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시험이 아니라 공정이다” 대용량 수액제 GMP의 구조적 전환
매개변수 기반 출하 도입 배경부터 3개사의 공동 검증, 허가 변경과 단계적 적용까지
추가 규제가 아닌 기존 제도의 실전 적용, 실사·가이드라인·교육까지의 정비
117건 변경허가, 6개월 더블 검증…매개변수 출하 마지막 관문
입력 2025.12.24 06:00 수정 2025.12.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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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가 대용량 수액제를 중심으로 한 무균의약품 GMP 관리체계를 ‘시험 중심’에서 ‘공정·시스템 중심’으로 전환한다. 오는 30일부터 시행되는 무균 GMP 개정에 맞춰, 대용량 수액제에 한해 ‘매개변수 기반 출하(Parametric Release)’를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허가·심사·GMP 가이드라인을 모두 정비했다.

이번 제도는 무균시험 자체를 완전히 폐지하는 개념이 아니라, 무균성을 보증하는 핵심 공정지표와 관리요소를 사전에 설정하고 이를 일관되게 충족할 경우, 반복적인 무균시험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고도화된 GMP 운영 방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김정연 의약품품질과장은 식약처 출입 전문지 기자단과 23일 진행한 간담회에서 “무균시험을 하지 않는 대신, 그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 수준의 무균 보증이 이뤄진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체계”라고 설명했다.

무균 GMP 개정 이후 드러난 현장의 부담
무균 GMP 개정으로 대용량 수액제는 로트별, 경우에 따라 서브로트별 무균시험 빈도가 크게 늘어났다. 대용량 수액제 특성상 생산 물량이 크고 보관 기간이 길어, 14일 이상 소요되는 무균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막대한 보관 공간과 인력이 필요해진다.

특히 1L~3L 이상 대용량 제품의 경우, 시험을 위해 전체 용량이 아닌 일부만 여과·배양하는 방식 자체가 무균성 판단의 한계를 지닌다는 점도 업계의 문제의식으로 제기돼 왔다.

김 과장은 “무균시험은 모집단 전체를 대표하기 어려운 소수 샘플에 의존하고, 배지와 배양 조건에 따라 검출 한계가 존재한다”며 “시험 결과만으로 무균성을 담보하는 데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매개변수 기반 출하 논의의 출발점이 됐다.

‘가능성’에서 ‘확신’으로…6개월 공동 연구의 전환점
식약처는 2024년 11월부터 업계 의견을 종합하고 제도 시행 준비에 돌입했다. 하지만, 올해 6월까지만 해도 매개변수 기반 출하는 ‘가능성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업계 역시 제도 도입 취지에는 공감했지만, 실제 적용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식약처, 제약협회, 대용량 수액제 3개사(HK이노엔, JW중외제약, 대한약품공업)가 참여한 공동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구의 핵심은 무균성을 보증하는 요소를 체계적으로 정의하고, 이 요소들이 무균시험 결과와 실질적으로 연계된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EU, FDA, 국내 GMP 가이드라인을 종합 분석해 ‘무균보증요소(SAE, Sterility Assurance Elements)’ 19개를 도출했다. 여기에 멸균 공정의 핵심 관리지점인 CPP(Critical Process Parameters)를 포함해, 공정 전반을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모델을 설계했다.

각 사는 동일한 프로토콜을 적용해 배지 충전 시험과 공정 밸리데이션을 수행했고, 이 결과를 통해 SAE와 CPP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경우 기존 무균시험보다 더 높은 수준의 무균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김 과장은 “이제는 제도를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왼쪽부터) 천청운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본부 연구위원, 식약처 의약품품질과 김정연 과장, 식약처 첨단의약품품질심사과 고용석 과장. © 식약처 출입 전문지 기자단

경쟁사가 손잡은 첫 사례…GMP 레벨의 집단적 상향
이번 프로젝트의 또 다른 특징은 경쟁 관계에 있는 대용량 수액제 3사가 공동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각 사는 내부 기준서만 20건 이상 개정하며 GMP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했다.

천청운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본부 연구위원은 “경쟁사들이 서로의 강점을 공유하며 동일한 목표를 향해 움직인 첫 사례”라며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전체의 GMP 수준을 끌어올린 계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단순히 규제 이행을 위한 대응이 아니라, 국내 산업이 선진 GMP 제도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단계’를 넘어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내재화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설명이다.

제도는 그대로, 적용 방식만 진화
매개변수 기반 출하는 새로운 규제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규정에 존재하던 제도를 실제로 적용 가능하도록 만든 사례다.

GMP 실사 자체가 강화되거나 별도의 추가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실사 담당자가 매개변수 기반 출하의 개념과 관리 포인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별도의 GMP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지방청 대상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김 과장은 “매개변수 기반 출하를 적용한다고 해서 특정 제조소가 표적 실사 대상이 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며 “제도 이해 부족으로 불필요한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가 변경이라는 마지막 관문
제도적 기반과 GMP 준비가 완료됐다고 해서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허가사항에는 모든 무균 주사제에 대해 무균시험을 명시하고 있어, 매개변수 기반 출하를 적용하려면 품목별 변경 허가가 필요하다. 대용량 수액제 3개사가 신청해야 할 변경 허가는 117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위해 식약처 품질심사부는 전담 TF를 구성해 신속 심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허가 이후에도 품목별로 6개월간 무균시험과 매개변수 기반 출하를 병행하는 ‘더블 검증’ 기간을 두어, 제도 전환의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공급 안정성과 공중보건의 관점
대용량 수액제는 퇴장방지의약품이자 군수물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전체 수액제 생산의 약 85%를 3개사가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GMP 부담으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 의료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김 과장은 “유예는 해답이 아니지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은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매개변수 기반 출하는 단기적 부담 완화가 목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품질 수준을 높이면서도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적 해법으로 제시됐다.

다른 무균제제로의 확산 가능성
이번 제도는 최종 멸균 공정을 거치는 대용량 수액제에 한해 적용 가능하다. 무균 충전 공정을 거치는 일반 무균 주사제에는 그대로 무균시험이 요구된다.

다만 김 과장은 “최종 멸균 제품이라면 대용량 여부와 관계없이 선택지로 검토할 수 있다”며 “이번 사례가 다른 무균의약품 분야에도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개 세미나와 가이드라인 배포를 통해, 다른 업체들도 매개변수 기반 출하를 ‘옵션’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정보 공유를 확대하고 있다.

“첫 선례가 남긴 의미”
식약처는 이번 사례를 ▲국내 최초의 매개변수 기반 출하 실적용 ▲경쟁사 공동 참여 ▲규제당국과 업계의 전 과정 협업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 GMP 분야에서 정부와 산업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모델이라는 평가다.

김 과장은 “내년에도 예산을 확보해 이러한 협업 플랫폼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GMP는 여전히 개선할 영역이 많은 만큼, 이번 경험을 다른 분야로 확산시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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