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제약바이오, 왜 아직 ‘블록버스터 신약’ 없나"
기업 규모·상업화 전략·규제 환경 부족이 가로막아
연매출 4~5조 기업 등장으로 블록버스터 분기점 진입
직접 상업화·프리미엄 전략·특허 준비가 성패 좌우
입력 2026.04.30 22:40 수정 2026.04.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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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정혜윤 책임연구원, 알테오젠 전태연 대표, 대웅제약 윤준수 본부장, SK바이오팜 황선관 부사장,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엄승인 전무, 법무법인 태평양 송영주 경제고문.©약업신문=권혁진 기자

“기술만으로는 블록버스터가 나오지 않습니다. 기업 규모와 상업화 전략, 규제 환경이 맞물린 구조에서 블록버스터가 탄생합니다.”

29일 진행된 ‘바이오코리아 2026’ 컨퍼런스 ‘한국형 블록버스터 창출 전략’ 패널토론에서 산업·기업·정책 전문가들은 한국의 블록버스터 부재 원인을 기술이 아닌 구조에서 찾았다. 기술력은 일정 수준에 올라왔지만, 기업 규모와 파이프라인 구성, 상업화 전략, 규제 환경이 맞물리지 않으면서 글로벌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날 토론에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엄승인 전무, SK바이오팜 황선관 부사장, 알테오젠 전태연 대표, 대웅제약 윤준수 본부장,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정혜윤 책임연구원이 참여해, 각자의 현장에서 본 블록버스터 창출 조건과 한계를 구체적으로 짚었다. 이날 토론은 법무법인 태평양 송영주 경제고문이 좌장을 맡았다.

“블록버스터는 규모에서 나온다”…매출 4~5조 임계점 진입

엄승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전무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블록버스터 창출 단계를 ‘기업 규모’ 관점에서 설명했다. 글로벌 빅파마의 성장 경로를 보면, 10억 달러 제품이 등장한 시점의 기업 매출이 대체로 50억 달러 이상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 규모가 확보돼야 블록버스터 창출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엄 전무는 “국내 시장 규모는 약 34조원이고, 주요 제약사 매출은 2조~4조원 수준”이라며 “기업이 4조~5조원 규모로 성장하면 블록버스터에 근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매출이 5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성장하는 데 3~6년이 걸린 사례를 보면, 지금 단계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구간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구조적 한계로는 기업 체력을 지목했다. 그는 “혁신적인 물질이 있어도 임상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자본과 파이프라인이 부족하다”며 “물질 하나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실패 시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R&D 역량뿐 아니라 자본과 글로벌 마케팅까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노바메이트, 기술이전 대신 직접 상업화 선택 이유 

황선관 SK바이오팜 부사장은 세노바메이트(제품명 엑스코프리)의 기술이전이 아닌 직접 상업화를 선택한 배경으로 비전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다국적 제약사들이 직접 찾아와 라이선스 아웃을 제안했고, 내부적으로도 이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황 부사장은 “계약금을 받고 기술이전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면서도 “글로벌 제약사가 되겠다는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단기적인 선택보다 직접 판매를 택했다”고 말했다. 이는 자체 상업화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궁극적으로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우선한 결정이었다.

미국 시장을 먼저 공략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글로벌 표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큰 시장에서 먼저 성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뇌전증 시장의 약 60%가 미국에서 나오고, 약가도 한국 대비 10배에서 30배까지 차이가 난다”며 “이 구조에서는 미국 시장 선점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중국과의 경쟁 구도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는 “글로벌 초기 단계 딜의 약 70%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며 “한국은 플랫폼 기술이나 CNS 등 차별화된 영역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알테오젠, 특허 구조와 데이터가 계약 좌우

전태연 알테오젠 대표는 플랫폼 사업 성과의 출발점을 기술로 짚었다. 다만 기술만으로 계약이 성사되는 것은 아니라며, 실제 사업화 과정에서는 특허와 준비 수준이 함께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전 대표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며 “빅파마들이 직접 와서 기술을 검증할 정도로 신뢰를 확보한 것이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경쟁사들이 특허 문제로 개발을 진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알테오젠 기술은 기존 특허와 충돌하지 않는 구조였다는 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계약 성사 과정에서 특허 완성도와 준비 수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단순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고, 파트너가 이해할 수 있도록 구조와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대표는 “기술뿐 아니라 특허와 준비 과정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업화 전략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직접 판매하려면 네트워크와 경험이 필요하다”며 “현재는 파트너를 통한 상업화가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을 통해 경험을 쌓으면 향후 직접 상업화 기회도 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리미엄 인식’ 만든 나보타 전략

윤준수 대웅제약 본부장은 나보타의 글로벌 확산 요인을 제품 품질과 시장 인식에서 찾았다. 제품 경쟁력의 출발점은 품질이며, 이후 시장 확장은 가격과 인식이 결합된 구조에서 결정된다는 설명이다.

윤 본부장은 “제품의 품질이 확보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며 품질 경쟁력을 전제로 제시했다. 이어 “비급여 시장에서는 가격 선택이 매우 중요하고, 가격 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큰 팩터는 제품이 얼마만큼의 밸류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단순히 낮은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어떤 가치로 인식되느냐가 핵심이라는 의미다.

초기 전략에서도 이 판단이 반영됐다. 그는 수출용 허가 승인 후 병행수출 등 일부 국가에서 별도 인허가 절차 없이 진입할 수 있는 방식이 있었지만, 대웅제약은 이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윤 본부장은 “프리미엄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미국 FDA 승인 전까지 별도로 시장에 진입하는 방식은 최대한 자제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나보타는 현재 약 90개국에서 파트너십을 확보하며 프리미엄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인식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의료진 중심 네트워크를 제시했다. 그는 “나보타를 잘 시술해 줄 수 있는 의사들이 중요하다”며 “정기적인 교육과 현장 니즈 대응을 통해 시술 품질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고객 로열티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금·경험 부족 한계…“규제 개혁으로 경쟁력 확보”

정혜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아직 나오지 못한 이유로 자금과 경험 부족을 지목했다. 그는 연구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여러 전문가를 인터뷰하며 국내 산업의 경험 축적이 충분하지 않고, 이를 공유할 창구도 부족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우리나라가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아직 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자금과 경험”이라며 “자본과 경험은 짧은 시간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먼저 현금흐름을 만들고, 이를 다시 신약 개발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책 측면에서는 규제 개혁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그는 중국 사례를 들며 “중국은 2017년부터 과감한 규제 개혁을 시작했고, 지금은 신청 후 승인까지 약 30일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중국 파이프라인은 규모뿐 아니라 품질까지 보강되고 있다”며 규제 개혁이 혁신 신약 개발 경쟁력과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국내에서도 규제 개혁을 통해 신약 개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를 기업 노력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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