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기등재약 목록정비 이제부터가 진검승부
9월 19일 진행된 기등재약 목록정비 시범사업 토론회 이후, 고지혈증치료제에 관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구결과에 제약업계의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일단 메타분석에 대한 이야기는 수그러들고 있는 반면, 약값을 결정한 지질강하효과 분석에 대한 문제제기와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의 타당성 문제가 법적인 차원에서 언급되고 있다.
지질강하효과 분석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하나는 스타틴계 약물의 차이를 지질강하효과 하나로만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바스타틴 가격에 맞춰 다른 스타틴의 약가를 조정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의 타당성 문제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 이전의 기등재약은 법으로서 약가를 보호받고 있으며, 따라서 기등재약 약가는 제약사에게 있어 재산권이고 재산권을 제한하려면 그 처분권자인 정부가 제한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일단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듣겠다”는 입장이지만 심평원이 제시한 ‘전문가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가, 지난 5월 감사원으로부터 기등재약에 대한 약가인하를 요구받고 있어 현 상황을 뒤집기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원도 못 깎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스타틴계 약물의 약가인하로 제약업계가 추산하고 있는 매출 감소는 연간 600억 정도이다.
600억이 아니라 6억도 적은 돈이 아니지만,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이 향후 5년간 모든 기등재품목에 대해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약업계는 현 상황을 좀 더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감사원이 ‘국민건강보험 약제비 관리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할 당시, 제약업계가 “감사원 보고서대로 한다면 1조원에 이르는 약가가 인하되고 이는 제약업계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밝혔던 것처럼,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은 ‘1조원’ 규모의 약가인하방안이다.
적어도 제약업계가 정부의 건강보험재정 안정화 정책에 큰 틀에서 동의한다면, 1조원에서 단 1원도 깎을 수 없다는 생각은 확실히 버려야한다.
결국 시범사업 포함, 5년간 5번의 대규모 전투에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을 것인데, 이길 때 ‘확실히’ 이기고 질 때 ‘멋있게’ 지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고지혈증치료제의 경우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첫 전투에서 제약업계 대응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평가지점을 남기는 것이 가장 시급한 현안임이 분명하다.
시범평가에 대한 KRPIA 등 제약업계의 대응이 본평가를 위한 정부-업계 간의 기본 ‘룰’을 마련하기 보다는, 심평원 연구결과가 ‘옳으냐, 그르냐’ 상대적으로 미시적인 부분에 편중됐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초기 대응에 있어 일관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나, 경제성평가 관련 인력이 부족하다는 현실 등도 개선돼야할 지점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시범평가가 끝난 것은 아니다. 제약업계 입장에선 이번 시범평가 결과에 대한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본평가를 대비한 정부-업계 간의 ‘합의점’을 찾는 작업이 병행돼야 의미가 있다.
법적인 문제제기…제약업계 신중해야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에서 약가인하의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법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는 보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법적인 옳고 그름이야 법원에서 판단하겠지만, 그런 문제제기가 제약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면밀한 상황판단이 선행돼야할 것으로 여겨진다.
일단 ‘약값은 재산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고, 만약 입증책임이 복지부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사실상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을 중단하라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법적인 문제제기는 ‘무리수’를 넘어 극단적인 문제해결 방법이라는 점에서, 법 문제를 걸고 넘어졌을 때 제약업계가 받을 수 있는 부담도 충분히 계산해야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법정 다툼 등 문제가 커져 사회적으로 이슈화 될 경우,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에 대한 제약업계의 태도가 밥 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려해야한다.
본평가 대비 신뢰구축-대안마련 위해 ‘소통’ 필요
제약업계는 복지부가 이미 약가인하 폭을 결정해 놓고 그것에 시범평가를 끼워 맞추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마디로 객관성 확보는 뒷전이고 약가인하에만 매몰돼 연구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심평원, 복지부 등 보건당국 안팎에서는 제약업계가 큰 문제가 없는 연구에 ‘트집’을 잡으며 매출감소를 우려해 시간 끌기에만 급급하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모든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신뢰구축’이라고 할 때,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복지부 또는 제약업계가 서로에게 가진 ‘선입견’이나 ‘오해’를 해소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와 함께, 본평가를 대비한 현실적인 대안 마련에도 정부-업계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복지부가 본평가를 외부에 맡기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제약업계가 지적한 ‘객관성’ 문제를 고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KRPIA가 주장하는 ‘독립평가단’이나, 제약협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학계, 업계, 정부가 참여하는 공동연구로 경제성평가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반영되려면, 일단 제약업계와 보건당국이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물론 첫 단추부터 제대로 꿰어야 나머지 단추도 잘 끼울 수 있겠지만, 오히려 제약업계가 시범평가는 시범평가대로 마무리하는 국면전환을 통해 ‘Zero Base’에서 본평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현실성 있는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손정우
2008.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