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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45> 일락회(一樂會)의 견학 행사
일락회(一樂會)의 견학 행사 2016년 4월 4일부터 2026년 5월까지 11년 동안 일락회 (한국약학대학정년퇴임교수회)의 주요 활동을 소개한다. 2016년은 이은방 서울대 명예교수가 전임 손동헌 교수(중앙대)에 이어 회장에 취임한 해이다.활동의 대부분은 제약회사 견학이었다. 우선 회사와 교섭하여 견학 날짜를 정한 후 일락회 단톡방(회원 90여 명)을 통해 참가자를 모집한다. 견학 당일 아침 8시경 양재역 근처에서 회사 측이 제공한 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하여 공장을 견학한 다음, 회사에서 제공하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인근의 볼거리 구경한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양재역으로 돌아오는 식으로 진행된다.2016년의 첫 견학일은 11월 23일이었다. 29명의 회원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코스맥스 공장을 견학한 뒤, 인근의 융릉(사도세자의 능)과 건릉(정조의 능)을 방문하였다. 이 내용은 일락회 뉴스레터인 일락회지(一樂會誌) 제12호(2017년 4월, 덕성여대 정기화 회원 기록)에 실려 있다.2017년 4월 23일에는 종로의 한일관에서 총회를 열어 일락회의 발전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어 5월 10일에는 23명의 회원이 충남 당진에 있는 JW생명과학을 견학한 후 심훈기념관과 솔뫼성지를 방문하였다 (2018.5.3, 회지 제13호, 서울대 김종국 회원 기록). 같은 해 11월 7일에는 26명의 회원이 경기도 오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뷰티 공장을 견학한 뒤 물향기수목원을 둘러보았다 (회지 제13호, 이화여대 이병구 회원 기록).2018년 5월 3일, 22명의 회원이 서울대학교 약학역사관(관장 박정일 회원)을 탐방하였다. 또 10월 3일에는 회원 13명이 조선대학교 이진환 회원의 개인전 개막식(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 참석하였다 (2019.7.21, 회지 제14호, 심창구 회원 기록).2019년 5월 20일, 25명의 회원이 충북 오송에 있는 서흥캡슐 공장을 방문하여 소프트캡슐 제조 공정을 견학한 후 계룡산 동학사를 찾았다. 이때 충남대 김봉희 회원이 동동주와 도토리묵을 대접해 주었다 (2019. 7. 21, 회지 14호, 덕성여대 신승원 회원 기록). 같은 해 10월 24일에는 25명의 회원이 충남 예산에 있는 보령제약 스마트 팩토리 견학한 뒤 예당호 출렁다리를 걸었다 ((2019. 12. 20, 회지 제15호 서울대 김영식 회원 기록).2020~2022년에는 코로나가 극성을 부려 견학을 쉬었다.2023년에는 5월 26일, 24명의 회원이 강원도 원주에 있는 진양제약 공장을 견학한 후 간현관광지와 소금산 계곡을 둘러보았다 (2023. 9. 30, 회지 제16호, 이대여대 하헌주, 덕성여대 조애리 회원 기록). 같은 해 10월 31일에는 23명의 회원이 충북 제천의 휴온스 제약 공장을 견학한 뒤 제천 의림지와 청풍문화단지를 둘러보았다. ((2023. 12. 13, 회지 제17호, 동국대 조정숙 회원 기록).2024년4월 30일, 41명의 회원이 충북 오송에 있는 충북대학교 약학대학과 첨단의료기기센터를 견학한 뒤 청남대를 방문하였다 (2024. 5. 20, 회지 제18호, 숙명여대 강영숙 회원 기록).2025년5월 12일, 28명의 회원이 경기도 향남의 하나제약 공장을 견학한 후 용주사와 화성행궁을 관광하였다 (2025. 12. 31, 회지 20호, 숙명여대 류재하 회원 기록). 같은 해 10월 28일에는 27명이 경기도 가평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과 구곡폭포를 탐방하였다 (회보 제20호, 연세대 황성주 회원 기록).2026년 4월 22일, 30명이 충주에 있는 동화약품 공장을 견학한 후 인근의 충주박물관 등을 둘러보았다. 5월 19일에는 제14회 동화 봄맞이 음악회 (동화약품 보당홀)에 24명의 회원이 참석하였다. 요약돌아보니 11년 동안 견학 10회, 탐방 2회, 총회 및 축하 방문 각 1회, 음악회 참석 1회로 총 15회의 활동을 하였다. 2002년 이전에 창립되어 경희대 권창호, 이화여대 정기용, 중앙대 손동헌 교수님 등에 의해 발전해 온 우리 일락회가 회원들의 사랑 속에 더욱 발전하고 있음이 자랑스럽다.<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6-17 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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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44> 조항연 약사의 커피믹스 개발
조항연 약사의 커피믹스 개발『서울대학교 약학대학 동창회보』 제100호 (2022, p170-173)를 보면 ‘조미료, 진짜꿀, 그리고 커피믹스의 개발’이라는 제목으로 조항연 약사 (사진, 서울대 약대 11회 졸업, 1953~1957)가 쓴 글이 실려 있다. 그 글에 의하면 그가 동서식품의 생산과 기술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1975년(?) 경에 커피믹스를 개발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커피믹스 개발과 관련된 부분만 전재하면 다음과 같다. 조항연 약사와 커피믹스 ©약업신문 “어느 날 등산이나 낚시를 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먹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커피 1술, 크림 1술, 설탕 1술을 섞어서 봉지에 담아 5봉짜리 포장물을 만들어보니 담배갑 1개 크기가 되었다. 나는 내심 ‘이거 잘 하면 좀 팔리겠네”라는 생각이 들어 1봉지를 개봉하여 컵에 쏟은 다음 더운 물을 붓고 차 숟갈로 저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상하게도 몇 번을 시도해봐도 깨끗이 용해되지 않고 무언가 불용물(不溶物)이 표면에 뜨는 것이었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커피의 산성 때문에 커피크림 성분중의 하나인 '카제인 나트륨'이 '카제인'으로 석출되면서 표면에 뜨는 것이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배운 것이 생각나서, 이런 때는 '약산(弱酸)의 염(鹽)'을 조금 넣어주면 완충(緩衝) 역할을 하여 카제인이 석출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소량의 인산 나트륨, 인산 칼륨 등을 봉지에 넣고 섞은 다음, 더운 물에 녹여보았더니 정말 부유물이 생기지 않고 깨끗하게 녹는 것이었다. 과연 학교에서 배운 대로 약산의 염은 완충제(緩衝劑, buffer)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이것이 최초로 ‘커피믹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의 커피믹스는 튜브형 포장으로 시판되지만 처음에는 네모난 파우치형 봉지로 출시되었다. 처음에는 아주 구식인 봉지포장기를 몇 대 돌리며 생산하여 공급하였으나, 순식간에 커피믹스가 인기를 끌어 판매량이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그래서 이런 구식 포장으로는 안되겠다고 판단하여 적당한 포장설비를 찾다가 미국에 1초에 10봉을 포장하는 포장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가 포장기 회사를 찾아 갔더니, 회사는 설탕으로 포장 시범을 보일 준비를 다 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장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정말 분당 600포라는 경이로운 속도로 설탕이 포장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세월이 조금 지나면서 시판 설탕의 포장이 네모 포장에서 연필 굵기의 막대 포장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마케팅 및 판매부서로부터 커피믹스도 막대형(튜브형)으로 포장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나 국제포장전시회에 따라다녀 봐도 튜브형 포장은 기껏해야 3~4줄로 포장되는 기계가 전부이고 그 이상의 기계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그래서 동서식품은 발전성이 보이는 모 기계제작소와 상호 협력하여 10줄짜리 포장기를 국내에서 개발하였다. 능률이 외국제의3배는 되는 포장기가 개발된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를 통해 동서식품이 세계에서 유수한 튜브형 포장기 메이커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16년 전의 일이다 (후략).”최근 (2026.4.22) 조선일보는 조필제 동서식품 부회장이 101세를 일기로 영면하셨다는 기사를 실으면서, 그를 ‘커피믹스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기사에 의하면, 조 부회장은 자서전인 『사막에 닻을 내리고』 (문지사, 2017)’에서 “품질관리 담당 사원이 커피, 프리마 (동서식품 크리머 브랜드), 설탕을 한꺼번에 배합해서 물만 타면 간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커피믹스 개발에 들어갔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그 품질관리 담당 사원이 바로 조항연 약사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조항연 약사의 현장 아이디어가 조필제 부회장의 경영적 판단에 힘입어 ‘커피믹스’라고 하는 휴대용 커피가 세계 최초로 개발된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은 돌아볼수록 흥미롭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6-04 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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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43> 66년 만에 4·19 혁명 유공자로 선정된 김한주 약사
66년 만에 4·19 혁명 유공자로 선정된 김한주 약사 지난 4월 19일 전후, 제주에 사는 김한주 선배(서울대 약대 15회 졸업)로부터 두 차례의 전화를 받았다. 본인이 서울 강북구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4·19 혁명 66주년 기념식에서 유공자 표창을 받게 되었는데, 이런 계기를 마련해 준 서울대 약학박물관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이 기념식에서 김한주 선배(제주 4·19기념회장)를 포함한 5인이 4·19 혁명 유공자로 선정된 70명 중 주요 인물로 선정되어 직접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포장(사진 참조)을 받았다.김한주 약사가 받은 건국포장 ©약업신문국가보훈부(이하 보훈부)의 4월 16일 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김한주 선배는 1960년 당시 서울대학교 약학과 4학년에 재학 중 동기와 후배들을 이끌고 시위에 나서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이상 약사공론 2026.4.27. 21면 기사 참조).돌아보면 4·19 혁명 다음 날인 1960년 4월 20일, 동아일보 석간에 19일 오전 백색 가운을 입고 시위하는 서울대생들의 사진과 함께 ‘백색 가운을 입고 데모하는 의대생들’이라는 설명이 붙은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나는 이 기사가 오보라는 사실을 선배님들의 전언(傳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즉, 그들은 의대생이 아니라 약대생들(1957~1960년 입학생, 15~18회 졸업생)이었던 것이다.나는 기회가 되는 대로 이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다. 감사하게도 김병년 선배(17회, 당시 2학년)는 동아일보로부터 시위 사진 원본을 구해 주었고, 홍청일·박정식 선배(이상 15회)는 사진 속 인물 하나하나에 실명(實名)을 붙여 주었다. 이로써 사진 속 인물들이 약대생임을 명백히 입증할 수 있었다.이제는 동아일보의 오보에 대한 정정 기사를 받아내는 일만 남아 있었다. 마침 서울대 약학역사관장이던 박정일 교수가 동아일보 김동혁 기자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박정식·김한주 선배의 인터뷰를 부탁하였다.드디어 2017년 4월 13일, 약학역사관 자료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두 선배의 준비는 비장하였다. 특히 제주에 사는 김한주 선배는 ‘민주혁명의 기록’(1960년 6월, 동아일보사)과 『월간 사상계』(1960년 6월호) 부록 「피의 화요일」 화보 등을 들고 상경했다.그리고 그 기자는 고맙게도 2017년 4월 19일 자 동아일보 A12면에 ‘4·19 시위 선두에 선 건 의대생 아닌 약대생들’이라는 기사를 내주었다. ‘서울대 약학과 70여 명이 경무대 철문 앞까지 대열 이끌어’라는 부제도 붙여 주었다. 서울대 약대생들의 4 19의거 당시 시위하는 모습을 재확인한 동아일보 기사 ©서울대약학박물관무려 57년 만의 정정 기사였다. 감격이었다. 4·19 시위에 참여했던 서울대 약대 선배들은 물론 나와 같은 약학사 연구자들의 숙원이 풀린 순간이었다. 나는 즉각 이 내용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백년사』(2016) 수정판에 실었고, 「약창춘추 223」(2017년 5월 10일 자 약업신문)에도 소개하였다.보훈부는 아마 동아일보의 그 정정 기사와 『백년사』 등을 보고 약학역사관의 협조를 얻어 김한주 선배와 연락을 취한 듯하다. 김 선배는 4·19 시위 중 경무대 앞에서 맹장이 터지는 부상을 입어 45일간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였는데, 당시 간호사(현 90세)의 증언으로 이 사실을 입증받아 유공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고 한다.나는 이상의 과정에서 작은 돌 하나를 놓을 수 있었음에 큰 보람을 느낀다. 끝으로 김한주 선배를 비롯해 4·19에 참여한 약대 선배님들의 용기와 헌신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5-20 0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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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42> 기록의 의미
기록의 의미나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100년사』를 편찬하면서 여러 대선배님들께서 남기신 회고담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예컨대 1918년 조선약학교 제1회 입학생인 이호벽 선배의 「나와 3·1 만세사건」(약사공론, 1974.5.16), 조선약학교 특별과 제7회 졸업생(1926) 이경봉의 「반도 의약계 대관 2」(삼천리 제10권 제8호, 1938), 조선약학교 본과 제7회(1930) 졸업생인 한구동 교수의 회고담(『한국약학의 아버지 녹암 한구동』, 서울대약대, 2016)과 동기이자 최초의 여약사인 장금산의 「나의 학창 시절」(서울대약대 뉴스레터, 1985) 등이 100년사 복원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뒤이어 경성약전을 졸업(3회 졸업, 1933년)하고 훗날 일동제약을 창업한 윤용구 선배의 「나의 학창 시절」(『서울대약대동창회보』, 1985), 경성약전 15회(1944년) 졸업생 오수창 선배(전 과학수사연구소장)의 「일제에 의해 주석산 제조 지도에 동원된 경험」(『동창회보』, 1987), 1950년 사립 서울약학대학에 입학해 6·25 전쟁 속에서 부산 전시 약학대학에 다닌 조윤상 교수의 회고록(『동창회보』, 2011) 등도 희귀한 기록이었다. 사진 또한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컨대 서울대약대 제9회 박한순 선배님이 기증하신 1955년도 졸업앨범을 통해 1950년 ‘사립 서울약학대학’ 시절의 교가(김성태 작곡, 김광균 작사) 악보를 찾아낸 일은 하나의 쾌거였다. 나는 이 교가의 악보와 가사를 『동창회보』 제103호(2026.1)에 실었다. 2025년 6월 12일 열린 개교 110주년 기념행사에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중창단이 이 교가를 불렀는데 그 영상은 『동창회보』 제103호(2026)에 QR코드로 수록되어 있다.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누구나 그 교가를 손쉽게 보고 들을 수 있다. 이처럼 기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선배님들께 자서전이나 회고담을 써 주십사 부탁드리고 있다. 동창회보는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 데 매우 유익한 매체이다. 내가 동창회장이던 2020~2021년에 발간된 『동창회보』 제98호에는 권창호, 임경택, 지형준, 이은방, 장용택, 최재인, 김종국, 윤창영, 박찬효, 김영제 동문의 회고담을, 제99호에는 주중광 동문(18회, 미국 조지아대 석좌교수)의 인터뷰와 함께 동문 25명의 삶과 직업을 소개하는 글을 실었다. 제100호에는 김수만(조선약학교 7회), 우린근(경성약전 7회), 김선봉(서울약학대학 전문부 1회), 신선호(11회), 황기준(25회) 등의 회고담을 실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한 조항연(11회, 1955년 졸업) 동문의 회고담은 독자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글쓰기를 어려워하신 서정규 선배의 경우에는 광복 이후 혼란기 속에서 미군정으로 팔려 갈 뻔한 ‘서울약학대학’을 지켜낸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직접 청취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제101호(2024)에는 김재환, 이정석, 김대중, 맹호영 동문의 회고와 함께 서영준, 이봉진, 조윤수 교수의 정년 인터뷰, 그리고 한덕용, 김병각, 이상희, 한용남, 김상훈 동문의 추모사를 실었다. 제102호(2025)에는 조항연 동문의 회고담 2편을 추가로 실었다. 내가 창립한 약학사분과학회의 학회지 『약학사회지』 역시 기록을 남기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제1회 졸업생 손동헌 명예교수의 월남과 약학 인생」(제4권, 2021), 이상섭 교수의 「냉전기 동구권 학회 참석기」(제5권, 2022), 원로 「군진약사들의 회고담」(제6권, 2023),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설립 배경 및 발전 과정」(제7권, 2024), 그리고 「원로 약사 제약공장장 10인의 회고」 및 「서울대약대 약초원과 약용식물학 교실에 관한 회고」(제8권, 2025) 등이 그 예인데, 이들은 모두 인터뷰나 좌담회를 개최하여 녹취한 기록이다. 이처럼 기록을 남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기록한 사건이 후세에 과도하게 중요시되는’ 일이 없도록 기록자는 조심해야 할 것이다.<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5-06 1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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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41> 손녀의 전화.
손녀의 전화 며칠 전 막내 손녀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올 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바쁘다고 내 전화도 잘 받지 않던 아이가 스스로 전화를 걸다니! 기쁘고 황송한(?) 마음에 얼른 아내를 불러 함께 손녀의 말을 경청했다. 손녀는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날은 그 학교의 학생회 임원을 뽑는 날이었다. 손녀는 임원이 되고 싶어 여러 부 중 이름이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기획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선정은 신청자 중 서류 심사를 통해 2~3명을 선발한 뒤, 이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거쳐 1명을 뽑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두 명씩이었던 다른 부서와 달리 기획부만 서류 통과자가 3 명이었다. 이로부터 손녀는 기획부 지원자가 다른 부 지원자보다 많았던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나 역시 그 짐작에 동의했다. 면접위원은 3 명으로, 2학년 선배 1명, 3학년 선배 1명, 그리고 선생님 1분으로 구성되었다. 면접 문제는 예상했던 문제도 있었지만 제법 까다로웠다고 한다. 손녀는 아는 문제가 나와도 일부러 몇 초간 뜸을 들인 뒤 신중하게 대답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손녀는 3 대 1이라는 가장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기획부 임원으로 선발되었다. 손녀는 가장 인기가 높은 부에서 임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 몹시 기뻤다. 그 기쁨을 참을 수 없어 몸소(?) 우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 오후, 손녀가 좀 분개(?)할 일이 생겼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 “나 오늘 기획부에 뽑혔어”라고 살짝 자랑의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와, 정말 축하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한 친구는 “나는 ○○반에 들어갔다”라고 했고, 다른 친구는 “나는 OO 반에 신청했는데 떨어졌어” 라고 자기 이야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손녀는 이에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먼저 “축하한다, 좋겠다”는 반응을 보인 뒤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손녀는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을, 임원으로 뽑힌 기쁨보다 더 열정적으로 우리에게 토로했다. 나는 손녀가 자신의 서운했던 감정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 주는 그 순수함에 감동하였다. 더불어 아직도 우리가 손녀의 하소연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흐믓해졌다. 사실 우리 모두는 남의 경사에 진심 어린 축하는 커녕,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일본에서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상대방의 말끝마다 “혼또데스까 (정말이에요?)” 또는 “우소데쇼 (거짓말이죠?)” 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이는 ‘내가 당신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표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화 중에 이런 맞장구를 잘 치지 않는다.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맞장구를 치지 못하는 것은, 먹을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은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아이구, 허리가 갑자기 아프네”라고 하면, 상대방은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 하지 않고, “나도 요즘 여기가 아프네” 하며 자기 소리를 한다. 이처럼 우리가 서로 상대방의 호소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게 된 것은, 우리가 늙어가면서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업보(業報)일지도 모른다. 더하여 평소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훈련이 부족했던 탓도 있어 보인다. 아무튼 손녀와의 긴 통화 끝에 우리 부부는, 그 어려운 기획부 임원으로 선출된 쾌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주었고, 친구들의 무반응에 대한 서운함에 백 퍼센트 공감해 주었다. 그제사 손녀는 마음껏 자랑하지 못했던 아쉬움, 그리고 친구들의 반응에 대한 서운함이 어느 정도 풀린 듯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나는 1) 자랑할 일이 생기면 가족, 즉 부모와 형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마음껏 자랑해야 한다. 2) 그러나 친구들에게는 가족과는 다르니 조금 절제해서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좋겠다’. 3) 나는 네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주 칭찬해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 주었다. 손주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할렐루야!<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4-15 0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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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40> 객관적 시각
객관적 시각 우리는 사물이나 사태를 ‘객관적으로 본다’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정확하고 공정하게 바라본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반면에 ‘주관적으로 본다’고 하면 불공정하게, 즉 나에게 유리하게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대개 객관성이 주관성보다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오늘은 객관적 시각, 나아가 소위 메타인지(meta認知)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대전제 하에 다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가볍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오래전 한·일 축구 경기 중계 방송의 해설자가 ‘너무 객관적으로 해설을 한다’고 해서 해설자 자리를 뺏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대해 우리 아들은 “우리끼리 보는 방송인데, 꼭 그렇게 객관적일 필요가 있나요?” 라고 코멘트 했다. 예컨대 일본 선수와 우리 선수가 충돌했을 때 웬만한 상황에서는 ‘일본 선수의 잘못’인 것 같다고 말해주면 시청자들이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들의 논리에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로부터 모든 상황에서 객관성이 늘 최선은 아니라는 통찰(通察)을 얻게 되었다. 특히 가족 관계에서 그래 보인다. 아내가 이웃과 다투었을 때 객관적으로는 아내의 잘못이 더 커 보일 때라도 남편은 우선 아내의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 또 아버지가 남과 시비에 휘말렸을 때 자식은 우선 아버지의 편에 서야 한다. 여기에서 객관적이라고 할 때의 객(客)이라는 글자의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주인이 수정과(水正果)를 내오면 내가 손님(賓) 대접을 받는 것이고 식혜(食醯)를 내오면 지나가다 들른 ‘과객(過客)’ 정도의 대접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수정과는 수정과액에 곶감을 넣고 한참을 불린 뒤에야 손님에게 낼 수 있어서 기다리고 있던 손님에게만 낼 수 있다. 반면에 식혜는 그냥 퍼주면 되는 음식이므로 불쑥 찾아온 나그네에게는 식혜를 낼 수 밖에 없다.) 큰 행사장에서 축사(祝辭)를 부탁받는 사람은 내빈이지 객이 아니다. 만약에 객이 ‘객(客)쩍게’ 내빈 행세를 하려 들면 십중팔구 비웃음을 사게 된다. 이처럼 객은 주인이 기다리던 손님이 아닐뿐더러 가끔은 주인에게 번거로운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객관적(客觀的)’이라는 말로부터는 주인 정신이 결여되고 무책임하며 다소 냉소(冷笑)적인 시선(視線)마저 느껴진다. 시험 문제에도 주관식과 객관식이 있는데 객관식에서는 정답이 아닌 답지(答枝)를 고르면 무조건 0점이다. 그래서 채점자의 재량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식은 공정하지만 냉정한 평가 방법이다. 반면 주관식에서는 정답은 아니더라도 논리를 갖추어 성의껏 답안을 쓰면 얼마간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주관식 시험이 객관식 시험보다 조금 더 인간적이라고 하면 궤변(詭辯)일까? 아무튼 앞에서 중계방송을 예로 들었지만 범사를 객관적으로만 바라보기로 한다면 세상은 한결 재미없고 삭막해질 것이다. 특히 가정사를 객관식 문제처럼 봤다가는 큰 낭패(狼狽)를 당할 우려가 크다. 부부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효도와 사랑, 그리고 형제 간의 우애(友愛) 문제에 대한 해법을 어찌 ‘옳다·그르다’라는 객관식 답지(答枝)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겠는가? 가족을 마치 과객(나그네, 남) 대하듯 지나치게 객관적으로 보고 비교 평가한다면 그 가정에 무슨 안식과 따듯함이 있겠는가? 그러나 가족 한 명 한 명을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할 내빈, 아니 더 나아가 나와 함께 우리 가정을 일궈야 할 ‘주인(主人) 중의 하나’로 여긴다면 필경 그 가정에는 화목과 사랑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우리 집, 우리 회사 그리고 우리 나라를 객관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남의 집, 남의 회사, 남의 나라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일은 결코 편협(偏狹)함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서이고 인습(因習)이다. 물론 정도가 지나쳐서는 안 되겠지만 객관적이라는 미명(美名) 하에 우리라는 공동체에 대해 마치 남을 대하듯 차가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상을 사는 데는 어느 정도 ‘주관식’ 시각과 같은 여백과 따듯함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어 순차적으로 발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4-01 1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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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39> 동화약방 초대 사장 민강의 독립운동과 조선약학교 설립
동화약방 초대 사장 민강의 독립운동과 조선약학교 설립 동화약품은 2월 25일 오전 10시 서울 순화동에 있는 신축 본사 1897홀에서 초대 사장 (당시는 동화약방) 민강(閔橿, 1883~1931)의 생애를 다룬 ‘민강 평전(評傳) 출판기념회’를 개최하였다. 민강은 1897년 동화약방을 창립하여 우리나라 근대 제약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로, 궁중 선전관이었던 부친 민병호와 함께 국산 신약 ‘활명수’를 개발하여 구한말 백성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는 또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즉, 대동청년단 활동에 참여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했고, 동화약방을 독립운동의 연락망과 자금 통로로 활용하였으며, 활명수 판매 수익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다.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으로 이동할 때 활명수를 판매하여 활동 자금을 마련한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에는 동화약방에 서울 연통부(聯通府)가 설치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63년 제약업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追敍)받았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큰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서울대 약대) 관계자를 비롯한 약학계 인사 약 25명이 참석하였는데, 약학계 인사들이 이처럼 많이 참여한 데에는 아마 다음과 같은 배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첫째, 민강 사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약학교육기관 설립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한일강제병합(1910) 이후 조선총독부는 ‘약품 및 약품영업취체령’ 제정(1912)을 통하여 근대적 약업(藥業)제도를 도입하였는데, 이에 따라 약종상과 약제사를 양성할 교육기관의 필요성이 생겼다. 이에 따라 1915년에 1년제의 조선약학강습소가 개설되었으나 1916년 실시된 최초의 약제사 시험에 졸업생이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하자, 정식 약학교육기관의 설립 필요성이 대두(擡頭)되었다. 이에 민강을 비롯한 약업인들이 자금 마련을 주도하여, 1918년에 2년제 조선약학교를 설립하였다. 민강은 조선약학교의 6인의 상의원(常議員) 중 한 명이었다. 조선약학교는 1930년에 경성약학전문학교, 광복 후인 1946년에는 사립 서울약학대학으로 바뀌었다가 1950년에 국립서울대학교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민강은 이처럼 우리나라 근대 약학교육의 출발점에 서있던 인물이다. 둘째, 동화약품이 서울대 약대와 맺어 온 인연 때문이다. 1983년 동화약품은 액면가 500원의 주식 2만 주를 서울대 약대에 기부하여 서울대 약대 연구 재단의 출범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서울대 약대 인사들의 다수 참석은 이래저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셋째, 동화약품의 역사 계승 모습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초대 민강 사장의 뒤를 이은 4대 민인복 사장은 1937년 회사를 민족기업가 윤창식에게 넘겼다. 이후 회사의 경영은 윤광열 회장과 윤도준 회장으로 이어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 윤도준 회장은 독립운동에 관여해 온 두 선친의 후손답게, 남산 일대의 일제강점기 흔적을 찾아보는 ‘남산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50회 이상 이어 오고 있다. 또한 동화약방의 초대 사장 민강의 역사를 동화약품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계승하여 기리고 있다. 사람들은 민씨 일가(一家)의 역사를 계승하는 윤씨 일가의 모습에 감동을 느낀다. 넷째,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에 대한 윤도준 회장의 각별한 관심 때문이다. 그는 2025년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약학사분과학회를 매년 지원하겠다고 자진해서 약속해 주었다. 더구나 학회의 요청보다 더 많은 지원을 약속하였다. 이날 약학사분과학회 회원이 특히 많이 참석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歸結)이다. 평전의 뒷부분에는 1930년경 이화여고보(梨花女高普) 학생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민금봉 여사의 활동이 실려 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민여사의 손녀인 송지희 서울시립대 교수의 간절한 마음이 작가 고진숙을 움직인 덕분이라고 한다. 송교수의 진심도 감동적이었다. 이 출판기념회는 한 제약 기업인의 독립운동이 근대 약학교육의 발아(發芽)와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뜻 깊은 행사였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3-18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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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38> 효도는 도(道)이다
효도는 도(道)이다 이번 설에는 사정이 있어 처음으로 성묘를 가지 못했다. 해마다 당연하게 해오던 일을 하지 못하니 며칠이 지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던 중 신문에서 중국의 한 물류업체가 춘절(春節)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대리 세배’를 해주는 유료 서비스 상품을 내놓았다가 거센 비판 끝에 철회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웃지 못할 이야기 같았지만, 남의 나라 일 같지가 않았다. 요즘 세상은 성묘(省墓)는 커녕 살아 계신 부모님께 세배하는 일조차 부담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다. 손주들이 학원 때문에 조부모를 찾아 뵙기 어렵다는 등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이면(裏面)에는 세배나 성묘를 굳이 해야 할 일로 여기지 않는 인식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자손을 사랑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자손은 그냥 예뻐서 저절로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자식 사랑은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와 조부모를 사랑(恭敬)하는 효도(孝道)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예전에는 효도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道理)였지만 오늘날에는 결코 저절로 되지 않는, 숙제처럼 억지로 실천해야 하는 덕목(德目)이 되었다. 아마 효도에 ‘길 도(道)’ 자를 쓰는 이유도 서도(書道)나 태권도처럼 도(道)를 닦듯 고되게 훈련하지 않으면 효(孝)를 행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왜 자식 사랑은 쉬운데 효도, 즉 부모 공경은 이리 어려울까? 자연을 보면 그 이치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식물도 동물도 새끼 때는 다 예쁘다. 봄의 새싹은 생기와 향기로 가득하지만,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푸르름을 잃고 단풍이 된다. 물론 단풍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마지막 불꽃 같은 애처로움이 묻어 있다. 닭이나 개 같은 동물들도 병어리나 강아지 때가 제일 예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기는 다 예뻐서 보면 머리를 쓰다듬고 싶고 품에 안고 싶어지지만 노인을 만나면 저절로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흔히 사람이 죽었을 때, ‘자식은 가슴에 묻고 부모는 땅에 묻는다’는 말이 이 상황을 웅변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만약에 창조주께서 이 세상을 거꾸로 만들어 놓으셨으면 어찌 되었을까? 즉 아기가 노인처럼 추하게 태어나고 노인이 나이가 들수록 아기처럼 아름다워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마 부모들이 아기를 기꺼이 품지 않아 오래전에 인류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자식들이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작별의 슬픔에 괴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식을 땅에 묻고 부모를 가슴에 묻는 효도 과잉의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아기가 아름답게 태어나고 노년에 모습이 추해지는 것은 인류의 번성과 행복을 위한 창조주의 배려인 것이다. 섭리가 그렇다면 사람은 왜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하는가? 그것은 효도가 사람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낳아주고 길러주고 가르쳤지만 이제는 힘없이 늙고 아픈 부모를 배려하고 공경하는 일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인간의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자식 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도는 부모 자식 간의 마땅한 도리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내 말의 의미를 모든 자식들도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분명하게 깨달을 것이다. 세상의 기존 질서들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무질서화의 이 와중(渦中)에서 어떤 도리를 보존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가려내기 쉽지 않지만 나는 효도가 몇 가지 지킬 가치가 있는 도리의 하나라고 확신한다. 기존의 모든 도리를 부정하면 인간 사회의 기본 질서가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도리는 곧 닥쳐올 AI로봇 시대에 인류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생명줄이 될지도 모르겠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공경(효도)이 균형을 이루는 세상, 가족사진 속에 조부모가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세상, 학원보다 성묘와 세배가 뒤로 밀리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우리 손주의 손주들이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설날 손주들에게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는 기쁨이 세세년년(世世年年) 지속되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3-04 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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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437> 사라진 고향의 이름 (2)
사라진 것은 동네 이름만이 아니었다. 우리 동네의 이곳저곳에 붙어있던 기무골, 장안이, 미루터, 각굴, 됨빼미, 사나다리, 초당골짜기 같은 다양한 이름도 함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이름들은 동네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 곳에 드나들면서 그곳의 지리적 특징에 따라 자연스레 그리 붙였을 것이다. 이런 이름들은 동네 이름들과는 달리 행정지도 같은 곳에도 등장한 적이 없으니 앞으로도 영원히 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흔적도 없어진 그 이름들이 그립고 애처러워 짧은 기억을 더듬어 몇 자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역시 챗지피티의 설명을 인용하지만, 설명의 타당성은 ‘믿거나 말거나’이다.먼저 동네 뒤쪽에 있는 동남향의 낮은 언덕을 ‘기무골’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에 볕이 잘 들어서였는지 산소 몇 기가 있었다. 쳇지피티는 김씨 집안과의 관련성을 제시했지만 우리 동네가 이씨 집성촌인 점을 생각해 보면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 김이 자주 서려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동네에서 독쟁이로 가려면 ‘장안이 고개’라는, 높지는 않지만 좀 긴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고갯길 좌우에 있는 나무들 때문에 늘 어둑어둑해서 넘을 때마다 웬지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드는 고갯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때에는 그 고개를 넘다가 귀신이나 여우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곤 했었다. 챗지피티는 ‘장안이 고개’는 “독쟁이 같은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인도하는 고갯길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 고개 너머에 ‘독쟁이’라는 동네가 있긴 했지만, 작은 동네에 불과했기에 이 해석에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다. ‘각굴’은 “이름 그대로 꺾이고 각(角)진 골짜기다. 물길이 한 번에 내려가지 않고 방향을 틀며 흐르는 곳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됨빼미’는 “깊고 눅진한 저지대, 즉 물이 잘 고이고 땅이 무른 곳으로, 논이나 습지로 쓰인 땅”이라고 한다. 이 설명은 실제 상황과 딱 맞는 것 같다. 이처럼 땅 이름들은 그 땅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설명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사나다리’는 “둑을 넘거나 골짜기를 가로지르며 오르내리던 험한 통로로, 짐을 지거나 나이가 든 이들이 늘 조심해야 할 곳”이란다. 실제로 논 아래 작은 개울은 ‘작은 사나다리’, 멀리 큰 논 밑에 있는 개울을 ‘큰 사나다리’라고 불렸다. 마지막으로 ‘초당골짜기’는 풀로 엮은 작은 움막이 있던 골짜기”라고 한다. 움막을 본 기억은 없지만, 더 전에 그런 집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초당골짜기에는 물이 풍부해서 동네 여자들이 바가지로 물을 퍼서 빨래를 할 수 있는 우물이 있었다. 물이 흘러 넘쳐 만들어진 논에는 미나리, 그리고 돗자리를 만드는 재료가 되는 왕골이 저절로 자라곤 했다. 동네 앞 논이 많은 곳에 ‘방아다리’라고 하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방아나 다리를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더 옛날에는 물레방아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처럼 동네 구석 구석에 이름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농민들의 삶이 땅에 가까웠다는 뜻일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삼바지, 한둘, 매밭이란 동네 이름을 이번에 추가하기로 한다. 장안이 고개를 넘어서 좀 더 가면 ‘삼바지(삼받이)’라는 동네와 ‘한둘’이라는 동네가 나오는데, 삼바지에는 한약방이, 한둘에는 한의원이 하나씩 있었다. “‘삼바지’는 길과 골이 세 갈래로 갈라지거나 모이는 마을이고, ‘한둘’은 집이 한두 채 있는 동네였을 것”이라고 한다. ‘매밭’이라는 동네는 기무골 뒷산을 넘으면 나오는데, 이는 “풀을 매며 일군 밭이라는 뜻으로, 김포 검단처럼 물과 땅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던 곳에서는, 매밭이 곧 개간의 시작점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곳에 매(罵)가 많이 날아와서 매밭이라고 불렀나 생각했었다. 이런 동네 안 이름들과 동네 이름들을 함께 놓고 보면, 하나의 공간 구조가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사라진 지명들을 다시 불러보면 우리가 어떻게 땅을 이해하고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 인걸(人傑)은 물론이고, 산천마저 의구(依舊)하지 않구나.<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2-18 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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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36> 사라진 고향의 이름 (1)
사라진 고향의 이름 (1) 내 고향은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당하리 신기(新基) 부락이다. 동네 사람들은 ‘신기’ 보다는 ‘새텃말’이라고 불렀다. 우리 동네는 1995년 1월에 인천광역시 서구에 편입되었고, 금년 7월부터인가 검단구로 바뀐다고 한다. 그 새텃말이 2015년 검단 신도시 개발 공사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불도저가 산과 개울, 밭, 논 등을 밀어 부쳐 광활한 평야를 만들더니 그 위에 엄청난 규모의 고층 아파트 단지를 만들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도 이런 상전벽해가 없다. 논과 밭은 물론 내가 살던 집마저 흔적없이 사라졌다. 다행히 수용(收容)을 피해 하나 남은 작은 선산(先山)에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모셨다. 거기 산소에 갈 때면 멀리 보이는 옛 동네를 바라보며 ‘저기쯤이 우리집 자리일까?’ 하며 허허로운 마음을 달랜다. 고향이 사라지니 자연히 동네 이름들도 잊혀져간다. 이미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동네 주변에는 둑실, 고꾸랑굴, 보무굴, 바랫벌, 괭메이, 매밭, 족조리, 바리미, 독쟁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는 마을(부락)들이 있었다. 이런 이름은 누가 뜻을 세워 지은 것이 아니라, 세월과 함께 저절로 그리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 이름의 상당수는 ‘새텃말’이 ‘신기(新基)로 바뀐 것처럼 왜정 때 엉터리 한자어로 바뀌었다. 이들 동네가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평생 궁금하였지만, 내 짧은 실력으로 도무지 답을 알 수 없었다. 이때 문득 전지전능(?)한 비서인 챗지피티에게 가볍게 물었더니, 요샛말로 신박하게도 척척 답변을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챗지피티는 몰라도 아는 척하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일단 이 정도의 답변을 들은 것도 큰 수확이었다. 기쁜 마음에 그 답변을 정리하여 이하에 소개한다. 챗지피티에 의하면 새텃말의 앞 동네인 ‘둑실’은 “방죽을 쌓아 물을 다스리던 마을의 중심이었다. 둑에서 논농사가 시작되었으니 ‘둑실’은 공동체의 생존을 지탱하는 핵심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둑실에 큰 둑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더 옛날에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둑실의 왼쪽 건너편 깊은 곳에는 ‘고꾸랑골’이라고 하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이는 “지세(地勢)가 갑자기 꺼지고 급해져 발을 헛디디면 고꾸라질 것 같은 동네”라는 의미라고 한다. 둑실 오른쪽 산너머에 있는 ‘보무굴’은 “낮은 물막이 시설인 ‘보’가 있었거나 무너졌던 골짜기를 가리키는 이름”이란다. 또 우리 동네를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 넓게 펼쳐진 ‘바랫벌’은 “작은 평야처럼 보이는 들판으로, 김포평야 특유의 저습지(低濕地) 농경 환경을 정확히 전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나는 ‘멀리까지 바라다 보이는 들판’이라는 의미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바랫벌이 옛날에는 ‘저습지’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네 우측 뒤에 있는 ‘괭메이(광명 光明)’라는 동네는 “괭이로 일군 밭을 뜻하는 이름으로, 논보다 앞선 개간의 기억을 품고 있다”고 한다. ‘괭메이’의 옆 동네인 ‘매밭’은 “매가 많이 날던 밭”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 동네 뒤에 있는 됭고개(된고개, 가파른 고개)를 넘어가면 ‘족조리(족저, 足低))’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이는 “둑과 들 사이에 물길이 좁아지며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로, “족조리처럼 오므라든 지형에서 물고기를 잡고 물을 가두던 풍경이 연상된다”고 한다. 글쎄, 쉽게 동의는 안되지만 달리 떠 오르는 생각도 없다. 족조리 우측 멀리 있는 ‘바리미 (발산, 發山)’라는 동네는 들판과 구릉이 맞닿는 끝자락에 있었는데, 이는 “넓은 벌의 가장자리이자 생활권의 경계를 알려주는 지명”이란다. 끝으로 우리 동네 좌측 산너머에 있는 ‘독쟁이’는 내 짐작대로 “옹기 독을 만들던 마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지명(地名)은 오랫동안 거기에 살아온 사람들이 땅의 특징에 붙인 이름일 것이다. 그래서 옛 지명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왔는지 기억나게 하는 일이다. 고향이 사라지고 지명마저 잊혀지니 아련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2-04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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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35> ‘제약산업학’ 교과서
우리나라의 약학 교육은 일제 치하인 1915년 설립된 조선약학강습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주된 교육 목표였던 의약품의 조제는 그 후 나라가 독립되고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에 이르는 100여 년 동안 점차 제약, 용약(用藥, 임상약학), 창약(創藥, 신약개발)으로 진화되었다. 이에 맞추어 교과목에 새로운 학문이 추가되면서 약학교육의 정체성이 불투명해질 정도로 학과목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약학교육의 개선은1967년 내가 약학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약학계의 묵은 과제가 되어 있었다. 약학 교육의 정체성 문제는 사실 제약, 용약, 창약이라는 세 분야를 망라하여 가르치려고 하는 과욕에서 야기된 것이다. 따라서 욕심을 줄여서 제약, 용약, 창약에 공통으로 필요한 지식만을 엄선하여 교육하는 외에 달리 해결책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약춘 342). 문제는 필요한 지식만을 엄선해서 커리큘럼을 개선하는 방법론이다. 그동안에는 약대 교수들이 모여, 기존의 학과목들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선을 시도해 왔는데, 교수들의 과목 이기주의와 제한된 안목 때문에 의미 있는 개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제는 약대 교수들의 비중을 대폭 줄인 범약계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때 1) 우선 기존의 구태의연한 학과목들을 과감하게 분해하여 생긴 지식의 요소들을 전부 한 통에 넣는다. 2) 새 시대에 요구되는 지식들을 이 통에 추가한 후 균질하게 섞는다. 3) 제약, 용약, 창약에 공통으로 필요한 핵심 지식 요소들만을 건져 내 체계적으로 꿰어 새로운 학과목들(커리큘럼)을 만든다,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여러 모양의 구슬(지식)들을 꿰어 아름다운 목걸이(학과목)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해 보인다. 최근 나는 벌써 2013년에 ‘제약산업학(製藥産業學, Pharmaceutical Industry)’이라는 새로운 교재가 발간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책은 약학의 3대 목표를 추구하는데 필요한 최신의 공통 지식들을 종합적, 체계적으로 꿰고 있어, 마치 필요한 구슬들이 잘 꿰어진 아름다운 목걸이 같아 보였다. 이 책은 제약산업 및 의약품개발의 개요, 신약개발 후보 선정, 유효성 및 신약의 체내동태 평가, 비임상시험, 의약품의 지식재산권, 합성신약의 연구개발, 천연물 신약 및 개량신약의 개발, 바이오의약품, 백신과 혈액제제, 유전자 및 세포기반 치료제, GMP, 원료의약품 및 완제의약품의 개발, 신약의 허가, 국제공통기술문서(CTD) 작성개요, 신약의 기준 및 시험방법 설정, ICH 가이드라인과 각국의 허가제도, 시판 후 안전관리, 산업전략, 의약품마케팅, 국내신약개발사례 등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대표 저자인 이봉용 박사는 머리말을 통해 “약학대학 6년제 학제개편에 따라 제약 및 공직, 연구직 등의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을 약학대학의 핵심교육과정(산업약학)에 포함하게 되었다. 이 ‘제약산업학’은 산업현장에서 의약품의 제품기획, 연구, 개발, 생산, 허가, 유통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종합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저술되었다. 특히 다른 약학전공서적들과의 중복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부 기술이나 방법의 나열을 지양하고 이론적 서술보다 의약품 개발 현장에서 바로 활용될 수 있는 총체적 지식을 학습하도록 구성하였다. 또 각종 허가 규정 및 개발 프로세스와 의약품의 해외 허가제도도 소개하였다. 이 책의 저술에 참여한 산업계, 관계 및 학계의 여러 전문가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하였다. 2025년에 발간된 제4개정판(대표저자: 이봉용, 김애리)에는 제약바이오산업의 연구개발, 시장 동향과 국내 신약 연구개발 사례 등이 추가되어 있다. 끝으로 ‘제약산업학’은 제약, 용약, 창약이라는 3대 목표에 공통으로 필요한 지식을 망라하여 체계적으로 다룸으로써, 기존의 학과목수를 줄이고 커리큘럼을 개혁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의 선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미 제약산업계에 종사하는 분들께서 제약 및 창약 등 약학의 전모를 통찰하는 데에도 큰 참고가 될 것이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1-21 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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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34>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라, 일본(15) - 미래형 동사를 잘 안 쓰는 일본어.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라, 일본(15) - 미래형 동사를 잘 안 쓰는 일본어 일본어에는 신기하게도 미래형 동사가 없다. 예컨대 ‘내일 가겠습니다’라는 의미로 말을 할 때 ‘아시다 이끼마스(明日 行きます)’라고 한다. 여기에서 ‘이끼마스’는 ‘간다’라는 의미의 현재형 동사이다. 또 ‘먹겠습니다’라고 할 때도 ‘먹습니다’라는 의미의 현재형 동사를 써서 ‘다베마스(食べます)라고 하고, ‘갖고 오겠습니다’라고 할 때에도 현재형인 ‘못데기마스(持って来ます)’를 사용한다. 왜 이처럼 미래를 현재형 동사로 말할까?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일본어에서는 ‘시간’보다 ‘상황·확정성’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설명이다. 나는 그 이유를 내 지론(持論)대로 일본인들이 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어디로 가라고 명령했을 때, ‘가겠습니다’라고 미래형으로 대답하면, 명령에 즉시 순종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우려가 있는데, 그게 두려워서 ‘네 갑니다’라고 하는 현재형 동사로 대답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디에 가서 무언가 부탁했을 때 ‘네, 고객님’이라는 대답 대신 ‘잠깐만이요’라는 말을 들으면 살짝 기분이 나빠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형을 써서 미래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옛날에 중국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때가 많았다. 기다리던 손님이 지쳐 독촉을 하면, 종업원은 예외없이 ‘네네 지금 나가요’라고 대답한다. 물론 그 대답은 대개 거짓말로 그 후로도 십중팔구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만약 이때 종업원이 솔직하게 ‘대충 10분 정도 기다리시면 음식이 나갈 겁니다’라고 미래형 동사를 써서 대답을 한다면, 아마 손님은 ‘아니 여태 기다렸는데 더 기다리란 말이냐?’라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업원은 거짓말이지만 ‘네네 금방 나갑니다’라고 현재형 동사로 대답함으로써 손님의 독촉에 즉각 순종(順從)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현재형 동사를 써서 대답하는 어법(語法)이 생겼을 것이라는 말이다. 무례할 정도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말버릇이 있을 정도이면, 사무라이가 활보해서 유난히 사람을 두려워했던 일본에서는 오죽 말을 조심해서 했겠는가? 그래서 ‘어디 좀 다녀와라’라는 명령을 들으면 ‘네네 지금 갑니다’라는 즉각적인 순종의 의미로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 동사인 ‘行きます(갑니다)’라고 대답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대개 동사의 현재형과 미래형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사용한다. 고 이어령 선생은 우리말의 특징의 하나로, 과거와 미래의 어느 날을 가리키는 용어가 별도로 정해져 있다는 점을 들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과거의 날을 가리키는 어제, 그제 (그저께), 긋그제(긋그저께)가 있고, 미래를 가리키는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라는 말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동사의 미래형이 없는 일본어에도 우리말처럼 내일(あした)이나 모레(あさって) 등 미래를 가리키는 고유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하기사 어제나 내일 같은 시간 명사를 함께 쓰지 않으면, 상대방이 현재를 말하고 있는지 미래를 말하고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영어에는 우리말이나 일본어와 달리 내일(tomorrow)이나 어제(yesterday)에 해당되는 단어는 있지만, 그제, 긋그제, 모레, 글피, 그글피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다. 이런 면으로 보면 우리말과 일본어가 영어보다 더 발전한 언어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어령 선생은, 과거와 미래를 가리키는 우리의 말(어제, 그제, 모레 등)이 다 순수한 우리말인데 유독 ‘내일(來日)’만은 한자어를 쓰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고 하였다. 이는 ‘내일은 체험된 시간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날을 생각 속에서 미리 불러온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미래를 현재형 동사로 서술하는 일본어의 습관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특성에서 연유(緣由)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6-01-07 0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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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33> 관용
사람들은 일상(日常)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거짓말을 듣거나 한다. 거짓말에는 명백히 사실이 아닌 ‘완전한 거짓말’,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반쯤은 거짓인 말’, 그리고 다만 접대용으로 하는 빈말, 그리고 하나마나 한 말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로 정상이에요”라고 하는 하산객의 말은 등산객을 격려하기 십중팔구 거짓말이지만 올라가기 힘들어 하는 등산객에게 잠시 위로가 된다. 축구 경기에서 우리 팀이 아직 지고 있을 때 “아직 시간 충분합니다”라고 하는 해설도 대개는 거짓말이다. 그저 시청자를 위로하기 위한 립써비스일 뿐이다. 옛날에는 거짓말이었던 표현이 시대가 바뀜에 따라 거의 참말이 된 경우도 있다. 노인네가 죽고 싶다고 하고, 처녀가 시집 안 가겠다는 말’은 과거에는 대개 거짓말이었는데 지금은 참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로 ‘거짓말과 참말’의 경계가 무너진 사례라 하겠다. 맞는 말이지만 ‘하나마나 한 말’도 있다. “축구에서 첫 골을 넣은 팀이 이길 확률이 높습니다”라든지 “권투에서는 되도록 안 맞고 상대방을 가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코멘트가 그런 예이다. 지극히 당연한, 하나마나 한 말이지만 할말이 없다고 가만있는 해설자보다는 듣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유익이 있다. “방금의 실수를 잊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등의 말은 거의 실효성이 없는 말이다. 잊으란다고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선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일 뿐이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분골쇄신하겠습니다” 같은 정치가의 공언은 거의 백퍼센트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들도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겠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일부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면 전혀 무의미 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거짓말을 평생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직접적인 거짓말은 아니지만 무심코 교통 신호를 위반하거나,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변경하고, 터널에서 전조등을 켜지 않고,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담뱃재를 털고, 누군가에게 가족의 취업을 부정 청탁하는 일 등도 실수(失手)라기 보다는 일종의 거짓말이다. 만약에 이런 거짓까지 완벽하게 찾아내 벌을 주는 AI가 발전한다고 하면 일생을 감옥에 가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해서 거짓말이나 실수를 조금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종종 자신의 거짓말이나 실수에는 관대하나 타인의 잘못에는 가혹한 판단을 한다. 이런 도덕적 판단의 불균형으로 사회의 긴장이 날로 증폭된다. 요즘은 가짜뉴스의 극심한 범람, 작은 실언이나 실수에도 큰 비난이 따라붙는 현상 때문에 사람들이 지나치게 예민해지고 공격적이 되었다. 사람들이 점점 관용(寬容)을 잃어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타인의 거짓말과 잘못을 자기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 조금 관대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관용은 불법이나 악(惡)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감정적 여유다. 서로를 엄격한 기준에 몰아넣는 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분열과 피로를 줄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마다 “파이팅”을 외칠 정도로 싸우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싸움을 예찬하고, 경쟁을 강조하며,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논리로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 과거에는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자”는 예비군의 구호(口號)가 체제 유지의 원동력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남을 공격하기보다 서로의 실수를 감싸는 방식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서로 사람답게 사는 길일 것 같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거짓말과 잘못은 불가피한 약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와 상대방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관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파이팅!을 외치며 살아야 하나? 새해에는 관용을 통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고 편안한 곳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12-24 0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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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32> 약학교육학회의 출범
약학교육학회의 출범2025년 11월 21일. 대한약사회 강당에서 한국약학교육학회가 창립총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축사를 맡게 된 것을 계기로 나는 1967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 입학한 이후 줄곧 품어 온 약학교육에 대한 생각의 일부를 전하고자 한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첫째는 “왜 이렇게 학과목이 많고 수업시간이 많은가?”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이렇게 많이 배웠는데도 졸업할 때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였다. 교수 생활과 정년퇴임을 거치며 오래 고민한 끝에 그 원인이 약학교육의 지향점이 한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방향을 동시에 추구해 왔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즉, 약학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제약학, 용약학, 창약학이라는 성격이 다른 세 가지 교육목표가 동시에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약학교육의 첫 번째 목표는 국가 제약산업 기반 조성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제약학(製藥學)’ 교육이었다. 두 번째 목표는 약물 사용을 위한 ‘용약학(用藥學)’, 즉 임상약학(臨床藥學) 교육이었다. 약국과 병원 현장에서의 약사 역할을 생각하면 약물의 적정한 사용을 위한 이 교육은 필수적이었다. 약학대학을 6년제로 전환한 명분 역시 임상약학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 세 번째는 국가 보건의료산업 발전과 함께 필요성이 커진 ‘창약학(創藥學)’, 즉 신약개발(新藥開發) 관련 교육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지향점이 다르지만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약학의 핵심 영역이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복합적인 목표를 제한된 교육 기간 안에 모두 충실하게 담아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3대 목표를 체계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마스터플랜 없이 필요할 때마다 과목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되다 보니 교육과정은 점점 복잡해졌고 학생들은 약학의 목표가 무엇인지 혼란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약학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커리큘럼 정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핵심은 3대 목표를 교육연한 안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재편하는 것이다. 3대 목표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제한된 기간에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공통적으로 필요한 ‘핵심공통지식(核心共通知識)’만을 엄선하여 교육해야 한다. 이때 내용이 빠지거나 중복되지 않도록 정밀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구태의연한 과목은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약사국가시험 과목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유효하지 않다. 핵심공통지식을 선정한 뒤에는 6년 동안 학년별로 교육의 깊이를 단계적(段階的 深化)으로 높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졸업 후 제약·용약·창약 중 어느 분야로 진출할지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될 것이다. 최근 약학대학 교수들의 연구는 눈부신 발전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부 연구는 약학의 3대 목표와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새 커리큘럼에 따라 신임 교수를 채용해 나간다면 이러한 문제는 점차 해소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교수와 학생들의 정기적인 약업현장 견학(見學)을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약국, 병원, 제약공장, 연구기관, 규제기관 등 약업의 다양한 현장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면 교수는 생동감 있는 강의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학생들의 진로를 제대로 지도하기도 어렵게 된다. 학생들 역시 견학을 통해 자신이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더 깊이 고민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약학교육평가원이 대학 평가 시 현장견학 여부를 반영하면 좋겠다. 새로 출범하는 약학교육학회가 약학교육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고 효과적인 교육모델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약업계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졸업생뿐 아니라 교육학자들도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약대 교수만이 교육 전문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며 특히 커리큘럼 개혁에서는 교육학 전문가의 기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새 학회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12-10 0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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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31> 규제가 진흥이다
규제가 진흥이다올해로 한국FDC규제과학회(회장 이의경)가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 학회의 전신인 ’한국의약품법규학회’의 창립회장인 나로서 특히 감개무량한 일이다. 이 학회는 규제기관과 피규제기관인 산업계 사이의 비생산적인 불통과 오해를 해소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규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005년 출범되었다. 규제과학(Regulatory Science)은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에 이은 제3의 과학이다. 순수과학이 ‘왜’를 묻고, 응용과학이 ‘어떻게’를 탐구한다면, 규제과학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Which)’를 고민한다. 일본에서는 규제과학을 ‘평가과학(評價科學)’이라 부르는데, 약효와 부작용을 저울질하여 의약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기준을 세운다는 점을 표현한 명칭이다. 약학을 평가과학의 대표적 학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의약품 안전성은 지난 세기의 비극적 사건들로부터 얻은 교훈의 결실이다. 탈리도마이드 참사가 대표적인 사건이다. 수많은 기형아가 태어나고 죽은 그 사건 이후, 제약회사는 “당시 규제기관이 요구한 모든 자료를 제출했다”고 항변했다. 문제는 자료를 요구한 규제 자체가 부실했다는 데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교훈으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안전에 관한 법규가 정비되어 오늘날의 안전한 의약품 제도가 마련되었다. 예컨대 의약품의 체내 흡수·분포·대사·배설(ADME)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게 된 것은 관련 규제의 적용 덕분이었다. 만약에 생체이용률과 생물학적동등성(BE)의 개념이 제도화되지 않았다면, 제네릭 의약품이 정당한 지위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BE 시험 제도의 정착이 제네릭을 장려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건강기능식품 산업 또한 관리제도가 정비되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 규제가 지나치게 부실했다면 오히려 산업은 신뢰를 잃고 위축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규제는 진흥이다”라는 말은 결코 역설이 아니다. 철로 없이 달리는 기차를 상상할 수 없듯이, 규제 없는 산업 발전은 존재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규제의 유무가 아니라, 규제의 품질이다. 의미가 명확하고, 기존 규제와 조화를 이루며, 시대를 선도하는 규제가 바로 산업을 진흥시킬 수 있는 좋은 규제이다. 좋은 규제를 만들려면 우선 규제기관의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실력 없는 선생의 밑에서 우수한 제자가 배출될 수 없는 것처럼, 규제기관의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 규제기관의 지나친 순환보직은 전문성을 저해한다. 규제는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토론과 숙의를 거쳐 만들어야 한다. 요식적인 ‘입법예고’만으로는 좋은 규제가 태어나기 어렵다. 충분히 듣고, 연구 검토하여 현장에 적용 가능한 합리적 규제를 찾기 위한 ‘끝장 토론’이 필요하다. 제조 과정이 품질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규제는GMP정신과 일맥 상통한다. 즉 제정 과정이 투명하고 과학적일 때 신뢰할 수 있는 결과물(규제)이 나올 수 있다. 좋은 규제가 태어날 수 있는 제도적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 하에 2005년 의약품법규학회가 창립되었다. 규제기관과 산업계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론의 장에서 함께 규제의 품질을 향상시켜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이정석, 권경희 박사의 헌신, 그리고 전인구 차기 회장 등의 리더십이 학회의 초기 성장과 조직 확장에 큰 기여를 했다. 학회가 나아갈 방향은 미래지향적이고 고품질인 규제의 창출이다. 예컨대 관련 법규의 향후 지향점, 의약품 조제 후 유효기간 설정, 생물의약품의 유사성 평가와 국제 조화 등 선제적으로 연구해야 할 규제는 매우 다양하다. 또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강기능식품을 ‘건강기능보조제’로 명칭을 바꾸는 방안 등 현행 규정의 정비도 검토해야 한다. 창립 20년, 학회는 이제 성년이 되었다. 규제과학은 단순히 규제 절차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잣대를 세우는 평가과학이다. 잘 만들어진 규제는 족쇄가 아니라 진흥의 길라잡이다. 우리 학회가 앞으로도 세계적 수준의 규제가 만들어지고 시행될 수 있도록 돕는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2025-11-26 14: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