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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66> 명강의
내가 섬기는 ‘온누리 교회’의 하용조 목사님은 설교를 잘 하시기로 유명하다. 나는 그 분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설교를 잘 할 수 있을까 감탄하곤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목사님들이 설교를 잘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는 교인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길 잃은 양들을 구원하고픈 간절한 마음이 결여된 설교는 호소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설교 기법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목사님의 설교는 듣기에 편안하고, 쉽고, 위선적이지 않으며 요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누구나 어느덧 빨려 들게 되는 것이다. 일부 목사님들 가식적인 어투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나에게 하목사님의 어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번째로는 무엇보다도 설교하는 내용 자체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목사님은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만 설교하신다. 설교의 내용이 워낙 뛰어나고 멋 있는 분이기 때문에 명설교가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학교에서의 강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학생에 대한 사랑, 강의 기법, 그리고 깊은 전공 지식이 없이는 명강의를 할 수 없다. 학생들이 강의에 집중하지 않자 눈물을 흘리시던 고등학교 때 물리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 눈물이 사랑임을 깨달은 학생들이 그 후 진지한 자세로 수업을 들었음은 말 할 나위도 없다. 학생에 대한 사랑도 없고, 깊은 전공 지식도 없이 오직 유창한 언변 (강의기법) 만으로 강의를 하면, 청중을 잠시 현혹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감동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2008년 4월 4일 우리대학의 학장으로부터 ‘우수강의상’을 받았다. 영광이다. 당시 부상으로 돈(100만원)까지 받았다. 학생들로부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약제학” 강의를 담당한 3교수 중에서 내가 가장 연장자인 까닭에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의혹(?)도 있다. 그러나 그래도 영광이다. 연구만 중시하는 대학의 현 세태에서, 강의를 잘 한다고 주는 이 상의 이름이 매우 훌륭하지 아니한가?. 아무쪼록 2008년 범 서울대적으로 생긴 이 상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란다.. 금년 11월에는 우연히 서울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주최하는 바이오 대중강좌-‘생활속의 생명공학’에 강사로 위촉되었다. 중고등학생을 비롯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강좌에는 공대, 농생대, 의대, 치대, 자연대, 수의대 교수 등 모두 10명의 교수가 참여한다. 우연히 위촉되었다고 했지만, 약대의 누군가가 나를 평생교육원에 추천하였을 것이고, 그 추천은 어쩌면 “우수강의상”수상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평생교육원의 담당자는 나에게 수강자가 일반인이니 강의를 쉽고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쉽고 재미있게’라!. 말하자면 ‘명강의’를 해야 한다는 말인 것 같은데, 이게 어디 그리 간단한 일인가? 잠시 망설이던 나는 결코 적지 않은 강사료에 눈이 멀어 덜컥 강의를 맡기로 승락하였다. 걱정은 그 다음부터 시작되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는다고 했던가? 돈에 눈이 멀면 언제나 수심이 생기는 법이다. 아무튼 나는 ‘맞춤약학-당신에게만 딱 맞는 약을 맞추어 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강의하겠노라 회신하고야 말았다. 조교수 시절, 강의 전날 술을 드시지 못하는 노교수님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그 교수님은 강의하기가 두려우셨던 것이다. 걱정이 되셨던 것이다. 나도 그렇다. 30년 가까이 해 온 강의이지만 막상 다시 하려면 늘 두렵다. 더구나 서울대 학생들의 똘망한 눈빛을 마주 보며 강의하기란, 준비가 허술했다간, 진땀이 나는 일이다. 과연 나는 이번 대중강좌에서 명강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청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철저히 준비하고, 편안한 어투로 강의를 해야지, 다짐을 해본다.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2010-11-03 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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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65> "이 놈의 문이 미쳤나"와 알았시유
충청도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쉽사리 남에게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물으면, 자기들은 사과할 일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단다. 심지어 그들은 쉽게 사과하는 사람을 가벼운 사람이라고 낮추어 보기도 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어떤 서울 여자가 충청도로 시집을 가서 살면서, 옆집에 사는 나이 들은 목수에게 부탁해 방의 문을 제작해 달았다. 그런데 이 문이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목수에게 문이 맞지 않는다고 얘기 했더니, 그 목수가 와서 한다는 말이, “이 놈의 문이 미쳤나? 안 맞고 지랄이여” 했단다. 나는 충청도 출신 아내와의 경험을 통해 이 정도면 충청도에서는 나름대로 심심한 사과의 말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루는 그 새댁이 목수 집에 놀러 가서 목수 부인이 부치면서 권하는 부침개를 먹어 보았더니 맛이 일품이었다. 다만 부침개가 너무 커서 볼품이 좀 없길래 “할머니, 아주 맛 있네요. 근데 조금 조그맣게 만들면 더 예쁘고 좋겠다. 그치요?” 했다. 그랬더니 충청도 할머니 대답하시기를, “내비둬유, 부침개가 무신 미쓰 코리아 나가남유? 맛만 있으면 됐지” 하더란다. 식약청 재직시 업무 관계로 어떤 여성과 대화를 하다가, 내가 놀라면서 그 사람에게 “고향이 충청도시지요?” 라고 소리친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보고 어떻게 아셨냐고 되물었다. 나는 신음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알긴요, 똑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과 35년 이상 살아 봤으니까 알지요”. 그 사람은 부부 싸움을 하면 언제나 남편이 먼저 사과하지 절대로 자신이 먼저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은 애초부터 사과할만한 일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난 “앗 이 사람이 충청도 출신이구나” 고 깨달았던 것이다. 충청도 사람의 세 번째 특징은 맥 빠지는 말을 잘 한다는 것이다. 코미디언 김학래씨한테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충청도 사람이 경영하는 식당에 들어간 서울 손님이 주인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이 집 뭐가 맛 있어요?” 그랬더니 돌아온 주인의 대답은, “밖에서 사 잡숫는 게 다 그렇지유 뭐” 였단다. 솔직한 대답인지는 몰라도 손님으로선 맥 빠지는 대답이다. 충청도 사람은 남들처럼 “다 맛 있어유” 라는 위선적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골의 길거리에서 쌈이나 야채를 뜯어 팔고 있는 충청도 할머니에게 “이거 얼마예요?” 하고 물으면, “줄만큼 줘유” 라고 대답한단다. 1000원 드리면 되냐고 되 물으면, “놔둬유, 집에 소나 먹이게” 라고 대답한다. 할머니 생각에 3000원은 받을 요량이었던 것이다. 성미 급한 서울 아줌마는 제 스스로 값을 올려 결국 3000원에 물건을 산다. 충청도 사람은 결코 자신의 입으로 야박스럽게 ‘3000원’을 부르지 않는다. 오직 “놔 둬유” 이 한마디로 받을 값을 다 받는 것이다.다른 지방 사람이 충청도 사람과 협상을 하면서 흔히 오해하는 것이 “알았시유”란다. 예컨대 경상도 사람이 무언가 열심히 주장을 하면 충청도 사람은 “알았시유” 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경상도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인 줄로 생각하고 회담을 끝낸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충청도 사람이 딴 소리를 한다. 왜 이제 와서 딴 소리냐고 추궁을 하면, “내가 알았다고 했지 언제 한다고 그랬남유?” 란다. 이에 성미 급한 경상도 사람은 “그래 니 잘 묵고 잘 살아라” 며 협상 테이블을 뒤엎는다. 심지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합의했던 사항마저도 다 상대방에게 줘 버리고 자리를 턴다. 이렇게 보면 충청도 사람은, 천상 외교관이 적격인 것 같다. 우리나라 첫 유엔 사무총장으로 충청도 청주 출신 반기문씨가 뽑힌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저 웃자고 해 본 이야기이다.
2010-10-13 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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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64> 교수님이 시키는데 어떻게 못 한다고 해유?
충청도 공주 출신의 아내와 35년 이상을 살다 보니 어느덧 충청도 사람의 기질에 관해 반 전문가가 된 느낌이다. 내가 파악한 충청도 사람의 기질을 한번 기록해 보고자 한다. 다만 이 글을 너무 진지하게 읽지는 마시길 바란다. 그저 다년간 아내를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편견에 가득 찬 재담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다. 우선 충청도 사람은 겉으로 온순하고 예절이 바르지만, 실상은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다. 오래 전 대학원 석사 과정 제자 중에 충청도 출신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실험실에 들어가 그 학생을 불렀더니, 즉시 내게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편 옷걸이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지도 교수가 부르시니 상의부터 단정하게 입고 오려는 의도이었다. 그 학생의 예절에 감탄을 하면서 어떤 실험을 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학생은 물론 ‘예’하고 대답하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다시 그 학생을 불러 내가 지시한 실험을 했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 왈 ‘하지 않았습니다’이었다. 내가 왜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더니 자기 생각에 그 실험은 잘 될 것 같지 않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럼 지시할 당시에 그렇게 대답을 해야지, 하겠다고 해 놓고 안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야단을 쳤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하시는 말씀, “교수님이 시키시는데 어떻게 못 한다고 해유?” 이란다. 기가 막혔다.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고…, 아무튼 그 사건 이후 ‘충청도 학생은 말을 잘 듣지 않는가 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 생각은 그 후 아내와의 결혼 생활 연수가 늘어 갈수록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우리 대학을 11년 전에 정년 퇴직하신 김낙두 명예교수님은 충청도 출신답게 유순해 보이신다. 그러나 많은 후배 제자들은 김교수님의 고집이 전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루는 김교수님이 재임하실 때 내가 “충청도 사람은 고집이 세답니다” 했더니, “나도 충청도 사람인데 별로 고집이 안 센데..” 하셨다. 그래서 내가 “선생님, 모르셨어요? 선생님께 한번 말씀을 드리려면 선생님 머리부터 붙잡고 좌우로 흔드시지 못하게 하면서 말씀 드려야지, 한번 고개를 좌우로 저으시면 그 후에는 아무리 잘 말씀 드려도 안 된다는 사실을 남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더니, 얼굴이 빨개지시도록 웃으시며 수긍하셨다. 재학시절 학생들이 학점을 고쳐 달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끝내 고쳐 주시지 않았던 유일한 분이 충청도 출신인 김교수님이셨던 것이다. 근거를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일제 때의 독립투사는 충청도 출신에 많은 것 같다.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 신채호 선생 등이 다 충청도 출신이시다. 그렇다면 이는 “말을 잘 안 듣는 충청도 기질”과 일맥상통하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독립투쟁보다 더 “말을 안 듣는 행위”가 어디에 있겠는가? 역시 근거는 없지만 36년간의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우리나라가 신속히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충청도 사람들의 기질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일제 하에서 다른 도 사람들은 겉이나 속이 어느 정도 일본화 될 수 밖에 없었지만 충청도인의 속은 그리 간단히 변하지 않았다. 충청도 사람들은, 마치 손 힘으로 눌렸던 용수철이 손을 떼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오는 것처럼, 일제가 물러나자 마자 원래의 충청도인, 즉 원래의 한국인으로 되돌아 왔던 것이다. 내가 오늘날까지 그야말로 대과없이 교수 생활과 공직 생활을 해 올 수 있었던 것도, 범사에 고집스럽게 바른 길만 가기를 강조했던 아내의 충청도 기질 덕이라고 생각한다. 공주 (公州) 출신의 공주 (公主)여! 감사합니다.
2010-09-29 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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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63> FAPA의 ‘서울 선언’
지난 8월 13일 아시아약학연맹(FAPA, 회장 남수자 박사)은 세계보건기구(WHO)의 후원으로 “1차 보건의료에서 국민건강을 위한 약사의 역할에 대한 문제점 및 해결책”을 주제로 서울 팔레스 호텔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워크숍에는 한국, 일본,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싱가포르 등 17개국 50여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진지하게 진행된 이 날 회의에 필자는 청중으로 참석하였다.이 날 특별했던 것은 회의 말미에 아시아 약학교육 제도와 약사의 역할에 대한 일종의 ‘서울 선언’ 같은 결의문을 채택하였다는 것이다. 영문 6개항으로 구성된 결의문의 내용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1. 현재 아시아 각국의 약사 교육 및 약국 업무 내용이 나라별로 매우 다른데, 이는 최소한도의 세계 표준에 맞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2. 약국의 업무 내용은 전 세계적으로 약물 위주에서 환자 중심의 돌봄 (care)으로 바뀌고 있으며, 지역 사회와 임상 업무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다. FAPA 회원국들에서의 약국 업무는 이러한 방향으로 더 변화하여야 한다. 3. 약사의 역할과 약국 업무는 약학 교육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FAPA는 약사훈련기관의 평가를 통하여 약학교육을 지지하고 나아가 향상시키도록 모색하여야 한다. 4. 아시아 각국의 약국 업무는 서구의 발전된 나라에서와 같은 인정을 못 받고 있다. FAPA는 약국 업무가 더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나라들을, 필요하다면 규제기관과의 접촉을 통하여, 도와야 한다. 5. FAPA는 WHO, ACCP (미국임상약학회), AASP (아시아 약대협회), FIP 등 국제적인 건강 관련 기관들과의 협력 하에 전문가 자문단을 만들어, 아시아 지역에서 FAPA가 더욱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6. 약사는 고도로 규제를 받는 전문 직업인이다. 또 약사는 보다 양호하고 안전한 환자 관리를 하기 위한 건강관리 팀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이러한 약사의 역할의 영향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약사의 정치적 존재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FAPA는 각 나라에서 약사가 그 직능에 마땅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각국의 약사단체가 그 나라의 국가 기관에 대해 적절한 대표성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필자는 결의문의 내용 하나 하나에 공감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약사의 정체성, 전문성, 사회로부터의 인정, 임상약학으로의 방향 전환 등 지극히 당연한 내용을, 21세기가 시작된 지 10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 새삼스레 결의문에 넣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 동안 우리를 포함한 아시아 각국은 약사라는 이름을 공유하면서도 약학 교육이나 약사 직능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갖지 않고 지내 왔다. 그 결과가 오늘날 위와 같은 결의문을 만들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필리핀 약대 교수를 만나 “당신의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당뇨병약”이라고 대답을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중국과 태국의 어떤 약대는 신입생을 뽑을 때 영어반 또는 일어반을 자국어 반과 함께 뽑아 졸업할 때까지 그 언어로만 교육한다. 또 일본의 임상약학 교육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게 준비가 잘 되어 있다. 우리는 아시아를 너무 모른다. 아시아에 일본과 중국만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최근의 AASP의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에는 무려 39개국에 400개가 넘는 약대가 존재한다. 아시아에 관심을 가지자. 아시아를 모르면서 세계로 나가려는 것은 쉽지도 않고 자연스럽지도 않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미국과 유럽과 함께 아시아 각국의 약학 교육 및 약사 직능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가 동남 아시아에서 소외된 극동의 한 국가로 남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FAPA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참고로 제23회 FAPA 모임은 2010년 11월 5~8일 대만의 타이페이에서 열린다.
2010-09-08 1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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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62> 내사랑 예나
장남으로부터 태어난 우리 손녀 예나의 나이는 방금 25개월, 우리 나이로 3살이 되었다. 정말 예쁘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손녀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동네 사람들도 예나를 만날 때마다 다들 예쁘다고 난리다. 접대용 멘트가 아닐 것이다. 김연아를 닮아 똘똘하고, 잘 웃고, 총명하고, 귀여운 예나를 보고 예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예나를 보는 재미로 산다. 안보면 못 견딘다. 다행이 아들내외가 우리 집 근처에 살아서 정말 아침 저녁으로 예나를 볼 수 있다. 요즘 아내에게 고백하였다. “당신하고 연애할 때 보다 예나가 더 보고 싶어. 나 예나하고 연애하는 것 같애” 라고. 둘째 손녀 예원이도 태어난 지 방금 2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은 첫 사랑 예나 편 이다. 예나가 한참 말을 배워 쪼잘거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귀여운지! 무얼 설명해 주면 알아듣지도 못한 것 같은데, ‘아 그렇구나’ 한다. 그럼 나는 귀여워 반 죽는다. 그래서 예나가 ‘하부지가 안아 줘’ 하면, 나를 선택해 준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기쁘게 안는다. 옆구리가 결려도 파스를 붙이며 참는다. 자식보다 손주가 더 귀엽다는 말을 많이 들어 왔다. 사실이다. 두 아들이 어렸을 때보다 더 귀엽고 더 소중하고, 걱정도 더 된다. 누군가 말하기를 손주는 내 책임이 덜 하기에 더 귀엽단다. 그럴 듯도 하기도 하나 잘은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 사는 재미가 온통 예나에 달려 있다. 그래서 당신들의 손주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실 수 없으셨던 내 부모님들이 안되어 보이신다. 어떤 분이 늦둥이 아들을 낳고는 오래 살려고 운동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도 예나가 시집갈 때까지 살 수 있을까를 따져 보기도 하고, 오래 살긴 해야겠구나 생각을 하곤 한다. 집사람은 손주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밥 먹이고 기저귀 갈고 돌봐 주어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니까. 나는 밥은 먹이지만 기저귀는 갈아주지 않는다. 데리고 나가 놀아 주긴 하지만 옷을 입히지는 않는다. 요컨대 나는 귀찮은 일은 안하고 데리고 놀기만 하니까 별로 힘들지 않다. 더구나 집사람이 애를 봐주니까 나는 당당하게 아들 집, 아니 며느리 집을 드나들 수 있어 좋다. 그래서 틈틈이 집사람을 꼬드긴다. ‘여보 이 나이에 애 보는 것 빼놓으면 뭐 달리 즐거워할 일이 있겠소? 누구네는 손주들이 미국에 살아서 보지도 못한대. 우린 가까이 사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치?’ 아내도 이내 손주만 보면 비타민을 먹은 듯 피로가 풀린다며 동의한다. 나는 애를 야단치지 않는다. 악역을 담당하기 싫기 때문이다. 야단은 제 부모나 할머니보고 치라고 한다. 심지어 사고 싶은 것 있으면 다 사줄 테니까 할아버지 앞에서 뒹굴라고까지 가르친다. 식구들은 할아버지가 애 버릇 다 버려 놓는다고 야단이다. 그래도 나는 마이 웨이를 갈 것이다. 왜냐고? 예나는 야단칠 필요가 없는 아이임과 동시에 오냐 오냐 한다고 삐뚤게 자랄 애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출생 직후의 예나로부터 순진무구 (純眞無垢)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자라면서 말을 배울수록 밥 먹으라고 하면 ‘안 먹어’ 하고, 장난감을 치우라고 하면 ‘아니야, 이따가 할께’ 한다. 배운 말을 어른 말을 안 듣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또 배운 그 말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어린이 놀이터에 데리고 가면 ‘그네를 태워라, 뒤에서 세게 밀어라. 할아버지도 옆 그네에 타라’ 등 시키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말의 용도가 원래 거절하고, 시키는 이런 것이었나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는 우리 예나가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되도록 오랫동안 순진무구 상태를 유지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설사 때가 좀 묻더라도 나는 예나를 끝까지 예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나는 영원한 내 사랑, 내 운명이니까.
2010-08-25 1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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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61> 아내와 해로 (偕老)하는 비결
결혼 50주년을 맞이한 할아버지에게 「결혼 생활을 50년이나 계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뭡니까?」 라고 한 젊은이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옛날을 회상 하는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들은 멕시코로 신혼여행을 갔었지. 그곳에서 당나귀를 빌려서 둘이 사막을 한가롭게 걸어 다녔어.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탄 당나귀가 무릎을 굽혀서 아내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아내가 바닥에 우당탕 떨어졌지. 그럼에도 아내는 그저「하나」라고 말하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당나귀를 타고 산책을 계속했어. 그런데 얼마 안 지나 당나귀가 다시 무릎을 구부려 아내를 떨어뜨렸지. 그래도 아내는 「둘」하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당나귀를 타더군. 그런데 당나귀가 이내 아내를 다시 떨어뜨리는 거야. 세 번째 떨어진 아내는 말없이 짐 속에서 권총을 꺼내더니 그 자리에서 당나귀를 쏴 죽여 버리더군. 너무 놀란 나는 ‘아무리 그래도 당나귀를 쏴 죽이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아내를 꾸짖었지. 그랬더니 아내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뭐라고 했는데요?」. 그냥 「하나」라고만 하더군. …… 그 사건 때문에 50년 이상 탈 없이 살게 된 거지 뭐.” 유머 책에서 발견한 이야기이다. 요즘 티브이를 보니 아나운서 왕 아무개와 코미디언 김 아무개는 자기 아내에게 100장도 넘는 각서를 써 주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기꺼이. 왤까? 각서를 쓰라고 하면 ‘그것이 이제 잔소리와 추궁을 끝내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란다. 심지어 각서 쓰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게 된다고 까지 하였다. 반면에 남편에게 각서를 써주며 사는 아내는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차라리 이혼을 하면 했지 각서는 못 쓰겠다는 여자의 자존심 탓 이리라. 이처럼 여자의 자존심은 남자보다 세다. 그래서 나는 주례를 설 때마다 “아내를 휘어잡을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라”고 신랑에게 신신당부한다. 아내를 휘어잡으면 잠시 남자의 위신이 서고 남 보기에 폼도 좀 나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만의 하나 아내가 남편에게 휘어 잡히면 그 가정은 머지 않아 십중팔구 깨지게 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남편은 되지도 않을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 그저 행복한 가정이란 간단히 말해 ‘남편이 아내의 주장에 순종하는 가정’ 이라는 현실적 진리를 믿어라. 나이가 들수록 아내를 무서워하는 남편이 늘고 있다. 신혼 초 있었던 잘못을 환갑이 넘도록 반복적, 논리적으로 추궁하는 아내의 잔소리는 모든 남편의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데도 남자는, 늙어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아내가 곁에 있을 것’을 꼽는다. 이 무슨 모순된 반응인가? 아내가 무섭긴 해도 아내가 내 곁을 떠나는 것은 더 무섭다니! 그러나 어쩌랴. 늙을수록 아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내 중독증’ 환자가 되는 것이 남편들의 신세이니. 그러니 각서를 100장 넘게 써 주더라도 “제발 내 곁에 있어 주” 라고 애원할 수 밖에. 오호 통재라.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고 말았는가? 반면에 여자는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영감이 없어야 한단다. 진심일지도 모른다. 설사 농담이라 해도 슬프긴 매한가지이다. 몇 년 전 결혼한 장남에게 쿨한 척 한마디 해 봤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 너도 네 처에게 잘 해라. 가사도 반반씩 나누어 하고” 라고. 내 딴엔 제법 신식 아버지 흉내를 내 본 것이다. 며느리가 임신하고 얼마 안 있어 아들이 내게 말했다. “요즘 같아서는 제가 집안일의 99%를 합니다. 아버지는 좋은 시대를 사신 줄만 아세요” 라고. 아들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나 보다.그렇다. 아들 말대로 나는 모든 의미에서 좋은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더 할 수 없이 행복하다. 그러나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영위하며 해로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손자 증손자 들에게는 한마디 주의를 주고 싶다. “시대가 진작에 바뀌었다. 아내에게 입 다물라, 그리고 순종하라.”
2010-08-11 1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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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60> 약대 4+2년제는 세계적으로 보편타당한 제도
지난 6월 30일 도꾸시마 약대의 이토 교수 등으로부터 일본 약대의 6년제 현황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얻었다. 올해는 일본의 소위 통 6년제 약대에 입학한 학생이 5학년이 된 해이다.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은 학생 전원이 6년간 공부해서 약제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학생은 4년간의 공부만 마치고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의 경우 적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이나 회사 취직 등을 위해 4년 만에 약대를 졸업하였다. 물론 약제사 면허를 따고자 하는 학생은 추가로 2년, 즉 총6년을 공부해야 한다. 이러고 보면 일본의 6년제는 “4+2”년제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국립 도꾸시마 약대의 경우 입학 정원은 80명인데, 4학년을 마치고 졸업할 것인가, 아니면 추가로 2년을 더 공부해서 약제사가 될 것인가는 학생의 3학년 때까지의 성적과 희망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4학년 말까지는 80명 전원이 똑 같은 교육을 받는 것 같다. 도꾸시마 대학은 4년제 및 6년제 과정의 정원을 각 40명으로 정하였다. 작년의 경우, 6년제 지원자의 성적이 대체로 더 우수하였다. 4년제를 지원한 40명은 대부분이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홋까이도 (북해도) 대학도 4년제와 6년제가 있는데 6년제를 지원하는 학생의 성적이 조금 더 우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국립대학인 동경대학과 경도대학의 경우에는 4년제 지원학생이 더 우수하였다 한다. 도꾸시마 대학과 달리 동경대학 등은 희망하는 학생은 누구나 6년제로 진학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작년의 경우, 90%가 4년제로 졸업하였고, 10%의 학생만이 6년제 코스를 택하였다고 한다. 경도대학의 경우에도 4년제나 6년제의 정원은 없다고 한다. 작년의 경우 50명이 4년제로 졸업하여 대학원으로 진학하였고, 30명이 6년제를 택하였다고 한다. 이들 대학 모두 4년제로 졸업하는 학생은 거의 100%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었다. 사립대학의 경우, 4년만 마치고 졸업한 학생은 국립대학의 경우보다 적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립대학들도 4년제 학생의 수를 늘리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정부도 4년제 정원을 늘릴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에는 약제사 공급을 줄이려는 의도도 있다고 한다. 4년제로 졸업한 학생도 나중에 약제사가 되고 싶으면 다시 약대로 돌아 와 2년간 추가로 임상약학 등 관련 공부와 실습을 더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습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실제로 이런 경로로 약제사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상에서 일본의 상황을 간단히 소개하였지만, 6년제 약대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도 4년 만에 약학사로 졸업하는 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우리 대학의 정세호 교수가 바로 미국 SUNY Buffalo약대에서 4년제 약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경우이다. 현재 모든 대학이 4년제를 병행 실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필요하면 4년제 과정을 열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번 팜월드 포럼에서 성균관대 정규혁 교수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프랑스를 비롯한 EU에서도 약대에 4년 학사 과정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요컨대 세계 유수의 선진국들이 4년 학사 과정이 병설된 약대 6년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신약개발 등 약대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연구 기능이 전원 6년제 하에서 무너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우리의 현행 2+4년제는 통6년제로, 특히 4년 학사 졸업이 허용되는 통6년제로 바뀌어야 한다. 약사의 자질을 향상시키며 동시에 대학원 연구기능의 약화를 최소화 할 수 있고, 나아가 약사 수의 조절도 가능한 방안은 오직 이 길뿐인 것 같다. 약계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드린다.
2010-07-21 1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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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9> 과거로부터 미래를 믿는다
과거를 돌아 보면 구비구비 긴 인생 길을 용케도 돌아 돌아 오늘 이 자리에 도달해 있구나 감탄할 때가 적지 않다. 우리 부부는 공부를 잘 하는 큰 아들의 미래를 설계하곤 했었다. 몇 살에 대학을 나오면, 몇 살에 무얼 시키고 등등의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대학을 다니다 아토피를 심하게 앓고 망막에 이상이 생기고 보니,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세운 ‘사람의 시간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절망적이던 아들의 병은 뉴욕에서 약국을 하는 친구와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서 망막 박리를 치료받은 경험이 있는 친구의 조언과 헌신적인 도움으로 말끔히 나았다. 이 두 병이 얼마나 어려운 병인가를 절절히 경험해 온 우리 부부에게 이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우리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미리 미국에 이 친구들을 보내 경험을 쌓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것도 무려 30여 년 전에.내 인생도 기적의 연속이다. 나는 경기도 김포에 있는, 전교생이 50여명 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국민학교를, 전교에서3-4등 하는 성적으로 졸업하고, 당시 경인 지방의 수재들이 모여드는 명문 인천 중학교에 응시하였다. 그러나 시험지를 받아보니 아는 문제가 거의 없었고, 결과는 당연히 낙방이었다. 인천 중학교는 그 정도 실력의 시골학교 출신이 감히 합격할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같은 반의 김군은 합격하였다. 당시 인천 중학교는 전국의 어느 초등학교이건 전교에서 1등으로 졸업한 학생은 무시험으로 입학을 시켰었는데, 김군의 아저씨인 담임 선생님은 김군을 1등으로 서류를 조작했던 것이다. ‘서류를 조작할 바에야 성적이 나았던 나를 1등으로 만들어 합격시켰어야지’ 하는 원망은 사실 그다지 들지 않았다. 나도 내 실력이 워낙 형편없는 줄을 시험을 보면서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소문을 들어 보니 그렇게 합격한 김군은 두 해 거푸 낙제를 하더니 결국은 퇴학을 맞고 말았단다. 만약 내가 서류를 조작해서 그 학교에 들어 갔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낙제까지는 몰라도 비슷한 성적의 밑바닥 학생이 되진 않았을까? 인천 중학교에 떨어진 나는 전원 선착순 무시험으로 신입생을 뽑는 동산 중학교에 들어 갔는데, 1학년 처음 본 시험의 성적이 우리 반 80여명 중 50여 등에 불과하였다. 스스로도 놀랄 수 밖에 없는 초라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노력을 거듭하여 마침내 졸업 시에는 우등상을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성적이 올라간 케이스이다. 졸업 후 동경의 대상이던 제물포고등학교에 응시하여 합격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 해부터 그 학교의 입학 정원이 24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 난 덕을 톡톡히 본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연세대 의대에 응시했다가 떨어졌지만, 1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1967년 서울 약대에 수석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그 때 얻은 작은 자신감은 평생 내 인생의 작은 동력이 되었다. 기적은 그 후로도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절망 속에 있는 우리 아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30여 년 전에 친구를 미국에 보내 놓으신 하나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인천 중학교에 불합격되게 해 주시고, 대신 감당할만한 동산 중학교로 인도하신 후, 입학정원을 늘려 제물포 고등학교에 합격하게 해 주시고, 재수 끝에 서울약대에 합격하게 하심으로 자신감 없던 나를 격려해 주신 하나님. 그 후에도 수많은 기적으로 나와 우리 아들을 살려 내신 하나님, 이처럼 내 과거를 설계하시고 인도해 주신 그 하나님이, 나의 미래도 필경은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 주실 줄을 믿는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산다.
2010-07-07 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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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8> 선거, 겸손, 월드컵, 파이팅
지난 6월 2일 지방 선거가 끝났다. 예상을 뒤엎고 여당인 한나라당이 참패하였는데, 이를 두고 매스컴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여당이 미워, 할 수 없이 국민들이 야당을 찍은 결과라고도 하고, 여당의 교만함에 대한 국민의 응징이라고도 한다. 둘 다 맞는 말 같다. 교만은 늘 화를 부른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늘 “잘 나갈 때가 위험한 때”라고 하신다. “내가 요즘 너무 잘 나가는 것 같으면 내가 지금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라”신다. 사실 잘 나가지 않을 때에는, 자동차가 천천히 달리면 사고가 안 나는 것처럼, 위험할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잘 나갈 때 반드시 “겸손”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 동안 한나라당은 너무 잘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겸손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사고를 당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야당도 이번 승리에 도취하여 국민에게 교만하게 보이면, 다음 번 선거에서 반드시 사고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정치인은 겸손하여야 한다. 어디 정치인 뿐이랴. 무릇 힘있는 자는 누구나 힘없는 자에 대해 범사에 겸손하여야 한다. 힘센 척, 잘난 척 하지 말아야 한다. 교만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이다. 건방을 떨고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상대방을 인정한다. 존중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따라서 상대방에 대해 저절로 온유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 온유, 겸손 등은 본질적으로는 다 같은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실제 개표 결과를 반영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설이 있었다. 젊은이가 잘 사용하지 않는 집전화를 이용해서 여론조사를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여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론조사 전화가 오면 응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한편 야당을 지지한다고 하면 불이익을 당할까 봐 두려워 많은 사람들이 여론조사에 응답을 하지 않거나 거짓 대답을 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만약 정말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라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아무튼 이번 선거를 통해 모든 힘있는 사람들이 겸손한 마음, 온유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되 찾아, 사랑이 넘치는 우리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합치게 되길 기원한다. 6월 12일 대망의 월드컵이 시작됐고 우리나라는 그리스와 첫 시합에서 통쾌한 승리를 얻었다. FIFA 랭킹만으로 보면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한 세나라 즉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의 랭킹을 다 합친 숫자가 우리의 랭킹 숫자 보다 작단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실력이 나머지 나라보다 월등히 뒤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한다. “FIFA 랭킹은 랭킹일 뿐이다. 축구는 실력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맞부딪혀 보지 않으면 결과를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전에 4강 할 때도 뭐 실력이 좋아서 이겼나? 이번에도 잘만 하면 얼마든지 16강, 나아가 8강에 들 수 있다”라고. 나도 FIFA 랭킹을 비웃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이 대목에 관한 한 결코 “겸손한 대한민국”이 되지 않길 바란다. 차라리 교만한 대한민국을 보고 싶다. 제발 상대방을 온유하게 대하거나 심지어 사랑하는 우리 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범사에 겸손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지만, 축구 같은 스포츠에서는 용감무쌍하게 전력을 다해 싸우는 파이팅이 오히려 겸손한 스포츠맨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처럼 두려움 없이, 일치된 전국민의 속마음을 터 놓고 월드컵을 즐겨 보자.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참, 그러나 때로는 이런 와중에도 약대 2+4년제의 개선 방안에 대한 재논의가 무르익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지 말기로 하자. 축구는 지나가도 약대6년제는 지나갈 수 없는 대한민국의 백년대계이기 때문이다.
2010-06-23 1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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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7> 약대 6년제, 4+2 년제로 바꾸자
필자는 금년 초 ‘데일리팜’에 쓴 글을 통해 “새해는 약대 6년제 형식이 재검토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6년제 (개방형 2+4년제)는 누구나 공감하듯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제도는 나쁘게 말하자면, 과거 4년제 때보다 두 살 이상 더 나이 먹은 학생들에 대해 4년간 약학을 교육하는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수업연한이 2년 이상 연장되었지만 약학 자체를 가르치는 기간은 예전처럼 4년인 제도이다. 현 제도의 또 하나 큰 문제점은 대학 학부 교육 전반에 파행을 야기할 것이란 것이다. 특히 자연대, 공대 학생들은 학부 2학년을 마치면 약대 입시에 매달리게 될 것이고, 약대로 빠져 나가지 않고 남은 학생들은 학부 4년을 마치면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매달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략) 때문에 까딱하면 우리나라의 대학 학부 교육 전반이 근본부터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5월 10일자 약업신문을 보면, “지난 4월 28일 중앙대에서 열린 한국약학교육협의회(이하 약교협) 임시총회에서 교과부 대학지원과 박주호 과장이 통 6년제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보이면서 향후 논의과정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주호 과장은 "이공계 학문이 무너진다는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교육 정상화를 위해 약대 통 6년제를 진행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전했다. 특히 박 과장은 "합의된 의견이라면 통 6년제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관련 단체가 논의를 거쳐 통일된 의견을 제시한다면 추진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놀라운 변화이다. 사실 연초 필자가 4+2년제 형식을 바꾸자고 소원을 밝힐 때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는 못 했는데, 교과부 주무 과장이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상황은 상당히 진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말 잘 된 일이다.교과부가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데에는 여론의 뒷받침이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김수봉 교수는 5월 14일 “대학이 의학전문 대학원 입시 준비소인가?”라는 글(조선일보)을 통하여 “내년부터 현재의 약학대학이 6년제 학부 과정의 약학전문대학으로 개편된다. 대학 2학년까지 다니던 학과를 그만두고 약학전문대학 시험을 치르게 돼 학부 과정이 약학 전문대학의 입시 준비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면서 “정상적인 대학 학부 과정의 회복을 위해서 정부는 한시라도 빨리 파행적인 의.치학 전문대학원과 약학전문대학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이미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4+4)는 사실 상 폐지의 길로 들어 선 것처럼 보인다. 이제 약계는 대학과 사회 전반의 지지와 의학전문대학원 폐지라는 흐름을 이용하여 현행 2+4년제를 고쳐야 한다. 지금이 절호의 찬스인 것이다. 교과부는 2+4년제를 통6년제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통6년제는 2+4년제보다 훨씬 좋은 제도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기회에 아예 4+2년제로 변경하기를 강력히 주장한다. 4+2년제는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일본이 오랫동안 검토 끝에 결정한 제도이다. 4+2년제 하에서는 4년 수료자는 기초약학을 전공하고 “약학사’가 되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제약회사 등에 취직한다. 그들에게는 “약사” 면허는 주어지지 않는다. 약사가 되고자 하는 자는 기초약학 4년에 더하여 +2년간 임상약학 교육을 받고 “약사고시”에 합격하여야 한다. 이 약사들은 임상약학 원래의 목적대로 병원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 4+2년제는 기초약학자의 공급 확대를 요구하는 국내 신약개발계, 제한된 숫자의 고급 임상약사를 필요로 하는 병원약국계, 그리고 개국 약사 공급과잉을 반대하는 약사회의 입장 모두를 절묘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묘안이다. 제발 4+2년제로 고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2010-05-26 0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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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6> 차라리 제비뽑기를 하자
지난 5월3일 있은 서울대 총장 선거에서 3명의 출마 교수 중 오연천 교수가 총장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 선거는 대학이라는 비교적 제한된 공간 내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출마자들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갖고 투표에 임할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한 정보가 제공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상황이라면 나름대로 정당성을 확보한 선거였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머지 않아 6월이 오면 전국적으로 각종 지방 선거가 있게 된다. 벌써 얼마 전부터 거리에 입후보자들의 현수막이 어지러이 걸려 있고, 보도에는 입후보자들이 나누어 준 명함들이 뒹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입후보자를 알지 못한다. 정책은 물론이고 이름마저 알지 못한다. 그나마 서울시장이나 도지사 선거처럼 비교적 큰 선거에 나오는 사람은 좀 알지만, 시의원이나 구의원 선거에 나오는 입후보자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이왕 선거를 할 바에야 정부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입후보자의 됨됨이와 정책을 알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각 지역 방송 등을 통해 입후보자간의 토론회를 열게 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도통 여야 정치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입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는 것이 오히려 자기 당에 유리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투표하는 이런 “묻지마” 식 선거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주목할 것은 성경에서는 선거 대신에 제비뽑기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우선 자질을 갖춘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도를 한 후 제비를 뽑는다. 그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돌린다. 따라서 후보자는 모두 그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소위 선거 후유증이라는 것도 없어 선거 후에도 구성원들이 서로 단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선거도 제비뽑기로 해 보면 어떨까?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경식 제비뽑기를 한다면 적어도 “묻지마” 식 투표의 문제점 (정당성의 부족 문제)과 비용 문제, 후유증 문제 등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차라리 제비뽑기로 결정했었으면 좋았겠다 라고 생각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즉 교과부가 신설 약대를 결정하였을 때이다. 돌아보면 작년 6월29일 복지부는 약대 정원을 350명 늘려 신설 대학에 배정하고, 40명을 늘려 기존 대학에 배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때만 해도 정부가 약대 정원을 최소한 50명은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 50명 안도 그 동안 약학계가 꾸준히 주장해 온 “최소 80명” 안과는 거리가 먼 불합리한 것이었다. 그런데 약대 신설 업무가 교과부로 넘어간 이후 일은 더욱 우습게 되어 버렸다. 교과부는 놀랍게도 정원 20∼25명짜리 초미니 약대 15개 신설을 인가해 버렸다. 아연실색! 어이없는 결정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교과부도 처음부터 초미니 약대를 15개나 신설할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초미니 약대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뒷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여러 곳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바람에 자유롭게 정책결정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만약에 교과부가 서류 심사로 약대 신설 요건을 갖춘 대학을 선정한 후, 이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해서 대여섯 개 대학을 선정했더라면, 외부 압력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탈락 대학이나 압력 단체들도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제발 앞으로는 제비뽑기만도 못한 선거나 정책 결정 과정이 결코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 보았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2010-05-12 1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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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5> “빨리 빨리” 정신 예찬
지난 초봄 서울대 후문 낙성대 근처에서는 “영어마을 관악캠프” 공사가 한창이었다. 서울에서 세번째로 문을 여는 영어마을이란다. 그런데 공사는 약속된 개원일인 3월30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까지 지지부진, 완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런 속도로는 도저히 약속된 개원일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개원일을 불과 사나흘 앞두고부터 인부들이 평상시의 몇 배로 늘어나고, 낮은 물론 밤에도 대낮 같은 조명을 켜 놓고 난리 북새통을 이루며 공사에 급 피치를 올리는 것이었다. 드디어 개원일인 3월30일, 영어마을 관악캠프는 겉보기에 아무런 하자 없이 멀쩡한 개원식을 할 수 있었다. 비록 개원 후 2주가 지난 4월25일까지도 개보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유감이지만, 일단 개원일은 지킨 것이다. 장하다. 대한국민!
1980년대 어느 해 여름, 설악산에 대명콘도가 생기던 해에 대학원 학생들하고 그곳엘 갔었다. 그런데 손님은 받았지만 준공식은 내일이란다.(이런 법도 있나?) 공사도 여기저기 덜 끝나 있었다. 밤에 자는데 실례합니다 하면서 인부들이 들어 와서는 방안에 있는 문설주의 페인트를 칠할 정도이었다. 실외 수영장도 밤새 타일을 붙이고 있었다.
얼마나 공사가 다급했던지 손님인 우리 대학원생들보고 일당을 줄 테니 공사를 도와 달라고 했을 정도이었다. 그런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10시, 속초 시장이 참석하는 준공식에는 모든 공사가 감쪽같이 완료되어 있었다. 비록 준공식이 끝난 후 상당기간 추가 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무튼 준공일을 지켜 손님을 받을 수 있었다. 장하다. 우리 대한국민!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일본 기자들이 우리나라를 걱정하는 기사를 쓴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미 축구장 건설을 완료하고, 실제로 그 운동장에서 시합을 치르면서 운동장의 문제점까지 보완한 일본의 기자의 입장에서, 시합이 코 앞에 닥쳤는데도 아직도 완공되려면 멀어만 보이는 한국의 축구장 공사 진척 상황을 보면서, 과연 한국에서 월드컵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까 걱정되어 죽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걱정과는 달리 우리는 월드컵을 훌륭히 치러냈다. 어찌 장하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 그리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공사가 지연되어 실내 수영장의 지붕을 미쳐 덮지 못한 상태에서 시합을 치렀다는 기사를 보았다. 어떤 난리를 치더라도 좌우지간 당일에는 일단 완공을 하고야 마는 한국 국민과, 당일에도 완공을 하지 못하는 그리스 국민, 이 차이가 오늘날 우리나라와 그리스의 차이를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닐까?
1980년대 중반 런던에 한달 간 가 있을 때, 조그마한 보도 블럭 공사 하나를 한달 동안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라면 하루 이틀에 끝내버릴 것 같은 작은 공사이었다는데, 흡사 영국병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았다.
이상의 사례는 우리 국민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처음에는 다소 나태하고 스타트가 늦더라도, 마지막 순간 즉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서둘러 반드시 해 내고야 마는 그런 “빨리빨리” 정신을 가졌다는 것을 입증한다.
요즘 서울 근교에 100년의 예정으로 성당을 짓고 있다고 한다. 100년이란 “빨리빨리” 정신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좀처럼 기다리기 어려운 세월이다. 아마 오랜 세월에 걸쳐 건축되는 유럽의 성당에 자극 받은 결론일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는 “빨리빨리” 병을 고칠 때가 되지 않았나 반성을 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의 “빨리빨리” 정신은 결코 부끄러워할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국과 그리스의 예를 보면 더욱 그렇다. 아무리 서두르더라도 챙길 것은 반드시 챙긴다는 “챙김 정신”이 뒤따라 주기만 한다면, 우리의 “빨리빨리” 정신은 이 시대를 선도하는 시대정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빨리빨리” 만세!.
2010-04-27 0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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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4> 무상 급식과 마음의 상처
옛날에, 그러니까 1950-1960년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는 가끔 학생들에 대해 여러 가지 ‘가정조사’를 하였다. 가정 조사서에는 부모님의 학력은 어떤가? 집에 시계, 재봉틀, 라디오, 자전거 따위는 있는가? 등을 적는 란이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학력에 대해서는 1-2 단계씩 졸업 학교를 상향 조정 (?) 해서 써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집안 살림은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적어 내는데 큰 거리낌이 없었다.
최근 오래 전에 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리가 어렸을 때 이런 저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고 성장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자존심이 강하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이 친구는 더 심했던 것 같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시절에 매우 공부를 잘 했었단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별도의 과외 공부를 받을 수 없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담임 선생님이 특별히 그를 무료로 과외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하셨단다. 그러나 이 친구는 공부를 안 하면 안 했지, 돈을 내고 공부하는 친구들 틈에 끼어 혼자 무료로 과외를 받기는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제안을 사양했지만 그 때 받은 마음의 상처는 작지 않았다고 했다.
이 친구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집안 사정을 시시콜콜히 적어내야 하는 가정조사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도대체 왜 이 따위 가정조사를 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집에 시계나 라디오가 있으면 어떻고 또 없으면 어떻다는 것인지? 부모가 학교를 안 다녔으면 어쩌라는 것인지? 이제와 공부를 시켜줄 것도 아니고, 시계나 라디오가 없다고 사 줄 것도 아니면서 꼬치꼬치 묻기는 왜 물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아이들을 통해 손쉽게 국민들의 생활 형편을 조사해 보자는 정부의 행정편의적인 생각 때문이었겠지만, 이는 도무지 아이가 받을 마음의 상처를 헤아려 보지 않은 참으로 비교육적인 처사가 아니었던가 싶다. 가정조사가 죽기보다 싫었던 아이도 있지 않았을까? 덜 가진 자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과거의 이런 정책은 과연 오늘날 우리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를 잉태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 전원에게 무상으로 급식을 하도록 급식제도를 바꿀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부 학생들에게만 무상으로 급식할 것인가가 얼마 앞으로 다가온 교육감 선거의 최대 이슈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집 아이에게는 지금처럼 유상으로 급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부자집 아이까지 무료로 급식할 돈이 있으면 다른 더 급한 곳에 쓰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한다. 전원 무료 급식은 좌파적인 주장이라고 몰아치기도 한다. 한편 전원 무료급식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무상 급식이 초등학교 의무교육 원칙에 맞을뿐더러, 또 경제적으로 그 정도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급식 문제는 더 이상 돈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이 초등학교 시절 가정조사 때문에 받았던 것과 같은 마음의 상처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식 문제는 마음의 상처와 돈을 저울에 올려놓고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를 저울질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교육 지도자들이 아직도 마음의 상처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전원 무상급식은 시기 상조라 할 것이고, 상처 문제가 돈보다 더 심각하다고 판단한다면 전원 무상급식은 서둘러야 할 것이다. 다만 필자의 저울질로는 마음의 상처가 훨씬 더 무거운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옳은 결론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2010-04-13 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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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3> 김연아의 금메달은 어디에서 왔나?
멀지 않은 옛날에 일제 코끼리 표 밥통을 사러 일본에 가는 우리 주부들의 행렬이 볼썽 사납다는 기사가 매스컴을 도배한 일이 있었다. 그랬던 나라의 삼성전자가 작년에 일본 전자회사 전체의 이익금의 두 배가 넘는 이익을 냈다고 한다. 쏘니 제품이 최고인줄로만 알던 우리 세대에게 있어서 삼성전자의 이와 같은 활약은 문자 그대로 기적이다.
지금 기적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작년에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뀌었다. 원조를 받던 나라가 주는 나라로 바뀐 예는 우리 외에는 달리 없다고 한다. 기적은 경제 분야에서만이 아니다. 민주주의도, 현 정부에서 퇴보했다는 평은 있지만, 과거에 비해 놀랄 만큼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또 과학 수준도 엄청나게 높아져 서울약대가 세계 약대 중 가장 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대학으로 뽑힐 정도가 되었다. 특히 스포츠 분야는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등의 활약으로 종합 5위를 마크하는 등, 우리나라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는 있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우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과거에 비해 모든 면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어떻게 이런 발전이 우리에게 가능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리의 성실한 노력이 발전의 밑바탕이 되었을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그러나 우리 말고도 노력한 나라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만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노력 이외에도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은 그 무언가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설명한다. 그는 설교를 통해 “대한민국은 일제시대와 6.25동란과 가난과 혼란의 시대를 뚫고 기적처럼 반세기만에 세계에서 주목받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중략) 그 이유는 그 동안 우리 선조들이 6.25와 일제시대에 순교의 피를 흘리고, 가난하고 힘들 때에도 하나님을 붙들고 새벽마다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지켜 주신 것입니다”라고 설명한다. 동감이다.
그의 설교를 더 들어보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신세계를 만들었던 미국의 청교도들은 초기에 많은 고생을 하고 미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60년대부터 십계명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제일주의를 제창했던 미국은 대통령이 되면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할 정도로 성경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 사상 때문에 종교 다원주의가 생겼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절대적인 가치에서 상대적인 가치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사회는 동성애가 성행했고, 마약중독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요즘 미국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식적인 신앙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몇십 년이 지난 오늘 날 사회적인 혼란을 가중시켰고, 미국이 세계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주목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국가 발전의 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 것인가? 하 목사님의 결론은 “하나님이 축복의 손을 거두지 않으시도록 겸손해야 합니다” 이다. 우리가 겸손과 성실로 오늘과 내일을 살아 갈 때 우리의 미래는 창대 (昌大)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0-03-31 1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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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2> 초미니 약대 15교의 신설
지난달 26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입학 정원 20∼25명의 약대 15개의 신설을 결정 발표하였다. 이로써 전국의 약대 수는 기존의 20개에서 두 배 가까운 35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그마한 희망과 커다란 절망을 동시에 느낀다.
조그마한 희망이란 약대가 늘어남으로써 우리나라 약학이 얼마만큼이라도 발전할 것이란 기대를 말한다. 신설 대학들이 써낸 신청서를 보면 대부분의 대학이 20명 정도의 전임 교수를 뽑겠다고 했고, 어떤 대학은 모든 약대 학생에게 4년간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는가 하면, 어떤 대학은 기존 대학의 백화점 식 교육을 탈피하여 생물약학에 초점을 맞춘 특화 교육을 하겠다고 하였다.
우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되기 위해 무리한 아이디어까지 총 동원한 느낌이다. 그래서 과연 신청서에 써 낸 내용이 그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적잖이 우려가 된다. 실은 써 낸 것의 반만 실현되어도 기존의 약대들 보다는 모든 면에서 훨씬 우수한 대학이 될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이번의 약대 신설은 6년제라는 역사적 사건 앞에서도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기존 약대들의 기득권에 대한 바람직한 도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조그만 희망을 가져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을 압도하는 커다란 절망감이 엄습한다. 신설 대학의 입학 정원이 너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전국약학대학협의회 (약대협)는 약대 6년제의 내실화를 위해서는 약대의 입학 정원이 최소 80명은 되어야 하니 기존 약대의 정원을 80명이 되도록 증원해 달라고 이구동성으로 복지부에 건의했었다.
복지부는 처음에는 약대협의 의견을 존중하는 척 하더니, 결국은 약대협의 의견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정원 50명 정도의 약대 7개 정도를 신설하는 의견을 교과부에 이첩하였다. 그리고는 손을 털었다. 이에 전국 약학대학 교수들은 궐기대회를 여는 등 반발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복지부의 의견을 받은 교과부는 이에서 한술을 더 떠 입학 정원 20∼25명짜리 초미니 약대 15개의 신설을 허용하고 말았다.
입학 정원을 최소 80명이 되도록 늘려 달랬더니, 정부는 오히려 정원을 오히려 1/4로 줄여 20∼25명짜리 대학을 15개나 신설토록 한 것이다. 약대협의 의견을 안 들어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들어 준 셈이다. 어이가 없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약대협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했는지, 그리고 소통을 강조하는 정부가 이처럼 국민의 의견과 반대되는 행정을 할 권리를 누구로부터 위임 받았는지 묻고 싶다.
정부의 이와 같은 태도는 한약학과 신설 시, 그리고 통6년제를 주장하는 약학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2+4년제를 도입할 때부터,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정부는 오랜 경험을 통하여, 약학계가 처음에는 좀 반발하지만 결국엔 정부안을 따라 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과연 그 예상 그대로 지금 약학계는 무력감을 느끼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어디에다 말해도 들어 줄 곳이 없는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마디 더 물어 보자. 만약에 후세에 이번 결정으로 인하여 모처럼의 약대 년제가 부실해지는 등 약학교육이 심각하게 퇴보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이번 결정을 내린 정부 당국자는 당당히 역사 앞에 책임을 질 용의가 있는가 하고. 약대 신설! 아무리 생각해도 절망의 크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2010-03-16 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