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일반약 활성화’ 정부가 직접 나선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구분이 없는 현행 안전성 및 유효성 심사체계를 개선, 일반의약품에만 별도로 적용되는 ‘일반의약품심사규정(안)’을 마련할 예정에 있어 관심이 모아진다.
올해 5월 1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의약품 심사평가 선진화 연구사업단’은 내년 1월까지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일반의약품심사규정(안)을 마련, 식약청에 제출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일반의약품 심사규정 선진화 연구과제’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병현 박사는 17일 “올해 중으로 일반의약품 심사에 관한 별도의 체계를 마련해 식약청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식약청이 이를 바탕으로 공청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법제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박사의 연구 과제를 의뢰한 식약청 기관계용의약품과 서경원 과장도 17일 약업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현행 안전성, 유효성 심사규정은 전문약 위주로 만들어져 있어 일반약에 대한 배려가 적은 것이 사실”이라며 “일반의약품에 관한 별도의 심사규정을 만들고 의약품 표준제조기준 업데이트 작업과 함께 합리적이고 타당한 일반의약품 심사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확인했다.
추진일정에 대해, 서 과장은 “진흥원 연구추진 속도를 봐야겠지만, 올해 중으로 초안을 가지고 공청회를 열어 제약사 등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단 식약청은 합리적인 일반의약품 심사규정을 마련하는 것에 방점을 찍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반약에 관한 별도의 심사규정이 마련되면 그에 따른 제약업계 변화가 촉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한 박사는 “현재 전문약이 전체 의약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고, 제약사들이 전문약 아니면 건강기능식품 둘 중 하나에만 주력하고 있어 일반약이 설자리가 없다”며 “일반약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일반약 심사규정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일반약 활성화의 도화선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심사체계 합리화를 통한 ‘규제완화’
별도의 일반약 심사규정 필요성은 현재 전문약, 일반약이 동일한 안전성ㆍ유효성 심사과정을 거치고 있어 일반약의 심사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것에 기인한다.
실제 일선 제약사들도 일반약 심사허가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일반약 심사에 전문약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서제약 의약품개발부 관계자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일반의약품을 기획해도 식약청에서 허가가 나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며 “특히 식약청 담당자에 따라 서로 다른 심사 관리로 업계의 예측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안전성이 확보된 약물의 경우 일반의약품 전문심사위원회를 만들어 일반의약품 사전심의제를 통해 다른 나라의 허가목록에 없더라도 전문심사위원회의 판단으로 일반의약품의 허가를 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병현 박사는 “일반약에 관한 별도의 심사과정을 마련하는 것은 현 정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며 “인허가 과정의 정비를 통해 OTC에 대한 규제완화의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적어도 규제 때문에 산업 발전이 저해되는 것은 막자는 것이 이번 사업 추진의 배경 중 하나”라며 “별도의 일반약 심사규정을 통해 제약사의 일반약 허가를 용이하게 하고, 일반약 개발 의욕을 고취시켜 일반약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약 심사규정 마련…‘건보재정절감’과도 일맥상통
일반약 심사규정 마련은 보건복지가족부의 최대 관심사인 ‘건강보험재정절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병현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렸을 때 무조건 병원부터 가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며 “일반약으로 셀프메디케이션이 가능해도 병원부터 찾아 전문약 소비가 늘고, 이는 결국 약제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약분업 이후 셀프메디케이션이 많이 죽은 상태여서 헬스케어 코스트(Healthcare Cost)가 비경제적으로 흐르고 있다”며 “일반약 활성화로 셀프메이케이션을 부활시키면 약제비 절감이 가능할 것이고, 이는 건강보험재정절감 정책과도 맞아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그간 복지부 의약품정책과 쪽에서도 전문약과 일반약 비율이 기형적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 의약품 정책과 관련된 복지부 핵심 관계자는 “현재 전문약과 일반약 비율이 너무 전문약 쪽으로 흐르고 있어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전문약과 일반약이 최소 6대 4정도가 돼야 바람직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별도의 일반약 심사규정 마련은 제도 개선을 통해 일반약을 보다 활성화시키고, 이를 건강보험재정절감으로까지 확장해 나가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제도변화에 따른 ‘제약시장변화’ 가능성은?
일단 일반약에 관한 별도의 심사규정이 마련되면, 국내 제약 산업 구조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정부 관계자들의 말처럼 전문약, 일반약 비율을 6:4로 맞추는 것 자체가 커다란 시장 판도변화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약 심사규정이 완화되면 이전에 없던 ‘신종’ 일반약들이 생겨날 것이고, 국내에서 전문약으로 취급되던 일부 품목들의 일반약 출시가 가능해진다.
예컨대 비만치료제 ‘제니칼’의 경우 현재 미국에서는 120mg짜리는 전문약으로, 용량을 줄인 60mg짜리는 일반약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120mg이든 60mg이든 모두 ‘전문약’이기 때문에, 제니칼 제네릭을 개발하고 있는 국내 제약사들이 60mg짜리는 출시를 포기하고 있는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보다 완화된 일반약 심사규정이 마련된다면, 해외에서 용법ㆍ용량을 조절해 일반약으로 팔리고 있는 전문약들이 대거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약으로 풀렸을 때 시장성이 있는 품목들이 국내 일반약 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실제 제약사들이 일반약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어느 정도인가라는 점은 일반약 활성화의 남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병현 박사도 바로 이 부분을 주요 변수로 보고, 제약사에 대한 사전 예비조사나 설문조사 등을 통해 의견수렴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박사는 “일반약 활성화라는 것이 규제완화, 건강보험재정절감 등 시대적 요구와 부합하는 면이 있지만 실제 제약사들이 일반약 활성화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일반약 심사규정 마련…‘의약품재분류’ 밑거름 되나?
일반약 심사규정 별도 마련은 최근 의약외품 확대와 관련해 언급되고 있는 ‘의약품재분류’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물론 한병현 박사는 일반약에 대한 별도의 심사규정을 마련하는 것과 의약품재분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 박사는 “주사제는 모두 전문약이고 피임약은 모두 일반약이라는 국내 현실을 보더라도 현재의 심사규정이 매우 경직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경직된 심사규정을 합리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등 현행 의약품분류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한 박사는 “국내 의약품분류체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분류 범위가 좁은 것이 사실”이라며 “이와 관련된 외국의 사례를 수집하는 작업도 연구과제와는 별도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식약청 서경원 과장도 일반약 심사규정 마련과 의약품 표준제조기준 정비가 의약품재분류를 위한 기초 작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서 과장은 “이번 연구과제에 의약품재분류에 관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지만, 해외 의약품분류상황에 관한 자료 수집을 이번 과제와 연관시켜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사업의 목표는 일반의약품의 심사규정을 마련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의약품재분류를 위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반면 복지부는 의약품재분류에 대해 “의약외품 확대는 대한약사회와 논의해 진행할 예정이고, 의약품분류체계는 의약분업 당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낸 사항이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 없다”고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2010년까지 의약품분류체계를 전면 개편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의약외품 확대 방안이 일본의 사례를 참조해 추진되고 있다는 점, 건강보험재정절감을 위해 일반약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어떤 형태로든 의약품분류체계에 손을 댈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현 상황으로 볼 때 의사협회나 약사회 등 이익단체들의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전면적인 의약품재분류 보다는 일반약 심사체계 개선을 통해 시장원리에 따라 의약품재분류가 이뤄지도록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손정우
2008.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