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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 손녀의 전화.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이종운
입력 2026-04-15 06:00 수정 최종수정 2026-04-1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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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의 전화
 

며칠 전 막내 손녀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올 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바쁘다고 내 전화도 잘 받지 않던 아이가 스스로 전화를 걸다니! 기쁘고 황송한(?) 마음에 얼른 아내를 불러 함께 손녀의 말을 경청했다. 손녀는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날은 그 학교의 학생회 임원을 뽑는 날이었다. 손녀는 임원이 되고 싶어 여러 부 중 이름이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기획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선정은 신청자 중 서류 심사를 통해 2~3명을 선발한 뒤, 이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거쳐 1명을 뽑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두 명씩이었던 다른 부서와 달리 기획부만 서류 통과자가 3 명이었다. 이로부터 손녀는 기획부 지원자가 다른 부 지원자보다 많았던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나 역시 그 짐작에 동의했다.
 

면접위원은 3 명으로, 2학년 선배 1명, 3학년 선배 1명, 그리고 선생님 1분으로 구성되었다. 면접 문제는 예상했던 문제도 있었지만 제법 까다로웠다고 한다. 손녀는 아는 문제가 나와도 일부러 몇 초간 뜸을 들인 뒤 신중하게 대답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손녀는 3 대 1이라는 가장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기획부 임원으로 선발되었다. 손녀는 가장 인기가 높은 부에서 임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 몹시 기뻤다. 그 기쁨을 참을 수 없어 몸소(?) 우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 오후, 손녀가 좀 분개(?)할 일이 생겼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 “나 오늘 기획부에 뽑혔어”라고 살짝 자랑의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와, 정말 축하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한 친구는 “나는 ○○반에 들어갔다”라고 했고, 다른 친구는 “나는 OO 반에 신청했는데 떨어졌어” 라고 자기 이야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손녀는 이에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먼저 “축하한다, 좋겠다”는 반응을 보인 뒤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손녀는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을, 임원으로 뽑힌 기쁨보다 더 열정적으로 우리에게 토로했다. 나는 손녀가 자신의 서운했던 감정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 주는 그 순수함에 감동하였다. 더불어 아직도 우리가 손녀의 하소연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흐믓해졌다.
 

사실 우리 모두는 남의 경사에 진심 어린 축하는 커녕,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일본에서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상대방의 말끝마다 “혼또데스까 (정말이에요?)” 또는 “우소데쇼 (거짓말이죠?)” 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이는 ‘내가 당신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표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화 중에 이런 맞장구를 잘 치지 않는다.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맞장구를 치지 못하는 것은, 먹을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은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아이구, 허리가 갑자기 아프네”라고 하면, 상대방은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 하지 않고, “나도 요즘 여기가 아프네” 하며 자기 소리를 한다. 이처럼 우리가 서로 상대방의 호소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게 된 것은, 우리가 늙어가면서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업보(業報)일지도 모른다. 더하여 평소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훈련이 부족했던 탓도 있어 보인다.
 

아무튼 손녀와의 긴 통화 끝에 우리 부부는, 그 어려운 기획부 임원으로 선출된 쾌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주었고, 친구들의 무반응에 대한 서운함에 백 퍼센트 공감해 주었다. 그제사 손녀는 마음껏 자랑하지 못했던 아쉬움, 그리고 친구들의 반응에 대한 서운함이 어느 정도 풀린 듯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나는 1) 자랑할 일이 생기면 가족, 즉 부모와 형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마음껏 자랑해야 한다. 2) 그러나 친구들에게는 가족과는 다르니 조금 절제해서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좋겠다’. 3) 나는 네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주 칭찬해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 주었다.
 

손주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할렐루야!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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