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인과 우리
김하준(해외개발 대표이사)
수개월전 2002년 월드컵에서 열심히 뛰어 4강신화를 일구어냈던 선수중 한사람인 김남일 선수가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 김하늘이라고 이야기한 내용이 밝혀지면서, 김남일과 김하늘을 관리하는 홈페이지가 마비되었다고 했다.
김남일선수의 팬들이 40만명에 이른다고 했는데, 대부분이 월드컵 개최기간에 붉은악마의 단결된 응원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젊은 학생층일 것이고, 특히 여학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로 생각된다. 월드컵기간동안 김하늘도 다른 연예인들과 마찬가지로 붉은악마와 같은 마음으로 또는 그 일원으로 한국팀의 선전을 열열히 응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남일 선수가 가볍게 한 이야기로 인하여, 김하늘은 김남일 선수의 팬들로부터 적이 되었고, 그 발언에 대해 김남일 선수는 응분의 대가(?)를 치렀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과연 붉은악마의 열정이 순수한 애국심에서 발로한 것이고,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과연 붉은악마의 열정을 우리의 경제에, 정치에 나아가서는 우리의 국가발전을 위하여 긍정적으로 도입할 수 있을까? 각 언론기관에서 앞 다투어 특집화 했지만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된다.
한때,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열기에 찼던 축구장의 관객석도 아시안게임의 졸전 한번으로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물론, 순수한 열정으로 축구를 좋아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겠지만, 마음 붙일 곳 없는 젊은이들이 월드컵이라는 한시적인 돌파구를 찾았던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작태에 식상하고, 사회현실에 좌절하였던 마음이 터져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장년층도 별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정치, 흐려진 가치관, 효율적이지 못하고 뿌리없는 교육, 정직하지 못하고 왜곡된 사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상등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사회, 그 자체가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러한 배경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 `우리'라는 개념이다. 위의 김하늘은 김남일의 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어제는 같이 우리였지만 오늘은 공동의 적인 `남'이 되어, 타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인기가수의 공연장에서 새벽부터 줄지어 늘어서있는 어린 학생들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상에 따라 우리가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한다.
한국인의 `우리'는 지극히 상대적이다. 때에 따라 내가 속해있는 상황에 따라 그 범위가 달라진다. 집안싸움을 할 때는 부부가 적이 되지만, 이웃과 싸울 때는 잘 잘못을 떠나 부부가 또는 자식들이 합세, 하나의 우리가 된다. 애들 싸움이 동네 싸움이 된다는 표현이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며, 영호남의 지역감정도 여기서 출발한 것이다. 종교인들에게도 이러한 우리의 개념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
그러면, 한국인의 잘못된 `우리'의 개념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백년대계를 내다본 교육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우리의 현 교육제도는 평준화를 추구하고 있고 평준화라는 것이 하향 `우리'화이다. 히딩크감독이 성공했던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가 학연, 지연의 타파였는데, 이것은 바로 `우리'의 타파였다.
아직도 희망적으로 보고있는 붉은악마의 신화는 사실 우리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극복해야할 과제인 셈이다. 가족차원에서, 학교차원에서, 지역차원에서, 회사차원에서, 즉 우리의 차원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보고, 별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2002-10-24 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