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이라 하여 많은 기대 속에서 맞이했던 2000년도 저물고 이제 2001년 새해를 맞이했다. 매년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회고하면서 잘못을 반성하기도 하고 당찬 새해 계획을 세워 보기도 한다.
작년 이 때쯤에도 우리 약계는 당면한 모든 현안문제가 잘 해결될 것을 희망했었고 거기에 거는 기대도 대단했으나 현재 의약분업 시행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약계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21세기가 시작되는 2001년을 맞이하면서 이 어려운 현실이 좀 더 좋아지는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을 다시 한번 가져본다.
우리나라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정도의 살만한 처지가 되었고 머지 않은 장래에 선진국대열에 진입하게 될 시점에서 우리의 잘못된 타성이나 관행을 과감히 개선해나가도록 대대적인 국민운동 전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평소 못마땅하게 생각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의 질서의식 결여와 법을 지키겠다는 준법정신의 결여다. 그 원인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되므로 이것만은 고쳐서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갖도록 했으면 한다.
법률가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 법은 세계에서 최고라고 한다. 우리는 법에 대한 철학자체가 구미선진국과는 다른 것 같다. 구미선진국에서는 누구나 지킬 수 있는 최저기준을 요구하는 법을 만들지만 우리는 지킬 수 없는 최고의 기준을 요구하는 법을 만들어 가장 엄격한 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법 자체는 훌륭하고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기로 하겠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전공학과 마다 학생-교수의 비율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 요구하는 학생-교수 비율은 이상적인 수치로서 현실과는 너무나 동 떨어져 이 비율을 100% 지키는 대학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일정간격으로 교수 확보율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목표치의 몇 %까지 허용하는 식으로 양보하고 지나간다. 이렇게 애당초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어 놓고 일정 비율을 할인해 주는 것이 우리의 관행이다.
위의 예에서처럼 애당초 지킬 수도 없는 이상적인 수치를 법에 도입하기보다는 우리 실정에 맞는 수치를 제시하고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것이 국민의 준법정신을 고양하는데 좋지 않겠는가? 지키지도 못할 법을 만들어 국민 모두를 범법자로 만들고 난 후 마치 큰 은덕이나 베푸는 양 용서하거나 눈감아 주면 법의 집행자들에게 국민이 아부하게 되고 또한 부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법은 지킬 수 없는 것이라는 편견을 국민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준법정신을 퇴색시키는데 일조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목격하고 경험하는 것 중의 하나로 어떤 구호나 경고에 대한 일반국민의 행동양태이다. 어떤 공공장소에 `금연'이라는 표시가 있으면 구미선진국에서는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누구나 경험하는 바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금연' 표시가 붙어있는 바로 그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산불예방 차원에서 산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금하고 있으나 등산할 때 주위를 둘러보면 도처에서 담배 피우는 광경을 목격 할 수 있다.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현수막을 자주 목격하지만 하나의 행사로 끝나고 만다. 법을 만들거나 경고문을 붙일 때 법을 준수하고 경고문에 응해야 한다는 실천의지는 애당초 없고 오로지 법을 만들고 경고문을 붙이는 일 자체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는 경향이 농후하다고 하겠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상승하자 기름절약을 위하여 매월 첫째주 월요일은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기로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담당 부서 공무원들조차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다른 공무원들은 이런 사실을 대부분 모른다고 했다. 담당공무원은 처음부터 TV대담에 나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우리경제에 보탬이 되는 일이니 기필코 실행에 옮기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기획했는지 되묻고 싶다.
아이젠하워 전 미국대통령이 콜롬비아 대학 총장으로 있을 당시 유명한 일화 하나가 있다. 교정에 잘 다듬어진 잔디밭을 학생들이 가로질러 다니는 것을 막으려고 학교당국이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대학당국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니는 학생을 처벌하려고 하자 아이젠하워 총장은 학생들이 다니는 바로 그 곳에 보도를 만들면 되지 왜 학생을 범법자로 만들어 처벌하려 하느냐고 했다는 이야기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면 그만큼 거리가 단축되므로 대학당국이 아무리 못 다니게 해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아이젠하워 총장의 말대로 잔디밭 중간에 보도를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국민들은 누구나 규칙과 법을 지키도록 노력하는 반면 행정당국은 현실을 도외시 한 채 탁상공론식으로 규칙이나 법률을 만들고 있지 않나 반성해야 한다. 실천 가능한 법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이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법을 지킬 수 있으므로 법을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어떤 규칙이나 법이 만들어지면 그 규칙과 법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하고 행정당국은 그 법을 올바로 집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보고 바보가 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준법정신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의약분업 시행과정에서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는 바이지만 원칙은 없고 목청 크고 밀어붙이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어떠한 희생이라도 각오하고 원칙을 고수할 실천의지를 보인다면 사회 각 분야에서 모든 이해집단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들고 일어나는 상황은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국민의 준법정신 결여가 국민성 자체에 있기보다는 다분히 행정당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된다. 지키지 못할 법을 만들고 만들어 놓은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도 못하며, 또한 원칙 없는 행정을 반복하면서 어떻게 국민에게 법을 따를 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 법을 지키지 않는 국민만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행정당국도 스스로 대오 각성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국민의 입장에서는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보다는 악법도 법이므로 지켜야 한다는 성숙된 시민의식을 가질 때 사회질서가 회복되어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는 것을 깨닫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새해는 뱀(辛巳)의 해이다. 성경에서는 에덴동산에서 이브를 꼬여 선악과를 따먹게 한 죄로 뱀을 저주하고 있지만 뱀 꿈은 상서로운 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또한 재물을 몰아오고 그 재물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다.
새해는 경제가 더욱 더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고 있지만 슬기롭게 이 난국을 극복하고 재물의 손실이 아닌 오히려 재물이 더욱더 쌓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