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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7> 전문직업정신 (Professionalism)
“AZ, 오늘 소그룹 수업 (small group session)에 출석하지 않아서 이메일을 보내요. 지난 번에 건강문제로 수업에 빠진 적이 있어서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연락바랍니다.”
AZ는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으로 그동안 소그룹 수업을 이미 한번 빠졌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소그룹 수업에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소그룹 수업은 동료들와 함께 토론하면서 배우는 시간인데 학생이 빠지게 되면 다른 동료들의 배움의 기회를 줄여 피해를 줄 수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학생이 정당한 사유없이 빠지면 교수는 학교에 전문직업정신 우려사항 보고서 (professionalism concerns report)를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학생 관련서류로 학교에 영구히 남게 되고, 전문직업정신 우려사항 보고서를 두 번 이상 받은 학생은 학교의 학생 진도 위원회 (Student Progress Committee)의 심사 대상이 되며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다음날, AZ로부터 답장이 왔다.
“교수님, 제가 어제 저의 학업 조언자 (academic advisor)를 만났는데 이 미팅이 그만 길어졌습니다. 미팅을 끝냈을 때는 소그룹 수업시간이 벌써 반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황당했다. 소그룹 수업의 중요성을 알면 그 학생은 학업 조언자를 만날 때 미팅 후에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수업이 있다고 말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또, 만약 소그룹 수업을 피치 못하게 빠져야 한다면 자신의 소그룹 수업 담당 교수와 전체 수업을 책임지는 나에게 연락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AZ의 이런 행동은 이번 소그룹 수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 학생은 내 과목에서 내는 전체 열 개의 과제 중 무려 일곱 개를 늦게 제출하거나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행동에 대해 사과하거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학업 조언자 등 다른 사람이나 상황 탓으로 돌리고는 했다. 우리 학교는 이러한 행위를 비전문직업인적 (unprofessional)으로 판단하고 심각하게 다룬다. 그 이유는 전문직업정신이 약사 또는 건강관련종사자 (healthcare professionals)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이나 기술과 동일하게 중요한 항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문직업정신 (professionalism)이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해 여러 정의가 있지만 의사단체인 미국 전문의 상임 위원회 (American Board of Medical Specialties)에서 만든 것이 가장 잘 표현된 것 중 하나이다. 이 정의는 비록 의사를 대상으로 하지만 건강관련종사직역인 약사에게도 적용된다:
“Medical professionalism is a belief system in which group members (“professionals”) declare (“profess”) to each other and the public the shared competency standards and ethical values they promise to uphold in their work and what the public and individual patients can and should expect from medical professionals.”
이를 의역해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건강관련 전문직업정신은 건강관련전문직업인들이 서로에게와 일반 대중에게 선언하는 신념체계로 이에는 건강관련전문인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동안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두 가지가 포함된다. 하나는 자신들이 공유하는 역량의 기준 (competency standards)과 윤리적인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대중과 환자들이 건강관련종사자로부터 기대할 수 있고 또 마땅히 기대해야 하는 것들이다.”
여기서 자신들이 공유하는 역량의 기준이란 건강관련종사자들이 일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에 관련된 기준을 말한다. 이 기준은 높을수록 좋으므로 건강관련종사자들은 필요한 지식과 기술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서로 공유하여야 한다. 그러면 두번째 사항인 대중과 환자들이 건강관련종사자로부터 기대할 수 있고 마땅히 기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환자들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다. 이 지식과 기술은 수련기간동안 배운 것으로만 충족되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계속 만들어지므로 대중과 환자들은 건강관련종사자들이 수련을 마친 다음에도 평생동안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보완할 것을 기대한다.
예를 들어,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나왔는데 예전에 쓰던 방법만 고수한다면 이는 대중과 환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습득이 전문직업정신에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건강관련종사자는 수련후에도 정기적으로 보수 또는 연수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건강관련종사자의 보수교육의 양은 미국에 비해 현저히 적다. 우리나라는 약사는 16시간, 3년간 의사는 24시간의 보수 교육을 받아야 하는 데에 비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2년간 약사는 30시간, 의사는 50시간을 받아야 한다. 즉, 우리나라 약사와 의사의 보수 교육 요구량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이다).
전문직업정신에 입각하여 환자가 기대할 수 있는 것 중 또 하나는 건강관련종사자가 자신의 이해관계보다 환자의 이익을 우선으로 두는 것이다. 환자는 질병의 치료를 위해 건강관련종사자들을 신뢰하고 이들의 조언과 지시를 따른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는 건강관련종사자가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길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 믿음이 깨지면, 즉, 환자를 치료하는 건강관련종사자가 환자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느끼게 되면 그 환자는 건강관련종사자의 조언과 지시를 더 이상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약사와 같은 건강관련종사 직역은 환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환자가 따르지 않는 건강관련직역은 직역으로서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건강관련종사자는 환자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행동해야 한다.
이외에도 대중과 환자는 건강관련종사자들이 그들을 존중해 주고 효과적인 치료를 위한 협력자로 대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 환자와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며, 사실을 정직하게 전달하고 문제가 생기면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여 이해를 구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대중과 환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 전문의 상임위원회는 건강관련종사자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구체적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At the heart of these ongoing declarations is a three-part promise to acquire, maintain and advance: (1) an ethical value system grounded in the conviction that the medical profession exists to serve patients' and the public's interests, and not merely the self-interests of practitioners; (2) the knowledge and technical skills necessary for good medical practice; and (3) the interpersonal skills necessary to work together with patients, eliciting goals and values to direct the proper use of the profession's specialized knowledge and skills,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art” of medicine.”
“첫째, 건강관련직업은 건강관련종사자의 이익이 아닌 환자와 대중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윤리적 가치를 습득하고 유지하며 진전시킨다. 둘째, 환자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유지하며 증진시킨다. 세째, 직역만의 고유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목표와 가치를 끌어내어, 환자와 함께 협력하는 데에 필요한 대인관계기술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진전시킨다.”
그런데, 이런 약속을 선언하면 이것이 잘 지켜지는지 확인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말로만 한 약속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전문의 상임위원회는 “이 약속을 지키는지 감시하고 확인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직역에 속한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Core to both the profession’s technical expertise and its promise of service is the view that members, working together, are committed to maintaining the standards and values that govern their practice and to monitoring each others’ adherence to their standards on behalf of the public.”
전문직업정신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건강관련종사자가 있으면 그 직역에 속한 사람들이 이에 대해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징계를 내리거나 그 직역에서 내쫓을 수 밖에 없다. 같은 배를 탄 사람끼리 너무 한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조처는 해당 건강관련직역의 존속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건강관련종사자가 환자를 성추행했다고 하자. 그런데, 같은 직역의 건강관련종사자가 이를 두둔하면 대중과 환자들은 그 직역에 속한 건강관련종사자는 누구나 자신들을 성추행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환자와 그 건강관련직역과의 신뢰는 깨지게 된다. 즉, 전문직업정신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건강관련종사자를 눈감아 주거나 두둔하면 그 건강관련 직역은 환자의 신뢰를 잃게 되어 직역으로서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 따라서, 건강관련직역은 스스로의 존립을 위해 스스로 관리하고 규제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관련종사자가 아무리 지식과 기술이 뛰어나도 전문직업정신이 부족하면 좋은 건강관련 종사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환자의 신뢰를 잃으면 건강관련종사자의 지식과 기술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입학하자마자 전문직업정신을 가르치고 강조한다. 학교의 데이타에 의하면, 임상실습 과목에서 낙제하는 학생들은 지식의 부족이 아닌, 주로 전문직업정신의 문제로 인해 낙제한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전문직업정신에 문제가 있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여 이들이 빨리 잘못을 깨닫고 고쳐서 학교의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도록 전문직업정신 우려항목 보고서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전문직업정신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은 졸업 후 독립된 건강관련종사자로 일할 때 환자와 사회에게 해를 끼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구된 바에 의하면,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비전문직업적인 행위를 했던 의과대학생은 그렇지 않았던 의과대학생들보다 의사가 된 다음 비전문직업적인 행위 – 성추행, 부당청구 등 - 로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3배 이상 높다. 따라서, 약학대학은 환자와 사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건강관련종사자들을 배출해 내야 하는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
대학생들은 성인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길들여졌던 습관과 행동을 바꾸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나를 포함한 여러 교수들이 전문직업정신에 대해 조언했어도 AZ의 행동이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약사라는 건강관련종사직역에 들어온 이상, AZ가 현재와 같은 행동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빨리 깨닫고 고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8-31 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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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6> 메트포민에 대해 환자가 알아야 할 사항들
당뇨병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메트포민 (metformin)에 대해 환자가 꼭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하여 문답식으로 정리하였습니다.
1. 메트포민은 어떻게 혈당을 떨어뜨리나요?
메트포민은 다양한 방법으로 혈당을 떨어뜨립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은 간에서 포도당을 만드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포도당은 우리몸의 주된 에너지원이고 주로 음식을 통해 섭취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는 음식을 먹지 않죠. 하지만, 이 동안에도 우리 몸은 체온을 유지하고 기본적인 대사 작용을 수행하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음식물에 의해 포도당을 섭취할 수 없을 때 간은 포도당을 만들어 공급합니다. 메트포민은 이렇게 간에서 포도당을 만드는 것을 억제하여 혈당을 낮춥니다.
두번째 방법은 인슐린이 몸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 주로 발생하는 2형 당뇨병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인슐린이 효과적으로 이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췌장에서 만들어지는 인슐린은 혈액 속의 포도당이 근육같은 세포속으로 잘 들어가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췌장에서 인슐린 만들어지지 않거나 만들더라도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혈액 속의 포도당이 세포 속으로 잘 들어 갈 수 없어 혈액 속에 그대로 머무르게 되어 혈당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인슐린의 양이 충분해도 인슐린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포도당은 세포속으로 잘 들어가지 않아 혈당이 높아집니다. 이를 인슐린 저항성 (insulin resistance)라고 부르는데 2형 당뇨병 환자에게 흔하게 보이는 현상입니다. 메트포민은 인슐린 저항성을 낮춰 포도당이 세포속으로 잘 들어가게 하여 혈당을 낮춥니다.
뿐만 아니라, 메트포민은 위장관에서 포도당이 흡수되는 것을 줄입니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작용방법이고 간에서 포도당을 만드는 것을 막는 것과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는 것이 메트포민이 혈당을 낮추는 주된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메트포민은 췌장에 직접 작용하여 인슐린의 분비를 늘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메트포민은 간에서 포도당을 만드는 것을 다 막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막기 때문에 저혈당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2. 메트포민은 어떤 당뇨병 환자들에게 사용되나요?
메트포민은 췌장에서 인슐린을 더 만들어지도록 돕지 않기 때문에 췌장에서 인슐린이 만들어지지 않는 1형 당뇨병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면, 메트포민은 인슐린 저항성이 혈당 증가의 큰 원인이 되는 2형 당뇨병 치료에 널리 쓰입니다. 실제로 미국 당뇨병 협회 (American Diabetes Association)에서 발행한 당뇨병 치료 지침서에서는 메트포민을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메트포민이 가장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권고되는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메트포민은 당화혈색소를 평균 1-1.5%정도 떨어뜨리는 데 이는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들 중에서도 가장 큰 편에 속합니다. 그리고, 메트포민은 저혈당의 위험이 거의 없습니다. 또, 2형 당뇨병 환자 중에는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분들이 많은데 메트포민은 몸무게를 줄이는 효과도 부가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메트포민은 당뇨병 환자들이 심근경색증과 같은 심순환기 질환을 발생할 위험을 낮춰줍니다. 마지막으로 메트포민은 가격이 저렴합니다.
3. 메트포민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양을 얼마나 자주 복용하나요?
메트포민은 보통 하루에 500 mg에서 2000 mg을 두세 번으로 나누어 복용합니다. 하루에 복용할 수 있는 최대 허가 용량은 2550 mg이지만 2000 mg을 넘게 되면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크게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하루 2000 mg이상 사용하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하루에 메트포민을 복용할 수 있는 총용량은 신장기능에 따라 다릅니다 (표).
표. 신장 기능에 따른 하루에 복용할 수 있는 메트포민의 양.
위 표에서 eGFR (사구체 필터 속도)은 신장기능을 나타내고 eGFR 수치가 낮을수록 신장기능이 더 낮습니다 (정상치는 90-120 ml/min/1.72 m2입니다). 하루에 복용할 수 있는 메트포민의 용량이 신장기능에 따라 다른 이유는 메트포민이 신장으로 배설되기 때문입니다. 표에서 보여주듯이 eGFR (사구체 필터 속도)가 45 ml/min/1.72 m2 이상이면 하루 2000 mg, 30-45 ml/min/1.72 m2이면 1000 mg, 그리고 30 ml/min/1.72 m2미만이면 복용하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한가지 주의점은 eGFR이 45 미만인 환자에게는 메트포민을 새로 시작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메트포민을 기존에 복용하고 있는 분이 신장기능이 떨어져 eGFR이 30-45 사이가 되면 용량을 낮춰 하루에 총 1000 mg을 복용하지만, 메트포민을 기존에 복용하지 않았던 분의 경우, eGFR이 45 미만이면 복용자체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복용하는 횟수는 메트포민의 제형에 따라 약간 다릅니다. 메트포민의 제형에는 속방정 (immediate release formulation)과 서방정 (slow release formulation)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속방정은 복용후 빨리 흡수되는 반면 작용시간이 짧습니다. 반대로, 서방정은 서서히 흡수되어 약효가 나타나는데에 시간이 좀 걸리지만 작용시간이 깁니다. 따라서, 속방정은 하루에 두 번 또는 세 번 복용하는 반면 서방정은 한 번 또는 두 번 복용합니다. 두 제형이 혈당을 낮추는 효과는 서로 다르지 않지만 서방정은 위장관 부작용의 빈도가 속방정보다 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 메트포민의 부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위장관 부작용과 젓산 산증 (lactic acidosis)은 메트포민의 가장 중요한 부작용들입니다.
1) 위장관 부작용
설사, 가스, 방귀, 메스꺼움, 구토 등은 메트포민을 복용하는 환자의 20-30%에서 나타나는, 가장 흔한 부작용입니다. 이 때 설사는 체했을 때 나타나는 물과 같은 변이라기 보다는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생기는 묽은 변에 더 가깝습니다. 이런 위장관 부작용은 메트포민을 처음 복용하기 시작했을 때 주로 나타나고 2-3주 지나면 많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 부작용들은 많은 용량을 갑자기 복용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부작용들은 메트포민을 음식과 함께 복용하면 줄어듭니다. 따라서, 주말에 일하지 않는 분의 경우, 보통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 식사와 함께 가장 낮은 용량인 500 mg으로 복용을 시작하도록 권합니다.
미리 가장 낮은 용량으로 2-3일 복용해 봄으로써 출근하기 전에 몸이 적응할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용량을 올려야 할 경우에는 매 1-2 주마다 서서히 500 mg씩 용량을 증가시킵니다. 위장관 부작용은 한 번에 복용하는 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나타나기 쉬우므로 하루 총 용량을 두세 번으로 나누어 복용하도록 권합니다. 또, 가격이 좀 더 저렴하기 때문에 속방정을 우선적으로 사용하지만 위장관 부작용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서방정으로 바꿔어 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중요한 점은 위작용 부작용은 생명을 위협하기보다는 생활에 불편한 부작용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드렸듯이 메트포민은 다른 당뇨병 치료제보다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불편하지만 2-3주 참고 견디면 위장관 부작용이 나아질 가능성이 크므로 의사의 지시에 따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젓산 산증 (lactic acidosis)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젓산 산증은 메트포민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입니다. 젓산 산증은 치사율이 50%가 넘고 무력감,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나타냅니다. 다행히, 메트포민에 의한 젓산 산증이 메트포민을 복용하고 있는 10만명의 환자당 2-5명에게만 나타날 정도로 드뭅니다.
포도당이 에너지로 쓰이기 위해 우리몸에서 대사될 때 산소를 이용하는 경로와 산소를 이용하지 않는 경로를 이용합니다. 메트포민은 산소를 이용하지 않는 경로를 좀 더 이용하게끔 하는데 이 경로에서 발생하는 물질이 젓산입니다. 따라서, 메트포민에 의한 젓산 산증은 메트포민의 혈중 농도가 크게 증가할 때 나타납니다. 그런데, 메트포민은 신장에 의해 배설되므로 젓산 산증의 위험은 신장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 높습니다 – 배설이 잘 안 되어 메트포민의 혈중 농도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장기능에 따라 메트포민의 용량을 조절하거나 중지하는 것이 메트포민에 의한 젓산 산증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또 신장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이 있으면 그에 의한 영향이 사라질 때까지 메트포민의 복용을 중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병원에서 관상동맥 조형술 (coronary angiography)을 할 때 관상동맥을 좀 더 잘 보이게 일종의 염색약인 조형제 (radiocontrast)를 투여합니다. 이 때, 이 조형제들은 신장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상동맥 조형술전 48시간, 또 시술 후 48시간 동안 등 총 96시간 (4일동안) 메트포민 복용을 중지합니다.
젓산 산증은 다른 질환에서도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간질환이나 심부전증이 잘 조절되지 않아도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질환을 가진 분들이 메트포민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동반질환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조절이 쉽지 않다면 메트포민의 복용을 중단하는 것을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또, 술을 많이 마셔도 젓산 산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메트포민을 복용하는 동안에는 되도록 금주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메트포민에 의한 젓산 산증은 흔하지 않고 대부분은 신장기능에 의해 메트포민의 용량을 조절하면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신장기능 검사를 받아 이에 따라 메트포민의 용량을 조절하는 것을 권합니다.
이외에 메트포민은 비타민 B12의 흡수를 떨어뜨려 비타민 B12부족에 의한 빈혈을 일으키기기도 합니다. 이 부작용은 메트포민을 오래 복용하는 경우에 나타나고 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메트포민을 복용하는 동안 비타민 B12를 함께 복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5. 메트포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검사들을 받아야 할까요?
당화혈색소와 혈액을 이용한 신장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당화혈색소는 메트포민이 혈당을 낮추는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메트포민을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시작하고 나서 3개월 뒤에 다시 측정합니다. 신장 기능은 보통 혈중 크레아티닌 (creatinine)의 양을 측정하여 이에 따라 eGFR를 계산함으로써 평가할 수 있습니다.
6. 메트포민을 얼마나 오래 복용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메트포민은 두 종류의 인슐린을 시작할 때까지 사용합니다. 이 때 두 종류의 인슐린이란 하루에 한 번 맞는 인슐린과 식사 전마다 맞는 인슐린을 말합니다. 이 두 종류의 인슐린은 작용 속도와 기간이 다릅니다. 어쨌든 두 종류의 인슐린을 맞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도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복용할 약의 갯수를 줄여주기 위해 메트포민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약 환자가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면 메트포민을 인슐린과 함께 계속 복용할 수 있습니다.
7. 메트포민을 하루 중 언제 복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위장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메트포민은 식사할 때 함께 복용합니다.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경우 저녁과 함께 복용하는 것을 권하고 하루 두 번 복용하는 경우 아침식사와 저녁식사와 함께 복용합니다.
8. 함께 복용할때 메트포민에 의한 효과를 줄이거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을 높이는 약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메트포민은 신장에 의해 배설되므로 신장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약은 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약들로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는 것으로는 이부프로펜, 나프록센 (naproxen) 등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들이 있습니다. 또, 앞서 말씀드렸듯이, 관상동맥 조형술을 받는 경우 시술 48시간전에 메트포민의 복용을 중단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위장약 중 시메티딘 (cimetidine)과 부정맥약 중 도페틸리드 (dofetilide)는 메트포민의 신장 배설을 방해하여 메트포민의 혈중 농도를 높일 수 있으므로 함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시메티딘은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으므로 약사와 미리 상의하시길 권합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8-10 1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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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5> 정부 의과대학 정원 증원 계획의 문제점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계획은, 2022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간 총 4000명의 의사를 더 배출하여 지역간 의사 분포의 불균형을 줄이고 필수과목, 특수 전문 분야, 의과학 분야의 전공의와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이 계획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매년, 400명 중 300명은 지역의사제 특별 전형으로 뽑고 나머지 100명 중 50명은 역학조사관, 중증 외상 등 특수 전문 분야 의사로, 다른 50명은 기초과학, 바이오, 제약 등 의과학 전공으로 나누어 선발한다.
지역의사제 특별전형으로 선발된 학생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내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과목만을 전공과목으로 선택할 수 있다.
선발된 학생들은 재학 중 장학금을 받는 대신 의사면허 취득 후 10년간 반드시 지역병원 필수의료에 종사해야 한다. 이 10년에는 전공의 수련기간도 포함된다.
만약 개인병원을 개업하는 등 지역 병원 필수의료 종사 규정을 어기면 장학금을 환수하며 면허도 취소시킨다.
정부가 16년만에 의대 정원을 늘리기로 결정한 배경은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낮고 그나마도 의사의 분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지역별 의료불균형이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구 1000명 당 OECD의 평균은 3.4명이지만 우리나라 전체 평균은, 한의사를 포함해서, 2.4명에 불과하다 (인구 1000명당 한의사 수는 0.6명이니 실제 의사 수는 2명이 채 안되는 셈이다). 또, 서울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 당 3.1명이지만, 경북 1.4명, 충남 1.5 명, 경남1.6명 등 지역별로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비록 나는 의사가 아니지만, 건강관련종사자 – 약사 – 를 길러내는 교육자와 전문직업인으로서 정부의 계획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먼저 명확하게 하고 싶은 것은 큰 틀에서 나는 의대 정원을 늘리려는 정부의 계획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의사 수는 OECD에 비해 현저히 적고 이는 의료의 질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 의료경험기에서 여러 번 지적했듯이 3분 진료로 대표되는 짧은 진료시간은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동네병원과 대학병원 모두에게 나타나는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짧은 진료시간은 근본적으로 낮은 수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수가가 높다고 하더라도 의사 한 명당 보아야 하는 환자 수가 많으면 진단이나 처방 오류의 가능성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를 위해서 의사는 환자와 다른 적절한 정보원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하며 진단과 치료에 대해 환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 양질의 의무기록을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환자 한 명당 진료에 의사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의대 증원은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에 필요한 조건 중 하나인 충분한 진료 시간을 만들어 주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첫째, 언론의 보도로는 확실하지 않지만, 특수 전문 분야와 의과학 분야로 뽑는100명의 경우, 입학할 때부터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것 같다. 만약 이것이 시실이라면, 이는 학생들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의과대학생들의 약75%가 졸업할 때, 입학할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전공을 선택한다. 이는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새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통해 자신이 평생동안 하고 싶은 분야를 새롭게 발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우리나라 의과대학생들에 대한 통계를 찾지 못했지만 미국의 의과대학생들과 크게 다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학부를 졸업해야만 지원할 수 있는 미국 의과대학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 학생들의 인생 경험이 미국보다 적다.
따라서,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도 이득이다. 만약 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한 전공이 마음이 들지 않으면 중간에 그만 둘 수 있다 - 이는 학생 자신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학생을 지원해 왔던 학교와 정부 모두에게 손실이다.
둘째,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들이 실제 독립된 의사로서 해당 지역에서 일하는 기간이 너무 짧아 보인다. 의사의 임상수련과정은 전공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의사 면허 취득 후 보통 인턴쉽 (internship) → 레지던시 (residency) → 펠로우쉽 (fellowship)의 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수련기간만 총 5-7년이 걸린다. 따라서, 10년동안의 지역병원 근무 조건에 수련기간을 포함하게 되면 수련을 모두 마치고 최소 3년만 지역에서 더 근무하는 것으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래서, 차라리 수련 지역에 제한을 두지 말고 수련 후 지역 근무 10년으로 조건을 두는 것이 의료 지역불균형 해소라는 이 제도의 목적에 좀 더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과대학 재학 중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병원에서 임상실습을 실습한다. 그런데, 병원마다 지역마다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방법 등의 의료행위 (medical practice)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이 독립된 의사가 되었을 때, 보다 넓은 관점에서 의료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 등의 수련과정을 다른 병원에서 밟는 것이 좋다. 또, 이런 경험은 학생들이 졸업 후 수련과정을 마치고 자신의 지역이나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지역의료와 병원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학생들이 자신이 졸업한 의과대학교과 다른 병원에서 졸업 후 수련과정을 밟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UCSF 의과대학 가정의학과의 일차의료 수련과정에 새로 들어온 레지던트 15명 중 UCSF 졸업생은 단 3명 뿐이다. 우리나라 대학병원도 타교 출신의 레지던트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 같으므로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들에게도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과 동일한 수련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필수의료를 전공하는 의사의 수가 줄어들고 있으므로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수련 지역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이들을 필요로 하는 다른 지역의 병원에도 도움이 되는 방법일 것이다.
물론, 지역의사제도는 지역간 의료불균형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역간 의료불균형은 경제, 문화, 교육 등의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지역간 불균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같은 지역간 전체적인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의료불균형이 완전히 시정되기는 힘들 가능성이 많다.
세째,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이 지역 병원 필수의료 종사 규정을 어기면 면허를 취소한다는 계획은 면허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독소조항일 수 있다. 면허는 기본적으로 그 소지자가 면허와 관계된 일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있어 적어도 최소한 능력 (minimum competency)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부기관이 인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 지원자는 차를 안전하게 운전하고 다니는 데 필요한 적어도 최소한의 도로교통법 지식과 운전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따라서, 면허는 그 소지자가 면허와 관계된 일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없을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운전 면허 소지자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었을 경우 혈중 알코올 농도 등에 따라 면허가 취소된다. 그 이유는 면허 소지자가 차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의사면허도 의사의 직무를 안전하게 수행할 수 없을 때에만 취소시켜야 한다 (이는 약사, 간호사 등 다른 면허에도 해당한다). 그런데,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이 지역 병원 필수의료 종사 규정을 어기는 것은 의사의 직무를 안전하게 수행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이는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시킨다.
현재 우리나라는 성추행한 의사의 면허를 취소시키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대형병원의 한 인턴은 상습적으로 여성 환자와 동료를 성추행하였지만 정직 3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병원은 이 인턴을 복귀시켰다). 지역 병원 필수의료 종사 규정을 어기는 것과 성추행 중 어떤 것이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일까? 따라서, 지역 병원 필수의료 종사 규정을 어겼다고 해서 면허를 취소시켜서는 안된다. 대신, 정부가 지원한 금액의 10배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등의 다른 벌칙을 이용하는 것이 면허제도에 부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의 큰 문제점 외에도 앞으로 10년동안 각각 500명의 인원이 배출될 특수 전문 분야과 의과학 전공자들의 일자리가 충분히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의대 증원은 우리나라 의료의 질을 더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므로 앞으로 입법과정에서 충분한 준비와 토론으로 제기된 여러 가지 우려 사항을 보완하여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를 기원한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7-27 1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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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4> 건강보험이 한약 첩약을 지원해 주는 것에 대해
최근 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금년 10월부터 3년동안 한방 첩약을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건강보험은 모든 첩약에 대해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 질환 후유증 등 3개 질병의 치료에 쓰이는 첩약에 대해서만 지원할 계획이다. 또, 지원 기간도 제한되어 있어서, 환자 1명 당 1년에 한 번, 10일치의 첩약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이를 경제적 효과로 환산하면, 각 질병당 환자는 1년에 7-8만원 정도 첩약값을 절약할 수 있다. 환자들이 건강보험의 지원을 받아 경제적인 혜택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번 계획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첫째,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기간이 너무 짧다.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 질환 후유증 같은 질병은 만성질환이다. 따라서, 이런 질환을 치료, 조절하기 위해서 환자는 장기간동안 약을 복용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건강보험은 첩약을 10일치 분에 한해 일 년에 일 회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즉, 환자는 첫 10일 이후의 첩약값을 모두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건강보험의 계획은 1회용 상품 할인 쿠폰 (Coupon)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Netflix를 가입하면 첫 달의 멤버쉽 (membership)은 무료지만 이후부터 가입자는 매달 멥버쉽 비용을 내야 한다. 건강보험의 첩약에 대한 지원 계획은 한 달이 아니라 10일로 더 짧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하면, 보험이라기 보다는 1회용 할인 쿠폰인 것이다. 또, 이것은 한의사가 첩약에 대해 손님을 끄는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마치 Netflix가 가입자에게 첫 한 달을 무료로 이용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가입을 중단할 수 있게 만들었듯이 한의학적인 필요와는 별도로 한의사는 첫 10일은 할인을 받으니 일단 복용해 보고 효과가 없으면 중지해도 된다고 첩약을 환자에게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 계획은 건강보험의 재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건강보험의 재원은 국민들이 낸 돈으로 마련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재원은 꼭 필요한 곳에 투입되어야 한다.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 질환 후유증에 대한 첩약은 국민들 사이에 인기가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재원이 필요한 곳으로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치료방법과 건강보험의 재원이 필요한 곳은 반드시 동일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피로회복 등을 위해 박카스와 같은 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것은 국민들 사이에 인기가 있지만 건강보험은 이를 지원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것이 피로회복 등에 효과가 있는 지 임상시험 (clinical trial)을 통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재원은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이 뒷받침된 곳에 사용되어야 한다.
비록 한방의 첩약은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지만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받지 못했다. 오랫동안 사람을 대상으로 사용해 왔으니 검증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임상시험을 통한 검증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보겠다. 폐경기이후 여성은 몸이 화끈거리는 증상 (hot flash)이 나타나거나 골다공증에 쉽게 걸린다. 이런 증상은 에스트로겐 (estrogen)의 양이 줄어 들어 나타나므로 이를 치료하는 방법은 – 당연히! - 에스트로겐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 과거에 에스트로겐을 사용한 폐경기 여성들을 살펴 보니 이들에게 심장마비, 뇌경색 등 심각한 심혈관기 질환이 적게 나타나는 것이 관찰되었다. 그래서, 한 때 에스트로겐은 폐경기 여성들에게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데, 무작위 (random)로 환자를 배정한 임상시험을 통해 에스트로겐과 위약의 안전성과 효과를 비교해 보니 에스트로겐은 위약보다 심장마비, 뇌경색 등 심각한 심혈관기 질환의 위험을 오히려 증가시켰다. 즉, 그동안의 경험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인 것이다. 그러면, 왜 임상시험 결과은 그동안의 치료 경험과 다른 결과를 내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점 두 가지만 들기로 하겠다.
1) 임상시험은 무작위로 환자를 배정하기 때문에 치료방법의 효과와 안전성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무작위로 환자를 배정하는 것은 치료방법의 효과와 안전성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데에 중요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무작위 배정 방법은 효과가 있을 만한 환자들을 특정한 치료방법에만 배정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치료방법 중 어떤 것이 질병 X에 대한 사망률을 더 낮추는 지 비교한다고 하자. 이 때, 질병X의 초기단계인 환자들은 A라는 치료방법만을 쓰고 말기단계인 환자는 B라는 치료방법만을 쓰면 A 치료방법의 효과가 더 좋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무작위로 환자를 배정하면 두 치료방법에 초기와 말기인 환자들이 골고루 분포하게 되어 두 치료방법을 공정하게 비교할 수 있다. 반면, 치료경험은 의사가 환자를 무작위로 배정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또, 어떤 의사가 시행한 치료방법으로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는 그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의사는 효과를 본 환자들만 가지고 치료방법의 효과를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즉, 임상상의 치료경험만으로는 치료방법을 공정하게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2) 임상시험은 위약효과 (placebo effect)를 보정하여 치료방법의 효과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위약효과란,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동안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효과를 보는 것을 말한다. 위약효과는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많게는 50-75%의 환자들에게 나타난다. 따라서, 어떤 치료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위약 효과를 보정해야 한다. 또, 많은 질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나아지기도 한다 (암 중에도 이런 경우가 꽤 있다). 즉, 자연치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이 치료와 무관하게 자연적으로 좋아지는 것도 보정해야 한다. 이를 보정하는 방법은 치료방법을 위약 (placebo)군과 비교하는 것이다. 이 때, 위약은 효과가 있을 만한 성분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즉, 가짜 약인 것이다. 임상시험은 보통 무작위로 환자를 새로운 치료방법군과 위약군에 배정하여 효과와 안전성을 비교한다. 만약, 새로운 치료방법을 받은 환자들이 보인 효과가 위약을 받은 환자들과 다르지 않다면 새 치료방법은 효과가 없는 것이다. 또, 새 치료방법이 위약보다 효과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심각한 부작용을 나타내면 환자들에게 널리 사용하기 힘들다. 이처럼, 임상시험은 치료방법을 위약과 비교하기 때문에 치료방법이 위약효과와 자연치유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검증할 수 있다. 반면,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에는 위약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관찰된 효과가 위약 효과와 자연 치유 때문인지 알기 힘들다. 즉, 자연적으로 치유되더라도 치료방법의 효과로 오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무작위로 환자를 배정하여 위약군과 비교한 임상시험은 치료방법에 대한 효과와 안전성을 경험보다 더 공정하고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 즉, 임상시험의 결과가 치료경험보다 신빙성이 더 높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미국 산부인과학회는 에스트로겐을 모든 폐경기의 여성에게 권하지 않는다. 에스트로겐이 경험적으로 안전해 보였는지 몰라도, 임상시험 결과, 안전하지 않은 것 – 심순환기 질환 발병의 증가 - 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수천 년동안 사용해 온 경험도 중요하다. 하지만, 경험은 치료방법이 효과적이고 안전한 지에 대한 검증의 수단으로 부족하다. 또, 에스트로겐을 폐경기 여성에게 사용하는 예에서처럼, 경험에 의존하면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임상시험 증거가 부족하고 환자에게 해를 끼칠 지도 모르는 치료방법을 국민이 피땀흘려 마련한 돈으로 건강보험이 지원해 주어야 할까? 대신, 오랫동안 사용해 온 치료방법을 검증할 수 있도록 그 재원을 임상시험에 지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 치료방법이 효과적이고 안전하다는 것이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되면 그 때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도 늦지 않다. 또, 1회용 할인 쿠폰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질병이 조절되도록 충분히 오랜 기간 동안 지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6-29 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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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3> 코로나바이러스와 대학교육
코로나바이러스와 대학교육
“이번 주로 재택 명령이 시작된 지 8주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입원환자 수가 줄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업무 재개 계획을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누어 준비 중입니다.
먼저, 지금부터 6월말까지인 단기 계획을 알려 드립니다. 일단, 5월말까지로 발효된 시 당국의 재택 명령를 따르고 6월에는 일부 업무 재개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업무를 재개해도 수업은 계속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중기는 7월부터 금년 12월말까지로 잡습니다. 상황을 보아야 하겠지만 현재 계획은 중기에도 수업을 계속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단, 소규모 실습 수업은 대면 수업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장기인 내년 1월부터 6월은 상황이 유동적이라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 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이 지속되면 온라인으로 수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지난 3월 17일의 재택 명령이후 매주, 학장은 학교 상황을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화상통화 프로그램인 줌 (Zoom)을 이용하여 업데이트해 주고 있다. 지난 5월 7일에는 교육과 관련된 학교의 업무 재개 준비와 계획에 대해 알려 주었다.
단기인 6월말까지 온라인으로 수업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는 것은 예상한 일이었다. 사실, 6월 초에 2019-2020년도 학사 일정이 끝나기 때문에 (미국은 일년 학사 일정이 9월 가을 학기에 시작하여 다음해 5-6월에 마친다) 6월말까지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학교의 계획은 실제 수업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런데, 12월말까지 온라인으로 수업을 계속 진행한다는 계획은 예상밖의 결정이라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를 그동안 잘 막아 왔던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환자의 수가 이태원 클럽, 쿠팡 등을 통해 최근에 갑자기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지금은 잠잠하더라도 언제든지 갑자기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교직원, 학생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한 학교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난 골치가 아프려고 해.”
학교의 계획을 들은 동료 교수 Y가 이메일을 내게 보냈다. 교수 Y는 7월말부터 시작하여 10월 중순까지 지속되는 1학년의 첫 코스를 담당한다. 대면 수업을 전제로 미리 세워 두었던 교육 계획을 지금 갑자기 바꾸어야 하니 골치 아픈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Y교수만 골치 아픈 것이 아니다. 나도 그렇다. 10월말부터 시작하는 1학년의 두 번째 코스를 담당하는 나는 Y교수보다 상황이 좀 낫지만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온라인으로 교육하는 코스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리 학교는 지난 3월 초부터 모든 수업을 Zoom을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진행해 왔다. 3월과 4월에 학생들 교육을 담당한 교수들에 따르면 Zoom을 사용한 온라인 수업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른 대학교에 다니기는 하지만 집에서 Zoom으로만 수업을 받고 있는 내 아들도 수업의 질이 괜찮다고 말한다). 오히려 학생들의 수업 출석률과 참여도가 대면수업을 할 때보다 늘었다고 한다.
특히, 높아진 참여도 때문에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 정리해서 수업 말미에 교수에게 알려 주는 조정자 (moderator)가 필요할 정도였다고 한다. 얼굴을 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 속성상 모르는 것을 물어 볼 때 느낄 수 있는 부끄러움이 대면수업보다 덜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좀 더 편하게 질문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업들은 강의 (lecture)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뒤집어 교실 (flipped classroom)이라는 수업 방법을 주로 이용하는 내 코스에 Zoom을 사용하는 방법이 잘 적용될 지 좀 우려된다. 왜냐하면, “뒤집어 교실”의 수업 방법은 교실 수업이 강의가 아닌 토론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 토론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코스를 듣고 있는 약 130명의 학생들을 30개 정도의 소그룹으로 나누어 토론을 진행한다.
따라서, 온라인으로도 토론이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Zoom이 소그룹 토론을 잘 뒷받침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Zoom에는 Breakout Room이라는 기능이 있어 소그룹 토론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기능이 뒤집어 교실이라는 독특한 토론 수업 형식에 맞을 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온라인 교육의 또 다른 문제점은 시험이다. 우리 학교는 2014년부터 종이 시험을 주지 않고 ExamSoft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컴퓨터로 시험을 시행해 왔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교육이 전환된다 하더라도 시험을 시행하는 방법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문제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감독관의 감독하에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혼자 시험을 본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부정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 ExamSoft는 몇 가지 방법을 쓴다. 먼저, 프로그램에 사진이 미리 등록된 사람만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시험 중에는 수험생 컴퓨터의 카메라와 마이크를 사용하여 수험생의 눈동자와 몸의 움짐임, 소리를 녹화, 녹음하고 인공지능을 동원해서 감시한다. 하지만, 최신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이러한 방법들도 부정행위를 완벽하게 방지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많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A, B , C, D, F 학점이 아닌 통과/비통과 (pass/no pass)로만 성적을 매기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점을 높이려고 부정행위를 할 가능성은 낮다.
대면수업을 전제로 설계된 기존의 대학 교육을 온라인으로 갑자기 바꾼다는 것은 교수, 교직원, 학생들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안전이 우선이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수 밖에 없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없었던 내가 대학교를 다녔던 90년대 초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휴학밖에는 방법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온라인으로라도 수업을 전달하고 받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아직 내 코스를 시작하기까지 약 반 년의 시간이 남아 있으니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그동안 잘 준비해야 겠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6-01 1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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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2> 미국 정부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이 실패한 이유
“저에게는 책임이 전혀 없습니다 (I don’t take responsibility at all).”
이 말은 지난 3월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코로나바이러스 테스트가 미국에서 아직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대통령의 책임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묻자 트럼프의 답변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무책임한 대답이 왜 미국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응에 실패했는지 설명해 준다고 난 생각한다.
지난 1월부터 3월 중순까지 트럼프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유행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하면서 이들의 경고를 “민주당이 만들어 낸 공갈”, “주류 언론이 지어낸 가짜 뉴스”라면서 오히려 이들을 공격해 왔다. 그리고, 1월 말, 보건부 장관이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에 대한 대응 준비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그를 군걱정을 하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미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는 잘 조절되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4월이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라고 말하는 등, 국민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자신이 재선되어야 할 가장 큰 근거로 삼았던, 그동안 고공행진해 오던 주가가 연일 폭락하자 그는 결국 3월 13일 코로나바이러스가 국가 위기 (National Emergency)라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자신의 재임중에 일어난 국제 건강 안보팀 (Global Health Security Team)의 해체를 자신은 몰랐으며 테스트 키트의 개발과 공급이 지연된 데에 대해 자신은 하나도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던 것이다.
미국에는 연방정부 기관인 질병 통제 센터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 식약청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 등 여러 연방기관들 뿐만 아니라 주정부 산하의 보건부 등 다양한 기관들이 감염증의 유행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데에 관여한다. 이처럼 여러 기관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이들의 역할을 조절하고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2014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 (Ebola virus)가 바다 건너 미국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을 경험한 오바마 행정부는 2016년 국가 안보 회의 (National Security Council) 산하 국제 건강 안보팀라는 것을 만들어 해외에서 발생한 감염증의 유행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컨트롤 타워를 백악관내에 마련했다. 그런데, 2018년,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었던 존 볼턴 (John Bolton)의 건의를 받아 들여 트럼프는 이 팀을 해체해 버렸다. 여러 기관들의 역할을 조율하고 조절해야할 컨트롤 타워가 없기 때문에 감염증 유행을 조절하고 통제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기구인 테스트 키트 (test kit)의 개발과 생산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은 세계보건기구가 승인한 독일에서 만든 테스트 키트를 사용하기보다는 자체적으로 제조 생산하는 것을 고집했다. 그동안 새로운 감염증이 나타나면 해 왔던 것처럼, CDC가 테스트 키트를 만드는 것을 처음에는 주도했다. 그런데, 2월 중순, CDC가 개발해서 각 주에 배포한 테스트 키트가 부정확한 결과를 낸다는 것이 밝혀졌다 (시약 중 하나 – 정확하게는 네거티브 콘트롤 (negative control) 중 하나 - 가 생산과정에서 바이러스에 오염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테스트 키트의 사용이 지연되자, 2월말, 연방정부는 각 의료기관이 개별적으로 테스트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또, FDA와 테스트 키트 제조회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왜냐하면, 테스트 키트의 개발이 지연되는 사이, 코로나바이러스는 미국내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전세계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환자와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 4월 30일 현재, 미국에서 백만명 이상의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전 세계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수의 약 3 분의 1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 수보다 더 많은 6만 여명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했다. 그동안 미국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지연시키고자 40여개 주들이 자택 대비 (shelter-in-place) 나 재택 (stay-at-home)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수퍼마켓, 약국 등 주민들의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점을 제외한 다른 상점들의 영업이 금지되어 지난 6주동안 약 3천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수당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 숫자는 지난 10년 동안 경제성장으로 창출해 낸 일자리 숫자와 맞먹는 숫자이니 지난 10년 동안의 경제적인 성과를 단 6주만에 허물어뜨린 셈이다.
이상에서 보듯 미국은 지도자의 리더쉽 (leadership) 부재와 이에 따른 연방정부의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이런 위기 상황을 돌파하려면 우선 지도자가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하는 데 자신은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하고 있으니 이 위기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자택대피나 재택 명령을 안전하게 풀기 위해서는 검사, 추척, 격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여전히 검사조차 원활히 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테스트 키트와 검체 채취에 필요한 도구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감염된 환자가 접촉한 사람들을 추척하는 인력도 크게 부족하다 (1800명의 추적인원을 동원한 중국 우한시의 예를 보았을 때 미국에는 삼십만명의 추적 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검사, 추척, 격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연방정부가 주도해야 하지만 트럼프는 이를 주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대신 트럼프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는 살균제 주사와 같은 치료방법을 제안하여 국민을 혼동에 빠뜨리고 있다.
인적. 물적. 기술적 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위기에 봉착한 미국. 미국의 사례는 지도자의 리더쉽이 위기 상황을 방지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필자소개>
-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5-06 1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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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1> 샌프란시스코로 찾아온 코로나바이러스
“3월에 예약된 환자들 중 꼭 보아야만 하는 환자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전화 진료로 바꾸든지 아니면 예약을 연기하도록 하세요.”
지난 3월 6일, 팀허들 (team huddle)에 온 가정의학과 클리닉 디렉터가 팀원들에게 직접 지시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라 난 깜짝 놀랐지만 이유를 듣고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크게 유행할 것 같습니다. 가정의학과로 방문한 환자들 중에서는 아직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없었지만 곧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병원의 클리닉 디렉터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한 결과, 환자들간의 감염 위험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병원으로 오는 외래환자 수를 줄여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면진료를 피하고 당분간 전화진료로 바꾸거나 아예 대면진료 예약을 연기해 주면 좋겠습니다.”
가정의학과 의사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주치의라고 불리는 일차의료제공자 (primary care provider) 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정기적인 건강검진 (health check-up)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의 치료를 위해 방문하는 환자들을 본다. 그런데, 이 환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고령이거나 고혈압, 당뇨병 등 기저 질환을 가지고 있다. 이런 환자들이 클리닉에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와 접촉하게 되면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노출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여러 클리닉에 방문하는 외래환자 수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클리닉 입장에서 보면, 외래환자 수를 줄이면 수입이 줄어든다. 절충안으로 환자 수를 줄이지 않고 대신 손 세정제를 더 비치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환자의 건강을 위해 병원의 클리닉 디렉터들은 환자 수를 줄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진료예약을 연기하는 경우, 아직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5월달이나 그 이후로 잡도록 하세요.
진료실에 돌아오니 가정의학과 클리닉 디렉터가 보낸 이메일이 와 있었다. 허들때 발표된 내용을 다시 글로 정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클리닉에서 진료예약을 도와 주는 여러 스태프 중 누가 내 클리닉의 진료예약 변경을 도와줄 것인지, 어떻게 진료예약변경을 이메일로 지시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진료예약변경을 완료해야 하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오랫동안 예정되어 있거나 일상화된 일들을 갑작스럽게 바꾸게 되면 관련된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기 쉽다. 지난 10년간 내 클리닉은 매주 금요일에 있어 왔고 난 클리닉에서 환자를 볼 때 90%이상 대면진료를 해왔다. 또, 이번달에 예약된 환자들 중 지난해 10월에 예약된 환자들도 있다. 환자들의 예약을 5월 이후로 변경하거나 대면진료를 전화진료로 바꾸라고 갑자기 요구하게 되면 나나 환자나 모두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정의학과 클리닉에는 내 클리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개의 클리닉이 있다. 이 모든 클리닉이 갑자기 진료방법과 예약을 바꿔야 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사람들과 명확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그래서, 난 클리닉의 수뇌부가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말과 글로 최대한 명확하게 소통하도록 노력하려고 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내 클리닉의 진료 예약 변경을 위해 지정된 스태프에게 이메일을 보낸 다음, 난 복도에서 우연히 동료약사인 B를 만났다.
“B약사님, 진료예약 다 바꾸셨어요?”
“아니. 난 환자가 좀 많아서 시간이 좀 걸려.”
“사태가 빨리 진정되었으면 좋겠어요.”
“피크가 지나야 수그러들지. 이제 시작도 안 했는데.”
B약사는 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라 불리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후천성면역결핍증 (AIDS; 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이 1980년대에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HIV에 감염된 환자들을 돌보아 오고 있다. HIV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심지어 신의 저주를 받은 병이라고까지 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느끼는 공포처럼 당시에는 HIV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HIV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병에 대해 훨씬 잘 이해하게 되었고 HIV에 효과적인 약물들도 많이 개발되었다. 그래서, 지금 HIV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약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만성질환으로 취급되고 있다.
작년에 처음 나타난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에 의한 감염증도 몇 년 뒤에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HIV처럼 사람들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은 감염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니 감염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제 유행이 시작했다면 언제 끝날 수 있을까? 5월에는 클리닉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필자소개>
-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4-02 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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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0>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 과정에서 배워야 할 교훈 하나
“약사님, A약사가 좀 전에 전화했어요 - 감기로 클리닉에 못 온다고.”
클리닉을 시작하기 전에 열리는 팀 허들 (team huddle)이라고 불리는 모임에서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내게 알려준다. 팀 허들은 하나의 팀으로 외래 클리닉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환자를 만나기 전에 갖는 모임이다.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에 있는 내 클리닉은 가정의학과 (Family Medicine) 소속이다. 그런데, 가정의학과에 속한 외래 클리닉이 많기 때문에 이를 몇 개의 팀으로 나누고 있고, 이 중 내 클리닉은 파랑팀 (Blue team) 소속이다. 이 파랑팀은 가정의학과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약사, 진료 예약 받는 사람 등 여러 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환자를 효율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팀원들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므로 팀원들은 매일 클리닉을 시작하기 전에 모임을 갖고 있고 이를 허들이라고 부른다.
이 허들 모임에서 이야기되는 사항으로는 당일 팀에 할당된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수, 진료전에 특별한 검사나 준비가 필요한 환자 이름, 당일 아침 전화로 급히 병가를 낸 팀원에게 진료예약이 되어 있는 환자를 어떻게 할 지 등등이다.
A약사와 나는 같은 팀 소속이고 같이 동료로서 일하기는 하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클리닉을 운영한다. 그래서, A약사와 내게 진료예약된 환자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오늘 아침 A약사가 감기로 클리닉에 올 수 없다고 전화를 한 것이다 - 환자와 다른 팀원들과 대면접촉하면 감기를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A약사에게 몇 명의 환자가 진료예약되어 있어요?”
“오전에 8명. 일단, 진료예약 업무를 처리하는 B씨가 A약사에게 진료예약된 환자들에게 전화해서 가능하면 예약을 취소하거나 다른 날로 옮겨 보도록 해요. 만약 연락이 닿지 않거나 오늘 꼭 보아야 하는 환자들이 있다면, 약사님이 이분들을 보실 수 있겠어요? 필요하면 A약사에게 배정된 진료실을 써도 돼요.”
내 클리닉에 오늘 오전에 예약된 환자 수는 8명으로 빈자리가 없었지만 팀과 환자들을 위해서 더 볼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A약사에게 배정된 약대에서 온 실습학생이 두 명 있는데 약사님이 그 학생들도 지도할 수 있겠어요?”
내게도 따로 배정되어 지도해야 하는 약사 레지던트가 있었지만 학생들의 실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프리셉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두 학생도 같이 지도하기로 했다. 그런데, 보아야 할 환자 수가 갑작스럽게 불어난 데다 환자 보는 데에 아직은 서툴 지 모르는 학생들까지 지도하게 되어 환자의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실수를 할까 봐 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A환자에게 진료예약된 8명 중 6명의 예약을 변경할 수 있어서 2명만 더 보면 되었다. 이 두 환자들도 항응고제인 와파린 (warfarin)의 용량 조절을 위한 진료였는데 검사결과가 좋아서 진료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또, 세 명의 수련생들 – 약사 레지던트, 2명의 약대생 – 도 클리닉 상황을 이해하고 모두 열심히 일해 주어 클리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약사 레지던트가 약대생들이 환자 보는 것을 지켜보고 도와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감기와 같이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호흡기 질환은 쉽게 다른 사람을 전염시킨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손을 자주 씻는 등의 개인위생수칙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주변에 전염성이 강한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으면 아무리 개인위생 수칙을 철저하게 실행한다 하더라도 이를 완벽하게 예방하기 힘들다.
그래서, 전염을 막기 위해서는 환자들의 도움 -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 다른 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스스로 피하도록 하는 “자가격리” - 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염이 강한 질병을 가진 환자가 스스로 “자가격리”를 실행하며 이를 도와주고 이를 격려하고 지원해 주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의심스러운 증상이 있던 한 환자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 예배 등에 참석하면서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된 것 같아 더욱 그렇다.
설사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이 아니라 단순 감기였을지라 하더라도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밀접접촉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전염시켜 고생시킬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환자 자신의 자가격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환자가 자가격리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이를 격려하고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환자가 자가격리를 하고 싶어도 급여에 손해를 보거나 조직의 멤버쉽을 유지할 수 없는 등의 불이익을 받는다면 환자는 이를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자가격리로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이를 메꾸기 위해 다른 사람이 더 일을 해야 하는 등 조직에 예상치 않았던 부하가 더 걸릴 수 있다.
위에 기술한 클리닉의 예처럼, A약사가 병가로 나오지 못하게 되어 내가 더 일을 해야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좀 더 크게 본다면, 자가격리는 조직에 궁극적으로 더 이득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자가격리를 하게 되면 환자는 집에서 휴식을 하게 되어 빨리 나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약사가 출근해서 진료한 환자와 같이 일하는 다른 동료들을 감염시키면 이를 치료하는데 비용과 시간이 들게 된다. 또, 아픈 상황에서 진료하게 되면 실수를 할 확률도 높아진다. 따라서, 자가격리가 조직에는 단기적으로 손해로 보일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이익일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수그러들어도 호흡기로 전염되는 새로운 감염성 질환은 앞으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마치 사스 (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다음에 메르스 (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나타났고 그 다음에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이 생겼듯이 말이다.
하지만, 호흡기로 전파되는 새로운 감염성 질환이 출현하더라도 증상이 있으면 환자는 자가격리하며 사회가 이를 격려하고 지원한다면 이의 확산을 줄이고 막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3-04 1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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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9> 표절과 대학의 윤리적 기준
작년 5월, 한창 내가 맡은 코스를 진행하고 있을때, 캐나다에 있는 한 약대의 학장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교수님, 지난 3월에 저희 학교 교수인 Dr. E가 교수님의 슬라이드 사용건으로 연락드린 일이 있었지요. 그 때, 슬라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 사용건에 대해 제가 전화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내일 하고 싶으니 언제 시간이 되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몇 년전 내가 미국내 학회에서 구두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발표 슬라이드를 학회에 제출했었는데 이 슬라이드가 여전히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를 발견한 Dr. E가 자신의 코스에 이 슬라이드를 쓰고 싶다고 요청해 와서 지난 3월 승낙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학장이 통화하고 싶다고 할까?
아무 조건 없이 단번에 승낙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학장과 통화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더군다나 코스 때문에 바빠서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은 일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 일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한 달 뒤에 학장으로부터 다시 이메일이 왔다.
“교수님, 내일이나 다음 주에 저와 통화할 수 있으신지요?”
벌써 두 번째 이메일인데다 상대가 학장이고 지난 번에 답장을 보내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첫번째 이메일에 대해 답장을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리고 통화가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보내 주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네, 안녕하세요 학장님.”
“제가 왜 통화를 하자고 했는지 궁금하시죠?”
“네.”
“먼저 Dr. E가 교수님의 슬라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Dr. E가 교수님의 슬라이드를 승낙받기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알려드리고 사과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학생들에게 교수님께 승낙받기 전에 사용한 슬라이드들을 모두 지우라고 지시했고, Dr. E에 대해서도 학교차원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비록 내가 승낙하기 전에 슬라이드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결국 승낙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어차피 승낙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학교일로 바쁜 학장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시켜 연락하고 사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승낙을 받았건 안 받았건 승낙을 받기 전에 사용한 것은 윤리적 기준을 어긴 것이고, 이에 대해 학교를 대표하는 학장이 직접 나서 설명하고 사과하는 것으로 보아 이 학교는 표절에 대한 높은 윤리적 기준을 교수와 학생들에게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학교는 표절 (plagiarism)에 대한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학이 생산해 내는 것이 주로 지적 재산이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 말, 저작을 사용 허가 받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고 마치 자신의 것인양 사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도둑질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논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보듯 교육자료, 과제물 등 모든 것에 적용된다.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 대학에서는1학년 신입생때부터 표절을 포함한 academic integerity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예를 들어, 최근 대학을 들어간 내 아들에 따르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academic integrity에 대한 강의를 듣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서 낸 다음 동료학생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문학 (Humanities) 코스 수업 때 따로 두 번 - 코스 시작전과 마지막 학기말 과제 제출전 – 표절에 대한 교육을 더 받았다고 한다. 우리 학교도 약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academic integrity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 표절에 대한 징계는 매우 무겁다. 몇 년전 우리학교 약대 학생이 다른 학생의 것을 일부 베껴서 과제물로 제출한 것이 발견되었다. 이에 대한 징계로 그 학생은 F학점을 받았고, 이 때문에 그 과목을 1년 뒤에 다시 들어야만 했으며 졸업도 1년 더 늦어졌다.
Academic integrity는 대학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사용할 때에는 먼저 승낙을 받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높은 윤리적 기준이 필요하고 구성원들은 이를 따라야 한다. 위의 캐나다 약대의 예처럼.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2-04 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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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8>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복처방
“형, 항응고제를 과다 복용하면 어떤 문제가 생겨?”
얼마전, 한국에 있는 친척동생이 문자를 보내왔다.
“왜?”
“아버님이 숨차고 힘들어하셔서 대학병원 응급실에 왔어. 그동안 드시고 계신 약들을 내가 알아 보다가 아버님이 지난 8일 동안 프라닥사와 엘리퀴스를 이중으로 복용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출혈은 없으시고?”
“응, 없어. 그런데, 항응고제를 이중으로 복용하셔서 걱정이 되어서.”
친척동생의 아버님은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고 심방세동의 병력을 가지고 계시다. 심방세동이 혈전에 의한 뇌경색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항응고제가 심방세동의 치료로 쓰인다.
프라닥사 (Pradaxa) 와 엘리퀴스 (Eliquis)는 모두 항응고제이다. 우리나라의 일반명으로 다비가트란 (dabigatran; 영어로는 대비가트란이라고 읽는다)이라 불리는 프라닥사와 아픽사반 (apixaban; 영어로는 애픽사반이라고 읽는다)이란 일반명을 가진 엘리퀴스는 모두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항응고제들로 모두 심방세동을 적응증으로 갖고 있다.
비록 두 약이 약간 다른 방법으로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지만, 두 약을 같이 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출혈의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항응고제를 고위험약 (high risk medications)으로 따로 분류해서 처방과 조제과정에서 좀 더 주의를 기울인다.
“신경외과, 심혈관센터, 환자간 커뮤니케이션이 엉망이 되어서 8일동안 과다 복용하셨어; 기존에 드시던 엘리퀴스가 남아서 복용하고 계셨는데, 심혈관센터에서 프라닥사를 또 처방한 거야. 아버님은 그걸 모르고 다 복용하셨고. 그래서, 내가 응급의학과 의사한테 물었더니 좋을 건 없는데 자기는 확실히 모르겠다라고 하더라고. 그 의사는 그냥 기존에 드시던 엘리퀴스만 폐기하라고 했어.”
친척동생의 아버님은 금년 초에 뇌경색으로 입원하신 적이 있다. 아마 그 때 신경외과에서 엘리퀴스를 처방한 모양이다. 그런데, 심장질환 때문에 심혈관 센터를 방문하셨는데 그 때 프라닥사가 처방된 것 같다. 그러면서 환자에게는 처방이 바뀌었다는 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위험한 약 두 개를 동시에 복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대략 두 가지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중복처방이다. 이처럼 중복처방이 일어나는 데에는 약의 처방, 교부, 복용 과정에서 틈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가 새로운 약을 처방하기 전에 환자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되었을 수 있다. 또는, 환자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확인했더라도 환자에게 뚜렷하게 지시 – 엘리퀴스는 더 이상 복용하지 말고 프라닥사만 복용 - 가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다. 특히, 노인의 경우, 이해력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새로운 지시사항을 말로만 전달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지시사항을 글로도 함께 적어 주어야 한다. 또, 환자에게 지시 사항을 말로 되풀이 하도록 해서 환자가 지시사항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 (이를 teach-back이라고 부른다)이 생략되었을 수 있다.
약국에서 처방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항응고제의 중복처방이 있다는 것을 놓쳤을 수 있다. 또는, 중복처방을 확인했더라도 환자에게 다시 확인하는 과정 - 엘리퀴스는 더 이상 복용하지 말고 프라닥사만 복용하시도록 – 을 거치지 않았을 수 있다.
중복처방은 전산 시스템으로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으므로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병원과 약국 컴퓨터가 심평원에 직접 연결이 되어 환자의 약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즉, 의사가 새로운 약을 처방하려고 입력하거나 약사가 약을 청구할 때, 지난 1년간 비슷한 계열이나 적응증을 가진 약이 처방되었으면 경고 화면을 뜨게 해서 의사와 약사로 하여금 다시 확인하게 한다면 중복처방을 많이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환자가 의사를 방문할 때 복용하고 있는 약을 모두 가지고 오게 한 다음, 새로운 약을 처방할 때 기존에 복용해 오던 중복되는 약을 아예 환자로부터 뺏어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약의 선택에 관한 것이다. 비록 엘리퀴스와 프라닥사의 적응증이 같기는 하지만, 적어도 미국에서는 엘리퀴스를 선호하고 있다. 먼저, 임상시험 결과를 보자. 두 약이 직접적으로 비교된 적이 없기 때문에 와파린 (warfarin)과 비교한 두 임상시험 결과만을 보기로 하겠다.
와파린은 두 약이 허가받기 전에 심방세동에 널리 쓰이던 항응고제다. 심방세동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두 약은 모두 와파린보다 출혈의 위험을 더 낮추었기 때문에 두 약의 출혈 위험은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리퀴스는 중풍이나 혈전증의 위험을 와파린보다 더 낮춘 반면 프라닥사는 용량에 따라 그 결과가 달랐다.
친척 아버님이 처방받은 용량인 프라닥사 110 mg의 효과는 와파린과 비슷한 정도였으므로 엘리퀴스의 중풍과 혈전증에 대한 예방효과가 더 좋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엘리퀴스는 출혈외에 특별히 다른 부작용이 없는 반면, 프라닥사는 출혈외에도 속을 거북하게 하는 부작용이 더 있기 때문에 부작용 측면에서도 엘리퀴스가 유리하다. 두 약 모두 하루에 두 번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 편의성은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친척 아버님이 엘리퀴스에서 프라닥사로 바꾸어야 할 이유가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그 이후, 그 친척 동생으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형, 아버님이 최근에 새로운 처방전을 받았는데 너무 약을 많이 드시고 계신 것 같아. 약을 좀 봐 줄 수 없을까 해서 연락해.”
처방전을 살펴 보니 다음과 같은 두 약이 있었다.
트라린 정 50 mg (설트랄린; sertraline)
졸로프트 50 mg (설트랄린; sertraline)
또 다른 중복처방. 친척동생에 따르면 하나는 신경정신과에서, 다른 하나는 심혈관 센타에서 처방받은 것이라고 한다. 한 달전에 일어났던 항응고제 처방과 똑같이, 다른 과에서 같은 계열 또는 같은 약을 중복처방해서 벌어진 일이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의사회, 약사회, 정부가 함께 중복처방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빨리 마련해야 할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1-02 0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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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7> 황당한 치과의사
“여보, 당신한테 황당한 편지가 왔어.”
아내가 들어 오면서 내게 편지를 건네 주었다. 발송인을 보니 2주전에 치석 제거 (teeth cleaning; 우리말로는 스케일링)를 위해 방문했던 치과였다.
‘친애하는 미스터 _.
저는 치료하는 환자들과 좋은 의사-환자 상호 관계를 맺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저는 당신과 이런 관계를 맺지 못한 것으로 믿습니다.
당신의 진료기록을 보니 아직도 치료받지 못한 치아가 몇 개 있습니다.
치료를 계속 미루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어서 더 비싼 치료를 요하게 되며 치료를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고 치통도 생기고 결국은 이빨을 잃고 말게 될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치과 치료가 당신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저희 치과 대신 다른 치과로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이 요구한다면 저희가 가지고 있는 엑스레이 결과를 포함한 진료기록을 당신이 원하는 치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다른 치과로 옮기는 데에 필요한 시간을 드리기 위해서 앞으로 30일의 기간 동안 당신이 저희 치과에서 응급 치료는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다른 치과를 찾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당신의 치과 보험에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치료가 지연되면 될수록 이빨은 더 썩을 것이고 이로 인해 이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닥터 매트 키이스크’
비즈니스 편지라 점잖게 말하고 있지만 요지는 권하는 치료를 받지 않아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자기 치과에는 더 이상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상업화된 미국 치과 의료계의 갈 데까지 간 모습인 것 같다.
난 이 치과에 두 번 - 2018년 3월과 2019년 2월 - 방문했었다. 모두 치석 제거를 위해서였다. 2018년에 처음 방문했을 때, 모든 새 환자들에게 하듯이, 치석 제거를 시작하기 전에 엑스레이를 찍어 치아에 문제가 없는 지 살펴 보았다. 검사 결과, 충치 등 몇 개의 치아에 문제가 있다면서 치료를 권했다. 금년에 내가 다시 방문하자 치석 제거를 해 주던 치과 보조사는 치료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고, 난 생각해 보겠다고 했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런 편지를 내게 보낸 것이다.
내가 이 치과에서 권하는 치료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은 데에는 나의 과거 경험 때문이다. 이 치과에 가기 전에 난 다른 치과에 다녔었다. 2007년, 난 아무런 증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치과에서 충치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었다. 그런데, 치료를 받은 뒤 치통이 새로 발생하고 심해져서 치료를 받은 지 1주일도 안 돼 이빨을 갈아야 했다.
치과 치료는 대부분 시술을 요한다. 그런데, 모든 시술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금년에 치과를 방문했을 때 치료에 의한 이득과 위험에 관한 임상시험 증거를 물어 보았는데 만족할 만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보고 싶었다.
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결정이기 때문에 전문가인 치과의사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권하는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자기 치과에는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하다니 그러면 이 치료는 정말 필요한 걸까? 그리고, 필요한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환자에게 다시 오지 말라고 하는 사람을 과연 의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난 미국의 치과 의료가 너무 상업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위의 극단적인 예 외에도 한 가지 예를 더 든다면 거의 모든 치과가 부과하는 no show fee로, 이는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환자들에게 부과하는 일종의 벌금이다. 환자가 미리 약속한 진료시간에 안 나타나면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그 시간에 다른 환자가 의사를 볼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박탈하는 것일 수 있다. 둘째, 의사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no show를 막기 위해 치과 의사 뿐만 아니라 일반 의사들도 진료 약속을 지키지 못한 환자들에게 no show fee를 걷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치과의사들이 일반 의사들과 다른 점은 일반의사들은 한두 번의 no show에 대해서는 fee를 물리지 않지만 치과의사들은 첫 번째 no show에도 물리는 경향이 크다. 또, 일반의사들이 물리는 no show fee는 20-30달러 (우리돈으로 2-3만원)로 비교적 소액인 반면 많은 치과의사들은 진료비 전체를 부과한다. 실제로 나는 예전 치과와의 치석 제거 예약을 한 번 못 지켰는데 이에 대해 치과의사는 내게 치석 제거 비용인 75달러 (우리돈으로 8만원)를 모두 부과했다.
이처럼 미국 치과의료가 너무 상업적이 된 데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치과 치료가 거의 없어서 사보험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이 큰 이유로 보인다.
각양각색의 사보험이 지불해 주는 치료의 종류와 심지어는 치과의사마저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위 편지에서 치과의사를 찾아 보는 데 도움을 받으려면 내가 가진 치과 보험에 연락해 보라고 한 것이다). 또, 치료마다 지불해 주는 정도도 보험마다 달라 어떤 경우에는 보험이라기 보다는 할인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진 치과보험은 나이트 가드 (night guard; 우리말로는 마우스 피스) 비용의 고작 20%만 지불해 준다. 그런데, 나이트 가드 하나에 500-600달러 (우리돈으로 60-70만원)이니 보험을 적용받아도 적어도 400 달러 (우리돈으로 약 50만원)을 내야 하는 것이다.
여러 개의 사보험이 있어서 가입자가 분산되니, 보험 회사의 협상력과 구매력이 낮아져 치과의사들과 협상할 때 지불하는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줄어 든다. 예를 들어, 100명이 살고 있는 곳에 3개의 치과가 있다고 치자. 만약 1개의 보험이 있다면 이 세 개의 치과 중 더 싸게 치료를 제공하는 곳으로 100명의 모든 환자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치과 비용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만약 5개의 보험이 20명씩 가입자를 나눠 갖는다면 이런 협상력과 구매력이 떨어져 치과 치료 비용은 올라간다. 또,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가입자가 고를 수 있는 치과 의사를 더 확보하려고 치과의사들이 원하는 가격에 맞춰 줄 가능성이 커진다.
메디케어같이 정부 차원에서 지불하는 치과 치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정부 보험은 치과 치료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 그렇다 보니 치과 치료 임상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많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치과 치료는 임상시험 결과에 따른 것보다는 치과 의사의 경험과 개인적인 의견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 많다는 인상을 받는다. 임상연구가 활성화되려면 많은 연구자들이 배출되어야 하는데 대다수의 치대생들은 졸업하고 바로 치과에서 일한다. 그래서,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연구자가 되는 사람의 수가 적어 임상연구는 계속 더디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는 것 같다.
치대교육을 받고 치과를 개업하는데에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많은 치과의사들이 큰 빚을 지고 치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최대한 수입을 올리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위 편지를 쓴 치과의사는 너무 했다. 다음 치과 의사는 좀 더 상식적인 의사였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9-12-02 1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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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6> 상호협력 관계인 환자와 의료진
“선생님, 지난 주에 받은 테스트 결과가 어떤가요?”
Mr. Z이 재진을 위해 이번 주에 클리닉을 방문했다. 60대 중반인 Mr. Z은 심근경색을 앓은 적이 있으며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만성질환이 있는 남성 환자다. 난 5 년 전에 Mr. Z의 주치의로부터 협진의뢰를 받은 이후, 계속 정기적으로 만나 오면서 약물치료를 돕고 있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 1월이었는데, 당화혈색소 수치를 측정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기에 나를 만나기 전에 다시 측정하도록 오더를 넣었었다.
“Mr. Z. 당화색소치가 더 좋아졌네요. 지난 4월 측정했을 때에는 6.7%였는데 지난 주에 측정한 것은 6.3%로 낮아졌습니다. 축하합니다! 우리 하이 파이브 한번 할까요?”
Mr. Z은 수줍어 하면서 나와 손바닥을 마주쳤다. 2019년 미국의 당뇨병 치료 지침서에 따르면 심근경색의 병력을 가진 Mr. Z의 당화혈색소 목표 수치는 7.5-8%미만이 되겠지만, Mr. Z은 저혈당의 병력도 없고 저혈당 위험이 없는 메트포민만 당뇨병 약으로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당화혈색소 목표 수치를 6.5%미만으로 잡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임상연구에 따르면 당화혈색소 수치가 낮을수록 당뇨성 신부전증, 신경병증, 안질환의 위험이 줄어든다.
“Mr. Z. 그런데, 좋지 않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혈압이 오늘도 여전히 높습니다.”
해맑게 웃던 Mr. Z의 표정이 좀 굳어졌다. Mr. Z은 고혈압 치료를 위해 베나제프릴 (benazepril) 40 mg을 하루에 한 알, 메토프로롤 서방정 50 mg을 하루에 한 알 복용해 오고 있다. 그의 이완기 혈압은 90 mmHg미만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축기 혈압은 금년 내내 143-158 mmHg로 140 mmHg보다 높게 유지하고 있었다 (2017년 미국 심장학회의 고혈압 지침서에 따르면 Mr. Z의 목표혈압 수치는 130/80 mmHg미만이어야 하지만, 노인 환자와 영어 이해력이 떨어지는 환자들이 많은 저커버그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가정의학과 클리닉은 약물에 따른 부작용 위험을 줄이고자140/90 mmHg미만을 목표 혈압 수치로 정하고 있다).
Mr. Z의 베나제프릴과 메토프로롤의 복용량은 최대 허가 용량보다 낮기 때문에 용량을 높이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베나제프릴을 하루 최대치 80 mg 까지 복용하더라도 혈압을 40 mg보다 크게 낮추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 40 mg이상으로는 보통 권하지 않는다. 메토프로롤의 경우 Mr. Z의 맥박이 분당 60 회정도로 낮았기 때문에 용량을 증가시키면 맥박수가 너무 낮아질 가능성이 컸다.
“Mr. Z. 고혈압 치료제를 하나 더 드시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Mr. Z은 대답이 없다. 복용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난 Mr. Z의 과거 약력을 떠올렸다.
Mr. Z의 주치의는 작년 초에 이뇨제인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 (hydrochlorothiazide)를 처방했었다. 우리 클리닉에서는 환자들에게 의사나 약사를 만날 때마다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약병을 모두 가져 오라고 지시한다. Mr. Z은 이를 잘 따르는 환자 중 하나인데 나를 만날 때마다 이상하게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 약병만 가지고 오지 않았었다. 구두로 물어보면 하루에 한 알 복용한다고 대답해서 처음에는 믿었었다. 그런데, 혈압은 조절되지 않고, 계속 이 약병만을 가지고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한 번은 약국에 전화를 했었다. 그랬더니 약국에서는 Mr. Z이 이 약을 한 번도 타 간 적이 없다고 알려 주어서 Mr. Z가 이 약을 복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다. 내가 작년말에 학교에서 처음으로 가르쳐 보는, 무려 11.5학점짜리 코스로 인해 내 클리닉을 잠시 닫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를 대신해 동료 약사가 내 환자를 봐 주었는데 Mr. Z의 혈압이 조절되지 않자 암로디핀 (amlodipine)을 추가로 처방했었다. 그런데, 내가 금년 1월에 Mr. Z를 보았을 때 이 약병이 빠져 있어 물어 보니 암로디핀을 복용하지 않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었다.
Mr. Z은 벌써 다섯 종류의 약을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약을 추가로 복용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환자가 약물의 추가를 꺼리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경제적인 부담이나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으로 추가 복용을 거부하기도 한다. 또, Mr. Z처럼 자신이 약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는 생각때문에 꺼리는 환자들도 많다.
Mr. Z의 혈압이 아주 높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Mr. Z의 과거 약력과 복용을 꺼리는 이유를 고려할 때 새로운 고혈압약을 처방하더라도 Mr. Z은 이를 복용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의료진과 환자와의 관계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 협력적인 관계여야 치료결과가 더 좋다. 아무리 좋은 치료 방법이라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강요하면 환자들은 클리닉에서는 따르겠다고 말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를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이 선호하는 것을 고려하면서 상호 협력적인 관계를 맺어야 환자들이 수긍하고 오래 따를 수 있다. 그래서, 난 Mr. Z이 원하는 방법을 먼저 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로 했다.
“Mr. Z, 그럼 우리 다른 방법을 먼저 시도해 보고, 그래도 효과가 충분하지 않으면 약을 추가로 복용하는 것이 어떨까요?”
Mr. Z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서, Mr. Z은 소금 섭취를 더 많이 줄여 보기로 했다. Mr. Z은 집에 부엌이 없어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 오고 있는데 음식을 주문할 때 소금의 양을 반으로 줄여달라고 요청하겠다고 했다. 또, 이틀에 한 번 30분씩 하는 걷기 운동을 매일 하기로 했다.
내년 1월에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그 때 Mr. Z의 혈압이 어떨지 매우 궁금하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9-11-12 1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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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5> 환자들의 거짓말
“교수님, Ms. T의 혈압약을 더 센 것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내 클리닉에서 외래 실습 (ambulatory care advanced pharmacy practice experience)을 하고 있는 UCSF 약대 4학년 학생이 혼자 Ms. T를 진찰실에서 먼저 만난 다음 내게 보고했다. 77세인 Ms. T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데, 주치의 (primary care provider)가 고혈압 조절을 도와달라고 협진의뢰를 요청한 여성 환자다. 원래는 3주전에 내 클리닉으로 초진이 예약되어 있었지만, 그 때 나타나지 않아서 (no show라고 부른다) 다시 예약이 잡힌 환자다.
차트에 따르면 Ms. T는 세 가지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베나제프릴 (benazepril) 40 mg 하루 두 번, 펠로디핀 (felodipine) 10 mg 하루 한 번,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 (hydrochlorothiazide 또는 HCTZ) 25 mg 하루 한 번. 베나제프릴의 경우 환자의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자 주치의가 한 달 전에 40 mg 하루 한 번에서 하루 두 번으로 용량을 올린 것이었다.
“혈압은 다시 재 봤니?”
오늘 학생이 Ms. T를 보기 전, 간호사가 혈압을 두 번 측정했었다. 혈압 측정치가 162/82와 158/80으로 목표혈압인 140/90미만보다 높았기 때문에 학생에게 혈압을 다시 측정해 보라고 지시해 놓았었다. 환자들이 클리닉 약속 시간을 맞추느라 서둘러 오게 되면 혈압이 높아지기 때문에 간호사가 측정한 혈압이 높은 경우 진찰실에서 환자를 안정시킨 후 혈압을 다시 측정한다.
“예, 152/80으로 여전히 높았어요.”
“집에서 측정한 혈압수치들도 봤니?”
차트에 따르면, Ms. T는 집에 혈압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클리닉에 오면 긴장이 되어서 집에서 측정한 혈압보다 클리닉에서 잰 혈압이 높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집에서 측정한 혈압수치들을 가지고 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집에서는 혈압이 138/76 이었다고 해요.”
“그 정도면 괜찮은데… 그런데, 왜 혈압약을 더 센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니?”
“Ms. T는 금년에 병원을 6번 방문했는데, 2월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혈압이 목표혈압보다 높아서요.”
“집에서 측정한 혈압이 클리닉에서 측정한 것보다 환자의 혈압을 좀 더 잘 알려주기 때문에, 난 집에서 측정한 혈압을 가지고 혈압약을 조절하는 것을 선호해. 하지만, 매번 클리닉에 올 때마다 혈압이 높았으니 약을 바꾸거나 더하는 것을 한 번 고려해 보기로 하자.”
고혈압 환자들의 혈압이 조절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혈압약을 처방에 따라 복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혈압약을 바꾸거나 더하기 전에 혈압약을 처방대로 복용하고 있는 지 꼭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Ms. T는 약을 처방한 대로 복용해 왔니?”
“베나제프릴은 40 mg 하루 한 번 저녁때만 복용하고 있다고 했고, 다른 두 혈압약 펠로디핀과 HCTZ는 처방대로 하루 한 번 복용하고 있다고 했어요.”
“베나제프릴은 왜 하루에 한 번만 복용하고 있다니?”
“약을 너무 많이 먹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랬대요.”
“그런데, 리필 날짜와 수량도 확인해 보았니?”
“아, 그걸 확인해 보지 않았네요!”
미국에서는 처방약 리필 제도가 있다. 이는 처방약을 다 복용한 뒤 의사를 따로 만나 다시 처방전을 받을 필요없이, 한 달에서 석 달 단위로 의사가 지정한 기간동안 (보통 1년) 약국에서 받아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약국에서 교부한 약병에는 약 이름 외에 리필한 날짜와 수량이 적혀 있기 때문에 이를 환자가 처방약을 처방대로 복용하는 지에 대한 평가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Ms. T가 있는 진찰실에 함께 들어 갔다.
“Ms. T. 약병들을 좀 볼 수 있을까요?”
펠로디핀은 지난 5월말에 약국에서 리필을 했지만 다른 두 약은 작년 12월에 석 달 수량을 리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약병에는 20-30개 정도 약이 남아 있었다.
“Ms. T, 이 약병들이 약국에서 가장 최근에 받은 것들인가요?”
“맞아요.”
“약병을 보니 작년 12월에 HCTZ와 베나제프릴을 3개월치 받으셨습니다. 오늘이 6월말이니 약을 다 드시고 다시 리필을 받으셨어야 하는데, 아직도 약이 많이 남아 있네요. 약을 매일 복용하고 계신 것이 맞습니까?”
“…”
“저희는 잘잘못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그냥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는 것 뿐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Ms. T께서 약을 다 드시고 계시지 않은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저희가 약을 더 센 것으로 바꾸거나 새로운 약을 더하고 Ms. T께서 모든 약을 다 드시게 되면 갑자기 혈압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어요.”
“…. 실은 펠로디핀만 복용해 왔어요.”
“왜 다른 약들은 복용하지 않으셨나요?”
“그냥 약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아서요. 또, 약을 많이 먹으면 간에 안 좋다고 듣기도 했고.”
내가 처음 클리닉을 시작할 때, 같은 클리닉에서 20년이상 환자를 봐 온 선배 약사 교수가 내게 이런 조언을 주었다.
“You will learn to appreciate patients’ lies.”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클리닉에서 환자를 본 경험에 의하면 많은 환자들이 거짓말을 한다. 특히, 처방대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지에 대해. 환자가 의사나 약사에게 거짓말을 할 때는 악의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의사나 약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의사와 약사의 입장에서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를 위해서 환자의 처방약 사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환자가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리필 날짜와 수량을 확인하는 등 환자의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른 정보를 함께 얻으려 노력한다.
환자에게 화를 내거나 꾸지람을 하게 되면 환자가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또,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를 위해 필요한 환자와의 원만한 관계가 구축되기 어렵다. 그래서, 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처방약이 환자에게 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환자가 정확한 정보를 주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환자에게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추궁해야 하는 상황은 참 난감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환자가 그동안 내가 추천한 대로 따르지 않았으면 실망을 좀 할 것이다. 하지만, 환자도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터이니 이를 공유하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대안을 마련할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환자들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리고 싶다:
약을 안 드셨다고 해도 좋으니 본인의 건강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9-10-01 0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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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4> 고위 공직 후보자의 검증과 학생의 개인정보
‘교수님, A 학생의 재시험에 대한 건으로 연락드립니다. A학생은 자신이 재시험 본다는 것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아서 그 학생만을위해 따로 시험장소를 잡아야 합니다.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10년전, 내가 처음으로 과목을 담당했을 때 학교내 교육지원부로부터 받은 이메일이다. 중간고사를 통과하지 못한 학생이 10명쯤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재시험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그 중 학생 하나가 재시험을 다른 학생들과 같이 보면 자신이 시험을잘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므로 시험장소를 따로 잡아달라고 요구한 모양이었다. 학교 교육지원부는 이 요구에 따라 담당 교수였던 내게 이메일을 보냈던것이다.
학생의 요구에 따라우리는 시험 장소를 따로 잡았을 뿐만 아니라 시험감독관도 그 학생만을 위해 따로 구해야 했다. 그 학생 하나를 위해 학교의 더 많은 자원 – 교실과 감독관 - 을 써야 했지만 학교는 학생의 요구를 들어주어야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학생의 개인 정보 보호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시험도 못 본 주제에별 걸 다 요구하네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험 못 본 것과 학생 개인정보 보호는 별개의 사항이다. 시험을 못 보았다고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이는 법적으로 보호받는 사항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FERPA(Family Educational Rights and Privacy Act)라는 법이 있어 교육기관에서 생산된 학생에 대한개인 정보, 예를 들면, 시험 성적, 학사 징계 등에 대한 정보를 당사자 학생이나, 미성년자인 경우 부모의허락을 받지 않고는 제 삼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 여기에는 간접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포함한다. 그래서, 성적을 직접 제 삼자에게알려주지 않더라도 재시험을 치루는 다른 학우들이 A 학생을 보게 되면 A 학생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면 보호를 받을 수 있는것이다.
생각해 보면, 학업 성적, 징계 여부 등에 대한 정보는,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지않은 것들이다. 이는 성적이 좋건나쁘건 관계없다. 지금은 어떤지모르지만 내가 우리나라에서 교육받을 때만 해도 학생의 성적을 본인의 동의없이 공개하는 것은 꽤 흔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전교석차를 복도에 붙여 공개해서 누가 전교 몇 등인지 다 알 수 있었다. 학교측에서는 자극을 주고 분발하라는 뜻에서석차를 공개했겠지만, 특히 석차가 낮거나 떨어진 학생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성적이 다른 사람에게공개된 적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들은 일반화학 과목은 자연대 과사무실 앞 게시판에 시험 성적을 붙여 놓음으로써 성적을 발표했다. 그래서,성적이 발표되었다는 소문을 듣자마다 학우들이 자신의 이름과 점수를 지우려고 자연대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이메일도 없고 학생들의 성적을학교 전산 시스템을 통해 알려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랬을 터이긴 하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내점수가 얼마인지 아는 것 보다 남에게 내 점수가 알려지는 것을 막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그 때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개념인 “개인정보”가 당시의 우리들에게 중요했던 것이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대한 검증이 한창이다 (아래 이슈를 제기하기 전에, 다른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언행이 일치하지 않았던 조국 후보자에 대해 많이 실망했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그런데, 검증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가 무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후보자 딸에 대한 개인정보가필요한 수준이상으로 공개되어 있다. 신문기사에의하면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후보자의 딸은 두 번이나 낙제를 했다고 한다. 과목도 알려져 있고 학점평균 조차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이 모든 정보는, 우리나라 법으로도 보호받는 사항들이다.
교육기본법 23조 3항에따르면 학교생활기록 등의 학생정보는, 법률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해당학생의 동의없이 제3자에게 제공되어서는 안된다. 성인인 후보자의 딸에 대한 이런 정보가 후보자 측이 아닌 언론에 의해공개된 것으로 보아 해당학생의 동의를 받지 않고 공개된 것으로 보인다. 이 학생은 학업을 끝내려면 아직도 몇 년이 더 남은 것 같은데 자신의학우들 뿐만 아니라 전국민에게 자신의 성적이 공개된 데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앞으로 어떻게 학업을 지속할 수 있을 지 우려된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검증을 철저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법이 정해둔 테두리안에서 관련된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혹자는 특권층 부모를 둔 덕택에 좋은대학과 의전원을 갔으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지 모르지만 받은 특혜와 개인정보의 보호는 별개의 문제다. 마치 학생이 시험을 잘 보았거나 잘 보지못했거나 법이 정한 대로 개인정보를 보호받아야 되는 것처럼.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9-09-02 1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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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3> 논란이 일고 있는 국가 폐암 검진 – 검진대상자가 고려해야 할 득과 실
금년 7월1일부터 정부가 국가암검진사업의 일부로 시행하고 있는 폐암 검진이
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폐암
검진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위험군인 30갑년
이상의 흡연경력을 가진 만 54-74세의 남녀에게만 2년에
한 번씩 제공된다. 여기서 갑년이란
담배 한 갑을 1년 동안 피우는 양과 동일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30갑년은 매일
한 갑씩 30년동안, 또는 매일 두 갑씩 15년간 피우는 것과 같다. 검사대상자는 검진방법인 저선량 흉부 CT
검진료의 10%인 약 1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폐암은 조기 발견율이 20.7%로
낮아 진단 후 5년 생존율도 주요 암 중 췌장암에 이어 두번째로 낮은 26.7%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는 폐암 검진 사업을 통해 수술가능한 조기 발견율을 높여 진단
후 5년 생존율을 60%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1만3천여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폐암검진 시범사업에서 69명 (검진자의 0.52%)이
폐암진단을 받았는데 이 중 약 70%가 조기폐암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7월3일, 대학병원 의사 7명으로 구성된 과잉진료예방연구회는 기자회견을 열고이 폐암검진사업은 가짜환자를 양성하여 이들이 받을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로 인해 비용이 더 들 수 있고,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미국 연구에서 폐암 검진을
받은 사람들 중 35.1%가 가짜양성이었는데 이 중 약 1%는
조직검사 등 추가 검사 과정에서 합병증이 발생했으며 약 0.3%는 사망에 이르는 등 불필요한 검사에
따른 위험성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또, 연구회는 폐암검진 혜택이 과장되었다면서 “정부는 국가 폐암 검진이 폐암 사망률을 20% 낮췄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폐암 검진을 통해 흡연자가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5%에서 4%로 1%포인트 낮아질 뿐”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저선량 흉부 CT검사 방법이 흡연자들의 폐암을 조기에 발견해 검진법으로
적절하다는 근거를 세계적으로 찾을 수 없으며 "현재 폐암검진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거나 국가가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권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사업의 중단을 요구했다.
폐암은 사망률도 높아
조기 발견하면 좋을 텐데 이 상반된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내가 폐암 검진 대상자라면 검진을 받아야 할까?
먼저 나는 과잉진단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높인 연구회의 용기와 활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치료에 대한 보험 수가가 낮은 우리나라 의료현실에서 폐암 검진은 추가
검사 등으로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연구회의 주장은 병원의 이해에 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회의 성명서와 정부의 홍보에는 모두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이 있다.
국가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암검진 사업이라는 것이 없다. 하지만, 미국 암학회나 전문가들로
구성된 US Preventive Task Force에서 그 동안의 임상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암검진 (cancer screening)에 대한 지침 (guideline)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하여 정부보험과 사보험이 암검진을 지불한다.
폐암검진에 대해서는 미국 암학회와 US
Preventive Task Force에서 모두 지침서가 나와있으며 현재 정부보험과 사보험 모두 검진 대상자에 대해 지불해
주고 있다. 검진 대상자가 폐암
증상이 없는, 30갑년이상의 흡연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지만 검진 대상의 나이는
55-77세로 약간 다르다. 또, 우리나라가 2년에 한 번 검진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은 검진을 매년 받을 수 있으며 무료다.
이 지침서의 근거가
되는 임상연구는 미국에서 수행된 National Lung Screening
Trial (NLST)이라는 것이다. 이 시험은 폐암의 증상이 없는 30갑년
이상의 흡연경력을 가진, 55-74세의 5만여명을 저선량
흉부 CT와 흉부 엑스레이 군으로 나눠 약 6.5년간 추적하여
사망률을 비교하였다. 이 시험의
디자인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먼저, 시험을 시작한
첫 3년인, 2002년에서 2004년 동안 매년 검진을 수행하였다는 것이다. 검진 횟수와 간격이 중요한 이유는 검진에서 이상을 발견할 가능성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암검진의 목적은
조기 암을 발견, 치료함으로써 수명을 늘리는 데에 있다. 그런데, 조기 암이 임상적으로
증상을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 암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적게는 몇 년에서 몇 십년의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검진을 자주할수록 초반 검진에서 놓치더라도 나중 검진에서 잡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증가하여 검진의 효용성이
높아진다. 두 번째는 폐암 진단
후 5년 생존율이 아닌 전체 사망률을 비교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망률은 폐암 뿐만이 아닌 검사의 부작용, 심순환기 질환 등 다른 이유로 사망한 것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사망률이 진단 후 5년 생존율보다
중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암 검진을 하게 되면 지금은 자각증상이 없더라도 나중에 암 진단을 받게 될 사람들의
진단 날짜를 당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들이 모두 암으로 사망한다고 하더라도 진단 날짜가 당겨졌기 때문에, 암진단
후 5년 생존율이 더 길어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를 lead-in bias라고 부른다). 둘째는 암의 확진 검사와 치료에 따른 부작용이다.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암검진은
이상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다른 영상 검사나 조직검사 등을 추가로
수행해서 확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검사들은 일반적인 암검진보다 부작용의 위험이 훨씬 높다.
예를 들어, 영상검사를 통해
더 많은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으며 (방사선은 암을 일으킬 수 있다),
조직검사는 출혈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모든 종류의 조기 암들이 자라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조기 암은 스스로 없어지기도 하고, 다른 것들은 너무 천천히 자라서 노환 등 다른 이유로 죽을 때까지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런
조기 암들은 굳이 치료해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조기에 발견된 암이 앞으로 문제를 일으킬 지 여부를 현재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술이든 항암제든
치료에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없는 조기 암을 치료하게 되면 환자는 해만 입게 된다.
이처럼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질병을 진단하는
것을 과잉진단 (over-diagnosis)라고 부른다. 따라서, 암검진에 의해 발생한
과잉진단으로 입은 해, 특히 가장 심각한 위해인 사망률을 고려해야 암검진의 득과 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과잉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생존할 것이므로 이에 따라 당연히 증가할 진단 후 5년
생존율은 암검진의 효용성을 알려주는 지표로서 부적절하다.
이제 NLST
시험결과를 살펴보자. 저선량 흉부 CT와 흉부 엑스레이 군의1000 명당 사망자 수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결과
저선량 흉부 CT
흉부 엑스레이
사망률
1000 명 중 70명
1000 명 중 75명
이 결과에 따르면, 저선량 흉부 CT를 1000 명에게
수행하면 흉부 엑스레이를 사용한 것보다 사망자의 수를 5명 더 감소시킬 수 있다. 정부 예측에 따르면, 연간 11만명이 저선량 흉부 CT
검사를 받을 것이라고 하니 6년간 500여명의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혜택에는 다음과같은 위해도 함께 따른다.
위해
검진자 1000명
당
결과가 양성
380
가짜 양성
356
침습성 검사가 필요한 사람 수
18
침습성 검사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사람 수
0.4
저선량 흉부 CT로 1000명을 검사하면 38%인 380명이 양성 판정을 받는데, 이 중 무려 94%에 해당하는 356명은 추가 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을 받았다 (물론, 시험이 수행될 당시인 2002-2004년보다
영상기술이 발전해서 가짜양성 판정을 받을 확률은 좀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 추가 검사에는 비용과 부작용이 따른다. 특히,
조직 검사 등의 침습성 검사 (invasive procedures; 수술 등 상처를 내서
하는 검사)에서 감염, 출혈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만 명당
4명에게 일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선량 흉부 CT로 양성인 사람 중 10-20%는 과잉진단을 받을 것으로 예측되므로, 연간 11만명을 검사한다면 3800-7600명의 사람들이 필요없는 치료를
받게 되는 셈이다. 또, 비록 저선량 CT는 진단용 일반 CT에
비해 방사선 노출량이 20%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흉부 엑스레이보다는
14배 더 높고 한 번의 저선량 CT 검사로 일상생활에서
일 년동안 받는 양의 약 30%를 받는 것과 같아 암 발생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요약하면, 미국에서 수행한 대규모 임상시험결과 저선량 흉부 CT는 흉부 엑스레이에
비해 폐암 고위험군의 사망률을 감소시킨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의 암학회 등은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매년 검사하는 것을 권고하며, 정부보험과 사보험 모두 검사비용을 지불해 주고 있다. 하지만,
검사에 따른 위해도 만만치 않다.
검사결과가 가짜양성의 확률이 90%이상이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불필요한
추가검사의 비용과 부작용이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과잉진단을 받아 수술과 항암제 등 불필요한 치료를 받을 사람들의 수도 만만치 않다.
앞서 지적했듯이 정부가
수행하고 있는 폐암검진 사업은 NLST 시험 디자인과 좀 차이가 있기 때문에 NLST 시험결과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폐암검진사업의 검사 간격은 2년으로
NLST 시험의 매 1년보다 더 길다. 그래서,
시범사업을 할 때 대조군을 두고
2년마다 한 번씩 검사하고, 조기 폐암 발견율이 아닌 사망률을 측정했으면 좀
더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폐암검진 사업을 도입할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그러면, 검진 대상자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처럼 득과 실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은 검사의 경우, 대상자에게 득과 실을 충분히 알려주고 본인이 검사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국 대상자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본인 자신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를 받는다는 것은 양성이 나왔을 경우 침습성 검사 등 위험이 따르는
검사도 받게 되고, 여기에서 암으로 진단을 받으면 과잉진단의 위험이 있더라도 수술 등 치료를 받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만약 이런 것이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검사를 받지 않으면 된다.
일차의료가 확립되어
있으면 주치의가 득과 실에 대한 정보를 주고 대상자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에 대해서도 대답해 주는 등 대상자의 선택을 도와 줄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검사기관에서 이런 역할을 대신하여야 할 것이다. 흡연은 폐암의 가장 큰 원인이므로 폐암을 줄이기 위해서는 금연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검사를 금연 상담과 연계시키겠다는 것은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저선량 흉부 CT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온 흡연자들은 담배를 계속 피워도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금연 상담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금연 상담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점에서, 주치의가 없는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상담이 이루어져 궁극적으로 금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흡연율이 아직도 20%가 넘기 때문에이를 낮추는 데 더 많은 재원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9-09-02 12: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