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리스크에 무너진 API 공급망… “다원화 서둘러야"
글로벌 API 공급망 균열에 국내 제약사 원가율 압박 극대화
“소나기 잦아들었을 때 공급처·인프라 다원화 상시 추진해야” 지정학적 리스크 방어 가능
입력 2026.06.29 06:00 수정 2026.06.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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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미국-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글로벌 제약 공급망을 장기적인 침체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란-미국 간 긴장이 일시적으로 완화되더라도 해운 항로 차질과 물류비 급등으로 인해 무너진 공급망이 이전 수준으로 안정화되는 데는 최소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외신(ETPharma) 보도에 따르면, 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중동(UAE, 사우디 등) 시장을 배후로 둔 인도 제약업계는 이번 사태로 최대 500억 루피(약 8,300억 원)에 달하는 거대한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글로벌 최대 원료의약품(API) 공급국인 인도의 물류 대란과 원가 상승이 국내 제약업계로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이미 높은 가격에 API 물량을 선확보해 둔 상태다. 이로 인해 해상 운임 급등과 원료 수급 지연에 따른 원가 부담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우며, 하반기 제조원가율에 본격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마진이 극히 낮고 현지 원료 의존도가 높은 '필수의료 의약품' 생산 공정의 타격이 가장 가시적이다. 지난 3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과한 '약가제도 개편 방안'에 따라 정부가 필수의료 의약품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약가 보전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글로벌 물류 대란이 가하는 외부 충격의 크기가 이를 상쇄할 만큼 거세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제약·바이오 전문가들은 중동 정세가 최근 일부 소강상태나 안정 기미를 보인다고 해서 안이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잠시 ‘소나기’가 잦아들었다고 해서 특정 국가나 특정 항로에 대한 원료 의존도를 다시 높이는 과거의 관성으로 회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정세가 안정 기미를 보인다고 해서 특정 국가나 특정 항로에 대한 원료 의존도를 다시 높이는 것은 위험하다”며, “국내 제약사들은 원료 공급처 다변화, 공급망 인프라의 다원화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장기적인 규제 및 지정학적 리스크 방어가 가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글로벌 무역 환경은 미·중 갈등에 따른 생물보안법 입법화 가속,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기조 등 물리적 공급망 리스크와 제도적 장벽이 겹친 ‘공급망 퍼펙트 스톰’을 맞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인 비용 절감만을 위해 특정 저가 원료국에 매달리는 것은 리스크 관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힘을 얻는 이유다.

결국 국내 제약사들이 장기적인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원료의약품(API) 공급처의 다변화와 물류 및 공급망 인프라의 다원화 전략을 흔들림 없이 지속해서 추진해야 한다.

인도·중국산 원료에 80% 이상 편중되어 있던 구조에서 탈피해 유럽산(이탈리아, 스페인 등) 고품질 대체재 확보를 다각화하거나, 장기적으로 국산 원료 사용 비중을 넓히는 등 공급망 탄력성을 확보하는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나아가 기업의 자구책뿐만 아니라, 원료선 다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등록 비용 및 원가 상승 부담을 완화해 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추가적인 약가 인센티브나 규제 완화 등 고도의 정책적 뒷받침이 병행되어야만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공급망 파고를 무사히 넘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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