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드링크시장의 절대강자/ 박카스 원비디
출시이후 40년간 드링크류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동아제약의 박카스, 첫 출발은 10년이상 늦었지만 ꡐ고려인삼ꡑ이미지를 앞세운 후속주자 원비디. 이 두제품은 일반의약품의 역사를 한마디로 웅변해주는 대표제품이다.
박카스는 최근 광동제약의 비타500 출현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여전히 절개강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내노라하는 오리지널 전문의약품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의약품 매출실적 최상위에는 여전히 박카스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한때 연도별 매출실적에서 박카스를 추월(?)한적도 있는 원비디. 지금은 옛 영화의 회복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내수보다 수출과 현지생산을 통한 세계화에 진력하고 있는 만큼 결과는 예측불허다.
두 제품 모두 회사입장에서는 애증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박카TM의 경우 자타가 인정하듯이 오늘날 대한민국 대표제약사로서의 동아제약이 있기까지 충실한 캐쉬박스로서의 역할을 다해왔다는 평가와 함께 전문약보다 일반약 메이커라는 이미지극복의 한계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는 부정적 인식이 함께 깔려 있다.
반면 원비D는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던 절대강자를 추월하는 기념비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시장점유율 확대에 급급한 나머지 생산설비의 과잉투자와 적절한 영업정책의 부재로 인해 결국 회사의 전반적인 경영악화를 초래했다는 양면적 평가를 동시에 받기도 했다.
박카스는 지난 2007년에 1,260억대 2008년에 1300억대의 생산실적을 기록했다. 5년만에 공급가 인상을 단행한 올해는 약 1400억대 생상실적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의약품 드링크의 신기원을 열다
우리나라 의약계엔 '박카스 신화'(神話)라는 말이 있다. 1961년 정제 형태로 처음 출시된 박카스는 1963년 현재와 같은 드링크 형태로 바뀐 뒤 2008년까지 약 162억 9,000만 병을 팔았다. 지금까지 팔린 병의 길이를 더하면 지구를 49바퀴를 돌고도 남는다.
박카스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이다.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은 간장을 보호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이름을 생각하던 중 독일유학 시절에 본 함부르크 시청의 지하홀 입구에 서 있었던 술과 추수의 신상 박카스를 떠올리게 됐다. 당시 회사명이나 성분명을 이용해 제품명을 정하는 것이 고작이던 시대에 의약품의 이름에 신화 속 신의 이름을 붙이는 파격적인 상품명으로 박카스는 탄생했다.
또 하나는 원비D와 관련된 신화이다. 인삼과 구기자를 주원료로 한 30년 전통의 원비-디는 장수품목의 대표적 주자이다.
피로회복과 간기능개선이라는 뛰어난 효능효과는 장수의 원천이자 비결이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명성을 얻고있는 Made In Korea의 자긍심이 되기도 했다.
지난 71년 6월 국내 최초로 드링크화하여 人蔘의 대중화를 이끈 "원비-디"가 이처럼 30여년간 장수를 누려온 비결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KGMP시설을 도입하는 등 원료 선정에서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품질관리와 특히 순수 국산 人蔘만을 고집하고 있는 원비-디의 뛰어난 효능 때문이다.
동아제약 박카스
신화 탄생 박카스, 지구 49바퀴 판매
동아제약 발전의 초석이 된 캐쉬박스
박카스는 처음에 종합간건강영양제라는 표지를 내걸고 셀링포인트도 술에 맞추어 간장보호에 중점을 두었다. 판매방법으로는 과감한 샘플공세 작전을 펴 나갔다. 거래처는 물론 사원들의 가정과 친구들에까지 음주전후에 박카스를 먹으면 간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계몽과 함께 대대적인 샘플링을 전개했다. 이러한 전사적인 노력은 곧 열매를 맺어 "박카스-정"의 월간매출이 100정 포장단위로 1만개까지 늘어날 정도였다.
그러나 ꡐ박카스-정ꡑ 발매 이듬해 봄으로 접어들면서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하며 동아제약은 전격적으로 박카스의 제형을 당시 소비자 호응도가 높은 20cc 앰플제로 변경해 ꡐ박카스 내복액ꡑ을 재발매 했다. 청량감이 우수했던 박카스 내복액은 출발이 순조로왔지만, 동아제약은 한번 더 제품 개선을 실시할 상황에 놓였다. 그 이후 발매한 것이 현재와 같은 형태의 드링크 타입인 박카스-디였다.
△대량생산, 대량광고, 대량판매
동아제약은 잦은 제품 개량으로 회사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대량광고(Mass Communication), 대량판매(Mass Sale) 전략, 이른바 "3M 전략"을 세우고 공격적인 시장공략을 전개하였다.
동아제약은 그때까지 의약품의 광고 스타일인 전문지를 통한 의사, 약사 대상의 광고방식에서 탈피, TV, 라디오, 신문, 잡지, 옥외광고 등 모든 매체를 총동원했다. 특히 한창 선풍적인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TV 매체에 중점을 두었고, 박카스의 광고에 톱니바퀴를 심볼로 한 패키지를 도입하고 ꡐ활력을 마시자ꡑ라는 메인카피로 제품의 차별화를 도모한 다양한 형태의 광고활동을 전개해 갔다.
인기 코미디언 "김희갑"을 등장시킨 증언식 광고, 여성소비자의 창출하기 위한 유명 여배우 남미리를 등장시킨 시리즈 광고,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 외화 "전투"(Combat)에 대한 독점 협찬광고 등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차별화 된 크리에이티브 전략과 대대적인 광고 물량작전은 그 효과가 곧 나타나 발매 초, 1963년 월평균 35만병을 상회하는 획기적인 기록을 보였고 그 이듬해에는 월평균 56만병으로 급증하였다. 더불어 박카스는 드링크제로 발매한지 1년만인 1964년 드링크제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혁신적인 유통전략 루트카 세일
박카스의 성공은 혁신적인 유통전략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의약품들은 도매상을 거쳐 소매약국에 출하되는 유통경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동아제약은 과감하게 소매 직거래를 뼈대로 하는 특약점 제도를 도입해 소매약국에 박카스를 직접 유통시켰으며, 이러한 유통 전략은 현재 박카스 루트세일이라는 동아제약만의 독특한 유통시스템의 기반이 되었다. 2008년 현재 박카스 루트카는 전국 2만 개 약국 중 1만 9천 개에 이르는 약국에 방문해 박카스를 공급하고 있다.
△광고전략 '새한국인 시리즈'
장수상품 박카스의 성공 뒤에는 시련도 있었다. 1976년 7월 드링크류 의약품의 일반 대중 매체 광고 금지로 박카스의 성장률은 낮아진다. 하지만 동아제약은 자양강장드링크제의 광고 해금이라는 기회를 활용해 대량광고 전략을 펼치기로 하고 광고안도 기존 드링크제 광고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휴머니티 광고를 전개하기로 결정하는 모험을 단행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선보인 광고가 묵묵히 음지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들을 담은 "새한국인 시리즈" 캠페인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라는 명카피들로 시작된 박카스 광고는 "박카스류 광고"라는 광고계에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다. 힘과 활력으로 대표되던 드링크광고에 잔잔한 감동과 묵묵히 일하는 휴먼스토리를 펼쳐 소비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중장비수리공과 수위아저씨""학생과 버스기사""스승과 제자""택시기사와 딸""농촌부부""환경미화원과 아들" 등으로 이어진 "새한국인" 캠페인은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고 이는 바로 매출증가로 이어졌다.
△박카스는 젊어져야한다 시대적 변화 부응
광고재개로 다시 급격한 매출 증가를 보였던 박카스에도 고민은 있었다. 오래된 브랜드로서 타깃층이 한정되었던 것이다. 동아제약은 브랜드의 노화를 막겠다는 전략아래 과감하게 타깃전환의 새로운 캠페인을 진행한다. 새로운 캠페인은 "젊음은 결코 나약하지 않다"와 "젊음 지킬 것은 지킨다"였다. 이후로 동아제약은 젊은 층 대상의 "건강한 사람들"을 소재로 지금까지 계속 광고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젊은 층은 현재의 마케팅을 선도하기도 하지만 미래의 가장 큰 고객이 된다. 특히 장수상품의 경우에는 그 의미가 더 크다. 박카스가 히트상품으로 오랫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심을 지키면서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 지속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박카스는 지금도 그간 쌓아온 박카스의 가치를 이어갈 수 있는 마케팅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양약품 원비디
피로회복 간기능 개선, 뛰어난 효능이 장수의 원천
30여년 전통 人蔘드링크의 대명사, Made In Korea의 자긍심,
△인삼드링크의 대표주자 탄생
약효가 탁월한 정통 高麗人蔘만을 고집하고 있는 원비-디는 육체적 피로는 물론 각종 스트레스 누적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를 해소하고 예방하는 효과가 뛰어나다
또한 성인병의 주원인 콜레스테롤을 저하시켜 동맥경화 및 고혈압 등의 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주며 아미노산 및 비타민이 풍부하여 영양보급 효과도 동시에 수행한다.
특히 "원비-디"의 주성분인 人蔘과 구기자는 한방에서 식약일체(食藥一體)라는 약성을 지녔다 할 만큼 해로움이 없어 장기복용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습관성도 없어 가장 이상적인 보약 내지는 노화방지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고려인삼에 대한 열기는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세계적인 석학들의 연구를 통해 피로회복, 간 기능 개선, 환경호르몬 제거 및 성기능 장애 개선 등 그 신비의 효능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현재 고려인삼을 이용한 정력 개선제 열풍이 불고 있다.
또한 보혈음양(補血陰陽)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구기자는 근력과 정력을 증진시키고 눈을 밝게 해주는 작용이 있어 특히 중년 이후의 남녀에게 활력을 심어주는 효과가 탁월하다.
△Made In Korea의 자긍심,
"원비-디"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드링크 수출품목이다.
71년 세상에 첫선을 보인 원비-디는 이듬해 72년 일본에 처녀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전세계 중국, 미국, 일본 등 2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이중 중국이 전체 수출물량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 등 중국 남부지역과 요녕성 등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전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판매되고 있다.
특히 복건성의 경우는 원비-디의 지명도가 코카콜라와 맞먹을 정도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90년 북경아시안게임의 공식음료로 지정된 바 있는 원비-디는 중국 수출 개시 2년만인 93년 1,000만 병을 돌파했으며, 제32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는 원비 수출 1억 달러 돌파와 우리나라 인삼제품의 효능을 세계만방에 알려온대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국수교 이후 원비-디의 최대 수출국으로 떠오른 중국 등 한국 고유의 맛과 향을 담고 있는 원비-디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인삼드링크로 세계시장 곳곳에 Made In Korea의 자긍심을 심고 있다
중국의 비중이 높은 것은 처음 해외지점을 홍콩에 설립한 이래 싱가폴, 대만 등 중국권내에서 수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진출 이전에 벌써부터 원비-디 제품을 중국인들이 알고 있었으며 집중적인 TV광고 등 전파광고가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다.
이 같은 집중적인 광고는 중국인들에게 일양약품과 원비-디를 자연스럽게 연상시켜 브랜드 이미지를 착실히 심고 있다.
한국에서도 방영된 바 있는 CF를 중국어로 더빙해 방영한 결과 최불암 씨는 중국에서도 인기인이 됐다는 것. 또한 축구인기가 유럽이나 남미지역 못지 않게 열기가 높은 것에 착안, 국내 축구선수를 등장시켜 TV-CF제작 방영하여 큰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광고이외에도 적절한 판촉이 원비-디의 지명도를 높이는데 한 몫 했다.
△ 중국시장의 성공 세계로 확대
일양약품은 중국 소비자와 원비-디가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수시로 시음회 개최하는 것은 물론 각종 전시회 참가하여 경품대회 등으로 소비자와 친근해 지는데 노력하고 있다.
또한 판매된 원비-디는 철저한 품질관리를 실시해 소비자 만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원비-디 수출증가의 결정적인 원인은 제품력에 있다.
특히 고려인삼에 대한 중국인들의 맹신에 가까울 만큼의 효능확신이 중국에 들어와 있는 다른 드링크 제품을 압도할 수 있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제품력은 중국정부가 인정하는 보건의약품 마크 획득으로 연결되고 있다.
중국은 97년 국내 수출품 가운데 유일하게 원비-디를 보건의약품으로 허가했는데 이는 중국에 들어와 있는 전체 수입제품 중 7번째이다.
보건의약품 허가는 곧 제품의 효능 효과를 선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비-디는 따라서 고려인삼의 효능인 피로회복․자양강장․원기증진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어 중국인들에게 원기증진의 원천은 곧 원비-디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이같은 원비-디의 제품력은 곧 수십 종의 유사제품을 탄생시켰다.
심지어 국내 한방제약사중 한곳이 원비-디의 상징인 노란색 빨간색 하얀색으로 드링크를 포장해 원비의 모조품을 만들어 파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었다.
이종운
200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