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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6> 한국의약품법규학회와 평가과학
지난 11월 25일 제4회 한국의약품법규학회 총회 및 학술대회가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총회에서 필자가 회장으로서 한 인사말을 전재하면 다음과 같다.
유효성과 안전성은 의약품 등의 가치를 결정짓는 2대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유효하고 얼마나 안전한 제품이 유통되도록 허용할 것인가는 규제기관과 생산자 및 소비자의 지대한 관심사임과 동시에 이들 간의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하게 유효하고 완벽하게 안전한 제품을 유통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이처럼 완벽한 제품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규제수준에 합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학회의 영문 명칭에 Regulatory Sciences라는 단어를 쓰고 있고, 이를 법규학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Regulatory Science를 평가과학이라고 부르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가과학이란 국민 다중의 복리를 위하여 유효성과 안전성의 수준을 어떤 레벨로 정할 것인가를 여러 가지 인자들을 평가한 후에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순수과학이 why에 주목하고, 응용과학이 how에 주목한다면 Regulatory Science 즉 평가과학은 which에 주목합니다.
오늘 오전 세션에서 의약품 등의 제품에 어떻게 표시를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를 토의하였고, 오후 세션에서는 화장품의 규제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와, 신약개발 時 의약품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전 연구 검토를 의무화 할 것인가를 토의할 예정입니다. 이런 주제에 있어서 규제기관과 생산기관 또는 소비자 간의 이해가 충돌하게 됩니다.
의약품법규학회는 이러한 이해 충돌 당사자들 간의 불필요한 오해와 충돌을 완화해 보자는 취지에서 2004년 4월에 창립되었습니다. 법규학회의 방법론은 기본적으로 평가과학적 접근입니다. 쉽게 말해서 완벽한 유효성과 안전성이라는 이상과, 생산, 유통 및 소비 과정에서의 제한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평가과학적인 방법론에 따라 연구하자는 것입니다.
의약품법규학회는 지난 4년 동안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만, 처음에 생각했던 포부에 비하면 4년간의 성취는 매우 미미해 보입니다. 이는 식약청과 제약업계, 화장품업계, 건식업계 여러분의 뜨거운 협조에도 불구하고, 회장인 저의 능력이 부족한데 원인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다만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오늘 우리 학회를 대폭 발전시킬 수 있는 분을 새로운 회장님으로 선출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앞으로 새 회장님과 함께 법규학회의 발전을 축원하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각종 유효성 안전성 규제수준이 합리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우리 학회가 규제기관과 생산기관 및 소비자 모두의 선을 위하여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인사말씀 뒤에 진행된 신임회장 선출에서는 2008년 말로 대한약학회장의 임기를 끝내는 전인구 교수(현 의약품법규학회 수석 부회장)를 만장일치로 새 회장으로 선출하고 회장단 등의 구성을 신임회장에게 위임하면서 총회를 끝냈다. 학회장을 마치면서 재정 면에서 많은 부족함이 있었던 점, 그리고 학회지인 "의약품법규학회지"를 창간하였으나 논문 투고가 부족하여 학술지를 제 때에 잘 발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던 점 등이 특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8-12-24 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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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5> 약의 날
지난 11월 19일 롯데호텔 (잠실) 3층 크리스탈볼룸에서 제약유통 세미나, 의약품안전정책 세미나, 기념식, 축하 리셉션 및 자선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제22회 약의 날 행사가 열렸다.
약의 날은 1953년 11월 12일 약사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동년 12월 18일에 제정 공포된 것을 뒤늦게라도 기념하기 위하여 1957년 11월 18일에 제1회 기념행사를 가짐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2회 약의 날부터는 10월 10일에 개최되었는데 이는 10월 10일에 대한약전이 공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 1972년 제 16회 약의 날까지 매년 10월 10일에 약의 날 기념식을 해 왔었다. 그러다가 1973년에 약의 날, 귀의 날 등 각종 보건과 관련된 기념일들이 "보건의 날"로 통폐합 조치되는 바람에 약의 날 행사는 오랫동안 중단되어 왔다.
그러다가 필자가 식약청장으로 취임한 뒤 부활되어 2003년 10월 10일에 제17회 약의 날 부활 기념행사를 갖게 되었다. 그 후 2004년에는 10월 8일, 2005년에는 11월 18일, 2006년에는 11월 15일, 2007년에는 11월 15일, 그리고 금년에는 11월 19일에 약의 날 기념행사를 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2003년 3월 3일 식약청장에 취임하고 보니 식품 관련으로는 식약청이 주관하는 "식품 안전의 날"이라는 기념식이 있었다.
유공자에게 훈장도 수여하는 등 상당히 의미가 있어 보이는 행사이었다. 과거에 약의 날이라는 행사가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는 필자로서는 식품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약품에 관한 기념행사가 없는 것이 못 내 아쉬웠다.
그래서 제약협회나 약사회 등 관련단체와 접촉하여 약의 날을 부활시킬 생각이 없는가를 타진하였다.
관련단체장들과 일련의 모임을 가지면서 필자는 만약에 관련단체 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약의 날을 식품안전의 날처럼 식약청이 주관하면 어떨까 망설이고 있었다.
식약청이 주관하면 우선 예산이 책정되기 때문에 경비 조달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 민간단체에서 주관하는 경우와 달리 약과 관련된 유공자들에게 훈장도 수여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민간 주도의 기념일을 관 주도의 날로 만들면 어쩐지 그 가치가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관련단체들도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약의 날을 민간 주도로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식약청은 약의 날이 부활될 수 있도록 뒤에서 행정적인 도움을 주기로 하였다.
드디어 2003년 10월 10일에 제17회로 부활된 약의 날 기념식이 코엑스에서 열리게 되었다.
당시 필자는 코엑스 주변 삼성로의 교통이 참석자들의 차량으로 마비될 정도의 전국의 의약품 관련 산업에 종사자들이 모이는 큰 행사를 치루고 싶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의약품 산업의 크기와 중요성을 정부와 국민들에게 부각시키고 싶었다.
실제보다 작게 그리고 낮게 평가된 의약품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약의 날 기념식 참석도 추진하였으나 축하 영상 메시지를 받아 행사장에서 상영하는 정도로 만족하였던 기억도 새롭다.
아무튼 부활된 약의 날 행사가 정착되어 가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며, 앞으로 약의 날 행사가 단순한 기념식으로 끝나지 않고 약과 약업인의 가치를 한 단계 제고시키는 모티브로 작동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08-12-10 0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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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4> 우리나라 약학연구의 현황
우리나라 약학연구 논문의 뿌리는 아무래도 대한약학회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1914년 1월 일본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약학회”가 설립되었는데, 1945년 광복이 되면서 해체되고 1946년 4월 13이리에 서울약학대학에서 한국인을 중심으로 한 “조선약학회”가 창립되었다.
1946년 12월 14일에 서울약학대학에서 개최된 첫 학술모임에서 총 6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연구결과가 논문 형태로 인쇄된 것은 1948년 3월에 창간된 “약학회지”가 처음이었다. 1951년에는 “조선약학회”가 “대한약학회”로 개칭되었으나 학회지의 이름은 여전히 “약학회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약학회는 1977년에 영문학회지인 Archives of Pharmacal Research도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이 잡지는 1996년부터 미국 ISI사가 정하는 SCI (Science Citation Index)의 리스트 (expanded)에 등재되었으며, 2007년부터는 미국 Springer사가 출판하고 있다.
한편 한국생약학회는 1970년부터 “생약학회지”를, 1995년부터는 영문학회지인 “Natural Product Science”도 발간하고 있다. 한국약제학회는 설립된 1971년부터 오늘날까지 “약제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다. 끝으로 1992년 설립된 한국응용약물학회는 1993년부터 국문 학회지인 “응용약물학회지 (The Journal of Applied Pharmacology)”를 발간하다가 2008년도의 제16권 제1호부터는 제호를 “Biomolecules & Therapeutics”로 바꾸고 영문으로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국내에서 연구된 약학 관련 논문은 주로 이상에서 언급한 잡지에 게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2007년말까지 이들 논문집에 발표된 논문의 총수를 합쳐보면 9147편에 이른다. 이로부터 약학 연구가 해마다 활발해 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약학 연구의 발전 현황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은 ISI사의 SCI급 국제 학술지에 우리나라가 약학자가 발표한 연구논문을 통계이다.
최근 필자 등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국내 약학자가 SCI 급 국제잡지에 연구논문을 발표한 것은 1979년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1979년 2편, 1980년 1편, 81년 1편, 82년 1편, 82년 2편, 84년 3편이던 SCI급 논문은 1985년부터 1989년까지 매년 11~15편에 이르다가 1990~1994년도에는 24, 28, 42, 52, 85편에 이르고, 1995년부터는 85, 182, 221, 301, 456, 495, 535, 639, 713, 818, 984, 1099, 1099, 1302편 (2007년)으로 문자 그대로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연구가 활성화 된 것은 제약기업 주도의 연구 개발 사업 (주로 1987 ~ 1989년), 과학기술부 지원의 국책연구개발 사업 (1990~1991년), G7신의약사업 (1992~1997년),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기술사업 (1998년 이후) 등의 연구비 지원과 함께, 대학교수의 능력을 SCI급 논문 수 등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정착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현재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국내 제약업계이지만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해 나가고 있는 우리나라 약학의 기개로 미루어 머지않아 블록버스터 신약의 개발과 같은 밝은 미래도 기대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2008-11-26 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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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 가송 약학상
필자는 지난 10월 23일 대한약학회 가을 총회 및 학술대회에서 제1회 가송 (可松) 약학상을 수상하였다.
한편으로 영광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상이란 인생이라는 연륜이 흘러감에 따른 흔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함으로써 송구스러움을 다소나마 잊고 동시에 지나치게 기뻐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가송약학상은 학술업적 외에 약계에 끼친 공로가 많은 사람에게 주는 것을 전제로 동화약품 윤광렬 명예회장이 설립한 가송재단에서 후원하는 상이다.
가송재단은 ‘기업이윤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고자 2008년 4월 설립된 재단으로, 다양한 장학사업과 학술지원에 관한 사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먼저 장학 사업은 매년 장학생을 선발하여 장기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장학생이 성장하여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도록 관리할 계획이며, 학술지원은 학술진흥단체 및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통해 인류발전을 위한 학술연구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금년도에 처음 제정된 상이 가송약학상과 가송의학상이다. 윤도준 재단 이사장은 “‘동화약품은 그 동안 좋은 약을 만들어 사회에 봉사한다’는 기업 이념 하에 희귀의약품 센터 운영 등 국민 보건 진흥을 위한 다양한 공헌을 해 왔다”며 “이번에 재단 설립을 계기로 설립자인 윤광렬 명예회장의 뜻을 받들어 국가 발전에 기여할 핵심인재 양성과 학술분야 발전에 더욱 힘쓰도록 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이 상을 수상하며 그 동안 필자가 약계에 무슨 공로를 끼친 바 있나 회상해 보니 변변히 이룬 것 하나 없는 부질없는 발자취만 보일 뿐이다.
돌이켜 보면 한약분쟁의 시발점이 되었던 KBS의 여의도 법정이란 프로그램에 약계를 대표하는 논객으로 약사회에 의해 차출된 것이 필자가 약계의 현안에 발을 들여 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한약을 약사와 한의사 누가 다루어야 옳은가를 토론한 후 전화를 통해 시청자의 여론을 조사하였는데, 나름대로 당당한 논리를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조직적인 여론 몰기의 결과로 한의사 지지보다 적은 지지를 받았던 아픈 기억도 있다.
그 후 의약분업이라든지 약대 6년제 등의 현안이 생길 때마다 타의반 자의반으로 관련 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이처럼 중요한 현안에 어떤 형태로든지 미력을 보탰다는 사실에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현실의 문제와 무관하게 상아탑의 고고함을 즐기며 일생을 보내고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현안에 관여해 오게 된 것은 솔직히 필자의 애국충정이 대단해서라기 보다, 필자의 마음이 약하여 주변에서 끌어들이는데 피하지 못하고 빠져 든 측면이 큼을 고백한다.
식약청장 시절에 ‘약의 날’을 부활시키는 작업을 했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당시 이를 위해 동분서주해 준 식약청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 드린다. ‘약의 날’ 행사를 통해 약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고양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지금도 충분히 살아나지 못하고 있음은 아쉬운 일이지만 일단은 사라졌던 ‘날’이 다시 살아 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의미는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감사하면서도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가송약학상을 수상하는 바이다. 첫 수상자는 미약한 업적으로 수상하였지만 앞으로는 진정 훌륭한 공적으로 당당히 이 상을 수상하는 분 들이 많이 나오시길 진정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2008-11-05 0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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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2> 요즘 아이들은 행복한가?
나이 좀 먹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요즘 애들은 얼마나 행복하냐, 우리 때는 정말 먹을 것도 놀 것도 없었지” 하는 이야기를 흔히 나누게 된다. 그러나 나는 실은 우리 세대가 가장 행복한 세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특히 나처럼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전기불도 못 보고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피아노도 없고 축구공도 야구공도 없고 마이크도 없고 무엇도 무엇도 없는 그런 여건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다가 인천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전깃불과 야구공 등을 보게 되었다.
1971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발전한다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했다. 1978년 일본 동경대학으로 유학을 가보니 카메라, 가전제품을 비롯한 모든 것이 신기하였다. 심지어 수퍼에 가서 물건을 사면 비닐 봉지에 담아 주는 것마저 신기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가게에서는 책이나 공책으로 만든 종이 봉투에 물건을 담아 주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3년 귀국해서 교수가 되고 보니 용기를 내면 중고 자동차를 살만한 나라 형편이 되었다. 그 후 사정은 급격히 좋아져서 아파트가 흔해지고 각종 전자제품이 싸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우리 친구들은 약국을 하면서 돈을 벌면 자식에게 피아노를 사 주는 성취감을 맛보았다.
우리는 옛날에는 그처럼 가보기 어려운 외국을 여러 번씩 다니고 있다. 옛날에 거의 굶던 우리가 임금님 수라상보다도 더 잘 먹고 있다. 우리 세대는 모든 면에서 크나큰 성취를 경험하였다. 우리는 운 좋게도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을 성취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떤가? 물질적으로는 물론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족한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 애들이 성장하면서 어떤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 애들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날 때의 아파트가 사실상 더 할 수 없이 크고 화려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우리 세대처럼 지하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기 집을 마련하였을 때의 성취감을 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태어났을 때 이미 아버지 자가용차가 있는 요즘 애들은 포니 중고차를 살 때, 그리고 다시 신형 차를 살 때의 성취감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각종 성취감을 못 누리는 반면에 어릴 때부터 영어다 무어다 해서 학원을 다녀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할 것이다. 우리 세대 특히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학원이라는 말, 과외라는 말도 모르고 초등학교를 마쳤다. 공부라고는 학교 수업이 전부이었다. 저녁 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는 요즘 애들을 보면 우리 때보다 훨씬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삶이 너무 고되 보인다.
흔히 “요즘 애들은 너무 풍족해” 라고 말하지만 사실 오늘날 부모 밑에 있을 때 너무 풍족한 것이 그들에게서 성취감을 앗아가는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성세대는 자라나는 젊은 세대를 잘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성취감이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황량하겠는가? 그 황량할지도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야 할 젊거나 어린 세대들을 잘 이해하고 배려할 새로운 책임이 우리 세대에게 주어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좋은 시대를 잘 지내 왔어, 늙은 것이 한편으로 다행이야” 라고 스스로 위로하기에는 젊은 이들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 보이는 요즈음이다.
2008-10-21 1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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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1> 멜라민 사건
멜라민 사건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멜라민은 분자식C3H6N6, 분자량 126.12의 물에는 잘 녹지 않는 백색 결정성 물질이다. 주로 멜라민 합성수지의 원료로 사용하는데 이 합성수지는 내연성 및 내열성이 있어 바닥 타일, 화이트 보드 및 주방용 플라스틱 제품 등에 널리 사용된다. 합성수지는 그 원료인 멜라민이 용출되지 않는 한 식품안전의 문제를 일으킬 일이 없다.
따라서 상식적으로는 멜라민이 식품안전상의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다. 그런데 중국에서 우유에 물을 탄 후 멜라민을 첨가한 기상천외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우유 중 질소 양을 정량 함으로써 우유의 함량을 검사하게 되어 있는 우유시험법을 교묘히 이용한 악질적인 사건이다. 물을 탄 우유에 질소화합물인 멜라민을 첨가하면 진한 우유와 같은 시험결과가 얻어지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멜라민은 경구투여 할 때 급성 독성이 낮고 생식장기 및 피부에도 별 영향이 없으며 유전독성이나 발암성도 없으나 반복투여 시 주로 방광 및 신장에 축적되어 결석을 일으킨다.
비의도적으로 평생 동안 섭취해도 건강상 유해한 영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내용일일섭취허용량 (TDI)은 미국 FDA에서는 0.63 mg/체중 kg/일, 유럽 식품안전청에서는 0.5 mg/체중 kg/일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멜라민 137ppm이 검출된 카스타드 제품을 60kg 성인의 경우 낱개포장 40개 이상씩, 20kg 어린이의 경우 낱개포장 13개씩 매일 지속적으로 섭취하지 않는 한, 또 멜라민 1.5ppm이 검출된 커피프림 제품은 60kg 성인이 20kg 이상의 커피프림 (커피 약 3,700잔 ~ 4,000잔 이상에 해당)을 매일 지속적으로 섭취하지 않는 한 신장염, 신장결석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영유아 5만여 명이 신장결석 등의 병에 걸렸다는 기사는 이 물질의 위험성이 예상외로 클 수도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이처럼 식품원료로 허용되지 않은 물질을 우유 등에 첨가하는 것은 명백한 사기이자 범죄 행위이다.
오늘날은 우리의 식탁을 국산 식품으로만 차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전체 수입량의 약 1/3이 식품일 정도로 우리의 식탁은 국제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 수입식품들을 일일이 검사 (전수검사)해서 합격된 식품만을 통관시킬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설령 의심이 가는 수입식품 컨테이너가 있다고 해도 항구 내에 냉동창고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컨테이너를 해체한 후 전수검사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수입불량식품 문제를 일부라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수입식품의 검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외국 식품을 수입하는 업자들도 무조건 싼 식품을 들여 다 팔 생각을 고쳐야 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염가의 식품이라면 안전문제를 일으킬 개연성이 높은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잘못된 식품 (및 원료)을 수입한 업자들에게 죄를 엄중히 묻도록 법을 고쳐야 할 것이다.
도둑 하나를 경찰 열 명이 막지 못한다고 했던가? 식약청이 아무리 활약하더라도 불량식품 제조업자와 수출입업자가 건재(?)하는 한 완벽하게 불량식품을 차단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답답하지만 불량식품업자가 없어질 그 날까지 소비자가 눈을 부릅뜨고 식탁을 지키는 길 이외에 좋은 수가 없어 보인다. 결국 국민의 의식 수준이 식탁의 안전수준을 결정짓는 것이 아닐까?
2008-10-08 0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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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 연구와 논문
환갑을 지나면서 가끔 나의 연구생활을 뒤돌아 보게 된다. 남은 연구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부쩍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개수로는 제법 많은 논문을 썼다. 그러나 정말로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논문은 거의 없어 보인다.
몇 년 전 박사과정 학생이 나에게 “많은 사람이 심각한 질병으로 죽어 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공부를 그만둘까 합니다” 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일견 무례해 보이는 말이지만 실은 나도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도 내지 못하고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 그러나 능력이 부쳐서 못하는 것 뿐이다. 다만 그런 연구를 하기 위해서도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견 쓸 데 없어 보이는 연구도 필요한 법이다” 라고 겨우 달래서 학위를 마치게 한 일이 있었다.
본질적이고 큰 의미가 있는 연구를 하고 싶은 것은 모든 연구자 공통의 바람일 것이다. 다만 여러 가지 면에서 힘이 부쳐 그리 못할 뿐이다.
나는 정년까지 남은 5년 미만의 기간이나마 정말로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싶은데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영어로는 연구를 research라고 하는데 가만히 글자를 들여다보면 re와 search를 합친 단어로 보인다. 그렇다면 연구란 search를 다시 하는 것, 말하자면 남이 한번 뒤진 주제를 가지고 다시 뒤적이는 것이란 의미가 아닌가?
교수는 연구논문을 써야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publish or perish”, 즉 “연구논문을 발표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연구의 결과물로 논문이 써지는 것이 아니라 연구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를 설계하는 경향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논문 쓰기 쉬운 옛 주제를 다시 뒤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논문은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를 평가하는 가장 강력한 잣대가 되었다.
한동안은 소위 SCI 급 학술잡지에 몇 편의 논문을 냈느냐로 연구자를 평가하더니 이제는 impact factor 가 얼마인 잡지에 냈느냐가 연구자의 우열을 판단하는 지표가 되었다. 이 impact factor는 학문분야별로 사정이 달라서 생물학 관련 학술잡지는 매우 높은데 반하여 화학이나 물리학,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약제학 분야는 그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다.
따라서 생물관련 분야 연구자만 높은 평가를 받기 쉽다는 불만도 타 분야 연구자의 입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Impact factor로만 연구자의 업적을 평가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이제껏 거의 아무런 잣대도 없어 왔던 연구자의 업적 평가가 나름대로 가능하게 된 것은 impact factor의 공이라 하겠다.
특히 연구 업적의 경쟁도 올림픽에서 메달 따기로 인식하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에게 있어서 impact factor 높은 논문 쓰기는 민족성(?)에 딱 맞는 종목이 되고 있다.
아무튼 크게 보아서는 이러한 점수 열풍이 우리나라 과학계의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학자의 SCI 급 과학 논문수가 이제 세계 12 순위 (2007년 업적)를 달리게 된 것이다.
다만 이제는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에서 벗어나 인류를 위해서 의미 있는 연구를 한 결과가 높은 점수의 논문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나는 못하면서 남들에게 바라는 결례를 용서하기 바란다.
2008-09-24 0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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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9> 나의 주례사
나의 주례사의 예를 소개한다.
오늘 사랑하는 아무개 군과 아무개 양의 결혼 주례를 담당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방안이 어두울 때 이 어두움을 물리치기 위하여 어떻게 합니까? 수건을 휘두를까요? 어둠과 씨름을 할까요? 그러나 어둠과 싸워서는 어둠은 결코 물리쳐지지 않지요.
어둠은 전등의 스위치를 찰깍 켜면 간단히 사라집니다. 살다 보면 어둠과 만나는 일이 있을 겁니다. 그 때에 어둠과 싸우지 말고 전등을 키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전등을 키느냐구요? 성경 말씀에 하나님이, 예수님이 문밖에서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문만 열면 됩니다.
문을 열면 예수님이 방 안으로 쑥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전등불을 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들어 오시면 어두움은 즉시 완벽하게 사라지게 되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전지전능하심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와 합력하여 천국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방문을 열어 빛을 받아들일 것인지, 천국을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는 우리에게, 신랑 신부에게 맡기셨습니다. 방문 열쇠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복을 주시고자 결정하셨습니다. 복을 받고 안 받고는 이제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성경에 범사에 미리 감사함으로 예비하신 만복을 향유하라고 했습니다. 감사함은 방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두 사람은 오늘 결혼식을 하지만 서로 상대방의 오늘날이 있기까지 무슨 공을 세웠습니까? 내가 상대방을 낳았습니까? 길렀습니까? 취직을 시켰습니까? 그 직장을 만들었습니까? 어찌 보면 공짜로 다 완성되어 있는 상대방을 얻게 된 것 아닙니까? 너무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누구에게 감사합니까? 우선은 부모님께 감사하지오. 그리고 오늘 날, 이런 상황이 있도록 도와 주신 모든 환경들,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감사하는 사람은 살아서 천국을 경험합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가정이 있습니다. 반면에 돈이 많아도 불행한 가정도 있습니다. 누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 것일까요?
내 마음에 감사함이 있느냐 없느냐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이지요. 자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과 합심하여 천국을 경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신랑 신부는 결코 부모님 가슴에 찬바람이 스미는 언행을 하지 말기를 간곡히 당부합니다. 그냥 감사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자식 사랑은 절제를 해야 하고 부모님 사랑은 억지로 해야 한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을 억지로라도 사랑하십시오. 신기한 것은 억지로 한 사랑도 나중에는 참 사랑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비밀이지요. 부부이건 부모 자식 사이이건, 돈을 벌건 출세를 하건, 감사와 따듯한 사랑 위에 서 있지 않으면 그 성취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새 가정을 이루어 출발하는 이 시점에, 복을 주시고자 방문 앞에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감사와 사랑이라는 열쇠로 방문을 열어 드림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만복을 받아 이 땅 위에 천국과 같은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지혜로운 신랑 신부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행복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그런 인생을 사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08-09-10 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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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8> 생동성시험의 한계
근래 생물학적 동등성 (생동성) 시험과 관련하여 물의가 빚어진 일에 대하여 전문가의 한사람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시험을 부실하게 수행한 사례에 대하여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이 기회를 빌어 생동성 시험에 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자 적고자 한다.
생동성 시험이란 원개발사가 개발한 약 (대조약, brand 약)을 의사가 처방하였을 경우, brand 약 대신 복제약 (제네릭약, 시험약)으로 대체조제해도 좋을 정도로 복제약이 brand 약과 생물학적으로 동등한지 여부를 판정하기 위한 시험이다.
생물학적으로 동등한지 여부는 브랜드 약 (대조약)과 복제약을 사람에게 경구투여 하였을 때 두 약의 혈중농도 프로필이 통계학적으로 동등한가 여부를 보아 판단한다.
동등성이 입증되지 않은 복제약은 시판은 허용되나 대체조제용 약으로는 선정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모든 나라의 정부는 복제약이 생산 보급되어야 약값이 저렴해지기 때문에 값비싼 오리지날 대조약 대신에 값싸고 품질 좋은 복제약이 많이 생산되어 시판되기를 바라는 정책을 펴고 있다. 반대로 brand 약의 원개발사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까다롭게 하여 후발사의 복제를 막고 싶어한다.
생동성 시험은 그 목적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원초적인 한계도 갖고 있다.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생동성 시험을 통하여 시험약이 대조약과 “동등함”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해서 반드시 두 제제가 “비동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두 제제가 동등함을 입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제제간의 혈중농도 추이에 “통계적인 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차이의 유무를 검정하는 통계 (Student's T-test)와 동등성을 입증하는 통계 (BE Test)의 방법론이 다름에 기인한다.
즉 “동등함을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은 아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이는 생동성 시험에 참여한 피험자 (건강한 사람)의 수가 충분하지 못했던 경우에 종종 발생한다.
이 경우, 피험자 수를 늘려서 시험을 하면 “동등”하다는 결론이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하나 유의해야 할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생동성 시험에 사용되는 대조약의 특성도 제조 번호 (롯트 번호)에 따라 변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제조번호의 대조약을 사용하여 시험하였느냐에 따라 복제약의 생동성 시험의 결론도 달라질 수 있다.
또 생동성 시험에 사용되는 대조약을 선정하는 기준은 (1) 오리지날 제품 (2)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약, 또는 (3) 국내에 가장 먼저 도입된 약의 순으로 되어 있는 바 결코 과학적이라고 만은 할 수 없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대조약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대조약이 가장 우수하다는 증거가 없는 점이 생동성 시험의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기준이 흔들리는 약, 가장 우수하지 않은 기준에 복제약의 품질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한 시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동성 시험을 금과옥조처럼 채택하고 있는 것은 마땅한 대안이 없는 데다가 brand 약 제조사들의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복제약 생산으로 의료복지를 추구해야 할 우리나라가 생동성 시험을 어떤 시각으로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국가적 공감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08-08-27 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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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7> 여성 상위시대와 모성애
서울대 약대 학생 중 여학생들이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여성이 모든 면에서 남성보다 우수한 존재라고 믿는다.
우선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길다. 더구나 흥미로운 것은 늙어서 배우자가 사망하면 부인의 수명은 늘어나지만 남편의 수명은 오히려 줄어든다고 한다. 남편 수명이 부인에게 의존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기억력도 여자가 훨씬 좋은 것 같다. 아내는 신혼 초에 남편이 잘못한 일을 평생 되 뇌이며 남편을 압박한다. 남편도 하나쯤은 반박할만한 사례가 있었을 터이지만 좀처럼 기억이 안 나 잔소리를 듣고만 있는다.
그러다 인내력에 한계에 도달하면 그만 “시끄러워!” 소리치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또한 여성은 애 머리 빗기며 다리미질도 하고 찌게도 끓이고 애 책가방도 챙길 수 있지만, 남편은 두 가지만 동시에 하라고 해도 금방 난장판을 만들기 일수이다.
그런 면에서 남편은 외통수이다. 남성은 감성 면에서는 더욱 여성의 적수가 못 된다. 많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TV 연속극을 안 보는 것을 교양 있는 행동인척 생각한다.
그러나 남성들이 그런 연속극을 안 보는 이유는 봐도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일 뿐이다. 왜 여자 주인공이 울고 짜는지 이해를 할만한 감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남자들은 그저 축구처럼 어느 팀이 몇 대 몇으로 이겼는가 하는 명백한 결말이 나는 이야기만 이해할 뿐이다. 설이나 추석에 시댁에 다녀 온 후 아내가 왜 기분이 나빠졌는가를 사실 남편은 진심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아빠보다 아이들에 대한 권위 면에서도 앞선다. 엄마가 아빠더러 아이 좀 깨우라고 하면 아빠는 아이 침대로 다가가 아이를 살살 흔들면서 “야 일어나 엄마 화났어” 라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남편들은 아내를 무서워한다.
얼마 전 TV를 보니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은 이유 10가지를 조사했는데, 연령대를 불문하고 “아내가 무서워서”가 1-3위 이내에 드는 것이었다.
반대로 아내가 집에 늦게 들어가고 싶은 이유 10가지에서는 “남편이 무서워서”는 10위 안에 없고 “남편이 귀찮아서”가 상위에 들었다. 제주도 신혼 여행 중 택시 안에서 신부에게 찰싹 소리가 나게 뺨을 맞는 신랑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만 보면 세상은 말세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성은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위대하기까지 때문이다.
고릴라에 대해 누군가 실험했다는 결과를 들어 보자. 골방에 엄마 고릴라와 자식 고릴라를 함께 집어 넣고 방에 불을 잔뜩 때고 나서 문을 열어 보았더니 엄마가 뜨거워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자식을 머리에 이고 있더란다.
같은 실험을 이번에는 아버지 고릴라와 자식 고릴라에 대해 했단다. 불을 땐 후 문을 열어 보았더니 아버지는 자식을 깔고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병원에서 암에 걸린 남편 곁에서 온갖 정성으로 간호를 하는 부인을 보기란 전혀 힘들지 않다. 그러나 그 반대의 장면은 정말로 보기 어렵다. 직장 일이니 무어니 핑계를 대고 남편은 보통 아내 곁을 지키지 않는다.
결론, 여성은 남성보다 강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이처럼 위대한 존재임을 고백하오니, 여성들이여 여권이 아닌 모성애로 남편을 긍휼히 여겨 주시길, 그리하면 여성 상위 시대가 결코 나쁜 사회가 아닌 따듯하고 안정된 사회가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2008-08-13 0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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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 "교육도 연구 못지 않게 중요한 교수 책무다"
지난 6월 28일 AASP (아시아 약대협회) 회원교수들과 태국의 콘케인 (Khon Kaen) 대학교 약학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콘케인은 방콕의 동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이고 이 대학은 태국의 17개 약대 중에서 중상 정도에 위치하는 학교라고 했다.
한 학년 정원은 150명인데 학생들 중 약 70%는 여학생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중 50명은 입학에서 졸업에 이르기 까지 영어로만 수업을 한단다. 마치 중국 심양약학대학에 영어반, 일어반이 중국어 반이 함께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말레이시아에도 영어로만 교육하는 약대가 있다고 들었다. 국제화 시대에 과감하게 영어로 교육하는 이들의 배포에 다시 한번 놀랐다. 우리가 이런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면 사회 여론이 어떨까?
이 학교의 연구와 교육에 대하여 모토코 칸케이라는 여교수에게 설명을 들었다.
모토코 교수는 일본 교리츠 약학대학 (현 게이오 대학 약학부)을 정년퇴직한 후 콘케인 대학으로 옮겨 1년째 대학원에서는 물리약학을, 학부에서는 약학전문영어를 강의하며, 대학 차원에서는 미국 등과의 국제 교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1년간 체류 기간을 연장 하려고 한다고 했다. 모토코 교수의 말에 의하면 콘케인 대학의 연구수준은 일본에 비해 많이 낮지만 반대로 교육 수준은 일본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필자도 다른 경로를 통해 태국의 약대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일본 사람의 시각을 통해 들어 보니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로 교육에 열심인가를 물었더니 약대 교원이 모두 85명인데 그 중 20명이 상시 외국에 나가 최신의 교육에 대해 연수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귀국해서 강의 교재를 업데이트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대학의 모든 교원들이 모두 영어를 참 잘한다고 생각되었다.
특이한 것은 학장을 비롯한 교원은 모두 부교수 이하로 정교수는 한 명도 없었다. 교수라는 칭호를 그만큼 아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모토코 교수는 일본에서 교수로 퇴임한 분이라 이 사람만 교수로 예우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약대는 최근 연구 역량이 매우 좋아 졌다. 예컨대 필자가 속한 서울 약대는 서울대학교 20개 단과대학 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연구업적을 몇 년째 내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면 교육은 어떠한가? 필자의 소감으로는 연구수준이 올라간 만큼 교육 열정은 반대로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물론 강의 수준도 옛날에 비해서는 많이 향상되었다고 믿지만, 교수의 총역량 중 교육에 쏟는 비중은 틀림없이 옛날만 못한 것 같다.
특히 실습시간에 대한 교수들의 열정이 너무 떨어진 것 같아 걱정이다. 교육의 열정은 학생들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솟아 나는 것이라면 요즘 교수들은 예전에 비해 제자 사랑을 덜 하는 것은 아닐까?
참 말이 난 김에 모토코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 하나를 추가한다.
교리츠 대학은 금년부터 게이오 대학으로 합병되었는데, 그 바람에 학생의 질도 높아지고 남학생수도 70%에 이를 정도로 늘어 났단다. 연세대와 고려대에 약대가 없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합병이 일어 났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또 게이오 대학은 약사 예비면허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CBT시험과 OSCE 시험에 관한 대비가 일본 중에서도 가장 앞선 대학이라고 한다. 한번 견학을 다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을 위하여.
2008-07-30 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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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 중근세 유럽의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 <下>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이 나타난 이유와 의의
그림1은 원서에 게재되어 있는 칼라 유화의 사진으로 성경의 말씀이나 찬송가 일부가 약사인 그리스도와 함께 그려져 있다.
초상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처럼 천국의 의사로부터 천국의 약사로 바뀌어 된 것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마음의 약”을 담은 조제실의 약 용기가 그림의 주제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약사의 인상이 강하고 의사는 간접적인 인상밖에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중세이래 “최후의 심판” 그림 중에 대천사 미카엘이 “마음의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것이 약사를 나타내는 도구로 그려진 것 같다.
또 당시 민중은 매우 고가인 의사의 치료를 받을 여유가 없어 대개 약국을 방문하여 치료를 받았는데, 이런 그림들은 그런 소박한 마음을 갖고 있는 민중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마음의 약”을 나누어 주는 “약사 그리스도”의 그림이 독일 및 이웃 여러나라의 민중 속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17세기초 ~ 19세기는 물론 1968년에도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추상화가 그려진 것을 보면 근래까지도 이러한 사정은 비슷하였던 것 같다.
이들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은 독일의 가톨릭 국가들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에도 보급되어 갔다.
이런 그림이 98점이나 발견되는 것은 그림을 그린 목적이 기독교의 선교에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6-19세기에 걸쳐 주로 독일의 약사가 민중으로부터 존경과 호감을 받았음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하여 약사의 이미지가 향상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림 1: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바이에르베르그의 유화, 18세기 후반, H 90 cm x W 71 cm, 독일 바이에르베르그 약박물관) : 책상 위 책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사랑을 품은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고 쓰여 있고, 밑의 종이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라는 문구가 써 있다.
2008-07-16 0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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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4> 중근세 유럽의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 <上>
일본의 약사학회지 (藥史學會誌, 30,2, 2001)에는 메이죠 (名城) 대학 명예교수인 오쿠다 교수가 쓴 중근세 유럽의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라는 논문이 실려 있다.
그는 1978년 독일 서부의 스튜트가르트 언덕 중턱에 있는 서점에서 “약사로서의 그리스도”라고 하는 B5판 82쪽짜리 작은 책자를 발견하였는데, 이 책에는 바이에른, 오스트리아, 서독, 중북부독일 및 기타 나라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약사로 그려진 그림 38개의 사진 (3개는 칼라, 28개는 흑백)이 게재되어 있었다.
이 그림들은 일부 20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16세기 초에서 19세기에 걸쳐 그려진 것으로, 대개 유화 (油畵)이다. 작은 길가의 예배당이나 순례산의 교회 안에 걸려 있는 그림이라 보존 상태가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다.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일부는 의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은 바이에른 (남부독일 지방)에 35점, 오스트리아 지방에 23점, 알사스. 스위스 지방에 31점, 기타 나라에 9점 (항가리 1, 소비에트 2, 미국 2, 프랑스 2, 스웨덴 1) 계 98점의 그림이 있는 것이 이 책에 의해 밝혀졌다.
당시 유럽에서 약사가 어떠한 존재로 인식되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오쿠다 교수의 논문을 적절히 소개하기로 한다.
<의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
교부 (敎父)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교리” 라고 하는 유명한 부활절 설교 중에 “나는 의사이며 약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또 법황 (法皇) 그레고리우스 7세도 “마타이 설교” 중에 그리스도를 천국의 의사로서 또 천국의 치료약으로 비유하고 있다.
1537년 프랑스의 루안 지방에서 그려진 한 그림에는 스스로 치료약에 둘러싸인 그리스도가 약국에서 조제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 1630년 경에 그려진 유화에는 약국의 조제실 안에서 처방전을 쓰고 있는 의사 및 조제를 하고 있는 약사가 천국의 그리스도로 그려져 있고 다른 약사와 조수는 일반인으로 그려져 있다.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
1630년경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일련의 유화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은 조제실의 조제대 뒤에 서서 조제용 천칭을 왼 손에 쥐고 있는 천국의 약사로 그려져 있다. 약국에 놓여 있는 용기에는 약국이 제공하는 신앙, 희망, 사랑, 겸손, 자비, 인내와 같은 “마음의 약” 이름이 쓰여져 있다.
또 하나님에 대한 3가지 덕목인 신앙, 희망, 사랑과 크리스챤으로서의 4개의 기본 덕목인 겸손, 친절, 인내, 순종, 그리고 성령의 7가지 은사 중 온유, 경건, 용기, 자비와 같은 어구가 쓰여 있다.
또 그림 중 약국 뒷면에 걸려 있는 그림에는 백합 (순결을 의미), 글라디오러스 (하나님의 은총), 외에 우유, 포도주, 강심수 (强心水), 불안수 (不安水), 역수 (力水) 와 같은 어구가 쓰여 있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시 파괴된 남 티롤 지방의 목판화에는 “중한 병에 걸린 사람도 아픈 사람도, 몸이 약한 사람도 우리 약국에 오시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또 18세기 중엽의 설교자인 Franz Xaver Dorn가 쓴 “참으로 참으로 내 마음이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용기를 갖고 기운을 내라.
너의 치유를 위해 은총의 약국은 열려져 있다” 와 같은 시가 쓰여져 있기도 하다.
2008-07-02 1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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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3> 교양있게 나이먹기
나도 올해로 환갑이 된다. 어떤 은사님이 "늙은이는 종자가 따로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시더니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나도 별로 늙을 생각이나 계획이 없었다.
1983년 조교수로 부임하였을 때 언제 시험감독 같은 데 불려 다니는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기다려졌는데, 어느 순간 말단을 면하는 가 싶더니 이젠 어느덧 내가 고참이란다. 심지어 원로라고 부르는 사람도 보았다. 아, 원로라니!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 서너 명이 저녁을 먹으며 어떻게 노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친구는 부인이나 자식에게 나름대로 최선의 서비스를 다하고 있는데도 때로는 그들로부터 무시 받는 느낌이 들어 서운하다고 하였다.
나도 TV를 보다가 말이 잘 안 들려 아내나 자식들에게 물었다가 면박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그 심정이 100% 이해되었다.
나이 먹어 갈수록 점점 주변 사람이 내게 인사를 제대로 안하는지, 나를 무시하는 듯한 언행을 하면 곧 섭섭한 마음이 생긴다. 이 '섭섭병'은 일종의 노인병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집안 애들에게 어른을 뵐 땐 가능한 한 두 손을 꼭 잡고 여러 번 흔들면서 인사를 하라고 가르친다.
기억에 확실히 남도록 인사를 하라는 것이다. 잔칫날 간단한 목례를 드렸더니 한참 뒤에 "근데 자네 언제 왔었는가?" 하고 딴 소리를 하시는 어른을 적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친구는 늙어 갈수록 취미를 붙일 수 있도록 부는 악기를 하나 배워야 한다고 했다. 만원만 주면 노래방에서 실컷 불 수 있다고도 하였다. 노래방에서 분다? 참 좋은 아이디어지만 나처럼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익한 권고일 뿐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평소의 지론인 '교양론'을 펼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나의 교양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교양이 있어야 한다.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교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기술'이 아닌가 싶다. 한번 생각해보자. 흔히 교양하면 독서, 음악 감상, 그림그리기 또는 그림감상 등을 떠올리지 않는가?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혼자서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즉 혼자서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늘 누군가가 찾아주기를 바라거나, 자식이 효도관광을 보내주기를 기다리는 등, 늘 누군가가 놀아주어야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삶은 교양 없는 삶이라는 이야기다.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어린이 TV 프로그램처럼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낼 줄 아는 늙은이, 즉 교양 있는 늙은이가 노년의 비전이 아닌가 싶다. 악기를 배우는데 열심인 그 친구의 교양 있는 삶에 경의를 보낸다.
나는 어떤가? 낮잠 자기 말고 혼자 잘하는 게 무언가? 학생들과 토론하고 논문 쓰고 교회 다니고 뭐 그런 일로 일생을 살다보니, 골프도 술도 바둑도 모른다.
젊었을 때와 달리 음성이 안 나와 노래 부르기도 재미가 없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정년 후는 정말 대책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늘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함은 어찌된 일인지.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교양! 정년을 5년 앞둔 내게 주어진 행복한 과제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할렐루야.
2008-06-18 1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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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2> 약학홍보책자 선택인가? 필수인가?
지난 4월 한일대학원생 공동심포지움을 마치고 주최교인 교토대학 약학부의 학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약은 어떻게 창조되는가” 라는 제목의 300쪽 짜리 소책자를 선물로 받았다. 우선 이 책의 머리말을 그대로 옮겨 본다.
[암, 알츠하이머병, AIDS 등 획기적인 특효약의 개발이 기대되고 있는 난치병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약의 개발에는 유기화학, 물리화학, 생물화학, 분자생물학, 약리학, 약제학 등 많은 학문영역의 종합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만, 이들을 계통적으로 교육하고 연구하고 있는 곳은 오직 약학대학뿐입니다.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신약을 개발하면 노벨상이 수여되어 온 사실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약학은 학술적인 공헌은 물론 질병치료라고 하는 커다란 사회적인 공헌도 가능한 대단히 매력 있는 학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교토대학 학부 및 대학원의 젊은 연구자, 교수, 그리고 조교수 10명이 자신의 전문영역을 중심으로, 때로는 체험을 바탕으로 “신약은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5장에서는 약의 역사와 신약개발의 방법론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6~8장은 실천편으로 감염증 등의 구체적인 질병에 대한 신약을 어떻게 개발하는가에 대해 소개합니다. 특히 7장에서는 세계 최초로 알츠하이머 병 치료약을 개발한 스기모토 교수가 자신이 어떻게 이 약을 개발하였는가를 소개합니다. 9~10장에서는 21세기의 창약 (創藥) 기술인 DDS와 게놈 창약에 대해 해설합니다.
마침 일본의 약학교육은 2006년부터 일부가 6년제로 바뀌는 큰 변혁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육제도 하에서는 “약을 올바르게 사용” 하고자 하는 약사 직능 교육만이 클로즈업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불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의 개발이 약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기회에 신약개발을 통하여 “혼자서도 수많은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는 약학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약학을 약학에 뜻을 세우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상의 머리말을 통하여 6년제 약학교육의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일본 약학대학의 고민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6년제라고 하면 일본 국민들도 “임상약학”은 강화되지만 “약학의 과학적 연구 기능”은 약화되는 것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6년제라고 해서 임상약학 일변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일본 약대 교수들의 절박한 상황인식이 이러한 홍보성 책자를 만들게 한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 약학대학 관련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된다. 책의 내용은 질병과 신약개발에 대하여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정도면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쓰여졌다.
예컨대 아스피린이 어떻게 버드나무과 식물로부터 개발되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이 마치 옛날 이야기처럼 펼쳐져 있다. 쉽고 재미있지만 내용은 정말 알찼다.
솔직히 나 같은 사람도 신약개발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어떤 방법으로 약학을 홍보하고 있는가? 약학대학을 방문해도 제대로 된 약학 홍보 책자 하나 받아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일본과 달리 느긋해 해도 되는 상황인가? 소책자 하나가 만가지 상념에 빠지게 하는구나.
2008-06-04 07: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