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AI 대전환 ③] 글로벌 빅파마, AI 도입 아닌 '업무 재설계’에 베팅
BCG "단순 생산성 넘어 임상·제조 E2E 프로세스 재설계로 가야"

모더나·노바티스·화이자 등 글로벌 빅파마, 기술 도입 넘어선 '재발명' 선언

성공의 70%는 '조직·프로세스 변화'… 성공적인 내재화를 이끄는 ‘AI Growth Partner’ 절실
입력 2026.08.18 06:00 수정 2026.08.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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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 화면은 화려한데 실무엔 쓸 수가 없다" 지난 2편에서 살펴본 제약사 현업의 뼈아픈 고충은 명확했다. 파일럿 프로젝트는 넘쳐나지만, 파편화된 시스템과 엄격한 규제의 장벽에 부딪혀 정작 업무 정착에는 실패하는 '파일럿의 무덤'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 정체기를 뚫고 실제 재무적 가치를 창출하려면 '어디에, 어떻게' AI를 적용해야 할까. 글로벌 경영 컨설팅 기업 BCG(보스턴컨설팅그룹)와 글로벌 선도 제약사들의 행보를 분석해 보면, 그 해답은 기술 플랫폼 자체의 도입이 아닌 '엔드투엔드(End-to-End, E2E) 업무 프로세스의 재설계'에 있다.

BCG가 발표한 '제약산업 AI-First 기업의 성공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AI 활용 단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일상 배포(Deploy)' 단계다. 문서 요약이나 회의록 작성 등 기존에 사람이 하던 반복 업무에 기성 AI 툴을 붙여 개인의 생산성을 높이는 수준이다. 현재 국내 다수의 제약사가 이 단계의 PoC에 머물러 있다.

둘째는 '프로세스 변혁(Reshape)' 단계다. 이는 단순히 기존 업무를 빠르게 하는 것을 넘어 임상시험, 제조 수율 최적화, 공급망 등 기업의 핵심 가치사슬 전체를 AI를 전제로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AI 기반 신약 설계나 가상 환자 등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신규 가치 창출(Invent)' 단계다.

전문가들은 제약사가 AI로 진정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일상 배포(Deploy) 단계를 넘어 프로세스 변혁(Reshape)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BCG는 선도 기업들이 임상 문서 자동화, 디지털 트윈을 통한 제조 수율 최적화 등 3~5개의 핵심 비즈니스 과제(Reshape)에 투자를 집중하여 명확한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AI-First의 핵심은 툴의 도입이 아니라 E2E 프로세스 재설계를 통한 경쟁력 재정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실제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이들의 공통점은 AI를 별도의 IT 프로젝트가 아닌,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로 접근한다는 데 있다. 맥킨지 역시 제약 분야에서 AI의 역할이 단순한 '도구'에서 '동료'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창업 초기부터 모든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한 모더나는 업계에서 가장 완벽한 'AI-Native' 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AI가 없으면 업무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하에, mRNA 설계부터 제조에 이르는 전 과정을 AI 에이전트가 관리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백신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며 AI 중심 운영의 파괴력을 입증했다.

노바티스는 파편화된 수십 년 치의 임상 및 제조 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하는 거대한 '데이터 레이크(Data Lake)'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Data42'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원들이 방대한 과거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발굴할 수 있는 지능형 연구 환경을 조성, 전사적인 차원의 업무 재설계를 강력히 추진 중이다.

사노피는 2026년 전략을 통해 "AI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재발명(Reinvention)"이라고 명시하며 방향성을 확고히 했다. 이들은 특정 연구 부서에 국한하지 않고 R&D, 제조, 공급망은 물론 인사와 재무 등 지원 부문까지 AI를 전사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현재 7만 명 이상의 직원이 실제 업무 방식을 혁신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역량 강화를 진행하고 있다.

화이자는 최근 '응용 AI 워크플로우 과학자'라는 혁신적인 직무를 신설했다. 이들은 현장 연구원의 고충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재사용 가능한 AI 워크플로우를 일상 업무에 완벽히 정착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역시 AI 에이전트 도입 시 '사람 주도, 공동 주도, AI 주도' 등 업무의 자율성 수준을 사전에 명확히 정의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글로벌 규제 기관인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청(EMA)조차 기술 자체의 성능보다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와 이를 뒷받침할 '조직의 변화 관리'를 더 중요한 핵심 평가 요소로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기업이 PoC 이후 확산에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BCG는 그 이유를 '10-20-70 원칙'으로 명쾌하게 설명한다. AI 성공을 위해서는 알고리즘 및 데이터 기반이 10%, 기술적 도구가 20%를 차지하지만, 나머지 70%는 사람과 프로세스 등 업무 방식의 혁신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AI를 활용하는 방식과 서비스를 설계하는 전문기업 베이글 관계자는 “글로벌 선도 제약사의 공통점은 AI 솔루션을 많이 도입했다는 데 있지 않다. 비즈니스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를 선별하고, 사람과 AI의 역할을 다시 설계해 실제 업무 프로세스에 정착시켰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AI 전환의 경쟁력은 결국 기술 자체보다 기업이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을 얼마나 빠르게 만들고, 이를 조직의 역량으로 내재화하느냐에서 결정될 것”이라며 “따라서 단순한 솔루션 공급업체를 넘어, AI 도입부터 업무 재설계, 검증과 내재화까지 전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실행을 돕는 ‘AI 그로스 파트너(Growth Partner)’ 관점의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본격적인 AI-Driven 기업으로의 도약은 최신 LLM(대규모 언어 모델)을 사내에 설치하는 것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업무의 병목을 찾아내고 사람과 AI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반복 가능한 프로세스 전환 역량'이 핵심이다.

이어지는 <제약 AI 대전환 시리즈> 4편에서는 그렇다면 실제로 현장의 '어떤 업무에 AI를 우선 적용해야 재무적 가치와 비즈니스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타겟팅 전략을 집중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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