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적으로 2형 당뇨병 치료 패러다임이 단순 혈당 강하를 넘어 심혈관·신장 등 합병증 예방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다. 의료 선진국은 물론 국내 의학계조차 임상적 유용성이 입증된 신약을 초기 치료제로 전진 배치하며 환자 맞춤형 치료에 나섰지만,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15년째 낡은 급여기준에 갇혀 처방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은 올해 2월 18일 2형 당뇨병 지침(NG28)을 전격 개정하며 치료의 출발선을 완전히 바꿨다. 동반질환이 없는 성인 환자에게도 메트포르민 서방형(M/R)과 SGLT-2 억제제 병용을 1차 치료로 권고했으며, 메트포르민을 쓸 수 없는 경우에는 SGLT-2 억제제 단독요법을 제시했다. '메트포르민 단독 후 단계적 추가'라는 오랜 공식에서 벗어난 결정이다.
NICE 개정 내용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메트포르민은 일반 속방형보다 서방형을 우선 사용하도록 했다. 둘째, SGLT-2 억제제와 GLP-1 유사체를 권고하는 이유로 혈당 강하만큼이나 심혈관·신장 보호 효과를 명시하며 합병증 예방에 근거를 둔 접근을 택했다. 셋째,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 환자에게는 메트포르민·SGLT-2 억제제에 GLP-1 유사체(세마글루타이드)까지 더한 3제 병용을 1차로 권고해 초기부터 적극적인 합병증 치료를 명시했으며, 개별 환자에 맞춘 혈당 목표 설정도 강조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치료 패러다임 전환은 국내 의료계의 최신 합의와도 궤를 같이한다. 대한당뇨병학회가 발간한 '2025 당뇨병 진료지침(제9판)'에 따르면, 2형 당뇨병 초기 치료 시 메트포르민을 1차 약물로 우선 사용하도록 권장했던 기존 권고안이 전격 삭제됐다.
학회는 체계적 문헌고찰 결과 메트포르민이 다른 혈당강하 약물들에 비해 유의한 이점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미국·일본 당뇨병학회 등의 타 진료지침 흐름을 반영해 메트포르민 우선 사용 권고를 없애고, 환자 개개인의 치료 수용성과 특성을 고려해 약물을 선택하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현행 ‘당뇨병용제 일반원칙’은 이러한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급여기준은 2011년 고시된 이후 여전히 경구용 치료제로 메트포르민 단독 우선 사용을 기본 구조로 깔고 있다. 단독요법을 2~4개월 이상 사용한 뒤에도 당화혈색소가 7% 이상이어야만 다른 기전의 약제를 추가할 수 있는 낡은 '계단식' 구조다. 심평원이 2023년 4월과 9월, 2024년 4월과 지난해 4월 등 당뇨병용제 일반원칙을 여러 차례 개정했고, 올해 6월 1일(고시 제2026-117호)에도 새로운 복합제 4개 품목을 추가했지만 메트포르민 중심의 단계적 급여 뼈대는 전면 재설계되지 않았다.
이러한 좁은 급여 기준은 신약 처방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 급여가 적용된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오젬픽'은 메트포르민과 설포닐요소제를 2~4개월 이상 병용했음에도 당화혈색소가 7% 이상이어야 하며, 체질량지수 25 이상이거나 인슐린 치료를 할 수 없는 환자로 대상이 깐깐하게 제한된다.
초기 3제 병용 인정 후 현저한 혈당 개선이 확인되면 메트포르민·오젬픽 2제 병용으로 다시 전환해야 하고, 최초 투여 시 과거 약제 투여력과 검사 결과를 제출한 뒤 3개월마다 당화혈색소를 평가받아야 한다.
국산 신약 역시 역차별에 가까운 규제에 발이 묶여 있다. 대웅제약의 국산 SGLT-2 억제제 '엔블로정(성분명 이나보글리플로진)'은 현행 급여기준상 인슐린과 병용할 때 급여로 인정받지 못하며, 메트포르민·SGLT-2 억제제·티아졸리딘디온 3제 요법에서도 제외되는 등 처방 제약을 받고 있다.
그 사이 환자는 빠르게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는 2020년 333만4,989명에서 2024년 396만4,960명으로 약 19% 증가했다.
국내외 최신 진료지침은 심부전·만성콩팥병 동반 환자에게 SGLT-2 억제제를,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 동반 환자에게 GLP-1RA 또는 SGLT-2 억제제를 우선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급여기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처방 현장의 격차도 크다. GLP-1 유사체의 경우 미국에서는 당뇨병 환자의 26.5%가 처방받는 반면, 한국은 2% 안팎에 불과하다. 약제의 임상적 유용성이 충분히 입증됐음에도 깐깐한 급여기준이 처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정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급여 개정 추진은 202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환자 맞춤형 혈당 관리와 의사의 처방 재량권 보장을 목적으로 본격화됐다.
심평원은 △메트포르민 투여 불가 시 타 약제 단독요법 인정 △동반질환(만성신장병·만성심부전·죽상경화 심혈관질환) 보유 시 SGLT-2 억제제·GLP-1 유사체 우선 투여 인정 △상충 기전을 제외한 2~3제 조합 확대 △GLP-1 유사체 및 인슐린 요법 선행 조건 삭제 등 4가지 확대안을 마련해 업체에 재정영향 분석을 요청했고, 지난 6월 제출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올해까지도 ‘분석 및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고시 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비용효과성을 엄격히 따지기로 유명한 영국 NICE조차 재정 부담이 큰 공공의료체계에서 SGLT-2 억제제를 1차 치료로 올린 점은 우리 보건당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기 치료를 통한 합병증 예방이 장기적으로 의료비를 절감한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처방을 제한하는 급여기준은 환자의 건강권을 해칠 뿐만 아니라 국내 R&D 생태계를 위축시킨다"며 "이미 2년 가까이 검토가 이어진 만큼, 정부는 더 이상의 지체 없이 현장 중심의 급여기준 개정안을 확정, 시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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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은 올해 2월 18일 2형 당뇨병 지침(NG28)을 전격 개정하며 치료의 출발선을 완전히 바꿨다. 동반질환이 없는 성인 환자에게도 메트포르민 서방형(M/R)과 SGLT-2 억제제 병용을 1차 치료로 권고했으며, 메트포르민을 쓸 수 없는 경우에는 SGLT-2 억제제 단독요법을 제시했다. '메트포르민 단독 후 단계적 추가'라는 오랜 공식에서 벗어난 결정이다.
NICE 개정 내용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메트포르민은 일반 속방형보다 서방형을 우선 사용하도록 했다. 둘째, SGLT-2 억제제와 GLP-1 유사체를 권고하는 이유로 혈당 강하만큼이나 심혈관·신장 보호 효과를 명시하며 합병증 예방에 근거를 둔 접근을 택했다. 셋째,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 환자에게는 메트포르민·SGLT-2 억제제에 GLP-1 유사체(세마글루타이드)까지 더한 3제 병용을 1차로 권고해 초기부터 적극적인 합병증 치료를 명시했으며, 개별 환자에 맞춘 혈당 목표 설정도 강조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치료 패러다임 전환은 국내 의료계의 최신 합의와도 궤를 같이한다. 대한당뇨병학회가 발간한 '2025 당뇨병 진료지침(제9판)'에 따르면, 2형 당뇨병 초기 치료 시 메트포르민을 1차 약물로 우선 사용하도록 권장했던 기존 권고안이 전격 삭제됐다.
학회는 체계적 문헌고찰 결과 메트포르민이 다른 혈당강하 약물들에 비해 유의한 이점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미국·일본 당뇨병학회 등의 타 진료지침 흐름을 반영해 메트포르민 우선 사용 권고를 없애고, 환자 개개인의 치료 수용성과 특성을 고려해 약물을 선택하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현행 ‘당뇨병용제 일반원칙’은 이러한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급여기준은 2011년 고시된 이후 여전히 경구용 치료제로 메트포르민 단독 우선 사용을 기본 구조로 깔고 있다. 단독요법을 2~4개월 이상 사용한 뒤에도 당화혈색소가 7% 이상이어야만 다른 기전의 약제를 추가할 수 있는 낡은 '계단식' 구조다. 심평원이 2023년 4월과 9월, 2024년 4월과 지난해 4월 등 당뇨병용제 일반원칙을 여러 차례 개정했고, 올해 6월 1일(고시 제2026-117호)에도 새로운 복합제 4개 품목을 추가했지만 메트포르민 중심의 단계적 급여 뼈대는 전면 재설계되지 않았다.
이러한 좁은 급여 기준은 신약 처방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 급여가 적용된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오젬픽'은 메트포르민과 설포닐요소제를 2~4개월 이상 병용했음에도 당화혈색소가 7% 이상이어야 하며, 체질량지수 25 이상이거나 인슐린 치료를 할 수 없는 환자로 대상이 깐깐하게 제한된다.
초기 3제 병용 인정 후 현저한 혈당 개선이 확인되면 메트포르민·오젬픽 2제 병용으로 다시 전환해야 하고, 최초 투여 시 과거 약제 투여력과 검사 결과를 제출한 뒤 3개월마다 당화혈색소를 평가받아야 한다.
국산 신약 역시 역차별에 가까운 규제에 발이 묶여 있다. 대웅제약의 국산 SGLT-2 억제제 '엔블로정(성분명 이나보글리플로진)'은 현행 급여기준상 인슐린과 병용할 때 급여로 인정받지 못하며, 메트포르민·SGLT-2 억제제·티아졸리딘디온 3제 요법에서도 제외되는 등 처방 제약을 받고 있다.
그 사이 환자는 빠르게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는 2020년 333만4,989명에서 2024년 396만4,960명으로 약 19% 증가했다.
국내외 최신 진료지침은 심부전·만성콩팥병 동반 환자에게 SGLT-2 억제제를,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 동반 환자에게 GLP-1RA 또는 SGLT-2 억제제를 우선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급여기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처방 현장의 격차도 크다. GLP-1 유사체의 경우 미국에서는 당뇨병 환자의 26.5%가 처방받는 반면, 한국은 2% 안팎에 불과하다. 약제의 임상적 유용성이 충분히 입증됐음에도 깐깐한 급여기준이 처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정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급여 개정 추진은 202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환자 맞춤형 혈당 관리와 의사의 처방 재량권 보장을 목적으로 본격화됐다.
심평원은 △메트포르민 투여 불가 시 타 약제 단독요법 인정 △동반질환(만성신장병·만성심부전·죽상경화 심혈관질환) 보유 시 SGLT-2 억제제·GLP-1 유사체 우선 투여 인정 △상충 기전을 제외한 2~3제 조합 확대 △GLP-1 유사체 및 인슐린 요법 선행 조건 삭제 등 4가지 확대안을 마련해 업체에 재정영향 분석을 요청했고, 지난 6월 제출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올해까지도 ‘분석 및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고시 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비용효과성을 엄격히 따지기로 유명한 영국 NICE조차 재정 부담이 큰 공공의료체계에서 SGLT-2 억제제를 1차 치료로 올린 점은 우리 보건당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기 치료를 통한 합병증 예방이 장기적으로 의료비를 절감한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처방을 제한하는 급여기준은 환자의 건강권을 해칠 뿐만 아니라 국내 R&D 생태계를 위축시킨다"며 "이미 2년 가까이 검토가 이어진 만큼, 정부는 더 이상의 지체 없이 현장 중심의 급여기준 개정안을 확정, 시행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