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라는 명분 아래 단행된 매서운 '약가 인하'의 칼바람, 그리고 장기화하는 글로벌 분쟁이 촉발한 '공급망 붕괴'. 현재 대한민국 제약산업은 안팎으로 전례 없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과거 내수 시장과 제네릭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던 제약업계의 전통적인 수익 모델은 이제 그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가장 강력한 혁신의 동력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가혹한 대내외적 시련이 오히려 한국 제약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나아가 반도체와 자동차를 이어 국가 경제를 견인할 핵심 주력 산업으로 발돋움하게 할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방어전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글로벌 시장 개척과 신약 개발로 경제를 이끌어 가야 할 제약산업의 현주소와, 이를 위해 극복해야 할 전쟁 여파 등 산업계의 고충을 짚어봤다.
약가 인하가 쏘아 올린 공, 제네릭 중심에서 '혁신 신약'으로의 강제된 진화
정부의 지속적인 약가 인하 정책은 제약업계의 숨통을 조이는 직접적인 위협 요인이다. 특히 제네릭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가진 중소·중견 제약사들의 영업이익률은 뚜렷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라는 국가적 과제 앞에서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을 업계도 인지하고 있으나,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재원마저 말라붙게 한다는 점은 뼈아픈 현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약가 인하의 압박은 한국 제약산업의 '체질 개선'을 강제하는 강력한 촉매제가 되었다. 업계 내에서는 더 이상 '내수용 제네릭 밀어내기' 식의 출혈 영업 경쟁으로는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제 제약사들은 생존을 위해 계열 내 최초 신약(First-in-class) 개발, 고부가가치 바이오시밀러, 그리고 기술 수출(라이선스 아웃)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정된 내수 시장의 파이를 나누는 소모전에서 벗어나, 블록버스터 신약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이라는 무한한 바다로 나아가야만 하는 '혁신으로의 등 떠밀림'이 본격화된 것이다.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 제약업계, 공급망 붕괴와 원가 상승의 늪
약가 인하가 내부의 뼈를 깎는 고통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는 제약산업의 펀더멘털을 흔드는 외부의 거대한 충격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 인하로 수익성 악화가 가시화된 상황에서 글로벌 분쟁 장기화로 특정 원료 수급 단가와 물류비가 체감상 2~3배 이상 치솟았다"며 "혁신 신약을 위한 R&D 투자는커녕, 당장의 마진율 방어와 공장 가동을 걱정해야 하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 제약산업의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여전히 10%대 초반에 머물러 있으며, 중국과 인도, 유럽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여기에 의약품 특수 물류(콜드체인 등)에 드는 에너지 비용 폭등과 고환율까지 겹치면서 생산 원가는 급등하는데 판매가는 떨어지는 전형적인 '가위눌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보건 안보'가 된 제약산업, 국가 차원의 공급망 재편 시급
전쟁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의약품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는 '전략 물자'이자 '보건 안보'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해열제나 항생제 같은 기초 필수의약품조차 해외에서 원료를 구하지 못해 잦은 품절 사태를 겪는 작금의 현실은 국가 재난 상황 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산업계는 이러한 고충을 타개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정 국가에 편중된 원료 수입선을 동남아시아, 남미 등으로 다각화하고, 자체 기술력을 통한 공정 개선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개별적인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필수의약품 원료 국산화를 위한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 등 국가 차원의 공급망 재편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위기를 기회로… 이제는 제약산업이 대한민국 경제 이끌 때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인구 고령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로 헬스케어 시장은 흔들림 없이 성장하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에 이어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할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단연 '제약·바이오' 산업이다.
현재의 이중고를 극복하고 제약산업이 경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전통 제약사와 유망 바이오 벤처, 그리고 인공지능(AI) 기업 간의 경계를 허무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수적이다. 또한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해외 바이오텍이나 유통망을 갖춘 기업을 인수합병(M&A)하여 단숨에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공격적인 행보도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제약산업은 단순한 보건 산업을 넘어 국가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축"이라며 "업계 전반에 퍼진 위기감을 혁신 신약 개발이라는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제약산업을 규제 대상이 아닌 국가 핵심 전략 자산으로 대하는 정부의 패러다임 전환과 전폭적인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약가 인하의 압박과 전쟁으로 인한 원가 부담은 제약업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온실 속의 화초는 거친 들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칼바람을 견뎌낸 굳은 땅에서 가장 단단한 뿌리가 내리듯, 전쟁의 여파를 뛰어넘고 약가 인하의 굴레를 파괴적 혁신으로 끊어낸 대한민국 제약산업이 국가 경제를 최전선에서 이끌어 갈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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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기는 곧 가장 강력한 혁신의 동력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가혹한 대내외적 시련이 오히려 한국 제약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나아가 반도체와 자동차를 이어 국가 경제를 견인할 핵심 주력 산업으로 발돋움하게 할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방어전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글로벌 시장 개척과 신약 개발로 경제를 이끌어 가야 할 제약산업의 현주소와, 이를 위해 극복해야 할 전쟁 여파 등 산업계의 고충을 짚어봤다.
약가 인하가 쏘아 올린 공, 제네릭 중심에서 '혁신 신약'으로의 강제된 진화
정부의 지속적인 약가 인하 정책은 제약업계의 숨통을 조이는 직접적인 위협 요인이다. 특히 제네릭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가진 중소·중견 제약사들의 영업이익률은 뚜렷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라는 국가적 과제 앞에서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을 업계도 인지하고 있으나,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재원마저 말라붙게 한다는 점은 뼈아픈 현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약가 인하의 압박은 한국 제약산업의 '체질 개선'을 강제하는 강력한 촉매제가 되었다. 업계 내에서는 더 이상 '내수용 제네릭 밀어내기' 식의 출혈 영업 경쟁으로는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제 제약사들은 생존을 위해 계열 내 최초 신약(First-in-class) 개발, 고부가가치 바이오시밀러, 그리고 기술 수출(라이선스 아웃)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정된 내수 시장의 파이를 나누는 소모전에서 벗어나, 블록버스터 신약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이라는 무한한 바다로 나아가야만 하는 '혁신으로의 등 떠밀림'이 본격화된 것이다.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 제약업계, 공급망 붕괴와 원가 상승의 늪
약가 인하가 내부의 뼈를 깎는 고통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는 제약산업의 펀더멘털을 흔드는 외부의 거대한 충격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 인하로 수익성 악화가 가시화된 상황에서 글로벌 분쟁 장기화로 특정 원료 수급 단가와 물류비가 체감상 2~3배 이상 치솟았다"며 "혁신 신약을 위한 R&D 투자는커녕, 당장의 마진율 방어와 공장 가동을 걱정해야 하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 제약산업의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여전히 10%대 초반에 머물러 있으며, 중국과 인도, 유럽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여기에 의약품 특수 물류(콜드체인 등)에 드는 에너지 비용 폭등과 고환율까지 겹치면서 생산 원가는 급등하는데 판매가는 떨어지는 전형적인 '가위눌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보건 안보'가 된 제약산업, 국가 차원의 공급망 재편 시급
전쟁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의약품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는 '전략 물자'이자 '보건 안보'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해열제나 항생제 같은 기초 필수의약품조차 해외에서 원료를 구하지 못해 잦은 품절 사태를 겪는 작금의 현실은 국가 재난 상황 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산업계는 이러한 고충을 타개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정 국가에 편중된 원료 수입선을 동남아시아, 남미 등으로 다각화하고, 자체 기술력을 통한 공정 개선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개별적인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필수의약품 원료 국산화를 위한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 등 국가 차원의 공급망 재편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위기를 기회로… 이제는 제약산업이 대한민국 경제 이끌 때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인구 고령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로 헬스케어 시장은 흔들림 없이 성장하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에 이어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할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단연 '제약·바이오' 산업이다.
현재의 이중고를 극복하고 제약산업이 경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전통 제약사와 유망 바이오 벤처, 그리고 인공지능(AI) 기업 간의 경계를 허무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수적이다. 또한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해외 바이오텍이나 유통망을 갖춘 기업을 인수합병(M&A)하여 단숨에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공격적인 행보도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제약산업은 단순한 보건 산업을 넘어 국가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축"이라며 "업계 전반에 퍼진 위기감을 혁신 신약 개발이라는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제약산업을 규제 대상이 아닌 국가 핵심 전략 자산으로 대하는 정부의 패러다임 전환과 전폭적인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약가 인하의 압박과 전쟁으로 인한 원가 부담은 제약업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온실 속의 화초는 거친 들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칼바람을 견뎌낸 굳은 땅에서 가장 단단한 뿌리가 내리듯, 전쟁의 여파를 뛰어넘고 약가 인하의 굴레를 파괴적 혁신으로 끊어낸 대한민국 제약산업이 국가 경제를 최전선에서 이끌어 갈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