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서울 종로2가 덕원빌딩에 작은 간판을 내건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누릴 수 있다’는 원대한 신념으로 유한양행을 창업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가짜 약이 판치던 암울한 현실 속에서, 과학적으로 검증된 좋은 약을 국민 곁에 두겠다는 사명은 유한양행 연구개발과 경영 철학의 굳건한 출발점이 되었다.

창업 100주년을 맞이한 유한양행의 100년 역사는 외산 의약품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일제강점기의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해 세계 최초 혁신신약 개발과 국내 최대 규모 기술수출을 달성하며 K-제약바이오의 글로벌화를 주도한 대한민국 제약산업 고도화의 압축판이다.
유한양행이 걸어온 지난 100년의 발자취를 연구개발 역량 진화, 글로벌 시장 개척, 이윤의 사회환원, 사람 중심의 고용 철학이라는 네 가지 핵심 축을 통해 조명해 본다.
유한양행의 R&D 역사는 철저한 인재 중심 경영과 '좋은 약'을 선별하겠다는 의지에서 기원한다. 미국 애보트, 파스퇴르 등 당대 최고 제약사의 의약품을 깐깐하게 엄선해 수입하는 것 자체가 첫 번째 R&D이자 글로벌 사업의 형태였다.
1933년 아내 호미리 여사와 자체 개발한 최초의 제제 의약품 '안티푸라민'은 2025년 기준 연매출 355억 원을 기록하며 100년 가까이 소염진통제 시장을 이끄는 산증인이 되었다. 1936년 부천 소사면에 설립한 공장은 최신 기기를 갖춘 제약실험연구소를 내부에 설치하여 선구적인 연구 토대를 닦았고, 1960년대 독립 연구조직 '실험연구실' 준공과 항결핵제 핵심 원료 국산화에 성공하며 진정한 기술독립을 이룩했다.

1987년 물질특허제도 도입 이후 신약 탐색으로 방향을 전환한 유한양행은 1993년 간장질환 후보물질 'YH439'를 일본에 기술수출하며 국내 제약 최초의 글로벌 라이선스아웃을 기록했고, 2005년에는 세계 최초의 위산펌프길항제(APA) '레바넥스'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후 이층정 기술을 활용한 고혈압·고지혈증 복합 개량신약 '듀오웰'과 3제 복합제 '트루셋'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제제 기술력을 입증했다.
가장 눈부신 성과는 2015년 스스로를 '중간개발자'로 재정의하며 본격화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다. 2015년 오스코텍 자회사 제노스코로부터 도입한 '레이저티닙'은 물질 최적화 및 초기 임상을 거쳐 2018년 얀센과 총액 12억5500만달러 규모의 초대형 기술수출 계약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2024년 8월, 이를 주성분으로 한 '렉라자'는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FDA로부터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 승인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창업자의 100년 전 선언이 현실이 된 결정적 순간이었다.

유한양행의 글로벌 행보는 1930~40년대 중국, 만주, 동남아 등 총 12개 해외거점을 구축하며 종합 무역 기업의 면모를 갖춘 것에서 적극적으로 발현됐다. 1957년 아메리칸 사이아나미드와의 기술제휴를 기점으로 얀센, 쉐링, 파크데이비스 등 세계 최정상 제약사들과 연쇄 제휴를 맺으며 선진 제약 기술과 글로벌 GMP 기준을 빠르게 내재화했다.

원료의약품(API) 수출 역시 글로벌화의 튼튼한 기둥이다. 1980년 설립된 유한화학은 신약 원료의 공정 개발을 전담하는 CDO 전문기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길리어드사이언스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단일 제약사 최초로 2013년 원료의약품 1억 달러 수출탑을 달성했으며, 2024년 9월에도 1076억 원규모의 HIV 치료제 신원료 공급 계약을 맺는 등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또한 벤처기업을 인수해 출범한 와이즈메디를 통해 2023년 스마트팩토리 제2공장을 준공, 고부가가치 영양수액 시장에서도 괄목할 성장을 입증하고 있다.
유한양행이 대한민국 제약부문 1위이자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히는 이유는 확고한 이익 사회환원 철학에 기인한다. 유일한 박사는 1971년 별세 시 보유한 유한양행 주식 14만941주 전부를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에 기증했다.

유한양행은 1965년 흠잡을 데 없는 세무신고로 모범을 보여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고, 1962년에는 선제적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대중에게 이익을 공유했다.
교육을 통한 사회 환원 역시 눈부시다. 1952년 설립한 고려공과기술학교는 현재의 유한공업고등학교와 유한대학교로 진화하며 수만 명의 인재를 배출했다. 창업자의 전 재산 기증으로 출범한 공익법인 '유한재단'은 2025년 기준 유한양행 지분의 약 35.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약 1만 100여 명의 학생에게 370억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기업 이익이 사회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구조를 이뤘다.

본업과 연계된 사회공헌도 주목받고 있다. 렉라자가 건강보험 급여에 등재되기 전까지 조기 접근 프로그램(EAP)을 운영해, 약 900명의 환자에게 조건 없이 무상으로 의약품을 제공했다. 환경 및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국내 제약회사 최초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고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코리아 지수에 3년 연속 편입되며 ESG 경영을 심도 있게 실천하고 있다.
"연마된 기술자와 잘 훈련된 사원이야말로 기업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다." 창업자가 남긴 철학은 유한양행이 100년간 단 한 차례의 노사분규도 없이 상생해 온 대기록의 토대다.
1936년 한국 기업사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여 임직원을 기업의 공동 주인으로 인정했고, 1957년에는 학연 및 지연을 배제한 사원 공개 모집을 업계 최초로 실시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유한양행의 노사관계는 공동체의 주인이 뭉치는 '노노(勞勞)' 문화로 불린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인위적 구조조정 없이 고용 안정을 지켜냈고, 2010년에는 제약업계 최초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국가적 저출산 위기 앞에서는 자녀 1인당 1000만원의 출산지원금을 전격 도입했다. 나아가 수천억 원 규모의 바이오벤처 투자는 유한양행 내부를 넘어 K-제약바이오 생태계 전반의 우수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임직원 평균 근속연수 12년 8개월, 창사 이래 중대재해 0건이라는 성과는 유한양행이 인적 자원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는지 단적으로 방증한다.
원희목 유한재단 이사장은 유한양행의 창립 100주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단순한 개별 기업의 기념일을 넘어 대한민국 약업계 전체의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유한 그룹은 최대 주주인 유한재단(지분 약 17%)을 필두로 기업 본체인 유한양행, 그리고 유한학원(지분 약 6~7%)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법인은 철저히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유한재단 이사장은 유한양행의 최대 주주 대표로서 상징적인 권한과 위상을 보유하지만, 실제 기업 경영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투명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확고히 지키고 있다.
특히 원 이사장은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의 숭고한 철학에 짙은 존경심을 표했다. 그는 "대한민국 기업사에서 기업 전체를 온전히 사회에 환원하고, 자신의 자녀에게는 단 한 푼의 재산도 남기지 않은 기업인은 유일한 박사가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유한양행의 100년은 단순한 기업의 성장 스토리를 넘어,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유일한 정신'이 전 세계 환자를 살리는 혁신신약의 탄생으로 결실을 맺은 여정이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립하고 임직원을 최고의 자산으로 존중하는 경영 모델은 오늘날 한국 기업 생태계가 나아가야 할 이상적인 본보기가 되고 있다.
100년 동안 변함없이 한국 제약산업의 나침반이 되어온 비전 아래, K-제약바이오의 새로운 산업 이정표를 세워갈 유한양행의 위대한 다음 100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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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서울 종로2가 덕원빌딩에 작은 간판을 내건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누릴 수 있다’는 원대한 신념으로 유한양행을 창업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가짜 약이 판치던 암울한 현실 속에서, 과학적으로 검증된 좋은 약을 국민 곁에 두겠다는 사명은 유한양행 연구개발과 경영 철학의 굳건한 출발점이 되었다.

창업 100주년을 맞이한 유한양행의 100년 역사는 외산 의약품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일제강점기의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해 세계 최초 혁신신약 개발과 국내 최대 규모 기술수출을 달성하며 K-제약바이오의 글로벌화를 주도한 대한민국 제약산업 고도화의 압축판이다.
유한양행이 걸어온 지난 100년의 발자취를 연구개발 역량 진화, 글로벌 시장 개척, 이윤의 사회환원, 사람 중심의 고용 철학이라는 네 가지 핵심 축을 통해 조명해 본다.
유한양행의 R&D 역사는 철저한 인재 중심 경영과 '좋은 약'을 선별하겠다는 의지에서 기원한다. 미국 애보트, 파스퇴르 등 당대 최고 제약사의 의약품을 깐깐하게 엄선해 수입하는 것 자체가 첫 번째 R&D이자 글로벌 사업의 형태였다.
1933년 아내 호미리 여사와 자체 개발한 최초의 제제 의약품 '안티푸라민'은 2025년 기준 연매출 355억 원을 기록하며 100년 가까이 소염진통제 시장을 이끄는 산증인이 되었다. 1936년 부천 소사면에 설립한 공장은 최신 기기를 갖춘 제약실험연구소를 내부에 설치하여 선구적인 연구 토대를 닦았고, 1960년대 독립 연구조직 '실험연구실' 준공과 항결핵제 핵심 원료 국산화에 성공하며 진정한 기술독립을 이룩했다.

1987년 물질특허제도 도입 이후 신약 탐색으로 방향을 전환한 유한양행은 1993년 간장질환 후보물질 'YH439'를 일본에 기술수출하며 국내 제약 최초의 글로벌 라이선스아웃을 기록했고, 2005년에는 세계 최초의 위산펌프길항제(APA) '레바넥스'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후 이층정 기술을 활용한 고혈압·고지혈증 복합 개량신약 '듀오웰'과 3제 복합제 '트루셋'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제제 기술력을 입증했다.
가장 눈부신 성과는 2015년 스스로를 '중간개발자'로 재정의하며 본격화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다. 2015년 오스코텍 자회사 제노스코로부터 도입한 '레이저티닙'은 물질 최적화 및 초기 임상을 거쳐 2018년 얀센과 총액 12억5500만달러 규모의 초대형 기술수출 계약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2024년 8월, 이를 주성분으로 한 '렉라자'는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FDA로부터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 승인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창업자의 100년 전 선언이 현실이 된 결정적 순간이었다.

유한양행의 글로벌 행보는 1930~40년대 중국, 만주, 동남아 등 총 12개 해외거점을 구축하며 종합 무역 기업의 면모를 갖춘 것에서 적극적으로 발현됐다. 1957년 아메리칸 사이아나미드와의 기술제휴를 기점으로 얀센, 쉐링, 파크데이비스 등 세계 최정상 제약사들과 연쇄 제휴를 맺으며 선진 제약 기술과 글로벌 GMP 기준을 빠르게 내재화했다.

원료의약품(API) 수출 역시 글로벌화의 튼튼한 기둥이다. 1980년 설립된 유한화학은 신약 원료의 공정 개발을 전담하는 CDO 전문기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길리어드사이언스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단일 제약사 최초로 2013년 원료의약품 1억 달러 수출탑을 달성했으며, 2024년 9월에도 1076억 원규모의 HIV 치료제 신원료 공급 계약을 맺는 등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또한 벤처기업을 인수해 출범한 와이즈메디를 통해 2023년 스마트팩토리 제2공장을 준공, 고부가가치 영양수액 시장에서도 괄목할 성장을 입증하고 있다.
유한양행이 대한민국 제약부문 1위이자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히는 이유는 확고한 이익 사회환원 철학에 기인한다. 유일한 박사는 1971년 별세 시 보유한 유한양행 주식 14만941주 전부를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에 기증했다.

유한양행은 1965년 흠잡을 데 없는 세무신고로 모범을 보여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고, 1962년에는 선제적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대중에게 이익을 공유했다.
교육을 통한 사회 환원 역시 눈부시다. 1952년 설립한 고려공과기술학교는 현재의 유한공업고등학교와 유한대학교로 진화하며 수만 명의 인재를 배출했다. 창업자의 전 재산 기증으로 출범한 공익법인 '유한재단'은 2025년 기준 유한양행 지분의 약 35.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약 1만 100여 명의 학생에게 370억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기업 이익이 사회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구조를 이뤘다.

본업과 연계된 사회공헌도 주목받고 있다. 렉라자가 건강보험 급여에 등재되기 전까지 조기 접근 프로그램(EAP)을 운영해, 약 900명의 환자에게 조건 없이 무상으로 의약품을 제공했다. 환경 및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국내 제약회사 최초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고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코리아 지수에 3년 연속 편입되며 ESG 경영을 심도 있게 실천하고 있다.
"연마된 기술자와 잘 훈련된 사원이야말로 기업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다." 창업자가 남긴 철학은 유한양행이 100년간 단 한 차례의 노사분규도 없이 상생해 온 대기록의 토대다.
1936년 한국 기업사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여 임직원을 기업의 공동 주인으로 인정했고, 1957년에는 학연 및 지연을 배제한 사원 공개 모집을 업계 최초로 실시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유한양행의 노사관계는 공동체의 주인이 뭉치는 '노노(勞勞)' 문화로 불린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인위적 구조조정 없이 고용 안정을 지켜냈고, 2010년에는 제약업계 최초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국가적 저출산 위기 앞에서는 자녀 1인당 1000만원의 출산지원금을 전격 도입했다. 나아가 수천억 원 규모의 바이오벤처 투자는 유한양행 내부를 넘어 K-제약바이오 생태계 전반의 우수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임직원 평균 근속연수 12년 8개월, 창사 이래 중대재해 0건이라는 성과는 유한양행이 인적 자원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는지 단적으로 방증한다.
원희목 유한재단 이사장은 유한양행의 창립 100주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단순한 개별 기업의 기념일을 넘어 대한민국 약업계 전체의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유한 그룹은 최대 주주인 유한재단(지분 약 17%)을 필두로 기업 본체인 유한양행, 그리고 유한학원(지분 약 6~7%)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법인은 철저히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유한재단 이사장은 유한양행의 최대 주주 대표로서 상징적인 권한과 위상을 보유하지만, 실제 기업 경영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투명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확고히 지키고 있다.
특히 원 이사장은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의 숭고한 철학에 짙은 존경심을 표했다. 그는 "대한민국 기업사에서 기업 전체를 온전히 사회에 환원하고, 자신의 자녀에게는 단 한 푼의 재산도 남기지 않은 기업인은 유일한 박사가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유한양행의 100년은 단순한 기업의 성장 스토리를 넘어,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유일한 정신'이 전 세계 환자를 살리는 혁신신약의 탄생으로 결실을 맺은 여정이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립하고 임직원을 최고의 자산으로 존중하는 경영 모델은 오늘날 한국 기업 생태계가 나아가야 할 이상적인 본보기가 되고 있다.
100년 동안 변함없이 한국 제약산업의 나침반이 되어온 비전 아래, K-제약바이오의 새로운 산업 이정표를 세워갈 유한양행의 위대한 다음 100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