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 구조재편 '태동'…"정부의 선제적 규제 완화 마중물 돼야"
단순 생존 넘어 산업 경쟁력 강화 모색…업계 내부 자발적 자구책 논의 '솔솔'
양도양수 시 약가 삭감 등 제도적 불이익 우려에 전면적 재편 나서는 덴 '부담'
시장 불안감 불식시키고 통합 촉진할 정부의 선제적 규제 완화 및 정책 자금 절실
입력 2026.10.25 06:00 수정 2026.10.2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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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으로 국내 제약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산업계 전반에서 단순한 수익성 방어를 넘어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자구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 기조가 확고해지면서 약가인하가 일시적 충격이 아닌 산업의 상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제 기존의 파편화된 사업 구조로는 더 이상 미래 성장 동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산업계 내부에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당장 개별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이나 대대적인 품목 통합과 같은 구체적인 구조조정 카드를 전면에 내세우기에는 현실적인 부담이 따르는 상황이다.

 아직 관련 논의가 산업계 내부에서도 매우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데다, 자칫 섣부른 통합 움직임이 시장에 '경영 악화'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거나 오히려 약가 삭감 등 제도적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신중론 때문이다. 

제약업계가 본격적인 사업 재편에 나서기 위해서는, 규제 장벽을 허물어주는 정부의 선제적인 화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 제약산업의 생태계는 다수의 중소제약사가 제네릭 의약품을 중심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을 영위하는 구조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제네릭 의약품은 국민에게 필수적인 치료제를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가격에 공급하여 보건 향상에 기여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산업적 측면에서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을 수십 개의 기업이 각각의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시설에서 중복으로 생산하고, 이를 판매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별도의 영업망을 구축해 운영하는 비효율이 오랜 기간 누적되어 왔다. 

이러한 다품종 소량 생산의 분절적 구조 속에서 정부의 약가인하 제도가 반복적으로 시행될 경우, 고정비 부담이 큰 기업들의 이익률은 급격히 하락할 수밖에 없다. 수익성 악화는 단순히 단기적인 재무제표 상의 영업이익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곧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향한 연구개발(R&D) 투자와 선진국 수준의 첨단 바이오 생산시설 확충에 투입되어야 할 핵심 자본마저 메말라버리게 하는 치명적인 악순환의 늪으로 산업을 끌고 들어간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산업계 안팎에서는 기업 간 자발적 협력을 통한 덩치 키우기와 경영 효율화가 유일한 돌파구라는 데 이견이 없다. 가장 강력한 수단은 기업 간 인수합병(M&A)이다. 중소제약사들이 개별적으로 유지해오던 R&D 조직과 생산 공장, 영업 및 마케팅 인력을 하나로 통합할 경우 막대한 고정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며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 

인수 기업의 입장에서는 상대 기업이 다년간 축적해 온 유망 파이프라인과 특화된 기술력, 탄탄한 지역 영업망을 즉각적으로 흡수함으로써 새로운 질환군이나 글로벌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퀀텀 점프를 기대할 수 있다.

전사적 차원의 M&A가 당장 부담스러운 기업들에게는 '품목 통합'이라는 현실적인 대안이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적응증의 의약품을 각각 생산하고 있는 두 제약사가 협약을 맺고, 생산 효율이 높은 한 곳의 설비를 공동으로 활용하거나 중복되는 품목을 하나로 합쳐 위탁생산(CMO)을 맡기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산 단가 하락과 재고 관리 효율화 등 원가 절감분은 상당하며, 기업들은 이렇게 확보된 재원을 혁신 신약 개발이나 차세대 모달리티 확보를 위한 투자금으로 과감하게 전환할 수 있다. 나아가 모든 신약 개발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던 폐쇄적인 노선에서 벗어나,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고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 역시 제약산업이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적인 대안으로 깊이 있게 다뤄지고 있다.

문제는 산업계 전반에 이러한 자구책 모색의 필요성이 무르익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낡은 규제와 획일화된 제도가 혁신의 발목을 강하게 잡고 있어 기업들이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망설이는 가장 큰 제도적 장벽은 아이러니하게도 '약가 삭감' 규제다. 

현행 약가 산정 제도 아래에서는 사업 효율화를 목적으로 한 제약사가 타사의 의약품 품목을 양도양수받아 통합할 경우, 해당 의약품에 기존보다 낮은 약가가 새롭게 책정될 위험이 상존한다. 생산 원가를 절감하고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품목을 통합하려 노력했는데, 오히려 그 결과로 제품 판매 가격이 강제로 깎여 전체 수익이 급감하는 치명적인 모순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바이오벤처에 대한 세제 혜택의 사각지대 역시 시급한 개선 과제로 꼽힌다. 

현행 세법 및 벤처기업 육성 관련 법령 하에서는, 유망 바이오벤처가 중견 및 대형 제약사에 인수합병되는 과정에서 합병의 방식이나 합병 이후 기업의 규모 요건(중소기업 졸업 등)이 변경됨에 따라 기존에 적용받던 법인세 감면이나 R&D 세액공제 등의 핵심 세제 혜택을 하루아침에 상실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기업 인수와 대규모 품목 통합 시스템 구축에는 막대한 초기 자본과 실사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자금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들로서는 섣불리 통합의 판에 뛰어들기 힘든 실정이다.

결국 제약업계가 초기 단계의 막연한 생존 구상을 넘어 실질적인 산업구조 재편이라는 과감한 행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제도적 화답이 필수적이다. 

사업 통합 과정에서 인수된 품목의 기존 약가를 온전히 보장해 수익성 훼손을 막아주고, 규모 확대와 R&D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한 합리적 M&A 시 세제 혜택 불이익을 방지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당근책'이 제시되어야만 기업들이 안심하고 뭉칠 수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역시 이러한 산업계의 무거운 고민에 깊이 공감하며 조력자로서 힘을 보태고 있다. 

협회는 현재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민간협의체를 통해 회원사들의 목소리를 취합하고 있으며, 기업 간 자발적 통합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규모 구조조정 펀드 조성의 필요성, 그리고 앞서 언급된 약가 유지 및 세제 부담 완화 등 구체적인 제도 개선 과제를 발굴하여 정부와 다각도로 지원 방안을 논의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반복되는 약가인하라는 외부 충격에 따른 단순한 '산업 축소기'나 '한계 기업 퇴출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국내 제약산업이 오랜 기간 안주해 온 우물 안 개구리식 내수 위주 경쟁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압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발적으로 진화해야 하는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벼랑 끝에서 생존과 도약을 위해 고민하는 자구책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초되지 않도록,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낡고 불합리한 규제의 장벽을 선제적으로 거둬내고 든든한 산업적 안전망을 깔아주며 전향적으로 화답해야 할 때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은 결국 민간의 혁신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의 하모니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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