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패러다임, 실험 중심서 데이터 중심으로 '전환'
CES 2026, 머크·지멘스·엔비디아가 제시한 ‘계산 기반 파이프라인’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까지 계산 기반으로 재구성
생물학 데이터·AI 결합…차세대 신약개발 시스템
생성형 화학·임상 예측 모델이 바꾸는 신약개발 비용 시간 구조
입력 2026.01.14 06:00 수정 2026.01.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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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CES 2026에서 진행된 'Drug Discovery Disrupted: Tech That's Changing the Game' 세션에서 Laura Matz 머크 그룹(Merck KGaA) 최고과학기술책임자와 함께, 지멘스에서 생명과학·소비재·리테일 부문을 총괄하는 Group Vice President인 Gerry Keane, 그리고 엔비디아에서 NVIDIA Inception의 글로벌 클라우드·파트너십·시장진입 전략을 이끄는 Jen Hoskins가 한자리에 모여 기술과 제약산업의 접점을 중심으로 신약개발의 변화를 논의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사회를 맡은 글로벌 마케팅 그룹 하바스(Havas)의 Eric Weisberg. © 약업신문

인공지능, 대규모 연산 인프라, 그리고 생물학 데이터가 동시에 결합되면서 신약개발은 더 이상 무작위적 실험에 의존하는 산업이 아니라 계산을 통해 후보를 선별하고 실패를 사전에 제거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단백질 구조 예측과 생성형 화학, 환자 반응 예측 모델이 연결된 새로운 파이프라인은 후보물질 탐색부터 임상 전략까지 전 과정을 재구성하고 있으며, 이 변화는 개발 비용과 실패율, 그리고 제약사와 기술기업의 협력 방식까지 함께 바꾸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Drug Discovery Disrupted: Tech That’s Changing the Game’ 세션은 글로벌 제약산업과 첨단 기술 기업들이 현재 신약개발 패러다임을 어떻게 재정의하고 있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세션은 Laura Matz 머크 그룹(Merck KGaA) 최고과학기술책임자(Chief Science and Technology Officer), Gerry Keane 지멘스(Siemens) 관계자, Jen Hskins 엔비디아(NVIDIA) 관계자가 패널로 참여, 글로벌 마케팅 그룹 하바스(Havas)의 Eric Weisberg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날 발표자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출발점은 현재 신약개발 시스템이 이미 구조적 한계에 도달했다는 진단이었다. 평균적으로 하나의 신약이 시장에 도달하기까지 10~15년이 소요되고, 2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투입되며, 초기 후보물질의 90% 이상이 개발 과정에서 탈락한다는 수치는 업계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문제는 이 실패율이 특정 기업이나 연구팀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무작위에 가까운 후보 탐색 구조’에 기반한 산업 모델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기존 신약개발의 핵심 병목은 실험실의 기술 수준이 아니라, 어떤 분자를 만들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실험을 수행해야 하는 탐색 비용이었다. 이로 인해 제약사들은 수천 개의 화합물을 합성하고, 대부분을 실패로 확인한 뒤 극소수만 다음 단계로 넘기는 방식을 반복해 왔다. CES 2026에서 제시된 메시지는 이 탐색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데 있었다.

AlphaFold 이후, 단백질은 ‘알려진 세계’가 됐다
이 변화의 출발점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이다. AlphaFold 이전까지 과학자들이 실험적으로 규명한 단백질 구조는 약 20만 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반 구조 예측이 도입된 이후, 현재는 2억 개 이상의 단백질에 대해 3차원 구조 예측값이 확보된 상태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 양의 증가가 아니라,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 생물학적 표적의 지형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알게 되면 활성 부위, 결합 포켓, 회피해야 할 영역이 계산 가능한 대상이 된다. 이는 “어디를 겨냥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분자를 던져보는” 방식에서 “구조를 알고 설계하는” 방식으로 신약개발이 이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Laura Matz는 단백질 구조 예측이 ‘기초과학의 성과’가 아니라, 이미 산업용 인프라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제약사 내부에서는 단백질 구조 데이터베이스가 타깃 발굴과 분자 설계의 출발점으로 통합되고 있으며, 이는 과거 실험 의존적 접근과는 전혀 다른 설계 기반 접근법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생성형 화학이 바꾼 분자 설계 방식
단백질 구조 정보는 생성형 화학(Generative Chemistry) 모델과 결합하면서 신약개발의 탐색 방식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화학자가 기존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후보를 찾았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이 새로운 분자를 직접 만들어낸다.

이 과정의 핵심은 ‘폐루프(closed loop)’ 구조다. 모델이 특정 단백질을 타깃으로 하는 분자를 생성하면, 그 분자가 단백질과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시뮬레이션하고, 독성·용해도·제조 가능성 같은 여러 속성을 동시에 평가한 뒤, 그 결과를 다시 학습해 더 나은 분자를 생성한다. 이 루프는 수천 회 이상 자동으로 반복된다.

Jen Hskins는 이 과정을 “가설을 실험실로 보내기 전에 계산으로 먼저 거르는 시스템”으로 표현했다. 전통적 방식에서는 수십·수백 개의 화합물을 합성한 뒤 시험했다면, 이제는 수백만 개의 후보를 계산으로 걸러낸 뒤 극소수만 실험실로 보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약물 후보 발굴의 속도와 비용 구조를 동시에 바꾼다. 몇 달에 걸쳐 수행되던 초기 탐색이 수 시간에서 수일 단위로 압축되며, 실패 확률이 높은 후보를 사전에 제거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고 있다.

‘대체’가 아니라 ‘증폭’으로서의 AI

CES 세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또 하나의 메시지는 인공지능이 과학자를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모델은 어떤 단백질을 타깃으로 삼을지 결정하지 않으며, 어떤 질병이 중요한지도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설정한 목표에 대해 수백만 개의 분자 조합과 결합 시나리오를 계산해주는 인지 증폭 도구로 기능한다.

이로 인해 화학자와 생물학자의 역할은 축소되기보다 재편되고 있다. 무작위 탐색에 쓰이던 시간이 줄어들고, 생물학적 가설 설정과 임상 전략 수립 같은 상위 판단에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빅파마 내부에서의 AI 적용 지형

CES에서 공개된 빅파마 내부의 활용 사례는 AI가 특정 연구 단계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파이프라인에 침투하고 있다.

3명의 패널은 세 가지 핵심 적용 영역을 제시했다.

첫째는 타깃 발굴이다. 유전체, 단백질체, 임상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실제로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선별하는 과정에 머신러닝이 활용되고 있다. 이는 후보 발굴 이전 단계에서 실패 확률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둘째는 리드 발굴과 최적화 단계다. 생성형 모델을 활용해 결합력, 독성, 약동학적 특성을 동시에 고려한 분자를 설계하는 구조가 구축되고 있다.

셋째는 임상시험 설계다. 환자 반응을 예측하는 모델을 통해 어떤 환자군이 약물에 반응할 가능성이 높은지를 사전에 선별함으로써 후기 임상 실패율을 줄이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신약개발의 비용과 위험이 실험실이 아니라 데이터와 계산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규모 GPU 인프라, 생물학 데이터 자산, 알고리즘 역량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플랫폼이 거래되는 시대

세션에서 제시된 산업 구조 변화의 또 다른 핵심은 라이선싱 대상의 변화였다. 과거 제약사들은 개별 후보물질을 라이선싱했지만, 최근에는 AI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 자체를 계약 대상으로 삼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약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약을 만들어낼 수 있는 ‘디지털 파이프라인’이 가치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AI 바이오텍 기업들은 단일 후보물질이 아니라, 타깃 발굴부터 분자 설계, 후보 최적화까지 이어지는 전체 엔진을 제공하는 형태로 빅파마와 협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규모 AI 퍼스트 바이오텍도 대형 제약사와 협상력을 갖게 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대규모 화학 조직과 실험 인프라를 보유하지 않더라도, 강력한 모델과 데이터 기반을 갖춘 기업이 글로벌 파이프라인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계산 산업으로 이동하는 신약개발

이번 세션에서는 “신약개발은 더 이상 순수한 실험 중심 산업이 아니라, 계산과 데이터가 가치의 중심이 되는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단기간에 완성될 변화가 아니라, 향후 10년 이상 지속될 구조적 전환의 출발점으로 해석된다.

CES 무대에서 제시된 기술과 전략들은 아직 모든 질병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백질 구조 예측, 생성형 화학, 임상 예측 모델이 결합된 신약개발 시스템은 이미 다수의 파이프라인에서 실제 후보물질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일부는 임상 단계에 진입해 있다.

신약개발 산업은 지금, 실험실의 속도가 아니라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속도로 경쟁하는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CES 2026에서 진행된 이번 세션은 이러한 변화가 더 이상 미래형 담론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산업 구조임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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