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만에 4·19 혁명 유공자로 선정된 김한주 약사
지난 4월 19일 전후, 제주에 사는 김한주 선배(서울대 약대 15회 졸업)로부터 두 차례의 전화를 받았다. 본인이 서울 강북구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4·19 혁명 66주년 기념식에서 유공자 표창을 받게 되었는데, 이런 계기를 마련해 준 서울대 약학박물관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념식에서 김한주 선배(제주 4·19기념회장)를 포함한 5인이 4·19 혁명 유공자로 선정된 70명 중 주요 인물로 선정되어 직접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포장(사진 참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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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이하 보훈부)의 4월 16일 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김한주 선배는 1960년 당시 서울대학교 약학과 4학년에 재학 중 동기와 후배들을 이끌고 시위에 나서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이상 약사공론 2026.4.27. 21면 기사 참조).
돌아보면 4·19 혁명 다음 날인 1960년 4월 20일, 동아일보 석간에 19일 오전 백색 가운을 입고 시위하는 서울대생들의 사진과 함께 ‘백색 가운을 입고 데모하는 의대생들’이라는 설명이 붙은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나는 이 기사가 오보라는 사실을 선배님들의 전언(傳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즉, 그들은 의대생이 아니라 약대생들(1957~1960년 입학생, 15~18회 졸업생)이었던 것이다.
나는 기회가 되는 대로 이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다. 감사하게도 김병년 선배(17회, 당시 2학년)는 동아일보로부터 시위 사진 원본을 구해 주었고, 홍청일·박정식 선배(이상 15회)는 사진 속 인물 하나하나에 실명(實名)을 붙여 주었다. 이로써 사진 속 인물들이 약대생임을 명백히 입증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동아일보의 오보에 대한 정정 기사를 받아내는 일만 남아 있었다. 마침 서울대 약학역사관장이던 박정일 교수가 동아일보 김동혁 기자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박정식·김한주 선배의 인터뷰를 부탁하였다.
드디어 2017년 4월 13일, 약학역사관 자료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두 선배의 준비는 비장하였다. 특히 제주에 사는 김한주 선배는 ‘민주혁명의 기록’(1960년 6월, 동아일보사)과 『월간 사상계』(1960년 6월호) 부록 「피의 화요일」 화보 등을 들고 상경했다.
그리고 그 기자는 고맙게도 2017년 4월 19일 자 동아일보 A12면에 ‘4·19 시위 선두에 선 건 의대생 아닌 약대생들’이라는 기사를 내주었다. ‘서울대 약학과 70여 명이 경무대 철문 앞까지 대열 이끌어’라는 부제도 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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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7년 만의 정정 기사였다. 감격이었다. 4·19 시위에 참여했던 서울대 약대 선배들은 물론 나와 같은 약학사 연구자들의 숙원이 풀린 순간이었다. 나는 즉각 이 내용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백년사』(2016) 수정판에 실었고, 「약창춘추 223」(2017년 5월 10일 자 약업신문)에도 소개하였다.
보훈부는 아마 동아일보의 그 정정 기사와 『백년사』 등을 보고 약학역사관의 협조를 얻어 김한주 선배와 연락을 취한 듯하다. 김 선배는 4·19 시위 중 경무대 앞에서 맹장이 터지는 부상을 입어 45일간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였는데, 당시 간호사(현 90세)의 증언으로 이 사실을 입증받아 유공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상의 과정에서 작은 돌 하나를 놓을 수 있었음에 큰 보람을 느낀다. 끝으로 김한주 선배를 비롯해 4·19에 참여한 약대 선배님들의 용기와 헌신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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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만에 4·19 혁명 유공자로 선정된 김한주 약사
지난 4월 19일 전후, 제주에 사는 김한주 선배(서울대 약대 15회 졸업)로부터 두 차례의 전화를 받았다. 본인이 서울 강북구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4·19 혁명 66주년 기념식에서 유공자 표창을 받게 되었는데, 이런 계기를 마련해 준 서울대 약학박물관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념식에서 김한주 선배(제주 4·19기념회장)를 포함한 5인이 4·19 혁명 유공자로 선정된 70명 중 주요 인물로 선정되어 직접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포장(사진 참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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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이하 보훈부)의 4월 16일 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김한주 선배는 1960년 당시 서울대학교 약학과 4학년에 재학 중 동기와 후배들을 이끌고 시위에 나서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이상 약사공론 2026.4.27. 21면 기사 참조).
돌아보면 4·19 혁명 다음 날인 1960년 4월 20일, 동아일보 석간에 19일 오전 백색 가운을 입고 시위하는 서울대생들의 사진과 함께 ‘백색 가운을 입고 데모하는 의대생들’이라는 설명이 붙은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나는 이 기사가 오보라는 사실을 선배님들의 전언(傳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즉, 그들은 의대생이 아니라 약대생들(1957~1960년 입학생, 15~18회 졸업생)이었던 것이다.
나는 기회가 되는 대로 이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다. 감사하게도 김병년 선배(17회, 당시 2학년)는 동아일보로부터 시위 사진 원본을 구해 주었고, 홍청일·박정식 선배(이상 15회)는 사진 속 인물 하나하나에 실명(實名)을 붙여 주었다. 이로써 사진 속 인물들이 약대생임을 명백히 입증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동아일보의 오보에 대한 정정 기사를 받아내는 일만 남아 있었다. 마침 서울대 약학역사관장이던 박정일 교수가 동아일보 김동혁 기자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박정식·김한주 선배의 인터뷰를 부탁하였다.
드디어 2017년 4월 13일, 약학역사관 자료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두 선배의 준비는 비장하였다. 특히 제주에 사는 김한주 선배는 ‘민주혁명의 기록’(1960년 6월, 동아일보사)과 『월간 사상계』(1960년 6월호) 부록 「피의 화요일」 화보 등을 들고 상경했다.
그리고 그 기자는 고맙게도 2017년 4월 19일 자 동아일보 A12면에 ‘4·19 시위 선두에 선 건 의대생 아닌 약대생들’이라는 기사를 내주었다. ‘서울대 약학과 70여 명이 경무대 철문 앞까지 대열 이끌어’라는 부제도 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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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7년 만의 정정 기사였다. 감격이었다. 4·19 시위에 참여했던 서울대 약대 선배들은 물론 나와 같은 약학사 연구자들의 숙원이 풀린 순간이었다. 나는 즉각 이 내용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백년사』(2016) 수정판에 실었고, 「약창춘추 223」(2017년 5월 10일 자 약업신문)에도 소개하였다.
보훈부는 아마 동아일보의 그 정정 기사와 『백년사』 등을 보고 약학역사관의 협조를 얻어 김한주 선배와 연락을 취한 듯하다. 김 선배는 4·19 시위 중 경무대 앞에서 맹장이 터지는 부상을 입어 45일간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였는데, 당시 간호사(현 90세)의 증언으로 이 사실을 입증받아 유공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상의 과정에서 작은 돌 하나를 놓을 수 있었음에 큰 보람을 느낀다. 끝으로 김한주 선배를 비롯해 4·19에 참여한 약대 선배님들의 용기와 헌신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