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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스크린에 펼쳐진 환상의 무대,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 공연장면 © EMK뮤지컬컴퍼니 이제는 영화관에서 영상으로 뮤지컬을 만난다. 지난 10월 16일 공연 콘텐츠 제작과 배급을 맡은 위즈온센이 멀티 플렉스 영화관 메가박스와 협업해 뮤지컬 <엘리자벳> 10주년 기념 공연 실황 영화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번 영상화는 한국 뮤지컬 사상 처음으로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를 도입한 후 전용 상영관을 통해 더욱더 입체적인 소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으며, 객석에서 자세히 보기 어려운 표정 연기와 감정 표현 등을 대형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전해져 기대감을 높였다. 또 뮤지컬 <모차르트!>부터 <몬테크리스토>, <레베카>뿐만 아니라 <웃는 남자>, <베르사유의 장미> 등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뮤지컬 명작을 선보인 ‘유럽 뮤지컬 열풍의 주역’ EMK뮤지컬컴퍼니의 제작 노하우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뮤지컬이 영화화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엘리자벳>은 워낙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답게 개봉 직후 줄곧 예매 1위를 달리면서 또 다른 사업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명작 뮤지컬의 영상화 작업이 뮤지컬 장르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코로나 이후 장기 침체된 영화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후 엘리자벳의 이야기를 다뤘다. 2012년 한국 초연 후 10년 동안 줄곧 수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해 왔는데, 이번에 개봉한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에는 2022년 마지막 시즌 무대가 담겼다. 작품이 향후 연출과 안무, 무대 등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엘리자벳>으로 돌아올 것을 예고했기 때문에,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는 기존 작품을 사랑했던 관객들과 더불어 언제일지 모를 새로운 <엘리자벳> 개막 소식을 손꼽아 기다렸던 예비 관객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됐다. 뮤지컬 <모차르트!>, <레베카>를 탄생시킨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호흡으로 완성한 <엘리자벳>은 실존 인물인 황후 엘리자벳의 역사 속 발자취를 따라가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해 호평 받았다. 특히 ‘죽음(토드)’이라는 개념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을 더했다. 황후가 된 후 고독과 슬픔으로 점철된 삶을 이어가던 엘리자벳이 죽음을 갈망하며 그와 사랑에 빠져드는 전개는 대단한 흡인력을 지녔다. 공연 실황 영화 속 출연진도 눈길을 끈다. 먼저 ‘죽음마저 사랑한 아름다운 황후’ 엘리자벳은 초연부터 10년 동안 엘리자벳을 연기한 옥주현이 맡았다. 그리고 엘리자벳과 사랑에 빠지는 토드(Der Tod) 역에 이해준, 엘리자벳을 암살한 주범 루이지 루케니 역 이지훈,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역으로 베이스바리톤 성악가 출신 뮤지컬 배우 길병민이 등장한다.엘리자벳 더뮤지컬 라이브 공연포스터 © EMK뮤지컬컴퍼니, 위즈온센영화는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답게 생생한 무대를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마스크를 쓴 루케니가 ‘키치(Kitsch)’를 부르며 객석을 누비는 장면에는 코로나19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영화 상영 시 공연장과 마찬가지로 인터미션을 두었는데, 7분으로 줄어든 인터미션이었지만 간단한 휴식을 취한 후 2막에 집중할 수 있게 한 점은 마치 뮤지컬을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한국 프로덕션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중 회전무대와 3개의 리프트, 11미터 길이의 브릿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 요소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역시 배우들의 감정 연기를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밀려드는 혼란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던 엘리자벳의 눈빛이 마구 흔들리던 장면과 작품의 핵심과도 같은 베일신, 소피 대공비의 손에 이끌려 어둠 속으로 퇴장하던 요제프의 표정 연기, 자유의지로 가득했던 엘리자벳이 토드의 손짓에 이끌려 인형처럼 춤추는 장면 등은 영상을 통해 무대를 볼 때보다 더욱 섬세하게 접할 수 있었다. 또 주요 장면을 교차하거나 병합해 동시에 무대 위 캐릭터들을 볼 수 있도록 편집한 점 역시 몰입을 극대화한다. 영화관에서 만난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는 뮤지컬이 가진 특성을 최대한 잘 살리면서도 영화라는 틀에 최적화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공들인 느낌이 가득했다. 또 접근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회 관람의 부담을 줄여, <엘리자벳>을 사랑했던 관객들을 포함해 그동안 공연장을 자주 찾기 어려웠던 지역 거주 관객들에게도 좋은 선택지가 될 듯하다.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 상영이 긍정적인 선례를 남겨, 앞으로 이러한 뮤지컬 영상화 작업이 더욱 활발히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필자소개>최윤영 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 바 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 왔고 현재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4-11-04 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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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모차르트 사후 233년만에 공개된 신곡 라이프찌히 시립 도서관에서 발견된 모차르트의 미공개 악보 사본 삶의 고뇌와 철학적 탐구가 묻어나는 불멸의 걸작이 가져다주는 감동은 위대한 클래식 작곡가들의 음악이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있는 이유일 것이다. 여기 오 헨리의 단편소설과 같은 위트와 유머가 담긴 풋풋한 소품을 더해보면 어떨까. 모차르트 하면 떠오르는 명곡 'Eine kleine Nachtmusik(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작은 밤의 음악'이라는 뜻으로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선율로 모차르트의 심볼 같은 음악으로 통한다. 이 작품은 1787년 오스트라아의 수도 빈에서 완성되었으며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13번에 해당하는 곡이다. 최근 이 작품과 궤를 함께하는 세레나데 음악으로서 영화로 따지면 프리퀄을 연상시키는 모차르트 소년기 시절의 미공개 작품이 공개되었다. 이 작품의 제목은 'Ganz kleine Nachtmusik (간츠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로 직역하면 '아주 작은 밤의 음악'이라는 뜻이다. 최근 모짜르트 사후 233년 만에 독일 라이프찌히 시립 박물관에서 발견된 따끈따끈한 작품인 만큼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건 당연지사. 10대 초반에 직곡한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단출한 현악 3중주곡으로 7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12분 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있다. 모차르트 연구기관인 모차르테움 재단은 모차르트가 13살이 채 되기도 전, 그의 여동생 난네를을 위해 작곡된 곡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모차르테움의 연구원들은 연대기적으로 작품에 번호를 붙인 '쾨헬 카탈로그'를 최신버전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곡은 '아주 작은 밤의 음악'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바이올린 2대와 첼로 1대의 작은 편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짜임새 있는 구조와 우아한 선율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며 모차르트의 번뜩이는 천재성이 엿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헹사나 모임을 위해 작곡했던 음악인 만큼 분위기 전환이 빠른 짧은 악장들로 구성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흥을 돋는 음악이기 때문에 각 잡지 않고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모차르트 초기작품이다. 3년 전, 248년만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로 초연된 '알레그로 D장조'는 모차르트가 17세때 작곡한 작품으로 2분이 채 안 되는 소품으로 짧지만 완벽한 구조를 지닌 곡인데 궤를 함께한다. 다채로운 악상이 자아내는 내러티브가 함축된 음악으로 조형미까지 갖췄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스토리텔링이 있어서 좋다"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 고전음악의 중심에 서 있는 교향곡, 특히 모차르트의 후기 교향곡은 완전무결한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위대한 베토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걸작이 탄생하기까지 10대 나이의 모차르트가 작곡한 소소한 세레나데나 디베르티멘토는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쌓는데 필요한 자양분이었으며 그의 진지한(?) 후기 교향곡에서 발견되는 소년미 넘치는 특유의 음악적 치기와 재기발랄함이 그 방증이다. 위대한 작곡가들의 대작들뿐 아니라 이 기회에 신동 모차르트의 개성과 재치가 엿보이는 '아주 작은 밤의 음악' 그리고 이후 작곡된 우리에게 익숙한 '작은 밤의 음악'을 연이어 들어보길 권한다. 지친 일상에 활기와 생동감을 더할 것이다.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QVpJtVG0YR0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4-10-25 1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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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팝의 황제가 뮤지컬을 만나다 - 엠제이 더 뮤지컬(MJ the musical)마이클 잭슨은 미국 대중음악의 신화라 불린다. 1958년 8월 29일 인디애나에서 태어난 그는 가수 겸 작곡자이자 댄서, 박애주의자로 유명하다. 킹 오브 팝이라고도 불렸다. 누구라도 인정하는 20세기 가장 영향력이 높았던 인물 중 하나다. 문워크로 알려진 그의 춤사위는 마이클 잭슨의 상징으로 통한다.8번째 자식이었던 그는 1964년 나이 많은 형들인 제키, 티토, 저메인 그리고 마론과 함께 잭슨 5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흑인 음반 레이블인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며 성공가도를 걸었다. 물론 그룹의 리드싱어는 줄곧 마이클 잭슨의 몫이었다. 1979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솔로 앨범인 ‘오프 더 월’을 발표했다. 비트 잇, 빌리진 등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고, 뮤직 비디오는 1980년 등장한 MTV에 의해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1982년 발표된 두 번째 솔로앨범 스릴러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그를 최고의 스타로 등극시켰다. 배드, 데인져러스, 히스토리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인빈서블 등을 발표하며 글로벌한 성공을 이어갔다. 스릴러는 지금까지 인류역사상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앨범이다. 지금까지 판매한 앨범만 무려 5억장이 넘는다. 빌보드 핫 100에 1위를 기록한 노래만 13곡인데, 이는 역사상 4번째로 많은 히트곡을 발표한 아티스트라는 의미도 된다. 15개의 그래미상, 6개의 브리트 어워드, 1개의 골든 글로브상, 39개의 기네스 레코드를 세웠다. 그중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엔터테이너”도 포함돼 있다.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는 두 번이나 헌정되는 묘한 기록도 수립했다. 하나는 보컬 그룹 부문이고, 다른 하나는 작곡가로서다. 또한 무용 분야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유일한 ‘가수’이기도 하다.마이클 잭슨의 전대미문인 기록들은 그러나 순탄치 않았던 가정사와 대비돼 측은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폭력과 학대를 받았고, 완벽에 대한 집착은 그로 인해 생겨난 정신적 트라우마였다. 솔로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가족과 아버지로 인해 그의 활동은 늘 제약됐다.위대한 음악가이기도 했지만,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했다. 아프리카는 돕기 위한 USA for Africa에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위 아더 월드를 불렀고, 힐 더 월드, 블랙 오어 화이트, 어스 송 등을 통해 인류 평화와 공존, 친환경, 반전, 반테러 등의 메시지를 알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가지며 통일을 기원했고, 실제 통일이 되면 다시 공연하겠다는 약속도 남겼다.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기부를 한 인물이다.영광만이 전부는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성추문 루머가 등장하며 언론의 가십란에 오르내리는 불명예도 겪는다.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안타깝게도 그런 언론의 태도는 그가 사망한 지금까지도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5년 2차 아동 성추문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대부분의 활동을 중단하고 몇 년간 칩거 아닌 칩거를 했다. 그 과정에서 건강이 악화돼 사실상 정상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로 빠지기도 했다. 2009년 3월, 마이클 잭슨은 4년 만에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런던에서의 콘서트 투어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해 주치의였던 콘레드 머레이의 프로포폴 과다 투여로 인한 심장마비로 향년 50세에 세상을 떠났다.지속되는 그에 대한 수많은 더러운 루머들은 그가 남긴 문화적 유산들과 별개로 그의 위상을 추락시켰으며, 전문가들은 그의 이름이 음악사에서 잊혀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후 그의 행적에서 발견되는 여러 선행들로 재평가가 시도되고,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음악의 영원한 전설로 남아 있다.마이클 잭슨의 삶과 음악들로 구성된 엠제이 더 뮤지컬(MJ the musical)이 처음 시도된 것은 2020년 중반이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과 그로 인한 공연가의 셧다운은 뮤지컬에 대한 계획을 연기시켰고, 결국 애초 계획보다는 조금 늦은 2022년 뉴욕의 닐 사이먼 극장에서 개막됐다. 뮤지컬 제작진은 두 차례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여류작가인 린 노티지와 로열발레 단원으로 시작해 뉴욕 시티 발레단을 거친 전 무용수이자 안무가 크리스토퍼 윌든에 의해서였다.개막 초기 평단으로부터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반응을 받았지만, 대중들로부터는 엄청난 호평을 이끌어냈다. 결국 그해 10개의 토니상 후보에 올라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 안무상, 조명상, 음향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하는 대파란을 연출했다. 2024년 6월 25일엔 2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단기간에 가장 성공한 뮤지컬 프로덕션이라는 타이틀도 갖게 됐다. 지금은 대서양 건너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도 막을 올려 글로벌 흥행신화를 이어가고 있다.워낙 익숙하고 잘 알려진 노래들과 인간적인 마이클 잭슨의 다양한 이면, 그의 음악적 성과의 배경이 된 개인사들이 잘 구성돼 그를 기억하거나 추억하는 팬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와 환호를 받고 있다. 특히,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 배우 마일스 프로스트는 마이클 잭슨의 환생이라 부를 만큼 완벽한 무대를 선보여 화제다. 춤과 노래는 물론 나긋나긋하게 말하던 마이클 잭슨의 모습을 완벽히 재연해 박수갈채를 이끌어낸다.엠제이 더 뮤지컬의 극적인 재미는 1인 2역의 효과적인 활용에서 있다. 마이클 잭슨의 백 댄서이자 투어 공연을 준비하던 스탭들이 과거의 회상 장면이 나오면 그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 삽시간 목소리 톤을 바꿔 등장해 보는 재미를 완성한다. 회상와 현재의 교차가 마치 영화의 순간적인 영상 변환처럼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재미를 찾을 수 있다.마이클 잭슨의 음악적 성과와 특히 안무가로서의 재능을 극적으로 풀어낸 것도 묘미다. 항간에 마이클 잭슨은 모방의 천재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노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춤도 마찬가지다. 뮤지컬은 마이클 잭슨의 춤 문 워크가 과거 위대한 아티스트들의 업적들 – 예를 들어 찰리 채플린, 빌 베일리, 마임 아티스트인 마르셀 마르소, 그리고 뮤지컬 배우로 전성기를 보냈던 프레드 아스테어와 제임스 브라운, 밥 파시 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대의 커튼 막에는 마이클 잭슨의 친필로 쓴 문구가 투영돼 있다. 그곳에는 스텝들에게 뮤지컬 시카고를 꼭 보고 밥 파시의 안무를 참고하라는 메모도 있다. 물론 가장 큰 볼거리는 음악과 춤이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들과 무대, 마치 그의 전성기 투어 현장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관객들의 함성과 환호, 박수를 자연스레 이끌어낸다. 우리나라 기업인 CJ ENM이 제작비를 투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빠른 투어나 우리말 공연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4-10-18 14: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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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사람(人)·전시(展示)·유물(遺物) 을 통해 본 성대(成大)한 회갑(回甲)잔치’ 1964년 개관 이후 성대한 오늘의 회갑(回甲)이 있기까지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잔치, re-Museum》(2024.9.26.~2025.3.31.)을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박물관(관장 김대식)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박물관의 60년이라는 시간을 회갑 잔치로 풀어낸 이번 특별전은 박물관에서 60년의 역사를 쌓아온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 창의와 혁신을 위해 겪었던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 박물관이 소중하게 보관한 유물과 가치를 ‘다시, 박물관’이라는 주제로 엮었다. 김대식 관장은 전시에 앞서 “성균관대학교박물관은 대학박물관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묵묵하고 굳건하게 수행해 왔다. 이는 황하에서 가장 물살이 강하다고 이름난 삼문협에 우뚝 선 지주[砥柱中流]와도 같다. 이러한 성과는 박물관의 세 가지 구성 요소인 ‘사람(人)-전시(展示)·유물(遺物)’ 중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번 특별전은 개관 60주년을 기념하고 밝은 미래를 희망하는 동시에, 박물관의 기본 요소를 되새김질한다는 의미에서 ‘잔치, re-Museum’으로 명명하였다.”고 밝혔다. 성대박물관 개관 60주년 특별전 포스터 박물관을 거쳐 간 사람과 유물들, 보물급 ‘청자연리문합’ 최초공개 이번 전시에는 30년 동안 중점적으로 수집한 연적류를 비롯한 문방사우 유물 90여 점과 최초로 공개하는 청자연리문합 등 명품도자 250여 점이 전시된다. 또한 3절로 유명한 표암 강세황이 76세 때 한석봉이 55세때 쓴 글씨를 보고 자신의 서체로 다시 쓴 <간렵서(諫獵書)>와 한석봉의 <등왕각서(滕王閣序)> 등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2024년 개관 60주년을 맞이하기까지 성대박물관은 대학박물관임에도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고,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주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번 특별전은 1964년 옛 도서관 5층에서 시작하여 1979년 호암관으로, 2000년 600주년기념관으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는 동안 박물관과 함께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획되었다. 특히 60년 동안 박물관에서 근무한 분들은 관장 23명, 학예사·연구원 20명, 교육조교 41명이고, 발굴조사에 참여한 64명이다. 이분들 가운데 10여 분들은 본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전·현직 교수, 혹은 국립문화재 연구원과 국공립박물관 등 여러 기관에서 원장·관장을 비롯한 주요 직책을 맡았거나 맡고 있다. 박물관에서 양성한 큐레이터 외에도 기증자들, 박물관과 함께 한 사람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우리 박물관은 42차례 전시를 진행하고 『근묵』과 『김천리개국원종공신녹권』을 비롯한 13,000여 점의 다양한 유물을 수집·보존·연구·재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지난 60년 동안 세월의 풍파를 견뎌낼 수 있던 특별한 힘이었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이 이뤄낸 성과와 유물들을 한자리에 펼쳐 보이는 박물관과 관련한 모두를 위한 성대한 잔치이다. 표암 간렵서 관람동선으로 보는 ‘박물관의 어제와 오늘’ 제1부 ‘경수연하(慶壽宴賀, re-Museum)’에서는 박물관 60년 역사를 지탱해온 사람들의 열정을 기념하고,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이들에 대한 노고와 감사를 ‘잔치’로 풀어낸 예술작품과 유물들을 선보인다. 흔들리지 않는 박물관의 중심을 보여주기 위해 3미터가 넘는 지주중류(砥柱中流)와 백세청풍(百世淸風)의 탁본을 선보이며, 회갑잔치를 상징하는 실제 잔치의 모습을 재연하였다. 전시를 위해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의 십장생도(十長生)를 선보이며, 60년 동안 선보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지금까지의 성공한 전시들의 기록과 도록을 함께 펼쳐보인다. 제2부 영사관도(潁思觀道, re-Birth)에서는 현존하는 유물이 부재한 상황에서 어떻게 유물을 고증하고 창조했는지 보여준다. 또한 유물을 골동으로 놔두지 않고 현재적 관점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여 새롭게 생명을 되찾게 하는 과정을 알리고자 한다. 일제강점기 고고학자 후지타 료오사쿠藤田亮策가 경주, 부여,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과 중국 동북지방의 고구려 유적을 직접 답사하여 찍은 사진들을 공개하고, 유리원판전과 동북공정을 이끈 성과들을 밝힌다. 대중의 이목을 끈 고문서 전시과 고려불화 속 버드나무 재연, 문헌을 실물로 구현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의 재연, 정조가 시험에 합격한 이들에게 사용했다는 <팔환은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정조와 옥필통으로 술을 마셨다는 문헌 내용을 보여주기 위해 주병과 옥필통 등을 함께 전시하였다. 제3부 유물백세遺物百世, Relic에서는 성균관대학교박물관은 60년 동안 수집한 유물가운데, 사대부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필통, 필세, 연적 등 다양한 문방사우와 그들의 취향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제기, 묘지명 등에 주목하였다. 강세황의 문방구 그림을 비롯해, 동물의 형태를 본 떠 만든 제기 희준과 상준, 매우 희귀한 분청자 묘지명, 박물관이 30여 년간 모은 다양한 도자를 순차적으로 전시한다. 도자가 보여주는 변주를 통해 매병, 고족배, 완, 연적 등을 선보이며, 도자를 제형별로 분류하고 분류해 한국 도자사를 전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박물관의 신작커미션, ‘박종규·신영훈·신제현’의 재해석 특히 박물관은 이 전시를 위해 한국미의 레이어라는 관점에서 한국미술의 대표작가인 박종규·신영훈·신제현 신작커미션을 선보인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은 2010년 이후 동시대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예술 커미션’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커넥터로서의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에 초점을 맞춰왔다. 작년 주홍콩한국문화원 초대로 이루어진 ‘한국미의 레이어 : 도자와 추상’은 아트바젤홍콩 기간에 열려, 한국미술의 다양한 시각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계기가 됐고, 대학박물관 최초로 해외 공동주최 전시로 호평을 받았다. 1970년 제1회 특별기획전을 개최한 이래, 1983년 최초로 상설전 도록을 발간하였고 2000년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으로 이전한 이후 유리원판과 탁본을 전시에 적극 활용하였다. 개관 60년 을 맞이한 오늘날까지 43회 전시를 개최하였으며, 40권의 도록을 발간하였다. re-Museum은 성균관대학교박물관의 향후 개관 100주년과 개최 60회를 위한 발자취를 돌아보고, 다시 시작하는 계기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가 담겼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4-10-14 1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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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퇴출된 지휘자의 반격?올 겨울 독일 함부르크에 위치한 유명한 공연장 엘프 필하모니(Elbphilharmonie)에 이례적인 두 공연 일정이 예정되어 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12월 14일 지휘자 크리스토프 루세(C. Rousset, 1961- )가 바로크 음악 연주로 명성이 높은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English Baroque Soloists)와 몬테베르디 합창단(Monteverdi Choir)을 이끌고 샤르팡티에(M. Charpentier, 1643-1704)의 기악곡 하나와 미사, 그리고 바흐(J. S. Bach, 1865-1750)의 칸타타 두 곡을 연주합니다. 그런데 이 연주가 열리기 정확히 일주일 전인 12월 7일, 거의 똑같은 프로그램이 공연될 예정 있니다. 차이는 7일에는 샤르팡티에의 길지 않은 기악곡 하나가 연주되지 않는다는 점으로 다른 프로그램은 똑같습니다. 연주 단체는 컨스텔레이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Constellation Choir & Orchestra)라는 생소한 이름인데 지휘자의 이름이 놀랍습니다. 존 엘리엇 가디너(J. E. Gardiner, 1943- ). 바로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를 창단하고 오랜 기간 이 단체들을 이끌었던 지휘자이지요. 가디너는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를 40년 넘게, 몬테베르디 합창단은 무려 60년 동안 지휘했습니다. 서로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단체와 지휘자가 어째서 일주일의 간격을 두고 사실상 같은 프로그램을 각각 다른 음악 파트너와 함께 무대에 올리게 된 것일까요?이 모든 일은 작년 여름 세계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가디너의 폭력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23년 8월 22일과 23일, 가디너는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그가 설립한 또 하나의 오케스트라인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Orchestre Révolutionnaire et Romantique)를 지휘하며 베를리오즈(H. Berlioz, 1803-1869)의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Les Troyens) 공연을 이끌 예정이었습니다. 이는 작곡가의 고향인 프랑스 남동부의 도시 라 코트 생 앙드레(La Côte Saint André)에서 열린 베를리오즈 페스티벌의 공연 중 하나였지요. 하루에 오페라 전곡을 연주하지 않고 첫 날에는 1-2막을, 둘째 날에는 3-5막을 연주하는 독특한 기획이었습니다. 문제는 첫째 날 공연 후 발생하였습니다. 콘서트 형식으로 열린 이 공연에서 가디너는 영국의 젊은 성악가 윌리엄 토마스(W. Thomas)가 잘못된 방향으로 퇴장하였다는 이유로 그를 질책하고 더 나아가 그의 얼굴을 때린 것이었지요. 당시 이들 근처에는 공연 관계자들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이 일은 처음부터 비밀로 유지될 수가 없었는데 가디너가 폭행하기 전 들고 있던 맥주를 토마스에게 던져버리고 싶다고 말했으며 토마스가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구체적인 증언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당연하게도 이는 굉장히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단지 퇴장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80세의 노 지휘자가 자제력을 잃고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젊고 유망한 성악가를 폭행한 것은 누구에게도 이해될 수 없었지요. 가디너는 사과 성명을 발표했지만 예정되어 있던 이후의 트로이 사람들 공연뿐만 아니라 다른 공연들도 지휘할 수 없게 되었고 약 11개월 동안 치료와 상담을 받으며 이른바 자숙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2024년 7월에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복귀하였지요.하지만 가디너는 그가 설립한 단체들을 다시 지휘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7월에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두 오케스트라의 이사회가 가디너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이지요. 이어서 가디너 역시 자신이 설립한 단체들과의 이별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은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객원 지휘와 녹음, 책을 쓰는 것과 교육 프로젝트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9월 컨스텔레이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설립을 알렸지요.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 (사진: Getty Images) 폭력으로 퇴출된 나이든 지휘자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다른 연주 단체를 설립했다고 단순하게 생각될 수 있는 이 일련의 일들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실상은 보이는 것보다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퇴출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있지만 가디언 지의 보도에 따르면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와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의 100명이 넘는 많은 단원들은 가디너의 복귀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이사회 측에서는 오케스트라 내 작은 그룹의 ‘더러운 술수 캠페인’이라며 비난했지요. 즉 연주 단체의 이사회 측과 다수의 단원들 사이에 가디너의 복귀 여부를 두고 매우 커다란 간극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오랫동안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카티 데브레체니(K. Debretzeni, 1971- )를 비롯한 몇몇 수석 단원들은 서두에 언급된 함부르크 일정이 포함된 가디너의 새 연주 단체의 투어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어쩌면 이사회 측에서는 폭력을 행사한 지휘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적어도 당분간은 벗기 힘든 지휘자를 복귀시켰을 때 맞이해야 하는 여론의 비난과 그로 인한 후원의 감소 같은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입장에서는 비록 폭력이 용인될 수 없는 행위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 폭력이 사과와 긴 자숙의 시간으로도 용서될 수 없을 정도의 폭력이었을까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요. 또 음악적인 면에서 ‘역시 가디너만한 지휘자가 없다’라는 공감대가 그의 부재 가운데 단원들 사이에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가디너 자신이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는 새로 설립한 단체와의 첫 연주 투어에서 선보일 작품으로 그가 본래 ‘자신의’ 단체들과 공연하려 했던 샤르팡티에와 바흐의 작품들을 골랐습니다. 가디너가 지휘하기로 예정되었던 공연은 지휘자만 루세로 바뀐 채 그대로 진행 예정이고요. 그러다보니 결국 함부르크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사실상 같은 프로그램이 두 번 연주되는 일정이 탄생한 것입니다. 가디너가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간에 마치 퇴출당한 지휘자가 반격을 가하는 듯한 그림이 펼쳐졌습니다. 이에 더하여 공연장 엘프 필하모니는 가디너가 원래 지휘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12월 14일의 공연 티켓을 이미 구매했을 경우 그가 새롭게 창단한 단체와 공연하는 12월 7일의 티켓으로 교환 가능하다는 공지를 개제했습니다. 12월의 함부르크 공연은 여러모로 많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내겠지요.가디너와 그가 새로 설립한 단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입니다. 노 대가의 새로운 도전은 그 자체로는 흥미진진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의 폭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서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도전은 어떤 결실을 맺게 될까요?추천영상: 가디너와 몬테베르디 합창단 그리고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의 2021년 공연 실황입니다. 곡목은 바흐의 칸타타 ‘그리스도는 사망의 결박에 매이셨습니다 (Christ lag in den Todesbanden)’ 입니다. 이들의 높은 명성에 걸맞은 선명하고도 정갈한 느낌을 주는 깊은 울림이 인상적입니다. 이 조합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아울러 가디너의 새로운 단체는 어떤 울림을 우리에게 안겨줄지 궁금해집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OHas-rtFfhs<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4-10-07 1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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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지휘자들의 이른 성공 권위있는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으로부터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된 바 있는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홍콩필)는 아시아 대표 오케스트라로 손꼽힌다. 최근 2000년생 24세의 지휘자 타르모 펠토코스키가 뉴욕필 수장을 지냈던 세계적인 지휘자 얍 판 츠베덴 후임으로 홍콩필의 차기 음악감독에 선정되며 화제가 되었다. 작년 지인들로부터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몇몇 지휘자들이 물망에 올랐다고 전해 들었는데 24살의 앳된(?) 지휘자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선출되었다는 점에서 파격적 결정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가장 권위 있는 음반사로 통하는 그라모폰과 계약한 최연소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이 지휘자는 신성한(?) 모차르트 교향곡 음반에 자신이 직접 동시대적인 감성으로 편곡한 모차르트 교향곡의 피아노 버전을 함께 선보이는 '번뜩임'을 선사하기도 했다. 독일의 권위있는 음반사 그라모폰과 계약한 24세의 최연소 지휘자 타르모 펠토코스키 희끗희끗한 머리에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노련한 노장 지휘자의 이미지 그리고 세간에서 얘기하는 지휘자의 전성기는 60세부터라는 속설. 사실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잘 살펴보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세계적인 지휘자들은 대부분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이른 나이에 성공을 거두었다. 나이에 비례한 성공과 업적이라는 공식을 깨는 '영 앤 리치'의 개념은 지휘자 세계에서는 자연스레 통하는 말이다. 우선 몇몇 정상급 지휘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L.A필을 17년간 이끌며 전성기를 이끌었던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은 21세의 나이에 핀란드를 대표하는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과 데뷔했으며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하딩은 21세의 나이에 세계 최고의 악단인 베를린 필을 지휘한 최연소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핀란드 출신으로 톱스타 반열에 오른 클라우스 메켈레는 24세 나이에 북유럽 명문악단 오슬로 필하모닉의 수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28세 나이에 로얄 콘세르트헤바우, 시카고 심포니를 비롯하여 4개의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를 책임지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20세기 전반에 걸친 수많은 정상급 지휘자들 또한 이른 나이에 데뷔했다는 사실이다. 30대 나이에 1935년 독일 아헨 극장의 음악감독 자리에 올랐던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은 당시 독일 최연소 음악감독에 이름을 올린 바 있으며 현재 97세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노장 지휘자 블롬슈테트 또한 27세의 나이에 스웨덴의 명문악단 노르키핑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떠오르는 한가지 의문. 경험을 통해 쌓인 음악적 지식과 연륜 없이도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갈 지휘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지휘자의 성장에 있어 경험이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으나 많은 악단들이 지휘자의 '재능'을 경험보다 더 높게 쳐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보통 지휘자의 재능을 얘기할 때 음악적 역량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스킬, 리더십, 인성 등 여러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데 노련함은 없어도 될성부른 떡잎임이 입증되면 기회를 준다는 얘기다. 20대 중반의 새내기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를 수장으로 선택한 오슬로 필하모닉 단원들은 그에 대해 나이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오케스트라 전체를 사로잡는 재능을 가진 지휘자'라고 입을 모은다. 연습지휘자로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던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하딩의 일화를 소개한다. 17세 나이에 그는 학생들과 함께 녹음한 음악을 버밍험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에게 보냈고 그의 재능을 간파한 래틀은 그를 단번에 부지휘자로 기용했다. 19세에 버밍험 시립 교향악단 지휘, 21세에 최연소 베를린 필 지휘라는 놀라운 이력을 써 내려간 그가 기회를 잡게 된 이유는 경험은 전무했지만 지휘자로서의 재능을 높이 샀던 지휘자와 단원들의 이해심과 배려다. 게다가 전통에 있어 진심인 빈 필과 함께 슈만 교향곡과 같은 낭만시대 음악에 고전주의 시대 연주방식을 절충해서 도입하는 등 해석에 있어 늘 신선함을 추구하는 면모도 갖췄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평소에 그의 어시스턴트를 지냈던 하딩을 '나의 작은 천재'라고 부르며 아꼈다고 한다. 지휘야말로 그 어떤 분야보다 '나이'라는 장벽이 사라진 지 오래다. 해외에서는 20대 지휘자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한국에서도 30대 젊은 지휘자들이 점차 등용되면서 오랜 시간을 통해 연륜을 쌓은 지휘자에게 자동으로 후한 점수를 주는 인식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과거의 음악을 반복해서 재현하는 클래식의 특성상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나이 든 지휘자보다 경험은 부족해도 새로운 시도에 거침없는 젊은 지휘자가 가져올 참신성에 더욱 주목하는 세상이다. 공연의 흥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젊은 지휘자는 매력적이다. 예전 유명 매니지먼트의 직원이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지긋한 유명 마에스트로는 누적된 음악적 깊이와 업적으로 인한 흥행이 보장되어 있고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콩쿠르에 갓 입상하거나 주요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활동하는 재능이 입증된 20~30대의 젊은 지휘자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른 성공은 위험하다고 했던가. 지휘계에서는 통하는 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른 성공을 거둔 수많은 지휘자들이 탄탄대로를 걸으며 노련한 대가로 성장했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경험 없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해 주고 재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기다려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이해심과 배려라는 사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4-09-27 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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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정선 아라리북쪽으로 오대산부터 반 시계 방향으로 치악산, 소백산, 태백산이 둘러 있는 태백산맥 한가운데에 아라리의 고장 정선이 있다. 고산준령이 첩첩이 어깨를 겯고 방어진을 짠 형세이지만, 아우라지에서 합수해 이 고장을 관통해 흐르는 조양강 강물은 그 틈을 비집고 흘러넘쳐 동강이 되고 남한강이 되어 서해로 향한다. 먼 옛날,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아리랑 또한 물과 함께 흘러 한양에 닿았을 것이다.정선아리랑 의 고향 정선 아리랑, 아라리 등의 말을 후렴구로 쓰는 아리랑 계통의 노래는 한반도 곳곳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다. 지역별로 전승되는 아리랑만 100곡이 훌쩍 넘고, 전해오는 노랫말(사설)이 수천 수에 이를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일노래, 유희요, 투쟁가 등으로 기능한 아리랑의 노랫말은 사랑과 이별, 신세 한탄, 세태 풍자 등 그 소재도 매우 다채롭다.정선의 아라리는 강원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정선아리랑’으로 지정되었다. 지정 명칭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아리랑’이지만, 아리랑의 모태로 보기도 하는 ‘아라리’가 강원 전역에서 더 흔하게 불리는 이름이다. 정선의 민요 아라리가 중앙으로 진출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다.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추진하며 백두대간의 나무들이 목재로 쓰였다. 나무는 뗏목으로 만들어 물길 따라 한양으로 옮겼는데, 뗏목 나르는 일을 하던 이들에 의해 정선 아라리가 한양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노래를 향토 민요, 전문 음악인들에 의해 다듬어진 노래를 통속 민요라 하는데, 이렇게 수도에 입성한 향토 민요 정선 아라리는 경기 명창들에 의해 통속 민요로 재탄생하게 된다. 정선 아라리 중 긴 아라리는 ‘긴 아리랑’으로, 엮음 아라리는 ‘정선 아리랑’이란 이름으로 경기 명창들의 공연 종목에 포함된 것이다. 오늘날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과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은 향토 민요와 통속 민요를 아우른다. 정선 아리랑과 함께 3대 아리랑으로 꼽는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은 통속 민요에 속한다. 진도 아리랑은 남도 아리랑을 발전시킨 것으로, 남도 명창들이 주로 불렀다. 노랫말에 경상도 지역 사투리나 풍정이 나타나는 밀양 아리랑은 경상도 민요로 보기도 하지만 음악적 특성상 경기 민요에 속하고, 실제 경기 명창들의 공연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리랑’ 하면 떠올리는, 교과서에 실린 노래 역시 영화 음악으로 만들어진 통속 민요 아리랑이다. 나운규가 만든 영화 <아리랑>의 주제 음악으로, 영화가 전국적으로 흥행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곡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기념해 정선군은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아라리>를 제작해 선보였다. 목숨을 걸고 뗏목을 몰아 한양으로 향했던 떼꾼들의 이야기를 아리랑과 버무려 낸 작품으로, 올림픽 후에도 전국 순회공연을 이어가며 8만여 관객을 만났다. 지난해엔 호주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올해 8월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현지 관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는 낭보가 전해지기도 했다. 이 공연은 올해 11월까지 정선 오일장(2일, 7일장)이 서는 날 오후 2시에 정선 아리랑센터 아리랑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장날을 제외한 매주 토요일에는 정선 아리랑 상설 공연 <뗏꾼>이 무대에 오른다. 일제 강점기에 뗏목을 타고 정선 아리랑을 부른 무명의 떼꾼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으로, 정선아리랑 전승교육사 홍동주 등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원들이 선보이는 아리랑을 만나볼 기회다. 10월에는 정선 아리랑제가 열린다. 전국 아리랑 경창대회를 비롯해 아리랑 퍼레이드 등이 정선공설운동장과 아라리공원, 아리랑시장 일원에서 펼쳐진다. 1976년 시작해 올해로 49회째를 맞이한 유서 깊은 축제로, 지역의 특산품과 먹거리 등 향토 문화를 두루 체험할 수 있다. 한편 정선의 민둥산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억새꽃 군락지로, 늦가을까지 이어지는 억새꽃 축제 역시 아라리의 고장에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손색이 없을 듯하다. 꾸밈없이 담박하게 평상심을 노래한 정선의 아라리는 저물어가는 뭇 생명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계절, 가을을 닮았다. 시월에는 웅숭깊은 가을을 만나러, ‘검은산 물밑이라도 해당화가 피는, 살기 좋은 곳’ 정선으로 발걸음 해보는 것은 어떨까.<필자소개>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4-09-24 1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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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임영웅의 시대에도 영원한, ‘ 오빠, 남진’ 가수 임영웅의 월드컵경기장 공연 실황을 담은 ‘임영웅 |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감독 정현철, 조우영)이 개봉한 지 일주일만에 약 18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46억 원 이상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이는 임영웅의 고척스카이돔 공연 실황을 담은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감독 오윤동, 2023)의 13만 명, 32억 원의 매출액을 훌쩍 넘어선 기록이다. 극장가 침체 상황에서도 한 가수를 향한 팬덤은 이처럼 위력적이다. 그 위대한 팬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누가 있을까. 60~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응당 ‘남진’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오빠, 남진’(감독 정인성)은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최초로 ‘오빠’라고 불렸던 전설적 가수 남진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남진이 밴드와 함께 히트곡을 부르는 공연실황 장면과 본인 인터뷰, 그리고 선후배 및 동료들의 인터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흥미로운 것은 데뷔 60주년을 맞은 남진의 역사는 곧 우리 대중음악사, 나아가 한국 현대사와 맞물린다는 점이다. 영화는 여러 대중음악 전문가들을 통해 1920년대 대중가요가 처음 등장했던 시기부터 우리나라에 어떻게 대중가수가 탄생했는지 훑어준다. 실력 있는 가수들이 미8군 무대에 모이기 시작했던 시절, 남진은 엘비스 프레슬리, 앤디 윌리엄스, 냇 킹 콜 등 서구 가수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앨범을 내며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중, ‘울려고 내가 왔나’라는 곡은 당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왔던 노동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히트를 쳤고, 이후 남진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박춘석 사단에 편입되면서 명실공히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가슴 아프게’는 그가 박춘석과 합작한 대표곡이다. 가수와 영화배우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해병대에 입대해 월남전에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긴다. 제대 후 공백기를 딛고 TBC 방송국의 ‘쇼쇼쇼’에 출연하며 재기에 성공했으며 새롭게 부상한 스타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기도 했다. 이 시기 발표한 ‘님과 함께’는 남진 최고의 히트곡으로써 그에게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가져다주었던 곡이다. 그러나 그의 큰 성공 뒤에는 그림자도 짙게 깔려 있었다. 남진은 나훈아 피습사건의 배후로 누명을 쓰기도 했으며 신군부 정권하에서 좌파로 낙인 찍혀 방송출연을 금지당했고 조폭에게 허벅지를 찔리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타고난 긍정적 성격과 음악이었다. 다큐 속 음악계 관계자들은 앞다투어 남진의 철저한 자기 관리와 음악에 대한 사랑을 증언한다. 그래서일까. 다큐멘터리 전반에 삽입된 남진의 공연실황에는 여전히 호소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그의 목소리가 잘 담겨 있다. 장윤정, 송가인, 박현빈 등 후배 가수들은 남진의 마지막 무대를 아직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임영웅의 시대에도 오빠 남진의 무대는 현재진행형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행복이란 과대평가된 단어,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작가의 베스트셀러, ‘한국이 싫어서’(2015)가 스크린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흥행 추이는 원작 출간 당시의 반향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럽다. 스크린을 많이 잡지 못한 이유도 있고, 선선해진 계절탓도 있을 것이다. 영화관보다는 야외가 매력적인 날씨니까. 혹자는 원작의 날카로움이 무뎌진 점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는 원작과 다른 시선과 톤앤매너로 만들어진 작품이고 나름대로의 미덕이 충분하다. 사실 소설은 ‘헬조선’이라는 말이 난무하던 시대에 쓰였기 때문에 제목만으로 공감을 얻었지만 K-콘텐츠가 부상하면서 전세계인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는 현시점에 ‘한국이 싫어서’라는 말은 아리송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는 소설과 달리 한국 사회의 부정적 모습보다는 ‘계나’(고아성)라는 캐릭터가 가진 특수성에 더 주목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계나는 인천에서 강남까지 편도 2시간씩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다. 재건축 아파트의 완공을 기다리느라 좁은 집에서 네 식구가 복닥거리며 사는데 유독 추위를 못 견디는 계나는 고장난 보일러도 고치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럽다. 한 술 더 떠서 엄마는 계나가 열심히 부어온 적금까지 아파트 입주금에 보태라고 종용한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던 날 계나는 복잡한 심정을 정리하면서 이민을 결심한다. 뉴질랜드로 간 계나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점차 현지에 적응해 나간다. 한국에서 롱패딩을 입고도 벌벌 떨던 계나가 민소매에 짧은 바지를 입고 활보하는 모습은 그녀가 심리적인 안정과 자유를 얻었음을 암시한다. 뉴질랜드에도 사기꾼들이 있고 잦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지만 계나에게는 안정된 남자친구와 가족이 있는 한국보다 따뜻한 날만 계속되는 이 곳에서의 삶이 더 ‘행복’하다. 그렇게 영화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의 오해를 스스로 풀어낸다. 한국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벗어나야 행복해질 수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행복의 의미는 다르기에 떠나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행복이란 단어는 과대평가 된 것 같다’는 계나의 대사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맞춤형 행복의 안내서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필자소개>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4-09-19 0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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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한국형 록 뮤지컬로 탄생한 전통 설화, 창작 초연 뮤지컬 <홍련> 뮤지컬 홍련 공연 포스터 “내 얘길 제발 들어줘!” 여기, 한 소녀가 있다. 어딘가 겁에 질린 듯한 소녀는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보려 하지만, 이내 돌아온 것은 절망뿐이다. 한길 바닷속처럼 검푸른 어둠의 심연 속에서 아무도 보고 들으려 하지 않는 이야기를 과연 그는 어떻게 전해야만 할까. 창작 초연 뮤지컬 <홍련>이 개막과 동시에 매진 사례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30일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개막한 <홍련>은 한국 전통 설화인 ‘장화홍련전’ 주인공 홍련과 ‘바리데기’의 바리가 사후 세계 재판에서 만나게 된다는 설정을 기반에 두고 창작한 뮤지컬이다. 신예 배시현 작가와 박신애 작곡가의 작품으로 흥미로우면서도 익숙한 소재와 참신한 설정의 만남 덕분에 초기 단계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오래 공들인 만큼 완성도 높은 결과물로 관객들의 발길을 이끄는 분위기다. 뮤지컬 홍련 캐릭터 모음 © ㈜마틴엔터테인먼트 작품은 2022년 CJ문화재단의 뮤지컬 창작자 지원사업인 ‘스테이지업’을 통해 발굴돼 기획 개발을 거친 뒤 2022년 ‘스테이지업’ 최종지원작으로 선정되며 리딩 쇼케이스를 열었다. 이어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최하고 주관하는 ‘K-뮤지컬 국제 마켓’의 ‘선보임 쇼케이스’로 기대를 모았고, 이후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초연 무대를 이끌 13명의 출연진 역시 시선을 모은다. 먼저 홍련 역으로 한재아, 김이후 홍나현이, 바리 역으로는 이아름솔, 김경민, 이지연이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강림 역 고상호, 신창주, 이종영, 월직차사와 일직차사 역에 김대현, 임태현, 신윤철, 정백선도 함께한다.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고전 소설 ‘장화홍련전’은 가정형 계모 소설의 대표작이라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좌수 배무룡이 전처로부터 뒤늦게 얻은 장화·홍련 자매와 후처로 들이게 된 계모 허 씨 사이에 벌어진 갈등을 중심으로 하는데, 두 딸을 학대하고 음해한 끝에 끝내 목숨을 잃게 만드는 허 씨의 악랄함과 이를 중재하지 못하는 가장의 무능함이 아득한 분노와 허탈감을 자아낸다. 설화에는 이후 원귀가 된 자매가 자신들의 억울함을 해소해 달라며 새로 부임하는 부사를 찾아가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홍련>은 다르다. 뮤지컬에서는 ‘장화홍련전’ 속 홍련이 아버지를 죽이고, 남동생이자 계모의 아들 장쇠에게 해를 가했다는 죄로 삼도천을 건너기 전 바리공주에게 저승의 재판을 받는다는 설정이 출발 지점이다. 뮤지컬 홍련 무대사진 © ㈜마틴엔터테인먼트 청보랏빛 조명으로 물든 무대 위, 천도정의 주인인 저승신 바리공주는 차사 강림과 함께 홍련의 진짜 죄를 파헤치기 위한 재판을 시작한다. 무려 13만 9998번째 재판인 홍련의 재판은 바리공주가 주관하는 마지막 재판이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버림받았으나 그런 부모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약을 구해다 주고, 죽은 사람들의 한을 풀어준다던 바리데기 설화의 주인공 바리는 시작부터 비협조적인 홍련을 바라보면서도 사랑을 말한다. 홍련은 진실을 고하라는 바리의 말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벌인 일은 맞지만, 하늘이 내릴 벌을 대신한 것이니 무죄라고 주장한다. 월직차사와 일직차사의 도움으로 지난 과거의 거울을 비추는 강림은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강렬한 조명 세례를 받으며 재판을 이어가고, 바리는 마지막까지 주장을 꺾지 않는 홍련의 말에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가 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밀도 있는 스토리 라인, 국악과 서양 음악이 어색하지 않게 어울린 넘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홍련>이 가진 힘이다. 무엇보다 홍련과 바리를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가정 학대의 피해자로 바라보면서 그들이 마음속에 품은 응어리를 현대적 관점에서 풀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록 콘서트와 씻김굿으로 승화한 점도 흥미롭다. 다만 공간적 한계와 아쉬운 음향 문제는 차츰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작품에 등장하는 상황 설정들이 보기에 따라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노력한 흔적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홍련>은 가정 내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 상황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거나 혹은 비슷한 사례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감싼다. 또한 죽거나 다쳐야만 뒤늦게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 사회의 오랜 병폐를 지적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로하고 동시에 변화를 촉구한다. 작품을 통해 불붙은 연대는 분명 자신을 향한 사랑을 시작할 용기이자, 담장 밖으로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과 감동을 선사하는 <홍련>은 오는 10월 20일까지 이어진다. <필자소개>최윤영 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 바 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 왔고 현재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4-09-06 1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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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열차 화장실 에티켓에 일조한 음악 드보르작의 해학, 유머레스크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음악 박사 학위를 받은 안토닌 드보르작.유독 더웠던 올여름. 폭염의 일상 속에서 듣고 싶은 클래식을 고르자 치면 긴 호흡의 교향곡보다 쉽게 몰입이 가능한 소품 기악곡에 더 손이 가는건 어찌보면 당연지사. 유머레스크(Humoresque)는 '유머'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19세기 유럽에 등장한 변화무쌍하고 해학적인 악상으로 이루어진 자유로운 형식의 소품 기악곡이다.곡의 타이틀에 이 단어를 처음 도입했던건 독일의 작곡가 슈만이었다. 그는 독일식 유머에 대해 '눈물을 자아내는 웃음'이라고 강조했는데 음악 속에 드러난 그의 탐닉적인 유머 속에 독일식 진지함이 묻어난다. 결코 가볍지 않은 유머레스크란 얘기다.만약 유머레스크라는 개념에 충실한 유머와 경쾌함을 자아내는 자유로운 형식의 유머레스크를 듣고 싶다면?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이 작곡한 8곡의 유머레스크를 1순위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드보르작의 유머레스크 속에도 일말의 슬픔을 담은 악상이 담겨있지만, 슈만의 심오함보다는 낭만성을 띤 보편적인 음악적 텍스트로 봐도 무방하며 기본 바탕은 흥겹다. 대중의 뇌리 속에 각인된 '유머레스크'라는 단어는 직관적으로 드보르작을 떠울리게 하는데 이는 8개의 유머레스크 중 제7번이 가진 가공할 만한 대중성 때문일 터. 7번은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 편곡 버전을 비롯하여 셀 수 없이 다양한 편곡 버전으로 연주된다. 심지어 한때 미국에서는 "기차역에 기차가 정차하면 화장실 물을 내리지 마세요"라는 메세지를 담은 안내 방송 멘트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며 인기를 누렸다.그의 유머레스크는 심오한 정서보다는 미국적인 자유분방한 정서, 경쾌함, 낭만이 담겨있다. 1894년 여름 미국을 잠시 떠나 그의 고향 체코를 찾은 드보르작이 1892년부터 미국 국립 콘서바토리의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작곡노트에 적어두었던 악상들을 소환하여 피아노를 위한 8개의 소품을 엮은 '유머레스크'를 작곡했다. 드보르작의 유머레스크가 시벨리우스,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한 다른 유럽 · 러시아 작곡가들의 유머레스크와 비교해 차별성을 갖는 이유는 미국의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했다는 사실이다.당시 미국에서 꿈틀대기 시작하며 전파된 흑인 음악의 블루노트, 5음계를 가미하여 미국의 이국적인 정서와 감성을 담았고 체코의 민속 음악과 엮어 유럽적 정서와 함께 버무렸다. 예를 들어 세도막 형식을 갖춘 제4번의 주제는 흑인 음악의 블루스적 요소가 담겨있고 B는 전형적인 폴카 춤곡 캐릭터의 악상으로 A과 대조를 이루며 유머레스크 특유의 위트를 배가시킨다. 제6번 음악 또한 새해 전날 길거리에 모인 뉴요커들이 부르던 노래를 노트에 받아 적어 놓았다가 음악에 차용한 케이스로 미국의 대중적인 감성이 담겨 있다.기차광이었던 그가 기차 움직임의 리듬을 곡에 담았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제7번의 반복 리듬이 기차의 움직임 패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과거 증기기관차의 움직임을 상상하면서 들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참고로 영화 <죠스>의 테마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신세계 교향곡 4악장의 첫 소절 또한 가속하는 기차의 모습을 담은 음악으로 잘 알려져 있다.처음 작곡에 착수했을 당시 론도 형식의 '새로운 스코틀랜드 춤곡'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나 계획을 수정,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유머레스크로 방향을 틀었다는 사실은 춤곡풍의 음악을 자유로운 형식 속에 담고 싶었던 그의 의지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8곡 총 길이가 20분 남짓,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러닝 타임 속엔 낭만과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드보르작의 유머레스크는 어떠한 사전지식 없이 캐주얼하게 들을 수 있는 명곡으로 잘 알려진 7번 뿐 아니라 총 8곡 모두 들어보길 권한다. 지루할 틈이 없는 버라이어티 한 클래식의 향연이다.*Youtube Linkhttps://www.youtube.com/watch?v=XT73_TD33hA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4-08-30 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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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문화재와 현대 작가의 기념비적인 만남, 한국미의 레이어K-Art에 담긴 전통미감, 나만의 눈맛은?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K-아트, 우리는 과연 한국미를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한국의 아름다움이 응축된 K-Art는 이제는 마냥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키워드가 아니다. Art에 K를 붙인 만큼 현재 K-Art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서 우리는 한 가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한국미란 무엇인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는 한국미는 무엇이길래 저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걸까. 필자는 한국미에 대한 모호한 현장에너지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미’를 어제와 오늘의 관점에서 주목했다. 본 칼럼의 필자인 안현정 교수가 펴 낸 신간 ‘한국미의 레이어’ 표지 한국미란 “이 땅에 살며 스미듯 이어온 한국인의 독특한 활력” 한국미를 전통의 영역에서만 떠올리는 우리의 생각은 ‘서구화된 시각 속에서 오늘의 예술’이 규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미는 역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필자의 책은 한국미를 과거에만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 현재까지도 활발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파헤친다. 한국미에 대한 모호한 개념이 아닌 26점의 문화재(헤리티지)와 26명의 현대 작가를 매칭해 보다 많은 사람이 한국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부제인 눈맛의 발견은 예술 작품을 대할 때 ‘눈맛’ 즉,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독자 스스로 키울 수 있도록 ‘눈맛의 발견’ 챕터를 넣어 일상 속에서 ‘눈맛’을 발견케 한다. 더불어 글로벌 시대에 활발히 뻗어나가는 한국미에 발맞춰 부록은 영문 버전으로 26명의 현대 작가의 한국미에 관한 생각을 간략하게 정리해, 마치 갤러리에서 작가들의 대표작을 보듯 K-Art를 누구에게나 소개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목차는 크게 “전통미술 열풍, 한국미로 거듭난 K-Art”를 시작으로 제1부 도자기, 빛과 색의 레이어, 제2부 서화, 그림과 글씨의 레이어, 제3부 공예와 건축, 통감각적 레이어를 살핀다. 한국미술사의 흐름을 주요 작품들을 통해 도자-서화-건축 및 공예로 나눠, 현대작가와의 매칭 속에서 비교/대조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이는 미술작품을 보는 방식을 ‘어제와 오늘’의 관점에서 이해해 다양한 시·공간을 흐름과 네트워크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시도이다. 한석준 아나운서는 추천의 글에서 “한국미는 궁궐의 화려함과 민가의 소박한 조우에서 오는 단순한 아름다움이다. 한국미를 어제와 오늘의 대화 속에서 모색한 『한국미의 레이어』를 통해 당신만의 눈맛을 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한국미의 정의를 새롭게 쓰면서, 문화재와 현대 작가의 조우 그리고 새로운 인터뷰 형식의 꼴을 한, 진정한 ‘눈맛’을 키우고 싶은 사람의 인식전환을 유도한 것이다. 문화재와 현대작가의 절묘한 매칭을 통해 한국미의 재해석을 시도한 작가의 예지력이 눈 길을 끈다.문화강국 K(KOREA)의 시선, 이제 내부로부터 발현할 때 K-Art, K-Pop, K-Movie, K-Drama, K-Food 이들의 단어에는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가 있다. 바로 K(KOREA)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동양의 저 멀리 어딘가 있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친숙하게 알법한 인물들을 나열하는 두유 노 시리즈가 필요 없을 만큼 어엿한 문화 강국이 되었다. 이에 발맞춰 한국 미술계에도 이러한 바람이 불었는데, 프리즈의 한국 진출부터 시작해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가 세계 곳곳에서 열렸다.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K-Art 즉, 한국의 아름다움. 한국미를 더 발전시키는 것이 시대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 전에 한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한국미는 무엇인가. 한국미는 전통, 즉 과거에 머물러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여전히 활발히 유영해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와 그리고 미래에도 연결되어 있어 고루한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탑재한 원형이다. 저자 안현정은 한국미의 개념을 모호한 단어들을 나열해 현학적으로 풀어쓰지 않았다.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지고 친숙한 26점의 문화재와 26명의 현대 작가를 매칭시켰다.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그야말로 ‘한국미스럽게’ 다가간 것이다. 분청사기, 달항아리, 고려불화, 달마도, 창령사터 나한상, 미인도, 창덕궁 인정전 등 26점의 문화재를 김근태, 최영욱, 신제현, 한상윤, 신미경, 김미숙, 하태임 등 26명의 유명 현대 작가와 연결 지어 이 책을 통해 과거에서부터 현대 그리고 미래까지 뻗어나가는 ‘한국인의 독특한 활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4-08-23 1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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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기발한 스토리와 중독성 강한 선율로 관객을 매료시키다_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문화산업에서는 가끔 생각지 못했던 콘텐츠가 등장해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게임 체인저’다. 새삼 기발한 아이디어를 무대로 구현해 내는 창작진에게 감탄과 환호를 아낌없이 보내게 되는 이유다.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도 그런 작품이다. 2015년 워싱턴에서 처음 막을 올린 후 소극장을 거쳐 브로드웨이에서 큰 흥행을 기록하며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쓰는 대파란을 연출했다. 화려하거나 특출난 주인공이 아닌, 흔히 ‘아싸’라 불리며 주목받지 못하던 주인공의 이야기가 이토록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곤 쉽게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캐나다, 영국, 아르헨티나, 핀란드, 이스라엘, 호주 그리고 마침내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막을 올리며 글로벌 흥행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스 공연 포스터 이야기는 평범하게 시작된다. 사회불안장애를 겪고 있던 주인공 에반 핸슨은 주치의로부터 스스로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권유는 받는다. 제목인 ‘디어 에반 핸슨’은 영어권에서 편지를 쓸 때 자주 활용하는 첫 문구인 ‘에반 핸슨에게’라는 의미다. 이야기는 에반과 비슷한 ‘아싸’지만 부유한 가정의 문제아 코너 머피가 우연히 에반의 편지를 가져가게 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교장실로 불려가게 된 에반은 코너의 부모를 만나게 되고, 며칠전 그가 자살을 했으며 유서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서의 첫 문장은 바로 ‘디어 에반 핸슨’이었다.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코너의 부모에게 차마 진실을 밝힐 수 없던 에반은 자신이 코너와 절친이었다 거짓말을 한다. 문제는 아무리 선한 의도로 시작한 거짓이었다 해도 점차 그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 게다가 이 일을 계기로 에반은 평소 짝사랑하던 코너의 여동생 조이와 연인으로 발전하고, 우여곡절 끝에 편지가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사건은 확대되어간다. 에반의 선한 거짓말은 알파만파로 확산되며 거짓이 또 따른 거짓을 낳게 되는 상황이 전개된다. 에반이 과연 사건을 수습하게 될지, 또 스스로를 바라보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스 공연장면 뮤지컬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물론 절대적이다. 뮤지컬의 작사가나 작곡가가 관극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디어 에반 핸슨’은 꽤나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음악을 만든 제작진이 바로 파섹 앤 폴이기 때문이다. 파섹 앤 폴은 미시간 대학교에서 동문수학하던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을 콤비로 부르는 이름이다. 이들이 만든 작품이 바로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할 만큼 검증받은 음악가들의 저력을 뮤지컬 ‘디어 에반 헨슨’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뮤지컬이 이들 콤비의 작품 중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 경우는 아니다. 베트남 전쟁 파병을 하루 앞둔 미 해병과 순진한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도그파이트’도 이미 우리말 무대가 꾸며진 적이 있다. 파섹 앤 폴 특유의 섬세하고 중독성 강한 음악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음악적 산물이 ‘디어 에반 핸슨’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면, 또 다른 매력은 마이클 그라이프다. 그는 우리나라 뮤지컬 마니아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넥스트 투 노멀’과 ‘렌트’ 그리고 최근에 국내에 선보여 인기를 누렸던 뮤지컬 ‘이프 덴’을 만든 연출가다. 내면의 이야기나 정신적 방황을 잘 묘사해내는 그의 연출 스타일은 ‘디어 에반 핸슨’에도 잘 녹여져 관객들을 쉴 새 없이 자극한다. 왕따 문제가 공공연한 교육계 이슈로 부각되고, SNS의 과도한 영향력이나 인플루언서의 사생활이 너무 쉽게 논란을 불러오고 또 휘발되는 작금의 우리 대중들에게 이 작품이 적절히 그리고 잘 공명되는 이유는 너무도 그럴싸한 이야기와 무대 연출의 매력이 어우러지며 효과적으로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키는 탓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디어 에반 핸슨’은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2021년 처음 선을 보인 뮤지컬 영화는 무대의 성공을 이어가는 실험을 시도하듯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벤 플랫을 다시 기용하는 행보를 선보엿다. 하지만, 아쉽게도 흥행은 공연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만 남겼다. 극중 17살 고등학생이었던 에반의 모습을 영화가 제작될 시기 27살이었던 벤 플랫에게서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무리였다는 신랄한 비평도 따랐다. 벤 플랫은 이 작품을 통해 토니상과 에미상, 그래미상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오스카상까지 기록하는 문화계의 그랜드 슬램격인 EGOT까진 달성하지 못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스 공연장면 사실 캐스팅이라는 측면으로만 보자면 우리말로 제작된 무대용 뮤지컬이 영화보다 훨씬 원작과의 유사성이 높다고 인정할 만하다. 올해 초연된 우리말 무대에서는 인피니트의 메인 보컬 출신인 김성규가 뮤지컬 배우 박강현과 임규형과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해 무대를 꾸몄다. 쉽지않은 난이도의 음악들을 찌질한 주인공의 연기와 함께 실감나고 설득력 있게 구현해내 애호가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냈다. 한국어 버전이 준비될 당시, 전형적인 뮤지컬 음악이라기보다 팝에 가까운 음악적 스타일 탓에 효과적인 우리말 의미 전달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기우에 불과했다. 여러 창작 뮤지컬들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한정석 작가의 손을 거친 우리말 가사는 어렵지 않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적절한 의역과 변화를 더해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말 번안 뮤지컬들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프로덕션을 구현해낼 수 있음을 믿게 해 준다.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이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역시 MZ를 포함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구될만한 환경과 소재 그리고 이야기, 또 설득력이 강한 무대 위 비주얼 효과다.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소문과 추론들이 뮤지컬에서는 강렬한 영상 효과와 시각적 장치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연된다. 등장인물이 느낄 심리적 압박과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낳는 통제되지 않는 인터넷 세상의 상황들, 짐짓 이야기들을 꾸며내는 주인공의 가짜 편지를 코믹하게 묘사하는 장면 등은 이 뮤지컬이 어떻게 치열한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의 각축 속에서 그토록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는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케 한다. 올해 만나볼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뮤지컬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4-08-16 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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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악보를 외운다는 것에 대하여 유학 시절 빈에서 열린 바리톤 사이먼 킨리사이드(S. Keenlyside, 1959- )의 독창회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 날의 메인 프로그램은 슈만(R. Schumann, 1810-1856)의 유명한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 48’. 총 16개의 노래 중 14번째 곡 ‘밤마다 꿈에서 그대를 보네(Allnächtlich im Traume seh’ ich dich)’가 시작되고 조금 지났을 때였습니다. 킨리사이드는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피아니스트를 본 뒤, 그 곡의 처음부터 다시 불렀습니다. 그가 가사를 틀렸기 때문이었지요. 다시 시작한 그는 무사히 그 곡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가사가 절묘했습니다. “그리고 난 그 단어를 잊어버렸어 (Und’s Wort hab’ ich vergessen)”. 다음 곡으로 넘어가기 전, 홀에는 청중들의 조용한 웃음소리가 잠시 가득했습니다. 음악가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대 위에서 청중에게 음악을 전달해야 하는 음악가들에게 악보를 외우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무대 위에서 혹은 중요한 시험이나 오디션에서 갑자기 음악이 기억이 나지 않아 연주가 끊길 수 있다는 불안함 때문이지요. 서두에 예를 들었던 킨리사이드의 경우처럼, 모두가 잠시 미소지으며 넘어갈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그런 행운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칫 당황한 음악가가 그 이후의 공연을 제대로 끌고 나갈 수 없을 수도 있고, 잠시 끊겨버린 음악을 잘 복구한다고 하더라도 시험이나 오디션에서는 그 순간이 당락을 좌우할 요인이 되겠지요. 악보를 외우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요즘의 음악가들에게는 억울하겠지만, 사실 음악가들이 처음부터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지는 않았습니다.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관습은 1830-40년대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이것이 도입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인물로 여러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이는 바로 로베르트 슈만의 부인이기도 했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C. Schumann, 1819-1896)입니다. 물론 클라라 이전에도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경우들은 적지 않게 있었지만, 이는 관습이라기 보다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여겨지는데, 이는 분명 한 인물이 계속해서 외워서 연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연주활동을 했던 클라라는 노년이 되기 전까지 리사이틀에서 지속적으로 악보를 외워 연주했지요. 그녀는 17세 때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피아노 소나타 제23번 ‘열정’을 외워서 연주해 화제를 모았는데, 악보를 보고 연주하던 당대의 관습에서 벗어난 그녀의 연주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비판의 요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클라라가 교만하다는 것이었지요. 오늘날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악보를 보고 연주하면, 연주자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악보조차 못 외운 것 아니냐며 교만하다는 말이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대에는 클라라와 같은 연주 형태가 청중으로 하여금 작곡가와 작품이 아니라, 연주자에게 집중하게 한다는 이유로 교만하다고 여겨졌습니다.화가 안드레아스 슈타우프가 그린 1839년 경의 클라라 슈만 (public domain) 시간이 흐를수록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형태는 서서히 퍼져 나갔습니다. 여기에는 19세기 중반에 늘어난 중산층과 그들을 사로잡은 비르투오소(뛰어난 예술적 기교를 갖춘 인물)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들이 연주회장에 더 자주 오게 되었고, 외워서 연주하는 관습의 시작을 논할 때 클라라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리스트(F. Liszt, 1811-1886)와 같은 비르투오소의 존재는 그들을 열광하게 했습니다. 외워서 연주하는 것이 아직 보편적이지는 않았던 당시에, 화려한 기교뿐 아니라 외워서 연주하는 능력을 갖춘 비르투오소는 더 큰 매력을 지닌 연주자로 인정받았지요. 외워서 연주하는 관습이 보다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어쩌면 필연적이게도, 연주 도중 음악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갑자기 잊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도 늘게 되었지요. 이 시기에 지휘자 한스 폰 뷜로(H. v. Bülow, 1830-1894)는 악보를 외워서 지휘했고, 시간이 흐르며 외우는 방식에 대한 연구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관습에 대해 논할 때 성악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지 않는데, 이것은 오페라와 같은 극 음악의 특성상 가수가 악보를 외워서 공연하는 것이 처음부터 당연하게 여겨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날 음악회에 가거나 공연 영상을 본다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무대에서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것이 사실 무대 위 모든 음악가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독주자와 협연자에 주로 해당되지요. 하지만, 그들이 현대음악을 연주할 때에는 악보를 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 실내악 연주자나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변하지 않는 관습으로 자리잡고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관습에 반하는 사례들도 있어 흥미롭습니다. 1920년대 초부터 40년대 초까지 활약했던 콜리쉬 현악 사중주단(Kolisch Quartet)은 쇤베르크(A. Schönberg, 1874-1951)나 버르토크(B. Bartok, 1881-1945)의 작품을 연주할 때에도 악보 없이 연주한 적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최근에는 오케스트라가 악보 없이 연주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런던에 기반을 둔 오로라 오케스트라(Aurora Orchestra)를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의 교향곡 제40번과 제41번 ‘주피터’,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영웅’, 제5번, 제6번 ‘전원’ 그리고 베를리오즈(H. Berlioz, 1803-1869)의 ‘환상교향곡’ 등을 악보 없이 연주했지요. 이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은 악보 없이 연주할 때의 자유로움과 서로 간의 원활한 소통 등을 언급하며 만족을 나타냈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꼭 저렇게까지 해야할까? 그냥 악보 보고 해도 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기존과는 다른 신선함을, 적어도 시각적인 면에서 확실하게 전달해 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요. 예전 칼럼에서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Norwegian Chamber Orchestra)가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Verklärte Nacht)’을 어두운 조명 아래 악보를 외워서 연주한 공연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악보를 외워 연주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이를 활용하여 청중들에게 인상 깊은 공연을 어떤 방식으로 창조해낼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 의미있는 공연이었지요. 처음에는 낯설었던 현상이 어떻게 지금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습으로 변모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늘 흥미롭습니다. 지금 당연하게 여겨지는 악보를 외우는 관습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지금 낯설게 다가오는 공연 방식이 앞으로 더 대중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될까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사회에서 음악의 관습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더욱 궁금해집니다. 추천영상: 오로라 오케스트라가 2016년 연주한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41번 ‘주피터’ 중 4악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선율이 서로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곤 하는 이 4악장은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요.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통상의 경우보다 많은 리허설을 소화하고 선보였을 이 연주에서 단원들의 확신에 찬 모습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인상적입니다. 조금은 공격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선명한 음향도 귀 기울여볼 가치가 있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cn6DgC8ubUo <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4-08-09 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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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발디의 모테트
성악곡 'Introduzioni(인트로두치오니)'를 소개하며 바흐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풍미했던 이태리 출신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베네치아 출신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 하면 으레 <사계>를 떠올린다.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으로 통하는 이 작품의 위상 때문일까. 사계의 그림자에 가려 비발디의 다른 작품들이 많이 주목을 받지 못한 건 사실이다. 비발디는 현재 가장 활발하게 연주되고 있는 사계를 비롯한 300곡이 넘는 기악 협주곡들뿐 아니라 성악곡에 있어서도 거장다운 솜씨를 발휘했는데 비발디의 모테트 'Introduzioni(인트로두치오니)'는 꼭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음악이다.18세기에는 성악이나 솔로악기에 기악반주를 곁들인 협주곡 형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비발디는 이 장르를 공고히 한 장본인이다. 그가 작곡한 성악곡들은 오페라,칸타타,모테트등 다양한데 'Introduzioni'는 문자 그대로 '도입부'를 뜻하는 모테트로서 바로크 시대의 전례 합창곡 전 순서에 배치된 기악 반주의 '독창곡'을 말한다. 현재 남아있는 8곡의 Introduzioni는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모테트는 르네상스 시대에 탄생했으며 무반주 다성음악으로 출발하여 바로크 시대로 넘어오며 기악반주가 첨가된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비발디의 Introduzioni는 주옥같은 성악의 주 선율 뿐 아니라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비발디의 탁월한 작곡역량이 녹아있는 기악반주가 돋보이는 명곡들이다. 단순한 성악반주를 뛰어넘는 기악 앙상블의 살아있는 디테일함과 비발디 특유의 사운드적 질감은 중독성이 강하다.Introduzioni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리아-레치타티보-아리아, 아리아-레치타티보, 레치타티보-아리아-레치타티보 등 순서나 구성에 있어서 자유로운 편이다.아리아가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적 선율에 집중되어 있다면 레치타티보는 음악적 내러티브를 보완해주며 스토리 전개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구조적 완결성에 기여한다. 덧붙여 Introduzioni 대부분 도입부 역할에 걸맞게 채 10분을 넘기지 않는 콤팩트한 구조를 갖고 있어서 감상에 있어 부담이 없다.비발디 음악 속에 내재된 반복적인 리듬 패턴과 선율은 음악을 자연스럽게 뇌리속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8개의 모테트 중 작품 번호상 두번째 Introduzioni에 해당하는 Canta in prato ride in monte (초원에서 노래하고 산 위에서 웃어라) RV 636의 아리아에서는 붓점 리듬 패턴과 8분음표 진행이 독창과 기악반주를 통해 주거니 받거니 끊임없이 대화하듯 이어진다. 4분이 채 안되는 짧은 길이에도 불구, 음악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사실 모테트하면 상당히 올드하고 낯설게 느껴지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장르인 오페라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접하듯 부담없이 감상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내용만 다를 뿐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는 내러티브 속 내용과 감정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기능적으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일 터. 프랑스의 위대한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베네치아에 들러 비발디의 성악곡들을 듣고 "풍요로운 예술의 경지에서 비롯된 수준 높은 취향"라는 평을 내놨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비발디의 성악곡들은 기악곡들과 마찬가지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이제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사계'는 잠시 제쳐두고 비발디의 성악곡, Introduzioni에 귀 기울여 보자.무더운 여름의 불쾌지수를 낮춰줄 비발디의 모테트 Filiae Maestae Jerusalem(슬퍼하는 예루살렘의 딸들아) RV 638을 소개한다. 레치타티보-아리아-레치타티보 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리아만 골라 들어도 좋다. 'Sileant zephyri (바람은 침묵하라)'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전주에서부터 찬 기운이 묻어난다. 예수 십자가의 고난을 주제삼은 노래인 만큼 음악적 구조는 단순하지만 영화의 한 장면이 선명히 그려지듯 뇌릿속 깊이 파고드는 음악이 가져다주는 흡입력이 압권이다. *유튜브 링크제목: Filiae Maestae Jerusalem RV 638 중 아리아 '바람은 침묵하라'https://www.youtube.com/watch?v=xW19qNYQDXQ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4-07-31 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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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테니스라는 폭발적인 관계, ‘챌린저스’ ‘패트릭’(조시 오코너)과 ‘아트’(마이크 파이스트)는 함께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테니스선수다. 동료이자 라이벌이면서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두 사람 사이에 어느 날, ‘타시’(젠데이아)가 눈에 들어온다. ‘타시’는 외모와 실력, 근성까지 모두 갖춘 훌륭한 테니스선수로, 이미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스타다. 타시는 패트릭과 아트 중, 테니스 경기의 승자와 사귀겠다고 선포하고, 혈전 끝에 패트릭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타시와 패트릭의 사랑은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둘 다 강한 성격이라 얼마 가지 못하고, 타시는 큰 부상을 당한다. 선수 생활을 못하게 된 타시를 아트가 다독여 주면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패트릭은 여전히 타시를 포기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주변을 맴돌며 다시 기회를 기다린다. 세 주인공들의 상태나 감정의 변화만 따라간다면, 이 영화는 삼각관계 중에서도 꽤나 지저분한 막장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챌린저스’에는 테니스라는 스포츠가 중심에 있다. 두 선수 사이에는 오직 공밖에 오가지 않지만, 선수들의 전사(前史)가 깔리면서 그 공에는 혼신의 힘과 함께 오만가지 감정이 담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가장 귀족적이고 신사적인 스포츠에 배신, 원망, 질투 등의 불순한 감정을 섞어 경기 장면을 더욱 쫄깃하고 짜릿하게 연출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테크노 음악이다. 때로 대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볼륨을 높인 클럽 음악들은 영상 그 자체 보다 승리를 향해 솟구치는 인물들의 열망을 그대로 전달하도록 삽입되었다. 쿵쿵거리는 비트가 심장 박동소리처럼 들리는가 하면, 패트릭과 타시의 성격처럼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음악들은 억눌린 감정을 해방시키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특히, 공의 시점으로 찍힌 장면이라든가 과장되게 연출된 스매싱 장면들과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우러진다. 애니메이션, ‘소울’(감독 피트 닥터)로 오스카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트렌트 레즈노어와 에티쿠스 로스는 이 영화에서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며 그들의 작업에 한계가 없음을 증명했다. 음악의 BPM에 인물들의 심박수를 대입시키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일상이라는 안도감,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2024)는 도쿄 시부야구의 17개 공공화장실을 리노베이션하는 사업으로부터 파생되었다. 기획자들은 안도 타다오, 반 시게루, 구마 겐고 등 세계정상급의 건축가 및 디자이너들에게 기존의 공공화장실을 남녀노소, 장애인 누구나 이용하기 편리한 화장실로 리노베이션 해줄 것을 의뢰했고, 작업이 끝날 때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베를린 천사의 시’(1987),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 등으로 잘 알려진 빔 벤더스 감독에게 영화연출을 의뢰했다. 본래 단편영화로 제안했으나 빔 벤더스 감독이 오늘날의 도쿄를 장편 극영화에 담아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퍼펙트 데이트’가 탄생했다. 이 작품은 불과 17일 만에 촬영을 끝내는 등 저예산으로 진행되었으나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남우주연상을 가져가는 기염을 토했다.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랬던 것처럼, ‘퍼펙트 데이즈’도 야쿠쇼 코지의 연기력을 십분 보여주기에 아쉬운 작품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124분의 러닝타임이 오직 배우의 힘으로 흘러간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였던 빔 벤더스 감독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퍼펙트 데이즈’에서도 이 작품만의 호흡과 리듬을 창조해 냈다. 대부분의 상업영화가 등장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플롯으로 짜여져 있다면 이 영화는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도쿄의 공공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매일 아침 알람 없이도 같은 시각에 눈을 떠서 화초에 물을 준 뒤, 유니폼을 입고 일터로 출근을 한다. 점심에는 야외에서 햇살을 즐기며 샌드위치를 먹고, 일이 끝나면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단골 식당에서 술을 한 잔 마신다. 특별할 것 없는 일과가 끝나면 그는 다시 잠자리에 든다. 남 보기에는 화장실 청소라는 궂은 일을 하고 있지만, 히라야마는 출퇴근을 하는 동안 카세프 테이프에 담긴 명곡을 즐기며, 헌책방에 들러 자기 전에 읽을 책을 사기도 하는 등 매일 문화생활을 빼놓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틈틈이 햇살에 일렁이는 나뭇잎을 필름 카메라에 담는 창작가이기도 하다. 말 없이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을 깊이 관찰하는 히라야마의 눈빛에서 사후에야 작품이 알려지게 된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처럼 그의 필름에도 멋진 작품들이 잔뜩 찍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히라야마의 일상 속에서 카메라는 공공화장실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틈틈이 비춰주며 우리가 무심히 스쳐 가는 공공화장실이 얼마나 다양한 사안들을 고려해 만들어졌는지, 어떤 이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지 느끼게 만든다. 이것은 반복되는 히라야마의 일상이 사실은 완전한 복제가 아니라 수많은 요인들에 의해 변주되고 있음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우리의 하루를 이루고 있는 것이 종종 하찮다고 여겨지는 소중한 사건과 인연들인 것처럼, 공공화장실 또한 평소에는 지나치기 쉽지만 적재적소에 놓여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는 필수적 공간인 것이다. 도심 한 가운데를 비추면서 이처럼 사색적이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영화가 어디 쉬우랴. 1945년생의 빔 벤더스는 앞으로도 계속 명작을 만들 수 있는 감독이 분명하다. <필자소개>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4-07-25 1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