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고] <11> 한일 SKO 심포지움과 영어
지난 4월 22일부터 24일까지 일본의 교토대학에서 서울대와 교토대학 및 오사카 대학의 생명약학 (약제학) 분야의 대학원생들이 모여 제4회 SKO 합동 심포지움을 열었다. 서울대에서는 필자를 포함한 4명의 교수와 9명의 대학원생이 참여하였고 일본의 두 대학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인원이 참석하였다.
제1회 SKO 심포지움은 2004년 12월 교토대학에서 약화학 관련 분야의 3개 대학 대학원생들이 30개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제2회 심포지움은 2005년 12월 생명과학을 주제로 오사카대학에서 열렸는데 26개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8개의 교수들의 강의도 있었다. 이 때에는 전남대 약학대학도 참여하였다.
제3회 심포지움은 합성화학 및 천연물약학을 주제로 서울대에서 열렸는데 28개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 심포지움은 구두 발표, 특히 영어 구두발표의 기회가 거의 없는 한일 양국의 대학원생들에게 영어로 구두 발표하는 연습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심포지움의 모든 순서는 영어로만 진행되었다.
막상 심포지움을 시작해 보니 학문에는 일본학생이, 발표에는 우리학생이 앞서는 모습이었다. 우리 학생들은 대개가 유창한(?) 영어로 일본 학생들을 압도하였는데 필자의 젊은 시절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 들었다. 학생들의 발표가 끝나면 좌장을 맡은 양국의 교수들은 예외없이 “active discussion”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청중으로 참석한 학생들, 특히 일본 학생들은 좀처럼 토론에 참여하려 들지 않았다. 우선 영어로 말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음을 심포지움이 끝난 다음날 관광버스를 타보고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다음날 교토의 ‘하루 종일’코스의 관광버스를 타게 되었다. 버스에는 한국인 8명과 일본인 10명 정도가 타고 있었다. 우리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관광 내내 모두가 질문 한마디, 잡담 한마디 없이 조용히 안내양의 안내 멘트만 듣고 다녔다. 오전 관광이 끝나고 모두 같은 식당에 들어 가 점심을 먹을 때에도 일본인들은 행여 숨소리가 옆 사람에게 들릴까 조심하는 사람들처럼 조용히 식사를 하였다. 잡담을 하며 즐겁게 식사를 즐기려던 우리들 마저 숨을 죽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었다.
일본인들이 이처럼 조용히 관광을 하는 것은 그들의 “사람을 무서워하는 민족성” 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남의 집을 방문해도 자기 신발을 집밖 쪽으로 가지런히 놓고 들어 가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이 일본인들이다. 그렇다. 이처럼 사람을 무서워하는 일본학생들에게 처음 만난 한국인에게 영어로 질문을 하라는 것은 어쩌면 두렵고 가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각종 국제학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일본 학자들은 아마 엄청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죽을 각오로 극복해 낸 영웅들일지도 모른다.
일본사람에 비하면 우리는 때로는 무례할 정도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비교적 사람을 쉽게 대하고 ‘정’도 쉽게 주고 받는다. 이는 우리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즉 연구 수준을 높이고 영어로 말하고 듣기를 조금만 더 연습한다면 우리나라의 젊은 약학자들이 국제학회에서 활약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내년도 오사카에서 열릴 제5회 SKO 심포지움이 또 하나의 발전의 전기가 되기를 기원하며.
2008-05-21 07:52 |
![]() |
[기고] <10> 의약품안전성은 사회문화적 이슈
2007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제3회 세계약학회의 (PSWC)”가 열렸다. 필자는 이 학회의 심포지움에 초청을 받아 “ICH, CIOMS, ISOP, ISPE and other acronymic vehicles to enable harmonization of pharmacovigillance” 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바 있는데, 이와 관련한 필자의 소견을 이에 소개한다.
의약품의 사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안전성과 유효성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의약품의 안전성이 ‘과학’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인자에 의해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미국 FDA가 2000년 출혈성뇌졸중 위험 문제로 미국 내 사용을 금지한 phenylpropanolamine (PPA)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2004년 사용 금지 결정을 내렸지만, 영국 등은 그 사용을 제한은 하되 금지하지는 않았으며, 세계에서 13개국 (2005년 WHO자료) 이외에는 이 약물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어떤 나라에서는 판매가 금지된 약물이 다른 나라에서는 판매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만나게 된다. 만약 약물의 안전성이 오직 과학에 의해서만 판정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PPA의 사용에 관한 제한 내용은 나라에 관계없이 일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인종에 따른 유전적 차이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어떤 약물에 대한 안전성 판정 기준이 나라별로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은 의약품의 안전성이 과학 이외의 다른 인자들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오늘날과 같은 ‘과학’만능주의 시대에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러나 과학에만 의존하지 않고 문화사회적 요인까지도 고려하여 안전성을 평가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떤 나라의 의약품 안전에 대한 요구 수준은 그 나라가 처해있는 경제 수준, 의료수준, 제약산업의 기술 수준, 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등 사회문화적인 제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최빈국이 미국에서와 같이 최고도의 안전성이 보장된 의약품의 유통만을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불합리하다 할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사회문화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과학’을 강조하면서 최고의 품질, 최고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선진국끼리의 담합일지도 모른다. 만약에 ICH 같은 국제기구들이 회원국인 미국, 일본 및 EU 만의 입장을 고려하여 고도의 안전성이 확립된 의약품만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게 규정한다면, 이는 결국은 ICH 회원국이 만든 의약품만 지구상에서 유통되게 만드는 셈이 된다.
다른 나라는 그만한 수준의 의약품을 생산할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기구들이 진정으로 인도적인 측면에서 의약품의 안전성 문제를 고민하고자 한다면 각 나라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그 나라에 알맞은 “안전성 수준”을 결정할 수 있는 ‘의사결정 알고리즘’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과학을 자랑하는 선진국이 감당해야 할 몫이요, 보편적인 인류애를 실현하는 길일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의약품의 안전성을 과학으로만 바라보고 푸쉬하여 무역장벽을 높이려 한다는 비난을 듣지 않게 될 것이다.
국제기구의 발전을 위하여 건배!
2008-05-07 07:59 |
![]() |
[기고] <9> 올바른 약의 사용과 약가 (藥價)
지난 2008년 3월 26일 서울대 구내의 호암 교수회관에서는 대한약학회 주최의 제2회 팜월드 심포지움 "우리나라의 약제비관리체계, 이대로 좋은가?" 가 열렸다.
실제로 진행된 내용은 단순한 '약제비' 개념을 뛰어 넘어 '약물의 적정사용과 약가' 라는 한차원 높은 것이었다.
이 심포지움의 마지막 순서에서 필자는 외람되게도 다음과 같은 요지의 "총평"을 하게 되었다.
21세기 약물 사용과 관련한 정부의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는 환자로 하여금 right drug을 right price 에 사용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일이다. right drug 이란 특정 환자에게 안전하고 유효하며 꼭 필요한 약을, 양적으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고, right price란 그렇게 선택된 약이 적정한 가격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환자의 safety를 존중함으로써 인권을 존중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의료보험 재정도 절약함으로써 국민의 복지를 향상해야 하는 정부의 당연한 사명이라 할 것이다.
Wallace박사는 주제 강연을 통해 미국이 right drug의 선택과 관련하여 왜 PBM (pharmacy benefit management)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어떻게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가를 설명하였는데, 우리의 의료 사정이 미국과 다르기는 하지만 결국은 safety와 재정이라는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미국과 같은 방향의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철학과 노하우를 좀 더 철저하게 이해하고 배웠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나라도 이미 금년 4월 1일부터 의약품의 적정 사용 (right drug 사용하기)을 사전에 점검하기 위한 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처방조제지원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로 한 바 있다.
다만, 약물의 price와 관련해서는 우리의 여건이 미국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같은 성분의 약이라면 처방과 조제시 되도록 값이 싼 제네릭으로 대체하도록 권장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만, 신약이나 개량신약에 대해서도 무조건 싼 약가 (藥價)만을 강요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지나치게 '싼 약가정책'으로 인하여 국내 제약산업이 붕괴되게 된다면 복지의 수단으로서의 의약품의 사명도 달성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궁극적으로는 "싼 약가정책" 의 지속도 불가능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의약품은 인류를 위한 "복지의 수단" 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모든 국민이 이 '복지의 수단'을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고품질의 의약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약품은 동시에 "제약산업"의 산물임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복지와 산업"간의 균형을 취하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예컨대 최근의 "생동성 파문"을 보면 정부가 과연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요컨대 복지부는 의약품의 복지적 특성, 즉 안전성과 약가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수립하고, 지식산업부는 의약품의 산업적 특성, 즉 제약산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도록 함으로써, 복지와 산업간의 건전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시점에 의미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한 약학회에 감사드린다.
2008-04-23 07:45 |
![]() |
[기고] <8> 노무현 대통령의 기록정신과 약학사
지난 2월 24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전대통령의 송별을 위한 장차관들의 만찬 모임에 전 식약청장의 자격으로 참석한 바 있다.
약 230여명이 참석했는데 이 때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청와대기록담당자"로부터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여정부는 그간 대통령 기록물의 완전한 보존과 활용에 역점을 두고, 이를 위해 2007년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e-지원 시스템, 업무관리시스템을 통해 생산된 전자문서 116만 건을 포함한 총 350만여 건의 기록을 '대통령기록관'으로 넘겼다고 한다.
심지어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할 때 기록한 메모지도 전부 수거 분류해서 보관하였다고 한다. 이는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역대 대통령기록물 총 33만여 건 (이중 14만 건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기록물)의 10배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고 한다. 대화에 참여했던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참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 과거의 대통령들은 왜 기록물을 거의 남기지 않았을까?
잘 알 수는 없지만,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거나 아니면 기록을 남김으로써 후세에 구설수가 발생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후자가 이유라면, 대통령의 투명한 통지를 위해서라도 상세한 기록의 보존은 반드시 법으로 강제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기록의 평가'라고 본다면 역사를 쓰기 위한 첫 단계는 '기록과 보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우리 약계는 과연 후세의 역사를 위해 오늘날 기록을 충실히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20개 약대의 홈페이지에 들어 가 보았더니 그 기록의 양과 질이 매우 부실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부터라도 모든 대학이 최소한도의 역사라도 잘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왜 우리는 제대로 기록하지 않는가? 우리는 원래 그런 민족인가?
그러나 조선시대의 '조선실록'을 보면 우리의 기록정신은 적어도 조선세대에는 절대로 나쁘지 않았었다. 그 훌륭한 기록정신이 근현대에 와서 왜 나빠지게 되었는가는 전문가들이 연구할 대상이겠지만, 아무쪼록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조치가 우리로 하여금 '조선실록'의 정신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일본의 기록문화는 가히 '지독'해 보인다. 작년에 발간된 '일본약학사학회'의 간행물을 보았더니, 크고 작은 학회들과 각종 회의 등에 대해 어찌나 상세하게 기록했던지 실제로 일어났던 일보다 기록된 내용이 더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깨알같은 유언을 남기는 일본인이라고 하더니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약학에 대한 기록은 다른 분야에 비해 특히 빈약해 보인다. 그나마 단군신화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를 다룬 고 김신근 교수의 '한국의약사 (2001)'와, 근세 이후를 다룬 홍현오 선생의 '한국약업사(1972)' 그리고 약업신문사의 '한국약업100년(2004)' 같은 극소수의 역작이 없었다면 어찌할 뻔했는지 아찔한 생각이 든다.
앞으로 약대나 제약계를 정년 퇴직하시는 원로분들을 중심으로 본인들이 겪은 크고 작은 개인사(個人史)들이 속속 발간되기를 기대해 본다.
훗날의 약학사를 위한 디딤돌을 하나씩 놓으시는 원로님들을 뵙고 싶다. 대한민국 약학사 만세!
2008-04-09 07:12 |
![]() |
[기고] <7> 우리나라 최초의 4년제 약대는 이화여대
필자는 약학회지 최근호 (제51권 제6호, 361-382, 2007)에 실린 한국약학사 라는 논문을 통하여 우리나라 4년제 약대의 효시가 이화여대 약대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그 논지는 다음과 같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9월 경성약전 (서울대약대의 전신)은 사립서울약학대학(이하 사립서울약대) 으로 개명하고 동년 10월 초 약학대학 중 가장 먼저 개강하여 정상 수업을 시작하였다.
학제는 여전히 전문부 3년제였으나 1948년에 전문부와 학부로 개편되면서 희망자는 1년을 더 수학하여 총 4년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1948년 8월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되었다. 사립서울약대 전문부(3년제)는 1948년 6월 제1회(92명), 1949년 2월 제2회(97명), 1949년 7월 제3회(94명), 1950년 5월 제4회(110명) 졸업생을 배출하고 그 존재를 마감하였다.
한편 4년제 학부는 1950년 3월에 제1회(11명), 1950년 5월에 제2회(11명)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로부터 4년을 빼면 1946년에 4년제가 도입된 셈이다. 물론 1946년 당시에는 4년제라는 제도가 없었다.
즉 당시에 3년제 전문부로 입학했던 학생 중 일부가 1948년에 추가로 생긴 학부(4년제)로 옮겨 1년을 더 공부(총 4년)하고 1950년에 졸업한 것이 최초의 4년제 졸업생이 아닌가 한다.
사립서울약대는 1950년 한국전쟁 (6.25)시 부산으로 피난을 가 있었는데 1950년 9?28수복 후 문교부(文敎部)는 아직 부산의 가교사를 쓰고 있던 사립서울약대를 4년제 국립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에 편입시키고 전문부는 폐지하였다 (9월 3일 각의 결정).
그래서 1951년 9월 29일 졸업생(18명)부터 국립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졸업생(제5회)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로써 약학교육은 4년제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서울대약대는 1953년 9월부터 을지로 6가에 있던 교사로 복귀하였고, 1959년 5월 종로구 연건동에 있던 서울대음대와 교사를 교환(이전은 8월)하여 1975년 7월 말까지 16년 간 사용하다가, 1975년 8월부터 관악산에 있는 서울대 종합캠퍼스에 합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이화여대는 1945년에 행림원(杏林院, 의약대학을 이렇게 부름) 약학과(정원 100명)를 신설하였다.
1945년과 1946년 신입생은 전문부(3년제)와 학부(4년제)의 이중 구조로 모집하였다가 1947년 6월 20일, 21일 양일간에 걸쳐 편입시험을 시행하여 응시자 전원을 4년제 학부에 편입시켰다.
편입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학생 43명은 1948년 7월에 3년제로 졸업(3년제 제1회 졸업생)하였는데, 이로써 전문부는 끝나게 되었다. 1949년 7월에 첫 4년제 약학사 졸업생(55명, 제2회 졸업생이라 부름)을, 1950년에는 제3회 졸업생 44명을 배출하였다.
이렇게 보면 이화여대의 약대 4년제는 49년 7월에서 4년을 뺀 1945년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1946년 4년제를 시작하여 1950년 3월에 첫 4년제 졸업생을 배출한 사립서울약대보다 입학에서는 1년, 졸업에서는 8개월 정도 앞선 것이다.
이화여대 행림원(의약대학) 약학부는 1954년 약학대학으로 승격하였다. 요컨대 이화여대를 우리나라 약대 4년제의 효시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4년제 약학교육의 효시는 서울약대가 아닌 것이다.
2008-03-26 09:54 |
![]() |
[기고] <6> 아시아약학대학협회 (AASP)와 우리의 아시아 이니시어티브
지난해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AASP (Asian Association of Schools of Pharmacy)의 제3회 컨퍼런스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다. AASP는 2000년 10월, 시드니에서 열린 FAPA 모임 뒤에 약학교육 관련자들의 합의에 의해2001년 4월 태국에서 아시아의 약대 교수들 (16개국 54개 약대로부터 약 105명) 이 모임으로써 태동되었다.
제 1회 컨퍼런스는 2004년 6월 중국 북경에서, 제2회는 2005년 11월 태국의 방콕에서 열렸으며, 제4회는 2009년 말레이시아의 페낭에서 열리게 되었다.
AASP는 아시아 대륙은 물론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Asia Times Online이 정의하는 기타 아시아 지역 39개국 406개의 약학대학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필자는 2006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이사가 된 이래 필리핀의 Cebu (금년 1월) 및 대만의 타이페이 (금년 6월)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는데, 이번 컨퍼런스에는 우리나라에서 20여명 (이중 10여명은 전주우석대)이 참석하였다. AASP는 주로 아시아 각국의 약학교육에 관하여 논의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예상과 달리 각국의 “약학대학협의회”와 같은 단체의 연합체적 성격을 띠고 있지 않다.
이 것은 아마도 각국의 약대협의회장 또는 학장의 임기가 대개 2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들을 주축으로 모임을 구성할 경우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또 각국에 약학교육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직 깊은 교육에 관해 깊은 논의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AASP는 현재 부득이 교육문제와 약학 양측을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아무튼 이 모임은 아시아 약학인들 특히 태국, 필리핀,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의 약학인들의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최근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약학과 약업을 둘러싼 각국의 이니시어티브 쟁탈전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 약학 질서에 일본이라는 새로운 축을 추가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약학대학 (중국약학대학교 및 심양약학대학교)를 갖고 있다는 강점을 살려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고 있다.
동남 아시아 각국은 지리적으로 가깝다던지 또는 약학의 수준이 비슷하다는 동질감을 바탕으로 서로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입장은 약간 어정쩡하다. 높은 학문 수준으로 아시아에 어필하기에는 일본에 밀리고, 연대감으로서도 동남아 각국 간의 오랜 친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잘못하다가는 아시아 지역에서 우리나라가 소외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다소 학문 수준이 낮은 AASP와 같은 아시아 지역 학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라는 지역 내에서 아시아인들끼리의 이해와 친목은 우리나라의 미래 발전은 물론 아시아라는 공동가치 개발에 필요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에도 언제가 EU와 같은 바람이 불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높은 수준의 학회와 함께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다소 친목 중심의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발걸음은 부지런해야 한다.
2008-03-12 07:02 |
![]() |
[기고] <5> 일본약학사학회와 고령화 사회
작년 (07년) 4월 14일 필자는 일본약사학회 (藥史學會)총회 (동경대학약학부 강당)에서 ‘한국의 약학사’라는 특별강연 (강연요지; ‘藥學史雜誌’ 제42권 제1호)을 하였다.
이는 2006년 12월 20일 서울 시청 옆 프레지던트 호텔의 조그만 객실에서 이상섭 서울약대 명예교수님의 소개로 오쿠다준 (奧田俊) 名城大 명예교수를 비롯한 일본약학사 연구회원 수명에게 고 김신근 서울약대 명예교수님의 역저인 ‘한국의약사’ (2001, 서울대 출판부)의 내용을, 그리고 작년 3월8일 서울대천연물과학연구소에서 동경대 약대의 츠타니 키이찌로 (律谷喜一郞)교수를 비롯한 일본의 근대약학사 연구그룹에게 같은 내용의 강의를 반복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5000년간의 약학사를 1시간 강의에 맞게 압축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 후 이 강연 내용에 최근의 약계 역사를 추가하여 ‘한국약학사’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약학회지’ 제51권 제6호 (2007)에 게재하게 되어 이 일에 발을 들여 놓은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보람도 느끼고 있다.
오늘은 일본약사학회에 가 보고 놀란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번째 놀란 것은 ‘藥學史雜誌’의 연조가 40년이 넘었다는 것이었다.
또 그 내용이 얼마나 상세한지 실제로 있었던 일보다 기록의 양이 더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었다. 부러웠다. 그리고 약학사에 관한 학회나 연구자, 연구논문이 거의 없는 우리 현실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한국약학사’ 논문을 집필하게 되었고, 이 때 한약분쟁이나 의약분업, 그리고 6년제 실시 과정 등을 상세히 쓰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두번째 놀란 것은 일본약사학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대개 상당한 고령자 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약대를 정년퇴임한 교수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 학회의 이사회에 참석해 보니 약 30명 참석자의 평균 연령이 82세 정도였으며 90이 넘은 분도 3분이나 계셨다. 과연 일본은 고령화 사회이었던 것이다.
일본이 고령화 사회라는 증거는 TV에서도 보인다. 일본 TV의 연예 프로그램의 사회자 중 70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급 사회자가 적지 않은데, 이는 싱싱한 (?) 젊은이만 사회를 보는 것인 줄 아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었다.
세번째로 놀라운 것은 이 분들이 몇 시간에 걸친 회의를 전혀 지루해 하지 않으며 예산 및 결산 등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같으면 젊은이에게 시켜도 좋을만한 일들을 어르신들 스스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고 있었다.
만약에 궂은 일은 젊은이에게 시키고 고령자는 대접만 받으려고 했다면, 일본의 고령화 사회는 이처럼 건실하게 뿌리내리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일본이 오늘날과 같은 건실한 고령화 사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한다’라는 고령자들의 자주독립정신의 덕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학사 연구의 필요성은 일본보다 우리에게 더욱 시급하고 절실하다. 그러나 약학사를 젊은 사람들에게만 맡기는 것은 무리이다. 그들에게 당장에 닥친 일들이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이제 약학사는 약대를 정년퇴임하신, 그래서 젊은 사람들보다 시간 여유가 있으실 것 같은 명예교수님들께서 맡아 주시면 어떨까 한다. 그래야 비로서 우리나라도 참다운 고령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참다운 고령화 사회를 위하여 건배!
2008-02-26 10:57 |
![]() |
[기고] <4> 21세기는 맞춤약학 시대 (下)
21세기의 꿈인 맞춤약학 은 환자의 유전적 특성 검사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에 유의하여야 한다.
첫째, 환자로 하여금 약물유전학적 검사에 대해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환상을 갖게 해서는 안된다. 이는 아직 약물유전학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전자뿐만 아니라, 식사, 환경 및 의료와 같은 외부 인자도 약물요법의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 검사는 도입초기에는 비쌀 것이기 때문에 부자만 이 검사의 혜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보험회사도 이 비용을 부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셋째, 제약회사는 소수인종 이나 유전적으로 약효가 안 나타나는 그룹 또는 부작용위험그룹 으로 검사 결과가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신약을 개발하기 꺼려 할 것이다. 만약에 그런 그룹을 위한 약이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약은 대단히 비쌀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런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기술이 발달해도 별 혜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넷째, 사람의 유전적 특성을 세밀하게 분류해 놓으면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문제가 생길 우려가 높다. 예컨대, 약이 잘 안듣는 사람, 또는 약으로 치료하기 힘든 사람으로 분류된 사람은 보험료를 더 내야 보험에서 받아 주려고 할지도 모른다. 또 자신이 병에 걸리면 치료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남이 알거나 또는 스스로가 알게 될 때에 받게 될 정신적인 문제도 심각한 문제이다.
다섯번째, 의사나 환자는 물론 가족이나 고용주 또는 보험회사에 대해 이 정보를 어느 정도 엄격하게 괸리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약물유전학적 검사의 보급과 이를 통한 맞춤약학의 실현을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선은 이 검사의 윤리와 안전의 수준에 대해 국제적인 합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특히 선진국과 비선진국간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1월,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시험하고 분석할 때에 FDA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도록 하는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 을 공포하였다.
이런 접근법을 통해 한 나라의 윤리와 안전에 관한 수준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사회의 부당한 비판으로부터 이 검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가끔 과학의 특정 분야에 대해 사회가 오해를 해서 그 과학의 발전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소비자 단체나 매스컴의 의견에 부단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회가 약물유전학의 윤리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가지고 지나친 규제를 강요한다면, 결과적으로 이 기술의 발전에 의해 혜택을 볼 수도 있었던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게 도기 때문이다.
셋째 이 비싼 기술이 부자 환자에게만 혜택을 주게 되지 않도록, 그리고 제약회사가 유전적 특성면에서 소수인 환자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신약의 개발을 회피하지 않도록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넷째, 개인의 유전적 특성이 공개되어 병의원이나 직장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없도록 유전정보를 엄격히 관리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약물유전학적 검사를 통해 맞춤약학 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지나치게 서둘지 말고 겸손하고 양심적인 태도로 자신의 연구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과유불급 (過猶不及)이라지 않던가?
2008-01-16 07:11 |
![]() |
[기고] <3> 21세기는 맞춤약학 시대 (上)
2006년 2월20∼21일 동경에서 제1회 FIP-일본약제학회 공동주최로‘Individualized Medicine (맞춤약학)’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심포지엄에서 필자는 ‘안전성은 과학적 이슈인가 사회문화적 이슈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까지의 약물요법은 어른이면 1정, 어린이면 1/2정 식의 소위 일정량 투여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약물에 대한 유효성이나 안전성이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갈게 되었다.
즉 어떤 약이 어떤 사람에게는 약효를 나타내지 않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100여 년 전 환자를 약물, 음식, 환경에 대한 반응에 따라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의 4개의 체질로 나눈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약물유전학의 기원이 우리나라 6.25 전쟁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흑인 병사에게 항말라리아 약인 프리마퀸을 투여하였더니 복용자의 약 10%에서 빈혈이 나타났는데, 이들에게는 G6PD라는 유전자가 부족하여 이 약을 대사시키는 효소 레벨이 낮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최근 약물유전학 (pharmacogenetics)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사람에 따라 유전적 특성이 다르고 그 때문에 약에 대한 반응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그 후 같은 약, 같은 용량으로 지구상의 모든 환자를 인종에 관계없이 치료하려는 생각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가지 용량으로 모든 환자를 고치겠다는 발상을 ‘One-size-fits-all’ 요법이라고 하는데 최근 이 요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 매년 미국에서만 입원환자 중 약 10만 명이 약물부작용 때문에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이들의 유전적 특성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약물을 투여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증상·나이·체중이나 기타 임상지표 등만을 보고 의약품을 투여하는 현재의 ‘One-size-fits-all’ 요법은 때로는 효과도 없고 안전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셋째, 환자에게 올바른 약을, 올바른 용량으로,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주의사항과 함께 투여하였다면 대부분의 부작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사실이다.
앞으로 약물유전학이 발달되면, 환자나 질병을 유전적 특성에 따라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꼭 맞는 소위 ‘맞춤약의 조제 및 개발’이 가능해 질 것이다. 이는 기성복보다 맞춤옷이 내 몸에 잘 맞는 것처럼 환자들에게 최적의 약물요법을 보장해 줄 것이다.
최근 한국인중 Cyp450 2D6란 효소의 레벨이 낮은 사람이 인구의 7% 정도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식약청은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 효소에 의해 분해되는 약인 치오다리진을 처방할 수 없도록 조치한 바가 있다. 이처럼 ‘맞춤약학’은 환자의 안전성과 치료를 보장하는 ‘약물요법의 꿈’이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6년제 약학교육에서 임상약학이 지향해야 할 구체적인 목표는 ‘맞춤약학’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21세기는 꿈의 약물요법인 ‘맞춤약물요법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8-01-02 10:55 |
![]() |
[기고] <2> 제약은 산업이다.
지난 11월 8일에는 대한약학회 총회 및 학술대회의 일환으로 “제1회 팜월드 포럼 (주제: 국내제약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이 열렸다. 이날 필자는 패널로 참여하여 “제약을 산업으로 보는 마인드를 가진 정부 부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는 취지의 의견을 개진하였는데, 그 의견을 여기에 옮겨 보기로 한다
의약품은 국민 복지와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는 서민들로 하여금 큰 비용 부담없이 안전한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의약품공급체계를 확립하여야 한다. 현재 복지부와 식약청은 각각 가격과 품질의 규제를 통하여 이 사명을 잘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의약품을 복지의 수단으로만 보는 시각은 의약품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인식할 우려가 있고, 규제만 하다 보면 제약산업 자체를 고사시킬 우려가 있다.
규제가 아니더라도 아시아의 제약산업은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거의 다 고사되었을 정도로 다국적 기업에 밀리고 있다. 여기에 규제일변도 정책에 의하여 만약에 국내제약산업이 고사하게 된다면 국산의약품이 시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 결과 규제의 본목적이었던 복지도 달성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사명이라고 한다면 이런 상황, 즉 국산 의약품이 없어진 상황하에서는 정부는 정부의 존재이유 마저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부는 제약을 복지의 수단임과 동시에 엄연한 산업으로도 보는 균형잡힌 시각을 갖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복지부나 식약청이 이런 시각, 즉 제약을 산업으로 이해하고 제약산업의 진흥에 힘을 쏟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복지부나 식약청의 사명이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약을 산업으로 바라보는 정부 내 별도의 부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을까? 식품의 경우, 역시 복지부와 식약청의 규제를 받고 있지만, 그 원료에 대해서는 농림부와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유사한 구도로 의약품의 복지적 측면에 대해서는 복지부와 식약청이 규제하도록 하되 산업적 측면에 대해서는 진흥적 마인드를 갖는 부서가 담당하였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아버지는 엄하게 가르치고 (규제) 어머니는 따듯하게 격려해야 (장려) 자식이 바로 크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는 바이오산업 (결국 제약산업)을 21세기의 10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해 놓은 바 있다. 그러나 규제만 하는 산업이 성장동력산업이 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10대 성장동력산업 선정에 걸맞는 정책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정부 부서가 필요해 보인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러한 인식을 갖기에 적합한 부서는 산자부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산자부 산하에 “제약산업연구원” 같은 기관을 만들면 어떨까? 이 연구원을 통하여 제약을 산업으로, 그것도 문자 그대로 성장동력산업으로 키워내기 위한 마스터 플랜 (예컨대, 국제규제와 무역장벽, 신약개발 전략, 신약개발 인력 양성 및 수급 계획, 인허가 제도, 신약개발 기술의 관리, 의약품의 사후관리, 특허 등등)을 수립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마침 동화약품 (골다공증 신약기술 수출)을 비롯한 몇몇 국내 제약기업들이 신약개발 관련 기술을 선진국에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겨울바람을 이겨낸 매화의 꽃봉우리처럼 소중하고 눈물겨운 결실들이다.
우리의 꿈, 신약강국의 꿈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징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제언한다. 지금 바로 제약을 산업으로 인식하고 진흥을 서두르자고. 불씨가 있을 때 기름을 부어야 하지 않겠는가?
2007-12-13 11:46 |
![]() |
[기고] <1> 약대6년제 준비의 시급성과 방향성
2009년부터 약대6년제가 시작되지만 그 정체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아직 불투명한 바가 많다. 우선 2011년에 처음으로 타학과 2년 이상 수료자를 대상으로 6년제 약대신입생을 뽑을 것인지, 아니면 요즘 한국약학대학협의회(이하 약대협)의 노력처럼 2009년부터 타학과 2년이상 수료자를 대상으로 6년제 신입생을 뽑을 것인지부터 불투명하다.
2011년부터 약대 신입생을 뽑는 경우 어느 학과에 진학해서 어느 과목을 2년 이상 이수해야 약대 입시에 응할 수 있는지, 또 만약에 2009년부터 6년제 약대신입생을 뽑기로 한다면, 어떤 선수 (先修)과목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약대 응시 자격을 부여할 것인지를 내년 초까지는 공시해야 할 것이다.
6년제 교육의 목표 또한 새삼스레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 우리의 6년제는 소위 2+4년제로 미국의 경우에 가깝고, 우리가 처한 상황은 4+2년제인 일본에 가깝다.
우리가 일본처럼 4+2년제를 채택했더라면 일본을 모방하기 쉬웠을 것이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무엇을 가르치고자 교육연한을 연장하려 하는가”를 명백히 하자고 주장하였다. 자칫하면 6년제는 “늙은(즉, 2년 이상 더 나이 먹은) 학생 4년 가르치는 제도”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떠한 약사, 어떠한 약대 졸업생을 필요로 하는가?” 필자는 “임상약학 전문가, 신약개발지도자 또는 제약산업의 리더를 길러 내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강의 과목 또는 약사고시 과목을 중심으로 6년제를 설계하면 소위 “학과목 이기주의”에 의해 6년제는 필연적으로 ‘단순한 연한 늘이기’에 불과해질 우려가 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6년제 약대 교육의 목표를 위의 3가지로 명쾌히 정의한 다음, 이에 필요한 지식을 4년에 걸쳐 단계별로 교육하는 교육과정을 만들기를 제안한다.
소위 ‘목적이 이끄는 커리큘럼’을 만들자는 것이다. 현재의 교육방식을 Bottom Up 식이라 한다면 새로운 교육방식은 Top Down 방식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6년제 하에서의 강의과목은 예컨대 임상약학 1, 2, 3, 4 및 신약개발학1, 2, 3, 4 그리고 제약산업학 1, 2, 3, 4 로 단순화시킬 수 있고, 현행 4년제 하 교육의 문제점인 일부 지식의 중복, 필수 지식교육의 누락, 학과목간 연계성 부족 및 교육목적 불투명 같은 문제점을 거의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안은 다소 과격한 개혁 같아 보이긴 하지만, 6년제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약대6년제는 지금은 이미 그 구체적인 실행 모습이 드러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적지 않은 부분에서 논의의 수준에 머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비상시국임을 인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긴박한 분위기는 약대협 내에서조차 별로 감지되지 않는다.
이제 시간표를 정해 놓고 하나하나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결정해 나가야 할 때이다. 이에 필자는 약대협, 대한약사회, 병원약사회, 교육부 및 보건복지부가 ‘약대6년제실행위원회(가칭)’라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를 구성하기를 제안한다. 약게는 물론 정부도 남의 일처럼 관망하는 듯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약학교육은, 다른 모든 교육과 함께, 우리나라, 우리국민의 것이지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2007-11-27 1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