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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6> 나는 회색분자이다
어두운 어느 날 밤 항해를 하고 있던 선장이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을 보고 신호를 보냈다. “방향을 20도 바꾸시오!” 그러자 저쪽에서도 신호가 왔다. “당신이 바꾸시오!” 기분이 몹시 상한 선장이 다시 신호를 보냈다. “난 이 배의 선장이다!”. 그러자 저쪽에서 다시 회신이 왔다. “난 이등 항해사다!”. 열이 머리 끝까지 오른 선장. “이 배는 전투함이다. 당장 항로를 바꿔라!”. 그러자 회신이 왔다. “여긴 등대다!” 그 순간 선장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이상은 ‘엔도르핀 팡팡 유머’란 책에서 따 온 ‘고집부릴 게 따로 있지’ 라는 주제의 유머이다.
고집 (固執)이 센 사람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한다. 융통성이 없고 남에 대한 태도도 교만하다. 자기가 잘났기 때문에 남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별로 없다. 그래서 고집은 옹고집의 예처럼 대체로 나쁜 이미지를 갖는다. 예컨대 정치가들의 고집이 그러하다. 신문이나 티브이에서 여야 정치가가 논쟁하는 것을 보면 상대방의 주장은 백 퍼센트 틀리고 내 주장은 백 퍼센트 맞는다고 잘도 우긴다. 마치 우기기 시합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때 그들은 뻔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고집이 반드시 나쁜 이미지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독립투사의 고집은 존경을 받는다. 온갖 고문, 박해 및 위험에도 굴하지 않았던 독립투사의 고집보다 더 센 옹고집이 어디 있겠는가? 옹고집이라 해도 이런 고집은 소신 (所信) 또는 신념 (信念)이라는 고상한 단어로 불리는 것이다. 문제는 고집과 신념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가가 자기 철학을 일관 (一貫)되게 밀고 나갈 때 소신을 가진 정치가라는 칭송을 듣기도 하지만 까딱 잘못하면 융통성이 없는 독불장군 (獨不將軍)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반면에 사고 (思考)가 너무 유연하면 우유부단 (優柔不斷)하다거나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기 쉽다.
나는 집사람으로부터 ‘회색분자 (灰色分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는 내가 누가 무어라고 하면 금방 ‘그렇네요’라고 수긍 (首肯)을 하다가도, 다른 사람이 다른 주장을 하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네요’ 하는 태도를 잘 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어느 한쪽 의견이 전적으로 옳고, 그 반대편 생각은 전적으로 틀린 경우를 그다지 많이 보지 못하였다. 대개의 논쟁은 양쪽 의견 모두에 일리가 있으면서 동시에 양쪽에 문제점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양쪽 이야기를 들어 보고 균형 잡힌 판단을 하려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태도 아니겠는가? 그런걸 회색분자라고 한다면 그래 좋다 나는 회색분자이다.
여담이지만, 나를 회색분자라고 놀리는 아내는 충청도 출신이다. 충청도 사람은 원래 고집이 세다. 나의 주관적 관찰에 따른 엉터리 결론이다. 그러므로 (?) 아내의 고집도 장난이 아니다. 예컨대 결혼생활 약 40년 동안 아내가 나한테 사과를 한 적은 거의 없다. 나는? 나는 물론 여러 번 사과하였다. 잘 못한 일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아내는 내가 보기에 분명한 경우에도 사과하지 않는다. 왜 사과를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충청도 사람들은 사과를 할만한 잘못을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나? 내게는 그게 충청도 사람의 고집으로 보였지만, 아내에게는 그게 충청도 사람의 자부심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과연 그게 고집일까 자부심일까?
각설하고, 과연 어떤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까? 고집, 소신, 신념을 가지고? 아니면 유연하고 균형 잡힌 사고 또는 회색분자적 사고 방식으로?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나 나에 관한 한 나는 끝내 회색분자로 살다 죽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자기의 주장을 여론인 것처럼 대중들에게 주입 전파하려 드는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의 고집스런 태도는 영 내 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의약품의 슈퍼 판매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들은 확신에 차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혹시 ‘나는 다 알고 있다’는 교만으로 ‘배를 등대에 부딪히게 만드는’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겸손한 회색분자 선장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2011-09-21 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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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5> 성경 말씀-너무 가까운 사이는 깨지기 쉽다?
우리 부부는 1988년에 미국 인디아나 주에 있는 퍼듀 대학에 방문 교수로 약 10개월간 체류하면서 본격적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퍼듀 한인 교회’ 이었다. 그 때 그 교회는 한국에서 신학대학 학장을 역임하시고 정년 퇴직하신 박창환 목사님이란 분이 새로 부임하셔서 처음으로 목회 (牧會)를 시작하실 때이었다. 박목사님은 교수 출신이라 그런지 설교도 차분하게 대학 강의처럼 하셨다. 또 성품이 인자하셔서 외로운 유학생들이 아버지처럼 따르곤 하였다. 그 분은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부부를 격려하시며 세례를 주셨는데, 그 세례가 계기가 되어 우리 부부는 부족하나마 지금까지 교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박목사님은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토요일 오후에 성경 공부반을 개설하셨다. 나를 비롯한 10명 정도가 수강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중 나이가 많은 학생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해 보니 성경이 너무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맨 앞자리에 앉아 고개를 바짝 들고 필기를 해 가며 목사님 강의를 경청하였다. 몇 달 후 귀국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 강의를 더 이상 못 듣게 되는 것이 가장 아쉬웠던 기억이 새롭다. 목사님은 그 때 요한복음을 강의하셨는데, 강의를 듣고 내가 제일 놀란 것은 단지 몇 줄의 글에 엄청날 정도로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성경의 의미도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예컨대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복음이란 예수님인가,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인가, 아니면 그런 내용이 써 있는 성경책을 말하는가 등 생각할 점이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성경은 내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책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훗날 내가 성경책을 잘 읽지 않는 훌륭한 핑계가 되었다. 아무튼 성경에는 혼자서 해석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 적지 않아 보인다. 오래 전 주일에 목사님이 설교하신 마태복음 10장 34-39절도 그러하다. 거기에 써 있는 예수님의 표면적인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에 불화 (不和)를 만들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있나?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다. 목사님은 믿음의 길에 그만한 어려움이 있다는 취지의 설교를 하셨지만, 나는 내 멋대로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어떤 두 사람이 갑자기 떨어져서는 못 살 것 같이 친밀하게 지내더니, 얼마 가지 않아 서로 얼굴도 보기 싫어하는 원수 사이로 변하는 걸 몇 번이나 본적이 있다. 그 때, ‘아하 친구를 너무 가깝게 생각하면, 금방 실망을 하게 되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앞의 성경구절에 대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관계가 오래 갈 수 없다는 말씀인가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 관계 중에서 부자 (夫子), 모녀 (母女), 고부 (姑婦) 간의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관계도 너무 가깝고 직접적이면 오히려 서로 상처받아 깨지기 쉬운 것은 아닐까? 그 관계 사이에 하나님이 개입되어 계시면, 둘 사이는 다소 멀어지고 간접적이 되지만, 그래서 일견 예수님이 불화 (不和)를 일으키시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야만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사람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돈을 벌 때도, 돈을 쓸 때도, 또 무릇 세상의 어떤 일을 보거나 행 (行)할 때도, 나와 그 행위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도록 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예컨대 안경을 통해 사물을 볼 때에도 안경의 렌즈는 하나님의 시각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돈을 기부할 때에도, 내 의 (義)를 들어내지 않으려면 교회를 통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않을까? 성경을 자의적 (恣意的)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던 내가 또다시 내 맘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언젠가 목사님께 이렇게 해석해도 되는 것인지 여쭈어 보아야겠다.
2011-09-07 0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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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4> 참된 성공이란?
내가 약 50년 전에 졸업한 인천 창신 초등학교에서 발간하는 ‘학촌’이라는 교지에 ‘동창회장’으로서 축사를 쓴 일이 있었다. 7 년 전 일이다. 나는 고심 끝에 “여러분들이 모두 훌륭한 사람으로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썼었다. 그 후 지금까지도 가끔 과연 ‘성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한다. 성공을 향해서 모두들 치열한 삶을 산다. 그런데 그들이 꿈꾸는 성공이란 대개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 (君臨) 하는 모습이 아닌가 한다.그러나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도 생기는 것처럼, 성공한 자, 즉 가진 자가 생기면 반면에 갖지 못한 자가 생기게 된다. 가진 자가 자신의 승리를 자랑할 때, 갖지 못한 자는 자신을 인생의 패배자, 소위 루저 (looser)라고 생각하기 쉽다. 가진 자는 흔히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에 진 자가 이긴 자에게 승복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때로는 나처럼 살아야 한다고 TV에 나와 남을 훈계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성취를 즐긴다. 지난 8월 2일 내가 섬기는 온누리 교회의 하용조 담임목사가 급환으로 운명하셨다.생전에 그 분은 늘 “성공이란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선의 (善意)의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다. 비록 평생을 병환과 사역으로 많은 고생을 하셨지만, ‘선한 영향력’이 참된 의미의 성공이라면, 그는 빛나는 성공의 삶을 살아낸 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 중에는 부모를 잘 만나 거저 이룬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과 뛰어난 재능, 그리고 훌륭한 성품의 결과로 자수성가 (自手成家)한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 특히 자수성가한 사람의 성취는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의 성공의 밑받침이 된 재능, 성품, 인물, 건강, 그리고 성실한 태도 같은 특성은 그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타고 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성취가 자신의 잘남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타고난 “주어짐”의 결과임을 깨닫는 순간 그는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감사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되며. 성실하게 되고, 갖지 못한 자를 이해하게 된다. 주위 사람에게 군림하는 대신 온유하게 되며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갖지 못한 자’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가진 자가 비로소 성공자가 되는 순간이 아닌가 한다. 지난 7월 교회 멤버들과 충북 보은에 있는 시골 교회에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 사과 농사를 주로 하는 100여 호의 농가 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교회이었다. 교인 수 10명도 안 되는 이 작은 교회를 8년째 지키고 계신 목사님은 50대의 여자 분이셨다. 왜 이 목사님은 돈, 명예, 권력, 지위 중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이 시골에서 그 고생을 사서 하고 계실까? 정말로 그 분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하였다. 교회에 딸린 비 새는 방 하나가 그의 재산의 전부이었다. 어디 간들 이보다 못한 “가짐”은 있을 수 없었다. 가진 자가 성공자라면 이분은 분명 실패자일 것이다. 그러나 선한 영향력이 성공의 지표라면 이 분의 성공은 결코 하목사님의 성공보다 작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도를 목적으로 이 동네 분 들에게 말씀드렸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우십니까? 그러나 이 목사님이 여기 계시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라고. 그리고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다. “하나님 이 목사님의 인생도 성공임에 틀림없지요?” 라고. 동창회장으로서의 축사는 이렇게 끝났다. “여러분, 정말로 성공한 사람이란 남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남에게 어렵고 힘든 일을 시키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주고 아프고 외로운 사람은 위로하고 도와주는,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되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서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2011-08-24 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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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3> 논문은 ‘비오는 달밤’에 쓰는 것이 아니다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경기도 약사회에서는 제6회 경기약사학술대회와 관련하여 회원들에게 논문을 공모하였다. 영광스럽게도 본인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 논문들을 심사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여기에 심사 소감의 일단을 피력하고자 한다. 우선 바쁜 일과에도 불과하고 많은 분들이 논문을 작성하여 응모한 사실에 경의를 표한다. 금년에 응모된 논문은 총 21편이었다. 작년의 32편보다는 조금 줄어 든 숫자이다. 21편의 논문의 저자로서는 개국약사가 16, 제약회사 생산부가 3, 병원약제부가 1, 보건소가 1명의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경기지부가 15편, 서울지부가 5편, 인천지부가 1편이었다. 다룬 주제로는 DUR, 일본약국의 현황, 심야약국 등 신선하고 시의적절한 것도 있었으나 대체로 건보재정 문제, 불용재고약 문제, 약국경영 개선문제, 카드 수수료 문제 등 작년과 비슷한 내용이 많았다. 제약회사에서 나온 논문은 무균제제라든지 GMP 또는 제품표준서에 관한 것으로 논문이라기 보다 해설문이라고 봐야 할 내용이었다. 병원약제부에서 나온 논문은 반납해야 할 약의 처리에 관한 내용이었고, 보건소에서 나온 논문은 약물남용 (특히 술) 교육에 영화관람을 활용하자는 내용이었다. 적지 않은 논문들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느낀 소감은 약사사회에 답답한 문제들이 적체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약국을 개설한 약사의 입장에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 몇 년째 해결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울러 약사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논문들이 많았다. 모두들 누군가 나서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았다.그 다음으로 느낀 것은 대부분의 논문들이 주장하고 싶은 내용에 대한 의욕은 컸지만, 이를 설득력있게 논리적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논문의 형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 하였다. 논문은 대개 제목, ‘서론 (또는 배경 및 연구의 목적), 연구 방법, 연구 결과 및 고찰, 결론, 문헌 소개’ 순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형식을 전혀 무시한 논문이 많았다. 꼭 그 형식에 따라야만 하느냐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안 따를 이유도 없는 내용의 논문들이었는데 말이다. 그 결과 논리의 기승전결 (起承轉結), 즉 논리 전개가 약한 것이 대부분의 논문들의 공통적인 약점이었다. 논문의 제목을 예로 들어 보자. 제목은 저자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을 분명하게 압축한 것이어야 하는데 두리뭉실하거나 지나치게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는 듯한 표현을 쓴 논문이 많았다. 이러한 표현은 독자로 하여금 논문의 핵심 주장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 뿐이다. 옛날에 자칭 국보 (國寶)라시던 국문학자 고 양주동 박사께서 방송에 나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자기가 쓴 시 (詩) 중에 ‘비 오는 달밤’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사실 비오는 날에는 달이 뜨지 않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논리적으로는 틀린 말이지만 시의 세계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라며 껄껄 웃으시는 것이었다. 나는 ‘시의 세계’는 그런 건가 보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그러나 논문이란 시가 아니다.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논리를 전개해야 그 주장에 설득력이 생긴다. 예컨대 ‘건강기능 식품 판매는 약국경영에 도움이 된다’라는 주장을 펴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막연한 주장만 가지고는 독자가 설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사회과학 분야의 논문도 자연과학 분야의 논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끝으로 아무리 노벨상을 받은 저명한 자연과학자의 논문도 여러 사람의 악의적인 (?) 비판을 수용 또는 반박해 낸 다음에야 비로소 잡지에 실릴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약사님들의 논문도 다시 한번 엄격한 비판 과정을 거친 후 관련 잡지에 싣도록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사님들 파이팅!
2011-08-10 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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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2> 약물상호작용2, 비처방약도 상호작용을 일으키니 조심 !
우리 몸에서 약물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주요 과정은 흡수, 분포, 소실이다. 흡수 과정에 대해서는 항생제인 테트라싸이클린을 우유와 함께 복용하면 우유 중의 칼슘이 테트라싸이클린과 복합체를 형성하여 테트라싸이클린의 위장관 흡수가 나빠지는 사례를 들 수 있다. 또 케토코나졸을 H2 수용체 차단제와 병용하면 후자에 의해 위액의 산도 (酸度, pH)가 변하여 케토코나졸의 용출과 흡수가 나빠지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분포 과정에 대해서는 페니토인을 발프로인산과 병용할 때 후자가 전자의 혈장단백 결합을 치환함으로써 혈장 중 페니토인의 활성형 (비결합형) 농도가 높아져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소실과정에 대해서는 아세트아미노펜 (두통약; 상품명 타이레놀)과 술과의 상호작용을 들 수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CYP2E1이라는 간 효소에 의해 간독성 물질인 NAPQI로 대사되는데, 술을 마시면 이 효소의 발현이 증가되어 NAPQI의 생성이 촉진된다. 1996년 안토니오라는 미국 사람은 그의 간 손상이 타이레놀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여 제약회사로부터 5백만불을 보상받는 판결을 받아낸 바도 있다 (1996년 1월 17일 자 Washington Post 지). 미국의 FDA는 1997년부터 2006년에 이르기까지 약물상호작용에 관한 6개의 안내서 (guidance)를 발간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대사 단계는 물론, 막수송체 (膜輸送體, membrane transporter)를 매개한 체내 이행 단계, 그리고 환자의 유전적 특성에 따른 상호작용, 생약 (한약)과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까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지, 일으킨다면 얼마나 일으키는지를 연구하는 방법, 그리고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상세한 안내를 하고 있다.FDA의 홈페이지 (www.fda.org-drugs, -Guidance, Compliance & Regulatory Information-Guidances (Drugs)-Clinical pharmacology)에 들어가면 “대사 단계에서의 약물 상호작용” 과 “막수송 단계에서의 약물상호작용”에 대해 그 유무 (有無)와 정도를 판정하는 그림 (decision tree)이 나와 있다. FDA에 신약 신청 (IND)을 하고자 하는 회사들에게 친절한 길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식약청 (KFDA)에서도 병용 금기 약물 또는 특정 연령대 사용 금기 약물을 공고하고 있다. 그 공고에 따르면 병용해서는 안 되는 약물 조합의 수는 2009년 말 현재 190가지를 상회하고 있다. KFDA는 또 수시로 “의약품안전성 서한”이라는 공문을 통해 의사와 약사에게 특정 약물상호작용에 대해 주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예컨대 2009년 5월 19일에는 클로피도그렐 (동맥경화 용제)과 프로톤펌프 저해제 (위산과다 및 위궤양 치료제, 예; 오메프라졸, 란조프라졸, 라베프라졸 및 에스에프라졸)를 동시 복용하면 후자가 전자의 대사를 억제하여 심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되도록 이 두 약을 병용하지 말라는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또 같은 해 5월 22일에는 독사조신, 테라조신, 프라조신 같은 양성전립선 비대증에 쓰는 약을 발기부전 치료제인 PDE-5 억제제 (예: 실데나필, 타다라필, 바테나필 등)와 병용하면 증후성 저혈압을 일으킬 우려가 있으니 신중하게 처방, 투약, 복약 지도해 달라고 당부하는 서한을 발송한 바도 있다. 이처럼 두 가지 이상의 약을 병용할 때의 부작용은 일반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알려진 비처방약이라고 해도 처방약과 함께 복용하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모른다.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가 동시 또는 비슷한 시간에 한약을 복용하거나, 특별한 보양식을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제약회사는 그런 경우에 대해서까지 연구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찮겠지 방심 말고 전문가와 상담하자”. 이것이 정답이다.
2011-07-20 0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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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1> 약물상호작용 (1), 허가받은 약이라고 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최근 연달아 일간지와 월간지 기자로부터 약물 상호작용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또 일반약의 일부는 수퍼에서 팔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경솔한 논의를 보면서, 일반인도 알기 쉽도록 약물상호작용의 중요성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약물상호작용이란 어떤 약의 약효가 병용 (倂用, 함께 복용함)한 다른 약물에 의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현실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약물을 병용하는 환자가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상호작용의 경우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응급 입원 환자의 8%는 약물의 부작용 때문에 입원하며, 입원 환자의 7%는 입원 중 먹은 처방약에 의해 심한 부작용을 경험하며, 입원환자 1000명 중 3명이 의약품의 부작용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1998년의 추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입원 환자 중 약물 부작용에 의해 사망하는 환자의 수가 매년 무려 1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1998~2003년 사이에 미국에서 약물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된 약은 10가지나 된다. 예컨대 1997년 바이엘사에서 개발된 고지혈증 치료제 세리바스타틴 (Cerivastatin, 상품명: Lipobay)을 다른 고지혈증 치료제인 젬피브로질 (gemfibrozil, 상품명: Lopid)과 병용하였더니 횡문근변성을 일으켜 52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는 1998년 이후의 시판후조사 (Post-marketing surveillance, PMS) 로 밝혀진 사실인데, 결국 바이엘사는 2001년 세리바스타틴을 시장에서 철수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병용이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까지를 고려하면 약물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빈도는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물상호작용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50년 보거라는 사람은 페니실린과 프로베네시드 (probenecid)를 병용하였을 때 페니실린의 혈중농도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현상을 한 잡지에 보고하였는데, 아마 이 것이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약물상호작용이 아닐까 한다. 이는 프로베네시드가, 신장에서 페니실린의 요배설을 담당하는 OAT1이라는 막수송체의 활성을 저해함으로써, 페니실린의 요배설을 지연시켰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 결과 페니실린의 약효를 오랫동안 지속시켜 주었는데, 이처럼 최초로 보고된 약물상호작용은 바람직한 상호작용이었다. FDA는 겨우 1970년대에 들어서서야 약물상호작용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기 시작하였다. 간 조직을 이용하여 약물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였다. 드디어1992년에는 터페나딘 (terfenadine, 알레르기성 비염약, 상품명: Seldane) 과 케토코나졸 (ketoconazole, 피부항균제, 상품명: Nizoral)을 병용하면 심장독성 (Torsades de Pointes)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이는 이 두 약물을 5일간 함께 먹던 22살 된 부인이 심계항진 (心悸亢進,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과 어지러움 증 때문에 응급실로 이송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터페나딘은 간에서 CYP3A4라는 효소에 의해 대사되는 약인데, 케토코나졸 같은 CYP3A4 저해제 (예: 에리스로마이신이나 자몽주스 등)와 함께 먹으면 대사되지 않고 혈중에 고농도로 잔류함으로써 이와 같은 부작용을 나타낸다. 터페나딘은 1985년 FDA의 시판허가를 받은 후 92년에는 미국 10대 다빈도 (多頻度) 처방약에 들어 갈 정도로 잘 팔리던 약이었는데, 결국 1998년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허가를 받고 오랫동안 잘 팔리는 약이라고 해서 반드시 안전한 약이라고 장담할 수 없음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궁합이 맞지 않는 다른 약과의 만남 (병용)은 혼인 중매만큼이나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인 것이다.
2011-07-06 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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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0> 약제학의 변신(4) – 왜 맞춤약제학인가?
해마다 대학 신입생이 소위 사발식이라고 하는 ‘막걸리 마시기 대회’ 에서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죽는 것은 그 사람 몸 안에 알코올을 분해하는 간효소가 부족하거나 없어서 마신 술의 알코올이 몸 안에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 있어서 술은 문자 그대로 독(毒)이다. 만약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이 알코올을 분해시키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는 결코 술을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1950년 한국동란에 참전한 미군 흑인병사에게 항말라리아 약인 프리마퀸을 투여하였더니 복용자의 약 10%에서 빈혈이 나타났다고 한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이들에게는 이 약을 대사시키는 효소(G6PD) 레벨이 낮아 이 약의 혈중농도가 높아져 이런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었다. 2000년 10월 3일 미국 Fortune지에는 ‘DNA의 비극’ 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1995년 현재 9살인 마이클이란 소년은 어떤 양부모에게 입양된 후 강박장애와 주의결핍 과잉반응 때문에 ProzacⓇ(fluoxetine)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사망하였다. 부검을 해 보니 이 약의 농도가 너무 높게 나타나, 양부모가 아이를 살해할 목적으로 이 약을 과다복용 시켰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 소년에게는 이 약을 대사시키는 CYP2D6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양부모는 아이에게 이 약의 상용량을 먹였을 뿐인데, 이 아이가 약을 대사시키지 못해 약물이 체내에 과잉으로 축적되어 약물의 부작용으로 사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양부모는 살인 누명을 벗게 되었지만, 만약에 마이클이 이런 특성을 가진 환자라는 사실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미리 알고 있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안타까운 사고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식약청에서도 치오리다진이라는 향정신성 약물의 경우 Cyp450 2D6란 효소 레벨이 낮은 환자(한국인의 7%)에게 처방할 수 없도록 조치한 바 있다. 약의 부작용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약효도 문제가 된다. 한 조사에 의하면 시판되고 있는 항암제와 알쯔하이머약은 약 30%, C형간염바이러스약, 골다공증약, 관절염약은 50% 이하, 심부전약과 천식약은 60% 정도의 환자에 대해서만 약효를 나타낸다. 이는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약을 투여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자의 유전적 특성에 맞추어 약을 투여하면 치료효율을 훨씬 높일 수 있다. 예컨대 유방암 환자에게 Herceptin (trastuzumab) 이라는 약을 투여하면 10% 정도의 환자만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검사를 하여 Her2 유전자를 발현하고 있는 약 30%의 유방암 환자에게만 이 약을 투여하면 반응률은 무려 다섯 배(50%)나 높아진다. 이 약은 유방암 세포 표면에 과잉으로 발현되어 있는 Her2 유전자와 결합함으로써 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약 (항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맞춤약(제)학은 이미 현재의 우리 생활 속에 들어 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맞춤약(제)학의 근원이 이제마 (李濟馬; 1838-1900) 선생의 사상의학 (四象醫學) 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사람의 체질을 태양 (太陽), 태음 (太陰), 소양 (小陽), 소음 (小陰)의 4가지로 나누고, 이에 따라 약을 달리 써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생각은 오늘날 사람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 약을 달리 써야 한다는 맞춤약학의 정신과 상당히 일치한다. 약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결코 막연한 구호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응급 입원 환자의 8%가 약물의 부작용 때문에 입원하며, 입원 환자의 7%는 처방약에 의해 심한 부작용을 경험하며, 입원환자 1000명 중 3명(매년 입원환자 중 10만명)은 의약품의 부작용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약물의 부작용을 방치할 수 없다. 맞춤약(제)학이 나서야 한다.
2011-06-22 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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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9> 약제학의 변신 (3) –분자약제학에서 맞춤약제학으로
이미 약창춘추 3 및 4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1998년 미국 내에서 입원한 환자 중 약 10만 명이 약물부작용으로 사망한다는 추정 통계가 발표되었다. 놀라운 통계이다. 죽지는 않았지만 고통을 받은 사람들까지 합친다면 그 숫자는 몇십만이 될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약물의 부작용 때문에 죽거나 고통을 받을까? 그 이유는 환자의 인종이나 개인차를 무시하고 모두에게 같은 약을, 같은 양으로, 같은 방법으로 투여하는 종래의 약물요법과 투여방법 (dosage regimen)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수십만명의 생명을 죽이고 괴롭히는 구태의연한 약물요법은 확 바꾸어야 한다. 인간유전체 프로젝트가 완료되고 유전학이 발달함에 따라, 약물의 약효를 결정짓는 3대 요소는 막수송체, 대사 효소 및 수용체이며, 이는 인종은 물론 개인에 따라 매우 심하게 변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한국전쟁시 흑인 병사에게 항말라리아 약인 프리마퀸을 투여하였더니, 그들 중 약 10%가 빈혈을 호소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에게는 G6PD라는 유전자가 부족하여 이 약을 대사시키는 효소 레벨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인종차이를 무시하는 종래의 약물 투여방식은 위험하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면 관계상 생략하지만 수용체 또는 막수송체의 인종간 및 개인간 차이에 의해 약물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례에 대한 보고도 점점 늘어 나고 있다. 이제 군화 (軍靴)에 발을 맞추듯 ‘약에 환자를 맞추는’ 획일화된 종래의 투여법은 안된다. 더 이상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약물요법은 ‘개개인의 발에 군화를 맞추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비추어 가장 잘 맞는 약을, 가장 적당한 용량으로, 가장 좋은 방법에 따라 투여해야 한다. 이러한 취지의 약학을 “개인맞춤약학 또는 맞춤약학 (Individualized Medicine, Personalized Medicine, Tailored Medicine)”이라고 부른다. 약제학은 앞서 언급한 바 있는대로 ‘이상적인 약물 송달’을 목표로 삼고 있는 학문이다. 따라서 약제학은 숙명적으로 ‘맞춤약학’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아니 반드시 그리 되어야 21세기에 약사의 직능이 존속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의사도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감안하여 처방을 쓰는 시대가 될 터인데, 그렇다면 약사도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여 처방을 검토하고 복약지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따라서 약대6년제의 목표도 임상약학이라는 다소 애매한 목표를 뛰어 넘어 당연히 ‘맞춤약학 시대의 대비’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왜 약대를 6년제로 연장 하여야 하나? 라고 하는 국민적 의문에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약제학이 맞춤약학 시대를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상약학도 있고 약물학도 있지만 약제학 이야말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상적인 약물송달’을 실현하기 위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자생물학의 뒤를 이어 약물유전학 (pharmacogenetics)을 약제학의 새로운 지적 (知的) 토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만약 약제학이 ‘맞춤약제학 (Individualized Pharmaceutics)’’으로의 변신에 실패한다면, 약제학은 물론 약학, 특히 약사의 직능은 조만간 그 설 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약학대학도 그 존재의의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오늘날 누리고 있는 높은 위상을 잃을 우려가 크다. 더 큰 문제는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에 대한 국민들의 수요에 부응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맞춤약제학으로의 변신은 이처럼 약제학의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한 의미를 갖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제학의 또 한번의 변신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2011-06-08 1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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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8> 약제학의 변신 (2) – 약물송달학에서 분자약제학까지
환자가 어떤 약물의 제제(製劑)를 먹으면, 위장관 내에서 약물이 제제로부터 방출 (放出, release)된 후 흡수, 분포, 대사, 배설(ADME)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약효가 나타났다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이 과정이 적지 않은 인자들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예컨대 정제(錠劑, tablets)로부터 약물이 방출되어 나오는 속도는 정제를 제조하기 위해 첨가한 첨가제의 종류와 구성 비율, 그리고 제조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진다. 또 방출된 약물이 인체에서 흡수된 후 대사 과정을 이겨내고 약효의 발현 부위인 병소(病巢)에 까지 도달(분포)하는 과정에는 약물 분자의 크기, 하전(荷電) 및 지용성(脂溶性) 같은 약물 측의 성질뿐만 아니라, 위장관 운동, 약물의 각종 세포막 투과 속도, 혈류, 혈장 단백과 약물 간의 결합, 소장 및 간에 존재하는 효소 들에 의한 약물의 대사, 약물의 조직결합, 타겟 부위 세포 표면 수용체(受容體, receptor)와 약물 간의 결합 같은 생체 측 인자들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약물의 체외 배설과정도 마찬가지이다. 한번 소장에서 약물이 흡수되는 과정을 살펴 보자. 소장 상피세포에는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물질 등을 적극적으로 흡인하는 막수송체(단백질)뿐만 아니라, 몸에 해로운 물질은 흡수되지 않도록 세포 밖으로 퍼내는 배출 펌프(단백질)도 다양하게 발현되어 있다. 이 단백질들은 입을 통해 위장관에 도달한 각종 영양물질이나 약물 분자를 선택적으로 인식하여 필요한 물질이면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불필요한 물질이면 적극적으로 흡수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약물의 대사와 분포, 그리고 배설도 약물을 분자 수준(분자량, 하전, 구조 등의 특성)에서 선택적으로 인식하는 각종 단백질의 작용에 의해 콘트롤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약물의 ADME를 분자적 수준에서 이해하지 않고서는 약제학의 목표인 ‘바람직한 약물 송달’을 성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21세기가 되면서 약제학의 영역에 분자적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게 되었다. 이는 때마침 발달한 분자생물학(分子生物學, molecular biology)에 힘입은 바 크다. 약제학에 분자적 또는 분자생물학적 개념을 도입한 학문을 ‘분자약제학(分子藥劑學)’이라고 부른다. 이제 약제학은 생물약제학 또는 약물동태학이라는 옷에 이어 분자약제학이라는 최신 유행의 새 옷을 입게 되었다. 최근 발간된 ‘Molecular Pharmaceutics’라는 국제 잡지의 impact factor 값은 2009년도에 5.4로 매우 높은 편이었다. 이는 오늘날 분자약제학이 얼마나 유행인가를 한마디로 보여 준다. 이미 일본 약대의 ‘약제학 교실’은 대부분 시류(時流)를 좇아 ‘약제학’이라는 전통적인 이름을 버리고 ‘분자약제학 교실’ 과 같은 세련된 (?) 이름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하였다. 머지 않아 ‘약제학’은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는 일제(日帝)의 잔재(殘在)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 현재 약대에서 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교수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학부나 대학원 시절에 배우지 않은 내용을 연구하거나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나만해도 현재 막수송(膜輸送)을 주요 연구 과제로 삼고 있지만, 이는 나의 학부 시절은 물론 80년대 초 동경대학에 유학할 때에도 배워보지 못했던 개념이다. 그래서 약제학자들은 유난히 고생이 많았다. 그러나 이처럼 과학의 발전을 끊임없이 담아내고 변신을 거듭한 덕분에 오늘날까지 약제학이 약학 내에 확실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몇몇 약대 교과목들이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고 변신을 거부한 결과, 오늘날 많은 학생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다. 그렇다. 약제학을 살린 것은 변화이었다. 조제학에서 시작된 약제학은 이제 ‘분자약제학’으로 진화, 변화하여 꽃 피고 있는 것이다.
2011-05-25 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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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7> 약제학의 변신 (1) – 조제학에서 약물송달학까지
잠시 일본에 대한 글의 연재를 뒤로 미루고, 약제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왜 다른 분야와 달리 다양한 학문명으로 분화 또는 진화해 오게 되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 등에 대한 글을 써 보고자 한다. 약제학이란 이름 안에는 조제학 (調劑學), 제제학 (製劑學), 제제공학 (製劑工學), 생물약제학 (生物藥劑學), 약물동태학 (藥物動態學), 물리약학 (物理藥學), 약물송달학 (藥物送達學) 및 분자약제학 (分子藥劑學) 같은 다양한 이름의 학문 들이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도대체 약제학이란 학문 영역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우선 일반인은 약제학이라고 하면 약에 쓰이는 재료에 관한 학문, 즉 약재학 (약材학)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약제학이라고 할 때의 劑자는 약제학 또는 조제학 (調劑學)이라고 할 때 이외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 한자이기 때문에 이처럼 오해하기 딱 좋은 글자인 것이다. 영어에서 약제학에 해당하는 ‘pharmaceutics’도 미국의 일반인에게 뉴앙스가 퍼뜩 오지 않는 어려운 단어라고 한다. 옛날에는 약물의 양이 약효를 결정짓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정확한 양의 약을 조제하는 기술인 조제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약을 혼합할 때의 배합 변화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도 이에 의해 약의 양이 줄어들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일정한 양의 약을 복용하기 위해서는 정제, 캡슐제 같은 제제(製劑, preparations)를 만드는 것이 편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결과 제제학 (製劑學)이 발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제약 산업의 초기에는 약의 함량을 속이지 않기와 기술적으로 정확한 함량의 제제를 만들기가 좋은 제약회사의 상징이었다. 1970년대 어느 회사의 광고는 ‘함량이 약효를 보증합니다’라는 카피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예컨대 정제를 찍을 때의 압축 압력이나 현탁제를 만들 때의 교반 조건 등에 따라서도 약효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로부터 제제공학 (製劑工學)이라는 학문이 탄생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함량이 같더라도 부형제가 달라지면 약효가 달라지거나 또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페니토인 정제 제조 시 어떤 부형제를 다른 부형제로 변경하였을 뿐인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사건으로부터, 부형제에 따라 정제로부터 약물의 방출 (放出, release)이 달라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약의 위장관 흡수가 달라지며, 뒤이어 약효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약물의 혈중 또는 특정 부위 중 농도 추이는 약물의 흡수, 분포, 대사 및 배설 (ADME) 과정에 의해 결정 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 ADME기전을 연구하는 생물약제학 (生物藥劑學, biopharmaceutics)이라는 학문이 탄생하게 되었다. 약물의 혈중 또는 특정 부위 중 농도 추이에 따라 달라지는 약효를 어떤 모델에 대입하여 수학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욕심에서 약물동태학 (藥物動態學, pharmacokinetics)이라는 학문이 탄생 되었다. 생물약제학과 약물동태학이 발달하게 된 것은 마침 발달하기 시작한 HPLC기술에 의해 매우 낮은 약물의 혈중 농도를 경시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약물의 분자특성 및 제제특성을 이용하여 약물의 생체 내 ADME를 적절하게 제어 (制御, control)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물리약학 (物理藥學, physical pharmacy, 또는 물리약제학)이라는 학문이 발달하게 되었고 이런 모든 인자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인식에서 약물송달학이 탄생하게 되었다.이렇게 보면 약제학 영역의 모든 학문은 한결같이 ‘바람직한 약물 송달 (ideal drug delivery)’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시대의 지식 수준 또는 과학 수준에 따라, 이상적인 약물 송달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접근법을 새로운 학문의 이름으로 정했을 따름인 것이다.
2011-05-11 1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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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6> 일본인의 본심
30년 전 동경대학 유학 시절, 가끔 학교 앞 불고기 집에 점심을 먹으러 다녔다. 하루는 일본인 학생과 함께 갔는데, 식당 주인이 내게 살며시 다가 와 묻는 것이었다. ‘혹시 저 일본인 학생과 친구 관계이냐?’고. 듣고 보니 글쎄 진정한 의미에서 친구라고 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 주인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역시 그렇지요?’ 하면서 자기는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인데, 그렇게 오래 살아도 일본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일본인은 오랫동안 사귀어도 속 마음을 주지 않기 때문에 참된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과연 일본 사람은 속마음을 잘 주지 않는가? 이 질문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일본어에는 속마음 또는 본심을 뜻하는 혼네 (本音, ほん-ね)라는 말과 함께 겉으로 내세우는 말, 즉 겉마음을 뜻하는 다테마에 (建前, たてまえ) 란 말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마음에 속마음과 겉마음이 따로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속마음과 다른 겉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경우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왜 특히 일본어에 겉마음이란 별도의 단어가 필요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 사회는 특히 본심을 드러내고 살기에 두려운 사회였음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사람이 사는 사회 중에 본심을 다 드러내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사회는 없을 것이지만, 사무라이의 나라, 칼의 나라였던 일본은 그 중에서도 정도가 심했던 나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속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현상은 정치를 보면 그대로 나타난다. 최근 일본의 간총리와 관방장관은 한반도 유사시 우리나라에 ‘자위대를 파견해야 한다, 아니다’를 가지고 엇갈린 의견을 표명하였다. 수상과 장관이 서로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일본에서는 보통으로 있는 일이다. 내가 일본에 있던 1980년대 초 당시 새로 선출된 스즈끼 수상은 ‘수상으로 선출되면 우선 미국에 인사부터 가는’ 관례대로 미국을 방문하였다. 미국 대통령을 만난 그는 미국과 일본은 동맹 관계에 있다라는 말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회담을 끝내고 나서 가진 기자 회견에서는 자기가 말한 동맹이란 말에는 군사적인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미국측은 당연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반발을 하였다. 그러자 일본에 있던 외무상이 한 말씀 하였다. 내용인즉 ‘수상의 외교적 무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군사적 의미를 배제한 동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상의 말에 감히 장관이 엿을 먹여?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해프닝이었다. 외무상의 발언을 듣고 난 미국 대통령 등은 도대체 누구의 말이 본심인지 헷갈리게 되었다. 그럼 이 경우 일본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내 판단으로는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 말을 하는 것이 다 본심이다. 즉 두 가지 상반된 말을 해 놓고 여론 또는 판세 (判勢)가 어떻게 흘러 가는가를 두고 보다가, 나중에 어느 한 쪽으로 대세가 결정되면, 그 때 가서 ‘그거 봐라, 그래서 전에 아무개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며 대세를 쫓는 명문으로 삼으려는 생각이 진짜 본심이라는 것이다.1979년 일본 유학 시절, 지도교수인 하나노 교수님은, 일본 수상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미국과 소련 (당시)이 전쟁을 하게 되면 일본이 언제 어느 편으로 어느 정도 가담하는 것이 가장 일본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판단할 능력이라고 하였다. 미국과 혈맹이라면서 무조건 미국 편만을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졌던 나에게는 일본의 본심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었다. 한민족, 즉 ‘의리의 사나이 돌쇠’의 후예인 그 식당 주인은 2가지 애드벌룬을 띄워놓고 판세가 흘러 가는 것을 지켜 보는 일본 사람을 친구로 삼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2011-04-20 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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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5> 꼼꼼한 것은 쪼잔한 것이 아니다
부지런함과 함께 일본인의 특성 중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꼼꼼함이다. 유학 시절, 내가 다니는 동경대학과 치바대학의 약대생 간에 야구 시합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합을 알리는 팜플렛을 보니 야구부 선수들에게 숙소인 여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각종 주의 사항, 예컨대 베개의 사용 방법이라든지, ‘10시 넘어 자지 않을 경우에는 전등 덮개를 이렇게 내려서 이웃의 취침을 방해하지 말아라’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주의사항들이 만화와 함께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1981년엔가 테라사끼 (현 東北대학 교수)라는 대학원 후배와 단 둘이 구마모또 (熊本)에서 열리는 일본약학회에 참석하러 간 적이 있었다. 나와 단둘이 가는 여행인데도 그는 동경에서부터 구마모또에 이르기까지의 전 여정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타이핑 한 다음 복사본 한 부를 내게 전해 주었다. 거기에는 예컨대 기차, 버스, 배 등 모든 교통수단의 시간표, 요금 및 탑승 소요시간, 그리고 어느 고장에 가면 어느 찻집이 유명하니 그 집에서 얼마를 내고 몇 분간 차를 즐기자는 등에 이르기까지, 여행 전반에 관한 시시콜콜한 정보와 계획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여행 도중 히로시마 어딘가를 지날 때 경치가 하도 좋길래 ‘여기에서 좀 더 쉬었다 가자’고 했더니, 그는 일정표를 꺼내 보면서 ‘여기서는 10분간 쉬게 계획되어 있으니 그냥 가자”는 것이었다. 그 융통머리 없음에 나는 그만 반항할 기력을 완전히 잃었다. 일본인의 꼼꼼함을 소름끼치도록 느끼면서.그 다음해에는 오오사까 (大阪)에서 열리는 약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러 갈 일이 생겼다. 나는 내가 발표할 논문에 대한 슬라이드를 한 부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 방 조수 (우리의 조교수에 해당)가 나더러 한 부를 더 만들라는 것이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내가 슬라이드를 분실할 경우를 대비해서 한 부는 자기가 가지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더 놀란 것은 각자 다른 차를 타고 가자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만약에 우리 둘 중 누군가에게 교통 사고가 생기면 나머지 한 사람이라도 가서 발표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아! 결국 우리는 각자 슬라이드 한 부씩을 갖고 서로 다른 차를 타고 오오사카에 갈 수 밖에 없었다. 2004년 겨울의 어느 날 앞서 말한 테라사끼 교수가 내게 2005년도 11월에 선정하는 미국약학회 (AAPS)의 펠로우에 신청해 보라고 권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전에 제출해서 성공했던 서류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 나는 그 파일을 열어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성실하게, 아니 꼼꼼하게 정리된 신청서였다. 연구 논문을 비롯한 연구 관련 각종 이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예컨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제목으로 강연하였는데, 그 때 약 몇 명의 청중이 참석했으며, 그들의 신분은 주로 교수 및 대학원생이었다’는 식으로 그의 연구 관련 활동에 관한 모든 사항이 더 이상은 불가능할 정도로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내게 당부하기를, 좋은 논문 2-3편 쓰는 것 이상의 정성으로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하였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 신청서를 모방하였다. 내가 2005년도에 AAPS의 펠로우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 교수의 덕택이었다. 예전에 ‘맞아 죽을 각오로 쓴 한국인’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본 기술자가 한국인 기술자에게 어떤 기술을 전수하려고 할 때, 10가지 사항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 사람이 7~8가지를 설명한 시점에서 한국 사람들은, ‘대충 감 잡았다’느니, 또는 ‘원칙만 알면 되었지 꼭 10가지를 고대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등 궁시렁거리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인은 융통성이 없고 너무 고지식하다’고 한단다. ‘쪼잔하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단다. 과연 그럴까? KTX사고가 빈발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며, 일본 사람의 꼼꼼함을 다시 생각해 본다.
2011-04-06 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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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4> 동일본 대지진
일본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지난 3월 11일 규모 9.0의 대강진과 10m가 넘는 쓰나미가 동일본을 덮쳤다. 너무나 비극적인 재난에 두려움과 함께 일본과 일본인에게 간절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더구나 이번 지진의 피해를 많이 본 센다이 (仙台)시는 내가 다음 번 글에서 소개하려는 동북대학의 테라사끼 교수가 사는 곳이다. 테라사끼 교수는 내가 금년 5월 1일에 우리대학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특강을 부탁해 놓은 상태이었는데, 그날 이후 소식이 두절되었다. 간신히 3월 15일 오후에 일본의 다른 교수와의 통화를 통해 그 가족이 안전하다는 간접적인 소식을 들어 그나마 조금 안심하고 있다. 이렇듯 심란한 마음으로 지내던 중 3월 14일 중앙일보를 펴 드니 일본인이 이런 대 재앙을 만나서도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는 모습에 놀랐다는 기사가 크게 실려 있었다. 신문에 의하면 놀랄만한 일은 ① 대피소의 양보 (우동 10그릇, 50명이 서로 “먼저 드시죠”), ② 남 탓은 안 한다 (원망하거나 항의하는 모습 TV에 안 보여), ③ 재앙 앞 손잡기 (의원들 정쟁 중단 … 작업복 입고 현장으로), ④ 침착하고 냉정 (일본 전역에서 약탈 보고 한 건도 없어), ⑤ 남을 먼저 생각 (“내가 울면 더 큰 피해자에게 폐 된다”)의 다섯 가지이었다. 나는 이 기사를 쓴 기자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일본인의 훌륭함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우리 아들은 일본 사람들은 마치 로봇 같다고 하였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침착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칭 일본 전문가인 나로서는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일이었다. 일본인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내 주장, 즉 ‘일본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한다’라는 설을 강변하기는 좀 그렇지만, 일본사람들은 중앙일보에서도 지적하였듯이 남에게 메이와쿠(迷惑, ‘남에게 끼치는 폐’를 뜻하는 일본말)를 끼치지 않는 것을 교육의 제1조로 삼고 있다. 그 교육, 그 정신으로 사는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위에 말한 다섯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일본 시리즈 첫 편인 약창춘추 67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 히트한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같은 광고 카피는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카피이다. ‘개구장이’란 남에게 메이와꾸를 끼치는 아이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남에게 폐를 끼치는 아이라도 좋다고? 일본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소리인 것이다. 최근 나는 일본 사람들이 “사람 (人)”이라는 표현을 쓸 때에는 내가 아닌 ‘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일본 사람들은 ‘사람 (人, 히또)에게 메이와꾸를 끼치면 안된다’고 할 때의 사람이란 실은 남을 가르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사람이라고 할 때에는 남이 아닌 나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위기에 처했을 때에 ‘사람 살려!’ 하거나, 남에게 맞았을 때 ‘어 이놈이 사람 치네’, 또는 ‘사람 잡을 놈이네’ 라고 할 때의 ‘사람’이란 실질적으로는 ‘나’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 이란 표현을 써서 인간이나 인류라는 거대한 집단을 거론하지만 실제로는 ‘나’라는 존재를 크게 보이게 하려고 사용하는 표현인 것이다. 아무튼 나를 인간이라는 집단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우리와 달리, 남을 인간의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타적 (利他的)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각설 (却說)하고,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진심으로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일본을 돕는 일이다. 위안부 할머니도 돕겠다고 나선 마당에 행여 정부나 국민이 과거의 감정에 억매여 돕기에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본을 우리의 사랑으로 감동시키자. 일본을 격려하고 돕는 일은 실은 우리의 그릇을 키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일본인들에게 간절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일본 파이팅!
2011-03-16 0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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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3> 미리미리 정신
1979년 4월 일본 유학을 가 보니 다음해 4월에 열릴 일본약학회 학술대회에 제출할 논문 초록을 그 해 11월말까지 마감하고 있었다. 그 초록집은 80년 1월에 내 책상에까지 배달되었다. 학회가 열리기 며칠 전에야 겨우 초록 마감을 한 후, 온갖 난리를 쳐서 학회 당일 날 아침에야 잉크 냄새도 가시지 않은 초록집을 현장에서 받아 볼 수 있던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작년 가을 외국에서 스기야마라는 동경대학 교수를 만났더니, 조만간 열릴 자기의 정년 퇴임 기념 국제 심포지엄에 나보고 연자 (演者)로 와달란다. “영광입니다” 라고 승락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심포지엄은 올해가 아닌 내년 즉 2012년 1월에 열리는 것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일본 신문기자가 걱정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이미 축구장 건설을 완료하고 모의시합까지 해 본 상태이었다. 그는 뒤늦게 시작한 공사 탓에 언제 공사가 끝날지 모르는 우리나라가 과연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고 월드컵을 제대로 개최할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하고 있었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비록 난리법석을 피우긴 했지만, 우리는 개최일 직전에 모든 공사를 끝내고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지 않았는가? 1980년대 여름에 설악산에 ‘대명 콘도’라는 데가 문을 열었다고 해서 대학원생들과 교실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가보니 정식 오프닝 날은 다음날 아침 10시이었다. 저녁이 되어 우리가 방에서 자려고 하는데 ‘실례합니다’ 소리가 들리더니, 승낙할 사이도 없이 인부들이 들이 닥쳤다. 문틀에 니스 칠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어이가 없어하는 우리를 보고 한 수를 더 뜨는 것이었다. 일당을 줄 테니 실외 수영장 바닥에 깔 타일을 좀 날라 달란다. 세상에! 아무리 상황이 다급해도 그렇지, 어떻게 투숙객에게까지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을까? 다음날 아침에 오프닝 행사를 하기는 다 틀려 보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9시 30분, 공사는 기적같이 완료되었고, 속초 시장님 등 귀빈을 모신 10시의 오프닝은 무사히 개최될 수 있었다. 내가 섬기는 ‘온누리 교회’는 몇 년 전부터 ‘러브소나타’라는 전도 행사를 일본 각지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 행사는 한국과 일본에서 수천~수만명이 참석하는, 일본의 기독교 사상 유례가 없는 큰 행사로 기획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이 행사를 준비하는 일본측 관련 당사자들이 내내 난감해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행사가 내일 모레로 코 앞까지 닥쳤는데도 행사장 예약이나 호텔방 배정, 그리고 식사 예약 등이 제대로 완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준비가 적어도 몇 달 전에 끝나 있어야 안심이 되는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행사 당일까지도 난리 법석을 떠는 우리의 행사 준비 태도는 공포 그 자체이었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은 밤을 새워 행사를 준비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것 않던 모든 준비가 기적처럼 완료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모든 행사를 미리미리 준비한다. 그리고 그 준비에 의해 행사가 성공했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일까? 일본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지 않는다. 일본인의 ‘미리미리’ 정신은 역시 사람을 두려워하는 그들의 문화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부실한 준비로 사람을 맞는 것이 두려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닥쳐서 난리치는 버릇은 고쳐야겠다. 혹자는 우긴다. 그래도 우리는 공사 부진으로 실내 수영장 지붕을 미쳐 다 덮지 못한 상태에서 2004년 올림픽 대회를 개최하여 망신을 산 그리스보단 낫다고. 제발 그러지 말자. 사람이 두려워서이건 어쨌던 일본의 ‘미리미리’ 정신은 배울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2011-03-02 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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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2> 일본에서는 길을 묻지 마라
일본 사람들은 욕은커녕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매우 두려워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란 담대한(?) 광고 카피가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 제1조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소심한(?) 내용이다. 애가 잘못하면 엄마가 애를 데리고 와서 반드시 사과를 시키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학생들이 여행을 가면 못 간 사람을 위해 반드시 선물을 산다. 비록 우리가 보기에는 누구 코에 붙이려나 싶을 정도로 작긴 하지만. 일본어에서 선물을 토산품 (土産品)이라 쓰고 오미아게 (おみあげ)라고 하는데, 이는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보여 줄만큼 작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 작은 선물 한 개를 입에 넣으며 설사 맛이 없더라도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아, 오이시이 (아, 맛있다)’ !. 내 경험에 의하면 일본에서 아파트 (우리의 연립주택)나 만숀 (우리의 아파트)으로 이사를 가면 바로이웃집 들에 과자 같은 간단한 선물을 접시에 담아 돌려야 한다. 그 선물을 받은 이웃집들도 거의 그 즉시로 비슷하거나 약간 작은 크기의 답례품을 이사 온 집에 보내야 한다. 일종의 전입신고와 답례로 아름다운 풍속이라 할만 하다. 그런데 나는 어딘가 이들이 서로 이웃을 두려워하고 잇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80년 동경대 대학원생 시절, 후지산으로 교실 여행을 가게 되었다. 특이한 것은 정해진 여관까지 개별적으로 가서 정해진 시간에 만나는 것이었다. 과 대표가 단체로 표를 사서 배나 비행기를 탈 때 일일이 나누어 주며 인원수를 세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여행보다는 성숙되어 보였다. 개별 출발이라고 해도 혼자서는 가는 방법을 모르는 나는 지도 교수님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가게 되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출발에 앞서 지도책부터 사시는 것이었다. 나는 가다가 길을 모르겠으면 차 유리창을 내리고 ‘아저씨, xx산 어디로 가면 되나요?’ 소리치면 될 것을 뭐 하러 지도책을 사나 생각하였다. 우리나라는 그러면 되는 나라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함부로 길을 묻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을 세워 놓고 길을 묻는 것은 일본인에게는 대단한 실례이자 민폐인 모양이다. 길을 묻다가 운이 나쁘면 칼을 맞는 시절도 있었을지 모른다. 이런 분위기이니 일본에 지도책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지도책을 사보면 될 걸 왜 묻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 자동차 운전자의 60%가 GPS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GPS 이용률이다. 묻기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통계인 것 같다. 일본 서점에는 외국의 먹거리 볼거리까지를 상세하게 설명한 책들이 무수히 많다. 우리가 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상세하다. 솔직히 우리나라에 관한 정보도 일본책에 더 상세하게 나와 있다. 또 일본의 길거리에는 친절한 길 안내가 넘친다. 일본에서는 길을 잃거든 누구에게 묻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추어 주위를 둘러 보라는 말이 있다. 반드시 눈이 닿는 곳에 길을 안내하는 안내문이 있다고 한다. 이 모두가 묻기를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특성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길 안내판은 아직도 멀었다. 막상 예컨대 ‘사당사거리’를 찾아 그 곳에 가보면 그곳이 사당사거리라는 표지가 잘 안 보인다. 그래 늘 신경질이 나던 터에 GPS가 나왔다. 그러니 자연히 이용률이 높아질 수 밖에. 우리나라 운전자의 GPS 이용률이 50%로 세계 두번째로 높단다. 일본은 묻기가 두려워서, 우리는 기존의 길안내가 부실해서 GPS를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요즘은 스마트폰까지 길 안내를 해준다. 이래저래 점점 남에게 길을 묻지 못 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어디 도로뿐이랴? 인생길 물을 데도 없어지고 있으니 웃을까 울까 물을 데가 없구나.
2011-02-16 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