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사고 더 쓰는 소비…뷰티는 달랐다
구매 빈도 2.8%↓·회당 지출 1.5%↑…화장품은 성장 지속
입력 2026.09.03 06:00 수정 2026.09.0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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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비자의 장바구니가 달라지고 있다. 물건을 사는 횟수는 줄었지만 한 번 쇼핑할 때 쓰는 금액은 늘었고, 식품 소비가 위축된 사이 뷰티·퍼스널케어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소비 지출이 일률적으로 줄어들기보다 구매할 품목과 이용할 유통 채널을 가려 쓰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기업 월드패널 바이 뉴머레이터(Worldpanel by Numerator)가 최근 발표한 ‘2026년 상반기 FMCG 시장 리뷰’에 따르면 한국의 일용소비재(FMCG) 시장 규모는 올해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0.3% 감소했다. 조사 대상은 한국 8000가구이며 신선식품은 제외됐다. 월드패널은 쇼핑 횟수와 회당 지출액, 제품 카테고리, 유통 채널별 구매 행태 등을 분석했다.

소비자들이 쇼핑 횟수는 줄이는 대신 품목과 채널을 선별해 지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뷰티·퍼스널케어는 식품 소비 위축 속에서도 상대적 성장세를 보였다. ⓒAI생성 이미지

시장 규모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소비 방식에는 차이가 나타났다. 상반기 소비자의 쇼핑 횟수는 전년 동기 대비 2.8% 감소한 반면 한 번 쇼핑할 때 쓰는 금액은 1.5% 증가했다. 회당 지출 증가폭보다 쇼핑 횟수 감소폭이 커지면서 가구당 평균 FMCG 지출액은 1.3% 줄었다. 소비자가 예전보다 자주 장을 보지는 않지만, 구매가 발생했을 때의 지출 규모는 오히려 커진 셈이다.

식품 지출은 2.2% 감소했다. 대부분의 식품 카테고리에서 쇼핑 횟수가 줄어든 영향이다. 반면 비식품 카테고리는 쇼핑 횟수와 회당 지출액이 모두 늘면서 4.0% 성장했다. 전체 소비가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기보다 품목에 따라 소비 강도가 갈라졌다는 의미다.

뷰티·퍼스널케어는 비식품 가운데서도 성장세를 이어간 영역으로 꼽혔다. 월드패널에 따르면 상반기 스킨케어와 보디케어, 색조화장품은 모두 성장했다. 같은 기간 대부분의 식품 카테고리에서 지출이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다만 월드패널은 해당 자료에서 이들 세부 뷰티 카테고리의 구체적인 성장률은 공개하지 않았다. 따라서 소비 감소가 곧바로 모든 생활소비재의 지출 축소로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정도까지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온라인쇼핑 통계에서도 화장품의 상대적인 강세가 확인된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5월 온라인쇼핑동향’에 따르면 5월 전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5조13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0.3% 증가했다. 같은 기간 화장품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전년 동월 대비 36.6% 늘었다. 음·식료품 증가율 14.0%, 음식서비스 10.2%보다 높은 수준이다.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에서도 화장품 비중이 두드러졌다. 올해 2분기 국내 온라인 해외 직접판매액은 1조20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7% 증가했다. 상품군별로는 화장품이 7458억원으로 가장 컸으며, 의류·패션 관련 상품 994억원, 음반·비디오·악기 826억원이 뒤를 이었다. 

한국 딜로이트 그룹이 지난 4월 발표한 ‘Consumer Signals 2026 1분기’ 데이터도 소비자들이 지출을 늘리는 데 신중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비 의향 개선이 실제 지출로 확산되는 속도는 제한적이었고, 지출 시점과 규모를 조절하는 ‘관리 중심 소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딜로이트는 소비가 단순한 회복보다 구조적 재편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고 봤다. 필수 지출은 유지되는 한편 선택적 소비는 경험과 자기표현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이뤄지면서 소비 기준이 ‘효율’과 ‘가치’로 분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비심리 개선이 지출 제약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딜로이트가 7월 말 공개한 Consumer Signals 지수에서 한국 소비자의 7월 인플레이션 우려 지수는 62%로 전월보다 3%p 낮아졌다. 향후 4주간 예상 지출 변화를 나타내는 소비의향 지수는 6%로 플러스 구간을 유지했지만 전월 대비 2%p 하락했다. 식료품 구매 과정에서 느끼는 재정적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식료품 소비 절약지수도 94.6으로 전월보다 2.4p 상승했다.

쇼핑 장소를 고르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월드패널은 상반기 오프라인 매장 방문이 감소했으며 온라인 시장 역시 직전 6개월과 비교하면 성장 속도가 둔화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소비자들이 하나의 유통업체에 집중하기보다 쇼핑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채널을 이용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통업체 실적은 업태별로 명암이 엇갈렸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5월 주요 유통업체 26개사의 전체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9.0% 증가했다. 오프라인은 9.3%, 온라인은 8.8% 늘었다. 전체 숫자만 보면 온·오프라인이 모두 성장했지만 세부 업태에서는 차이가 컸다. 백화점 매출은 24.5%, 편의점은 5.9% 증가한 반면 대형마트는 5.1%, 준대규모점포(SSM)는 8.0% 감소했다. 백화점과 편의점은 지난해 7월 이후 11개월 연속 증가했다. 산업통상부는 백화점의 높은 성장률에 외국인 관광객 유입과 소비심리 회복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고, 대형마트와 SSM은 주력 영역인 식품 판매 부진이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증권가도 유통시장 전체보다 업태별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5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자료를 분석하면서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의 매출은 부진했지만 백화점이 24.5% 성장하며 오프라인 채널 매출을 견인했다고 평가했다. 키움증권 역시 2분기 유통업체 실적을 전망하면서 주요 업체들의 실적이 높아진 시장 기대치에 부합하거나 이를 웃돌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주요 대기업의 실적 개선과 주식시장 강세에 따른 소득·자산 효과가 이어졌고, 소비심리와 외국인 매출 성장세가 견조하다는 점을 근거로 백화점 중심의 대응 전략이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국내 주식시장의 추가 조정이 소비자의 자산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위험도 함께 언급했다.

월드패널의 상반기 조사와 국내 통계를 함께 보면 소비 시장을 단순히 ‘지출 감소’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FMCG 구매 횟수와 가구당 지출은 감소했지만 회당 구매액은 늘었고, 식품과 비식품의 방향이 달랐다. 유통시장에서도 백화점과 편의점, 온라인, 대형마트, SSM의 실적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특히, 화장품은  스킨케어·바디케어·색조가 모두 성장했고, 국가데이터처와 산업통상부의 온라인 통계에서도 증가세가 확인됐다.

월드패널은 이러한 변화를 한국 소비자가 단순히 돈을 덜 쓰는 것이 아니라 쇼핑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쇼핑 횟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품목별 실적은 달라지고, 목적에 따라 이용 채널을 달리하는 행동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성장률만으로 소비를 판단하기보다 어떤 품목에 지출이 남아 있는지, 구매가 어느 채널에서 발생하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상반기 FMCG 시장의 정체 속에서도 뷰티가 성장했다는 결과는 소비 총량보다 소비자의 ‘선택’이 시장을 가르는 변수로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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