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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11> 일본약제학회의 시민공개강좌
오늘은 지난 9월 25일 일본 약제학회가 주최한 ‘의약분업 추진을 위한 국제 심포지움’에 가서 발표하고 온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국제 심포지움 이라고는 했지만 나를 제외한 7연사가 모두 일본인이었고 나를 포함한 모든 연자가 일본어로 발표를 하는 자리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심포지움은 공익사단법인인 일본약제학회가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하는 ‘시민공개강좌’이었다. 이 학회가 사단법인에서 공익사단법인으로 바뀐 것은 올해 봄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일반 시민을 상대로는 심포지움을 열지 않는 그간의 국내외 학회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심포지움은 다소 신기한 것이었다.
학회가 열린 곳은 동경 시내의 황궁 (皇宮) 근처에 있는 일본교육회관의 8층 회의실이었다. 심포지움은 오후 1시 정각에 시작되어 저녁 5시에 끝났는데, 놀랍게도8명의 연자가 모두 1분의 착오도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내에서 발표를 마치는 것이었다. 좌장의 안내도 정확했지만 연자 모두 좌장의 지시에 순종하는 태도가 보기 좋았다.
강연회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개회사 (일본약제학회 고문, 고니시 박사), 학회장 인사 (홋까이도대학 약학부, 하라시마 교수), ‘인류 영지 (英知)의 결정이며 세계의 표준인 의약완전분업에 대하여’ (나가이 기념약학국제교류재단이사장 겸 학회 명예회장, 나가이 교수), ‘한국은 어떻게 세계표준의 의약완전분업을 달성하였나?’ (필자), 과거의 약해대국 (藥害大國) 일본과 약제사 (조사이대 약학부 초빙교수 기무라), ‘국민의 안전과 약해 (藥害)’ (탈리도마이드 피해자회 회장 마미야), 세계약제사의 역할 (동경도약제사회 회장겸 보생당 약국장 야마모토), 앞으로의 일본약제사의 역할 (우에다시 약제사회 회장 이이지마), 약제사회에 바라는 것 (1. 의사의 입장에서, 츠쿠바대 의학부 교수 마에노; 2. 일반시민의 입장에서, 호시노),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운드디스커션, 의 순이었다. 심포지움을 연 목적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완전의약분업을 아직도 실시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개탄하면서, 약제사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의 분발 및 이해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비록 참석자는 60명 정도에 불과하였지만 참석자 모두 시종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발표를 경청하였다. 일반 신문사 기자의 취재도 있었다고 한다. 발표 내용은 예상을 크게 뛰어 넘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의사의 반대로 분업을 실시하지 못하는 답답함, 그리고 컨비니언트 스토어가 넘쳐나는 이 시대의 약국이 살아남을 방도 등에 대한 의견 제시가 주류이었다. 참고할 만 했던 것은 ‘강제분업’과 ‘임의분업’이라는 용어는 어감도 안 좋고 부정확하기도 하니 ‘완전분업’과 ‘불완전분업’으로 바꾸어 사용하자는 주장이었다.
우에다시 (上田市) 약제사회장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지역밀착’형 건강도우미 역할을 철저히 할 때에만 약국이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분은 얼마 전 경기도약사회 초청으로 한국에 다녀 왔다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 의약분업 추진에 있어서 시민단체의 이니시어티브와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이 큰 몫을 하였으며, 의약분업의 목표가 의약품의 안전사용에 있다고 볼 때에 우리나라 의약분업 12년의 성과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표를 하였다. 이날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탈리도마이드 환자인 마미야 (間宮 淸)란 분이 직접 나와 1963년 경 일본의 의약품의 안전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가? 그리고 당시 의사와 약사는 제 역할을 다 했는가 등에 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대일본제약이 이소민이라는 이름으로 이 약을 판매하였는데, 피해자가 일본 내에서 9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분은 두 팔이 발달하지 않아 손을 쓸 수 없었는데도 매우 성실한 자료 준비로 훌륭한 강의를 해 주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의 피해자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끝으로 여비와 숙박비 외에 2012 렉춰 쉽 상 (lectureship award, 6만엔)을 부담해 준 나가이 재단에 감사드린다.
2012-10-10 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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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10> 미래의 약학의 약학을 위한 드라이랩
일제 하 1914년 1월에 한국인 다수가 참여한 '조선약학회(朝鮮藥學會)'가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회원은 99명, 초대 회두(會頭)는 다까사또란 일본인이었다. 이 학회는 1921년 1월 ‘조선약학회회보’를 창간하였는데, 이 회보는 1926년 제6호부터 ‘조선약학회잡지’로 이름을 고쳤다. 해방 후인 1946년 4월 13일 '조선약학회(회장, 도봉섭)'를 재창립하였다. 2년 뒤인 1948년 3월에는 ‘약학회지(藥學會誌)’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조선약학회잡지’는 20여 년간의 수명을 마치고 자연히 소멸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조선약학회의 활동이 일시 중단되었으나, 1951년 12월 16일 부산 시청에서 '대한약학회(大韓藥學會)'를 재창립하여 활동을 재개하였다. 재창립이라고 했지만, 실은 ‘조선약학회’의 이름을 고친 것에 불과하였다. 학회의 회지명(會誌名)도 예전의 ‘약학회지’라는 이름을 그대로 계승하여 사용하였다. 그래서 ‘약학회지’가 ‘대한약학회’ 보다 세 살이 많게 되었다. 2012년 현재 ‘대한약학회’는 53세이고, ‘약학회지’는 56세 (Vol. 56을 발간 중)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 약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다. 최근만 보더라도 2000년 7월 1일부터 의약분업이 시작되었고, 2009년부터는 소위 2+4년제의 약학교육이 시작되었으며, 2011년부터 타 학과에서 최소 2년 이상 공부를 마치고 약대 입시에 합격한 학생들이 약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6년제 시행과 더불어 신설된 15개의 약학대학들은 각각 10-20여명 규모의 교수들을 채용하기 시작하였고, 이 바람에 전국 약대 교수의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남으로써, 약학 연구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약학의 연구 방향도 과거와 달리 신약개발학과 임상약학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지향하게 되었다. 드라이랩신약개발학과 임상약학은 분명히 약학의 핵심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핵심적 가치도 사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세포에서 가장 중요한 DNA 정보는 세포핵 (核, Nucleus)에 들어 있지만, 세포가 생존, 분화하기 위해서는 세포핵 주위에 세포질과 세포막이 반드시 공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신약개발학이나 임상약학도 사회약학이나 약사법 같은 주변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 세포핵이 고사하면 뒤이어 세포 (약학) 자체도 죽게 되는 것이다.근래 주로 실험을 하는 연구실을 웻랩 (wet laboratory)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비하여, 주로 실험을 하지 않고 연구하는 연구실을 드라이랩 (dry laboratory)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이미 120여 년 전에 동경대학에 ‘위생재판화학 강좌’가 개설된 이래 현재 약 60개의 약대에서 다양한 이름의 사회약학 계열의 드라이 랩이 개설되어 있다.
의약정책학, 의료경제학, 파마코비지니스인벤션, 의약품정보학, 국제보건약학, 의약품안전성평가학, 약제정보분석학, 국제임상개발규제과학, 의약품개발구상, 의료정보해석학, 정보계량약학, 지역약국학, 구급약학, 의약품리스크관리학, 사회약학, 보험약국학, 임상통계학, 의약개발학, 의료심리학, 약사관리학, 약사법제도, 지역의료약학, 약제역학 등이 그 예이다. 이처럼 사회약학 영역의 드라이랩이 우후죽순 (雨後竹筍)처럼 생겨나는 이유는, 신약개발학이나 임상약학 같은 핵심적 가치 (DNA)를 갖는 웻랩들의 생존과 발달에 웻랩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약학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도 일본에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약학에도 사회약학 영역의 드라이랩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고려대, 동국대 등 몇몇 신설 약대에 드라이랩이 개설되기 시작하였지만, 필요성의 절실함에 비하면 그 규모는 아직도 미미한 실정이다. 다양한 전공의 드라이랩을 개설하는 일은 약학계는 물론 제약업계와 약사회 나아가 사회로부터도 열렬한 호응을 받을 수 있는 미래 약학의 블루오션이 될 전망이다.
2012-09-19 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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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9> 새로운 약의 창조 4- 프로세스 케미스트리
창약 연구 중 ‘제조’ 분야도 시대의 변화 또는 사회의 요청에 따라 연구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1992년 미국식품의약품청(FDA)이 “Racemic Switch”라는 지침을 발표한 것과, 1992년 UN 환경개발회의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Agenda 21’을 채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라세믹 스위치 - 약물 중에는 키랄(chiral) 구조를 갖는 것이 있다. 키랄 구조란 오른손과 왼손처럼, 결합을 자르지 않는 한 서로 겹쳐지지는 않지만, 거울에 비추어 보면 입체구조가 같은 ‘경상이성체(鏡像異性體, 거울이성체)’ 구조를 말한다. “라세믹 스위치” 지침에 의하면 키랄 구조를 갖는 의약품의 경우 두 가지 경상체(enantiomer)가 혼합된 채로 판매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약효가 있는 한 가지 경상체만을 함유하도록 순수하게 만들어 판매해야 한다. 만약 두 가지 경상체의 혼합물을 약으로 시판하고자 한다면 불필요하게 혼입되어 있는 한 가지 경상체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이 지침이 발표된 후 세계의 유기합성화학자들은 오른손계 화합물 또는 왼손계 화합물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부제합성 (不齊合成, asymmetric synthesis)’ 연구에 열정을 쏟게 되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2001년 노벨상을 수상한 R. Noyori 박사 등은 BINAP-천이금속 촉매반응법을 개발하여 멘톨과 카바페넴계 항생물질 등을 부제합성할 수 있었다.녹색화학 - 한편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하는 개념은 자원이 없어지고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환경을 해치지 말고 물건을 만들자’는 ‘녹색화학(green chemistry)의 12원칙’을 따르자는 것이다. 프로세스 케미스트리 - 약을 합성하는 연구에는 프로세스 케미스트리(process chemistry)라고 부르는 분야가 있다. 약을 빠르고, 안전하게, 대량으로, 싸게 합성하는 제조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교토대학의 다께모토 교수 등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지침을 동시에 따르기 위해서는 생물에서 일어나는 생체반응을 합성에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환경에 무해한 방법으로 부제합성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생물인 점에 착안한 것이다. 사실 옛날부터 많은 과학자들은 생물에서의 반응을 모방하여 인공 생체분자를 설계하고 합성하고 싶어하였다. 다께모토 등은 프로테아제(protease)라고 하는 효소에 주목하였다. 일반적으로 효소는 분자량이 수만 내지 수십만인 거대 분자이지만 실제로는 효소의 극히 일부분만이 생체반응에 관여하여 기능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분자량이 커서 합성하기 어려운 효소 대신, 효소의 기능은 갖고 있지만 분자량이 작은 유기분자의 구조를 알아낸다면 그 물질을 인공적으로 간단히 합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프로테아제 효소에 비해 분자량이 훨씬 작고 (분자량 413) 촉매활성이 매우 뛰어난 유기분자 촉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컨대 두 가지 기질을 톨루엔이라고 하는 유기용매에 녹여 이 촉매를 소량 첨가하고 실온에서 저어주었더니 가열이나 냉각 같은 조작을 하지 않고서도 목적으로 하는 생성물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었다.이 인공 촉매는 (1) 매우 안정하기 때문에 반응 후에 회수하여 다시 이용할 수 있으며, (2) 반응 시 가열하거나 냉각할 필요가 없어서 에너지가 절약되며, (3) 합성이 쉽고 가격이 싸기 때문에 경제성이 뛰어나며, (4) 사용시 복잡한 조작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사용하기 쉽다고 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실제로 현재 시판되고 있는 바클로펜 (baclofen)이라고 하는 의약품은 이 촉매를 이용하여 단 3개의 공정만으로 부제합성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복용 후 인체에 안전한 약을 개발하면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약의 제조 과정도 사람에게 안전하고 지구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약을 개발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 새로운 약을 창조하고자 할 때에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다.
2012-09-05 1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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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8> 짚신도 짝이 있다구요?
1. 결혼은 특권층의 행사
나의 대학 동기들 (평균 나이 65세) 9명이 모이는 ‘함춘약우회’의 자녀는 총 16명인데, 현재 8명이 결혼을 못 하였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40대의 17%가 결혼을 하지 못했고, 2010년 현재 서울에 사는 35-49세 남자 5명 중 1명이 결혼을 해 보지 못 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혹시 처녀는 돈 잘 버는 총각만을 원하고, 총각은 예쁜 처녀만을 바라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총각 처녀가 다들 그런 바램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 서로 만나도 결혼이 성사 되지 않는 것 아닌가? 이제 가죽신은 모를까, 짚신은 짝을 구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러다가는 머지 않아 결혼이란 일부 특권층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선 후보님들! ‘짚신도 짝이 있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라고 공약하세요. 그럼 틀림없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나무꾼과 선녀: 애기 셋 낳을 때까지는…
운 좋게(?) 결혼에 성공했다고 해도 안심은 이르다. 여기저기서 이혼 소식이 들려 오기 때문이다. 요즘 애들은 후딱 하면 이혼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요즘 애들이 아니라 요즘 부모들이 자녀의 이혼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 옛날에 나무꾼이 산에 갔다가 연못에서 목욕을 하던 선녀의 옷을 감추는 바람에 선녀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결혼 후에도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고 싶어서 틈만 나면 옷을 돌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나무꾼은 ‘아이가 셋이 될 때까지는 절대로 옷을 돌려 주어서는 안된다’는 산신령의 경고를 어기고 둘째 아기를 낳은 후 어느 날 선녀의 옷을 돌려 주었다. 그러자 선녀는 두 아이를 양품에 껴안고 하늘 나라로 날아가 버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결혼한 신부는 문득문득 결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맞벌이 생활을 하면서 아내로, 엄마로, 그리고 며느리로까지 살기가 고생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셋 정도 낳고 길러 어느 정도 결혼 생활에 이골이 나기 전까지는, 결코 결혼 생활이 안정되었다고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때까지 부부는 온갖 정성과 주의로 상대방을 돌보아야 한다. 마치 인큐베이터에 넣어 기르는 자신의 애기를 돌보듯이. ‘아이를 셋 낳기까지는 결코 결혼 생활이 안정되었다 방심말라.’ 혹시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는 이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큰 아들이 결혼 하였을 때, 최근의 이혼 풍조를 걱정한 나머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였다. ‘만약에 고부 (姑婦)간에 갈등이 생긴다면 너는 네 처 편을 들어라. 나는 네 엄마 편을 들겠다. 만약에 갈등이 심각해져 누군가 갈라서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 된다면, 너는 부모와 갈라지는 선택을 해라. 부모와 자식이 갈라질 수는 있으나 부부간에 갈라지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라고.
3. 감히 시집살이를 시켜?부모들은 흔히 ‘요즘 애들은 얼마나 좋아’ 하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엄청 행복하게 사는 줄로 착각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치열한 무한 경쟁, 맞벌이, 육아 등 지금보다 좋아질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 미래 때문에 우리 부모 세대들 보다 더 깊은 고민을 하며 산다. 부모들은 우선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혼수 타박이나 며느리 구박 같은 행태는 박물관에서도 내다 버려야 할 시대착오적인 바보짓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떻게 감히 며느리를 시집살이 (또는 사위를 구박) 시킬 수 있겠는가? 부모들이 온갖 정성으로 신혼 부부를 보호해 주어도 어려운 게 신혼 생활이다. 이쯤에서 부모 세대는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나는 아이들의 결혼 생활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부모인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기여하는 부모인가? 그 어려운 영예의(?) 결혼을 해 준 우리 자녀들이 부모 때문에 불행해지거나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새삼 나와 똑 같은 생각으로 두 며느리를 품고 사는 아내가 더욱 고마워 진다.
2012-08-22 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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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7> 새로운 약의 창조 3 – 새로운 합성법, 조합화학
인류는 오랫동안 모르핀(아편)과 같은 천연물을 약으로 사용하여 오다가 20세기에 들어서서야 아스피린처럼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약을 창조하기 시작하였다. 또 이미 존재하고 있던 화합물의 작용을 랜덤(random)하게 스크리닝(screening)함으로써 약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20세기 후반에는 질병의 메커니즘을 고려한 드럭 디자인을 통해 항생물질, 혈압강하약, 항궤양약 같은 획기적인 신약들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약의 작용 기전을 밝히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어떤 물질(천연물이나 또는 유기합성물)에 생리활성이 있다고 밝혀지면, 우선 약으로 사용해 보는 것이 먼저였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사람의 게놈(genome) 정보를 이용하여 신약을 개발하는 ‘게놈 창약(genome 創藥)’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정반대, 즉 ‘게놈(DNA) → RNA → 효소 또는 수용체 → 약(유기화합물)의 창조’라고 하는 새로운 연구 흐름이 주목 받게 되었다. 게놈 정보를 이용하면 약을 창조하기 위한 창약 표적물(標的物, target)을 발견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새로운 창약 표적물에 작용하는 리드(lead) 화합물을 발견해 낸 다음, 리드 화합물의 구조를 최적화하는 전통적인 신약 개발 방식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종래의 신약 탐색에서는 천연물이나 합성 화합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서, 생물 활성을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새로운 유도체들을 합성한 다음, 그 물질에 대해 활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보고 다시 새로운 유도체를 ‘설계 → 합성 → 활성 평가’ 하는 조작을 몇 십~몇 백 번 반복한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등장한 ‘조합화학(combinatorial chemistry, 組合化學)’의 기법을 이용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분자의 크기와 형태, 관능기 등이 다양한 몇 천~몇 만 개의 화합물 군(화합물 라이브러리)을 설계, 합성할 수 있다. 다음, 합성된 화합물에 대해 ‘고속검색 (high throughput screening)’이라고 하는 최신의 평가법을 써서 활성이 있는 리드(lead) 화합물 군(群)을 고른다. 그리고 이 리드 화합물 군의 주변을 상세히 탐색함으로써 신약 후보 물질의 구조를 최적화(optimization)한다. 이런 방법을 쓰면 신약 후보 물질을 발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활성이 있는 리드 화합물을 놓칠 위험성도 낮출 수 있다.
조합화학에서는 종래의 ‘액상 합성법’ 대신 parallel법과 split법이라고 하는 고체상 합성기술을 사용한다. 액상 합성으로 1,000종류의 화합물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1,000개의 플라스크를 나란히 배열해 놓고 반응을 시킨 다음, 각 반응 액을 별도로 추출, 농축, 정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방법으로 1,000개의 화합물을 합성하려면 하루에 3개씩 합성한다고 해도 거의 1년이 걸린다. 이와 달리 고체상 합성법에서는 합성하고 싶은 기질 (약의 원료)을 우선 폴리스틸렌 같은 특수한 고체상 담체(擔體, carrier)에 결합시킨 다음, 반응시키고자 하는 시약 용액을 가하여 반응을 일으킨 후 남은 시약을 용매 등으로 씻어 내면, 만들고자 했던 생성물이 고체상 담체 위에 남아있게 된다. 따라서 종래의 액상반응법에서와 달리 번잡한 뒤처리가 필요 없기 때문에 단시간에 많은 종류의 화합물을 얻을 수 있다.
자연이나 인간이 창조해 낸 화합물은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만 해도 8,800만개나 되지만, 그 중에서 약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합화학처럼 약이 될만한 화학구조를 갖고 있는 물질을 효율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은 앞으로의 신약개발 연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술이 될 전망이다.
2012-08-08 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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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6> 인생설계: 비전의 사다리 오르기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이미 20세 때 인생의 목표를 세웠었다’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매우 초조해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미래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이나 인생관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년에는 어떻게 방향이 떠오르겠거니’ 하며 한 해 두 해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을 할 때가 되었는데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대학원에 들어가서 생각하자’는 마음에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요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을 보면 그 때의 내 모습이 떠 오른다. 내가 그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인생의 방향을 세우지 못해 고민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시대를 불문하고 젊었을 때 인생의 목표를 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란 가보지 않은 길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스무 살에 인생관을 정립하신 우리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분인 것 같다. 나는 우리 대학원 학생들이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어렵게 생각하지 먼저,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가장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이란 평을 듣도록 노력해라. 그러면 그 다음 길은 저절로 열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인생은 하늘에 매달린 비전의 사다리 오르기’와 같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다리는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시야 (視野)가 넓어져 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우리의 인생도 사는 도중에 얻은 깨달음을 통해 더 큰 비전을 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먼 곳을 보고자 한다면 사다리를 올라가야 한다. 인생도 젊은 날의 짧은 안목으로 지나치게 먼 훗날을 정확하게 설계할 수 없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일단 네가 속한 그룹에서 좋은 평을 듣도록 노력하라’고 매우 단순한(?) 지침을 주는 것이다. 좋은 평을 듣는 학생은 지도 교수의 강력한 추천서를 받아 좋은 연구를 할 기회를 얻기 쉽다. 다시 그 곳에서 좋은 연구 결과를 내면 훌륭한 학자들과 교류할 기회나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지금 내 앞에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면 좋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비전의 선(善) 순환’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성취가 더 높은 비전을 낳고, 높은 비전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 앞에 놓여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마치 사다리를 한 칸씩 오르는 심정으로.‘성실히 노력하면 그 다음은 저절로 풀린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컨대 비전을 품고 사다리를 오르다 보면 많은 ‘은혜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1979년 나는 일본 문부성 장학생에 응시하여 선발되었는데, 그것은 지금은 동료가 된 C교수가 2년 먼저 장학생으로 선발된 데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다른 대학에 근무하는 Y교수는 나보다 2년 뒤에 일본 유학 길에 올랐는데, 그는 아마 나나 C교수에게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나나 Y가 C로 부터 자극을 받았던 것은 우리 모두가 유학이라는 비전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사다리를 오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의 사람’이 눈에 띠기 마련인 것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말이 생각난다. 아이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간 맹자님의 어머니 이야기인데, 이는 아마 ‘은혜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만날만한 자리’로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만날만한 자리’가 비전의 사다리라고 믿는다. 가수 노사연의 노래말처럼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누군가와의 만남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사랑하는 제자들이여, 인생의 목표를 세우려고 너무 고민만 하지 말고 지금 여러분 앞에 주어진 사다리의 첫 칸을 착실히 올라가라. 그 다음은 올라가 보면 생각이 날 것이다.’ 내 말이 학생들에게 조그만 위로라도 되었으면 한다. 저는 ‘바담 풍’ 하면서도 제자들은 ‘바람 풍(風)’ 하기를 바라는 훈장의 심정으로 한 말씀 해 보았다.
2012-07-18 0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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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5>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라, 일본 (12) – 민주주의
그 동안 11회에 걸쳐 일본 사람들의 특징을 나름대로 설명하였다. 오늘은 그 동안 언급하지 않았던 그들의 습관과 문화를 몇 가지 추가하고자 한다. 그들은 신설되는 지하철 역 이름 하나를 정하기 위해 여론 조사를 하고, 화폐에 인쇄할 새 인물을 정하는데 몇 년씩 논의한다. 동경대에서는 같은 연구실 대학원생들끼리도 점심 먹으러 갈 때에 각자 따로 간다. 말을 할 때에 단정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끝에 ‘네~’자를 붙여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한다. 심지어 ‘아노 (저어)’에도 ‘네’를 붙여 ‘아노네 (저 있잖아요)라고 말한다. 듣는 사람은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소오데스까? (그렇습니까?)’ 또는 ‘혼또 (정말)?’라고 맞장구를 쳐야 한다.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단체 여행을 하면 좀처럼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남학생들은 여행길에 만난 여학생들을 희롱(?)하지 않는다. 식당에 가보면 조용하고 공손한 태도로 손님을 맞는다. 주인과 종업원이 더 떠드는 우리나라 식당과는 딴판이다. 손님에게 물을 따라 줄 때에도 ‘오소레이리마스 (황송합니다)’를 연발한다. 남의 집에 들어 갈 때에는 무릎을 꿇고 신발을 출구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고 들어 간다. 여차하면 도망가려고 그런단다. 깡패도 놀 때에만 난폭한 척하지 다 놀고 나면 단정한 복장으로 전철을 탄다. 공원에서 정말로 술을 마시지 않고 심야에도 택시들이 신호등을 다 지킨다. 모두 감정 표현을 억제하면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인의 긴장된 생활 환경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어떤 민족의 사고(思考)와 문화를 한 개의 코드로 읽으려 드는 것은 애초에 무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을 두려워 함’이 일본을 읽는 중요한 코드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경 아마추어의 만용(蠻勇)이다. ‘사람을 두려워 함’은 사람간의 정을 쌓는 데에는 방해가 될지 모르지만, 약자(弱者)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마 일본의 민주주의는, 총을 차고 살던 미국의 경우처럼, 이 ‘사람을 두려워 함’을 바탕으로 발전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정서가 없다. 양반은 남의 집 대문에 서서 ‘이리오너라’를 외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일상 대화에 얼큰한 욕을 섞어 쓸 수 있었다. 그만큼 안전한 나라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약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했었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랬던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은 실로 대견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물론 나도 일본 문화 모두를 ‘사람을 두려워 함’ 이란 코드로 해석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도 깨알 같은 유서를 쓰고, 우리는 ‘긴장 풀라’고 할만한 때에 ‘긴장해 (간바레)’ 라고 하고, 신사(神社)인지 절인지에 가서 빌 때에 부처님 앞에 달린 종을 쳐서 조시던 부처님을 깨운 뒤에 기도를 하고 (조는데 기도하면 효험이 없어서라고 함), 겨울에 어른은 긴 바지를 입어도 아이에게는 반바지를 입히며, 애가 넘어지면 결코 일으켜 주지 않고 제 스스로 일어나게 하고, 남자들이 목욕하는 남탕에 아주머니가 들어 와 태연히 청소를 하고, 표를 받는 젊은 처녀가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목욕탕 안을 들여다 보는 (안전 사고 방지 목적이라 함) 문화 등등은 ‘사람을 두려워 하는 일본’ 이라는 코드 하나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역사와 환경이 다른 남의 나라의 민족성과 문화가 우리와 다를 것임은 정해진 이치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국가 간의 문화의 우열(優劣)을 논(論)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중국에서 한국 그리고 일본으로 갈수록 사람을 두려워하는 유전적(genotype) 특성이 심해지며, 이에 비례하여 세 민족의 목소리 크기 (일한중 순), 친절하기, 일을 정교하게 하기, 위생 및 청결도, 질서의식 (이상 중한일 순) 같은 표현형(phenotype) 특성이 달라지고 있음을 발견하는 일이 흥미롭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2012-07-04 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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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4> 너무 많은 것을 알려 들지 마
일식 집에서 모듬회를 시킨 손님이 거만을 떨며 주방장을 불렀다. 여보, 어떤 게 광어고 어떤 게 도다리인가? 주방장 대답 왈, ‘잡숴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이 대답에 살짝 기분이 나빠진 손님 왈 ‘먹어보고 모르겠으니까 묻는 게 아닌가?’ 그러자 주방장도 지지 않고 퉁명스럽게, ‘어차피 잡숴 봐도 모르시겠으면 광어인지 도다리인지 아실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했다나.
이 우스개 소리로부터 배우는 첫 번째 교훈은 식당 주인은 이런 주방장은 당장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식당이 곧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방장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먹어 봐도 구분을 못하는 주제(?)에 이름이나 알면 뭐 하겠는가?
나는 젊었을 때 각종 학회에 참석하면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줄 알고 여러 학회를 기웃거렸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내 머리로는 광범위한 지식을 습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실 창의적인 연구를 하는데 생각만큼 광범위한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깨닫게 되었다. 물론 머리가 뛰어난 사람은 사정이 좀 다를 것이다.
성경 (빌 3:8)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하면서 나머지 모든 것들을 심지어 ‘배설물로 여긴다’는 말씀이 있다. 나는 이 말씀을 핑계 삼아 세상의 책들을 잘 읽지 않는다. 세상에 책이 좀 많은가? 예컨대 ‘성공에 필요한 **가지 습관’이라든가, ‘결혼 생활을 잘하기 위한 *가지 지혜’라는 식의 제목을 단 책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팔리고 있다. 만약에 사람이 그런 책들을 다 읽어야만 지혜로워질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지혜로워지기는 애 저녁에 다 글렀다. 그 많은 책을 읽을만한 취미도 인내심도 내겐 없기 때문이다. 논문 몇 편 읽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도대체 어느 나절에 그 수많은 교양 서적들을 다 읽겠는가?
글 (또는 책)이란 무엇일까? 꼭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야 지혜로운 사람일까?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 본다. 그 분의 제자들과 교인들은 수많은 책을 썼지만, 정작 예수님은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으셨다. 책이 아닌 삶으로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본질적인 지혜를 주고 계실 뿐이다. 또 고(故)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어찌 수만 권의 책보다 가볍다 할 수 있겠는가?
TV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達人)’을 보면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에 전념하여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소개된다. 달인들은 책을 쓰지 않는다. 그냥 달인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또 농부나 어부도 대개는 글을 쓰지 않는다. 그들의 성실함은 그냥 삶에서 묻어날 뿐이다. 이들의 삶의 태도는 어디서 손톱만한 지식이나 깨달음만 얻어도 마치 큰 도(道)나 깨친 사람처럼 글(또는 책)로 옮기려 드는 어설픈 글쟁이와는 사뭇 다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고유의 역사(歷史)를 쓰며 산다. 진실되고 성실하기만 하다면 그 누구의 삶도 글보다 경시(輕視) 받을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삶은 그림자에 불과한 글의 본체(本體)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고백하기로 하자. 나도 가끔 글을 쓰지만 내가 쓰는 글은, 적지 않은 경우, 그저 재미나 과시욕 때문에 쓴 잡문(雜文)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물론 많은 분들은 고귀한 지식과 지혜를 피와 땀으로 정성껏 글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 이 점 오해 없기 바란다. 다만 나는 ‘세상이 너무 자기 표현 재주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글을 쓸 줄 모르는 분들의 진솔(眞率)한 삶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말로’ 생선을 구분하려 드는 겉멋 든 지식인과는 달리 달인은 광어와 도다리를 ‘맛으로’ 구분한다. 무식하다는 소리 좀 들으면 대수랴. 이름은 몰라도 맛있게 회를 먹을 수 있는 형편이면 감사한 거지.
‘나이가 들수록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도, 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저 단순하게 달인처럼 사세요’ 오늘 새벽 교회 목사님 말씀이다. ‘아멘’.
2012-06-21 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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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3> 새로운 약의 창조 2 - 시행착오의 지혜
지난번 글(약춘 101)에서는 ‘세렌디피티(우연)’나 ‘필연’에 의해 발견된 약들을 소개하였다. 어떤 경위로 발견되었던 간에 그 다음에 거치는 과정은 ‘시행착오 (試行錯誤)’의 반복이다. 이번에는 시행착오를 거쳐 의약품으로 개발되는 과정을 설명하기로 한다.
(사례 1) 천연에서 발견된 리드(lead) 화합물을 개량한 약, 아스피린 - 아스피린 (아세틸살리실산)은 버드나무에서 발견된 진통 성분인 살리신을 개량하여 살리실산을 합성하고, 이를 다시 개량함으로써 탄생한 약이다. 약의 개발은 이처럼 최초로 발견된 활성물질(리드 화합물)을 화학적으로 수식(修飾)하여 보다 약효가 강하고 부작용이 적은 형태로 최적화해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 최적화 과정에는 시행착오의 반복이 불가피 하다. 아스피린보다 소염, 진통작용이 우수하고 부작용이 적은 이부푸로펜, 인도메타신, 디클로페낙 등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하였다.
(사례 2) ‘골라 잡기’로 발견한 물질을 개량한 약, 딜티아젬 - 1960년대부터 약을 발견하는 수법으로 랜덤 스크리닝(random screening)법이 각광을 받았다. 일본의 다나베(田辺) 제약도 전에 항우울제로 개발하려고 합성해 놓았던 1, 5-벤조치아제핀 유도체들이 혹시 다른 생물활성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스크리닝 해 보았다. 그 결과 1,5-벤조치아제핀의 3위치에 산소관능기(-OCOCH3)가 도입된 유도체에 강력한 관(冠) 혈관 확장작용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이 계열의 유도체들을 더 많이 합성한 다음, 그 중에서 약효가 좋고 독성이 적으며 소화관에서 흡수가 잘 되는 물질을 하나 선택하여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한 것이 딜티아젬(diltiazem)이다. (사례 3) 약물설계를 통해 합성된 항히스타민제, 시메티딘 - 1930년대 말에 메피라민과 디펜히드라민이라는 항히스타민제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항히스타민제임에도 불구하고 알레르기와 염증은 억제하지만, 위산 분비는 억제하지 못하는 모순된 작용을 나타내었다. 이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체에는 알레르기와 염증에 관여하는 수용체(H1수용체)와 위산분비에 관여하는 수용체(非 H1수용체)가 따로 있다’라는 가설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비 H1수용체(히스타민H2수용체라고도 부름)에 결합하는 물질을 찾아내면, 위산분비를 억제하는 신약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1964년부터 제임즈 브락크 박사(노벨 의학생리학상 수상자)를 비롯한 SK&F사(현 Glaxo SmithKline)의 연구진이 과감히 이 가설에 도전하였다. 그들은 히스타민과 화학구조가 비슷한 화합물들을 설계, 합성해서 이들 중에 비 H1수용체에 작용하는 물질이 있나 조사하였다. 비록 초보적이긴 하지만 히스타민과 비H1수용체의 작용 메커니즘을 고려하여 약의 화학구조를 설계하였다는 점에서 역사 상 최초의 ‘약물 설계drug design’라 할 것이다. 이런 시도를 통해 그들은 마침내 세계 최초로 비 H1수용체에 작용하는 약인 브리마미드(brimamide)를 발견하였다. 이 약을 동물에 투여해 보았더니 실제로 히스타민과 비 H1수용체 간의 결합을 방해하여 위산 분비를 억제하였다. 일단 성공이었다. 그러나 브리마미드는 경구로 투여하면 흡수가 잘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흡수가 잘 되고 부작용이 적게끔 화학 구조를 개량하였다. 그 결과 얻은 약이 위궤양 치료제로 유명한 시메티딘(cimetidine)이다. 위궤양은 그 때까지는 오랫동안 입원해서 치료하거나 때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병이었지만, 시메티딘이 개발된 후로는 입원하거나 수술하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는 가벼운(?) 병이 되었다. 할렐루야!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 그 가운데에서 지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시행착오는 과거는 물론 오늘날과 미래의 신약개발에 있어서도 귀중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2012-06-05 1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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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2> 매뉴얼 공화국
작년 동일본 대지진 후에 일본이 보인 태도 중에서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먹을 것도 많고 물도 많은 일본의 난민(難民)들이 느려터진 보급 속도 때문에 마실 것, 먹을 것이 없어서 그 고생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같으면 불도저로 밀어서 길을 내고 가거나, 아니면 헬리콥터를 띄워서라도 물자를 공급했을 것이다.
가까운 두 나라 간에 왜 이처럼 행동 양식에 차이가 날까? 내 생각에 매뉴얼 대로만 행동해야 하는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대규모 재난 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행동 지침이 미처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본인은 모든 일을 매뉴얼에 정해진 대로 해야 한다. 매뉴얼대로 했을 경우, 설사 나중에 결과가 안 좋더라도 ‘나는 매뉴얼대로 했으니까 내 탓은 아니야’ 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매뉴얼에 안 따르고 내 판단에 따라 임의로 대처했다가 일이 잘못되면 온갖 비난과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결국 사람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매뉴얼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나라가 된 것일 것이다.
일본이 매뉴얼 공화국인줄은 나는 1979년 일본에 가자마자 알았다. 79년 어느 봄 날, 약제학 연구실 대학원 생들이 모여 논의를 시작하였다. 주제는 ‘인화성이 있는 유기 용매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실험실 안전에 관한 사항이었다. 예상대로 결론은 ‘실험이 끝난 다음에는 유기 용매 병을 꼭 닫아 두자’는 것이었다. 그 때 한 친구가 의견을 추가하였다. ‘반드시 안쪽 마개를 닫은 후 바깥쪽 마개를 닫자’는 것이었다. 다들 찬성. 그래서 매뉴얼에 안쪽 마개 닫는 방법과 바깥 마개 닫는 방법을 그림과 함께 싣기로 하였다. 여기까지는 참을 만 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물었다. ‘실험이 끝났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냐고. 다시 갑론을박 (甲論乙駁)이 시작되었다. 결론은 ‘실험자가 실험 테이블을 30분 이상 떠날 경우’를 실험이 끝난 상황으로 정의하자는 것이었다. 이 논의 과정에 참여한 한 한국 학생(나)은 거의 돌아버릴 것 같았다. “야, 대충 좀 하자” 소리가 목구멍까지 기어 나왔다.
매뉴얼은 아니지만 비슷한 이야기 하나. 어느 날 실험실 청소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1학기가 끝나면서 대청소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 청소를 하자는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2주 후 토요일에 하는 청소에 관한 것이었다. 무얼 2주나 앞서 논의하나 보았더니 청소할 때 업무를 어떻게 분장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조수가 실험실 전체 그림을 갖다 놓고 구획을 그어 가며 ‘여긴 네가 하고 여긴 네가 해라’는 식으로 구역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 논의에 적어도 30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나는 몸이 뒤틀리기 시작하였다. 속으로 “야, 그냥 전원이 달려 들어 후다닥 해 치우고, 함께 나가 회식을 하면 되지, 뭘 쪼잔하게 미리 업무를 나누고 야단이냐?’’는 불만이 솟구쳤다.
아무튼 2주 후에 대청소가 시작되었는데, 정말 사전에 정한대로 자기 구역 청소를 끝낸 친구는 다른 친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의리 없이’ 먼저 집에 가버리는 것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청소 당일 빠지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들어 보니 2주전에 미리 공지(公知)를 하였기 때문에 청소 당일에 빠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같으면 ‘갑자기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 오셔서 먼저 좀 가 봐야겠다’며 머리를 긁적대는 학생이 한두 명 나오기 십상(十常)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2주전의 회의는 일종의 매뉴얼이었던 셈이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매뉴얼의 대대적인 보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아마 ‘매뉴얼대로만 해서는 안돼, 사람은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의 융통성이 있어야 해’라고 절실히 느끼진 않았을까? 한가지 재난으로부터 정반대의 교훈을 얻는 두 나라 사람의 사고 방식의 차이가 갈수록 흥미로워진다.
2012-05-23 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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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1> 새로운 약의 창조 1 – 우연의 시대에서 필연의 시대로
지금까지 개발된 약의 역사를 돌아 보면 어떤 물질이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우연한 경험을 근거로 개발된 사례가 적지 않다. 작용 기전도 모르는 채 오랫동안 약으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세가지 사례를 들어 본다.(사례 1) 아주 옛날부터 당뇨에 걸린 사람의 오줌이 달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한편 민코우스키 박사는1889년 췌장을 적출한 개의 오줌에 글루코스가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췌장에 당뇨를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1921년 마크라우드 박사는 마침내 돼지 췌장에서 당뇨 억제 성분을 추출, 분리, 정제한 다음 이 물질을 인슐린이라고 이름 붙였다. 1980년에는 유전자 변환 기술을 이용하여 대장균으로부터 ‘사람 인슐린’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사람에게 안전하게 쓸 수 있는 당뇨병 치료제가 개발된 것이다. (사례 2) 고대 중국에서는 이(齒)가 아플 때 작은 버드나무 가지로 이 사이를 문질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말로 이쑤시개를 ‘요지(楊枝)’, 즉 ‘버드나무(楊)의 가지 (枝)’라고 부른다. 1820년대에 버드나무 중에 살리신(salicin)이라는 통증 완화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살리신은 너무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를 개량하여 살리실산을 만들어 보았다. 쓴 맛은 줄어들었지만 이번에는 위장장해가 문제였다. 1897년 독일 바이엘사의 호프만은 쓰지 않고 위장장해가 적은 아세틸살리실산, 즉 아스피린을 합성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아스피린의 해열 진통 작용 기전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1971년이었다. (사례 3) 노벨이 살던 1870년대 말, 협심증을 지병으로 갖고 있는 다이너마이트 공장 노동자가 집에서 쉬는 날에 오히려 발작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났다. 이때부터 다이너마이트의 성분인 니트로글리세린을 협심증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니트로글리세린의 작용 기전, 즉 니트로글리세린에서 발생하는 일산화질소(NO)가 혈관 평활근을 확장하여 심장 발작을 막아준다는 ‘번듯한’ 기전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70년대 후반이었다.이처럼 우연히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것을 영어로 세렌디피티 (serendipity)라고 한다. 그러나 세렌디피티 같은 우연한 경험에만 의지하여 새로운 약을 창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는 성공 확률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이제는 질병의 발증(發症) 메카니즘(즉 건강과 질병의 차이)을 규명하여 치료 표적을 정함으로써 신약개발의 성공 확률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우연의 시대에서 필연의 시대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이다. ‘필연’의 성공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한다.(사례 1) 1989년 일본의 산쿄(三共)사는 푸른 곰팡이로부터 콜레스테롤 생합성효소 (HMG-CoA 환원효소)를 저해하는 메바스타틴이라는 물질을 찾아 낸 다음, 이의 뇨 중 대사체를 약으로 개발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프라바스타틴이다. (사례 2) 또 1983년 일본의 후지사와사는 장기 이식 후의 거부반응이 Helper-T임파구에서 방출되는 인터루킨(IL-2) 때문에 일어나는 것에 주목하여 IL-2의 생성을 억제하는 물질을 찾고자 하였다. 수많은 곰팡이와 방선균을 스크리닝한 결과 1984년 S. 추쿠바엔시스라는 방선균의 배양액이 그런 작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성분을 분리 정제하였다. 이를 장기 이식 후의 거부반응 억제 약으로 개발한 것이 타크로리무스이다. 2003년 완료된 ‘사람 게놈 프로젝트’에 의해 질병의 발증 기전을 유전자 레벨에서 밝힐 수 있게 된다면, ‘필연’의 성공 확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소위 ‘게놈 창약’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갖게 된다. 물론 필연의 시대에도 우연의 가능성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신약개발 만세! 이다.
2012-05-09 0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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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0> 할아버지 학교가 필요해
우리 부부는 어느덧 큰 아들로부터 두 명의 손녀, 그리고 작은 아들로부터 한 명의 손자를 얻었다. 작은 며느리는 전업 주부를 선언하고 제 손으로 애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맞벌이 부부인 큰 아들 내외가 낳은 다섯 살짜리와 세 살짜리 손녀를 봐 주고 있다.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삼 일은 아침 일찍 큰 아들 집으로 출근한다. 자동차로 10분 걸린다. 아내는 출근하는 며느리 밥상을 차리고 나는 어린이집에 데리고 갈 두 손녀에게 밥을 먹인다. 두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밥을 잘 먹어야 예쁜 공주가 될 수 있다’는 둥 별 소리를 다 해 가며, 때로는 쫓아다니며 먹여야 한다. 대충 먹인 다음에는 물수건으로 얼굴을 씻기고 옷을 입힌다. 옷을 입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다섯 살짜리는 때때로 꼭 무슨 옷을 입어야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한편 세 살짜리는 신발은 꼭 제 손으로 신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그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가서 내 차에 두 손녀를 태운다. 큰애에게는 안전 벨트를 채우고, 작은 애는 아직 어려 아내가 안고 탄다. 다행히 어린이집은 15분 거리에 있다. 아내는 작은 애를 ‘꽃사과반’으로 데리고 가고, 나는 큰애를 ‘진달래반’으로 데리고 간다. 작은 애는 할머니와 헤어질 때마다 울더니 얼마 전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이빠이”다. 그 뒤 나는 아내를 우리 집에 태워다 주고 학교로 출근한다. ‘1단계 임무 완료’이다.저녁이면 나는 아침의 역순(逆順)으로 2단계 임무에 돌입한다. 즉 오후 6시에 학교에서 나와 어린이집에 들러 미리 와 있는 아내와 함께 애들을 태우고 큰 아들네로 간다. 참,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는 큰 애가 우리 집에서 ‘한글나라’ 공부를 하기 때문에 우리 집에 데리고 갔다가 아들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아들 집에 오면 아내는 저녁 밥상을 차린다. 아들 내외가 퇴근하면 여섯 식구가 식사를 함께 한다. 역시 시간이 걸린다. 식사를 마쳤다고 ‘일과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애들과 놀아야 한다. 어찌나 애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잠시도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큰애는 특히 ‘역할 바꾸어 놀기’를 좋아한다. 자기가 ‘엄마’가 될 테니 나보고는 ‘자기’의 역할을 하란다. 그리고는 진짜 엄마처럼 나에게 이런 저런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나보고 결혼을 하잔다. 어디서 보았는지 ‘입장’에서부터 ‘주례사 듣기’, ‘애기 돌보기’ 등을 함께 하자고 조른다. 이런 식으로 안아주고 업어 주고, 엄마 아빠 놀이와 소꿉놀이의 상대가 되어 주다 보면 옆구리가 결리고 허리가 아파 온다. 우리 집으로 돌아 오고 싶어진다. 그러니 큰 손녀는 저녁 9시 반에서 10시 반이나 되어야 ‘퇴근’할 수 있도록 우리를 ‘풀어’준다. 일주일의 나머지 나흘 중 이틀은 외할머니가 와서 봐 주시고 나머지 이틀 즉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들 내외가 애들을 본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당번이 아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스스로 큰 아들네 가서 애들과 논다. 스스로 생각해도 심각한 애들 중독 현상이다. 우리가 하도 큰 아들네 애들과만 노니까 작은 아들 내외는 살짝 서운해 하기도 한다. 손녀들과 놀면서 깨달은 것은 손녀들과 노는데도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화영화 ‘뽀로로’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한다. 또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그리고 인어 공주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겨우 대화가 된다. 바람직하기는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의 작동법을 숙지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만화, 동요, 율동, 그림 그리기, 동영상 등 아이가 좋아할만한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신혼 부부 학교’나 ‘아버지 학교’처럼, 교회 같은 곳에 ‘할아버지 학교’가 생겼으면 한다.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좋은 할아버지 노릇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배움에 끝이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2-04-25 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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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9> ‘우리’라는 ‘우리’
우리 나라 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을 쓰기 좋아한다. 심지어 자기 부인을 ‘우리 와이프’라고 말할 정도이다. 외국인들은 ‘our wife’ 라는 이 표현에 황당해 한다고 한다. 우리가 이처럼 ‘우리’라는 표현을 애용하게 된 것은 옛날부터 농어촌 등에서 함께 모여 일하던 공동체 습관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라는 말의 어감 (語感)은 서구인들이 쓰기 좋아하는 ‘나’라는 말보다 덜 야박해 보여 좋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동네’라는 표현에는 왠지 모를 따듯함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이 ‘우리’라는 표현에 한두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생겼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 보고자 한다. 우선 우리는 ‘우리’의 크기를 너무 작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싶다. ‘우리 나라’의 경우처럼 제법 큰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우리 식구, 우리학교, 우리 팀, 우리 지역’처럼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일컬을 때 ‘우리’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남이가’ 하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우리’란 말을 ‘남’이란 말의 반대어(反對語)로 사용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 편’ 소속이 아니면 ‘남의 편’으로 보고, 심하면 ‘적(敵)’으로까지 본다. 이럴 때의 ‘우리’에서는 ‘우리끼리만’이라는 배타성(排他性)이 엿보인다. 사전을 보면 ‘우리’라는 단어는 ‘돼지우리’와 같이 ‘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 (畜舍)’ 또는 ‘울타리’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그러고 보면 말 장난 같지만 우리는 우리를 너무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오늘날 보수 또는 진보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각각 자기들 나름대로의 ‘우리(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을 ‘우리’라고 부르는 것 같다.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좋지만 걱정되는 것은 그들이 자기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남이나 적’으로 간주(看做)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 방식을 ‘진영(陣營)의 논리’라고도 부르는 모양인데, 진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세상은 온통 ‘우리 편’과 ‘적’과의 싸움터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세상이 싸움터이면 인생은 필연적으로 싸움일 터이다. 그런 세상, 그런 인생에 무슨 평화와 평강(平康)이 있겠는가? 우리는 세상이 진영간의 싸움터로 바뀌는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싸움터로 만들 권리는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모두가 진영이라는 ‘작은 우리(울타리, 틀)’를 깨고 드넓은 밖으로 나오도록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크기를 키우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배타적 집단으로서의 ‘우리’의 틀이 아니라, 우리와 반대되는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포용하는 ‘이해의 폭’으로서의 ‘우리’를 확장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대립된 진영 간에 공감하는 영역(공감대; 共感帶)이 발견될 것이고, 이 공감대가 넓어질수록 진영 간의 대립에 의한 사회적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우리의 삶에 평화와 평강이 찾아 오게 될 것이다. 최근 ‘힐링 캠프’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 탤런트 차인표씨가 인도와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헌신하는 내용을 보았다. 또 얼마 전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하여 현지에서 순교하신 이태석 신부님의 일대기를 보았다. 진한 감동이었다. ‘우리’의 개념을 ‘인류’ 전체로 확대하고 있는 이런 분들의 고귀한 삶이 있기에 아직 지구에 평화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정치판이 ‘작은 우리’간의 진영 싸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각 진영의 투사(鬪士)를 지도자로 오해해서도 안 된다. 이제 진영 간의 화해를 이끌어 낼 포용력을 갖고, ‘인류’ 전체를 ‘우리’로 이해하는 비전을 가진 ‘점잖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총선의 날 4월 11일을 맞는 간절한 소망이다.
2012-04-12 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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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8> 기다렸다 말할 걸
며칠 전 대학 후배 댁 혼사에 갔을 때의 일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어떤 후배 하나가 나를 따라와서는 “선배님, 저기 앉아 있는 분이 누구세요?” 물었다. “내 친구 K야”라고 대답했더니, 그 후배 얼굴이 하얘지면서, “아 큰일 났네”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접시를 들고 K 옆에 앉았더니 그 친구 왈, 저 후배가 아는 척을 하길래 “야 너 요새 혈색 참 좋다”고 했더니 그 후배 답하여 가로되 “야 임마, 네 혈색이 더 좋다”고 했다나. 순간 머리가 띵 했지만 ‘아마 저 녀석이 날 잘못 알아 본 모양이구나’ 생각했단다. 아닌 게 아니라 그 후배는 곧 우리 자리로 오더니 “선배님, 제 동기로 잘못 알고 죽을 죄(?)를 졌습니다. 용서해 주세요”하며 사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네가 알고도 그랬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말 때문에 낭패를 본 사례 몇 가지가 머리에 떠 올랐다.
내가 군대 사병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사례1) 정기 휴가를 나갔다가 귀대하면서 ‘마리아 상사’라고 별명이 붙은 선임하사 댁에 들렀다. ‘마리아 상사’란 말끝마다 “이O의 XX들 말이야” 하는 그의 말 버릇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그 댁에 들른 것은 무언가 뇌물을 좀 바쳐 귀대 후의 내 신분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어둑어둑한 방안에 들어 가 인사를 마치는 순간, 부엌 쪽 문이 열리며 한 노인네가 밥상을 들고 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인사성 바른 나는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어머님 되십니까?”라고. 그런데 그 순간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내가 크게 실수한 느낌이 엄습하였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선임하사의 침통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냐, 우리 마누라야”라고 하는. 그 때 나는 “아! 이제 나는 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비슷한 실수는 수십년이 지난 요즘에도 반복되고 있다. (사례2) 오랜 만에 옛 제자를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그냥 “잘 지내?” 라고 만 하는 것이 좀 그래서 한번은 “그래 지금 어느 회사 다니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제자 대답 왈, “지난번에 D제약 다닌다고 말씀 드렸었는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괜히 물어 봤네 생각하며 머쓱해 한 적이 있었다. (사례3) 한번은 어떤 영악한 제자를 만났는데 그는 내가 이름을 물어 보기도 전에 “교수님, 저 누군지 또 모르시죠?” 라고 선수(先手)를 치는 것이었다. 아마 얼마 전에도 내가 그 제자의 이름을 몇 번 물어봤던 모양이다. (사례4) 이 정도의 망신(?)은 약과이다. 언제인가 나이가 좀 든 제자가 찾아 왔길래 “이제 너도 장가가야지?” 했더니 “교수님, 지난번에 딸 낳았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하는 게 아닌가?
나의 대학 동기 C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그가 처음 약국을 열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를 업고 약국에 와서, “우리 아이가 감기가 들어서 그러니 약 좀 주세요” 했단다. C는 친절하게도 업힌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고는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여태 무얼 하셨어요?” 하며 아주머니를 좀 나무랐다. 그랬더니 아주머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내 친구를 바라보더니, “약사님, 얘는 안 아파요, 아픈 애는 집에 있는데요” 했다나. 그 친구는 그 때 결심했단다. ‘조금만 기다리자. 그러면 상대방이 다 말하게 되어 있다’ 라고.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리하기로 결심하였다. 즉, 오랜만에 누구를 만나면 그냥 온화하게 웃으며 기다리기로 하였다. 괜히 아는 척, 자상한 척 먼저 말을 걸었다가 불필요한 망신을 자초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기다렸다 말하기’는 제법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기다리면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열고 자기 이름, 직장, 가족 상황을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설명해 주게 되어있는 것이다. 혹시 나처럼 순간 기억력이 부실한 분들은 이 ‘기다렸다 말하기’를 한번 시도해 보시면 어떨른지.
2012-03-28 1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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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7> 제네릭이 어때서?
어느 초등학교에 교육감이 시찰을 나왔다. 지구본을 하나 들고 5학년 수업시간에 들어 가 반장에게 물었다. “이 지구본이 왜 23.5도 비뚤어져 있는지 아나?” 반장 왈, “제가 그런 게 아닙니다. 원래 사올 때부터 그렇게 삐뚤어져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교육감은 담임 선생님에게 물었다. 담임 선생님은 “반장 말이 맞을 겁니다. 걔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화가 치솟은 교육감은 이번에는 수행하던 교장에게 물었다. 교장은 지구본을 한참 이리저리 조사하더니 드디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 이거 국산품이군요. 국산품이 다 그렇죠 뭐”. 교육감은 말문을 닫고 발길을 돌렸다. 이 우스개 소리는 국산품의 품질이 형편 없었던 옛날에 많은 공감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 국산 TV가 소니 제품보다 비싸게 팔리고, 중국산 농수산식품을 국산이라고 속여 파는 시대가 되었다. 그 정도로 국산품의 품질이 좋아진 것이다. 최근에는 한류 (韓流)의 덕도 톡톡히 보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국산 의약품이 나설 차례이다. 최근 한 제약기업이 ‘제네릭’을 발매하기로 결정을 하고서도 이 사실이 매스컴에 크게 보도되는 걸 꺼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네릭이란 특허 보호 기간이 끝난 외국 회사의 약을 모방하여 만든 약인데 시중에서는 흔히 ‘복제약’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제네릭을 법적으로나 매스컴에서나 ‘후발의약품’이라고 부른다. ‘복제약’은 웬지 남이 만든 약을 불법으로 손쉽게 베꼈다는 뉴앙스를 풍기지만, ‘후발의약품’은 조금 나중에 만든 약일 뿐이라는 한결 밝은 뉴앙스를 풍긴다. 앞서 말한 회사는 점잖은 회사가 복제약을 만든다는 세간의 오해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도 제네릭을 ‘후발의약품’으로 부르기를 제안한다. ‘복제약’ 이란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틀린 말이기 때문이다.나는 신약뿐만 아니라 제네릭을 만드는 일도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우수한 품질의 제네릭을 값싸게 만들어 환자에게 제공한다면 이는 국가적으로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제네릭 생산을 조금도 꺼림칙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최근 이스라엘의 ‘테바’라고 하는 제네릭 전문 회사는 BMS를 제치고 세계 11위의 거대한 회사로 성장하였다. 화이자 같은 미국의 메이저 제약회사들도 최근 속속 제네릭 제조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의 제네릭 관(觀)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국산 제네릭과 관련하여 다행인 것은 이들의 품질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제약회사의 역사는 제제가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제제를 만드는 기술에서 우리가 어느 나라에 뒤질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식약청의 인증이 이를 입증한다. 무조건 오리지널 회사가 만든 약의 품질이 더 좋은 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오해이다. 오리지널 회사가 새로운 신약의 개발에 있어서 우리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제네릭 약을 합성하고 제제로 가공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들보다 못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제네릭은 이미 구조와 제법이 다 공개된 약이기 때문이다. 제네릭은 오리지널에 비해 싸게 만들어 팔 수 있다. 신약개발 비용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싼 제네릭은 국가 의료보험 재정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정부는 신약은 신약대로, 제네릭은 제네릭대로 장려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오리지널과 품질이 똑 같아 한다며 특히 제네릭을 규제하는 모습이다. 반면에 막상 제네릭이 따라 가야 할 오리지널의 품질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를 가하지 않는다. 예컨대 오리지널 약의 용출 (溶出)이 로트 별로 달라져도 이를 규제하는 아무런 조항이 없는 것이 실정이다. 이제 정부는 제네릭을 보다 공정한 자세로 밀어 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 회사들도 어깨를 펴고 말해야 한다. “제네릭이 어때서?” 라고.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이거 국산 맞죠?” 하는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날, 그 날이 바로 국산 의약품의 한류 시대가 열리는 날이 될 것이다.
2012-03-14 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