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의 `의약분업 시행'은 `보건의료의 선진화'를 단적으로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또한 정부에서 `선시행 후보완'의 원칙을 세워놓고 밀어붙이는 바람에, 전례없이 의료계의 강력한 저항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실, 의약분업이 시행되기까지는 37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그 긴세월 동안, 의약분업을 위해 착실히 준비해 왔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의 건강증진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려면 여러 분야의 협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의약분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나면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가 해결돼야만 의약품의 오·남용이 방지되고 보건의료자원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며, 의료보험 재정도 실질적으로 보호됨으로써 선진형 보건의료의 내용을 제대로 성취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 의약분업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사전에 세가지 요소가 차분하게 준비돼 있어야 했는데 이것이 의약분업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거나 분업이후에나 마련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정부는 물론이고 관련 업계와 단체에서도 개혁의 대가를 충분히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의약분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미리 준비완료가 돼 있었어야 할 세가지 요인들을 이제라도 원칙을 충실히 지켜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이들을 차례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약가제도의 개혁이다. 지난 99년 11월15일에 실거래가 상환제도가 도입되면서 의약품가격의 거품을 빼고 대신, 의보수가를 상향조정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문제시되어 왔던 음성적 의약유착의 관행이 상당히 사라지면서 투명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면계약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가 실사작업을 강화하거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거래내역의 문제점을 발견시 역추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제도의 실효를 거두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약효동등성의 확보다. 이는 의약협업시대를 맞이하여, 제약업계 및 시민단체 등에 의해 국내 제약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으로 카피중심 영세업체들의 난립이 지적되면서 이들을 제도적인 방법으로 퇴출시키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카피의약품이 분업이후에도 계속하여 잔존할 가능성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역별협력위원회 규정이 삭제됨으로써 의사에게 처방약의 선정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게 되면 오히려 음성적 거래가 양성화됨으로써 또다시 의약유착에 의해 반드시 퇴출되어야 할 영세 제약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약효동등성의 확보를 통하여 진정으로 우수한 의약품만이 유통되는 한편, 영세 제약기업들이 자연스럽게 퇴출당하도록 하기 위해 이제 공은 처방독점권이 있는 의사들에게 넘어갔다는 사실과,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권한과 함께 무거운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는 사회적 요청이 소홀하게 여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약품 유통개혁이다. 우리 나라는 유통구조가 복잡하고 유통업체가 영세하여 매출액대비 9.51%나 되는 과다한 물류비용(선진국의 경우에 2~3%)을 지불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의약품이 제약업체와 요양기관과의 직거래 형식으로 도매상에 의한 의약품유통은 겨우 전체의 25.9%에 불과하다.
또한 표준파레트 사용률과 표준규격포장 사용률이 10% 미만인데다가 수송차량 적재함도 표준화돼 있지 않아서 적재효율이 저조한 상태이므로 작업효율성이 매우 낮은데다 제약업체의 의약품 외상매출금 회수기간이 평균 251일에 달해 제약업체와 도매업체의 경영난을 심화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물류정보화측면에서도 그동안 외국업체들로부터 국내시장이 보호를 받아 왔기 때문에 약업계에서 특별히 물류관리 정보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전근대적 방식에 의존해 왔다.
이제 유통개혁을 통하여 유통구조를 현대화하고 투명한 거래를 통하여 공정 경쟁체제를 구축하고자 의약품 유통종합정보센터와 의약품물류협동조합을 설립, 운영하고자 추진중에 있으나 단체의 미온적인 태도로 물류조합 설립이 난항을 겪고 있는 바(전체 제약업체와 도매업체수가 889개 업체에 달하고 99년 발기인대회에 229개 업체가 참여했으나 현재 전체의 16.2%인 144개 업체만이 조합에 참여하고 있는 형편임, 2000년 12월 6일 복지부 국정감사자료), 거래가 투명해지면서 세원이 노출될 것에 대한 불안감이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선진사회란 결국 투명한 사회이다. 의약분업이 의약협업을 의미하지만, 의약협업이 곧 의약담합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의약유착으로 얼룩진 과거의 행태가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화된 보건의료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면, 의약담합은 의약협업의 가장 큰 저해 요인이다.
그러므로 21세기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개혁의 주체인 요양기관, 제약업체, 도매업체가 페어 플레이(Fair Play)의 정신을 가지고 모두 함께 투명해지지 않고는 선진 보건의료체계와 선진 사회를 건설할 수 없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