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면역세포로 혈관 청소한다"…한국형 ARPA-H, 바이오헬스 초격차 이끌 혁신
"순환 암세포(CTC) 원천 차단"… 기존 R&D 틀 깬 '인공 면역세포 자성 입자' 선도 기술 공개
혈소판 리프로그래밍부터 양자 컴퓨터 진단까지… 난제 해결 위한 산·학·연·병 융합 아이디어 봇물
입력 2026.04.24 06:00 수정 2026.04.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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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김한상 교수,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박현우 교수.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5년 생존율이라는 지표에 갇힌 암 치료의 한계와 여전히 높은 패혈증 사망률을 극복하기 위해, 혈액 속 유해 물질과 전이의 씨앗을 근본적으로 걸러내는 '인공 면역세포 혈관 청소기' 개발이 본격화된다.

K-헬스미래추진단은 23일 양재동 엘타워 비바체홀에서 '한국형 ARPA-H 프로젝트 임무 3(바이오헬스) 제안자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면역세포를 닮은 '혈관 청소기'가 나온다면?"이라는 화두를 던진 이번 행사에는 K-바이오헬스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 도약을 목표로 산·학·연·병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해 체외 혈액 정화 기술의 최신 동향과 임상 적용, 규제 극복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행사의 포문은 한국형 ARPA-H 프로젝트의 근본적인 철학을 강조한 선경 단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선 단장은 기존 국가 R&D 사업이 성공률 99%라는 수치에 갇혀, 실패하지 않을 안전한 목표만을 세우는 '추격형 R&D'에 머물러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모델을 벤치마킹한 우리 프로젝트의 성공률은 15% 이하로 본다"며 "나머지 85%를 단순한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성공을 위한 여정을 찾아내는 과정으로 가치를 부여할 것"이라고 선도형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아울러 논문이나 특허 같은 정량적 성과보다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주문했다.

바이오헬스 임무를 맡은 김재욱 PM 역시 "바이오헬스 분야는 5개 임무 중 가장 도전적이고 기술 지향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영역"이라고 설명하며, 글로벌 베스트로 도약할 수 있는 과제 도출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줌(Zoom)으로 참석해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이재혁 교수는 '인공 면역세포에 기반한 체외 혈액 정화 기술 개발 현황과 비전'을 소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기존에 상용화된 다양한 혈액 관류 장치(토레이믹신, 사이토소브 등)들은 패혈증 환자의 유의미한 생존율 개선을 이끄는 데 한계를 보였다. 원인으로는 혈액 내 일반 성분과 결합해버리는 비특이적 결합, 흡착제가 고정된 환경에서 오는 물리적 접촉의 제한, 흡착제 포화에 따른 효율 급감 등이 꼽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인공 세포막 자성 입자' 기술이 제시됐다. 병원균을 포획하는 자성 입자의 표면을 실제 적혈구나 백혈구의 세포막으로 코팅하는 방식이다. 이 인공 세포막에는 'CD47' 단백질이 존재해 환자의 면역 체계가 입자를 '자신(Self)'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추가적인 염증 반응 없이 표적 물질만 효과적으로 포획할 수 있다.

실제 시간당 6L의 유속으로 진행된 대동물 패혈증 모델 실험 결과, 이 기술을 적용한 그룹은 모두 생존한 반면 통제군은 80%에 육박하는 사망률을 기록했다. 혈액 내 병원균과 내독소(Endotoxin)를 거의 완벽하게 제거했으며, 염증성 사이토카인 수치를 정상 수준으로 떨어뜨려 주요 장기의 기능 부전을 유의하게 회복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임상 현장에서의 요구 사항을 발표한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김한상 교수는 암 전이 억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조기 검진 사업의 성공으로 암 환자 5년 생존율이 70%를 넘어섰으나, 진행암(3·4기)의 생존율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김 교수는 암이 원발 병소에서 타 장기로 전이되기 전, 다양한 사이토카인과 엑소좀 등을 분비해 미리 '전이 전 틈새(Pre-metastatic Niche)'를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암에서 분비되는 악성 매개 물질과 순환 암세포를 혈액 정화 기술로 조기에 제거할 수 있다면, 기존 항암 치료와 시너지를 내어 환자의 생존 기간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박현우 교수 역시 진정한 '완치'는 5년 생존율 달성이 아닌 전이와 재발에 대한 불안감 해소에 있다고 부연했다. 박 교수는 "기존 상피세포 마커(EpCAM)는 암세포가 혈관으로 유입되어 순환 암세포(CTC)가 되는 순간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에 진단에 한계가 뚜렷하다"며, "순환 암세포에만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신규 마커를 발굴해 차세대 항전이 요법을 우리나라가 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의료 기술 상용화를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규제 장벽 극복이 필수적이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김동언 센터장은 신개발 의료기기의 인허가 전략을 상세히 분석했다.

김 센터장은 본 기기가 위해 물질을 여과하는 의료기기법상 3등급 '혈액 관류 장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속한 시장 진입을 위해 식약처의 '혁신 의료기기(첨단기술군 또는 의료혁신군)' 지정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혁신 의료기기로 지정되면 제품 설계 단계부터 임상 승인, 최종 허가까지 단계별 우선 심사 혜택을 받아 개발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다만, 자성 입자가 체내로 유입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독성학적 문제(생물학적 안전성)를 해결해야 하며, 100% 필터링이 어렵다면 임상적으로 무해한 정량적 허용 기준치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동등 비교를 할 수 있는 선행 허가 제품이 전무한 '완전 신기술'인 만큼, 개발 초기부터 식약처와의 긴밀한 사전 소통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현장 발제 및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융합 기술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포텔마이헬스 안태진 대표는 '혈소판'을 매개로 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백혈구 전체보다 4배나 넓은 면적을 가진 혈소판이 단순 지혈을 넘어 혈관 내 정보의 집합체로 기능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안 대표는 "체외로 빼낸 혈소판의 RNA 회로도를 조작(리프로그래밍)해 암의 생장과 전이를 돕는 신호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이종선 교수는 수만 개의 세포와 유전자를 분석해야 하는 초고차원 단일 세포 전사체 데이터 분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양자 컴퓨팅(Quantum Computing)' 기술을 혈액 내 세포 클러스터링 연구에 도입하자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번 행사는 대한민국이 추격자를 넘어 의료 기술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력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K-헬스미래추진단 김재욱 PM은 "오늘 수렴된 귀중한 의견들을 바탕으로 RFP(제안요청서)를 고도화해 오는 5월 20일경 공고할 예정이며, 7월부터는 본 과제가 시작될 수 있도록 속도를 내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인공 면역세포 혈관 청소기'라는 상상력이 전문가들의 집단 지성을 만나 암과 패혈증 정복이라는 인류의 숙원을 풀어낼 있을지, 바이오헬스 초격차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줌(Zoom)으로 참석해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이재혁 교수.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발표를 맡은 연자들이 기념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김재욱 PM. ©약업신문 김홍식 기자
선경 단장.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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