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동반 산행으로 관계의 거리를 재구성한다
2010년 4월 11일 일요일 오전 10시. 아차산 주차장 한편에서 알록달록한 옷차림의 등산마니아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이 시간만큼은 엄홍길이란 이름도 오은선이란 이름도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들은 강동구약사회(회장 박근희) 등산동호회인 ‘강산애(회장 백지원)' 소속 회원들이다.
사진촬영을 끝낸 일행은 동호회 발족 기념으로 준비한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아차산을 향해 출발한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광주산맥의 끝자락에 야트막하게(287m) 솟은 아차산(서울특별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있는 산)이야말로 서울권역과 한강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군계일학의 위치라던 풍문은, 팔각정(고구려정)에서든 해맞이전망대에서든 헬기장에서든 정상에서든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 눈을 줘 봐도 반론할 수 없는 사실로 다가온다.
햐아~, 하고 누군가의 탄성이 터지기만 하면 얼음처럼 굳어 서서 거기 그 그림 같은 풍광에 깊은 숨 몰아쉬고, 막 피어나는 진달래꽃이며 개나리꽃들에게 짬짬이 한눈을 팔아가기도 하면서 시속 5~6Km는 족히 넘을 듯 한 보행속도로 올라 헬기장에 닿은 것은 11시 30분!
그중 평평한 자리를 찾아낸 남성회원들이 강산애등산동호회 현수막을 걸어 영역을 확보하는 사이, 여성회원들은 서둘러 돗자리를 반듯하게 펼쳐놓는다.
김밥과 컵라면과 떡과 김치… 귤이며 오이며 포도 … , 간식이라고 하기에는 과할 듯싶은 먹거리가 그 위로 올려진다.
각자의 젓가락을 배당받고는 멈칫거림 없이 골고루 한 점씩 입에 넣어본다. 맛있다. 잔을 부딪치며 들이키는 막걸리도 꿀맛이다.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따가운 햇볕이나 쉼 없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흙먼지조차 봄 산의 배경으로 접수한다.
햇살을 흩어놓는 싱그러운 바람 소리는 시원하고, 수액을 끌어 올려 햇잎이며 햇꽃을 틔우는 나뭇가지들의 일렁임은 상큼하고, 먹을거리 사이로 젓가락을 부딪치기도 하면서 마주 웃는 회원들의 환한 웃음소리는 그 어떤 합창소리보다 정겨웁다.
아차산 정상을 찍고 하산하는 길은 오를 때보다 위태롭다. 한 발자국 내려디딜 때마다 발목과 무릎에 가해지는 압력이 체중의 3배를 상회할 수 있다며 조심하자는 말이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전달된다.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마음의 문 앞에 보초 세웠던 '나'를 조금 밀쳐내고, 주눅 들어 웅크리고 있던 '우리'의 자리를 넓히게 된 것! 함께하는 산행이 준 향기로운 선물이다.
골 아래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말려가며 다시 고구려정을 지나면서는 여성회원들의 등에서 내조의 여왕의 선각자, 평강공주를 읽어낸다.
평강1, 평강2 …, 물론 남성회원들에게도 공평하게 온달1, 온달2 …. 문득, 삼국시대의 중차대한 전략적 요충지였다던 이 자리, 옛 아차산성을 지키던 우리의 온달장군이 신라군의 화살에 전사했으나 그 시신을 실은 상여는 좀처럼 움직일 줄 모르고, 이에 그 혼을 달래려 평양에서부터 날아왔다던 우리의 평강공주는 축지법의 달인이기도 했던가, 하는 물음표가 하나 둘 셋… 허공을 채운다. 아, 봄 산의 그 청신한 바람으로도 놓아줄 수 없던 과학인의 날카로움이여!
아차산 아래 고즈넉하게 앉아 있어 산을 지키는 파수꾼인양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음식점 안, 드디어 총평의 시간이다.
등산화를 벗어두고 가부좌를 틀고 앉자 다리가 저려온다는 한 회원을 말이, 하하 호호 웃으며 개인 간의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분위기를 현실로 화악, 되돌린다.
다리에 쥐가 날 때는 엄지발가락을 발등 쪽으로 잡아당겨 봐라, 족욕을 할 때는 발목을 먼저 냉탕에 담갔다가 다시 무릎까지 온탕에 담가야 한다 … 운동부족에 의한 병보다 과 운동으로 인한 상해 환자들이 더 많아졌다, 노는 방식도 앉아서 하는 놀이를 선호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근 골격이 심히 걱정된다.
그런 저런 정보들로 무르익어가던 토론회 분위기는, 박근희 강동구약사회장의 인삿말로 다시 강산애동호회 무드로 돌아온다. 시간약속을 잘 지켜준 강산애 회원들 함께 해준 서울시약 문화기획팀 사진촬영을 맡아준 기자는 물론 화창한 날씨로 맞아준 아차산에게 감사하며, 앞으로도 강산애만 편애하지 말고 다른 동호회 활동에도 열정적인 관심을 부탁한다는 인사에 회원 모두 박수로 화답한다.
29명의 회원이 등록돼 있으나 일신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 분들이 있어 아쉬움은 있지만, 화창한 봄 날씨 속에서 호기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친 첫 산행이기 때문에 더 없이 감사하다.
다음 산행에는 모든 회원이 참여하여 산행의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독려하겠다는 백지원 강산애 회장의 인사말이며 그 표정이, 기분 좋을 만큼 나른해져 돌아오는 귀갓길에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따라 온다. 더러는 서먹했던 회원들 사이의 거리가 한 뼘 이상 가까워졌음도 눈앞에 선연히 그려진다.
임세호
2010.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