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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약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편집부
입력 2026-01-08 09:58 수정 최종수정 2026-01-2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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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어느덧 마지막 글이다. 이 자리를 빌려 약 이야기를 전한 지도 햇수로 8년이 됐다. 매번 마감을 하며 이번엔 또 무슨 약을 다루나 고민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순히 약의 효능이 아니다. 나는 약을 통해 우리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약은 인체의 생리적 기전을 정교하게 이용하거나 조절하는 물질이다. 역설적이게도 약이 작동하는 방식을 깊이 파고들면, 약보다 훨씬 더 신비로운 우리 몸의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아직 신약으로 개발 중인 근육을 늘리도록 도와주는 약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방식은 대개 비슷하다. 근육을 성장시키는 가속 페달을 밟기보다,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브레이크를 풀어버린다. 예를 들면 마이오스타틴(myostatin)이나 액티빈(activin) 같은 경로, 혹은 그 신호가 결합하는 수용체를 막아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신호를 약화시키는 식이다. (155회)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인체는 애초에 근육이 늘지 못하게 억제하는 스위치를 갖고 있을까? 비용 때문이다. 보기엔 멋지지만 우리 몸의 관점에서 근육은 유지비가 큰 조직이다.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를 소모하고 계속 유지·보수를 요구한다. 생존을 위해 늘 효율을 따져야 하는 몸이 필요할 때만 근육을 키우는 쪽으로 설계된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근육 때문에 약이 필요한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근육을 성장시키는 약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몸은 원래 근육을 아끼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으니, 나 자신이 일부러 신호를 줘야 한다. 꾸준히 운동하라는 말이다. 근육을 만드는 약은 운동하라는 생물학적 진실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요즘 계속 화제가 되는 비만 신약도 마찬가지다. 이 약물은 본래 우리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모방했다. 음식을 먹으면 장에서 GLP-1이 나와 뇌에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보낸다. 중요한 건 이 신호가 뇌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식사를 시작하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포만감 신호가 본격화된다. 우리가 밥을 빨리 먹으면 과식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만 치료제는 우리에게 천천히 먹거나, 먹고 나서 잠시 기다리는 여유가 왜 필요한지를 생물학적으로 가르쳐 준다. (100, 110, 177, 187회)

우울증 치료제는 또 어떤가. 단순히 세로토닌 농도만 조절하는 게 아니다. 최근 연구들은 항우울제가 뇌 유래 신경영양인자(BDNF)를 증가시키는 등 뇌세포를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과정과 관련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항우울제 치료가 BDNF와 신경가소성과 연결된다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BDNF가 약을 먹을 때만 나오는 게 아니라 운동으로도 일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은 우리에게 우울증이 의지의 문제가 아닌 약물치료를 필요로 하는 질환임을 알려줌과 동시에, 운동이 뇌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운동으로 우울증 약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운동은 누구에게나 기분 유지와 조절을 도와주는 생활습관이 될 수 있다. (145회)

마지막으로 공개 플라시보(open-label placebo) 이야기를 살펴보자. 가짜 약임을 알고 먹어도 편두통 발작과 관련한 삶의 질이 나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이는 치료가 약 성분만의 결과가 아니라 기대와 해석, 관찰이 함께 만드는 경험임을 보여준다. 성분 자체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약을 왜 먹는지 인지하고, 약을 먹은 후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 그 자체가 치료의 체감 효과를 높여준다는 것이다. 몸을 더 잘 알고 주의를 기울이면 느낌이 달라진다. 약효는 약이라는 화학물질만 작동하여 내는 게 아니라 내 몸이 함께 완성해내는 것이다. (189회)

지난 8년, 193편의 칼럼을 통해 내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순하다. 약은 마법이 아니다. 약은 우리 몸이 작동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도구이자, 우리 몸을 비추는 거울이다. 약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메시지는 약에만 의존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세심하게 돌보라는 것이다.

그동안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를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칼럼은 여기서 끝나지만, 우리 몸이 쓰는 이야기는 새해에도 계속된다. 약을 통해 배운 지혜가 내 몸을 더 깊이 사랑하는 삶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모두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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