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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31> 규제가 진흥이다
올해로 한국FDC규제과학회(회장 이의경)가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 학회의 전신인 ’한국의약품법규학회’의 창립회장인 나로서 특히 감개무량한 일이다. 이 학회는 규제기관과 피규제기관인 산업계 사이의 비생산적인 불통과 오해를 해소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규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005년 출범되었다. 규제과학(Regulatory Science)은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에 이은 제3의 과학이다. 순수과학이 ‘왜’를 묻고, 응용과학이 ‘어떻게’를 탐구한다면, 규제과학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Which)’를 고민한다. 일본에서는 규제과학을 ‘평가과학(評價科學)’이라 부르는데, 약효와 부작용을 저울질하여 의약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기준을 세운다는 점을 표현한 명칭이다. 약학을 평가과학의 대표적 학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의약품 안전성은 지난 세기의 비극적 사건들로부터 얻은 교훈의 결실이다. 탈리도마이드 참사가 대표적인 사건이다. 수많은 기형아가 태어나고 죽은 그 사건 이후, 제약회사는 “당시 규제기관이 요구한 모든 자료를 제출했다”고 항변했다. 문제는 자료를 요구한 규제 자체가 부실했다는 데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교훈으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안전에 관한 법규가 정비되어 오늘날의 안전한 의약품 제도가 마련되었다. 예컨대 의약품의 체내 흡수·분포·대사·배설(ADME)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게 된 것은 관련 규제의 적용 덕분이었다. 만약에 생체이용률과 생물학적동등성(BE)의 개념이 제도화되지 않았다면, 제네릭 의약품이 정당한 지위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BE 시험 제도의 정착이 제네릭을 장려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건강기능식품 산업 또한 관리제도가 정비되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 규제가 지나치게 부실했다면 오히려 산업은 신뢰를 잃고 위축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규제는 진흥이다”라는 말은 결코 역설이 아니다. 철로 없이 달리는 기차를 상상할 수 없듯이, 규제 없는 산업 발전은 존재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규제의 유무가 아니라, 규제의 품질이다. 의미가 명확하고, 기존 규제와 조화를 이루며, 시대를 선도하는 규제가 바로 산업을 진흥시킬 수 있는 좋은 규제이다. 좋은 규제를 만들려면 우선 규제기관의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실력 없는 선생의 밑에서 우수한 제자가 배출될 수 없는 것처럼, 규제기관의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 규제기관의 지나친 순환보직은 전문성을 저해한다. 규제는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토론과 숙의를 거쳐 만들어야 한다. 요식적인 ‘입법예고’만으로는 좋은 규제가 태어나기 어렵다. 충분히 듣고, 연구 검토하여 현장에 적용 가능한 합리적 규제를 찾기 위한 ‘끝장 토론’이 필요하다. 제조 과정이 품질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규제는GMP정신과 일맥 상통한다. 즉 제정 과정이 투명하고 과학적일 때 신뢰할 수 있는 결과물(규제)이 나올 수 있다. 좋은 규제가 태어날 수 있는 제도적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 하에 2005년 의약품법규학회가 창립되었다. 규제기관과 산업계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론의 장에서 함께 규제의 품질을 향상시켜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이정석, 권경희 박사의 헌신, 그리고 전인구 차기 회장 등의 리더십이 학회의 초기 성장과 조직 확장에 큰 기여를 했다. 학회가 나아갈 방향은 미래지향적이고 고품질인 규제의 창출이다. 예컨대 관련 법규의 향후 지향점, 의약품 조제 후 유효기간 설정, 생물의약품의 유사성 평가와 국제 조화 등 선제적으로 연구해야 할 규제는 매우 다양하다. 또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강기능식품을 ‘건강기능보조제’로 명칭을 바꾸는 방안 등 현행 규정의 정비도 검토해야 한다. 창립 20년, 학회는 이제 성년이 되었다. 규제과학은 단순히 규제 절차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잣대를 세우는 평가과학이다. 잘 만들어진 규제는 족쇄가 아니라 진흥의 길라잡이다. 우리 학회가 앞으로도 세계적 수준의 규제가 만들어지고 시행될 수 있도록 돕는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5-11-26 1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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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30> 근엄하지 않은 아버지
며칠 전 둘째 아들로부터 ‘실(實)없는 소리, 아재개그, 허튼 소리, 유머가 많은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가 근엄한 훈계를 많이 하는 가정이 별로 화목해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일종의 훈계공포증 때문에 부모와 함께 있기를 힘들어 한다. 사실 훈계의 효과도 의문이다. 훈계의 내용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자식도 많고, 부모가 꼭 옳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지나친 훈계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 뿐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국민학교에 다닐 때 집에 들어서면 우선 엄마부터 찾았다. 엄마는 늘 따듯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버지는 내심 안 계셨으면 하고 바란 적이 많았다. 젊으셨을 때의 아버지는 자주 이것 저것 지적하고 나무라셨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몸과 마음이 좀 불편했다. 그럼 나는 우리 두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궁금한 나머지 애들이 중학생 정도가 되었을 때 물어봤다. “너희들은 내가 집에 있는 게 좋으냐, 없는 게 좋으냐?” 고.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내가 집에 있는 게 더 좋다고 대답해 주었다.지금은 늙어서 근엄할 힘도 없지만, 나는 평생 아이들에게 근엄해서 불편한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배경에 두 개의 그림이 있다. 하나는6촌 형님 세 분이 당신들의 아버지(내게 5촌 당숙 아저씨)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우리집에 오신 그림이다. 인천에서부터 김포 우리집까지 제법 먼 비포장 길을 네 분이 마치 친구처럼 사이 좋게 타고 오셨다. 이 장면은 1950~60년대의 봉건 시대에 가히 충격적일 정도로 멋있었다. 나도 나중에 꼭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두번째 그림은 1960년대 당시 인기 대중 잡지인 ‘아리랑’ 에서 본 화보였다. 유명한 남자 배우인 김동원씨가 아들인 가수 김세환씨와 마치 친구 사이처럼 다정하게 당구를 치는 모습이었다. 당구를 치러 다니면 아버지에게 혼나던 시절이었으니, 이 화보가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는가?이런 계기들을 통하여 나는 이 분들(아저씨와 김동원씨)을 새 시대의 아버지 상(像)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 영향이었을까? 지금껏 나는 아이들에게 근엄한 훈계 따위를 해오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내가 자식들에게 너무 근엄하지 않다고 아내가 가끔 불평할 정도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애들은 훈계를 안 해도 건전하게 잘 성장하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실없는 유머와 헛소리, 또는 아재개그를 주고받으며 지낸다. 솔직히 가끔은 애들이 부모를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서운할 때도 있지만, 나는 둘째 아들의 말처럼 아버지의 비근엄주의가 대를 이어 흘러가기를 희망한다. 둘째 아들이 전해준 다른 명언 세 개를 추가한다. 하나. 우리나라 운동 팀이 국제 시합을 할 때 중계 방송을 너무 객관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팀 반칙에는 관대하고 상대방 반칙에는 엄격하게, 다소 주관적으로 중계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 있다는 것이다.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만약에 내가 누군가와 다투게 되면 아들은 지나친 객관성을 버리고 내 편을 들어 줄 것 같은 안도감(?)도 들었다. 자식과 부모 사이가 꼭 객관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아들은 대선 투표하러 갈 때 부부 간에 서로 따른 후보를 찍으려면 아예 투표소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 후 우리 부부는 투표하러 가기 전에 굳이 갈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정치 문제를 가지고 대화하지 않는다. 대화가 많다고 꼭 좋은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셋. 누가 제 3자를 평할 때에 ‘사람은 착해‘ 한다면, 그 사람이 무능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착해 빠져서는 이 험한 세상을 못 산다’ 고 하지만, 나는 우리 손주들이 시집 장가 갈 때에 ‘폭삭 속았수다’ 의 애순이 아빠처럼 착한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11-12 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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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9> 건강기능보조제
2002년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건강기능식품’이라는 개념이 제도화되었다¹. 그 이전에는 영유아 조제식, 체중조절식, 특수질환자용 특수영양식품 등 일부만 관리되었으나, 1990년대 이후 비타민·무기질·오메가-3 등 건강보조용 제품이 급증하면서 제도적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정부가 미국의 Dietary Supplement Health and Education Act(DSHEA, 1994)²와 일본의 특정보건용식품(FOSHU) 제도³를 참고해 별도의 관리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건강기능식품’이라는 명칭은 대상의 본질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식품’이라 하면 일상적으로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밥, 채소, 과일 등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은 외관(外觀)이 정제, 캡슐제, 앰플제 등 의약품 제제와 유사하다. 또 철분·비타민 A·오메가-3 등 고용량 섭취 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철분 과다 섭취 시 간 손상이나 변비가 발생할 수 있고, 비타민 A는 임산부가 과량 섭취 시 태아 기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가 보고되어 있는 것처럼, 건강기능식품의 외관과 작용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식품’과는 거리가 멀다. 건강기능식품은 식품보다는 ‘제제(製劑)’에 가까운 특성을 보인다 따라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큰 ‘건강기능식품’보다는 ‘건강기능보조제’라는 명칭이 더 적절하지 않은가 싶다. 건강은 본래 균형 잡힌 식사, 운동, 수면, 절제된 음주와 금연, 긍정적인 생활습관에서 비롯된다. ‘보조제’라는 용어에는 이러한 생활습관으로 충족되지 못하는 부분을 메워주는 조연(助演), 즉 주(主)가 아니라 보조(補助)라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그러나 이를 ‘(건강기능)식품’으로 규정하는 순간 소비자는 이를 건강을 지켜주는 주연으로 오해하기 쉽다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보조제’로 개념을 정한 용어가 주류를 이룬다. 미국은 ‘Dietary Supplement(식이보충제)’라고 명명하여 ‘보충(supplement)’이라는 성격을 분명히 하였고², 일본 역시 ‘특정보건용식품(FOSHU)’을 통해 특정 목적에 한해 보조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를 강조하였다³. 반면 우리나라의 ‘건강기능식품’은 ‘기능성’을 강조하면서도 ‘식품’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소비자에게 의약품 수준의 효능을 기대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간식(間食)처럼 남용하게 할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다. 만약에 ‘보조제’라는 이름을 사용할 경우 소비자는 “이것이 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기업 역시 무분별한 과대광고가 아닌 보조적 역할을 중심으로 홍보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의료인 또한 환자와 소비자에게 보조제의 올바른 위치를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만성질환 환자가 여러 약물을 복용할 때에 ‘건강기능식품’이라는 명칭보다는 ‘건강기능보조제’라는 명칭이 약물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인상을 주는 데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우려 때문에 제조 및 판매업자들이 ‘보조제’ 대신 ‘식품’이라는 이름을 선호할 것이다. 요컨대 ‘건강기능식품’이라는 부정확한 명칭을 ‘건강기능보조제’라는 솔직하고 정확한 이름으로 바꾸기를 제안한다. 명칭의 변화는 단순한 언어적 조정에 그치지 않고, 국민 인식을 개선하고, 과잉 섭취를 방지하며,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보건복지부,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2002.2. U.S. Congress, Dietary Supplement Health and Education Act (DSHEA), Public Law 103-417, 1994.3. Ministry of Health, Labour and Welfare (Japan), Foods for Specified Health Uses (FOSHU) 제도 자료, 1991.<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11-03 0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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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8> 칠전팔기(七顚八起)
칠전팔기, 일곱 번 쓰러져도 여덟 번 일어선다는 이 짧은 말은 삶의 불씨처럼 우리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며칠 전 TV에서 하지마비(下肢痲痺)라는 절망을 껴안고도 초인적인 재활을 하여 장애인 역도선수로 거듭난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보았다. 그의 땀과 눈물에 젖은 칠전팔기 이야기는 희망의 씨앗이 되어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또 오래 전 링 위에서 네 번 쓰러졌다가 다섯 번째에 KO 역전승을 거둔 챔피언 홍수환 선수의 이야기 역시 세월을 넘어 아직도 생각이 난다.링컨은 수많은 낙선(落選)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어 분열된 나라를 이끌었고,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패를 딛고 인류 문명을 바꿀 전구(電球)를 발명하여 세상을 밝게 만들었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에는 좌절 끝에 피어난 꽃이 적지 않다. 그 꽃의 향기는 오늘도 시들지 않고, 아직 땅에 쓰러져 있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건넨다.그러나 사실 현실은 냉혹하다. 끝내 일어나지 못한 이들의 숫자가, 일어난 이들보다 훨씬 더 많다. 홍수환 선수 이후, 다시는 네 번의 쓰러짐 후에 다섯 번째의 공격으로 승리를 쟁취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넉다운된 삶을 다시 세우려 애쓰지만 4전5기, 7전8기의 기적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칠전팔기의 주인공에게 보내는 우리의 박수는 단순한 환호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운명의 경계에서 울려 퍼지는 깊은 존경이다.배려와 친절에 관한 미담(美談)도 많다. 한국 제약 산업의 선구자인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1895~1971) 박사는 소년 시절 독립정신을 품고 미국 유학을 꿈꿨지만 가난해서 길이 막막했다. 마침 한국에 선교사로 와 있던 미국인 목사가 그의 총명함과 성실함을 알아보고 직접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유 박사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귀국해 유한양행을 창립했고 한국 제약 산업과 교육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낯선 타국인의 작은 배려가 한 청년을 나라의 큰 인물로 성장시킨 사례이다.미국 시골의 여관 종업원인 어떤 청년이 비 오는 날 낯선 나그네에게 자기 방을 내어주며 묵어 갈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그 나그네는 뉴욕에서 사업을 하는 큰 부자였다. 훗날 그는 그 청년에게 뉴욕의 큰 호텔 경영을 맡겼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고 느끼게 된다.그러나 정작 현실은 이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배려와 친절을 베풀고도 오히려 보상은커녕 상처받는 경우도 많다. 일평생 봉사하고 가진 것을 나누었지만 끝내 마음의 보답을 받지 못하고 잊혀지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아마 그래서 위에서 예를 든 미담(美談)이 더욱 귀하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사람들은 칠전팔기에 성공한 이들, 또 행운을 거머쥔 사람들을 주목한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그들을 집중 조명한다. 그러나 아직 행운을 잡지 못한 사람이나 좌절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한 이들에게는 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오죽하면 ‘일등만 주목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풍자(諷刺)가 유행했겠는가?칠전팔기는 분명 아름다운 덕목(德目)이지만 아직 일어서지 못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끈기가 부족하다, 성실하지 못하다’는 둥 섣부른 입방아를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가혹한 일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다 말 못할 사정이 있고 나름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사실 칠전팔기와 행운은 노력 보다는 기적의 결과인 결과가 더 많다. 말기암 환자가 거짓말처럼 회복되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는 그런 기적이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지 그 비밀을 알지 못한다. 그 비밀은 우리의 이해 범위 저 바깥에, 하나님의 주관 영역에 있는 모양이다. 정부와 사회는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 제도를 통해 아직 재기하지 못한 사람들, 행운을 잡지 못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손을 더 내밀어야 한다. 말하기 민망하지만 우리들도 그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가 ‘같은 공동체’의 식구라는 이름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스치는 바람이 서늘하다.<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10-15 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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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7> 바이오의약품 체내동태 워크숍
바이오의약품 체내동태 워크숍 2025년 8월 22일, 제7차 <PK Bootcamp@SNU> 워크숍이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신약개발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이 워크숍은 2018년 약물동태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Dr. Yuichi Sugiyama 교수(일본 동경대 약학부, RIKEN 연구소, Josai 국제대학)의 도움으로 시작되어, 지난 7년간 국내 연구자들의 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 워크숍은 참가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하며 난이도를 조절하고 맞춤형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을 거쳐, 국내 약물동태학 분야의 핵심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올해 워크숍은 13명의 국내 교육팀이 상반기부터 자체적으로 준비한 강의 자료와 실전 문제로 구성되었는데,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20개 제약업체에서 32명, 8개 정부 출연 연구소 및 규제 기관에서 15명, 19개 대학교 연구실에서 73명 등 총 120명이 교육에 참여했다. 워크숍 교육팀은 2018년부터 팀을 이끌어온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정석재, 이우인 교수를 비롯해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기존 멤버인 안성훈 교수(강원대학교), 구태성 교수(충남대학교), 맹한주 교수(가천대학교), 신소영 교수(중앙대학교), 이경륜 박사(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윤인수 교수(부산대학교), 채윤지 교수(우석대학교), 이종화 박사(안전성평가연구소)에다가, 올해 새롭게 최영희, 홍은진 교수(동국대학교 약학대학)와 정유성 박사(서울대학교 약학대학)가 합류해 교육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바이오의약품의 개요, 약물동태학적 특성, 제약 현장 적용 사례, 그리고 약리활성 타겟과의 작용에 의한 약물동태(TMDD, target-mediated drug disposition) 모델링을 통한 임상시험 설계 전략 등 매우 흥미롭고 심도 있는 주제를 다루었다. 이론 교육과 함께 조별 실전 데이터 분석 활동을 병행함으로써 참가자들의 이해도를 높였으며, 특히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 약물동태 파라미터를 직접 산출하고 이를 활용하여 항체의약품의 혈중농도 프로파일을 구현하는 PK Simulator app을 제작하여 교육에 활용하였다. 교육과정의 마지막 순서로 서울대 약대 박사 과정 학생이면서 GC녹십자 연구원인 곽희천이 '바이오의약품 약물동태 연구의 실전 분석 세미나'를 진행하여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서울대 약대 미래 선도(先導) 글로벌 리더 약학교육 연구단과 한국 비임상연구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프로그램은 대학원생들에게는 교육뿐만 아니라 제약산업 현장 연구자들과 활발한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서울대 약대 강건욱 학장은 축사를 통해 "이 프로그램은 신약 개발이라는 목표 아래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특히 현장에 계신 연구자들께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번 워크숍이 바이오 신약 개발 현장에서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약물동태 워크숍은 해를 거듭하며 재참가하는 제약산업 현장 연구자들이 늘고 있다.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질의 응답과 토론, 그리고 높은 설문조사 만족도로 미루어 앞으로의 워크숍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워크숍 측은 워크숍의 실질적인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매년 8월에 열리고 있는 대면 (對面) 교육 동영상을 제작해 참가자들에게 온라인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바이오의약품의 개발은 전세계적으로 매우 핫한 관심사이다. 그러나 바이오의약품은 화학의약품과 달리 분자량이 매우 크고 화학적 구성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신약개발에 필수 과정인 체내동태를 연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나는 1980년대에 약물동태학, 생물약제학, 약물송달학이라는 약제학의 3대 분야 교과서를 저술했지만, 이제는 약제학 연구의 대상을 화학의약품이 아닌 생물의약품으로 돌려야 할 시기임을 절감한다. 이번에 ‘바이오의약품의 체내동태’라는 시의적절한 주제로 워크숍을 연 후배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이 워크숍에 대한 상세 정보는 https://www.pkbootcampsnu.com/을 참조하기 바란다.<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09-24 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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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6> 집들이, 카페 문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결혼해 새 살림을 차리면 이웃이나 친지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른바 ‘집들이’인데, ‘집들이’란 ‘집에 들어감’ 또는 ‘남을 집에 들임’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집들이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축복하고 공동체와의 유대(紐帶)를 확인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신혼부부가 집들이 초청을 하지 않으면, 신랑 친구 몇 명이 작당(作黨)하여 사전 연락도 없이 신혼집(혹은 신혼방)에 들이닥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가서는 식사는 물론 술과 노래, 춤으로 신혼부부를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 민폐(民弊)를 심하게 끼칠수록 “우리는 정말 친한 친구 사이”라고 자랑하던 시절이었다. 집들이는 신혼부부의 당연한 통과의례(通過儀禮)였다. 그때는 돌잔치, 생일잔치, 회갑연 같은 집안 행사도 모두 집에서 치렀다. 이런 행사들 또한 모두 일종의 집들이였다. 이러한 문화의 배경에는 (1) 대부분의 여성이 가정주부로 집을 지키고 있었고, (2) 외부에서 잔치를 치를 경제적 여유가 없었으며, (3)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家父長的) 인식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 곧 내가 신혼이던 시절부터 1980년대까지는 부모님의 생신이나 아이들의 돌날이면 예외 없이 친척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다. 20평 남짓한 집(주택)의 방과 마루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아내는 밤새 준비한 갈비찜, 잡채, 떡, 국 등을 원형 자개상에 연신 올려야 했다. 잔치가 끝나면 몇몇 손님은 꼭 주무시고 가셨는데, 우리는 요와 이불을 펴드리며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까지 드려야 공식 행사의 제1부가 끝났다. 설거지는 그 이후의 몫이었다. 오늘날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일반화되고, 경제적 여유도 늘면서 가정주부를 혹사(酷使)시키는 집들이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집들이 문화는 사라졌다. 이제 각종 잔치는 행사 전문 외부 업소나 식당에서 치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발이라도 맞추듯 때마침 여기저기 카페가 들어섰다. 경치 좋은 산기슭이나 물가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들어섰다. 카페의 시설과 분위기는 웬만한 집보다 오히려 낫다. 사람들은 이제 손님을 집 대신 카페에서 만나려 든다. 집들이에서는 집주인이 바빠 손님과 대화할 틈이 없다. 사실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그런 민폐(民弊)성 집들이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반면에 카페에서는 초청자와 손님 모두가 부담없이 만날 수 있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니 특히 여성들이 카페를 선호하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어쩌면 카페는 여성들에게 해방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집들이는 일본처럼 사람(남)을 두려워하는 나라에서는 태어날 수 없는 문화로, 우리처럼 ‘남’을 두려워하지않는 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카페 문화가 꽃피고 있다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즉 사람을 조금은 두려워하는 사회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교회 식구들과 근처 카페에 갔더니, 대기자가 너무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분위기가 특별히 좋은 곳도 아닌데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오다니 놀라웠다. 그날 내가 깨달은 것은, 소소한 수다 떨기를 통해 서로 정을 나누고 축복하는 집들이 정신이 카페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어 카페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걱정은 기우(杞憂) 같았다. 다행스러운 결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카페 문화는 옛날식 집들이가 현대판으로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기 연예인 두 명이 일반 가정집 초인종을 누르고 “저녁 식사 같이 하실까요?”라고 묻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라에서는 애초에 있을 수 없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우리 방송에서도 실제로 대문을 열어주는 집은 매우 드물었다. 아무래도 이 프로그램은 집들이 문화를 거부하고 카페 문화를 받아들인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09-10 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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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5> 원로 약사 공장장 10인의 회고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는 지난 2025년 5월 30일 오후 1:20부터 5:30까지 원로 약사공장장 10분을 모시고 좌담회를 하였다. 장소는 서울대 약대 21동 2층 소회의실이었고, 좌담회의 주제는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제약공장들의 초기 상황과 그 후의 발전과정에 대한 회고였다. 이 좌담회는 약학사분과학회의 연례 행사인 ‘약학사 사랑방 모임’의 세번째 행사였다. 좌담회의 녹취록(錄取錄)은 금년 말에 발간될 ‘약학사회지’ 제8권에 실을 예정이다. 이 좌담회에는 백우현, 이남복, 유한용, 홍우일, 문영일, 김태성, 김재환, 윤병호, 차봉진, 이삼수 등 10인의 원로 공장장들과 김진웅(약학사분과학회장), 주승재(약학사회지 편집부위원장) 및 필자 (심창구, 분과학회 명예회장)가 참석하였다. 나는 이 좌담회의 기획에 이어 진행을 담당하였다. 좌담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오랫동안 청계약품, 동화약품, 유유산업, 일동제약, 유한양행, 영진약품, 한독약품, 대웅제약, 일양약품, 동아제약, LG 생명과학, CJ, 셀트리온, 태준제약, 보령제약 등 주요 제약회사의 공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신 원로들이다. 만 89~64세이신 이 분들로부터 196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제약기술의 발전 과정에 대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1960년 대 중반의 우리나라의 제약기술은 연탄불로 과립을 건조하는 회사가 있을 정도로 시설이나 수준이 전근대적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50여년만인 2010년대 이후에는 GMP 규정에 따라, 또 일부 회사는 스마트 팩토리라는 첨단 시설을 이용하여, 우수한 품질의 의약품을 생산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는 의약품 생산기술 및 관리 제도의 발전, 제약 설비의 강화 및 공장의 신축, 외국 제약기업과의 합작, 기술제휴 등에 힘입은 바 크다. 이 모든 과정을 앞장서 견인한 사람들이 바로 약사 기술자들이었다. 이분들의 수고의 덕분으로 우리 국민이 한국전쟁 이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양질의 국산 의약품을 사용하여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 이 녹취록에는 이 분들이 국산 의약품의 생산 및 개발 과정, 특히 생산 현장에서 기술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해 온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녹취록을 통해 당시 (여)약사의 취직, 승진 및 이직(離職), 기술직에 대한 회사 내 인식, 약사의 공장 기피 현상 등 제약산업을 둘러싼 사회상(社會相)도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 좌담회를 마치면서 나는 우선, 우리나라의 제약산업 기술이 50여년 사이에 정말로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실감했다. 즉, 1977년 보건복지부 고시(告示)를 통해 GMP 기준을 제정하였고, 2014년 PIC/S(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에 가입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GMP 기준서를 유럽 GMP 수준으로 정비하였다. 이를 통해 원료의약품의 GMP를 강화하고, 밸리데이션(공정 검증) 요건 등을 신설 또는 강화했으며, 또 스마트 공장의 건설, 생산라인의 자동화, 밸리데이션 전문가 확보, 품질 보증(QA) 및 문서 관리의 강화 등을 통해 제약공장의 설비 및 품질관리 레벨을 한 층 높였던 것이다. 둘째, 좌담회에 참석하신 바로 이 분들이 이 변화의 주역(主役)임을 새삼 깨닫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셋째, 이 분들의 선구자적 경륜을 본받아 국산 의약품의 품질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향상시켜야 되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넷째, 이 좌담회의 녹취록을 통해 우리나라의 제약기술의 발전 과정을 한국약업사(韓國藥業史)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기게 됨에 큰 보람을 느낀다. 끝으로, 고령자와 재택 환자가 엄청나게 늘어나 돌봄 환자에 대한 의약품의 안전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오늘날, ‘약은 약사에게’라는 광고를 재개(再開)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약은 약사가 다루는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다시 한번 간결 명확하게 국민들 뇌리(腦裏)에 심어 주어야 할 적기(適期)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08-27 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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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4> 백우현 박사님
백우현 박사님 지난 7월 20일 동창회를 통해 약수(若水) 백우현(白于玹) 박사께서 소천하셨다는 비보(悲報)를 들었다. 병세가 만만치 않음은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빠른 진행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지난 5월 30일 백 박사님을 포함한 원로 제약공장 10분을 모시고 “우리나라 제약공장의 초창기 발전사(가제)”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하였다. 사전에 백 박사님께 전화를 걸어 그날 와 주십사 부탁을 드렸더니, “요즘 다리에 힘이 없어 통 외출을 안하고 있지만 심박사가 오라면 가야지” 하시며 오겠다고 하셨다. “정 불편하시면 카카오 택시를 보내 드릴까요?” 여쭈었더니 ‘나도 부를 줄 안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5월 30일 12시에 모든 참석자가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 모였는데, 백 박사님은 지팡이를 짚고 몹시 수척해지신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평소에 남달리 건강하셨던 분이라 다들 깜짝 놀랐다. 식사 후 서울대 약대 21동 소회의실로 옮겨 오후 6시까지 논스톱으로 좌담회를 진행했는데, 백 박사님은 본인의 공장 생활을 포함한 제약계의 시대상을 상세하게 회고해 주셨다. 나아가 다른 분들의 회고담도 미동도 않고 경청하시면서 중간 중간에 ‘그때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하시며 코멘트를 해 주셨다. 백 박사님은 그날 참석자 중 최고령(만 89세)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적극적인 참여자이셨다. 이날 좌담회의 내용은 곧 나올 ‘약학사회지 제8권’을 통해 약학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6월 25일, 교회에 다녀와 쉬고 있다가 백 박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지금 나를 만나러 와 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웬만하면 ‘와라’ 하실 분이 아닌데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급히 차를 몰아 병실로 갔더니 좀 더 창백해지신 백 박사님이 며느님과 간병인과 함께 계셨다. 백 박사님은 ‘옆의 환자가 신경 쓰이니 밖의 휴게실로 나가자’며 휠체어에 태워 달라 하셨다. 며느님과 간병인은 ‘곧 의사가 회진 와서 어제의 검사 결과를 알려줄 시간이니 그냥 병실에 계시라’고 했지만, 백 박사님은 약간의 신경질까지 내시면서 끝내 휴게실로 나가셨다. 휴게실에서 백 박사님은 “나는 아무 미련이나 원망, 또는 불안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데, 그냥 심박사가 보고 싶어 불렀다. 또 한 분 만나고 싶은 분은 보령제약의 김승호 회장님이다. 며칠 후 퇴원하면 요양병원으로 갈 예정이다” 등의 말씀을 하셨다. 다른 말씀은 없었다. 잠시 후 저녁 식사 시간이라 간병인의 부름을 받고 병실로 들어가시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7월 20일, 부음을 들은 것이다. 백 박사님은 2023년 3월 펴낸 회고록 약로여정(藥路旅程, 서울대학교 약학역사관 발행) 98-99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나와의 관계를 설명하셨다. “전략.~ 나의 사회생활을 되돌아보면 심창구 명예교수(모교 25회)는 나에게 많은 도움과 조언을 주었고 나는 그의 영향을 받은 점이 많았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2003년 심교수가 식약청장 재직 시 나를 기술자문관으로 위촉하여 활동하게 해 줬고 평양제약 방문도 그의 추천으로 갔었다. ‘종합 실용 의약용어사전’과 ‘팜텍’ 발간에 즈음해서는 많은 도움과 조언을 해 줬으며, 내가 서울대 발전기금에 기부할 때도 그의 자문을 받았다. 심 교수는 내가 주관하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서 축하와 격려를 해 주었다. 내가 보령제약에 재직 시의 일이다. 심창구 교수가 직장암 수술을 받고 퇴원했을 때 나와 같이 있는 연구소의 성열익(심 교수의 고교 동기생) 박사와 함께 심 교수 내외분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심 교수는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고마워하니 오히려 내가 무안할 정도다. 나는 필요할 때면 수시로 심 교수의 조언을 구했고, 그럴 때마다 올바른 판단으로 자문해 주었다. 나는 심교수가 정년 퇴임 후 우리나라 약학사 발굴과 정립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우리나라 약계의 보석 같은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백 박사님의 과분한 사랑에 감읍하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드린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08-06 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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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3> 침수와 누수문제
지난 호에 이은 자기 자랑임을 미리 밝혀둔다. 1. 침수(侵水)문제 1988년 강남구 자곡동에 길 새 좋고 남향(南向)인 벽돌집을 샀다. 집 앞에 제법 넓은 잔디 정원이 있었고 반(半)지하에는 세를 놓을 수 있는 방이 하나 있었다. 이 집의 난방은 기름 보일러(燈油) 방식이라 지난 호에서 자랑한 ‘연탄 아궁이 개선 기술’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이 집을 사서 한껏 좋아하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아~ 이 집을 사셨군요”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배수(排水)가 잘 안되어 장마철이면 침수되는 집을 샀다고 혀를 차는 소리였다. 어쩐지 집을 보러 다닐 때 동네 복덕방 영감님이 자꾸 다른 집을 추천하더라니.. 실제로 그 집에 살아보니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아래층 뒷마당이 침수되었다. 세입자가 아예 양수기(揚水機)를 설치해 놓고 살 정도였다. 큰 걱정이었다. 반지하라 물을 도로 쪽으로 뺄 수도 없었다. 전문가들에게 물어봐도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침수의 원인이 무얼까? 비 오는 날 찬찬히 살펴봤더니, 뒷마당으로 떨어진 빗물이 건물의 왼쪽 모퉁이를 돌아 넓은 앞마당을 가로질러 집 밖의 집수구(集水口)로 흐르고 있었다. 경로가 이렇게 길다 보니 경사(勾配)가 완만해서 물이 신속하게 빠지지 못하는 것이 침수의 원인이었다. 그럼 배수 경로를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불철주야(?)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빗물을 건물의 오른쪽 모퉁이로 흐르게 만들어 주면 배수 경로가 1/3 정도로 짧아지고, 이에 따라 배수 경사가 커지기 때문에 배수가 훨씬 빨리 될 것 같았다. 결론이 이에 이르자 나는 곧 물이 오른 쪽으로 흐르도록 뒷마당의 수평을 바꿔주는 공사를 시작하였다. 시멘트 한 포대를 사서 모래와 섞은 다음 뒷마당의 왼쪽면이 오른쪽면보다 조금 높아지도록 만들었다. 단돈(?) 10여만원을 들여 반나절 만에 끝낼 수 있는 매우 간단한 공사였다. 그 후로는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우리집이 침수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건 기적(?)이었다. 수백만원을 들여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던 숙원 사업을 내가 해결하다니!. 동네 사람들은 그후 나를 조금이나마 우러러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침수 문제를 속이고 다소 싼 가격으로 나에게 집을 팔고 뒷집으로 이사간 전 집주인의 시선에는 복잡함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후로 한동안 나는 침수문제 해결 전문가라는 혼자만의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었다. 2. 누수(漏水)문제 그후 한동안 별 문제없이 잘 살고 있던 어느 날, 반지하집 천정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누수 사건(?)이 발생하였다. 급히 동네에서 사람을 찾아 방수(防水) 공사를 부탁했더니, 한 사람이 큰 해머를 메고 와서는 대뜸 “여기를 까부술까요, 저기를 까부술까요?”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아니 어디서 누수가 되는 지부터 찾은 다음, 까부수는 공사를 하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게 아니냐?’ 했더니, 자기는 누수 부위를 찾을 줄은 모르고, 주인이 부위를 특정해 주면 까부수는 공사를 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주택의 누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문가가 거의 없었다. 어이가 없어 당장 그 사람을 돌려보내고, 나 혼자 해결책을 궁리하기 시작하였다. 몇 날 며칠 간의 고뇌 끝에 드디어 한 아이디어가 머리에 떠 올랐다. 즉 ‘누수가 의심되는 부위에 페놀프탈레인 액 (이하 지시약)을 반 컵 정도 붓고 몇시간 후 누수액을 받아 pH를 알칼리성으로 조정했을 때 액이 빨간색으로 변색(變色)한다면 P액을 부었던 그곳이 바로 누수의 원인 부위라는 생각이었다. 바로 몇 군데 누수 의심 부위에 하룻밤 간격으로 지시약을 붓고 다음날 받은 누수액에 알칼리를 가했더니, 오직 다락방의 화장실 물통에 지시약을 넣고 받은 누수액만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물통에서 누수가 일어났던 것이다. 당장 물통의 꼭지를 돌려 잠그자 누수가 바로 멈추는 것이 아닌가!. 할렐루야! 이 지시약법(indicator method)은 인류(?)가 개발한 누수탐지법 가운데 가장 간단, 저렴하고 비파괴적인 방법이 아닌가 한다. <필자소개>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07-23 0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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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2> 연탄 아궁이 개량 기술
연탄 아궁이 개량 기술 인생을 돌아보며 내가 집안일 중에 잘했던 일, 즉 혹시라도 아내나 자식들 앞에서 “나도 한때는 말이지!” 하며 은근히 자랑할 만한 일이 있었나 곱씹던 중, 문득 신혼 초 수유리 단독주택에서 아궁이를 고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975년 겨울, 신혼방은 유난히 추웠다. 온돌방 바닥이 워낙 냉골이라 요와 이불을 아무리 깔아도 몸이 떨렸다. 석유 스토브를 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어느 날, 나는 반지하에 있는 부엌으로 내려가 방이 이렇게까지 추운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살펴보니,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연탄의 열기가 방의 고래로 제대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불길을 고래 쪽으로 유도하는 철제 두꺼비의 목이 짧고 철판도 얇았다. 열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철물점에 가서 목이 길고 두꺼운 두꺼비를 구입해 교체하고, 열이 샐 만한 틈은 모두 진흙으로 메웠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불길이 고래 속으로 잘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날부터 방바닥이 뜨끈뜨끈해져 안방이 훈훈해졌다. 대성공! 이제는 살 만한 방이 되었다. 기세를 몰아 굴뚝에도 손을 댔다. 짧고 틈이 벌어진 굴뚝을 한 층 높이고, 갈라진 부분을 메웠다. 그때만 해도 사다리 없이도 지붕을 사뿐히 오를 체력이 있었다. 이어 다락에 올라 안방 종이천장 위를 들여다보니, 기왓장 틈 사이로 하늘이 드문드문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까운 열기가 종이천장과 그 위 빈 공간을 통해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단독주택 지붕 구조는 이처럼 매우 부실했다. 얇은 송판 조각들을 얼기설기 대고 그 위에 기와를 얹은 형태였다. 그렇다고 지붕을 새로 다 고칠 수는 없었다. 그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종이천장 위에 스티로폼을 밀어 넣어 보기로 했다. 그 시절엔 스티로폼 구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신혼살림에 딸려온 스티로폼 박스가 몇 개 있어 이를 재활용할 수 있었다. 이 세 가지 개량 작업이 끝나자, 그 춥던 안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창문을 열고 자야 할 정도로 방이 더워진 것이다. 대성공! 이 일로 나는 아내에게 ‘제법 괜찮은 남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 평가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2년 뒤인 1977년, 우리는 관악구 낙성대동에 있는 작은 단독 기와집을 약 750만원을 주고 사서 이사했다. 그 집엔 방이 세 개 있었는데 역시나 겨울엔 방마다 추웠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수유리 집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두꺼비를 교체하고 불길이 새는 틈을 진흙으로 메웠더니 역시 방이 금세 따뜻해졌다. 이제 나는 연탄 난방에 관한 한 제법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연탄 아궁이를 이용한 난방법은 기본적으로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연탄의 질이 좋지 않아 하루에 3번 연탄을 갈지 않으면 불이 꺼지곤 했다. 그래서 한밤중에도 한번 일어 나 연탄을 갈아야 했는데, 매번 아궁이가 있는 지하실에 내려 가서 세 방의 연탄을 가는 것은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또한 당시에는 아궁이에서 타고 있는 연탄의 일산화 탄소 가스가 방바닥 균열을 통해 방으로 스며 들어와 방안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죽는 사고가 빈발했었다. 연탄 아궁이 난방법은 방바닥 밑으로 살인가스를 흐르게 하는 흐르는 무서운 난방법이었다. 그래서 연탄 아궁이대신 연탄보일러를 써서 난방을 하는 방법이 점차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집 안이 아닌 집 외벽에 설치하는 연탄 보일러는 가스가 실내로 스며들 위험이 없어 안전하였고, 보일러 하나에 연탄 세 장을 넣으면 방 세 개를 동시에 덥힐 수 있어 훨씬 편리했다. 그 후 1988년, 현재 살고 있는 자곡동 집(당시 시세 약 1억 원)으로 이사했을 때는 연탄 보일러 대신 기름보일러가 가정집의 난방을 책임지고 있었고, 적어도 2007년부터는 도시 가스 보일러가 우리집 난방을 책임지고 있다. 만약 지금까지도 연탄 아궁이를 사용하는 세상이었다면, 나는 아마 연탄 아궁이를 잘 고치는 기술자로 동네에서 어깨에 힘 좀 주며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필자소개>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07-09 0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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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1> 주례 없는 결혼식
주례 없는 결혼식 요즘 결혼식의 모습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결혼식 주례(主禮)가 없어진 일이다. 요즘 참석했던 세 번의 결혼식 모습을 소개한다. 첫번째 참석한 결혼식에서는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신랑이 선글라스를 쓰고 입장하였다. 단상에 오른 신랑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신부가 입장합니다”고 외쳤다. 이에 신부가 아버지와 함께 식장에 들어서더니 대뜸 둘이 막춤을 추었다. 그 후 아버지 손을 잡고 행진한 신부가 신랑에게 인계되었고, 신랑 신부는 서로에게 자기가 어떤 배우자가 되겠는지 서약하였다. 이에 사회자가 “이로써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고 선포하였다. 곧이어 신랑 신부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고, 사회자는 “가장 먼 데서 온 하객은 손을 드세요” 하며 상품을 주는 등 분위기가 여흥(餘興)으로 바뀌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나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두번째 참석한 결혼식에서도 주례가 없었다.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양가(兩家) 부모님의 입장 및 양가 어머니의 화촉 점화가 있은 후 신랑 신부가 함께 입장 등단하였다. 역시 신랑 신부가 각자 배우자로서의 다짐을 읽은 다음 사회자의 성혼(成婚) 선언이 있었다. 특이했던 점은 양가 부모의 덕담(德談)이었다. 먼저 신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자 하객(賀客) 및 신랑 신부에게 제법 긴 겸 덕담을 하였다. 이어서 신랑 부모도 각자 경우에 맞는 좋은 내용의 덕담을 하였다. 식이 끝난 다음 신부 아버지에게 ‘덕담 내용이 좋았다’고 했더니, ‘사실 준비하느라 스트레스 좀 받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식은 누군가의 축가 한 곡으로 마무리되었다. 가장 최근에 참석한 세번째 결혼식도 주례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신부 댁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信者)임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을 주례로 모시지 않았다. 좀 의외였다. 식은 옛날처럼 양가 어머니의 화촉 점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신랑이 먼저 혼자 입장한 다음, 뒤이어 신부가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하였다. 그 뒤 신랑 신부가 혼인 서약문을 낭독한 후 역시 사회자가 성혼(成婚) 선포를 하였다. 그 후 신랑 아버지의 덕담이 있었고, 이어서 신부 아버지의 덕담이 있었는데, 특이했던 점은 신부 아버지가 짧은 덕담에 이어 축가까지 부르는 것이었다. 다행히 축가가 결혼식 분위기에 잘 어울려 하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식은 신랑 아버지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이 세 번의 예식에 참석하면서 느낀 소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무리 주례를 모시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성혼 선언은 목사님이나 원로 인사가 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다. 신랑 또래의 젊은 사회자가 감당하기에는 성혼(成婚)의 의미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이제 결혼식 주례업(?)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제 고 홍문화 교수님 같은 명 주례는 다시 나타날 수가 없겠구나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세번째로는 세 결혼식이 모두 예전과는 매우 다른 형식으로 진행되었지만, 형식이 비슷하더라도 그 내용에 따라 어떤 결혼식은 경건하고 아름다운 반면에, 어떤 결혼식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역시 형식은 진실을 담는 그릇에 불과한 것이었다. 네번째로는 앞으로는 결혼식에 축의금만 보내고 현장 참석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청첩(請牒)을 받으면 꼭 참석해야 했다. 사정이 있어 못 가면 축의금을 전달해 줄 사람을 찾아내 부탁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종이 청첩장이 사라지고 대신 신랑 신부 및 양가 부모 6인의 계좌 번호가 전부 나와 있는 전자 청첩장을 받게 되었다. 이제 직접 참석하지 않고도 내가 지정한 사람의 계좌로 축의금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더구나 요즘 결혼식장의 음식 값이 너무 비싸서 작은 축의금을 들고 가서 식사까지 하고 오기가 미안한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예식의 내용도 우리 같은 구세대의 참석을 별로 반기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었으니, 이제 현장 참석을 삼가는 것이 이 시대의 매너가 아닐까 싶다.<필자소개>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06-25 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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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0> 은사님들이 주신 교훈
지난달 5월은 스승의 달이다. 문득 나를 이끌어 주신 은사님들께 배운 교훈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1983년, 동경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서울대 약제학 교수직에 응모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몇 해 전에 은퇴하신 ‘약제학의 대부(代父)’ 우종학 교수님께서 일부러 나를 찾아오셔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비 오는 날이면 ‘우산 쓰고 가면 되지’ 하지 말고, 그냥 집에 있어라.”이 말씀은 교만하지 말고 세상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 전쟁을 온몸으로 겪어 내신 삶의 지혜이자 사랑 어린 충고였다. 약제학 연구실 생활을 비 오는 날로 비유하시면서 힘들테지만 지혜롭게 잘 견뎌내라고 하신 말씀이었다. 원래도 대범하지 못한 나였지만, 지금도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그 말씀을 떠올리며 한 박자 쉬려 애쓴다. 또 한 분, 약제학실의 두 번째 교수이셨던 김신근 교수님께서는 실용적이고도 따뜻한 조언을 많이 해 주셨다.“머리 염색은 시작하지 마라. 한 번 염색하면 계속해야 한다. 어느 날 염색을 거르고 친구들을 만나면 ‘어디 아프냐, 왜 이렇게 늙었냐’는 말을 듣게 된다. 번거롭다.”또 이런 말씀도 하셨다.“차를 살 때는 흰 차는 피하라. 처음엔 예쁘지만 금방 더러워져서 세차(洗車)가 번거롭다.” 김교수님의 한의약학(韓醫藥學)에 대한 깊은 식견도 인상 깊었다.“숙지황을 만들 때 ‘구중구포(九蒸九曝)’란 꼭 아홉 번 찌고 말리라는 뜻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하라는 의미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이나 ‘구중궁궐(九重宮闕)’처럼 ‘아홉’은 숫자라기보다 횟수의 많음을 뜻한다.”또 이런 말씀도 해 주셨다.“‘동의보감(東醫寶鑑)’의 성격을 아느냐? 허준 선생이 중국의 여러 의서(醫書)를 검토해 가장 타당하다고 여긴 처방만을 선별해 원전(原典)과 함께 소개한 일종의 종설(綜說, review article)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에는 원처방이 거의 없다. 따라서 ‘동의보감 원방에 따라 만든 OOO’이라는 광고는 대부분 말이 안 된다.” 금년에 작고하신 이민화 교수님도 기억에 깊이 남는다.“장군(將軍)을 왜 ‘제너럴(general)’이라 부르는지 아느냐? 영관급까지는 각자 병과가 있지만, 장군이 되면 병과(兵科)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를 지휘할 수 있는 폭넓은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이 말씀은 나의 약학관(藥學觀)과도 연결되었다. 약학사나 약사로서 경력을 시작할 땐 좁은 분야의 전문가(specialist)가 되어야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면 약학 전반을 아우르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물론 요즘은 제너럴리스트로 졸업해서는 취직도 쉽지 않은 고도의 전문기술 시대가 되었다. 석사 과정 시절부터 나를 아끼고 지도해 주신 박만기 교수님은 말씀보다 행동으로 많은 교훈을 주셨다. 교수님은 약속이 있으면 늘 시간보다 먼저 오셨다. ‘차라리 미리 도착해 기다리는 게, 집에서 뭉개다 늦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셨던 듯하다. 생각나면 즉시 실천으로 옮기는 선생님의 부지런함은 나의 게으름을 일깨워 주셨다. 교수님은 처음부터 못 할 일은 맡지 않으셨고, 일단 맡으면 반드시 제시간에 마무리하셨다. 코로나로 갑작스럽게 소천하신 일이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타깝다. 유병설 교수님은 학문적 자존심이 높으셨다. 외국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시면 내 연구실을 찾아오셔서 자랑하셨다. 나는 교수의 논문 자랑은 당연한 일이라며 진심으로 부러워해 드렸다.한 번은 내가 전화를 받으며 “심창구 교수입니다”라고 했더니, 유 교수님은 “그건 좀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다. ‘심창구입니다’ 또는 ‘교수 심창구입니다’라고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다. 평소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날따라 실수했던 것이다. 유 교수님은 자연계의 저명한 교수님들을 소개해 주시는 등 여러모로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췌장암으로 예순도 되기 전에 소천하신 그분이 요즘 부쩍 그리워진다. 세월이 흐를수록 스승님들의 교훈은 더 선명해진다. 그분들의 말씀과 삶의 태도가 지금도 나의 길을 바로잡아 주고 있다.<필자소개>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06-11 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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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19> 약학의 특성 12: 교육의 깊이와 너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부터 상당 기간 동안, 약학대학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 분야는 매우 넓었습니다. 제약회사나 약국, 또는 병원약국뿐 아니라 화학, 식품, 화장품 공장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진출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이는 약학 교육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개론적인 지식(broad knowledge)을 습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많은 과목을 이수해야 했기에 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대신 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 교육은 다소 부족했습니다.오늘날은 약학대학 졸업생이 다른 산업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과거보다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산업 전반이 단순한 개론 수준의 지식만으로는 기여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고도화되었기 때문입니다.약학 교육은 기본적으로 전문성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약물의 약리작용을 이해하려면 분자 수준의 생화학 및 약리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깊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또한, 약물 설계와 개발을 위해서는 유기화학, 물리약학, 제제학 등 고도화된 전문 지식(specialized or in-depth knowledge)이 요구됩니다.하지만 약학의 직능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런 전문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분야와 융합하고 소통해야 하는 오늘날에는 오히려 더 넓은 범위의 개론적 지식이 요구됩니다. 약학의 4대 분야 중 하나인 신약개발만 보더라도, 약물학·독성학 등 특정 분야의 전문성뿐 아니라,전체 개발 과정을 조망하고 단계별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폭넓은 시야와 개론적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각 연주자 외에 전체를 통합하고 조율하는 지휘자(conductor)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의사, 간호사, 임상시험 관리자, 정책 결정자 등과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서는 통계학, 데이터 과학, 생명윤리, 보건정책, 경제학, 그리고 소통 능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개론적인 지식도 필수입니다.최근 교육계에서는 'T자형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T'자의 수직선은 깊이 있는 전문성을, 수평선은 폭넓은 개론 지식을 의미합니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동시에, 타 분야와 연결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가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약학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러한 T자형 인재가 특히 요구되는 분야입니다.문제는 이러한 전문성과 개론 지식을 동시에 교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가르치려다 보면, 교육 연한을 10년으로 늘려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어떤 이들은 변리사, 변호사, 벤처 캐피털, 기업 경영까지도 약학 교육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입니다. 자칫하면 교육이 산만해지고 학문적 깊이마저 얕아질 우려가 있습니다.이 때문에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효율적인 커리큘럼 구성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약학의 목표와 부합되지 않는 과목은 과감히 정리하고, 새롭게 필요성이 대두되는 분야는 주저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약학교육의 깊이와 너비에 대해 진지하고 치열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약학 교육의 개혁은 결국 커리큘럼의 개혁에서 시작됩니다. 더 이상 커리큘럼에 대한 전문성도, 관심도 없는 교수들에게 그 개혁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이제는 교육학 전공자를 전임 교수로 채용하여, 그들에게 교육 개혁의 주도적 역할을 맡겨야 합니다.몇 년 전부터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퇴직한 교수의 자리를 동일한 전공 분야의 후임자로 채우는 전통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 관행을 과감히 깨고 약학교육의 미래 목표에 부합하는 새로운 분야의 전공자를 교수로 채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는 커리큘럼 개혁의 실질적인 첫걸음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후배 교수님들의 분발을 기대합니다. 이상으로 12회에 걸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필자소개>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05-28 1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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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18> 『한국약업사』보정판(補訂版) 출판의 의미
금년 3월 약업신문사는 창간 70주년 (2024년) 기념사업으로 『한국약업사』 보정판을 출판하였다. 원 『한국약업사』는 고(故) 홍현오 선생이 구한말에서 1970년에 이르는 시기를 약업(藥業)의 창업시대, 유년시대, 혼란시대, 재건시대로 구분하여 각 시대의 사건들과 약업인들의 활약을 상세히 서술한 불후(不朽)의 명저이다. 이 책에는 재한(在韓) 일본인의 약업 (제3장), 장업소사(粧業小史, 제6장) 및 주요 의약관계 연표도 함께 실려 있다. 이번 보정판에서는 기존 본문에 인물 색인을 추가하여 독자의 편의를 높였다.나는 『한국약학사(2011년, 한국약학대학교육협의회) 』와 『서울대학교약학대학100년사(개정판, 2017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등의 편찬 과정에서 『한국약업사』를 자주 참고하였다. 이 책을 펼치면 약계(藥界)의 수많은 선각자들이 삼국지의 영웅호걸들처럼 어려웠던 시기를 헤치며 시기에 약업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박진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한국약업사』에는 삼국지 (등장인물 약 1100명) 보다 더 많은 인물들 - 한국인 1107명, 일본인 72명, 기타 외국인 18명 등 약 1200명 - 이 등장한다. 이처럼 수많은 선배 약업인들의 피땀어린 활약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가 신약개발강국을 논할 정도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배님들의 과감한 도전과 용기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이 책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이토록 방대한 약업계의 역사를 빠짐없이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藥學史分科學會, 2014년 창립) 회원들은 『한국약업사』를 우리나라 근·현대 약학사 및 약업사 연구의 최고의 경전(經典, bible)으로 꼽고 있다.다만 원저는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기에 다소 불편함이 있었다. 발간 당시의 흐름에 따라 본문이 세로쓰기 및 2단으로 편집되어 있고, 한자 사용이 많으며, 당시의 표현 습관이 현재와 다소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약학사 분과학회의 김진웅 회장과 이영남 운영위원(충북대 명예교수), 그리고 서울대 약학역사관(藥學歷史館)의 주승재 관장 등과 협의하여 이 책의 보정판을 약업신문사의 창간 70주년 기념사업으로 발간하자고 제안하였다. 그 결과, 이 보정판이 탄생하게 되었다.보정판에서는 본문을 가로쓰기 형식으로 바꾸고, 일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은 오늘날의 용어로 바꾸었다. 물론 원저의 향기를 잃지 않도록 지나친 수정은 삼갔다. 우리들은 각자 이 책을 여러 차례 읽으며 문장을 다듬고, 일부 오류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또한 주요 등장 인물 및 사건 관련 사진, 연표, 인물 색인도 추가하였다. 사진 자료 등은 약업신문 이종운 주간의 협조를 받았고, 실무 작업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박주영 학예연구원의 도움을 받았다.이 작업을 하면서 아쉬움도 남았다. 유세환, 이석모 등 약학사적으로 중요한 여러 선배님들의 사진을 구하지 못해 책에 싣지 못한 점, 그리고 이 책 이후의 약업사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현실이 특히 안타까웠다. 이를 통해 그때 그때 기록을 남기는 습관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다.이번에 『한국약업사』 보정판을 통해 장차 세계 약업을 선도할 포부를 가진 우리 한국 약업계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깊은 영감을 얻게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바이오 의약품 등의 연구·개발·제조에 매진하고 있는 젊은 약업인들이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약업인들의 도전 정신과 기업가 정신을 배우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미래를 열어가기를 바란다. 과거를 반추하고 배우는 일이야말로 역사를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으로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국약업사』 보정판 발간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게 해준 우리나라 약계 전문지의 종가(宗家) 약업신문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필자소개>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05-07 1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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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417>. 약학의 특성 11. 임상약학과 맞춤약학
내가 1967년 약대에 입학했을 때부터 조윤성 교수님은 임상약학(clinical pharmacy, 臨床藥學)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셨습니다. 그 후 실로 오랜 세월에 걸쳐 논란을 벌이다가 근래에 와서 드디어 임상약학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6년제 교육을 실시하던 2009년부터 본격적인 임상약학 교육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임상약학이란 창약학, 제약학, 용약학(用藥學)이라는 약학의 3대 분야 중에서 용약학의 목적을 구체화시킨 이름입니다. 임상약학 교육을 통해 약사들의 보다 정확하고 안전한 약물 투여가 가능해졌습니다. 종래의 약물요법을 돌이켜보면, 환자에게 어떤 약을 투여할 때 일률적으로 어른은 1정, 어린이는 1/2정을 투여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체중이 심하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어른은 무조건 1정을 투여하는 것은 불합리해 보이지 않습니까? 더구나 인종이나 개인에 따라 약물에 대한 반응 (약효 또는 부작용)도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률적으로 일정량을 투여하는 종래의 약물 투여방식에는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지요. 1995년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9살짜리 소녀가 어느 날 프로작(Prozac, fluoxetine)이라는 치료약을 복용하는 도중에 발작을 일으키고 사망하는 사고가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소녀를 부검한 결과 프로작의 혈중 농도가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그래서 이 소녀를 입양한 양부모가 살인 의혹을 받았는데, 누군가의 의견에 따라 유전자 검사를 해 본 결과 이 소녀에게는 간에서 프로작을 대사시키는 CYP2D6라는 효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상용량의 약을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약이 간에서 대사되지 않고 체내에 축적되어 사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2000년도에 포춘(Frotune)이라는 잡지의 표지에 ‘유전자 비극(a DNA tragedy)’라는 제목으로 크게 실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약물 대사에만 개인차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약물 분자가 결합하여 약효를 나타내는 체내 약물수용체(receptor)에도 개인차가 있었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에서 개발한 폐암 치료제인 이레사(Iressa, gefitinib)는 서구인보다 아시아인에서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이는데, 이는 이 약의 수용체인 EGFR의 변이체(mutation)가 아시아인에게 월등히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밖에 약물의 흡수와 배설의 속도를 좌우하는 막 수송 단백질(membrane transporters)도 인종과 개인에 따라 그 발현과 활성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와 같은 환자의 유전적 특성의 개인차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같은 약을 같은 용량으로 투여하는 종래의 약물요법은 매우 잘못이라는 사실을 모두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특정한 약에 대해서는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파악한 다음에 투여할 약을 선택하고 사용량을 결정하도록 되었지요. 옛날에 이제마 선생이 주창한 사상의학(四象醫學), 즉 환자의 체질에 따라 약을 달리 써야 한다는 생각과 같은 맥락이지요. 이처럼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여 약물요법을 결정하거나 신약을 개발하고자 하는 생각을 맞춤약학(individualized or personalized medicine)이라고 부릅니다. 구두에 발을 맞추는 방식에서 발에 구두를 맞추자는 생각이라고나 할까요? 미국 UCSF병원에서는 약 의사 (藥醫師, Pharm. D)가 환자상담을 통해 맞춤약학을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약학, 특히 임상약학에서 약물유전학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될 것입니다. 다만 환자의 유전자(DNA) 검사는 윤리적 문제 때문에 당장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의 유전적 정보가 공개될 때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장차 과학과 윤리가 적절한 합의를 이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맞춤약학’에 대해서는 이미 약춘 31과 32 (2008.1.2과 1.16일)에서 언급한 바 있음을 밝힙니다.<필자소개>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04-23 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