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수행국 넘어 신약 창출국으로"… 유한양행 ‘렉라자’ 성공 신화, 남긴 숙제는?
연세암병원 조병철 교수, "렉라자는 산학연 융합의 첫 성공 사례"
중국의 맹추격에 임상 '속도·품질' 장점 희석… "초기 중개연구 역량·병원 내 R&D 생태계 절실"
물리적·인적·디지털 인프라 결합 통한 병원의 R&D 기지화 주문… 국산 신약에 대한 애정 강조
입력 2026.10.13 12:20 수정 2026.10.1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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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라자의 글로벌 FDA 승인 성과와 오픈 이노베이션(산학연 융합) 중심의 K-바이오 R&D 생태계 발전 방안에 대해 발표하는 조병철 교수.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국산 첫 미국 FDA 승인 항암 신약인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쾌거 이면에는, 중국의 무서운 추격과 한국 임상시험 생태계의 구조적 한계라는 뼈아픈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렉라자 성공의 주역은 이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단순히 빠르고 정확한 '임상 테스트베드' 역할을 넘어, 기초 과학과 임상을 연결해 혁신 신약을 직접 창출하는 '초기 중개연구 중심지'로 뼈를 깎는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경고했다.

1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규모 임상시험 학술대회 '2026 KoNECT-MOHW-MFDS 국제 콘퍼런스(KIC 2026)'에서 첫 번째 기조강연자로 나선 연세암병원 폐암센터 조병철 교수는 '레이저티닙과 그 너머: 한국 임상 신약 개발의 미래(Lazertinib and Beyond: The Future of Clinical Drug Development in Korea)'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글로벌 항암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조 교수는 이날 렉라자의 글로벌 성공 과정을 생생하게 돌아보며, 한국 신약개발 생태계가 직면한 한계와 이를 타개하기 위한 향후 과제를 냉철하고도 깊이 있게 짚어냈다.

렉라자 성공 비결은 '산학연병 융합'

조 교수는 렉라자의 성공을 단일 기업의 자본력이나 뛰어난 개인 연구자의 단독 성과가 아닌 '융합이 만들어낸 기적'으로 정의했다. 2013년 제노스코와의 짧은 첫 만남으로 시작된 레이저티닙(당시 물질명 GNS-1480)과의 인연은 유한양행으로의 전격적인 기술이전(YH25448)을 거쳐 글로벌 제약사 얀센(J&J)과의 1.25조원 규모 라이선스 아웃이라는 역사적 쾌거로 이어졌다.

타그리소(오시머티닙)가 이미 굳건하게 시장을 선점한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 연구진과 유한양행은 게피티닙 대비 유의미한 무진행생존기간(PFS) 개선을 입증한 글로벌 임상 3상(LASER301)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이어진 얀센의 이중항체 신약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와의 병용 요법 임상(MARIPOSA)은 타그리소 단독 요법 대비 사망 위험을 25%(HR 0.75) 낮춘 결과를 이끌어내며 지난 2024년 8월 FDA 1차 치료제 승인이라는 한국 제약사상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이러한 렉라자의 성공은 국산 항암제 최초로 글로벌 임상 3상을 완주하고 미국 시장에서 1차 치료제로 등극했다는 데 구체적인 의의가 있다. 

1차 치료제로의 승인은 진단 직후 가장 먼저 투여하는 표준 치료법으로 인정받았음을 뜻하며, 이는 시장 규모의 대폭 확장과 더불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매출 창출로 직결된다. 

조 교수는 "바이오텍은 혁신적인 후보물질을 제공했고, 학계와 병원은 탄탄한 임상적 근거를 구축했으며, 다국적 제약사는 이를 뒷받침할 글로벌 개발 의지와 막대한 자본을 가져왔다"며, "이들의 유기적인 연결과 협력이 임상 초기부터 끝까지 유지된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中 맹추격에 위협받는 '한국 임상 프리미엄'

조 교수는 렉라자의 화려한 성공에 취해 안주할 수 없는 글로벌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턱밑까지 추격해 온 중국의 거대한 투자를 동반한 위협을 강하게 경고했다.

그는 "과거에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중국 임상 데이터의 퀄리티를 온전히 믿지 못해 한국으로 글로벌 임상시험이 대거 몰렸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중국에서 진행된 단독 연구(China-only study)가 최고 권위의 의학 저널인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실릴 정도로 세계적인 퀄리티를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중국은 현재 '국가 신약 창제 프로젝트'와 같은 거대 정책을 앞세워 국가 차원의 강력한 컨트롤 타워를 가동하고 있다. 

조 단위 규모의 정부 주도 펀드를 형성해 바이오 스타트업에 파격적인 자금을 공급하고 있으며, 임상시험 승인(IND) 절차 단축 등 국가 주도의 과감한 규제 완화를 지속해 왔다. 이러한 전폭적인 자본과 압도적인 환자 풀을 무기로 중국은 단순 임상 수행을 넘어 초기 중개연구부터 후기 글로벌 임상 디자인까지 주도권을 쥐고 점유율을 크게 늘려가고 있다. 

최근 글로벌 빅파마들의 기술 도입 계약 중 중국산 항암제 및 ADC(항체-약물 접합체) 기술 수출을 연이어 터뜨리는 중국의 맹추격은 한국이 그동안 내세웠던 '빠르고 질 좋은 임상 수행'이라는 한국의 임상 프리미엄을 완전히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임상 수행국서 '신약 창출국'으로 전환해야

조 교수는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중국 등 거대 자본과 인프라의 거센 공세를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한 최우선 해법으로 '초기 중개연구' 역량의 극적인 강화와 '병원 역할의 근본적인 재정의'를 꼽았다. 

단순한 임상 위탁 수행이나 다국가 임상의 '수동적 테스트베드' 역할을 탈피해, 병원이 직접 초기 개발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신약 타깃 발굴과 바이오마커 기반의 정밀의료 임상 전략을 주도하는 '신약 창출 기지'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미래 글로벌 경쟁력이 단순히 임상시험을 많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질 높은 유전체 데이터와 풍부한 임상 전문성을 융합해 세상에 없던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사이언스를 창출하는 데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형 R&D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들을 제시했다.

첫째, 정부 정책 지원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소규모 단발성 지원을 넘어 글로벌 임상 3상까지 완주할 수 있는 'K-바이오 백신·신약 펀드'와 같은 대형 메가 펀드 조성을 대폭 확대하고, 초기 바이오 벤처가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를 넘을 수 있도록 파이프라인 확장에 대한 조세 감면과 세제 혜택을 파격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둘째, '산학연 병원 협의체' 기반의 맞춤형 인프라 구축이다. 임상 현장과 직결된 물리적 중개연구 및 바이오뱅크 인프라를 확충하고, 대학과 기업, 병원이 실시간으로 바이오 빅데이터를 공유하는 디지털 인프라 고도화가 필수적이다. 더불어 환자 진료에 쫓기지 않고 연구에 온전히 매진할 수 있도록 독립된 시간과 전담 팀이 보장된 '의사과학자' 중심의 인적 인프라가 이들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끝으로 조 교수는 국내 신약개발 생태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자국 기술에 대한 막연한 저평가와 무관심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남겼다. 

조 교수는 "국내 바이오텍의 초기 후보물질 개발 성과를 다소 무시하거나, 맹목적으로 글로벌 파마의 약물만을 쫓는 뿌리 깊은 경향을 이제는 철저히 지양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기업이 피땀 흘려 개발하는 토종 물질에 병원과 학계가 더 큰 애정을 갖고 임상 끝까지 책임지고 끌고 갈 수 있는 국가적 동기부여와 환경을 견고하게 조성해야만 비로소 제2, 제3의 렉라자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연세암병원 조병철 교수.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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