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폐동맥고혈압 치료, 더 빨라져야 하는 이유
황인창 교수, “조기 진단·초기 병용요법이 예후 결정”
20년 만의 신기전 치료제 등장에 글로벌 가이드라인도 변화
“희귀질환 신약 가치 반영하는 급여 체계 필요”
입력 2026.06.16 06:00 수정 2026.06.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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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창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가 약업닷컴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약업신문 = 최윤수 기자

“폐동맥고혈압,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질환이라고 배웠습니다.”

황인창 교수는 전공의 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만 해도 폐동맥고혈압은 진단을 받아도 마땅한 치료 옵션이 부족했고, 환자들의 예후 역시 매우 좋지 않았다. 실제로 과거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5년 생존율은 30%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병용요법 중심의 치료 전략이 정착되고 있으며, 20여 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가 폐동맥고혈압 치료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약업닷컴은 최근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황인창 교수를 만나 폐동맥고혈압의 질환 특성과 국내 치료 환경, 그리고 새로운 치료 전략이 환자들에게 가져올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고혈압과는 전혀 다른 질환”…환자 10명 중 7명은 여성
폐동맥고혈압은 이름 때문에 일반적인 고혈압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질환의 발생 부위부터 병태생리까지 완전히 다르다.

일반적인 고혈압이 좌심실에서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체동맥의 압력이 높아지는 질환이라면, 폐동맥고혈압은 우심실에서 폐로 혈액을 보내는 폐동맥의 압력이 상승하는 질환이다.

황 교수는 “폐동맥고혈압은 우심실이 폐혈관의 높은 저항을 이겨내기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질환”이라며 “결국 우심실 기능이 떨어지고 우심부전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질환이 진행되면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은 호흡곤란이다. 단순히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는 정도가 아니라 하루 종일 숨이 차고 피로감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심박출량이 감소하면서 설거지나 청소 같은 일상적인 활동조차 어려워지고, 병이 진행되면 부종과 저혈압, 청색증까지 발생할 수 있다.

황 교수는 “환자들 중에는 하루 종일 숨이 차고 기운이 없어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급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환자 수는 2023년 기준 약 3600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희귀질환에 속하지만 질환의 위험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현재 5년 생존율은 70% 수준까지 향상됐지만 여전히 암과 유사한 수준의 예후를 보인다. 황 교수는 “최근 생존율이 크게 개선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위암이나 대장암 생존율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진료 현장에서는 매우 심각한 질환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폐동맥고혈압은 여성 환자가 전체의 약 70%를 차지한다.

주로 30~50대에 발병하는데, 사회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가정에서는 자녀를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는 시기와 겹친다.

황 교수는 “40대 초반에서 중반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하는데 아이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닐 시기에 엄마가 병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직장을 그만두거나 근무시간을 줄여야 하는 경우가 많고 환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환자 상당수는 보호자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 본인의 경제활동 중단뿐 아니라 보호자의 돌봄 부담까지 발생하면서 사회경제적 영향 역시 매우 크다.

치료의 핵심은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병용요법
폐동맥고혈압 치료의 핵심은 정확한 진단과 위험도 평가다.

현재 국제적으로는 유럽심장학회(ESC)와 유럽호흡기학회(ERS)가 공동 발표한 가이드라인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황 교수는 “과거에는 폐동맥압 수치 중심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현재는 환자의 증상, 혈액검사 결과, 6분 보행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위험도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치료 전략 역시 변화했다. 과거에는 단독요법 중심으로 치료가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병용요법이 표준 치료로 자리잡고 있다.

기존 폐동맥고혈압 치료는 크게 엔도텔린 수용체 길항제(ERA), 산화질소 경로 표적치료제(PDE5 억제제), 프로스타사이클린 계열 등 세 가지 기전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황 교수는 “현재 가이드라인은 중등도 위험군에서도 초기부터 두 가지 약제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고위험군은 세 가지 약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며 “폐동맥고혈압은 진행 속도가 빠르고 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병용요법 활용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그는 “희귀질환 특성상 약제 비용이 높고 환자 수는 적기 때문에 급여 적용 과정에서 어려움이 발생한다”며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 효과가 입증된 약제가 있어도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황인창 교수. © 약업신문 = 최윤수 기자

20년 만에 등장한 새 기전…“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최근 폐동맥고혈압 분야에서 가장 큰 변화는 액티빈 신호전달 억제제의 등장이다.

대표적인 약제가 소타터셉트(제품명 윈레브에어)다.

황 교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진료 현장에서는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치료제가 주로 확장된 혈관 기능을 개선하고 폐동맥을 이완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소타터셉트는 폐혈관 재형성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액티빈 신호전달 경로를 직접 조절한다.

폐동맥고혈압 환자에서는 액티빈 신호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혈관 평활근 세포 증식이 증가하고 혈관벽이 두꺼워진다. 소타터셉트는 이러한 신호를 억제함으로써 혈관 재형성 자체를 조절하는 접근법을 제시했다.

황 교수는 “기존 약제들이 증상을 개선하는 역할을 했다면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는 질환 진행 자체를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임상 결과 역시 주목받고 있다. STELLAR 연구에서는 임상적 악화 또는 사망 위험을 84% 감소시키는 결과가 확인됐으며, 진단 후 1년 이내 환자를 대상으로 한 HYPERION 연구에서도 76% 감소 효과가 보고됐다.

황 교수는 “환자들이 입원하거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상황을 현저하게 줄여준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현재까지 발표된 결과만 보면 모든 의료진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데이터”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국제 가이드라인과 세계폐고혈압심포지엄에서도 액티빈 신호전달 억제제의 추가 병용 전략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그는 “저위험군을 제외한 상당수 환자에서 새로운 치료 전략을 고려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좋은 치료제가 있어도 환자에게 닿아야 의미”
황 교수는 치료 접근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폐동맥고혈압 환자들은 시간이 많지 않다”며 “한 번 상태가 악화되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는 보다 신속하게 환자들에게 제공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희귀질환 치료제의 가치 평가 방식에 대한 개선 필요성도 언급했다.

폐동맥고혈압은 젊은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고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임에도 현재 비용효과성 평가 체계는 이러한 사회적 부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황 교수는 “환자가 일을 못하게 되고 보호자까지 경제활동을 줄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 개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겪는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절망의 질환 아니다”
황 교수는 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예전에는 폐동맥고혈압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질환이라고 표현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효과가 좋은 치료제들이 등장했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료 환경이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단순히 생존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개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 조합을 찾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실제로 치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며 더 높은 치료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폐동맥고혈압은 여전히 치명적인 희귀질환이다. 그러나 한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질환’으로 불렸던 이 질환은 이제 새로운 치료 전략과 신기전 치료제의 등장으로 장기 생존과 일상 회복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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