시벨리우스가 붙인 제목은 '교향적 판타지'다. 이듬해, 심사숙고 끝에 결국 <교향곡 7번>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는데 제목에 고민이 많았다는 건 그 만큼 교향곡 7번에 대한 의미 부여가 컷다는 방증이 아닐까. 최후의 교향곡을 떠올리면 그 연륜에서 오는 심오하고 장엄한 대미를 기대하기 쉬울 터.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교향곡 7번은 우주적 심연과 숭고함을 자아내는 악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브루크너 교향곡과 같은 긴 빌드업이나 다소 장황한 말러의 음악어법보다는 담백한 단일 악장의 응축된 구조 속에 녹아있는 영감 넘치는 주제들의 유기적 움직임과 서사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건 매우 매력적이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7번을 조명하며 "비록 단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훨씬 긴 교향곡이 가진 드라마를 품고 있다"고 평했다. 단일악장 속에 내재된 4개의 섹션은 다채로우면서도 균형감 있는 음악적 서사를 자아낸다.느린 상행음형과 함께 시작하는 아다지오 속에 북구적 정서가 담긴 목관 동기와 숭고한 트롬본 주제가 제시되며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면서 스케르초에 해당하는 비바치시모에 다다르게 된다. 그 뒤를 이어 여유로운 알레그로 몰토 모데라토에 이르러 현과 목관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우아한 선율을 주조해낸다. 뒤이어 종결부로 이어지며 쏟아지는 현악기의 묵직한 물결 위로 트롬본 주제의 재현과 함께 긴장감을 증식시키는 음악적 전개는 짧은 시간 안에 C장조로 장중한 완결을 그려낸다.짧막한 길이 속에 선 굵은 서사가 부각된 음악을 담다보니 변화무쌍한 구성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참고로 이 교향곡에서 주제를 연주하는 가장 주목받는 악기는 트롬본이다. 시벨리우스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맘을 겸허케하는 숭고한 테마를 트롬본에게 맡겼는데 무게감 있는 오케스트라를 뚫고 등장하는 3번의 트롬본 테마는 벅차오르는 묵직한 감동을 자아낸다.게다가 특별한 음악적 지식이 없어도 시벨리우스 특유의 북구적 정취와 자연미가 사운드적으로 연출되기 때문에 이 작품은 듣는 이로 하여금 대자연을 품은 북구의 낭만을 경험케 한다. 교향곡 7번은 장황하거나 조금의 늘어짐도 없이 시벨리우스의 거대한 우주적 드라마를 20분 안에 오롯이 담은 최후의 교향곡으로서 위대한 교향곡 반열에 우뚝 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에는 151명의 주요 지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한 BBC 선정 '가장 위대한 20개의 교향곡'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시벨리우스는 초연 당시 평론가들의 리뷰를 접하고 "이 새로운 작품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는지 그들은 조금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20분이면 이 위대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오며 가며 반복해서 들으며 작품 속에 내재된 시벨리우스의 음악 세계를 조금씩 발견해 나가는 것도 작품을 감상하는 큰 묘미다.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Bi9QiDrJJmw&t=10s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4-05-10 10:13 |
![]() |
[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스타 마케팅의 진화를 보여주다_뮤지컬 요셉 어메이징 뮤지컬 요셉어메이징 공연장면 ©원종원유난히 긴 제목의 뮤지컬이 있다. 1970년대 중후반을 주름잡았던 흑인 재즈 아티스트 루이스 조단의 음악들로 만든 뮤지컬 ‘모라는 이름의 다섯 사나이(Five guys named MOE)’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마누엘 푸익의 원작을 각색한 뮤지컬 ‘거미 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 - the Musical)’ 등이 그렇다. 세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인 ‘태풍’을 각색한 SF영화를 다시 무대용 버전으로 탈바꿈시킨 ‘금단의 별로의 귀환(Return to the Forbidden Planet)’도 26개나 되는 영어 스펠링으로 이뤄진 긴 제목을 자랑한다. 창작 뮤지컬 중에는 원태연 시인의 제목을 따서 만든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도 있었다. 긴 표현을 익숙하지 않는 요즘 세대들은 ‘넌 가끔 난 가끔’이라는 축약 버전으로 불렀다. 단지 제목만의 사정도 아니다. 뮤지컬 넘버 중에서도 긴 노래 제목가 있다. 뮤지컬 ‘매리 포핀스’에나오는 ‘수퍼칼리프래질리스틱액스피알리도우셔스(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다. 입에 달고 다니면 좋은 일이 생기는 마법의 단어란 해석도 흥미롭지만, 무대가 만들어지며 하나하나 영어 스펠에 따라 안무를 더한 재미가 흥겹고 인상적이다. 그러나 긴 제목 뮤지컬의 원조라면 단연 ‘죠셉과 어메이징 테크니칼라 드림코트(Jeseph and the Amazing Technocolour Dreamcoat)’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자그마치 40개의 영어 스펠이 더해진 어마어마한 길이다. 너무 긴 탓인지 우리말 공연이 올려지면서 ‘요셉 어메이징’이라 줄여 부르기도 했다. 물론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로 그 ‘요셉’이다. ‘요셉 어메이징’은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즐겨 찾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스크린 하단에 노랫말을 자막으로 붙여 상영하는 ‘싱얼롱(Sing-along)’으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조용히 앉아서 정숙히 봐야 하는 일반 영화와 달리 ‘싱얼롱’ 영화란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러도 무방한 특별 상영을 말한다. ‘요셉 어메이징’은 ‘사운드 오브 뮤직’과 더불어 싱 얼롱 뮤지컬로는 가장 인기가 높다. 서구 사람들, 특히 영미권 가족 관객들에게 얼마나 친숙하고 정겨운 멜로디가 등장하는 작품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사실 만든 사람부터 예사롭지 않다. 바로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을 작곡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천재 작사가 티모시 라이스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줄여서 팀 라이스라고 불리는 그는 로이드 웨버와 함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나 ‘에비타’ 등을 만들었으며 훗날 ‘라이언 킹’이나 뮤지컬 ‘아이다’의 작사가로도 활약한 인물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요셉 어메이징’을 발표한 것은 그의 나이 19살, 팀 라이스가 22살때의 일이다. 젊고 패기에 가득 찬 두 천재 예술가는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더해 작품을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런던 소재의 사립학교인 콜렛 코트 스쿨에서 연말 학예회용 칸타타 음악으로 시작했는데 그런 배경 탓인지 수많은 학교들에서 스쿨 버전으로 인기를 누리며 성장했다. 정식 공연을 올리기 전 콘셉 앨범이 등장한 것이 1969년의 일이고 72년 영 빅 씨어터 컴퍼니가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첫 선을 보이기도 했다.뮤지컬 요셉 어메이징 공연장면 ©원종원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스타 마케팅을 일찌감치 적용했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1991년 런던 팔라디움 극장에서 막을 올렸던 대극장용 뮤지컬이 대표적이다. 당시 영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던 호주 텔레비전 드라마 ‘이웃들’의 남자 주인공인 금발 미소년 배우 겸 가수 제이슨 도노반이 주인공인 요셉으로 발탁돼 큰 인기를 모았다.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만들어진 관련 영상을 보면 런던의 지독한 교통 사정 때문에 자전거로 공연장 출근길을 향하는 제이슨 도노반의 모습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극장 배우 출입구 옆에 선물이나 꽃다발을 들고 도열(?)해 있는 소녀 팬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제이슨 도노반의 인기는 이 작품에 아이돌 가수나 인기스타가 등장하는 전통을 만들어냈다. 1992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막을 올린 공연에서는 도니 오스몬드가 화제의 중심이었고, 2003년에 런던 리바이벌 공연에선 아이리쉬 보이 그룹 ‘보이존’의 멤버인 스테픈 게이틀리가 참여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요즘 인기스타가 각광받는 우리나라 뮤지컬들처럼 당시 이 공연들에서는 주인공인 요셉이 중심이 된 마케팅을 적극 펼쳤고, 이들을 돋보이게 하려는 여러 노력들이 수반됐다. 노래를 여러 형태로 변주해가며 주인공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파격(?)적인 시도들도 그런 결과물들이다.글로벌 공연가의 스타 마케팅은 최근 단순히 스타를 기용하는 것을 넘어 아예 주인공을 발굴하는 TV 프로그램까지 등장하는 진화를 선보이고 있다. 2007년 영국 텔레비전에서 방송됐던 ‘어떤 꿈이라도 좋아(Any Dream will do)’가 대표적인 사례다.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유사한 방송들과 차이가 있다면 경쟁의 승자는 가수가 아닌 무대 위 뮤지컬 배우로 발탁된다는 점이다. 사실 프로그램 제목 역시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를 그대로 차용해 붙여진 것이다. 물론 극 안에서는 꿈을 해몽하고, 쫓고, 꿈을 통해 금의환향을 이루는 요셉의 사연이 담긴 의미로 쓰이지만, TV 프로그램에서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꿈을 꾸라는 중의법적 재치가 덧붙여져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매김됐다. 엄청난 경쟁 끝에 마침내 무명 배우였던 리 메드가 최종 승자가 됐고, 그가 나오는 뮤지컬 공연의 티켓은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됐다. 관객 입장에서는 단순히 새로운 스타를 만나는 재미뿐 아니라 그 배우가 무대에 서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을 매주 목격한 관찰자이기도 해 큰 관심을 집중될 수 있었던 셈이다. 우리도 벤치마킹을 고려해 볼 만한 흥미로운 사례다.90년대 초반, 가수 유열과 신효범이 등장했던 우리말 버전이 무대에 올려진 적이 있다. 하지만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았던 해적 버전으로 정식 우리말 공연은 2013년이나 돼서야 무대화가 이뤄졌다. 당시 주인공 요셉 역으로는 부활의 보컬이었던 정동하와 가수 조성모, 제국의 아이들 멤버였던 임시환 등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기회가 다시 온다면 한국식 뮤지컬 스타발굴의 계기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든다. 꿈을 이루는 이야기 주제와도 일맥상통해 무대 즐기는 재미가 쏠쏠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걸고 기다려본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4-05-03 09:28 |
![]() |
[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홍콩아트기행, K-ART로 풍성한 ‘홍콩미술의 봄’ 2024 아트바젤 홍콩이 지난 3월말 성황리에 개최됐다. 중국본토의 영향력이 강해진 홍콩의 분위기는 많은 서구회사의 헤드쿼터들이 퇴거하면서 변화되었지만, 전년 대비 65개 갤러리가 늘어난 40개국 242개의 갤러리가 홍콩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갤러리들을 모집해 새로운 방향성을 낳았다. 특히 미술사의 거장들을 선보이는 ‘카비넷’, 기획과 맥락에 중점을 둔 ‘인카운터스’섹션에 각각 박서보와 양혜규의 작품이 전진 배치되면서 한국작가들의 역량이 강화되는 움직임을 보였다. 작가의 담론을 펼쳐내는 ‘컨버세이션/필름’ 섹션들이 ‘홍콩미술의 봄’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엠플러스 미술관과 주홍콩한국문화원(이하 문화원)의 ‘LAYERS OF K-ART’ 등에서 한국의 주요 작가들을 소개하는 ‘한국미술의 붐 업’이 일어났다. 아트바젤 홍콩의 인카운터스’섹션, 양혜규 설치작업 아트바젤 홍콩, 한국미술에 주목하다. 아트바젤 홍콩 VIP 프리뷰 개막 전날인 3월 25일 홍콩 센트럴 H퀸즈 빌딩 1층 로비에는 전세계 컬렉터와 미술계 관계자, 2030대 관람객까지 몰리면서 홍콩의 중심가인 ‘갤러리 스트리트’를 가득 메웠다. 홍콩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는 서구룡 문화지구에 위치한 M+ 뮤지엄 역시 전 세계에서 미술계 인사들의 네트워킹 파티가 열렸고,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기간은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5월까지 대부분의 미술전시들이 ‘홍콩미술의 봄’을 알리기 위해 문화 홍콩의 위상을 다시금 드높혔다. 그러나 많은 전시가 열리던 센트럴의 패더빌딩에는 해외갤러리들이 짐을 빼고 가고시안 갤러리만이 ‘앤디 워홀의 긴 그림자’(3월25일에서 5월11일)라는 전시를 열었다.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H퀸즈 빌딩에서는 페이스, 데이비드 즈워너, 탕 컨템포러리 등 세계적인 갤러리가 5월까지 단독 개인전을 진행하는데, 탕컨템포러리는 스페인의 현대 미술가 에드가 플랜스 개인전을, 5층과 6층에 위치한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는 볼프강 틸만의 개인전을 진행중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것을 반영하듯 9층에서는 온피니트 아트 파운데이션(Onfinitive Art Foundation)의 중국 컬렉터 클로이 치우(Chloe Chiu)의 소장품 전시가 열렸다. 바젤에 참가한 한국갤러리는 국제, PKM, 학고재, 조현, 리안, 아라리오, 학고재, 바톤, 원엔제이, 우손, 휘슬과 뉴욕의 티나킴과 VSF 같은 한국계 갤러리가 자리를 메웠다. 이젠 프리즈 서울 이후 한국에 상륙해 지점을 낸 페이스, 로팍, 리만머핀, 글래드스톤, 페로탱, 에스더 쉬퍼 등이 자리해 아트바젤홍콩은 한국 컬렉터들에게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곳이 되었다. 바로 옆에 자리한 위성 페어인 아트센트럴은 컬럼스, 디스위크엔드룸, 띠오 등 한국갤러리의 참여가 상당히 많았는데, 바젤와 아트센트럴은 위상과 규모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주홍콩한국문화원의 K-ART, 김택상-박종규-김근태-김춘수 주목 주홍콩한국문화원(이하 문화원)은 홍콩섬 중심에 위치한 유명 문화복합공간 PMQ(Police Married Quarters, 옛 경찰기혼자숙소) 내에 자리하며 한국 미술을 알리는 다양한 특별 전시를 개최하고 있으며, 특히 전시 공모 사업, '한국 젊은 작가전' 시리즈 등을 통해 국제시장 진출에 관심이 있는 유망 작가들을 발굴하고 홍콩 아트신(Art Scene)에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홍콩에서 '미술의 달(Art Month)'인 3월에는 매년 특별 전시를 선보이고 있으며, 올해는 성균관대학교와 협력하여 전시를 진행했다. ‘한국미의 레이어: 도자와 추상’은 전통과 현대를 매칭한 우수사례로 각광 받아 왔고, 이에 문화원은 한류가 K-Art로까지 이어지는 국제적인 추세를 반영해, 세계2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 기간에 ‘한국의 대표작가와 전통 도자’를 매칭한 전시에 주목하였다. 한국 후기 단색화 대표작가 김택상(청자), 박종규(상감청자), 김근태(분청사기), 김춘수(청화백자)의 작품과 한국 전통 도자를 매칭하여 기획된 전시이다. 이들은 아트바젤 홍콩에 리안갤러리(김택상, 김근태, 김춘수)와 학고재 갤러리(박종규)에서 소개되는 작가들이다. 최근 한국미술이 세계의 각광을 받으면서,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연동해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한창인 가운데, 해외 문화원과 한국관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늘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K-Art의 다층적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미술 나침반, 이젠 서울로 오나? 다양한 한국 작가들의 진출은 고무적이지만, 아트바젤홍콩은 중국 경제 성장세 둔화 등으로 컬렉터·갤러리 모두 소극적이었다는 평이다. 이에 매체들은 “KIAF·프리즈 서울이 덕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들을 내놓았다. 국제갤러리는 리움에서 전시한 강서경의 작품을 9만달러(약 1억2060만원)에, 줄리안 오피의 작품을 11만파운드(약 1억8600만원)에 판매했고, 부산 조현화랑도 이배 작가의 작품 세 점을 판매했지만, 실적에 대한 반응엔 고개를 저었다는 후문이다. 주목받는 작품을 들고나온 하우저앤드워스 같은 갤러리는 900만달러(약 120억4000만원)의 윌렘 드 쿠닝의 작품과 필립 거스틴의 850만달러(약 114억7900만원)을 팔았지만, 아트바젤홍콩 주최 측에서는 통상 첫날 공개하던 ‘판매 리포트’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중화권 불황과 홍콩증시 하락, 서구 대형컬렉터들의 쇠퇴가 원인이지만, 가장 큰 요인은 ‘홍콩의 중국화’가 아닐까 싶다. 실제 5일간 홍콩에 체류한 결과 이전과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지난 19일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통과된 불안감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행사를 찾은 해외 갤러리스트들은 중국에 대한 반감 때문에 참가를 포기했거나, 불안감 때문에 홍콩행을 접은 컬렉터들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프리즈 서울의 역할론에 힘이 실릴지 모른다는 낙관론을 심어준다. 중국발 리스크보다 떠오르는 ‘한류의 힘’과 다이나믹한 서울의 이미지가 서구 컬렉터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4-04-25 14:27 |
![]() |
[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합창단은 어디에 서 있었을까?위대한 인물들과 작품들은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사랑받기 마련이지만 그 관심이 더 커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탄생 00주년’ 혹은 ‘서거 00주년’처럼 특정한 숫자와 연결되는 해입니다. 최근의 대표적인 예로는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탄생 250주년이었던 2020년을 들 수 있겠습니다.2024년은 어떤 이들과 작품들에게 더 특별한 해일까요? 올해는 오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푸치니(G. Puccini, 1858~1924)의 서거 100주년이고, 현대음악을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쇤베르크(A. Schönberg, 1874-1951)의 탄생 150주년입니다.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도 교향시 <나의 조국 (Má vlast)>으로 영원히 기억될 스메타나(B. Smetana, 1824~1884)와 교향곡 분야에서 19세기 후반 뚜렷한 족적을 남긴 브루크너(A. Bruckner, 1824~1896)는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스메타나와 브루크너가 태어난 해의 5월 7일, 빈에서는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역사적인 작품이 처음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이었습니다. 본래 기악으로만 연주되던 교향곡에 성악 파트가 대담하게 삽입된 이 작품은 지난 2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하겠지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공연된 이 작품을 두고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 선보였을 때, 합창단은 어디에 서 있었을까요?”너무 이상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함께 공연할 때 합창단이 오케스트라 뒤편에 자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니까요. 그러나 만약 <합창 교향곡>의 초연을 본 청중이 오늘날의 공연을 본다면 분명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왜 합창단이 오케스트라 뒤에 있을까요?”상당히 의아하게 느껴지겠지만, <합창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 합창단은 오케스트라 앞에 자리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커다란 힌트는 초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베토벤의 비서였던 쉰들러(A. Schindler, 1795~1864)가 공연 관계자에게 쓴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오라토리오 공연에서처럼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무대에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썼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단어는 ‘오라토리오’입니다. 왜냐하면 베토벤 당대의 오라토리오 공연에서는 합창단이 오케스트라 앞에 자리했기 때문이지요. 음악학자 바인치얼(S. Weinzierl, 1967~ )은 그의 저서 <베토벤의 공연장소들 (Beethovens Konzerträume), 2002)>에서 오라토리오 공연에서의 이러한 관습이 빈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지속되었다고 했습니다. 당대 음악가들의 서술이나 그림, 특히 무대 배치도와 같은 자료들을 보면 이러한 관습이 빈이라는 장소나 오라토리오라는 장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합창단이 오케스트라 앞에 자리한 무대 배치도는 빈과 함께 음악 공연 역사에서 중요한 도시들인 런던, 파리, 뮌헨, 그리고 라이프치히에서의 공연 기록 혹은 오케스트라 관련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요.이 관습이 언제까지 지속되었는가를 정확히 제시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변화가 어느 날을 기점으로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또, 이 관습이 모든 규모의 공연에 일관적으로 적용되었는지를 아는 것도 까다로운 일이겠지요. 적어도 19세기 후반까지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19세기 후반 무대 배치도나, 지휘자 레비(H. Levi, 1839~1890)가 지휘하는 음악회를 그린 화가 라이네케(R. Reinecke, 1860~1926)의 1890년 작품은 좋은 예입니다 (사진 참조). 이 관습과 관련하여 지휘자 바인가르트너(F. Weingartner, 1863~1942)의 주장도 흥미롭게 읽혀집니다. 1906년 출판된 그의 유명한 저서 <베토벤 교향곡 연주를 위한 제안들(Ratschläge für Aufführungen der Symphonien Beethovens), 1906>에서 그는 <합창 교향곡>을 연주할 때 ‘오라토리오 공연처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배치하는 것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합창단이 오케스트라를 뒤에서 감싸듯이 서야 한다고 주장하였지요. 바인가르트너의 주장은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까지도 <합창 교향곡> 공연에서 ‘오라토리오식 배치’가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오늘날 살았다면, 이런 주장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레비가 지휘하는 음악회 모습을 그린 라이네케의 작품(1890). 조금 흐릿하지만 무대 뒤편에 자리한 더블베이스 연주자와 보면대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합창단 뒤에 오케스트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합창 교향곡> 초연 당시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배치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실제 자리한 위치입니다. 이는 초연 장소인 케른트너토어 극장(Kärntnerthortheater)과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의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콘서트홀이 아닌 오페라 극장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보통 콘서트홀에서 공연되는 <합창 교향곡>이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시 빈에는 콘서트홀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당시에 오페라 극장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릴 때면 오케스트라는 요즘처럼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피트라고 불리우는 무대보다 낮고 무대와 청중석 사이에 위치한 공간에서 연주하였습니다. 휑한 빈 무대는 커튼으로 가리워졌지요. 오늘날 오페라 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가장 아래층의 청중석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지만, 당시에는 같은 높이였습니다.<합창 교향곡>의 연주에서는 어땠을까요? 오케스트라보다 앞에 위치해야 했던 합창단은 무대 앞 공간, 즉 오케스트라 피트에, 오케스트라는 무대 위에 자리하였다고 합니다. 당대의 오라토리오 공연 방식처럼 말이지요.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시간의 흐름 속에 나타난 변화를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연주 환경과 관습이 점차 바뀌어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어느 특정 관습만이 옳다고 주장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방식으로 울려 퍼지는 <합창 교향곡>이 충분히 좋다고 해도 가끔은 사라져버린 옛 관습을 살려 보고픈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더군다나 올해는 이 작품의 초연 200주년이라는 특별한 해이니까요. 반갑게도 정확히 초연 200주년이 되는 날인 5월 7일, 독일 부퍼탈에서 사라져버린 옛 관습이 재현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있습니다. 이 공연에는 이미 2015년 빈에서 합창단을 오케스트라 앞에 배치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지휘자 하젤뵈크(M. Haselböck, 1954~ )와 빈 아카데미 오케스트라(Orchester Wiener Akademie)가 참여하지요. 흔히 볼 수 없는 이런 기회가 제공되는 것은 초연 200주년과 같은 특별한 해가 갖는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이 관습이 재현되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4-04-19 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