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비밀 무기
전쟁이 길어지면 후유증도 길어진다. 특히 점령지를 정착하는 과정은 더 지난한 법이다. 전쟁을 넘어 정치까지 건드려야 하는 복잡다단한 과정 속에서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한다. 이라크 전쟁이 그랬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발한 걸프전은 두달만에 다국적군의 승리로 끝났다. 다만 이라크의 지도자 후세인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모국의 수도 바그다드에 돌아가는 것으로 전쟁이 종료되었다. 당시 다국적군의 전쟁 명분이 쿠웨이트 수복이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복과 같은 노골적인 단어가 다국적군의 모토가 될 수는 없었다.
다만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은 달랐다. 미군이 오사마 빈 라덴의 배후 세력으로 이라크를 지목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확인하겠다는 명분 하에 바그다드로 진격하면서 후세인은 도망가기 바빴다. 왕궁은 불탔다. 후세인도 체포되어 2006년 사형되었다.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하지만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저항 운동에 직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차량 폭탄테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같은 시기 같은 상황에 처한 전선이 하나 더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이다. 미국은 2020년까지 두 나라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 했다.
전쟁이 길어지고 후유증이 길어지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병사들도 늘어갔다. 원래 전쟁 후유증이야 항상 있는 일이지만, 21세기는 조금 달랐다. 병사들이 전쟁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마약류 각성제를 복용했기 때문이다. 암페타민이 대표적이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 상황에서 이런 집중력 향상제 복용을 나무라긴 어렵다. 하지만 이런 약물은 전투의 생존자도 괴롭히는 법이다. 본인이 죽였던 적군, 본인 옆에 죽어간 전우들을 더욱 더 집중해서 목격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는 법 없이 트라우마가 되어 나타나는 장면들이다. 당시 <타임>지의 보도에 따르면 미군에서 자살한 병사의 숫자가 115명이었는데 이는 통계를 집계한 이후로 가장 많은 수치였다. 뭔가 대처가 필요했다.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었던 전쟁이 하나 있다. 베트남전쟁이다. 이때 파병 군인들은 어떻게 전쟁의 참상을 극복했을까? 대마초를 피우거나 헤로인을 투여하는 형태로 마음을 다스렸다. 대마나 헤로인은 위험한 마약이지만 전쟁터에서는 그것 말고도 위험한 게 좀 많다. 물론 제대해서 본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마약을 끊어야만 했다. 헤로인 중독자인 것이 밝혀지면 제대를 못 하므로 헤로인 중독자들도 이 시기에는 마약을 끊었다. 제대 날짜는 참으로 위대하다.
베트남전쟁 당시 헤로인 중독자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행했던 방법이 ‘골든 플로우 작전(Operation golden flow)’이다. 말이 좋아 ‘황금 물줄기’지, 사실 소변 검사다. 여기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 한다. 물론 이에 따른 편법도 나름 유행했다. 마약을 접하지 않은 깔끔한 소변을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다. 이런 샘플 바꿔치기로 단속을 피해 나가던 시절이 1970년대였다.
21세기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때도 마음의 안정을 위해 헤로인과 같은 마약을 써야만 하는 것일까? 다행히도 이때는 헤로인 대신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이 나와 있었다. 바로 항우울제, 플루옥세틴이다. 세로토닌 재흡수를 선택적으로 차단해 시냅스 내에서 세로토닌 양을 일시적으로 늘려주는 약이다. 1980년대 후반 개발되며 마법의 약(magic pill)로 각광받았던 약 아닌가. 이 약이 이제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도 완벽하진 않았다. 마음의 평화를 약물로 온전히 다스린다는 것이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상황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면 다시금 고난의 시기가 다가오는 법이다. 2008년 <타임>지에서 플루옥세틴을 ‘군대의 비밀 무기(The military’s secret weapon)’라고 일컫기도 했지만 ‘무기’만으로 전쟁을 바꿀 수는 없다. 이 약물로 치유된 사람이라고 해도 다시 전장에 투입되면, 혹은 비슷한 상황에 처하기만 해도 괴로운 기억은 떠오른다. 2007년 115명의 자살자가 미군 내에서 사망했다고 했는데, 이들 중 40%는 이미 항우울제를 복용하던 사람들이었다.
전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참상은 계속되고 있다. 약으로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약만으로 세상을 바꿀 쑤는 없는 법이다. 평화로운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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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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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비밀 무기
전쟁이 길어지면 후유증도 길어진다. 특히 점령지를 정착하는 과정은 더 지난한 법이다. 전쟁을 넘어 정치까지 건드려야 하는 복잡다단한 과정 속에서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한다. 이라크 전쟁이 그랬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발한 걸프전은 두달만에 다국적군의 승리로 끝났다. 다만 이라크의 지도자 후세인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모국의 수도 바그다드에 돌아가는 것으로 전쟁이 종료되었다. 당시 다국적군의 전쟁 명분이 쿠웨이트 수복이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복과 같은 노골적인 단어가 다국적군의 모토가 될 수는 없었다.
다만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은 달랐다. 미군이 오사마 빈 라덴의 배후 세력으로 이라크를 지목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확인하겠다는 명분 하에 바그다드로 진격하면서 후세인은 도망가기 바빴다. 왕궁은 불탔다. 후세인도 체포되어 2006년 사형되었다.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하지만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저항 운동에 직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차량 폭탄테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같은 시기 같은 상황에 처한 전선이 하나 더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이다. 미국은 2020년까지 두 나라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 했다.
전쟁이 길어지고 후유증이 길어지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병사들도 늘어갔다. 원래 전쟁 후유증이야 항상 있는 일이지만, 21세기는 조금 달랐다. 병사들이 전쟁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마약류 각성제를 복용했기 때문이다. 암페타민이 대표적이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 상황에서 이런 집중력 향상제 복용을 나무라긴 어렵다. 하지만 이런 약물은 전투의 생존자도 괴롭히는 법이다. 본인이 죽였던 적군, 본인 옆에 죽어간 전우들을 더욱 더 집중해서 목격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는 법 없이 트라우마가 되어 나타나는 장면들이다. 당시 <타임>지의 보도에 따르면 미군에서 자살한 병사의 숫자가 115명이었는데 이는 통계를 집계한 이후로 가장 많은 수치였다. 뭔가 대처가 필요했다.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었던 전쟁이 하나 있다. 베트남전쟁이다. 이때 파병 군인들은 어떻게 전쟁의 참상을 극복했을까? 대마초를 피우거나 헤로인을 투여하는 형태로 마음을 다스렸다. 대마나 헤로인은 위험한 마약이지만 전쟁터에서는 그것 말고도 위험한 게 좀 많다. 물론 제대해서 본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마약을 끊어야만 했다. 헤로인 중독자인 것이 밝혀지면 제대를 못 하므로 헤로인 중독자들도 이 시기에는 마약을 끊었다. 제대 날짜는 참으로 위대하다.
베트남전쟁 당시 헤로인 중독자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행했던 방법이 ‘골든 플로우 작전(Operation golden flow)’이다. 말이 좋아 ‘황금 물줄기’지, 사실 소변 검사다. 여기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 한다. 물론 이에 따른 편법도 나름 유행했다. 마약을 접하지 않은 깔끔한 소변을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다. 이런 샘플 바꿔치기로 단속을 피해 나가던 시절이 1970년대였다.
21세기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때도 마음의 안정을 위해 헤로인과 같은 마약을 써야만 하는 것일까? 다행히도 이때는 헤로인 대신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이 나와 있었다. 바로 항우울제, 플루옥세틴이다. 세로토닌 재흡수를 선택적으로 차단해 시냅스 내에서 세로토닌 양을 일시적으로 늘려주는 약이다. 1980년대 후반 개발되며 마법의 약(magic pill)로 각광받았던 약 아닌가. 이 약이 이제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도 완벽하진 않았다. 마음의 평화를 약물로 온전히 다스린다는 것이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상황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면 다시금 고난의 시기가 다가오는 법이다. 2008년 <타임>지에서 플루옥세틴을 ‘군대의 비밀 무기(The military’s secret weapon)’라고 일컫기도 했지만 ‘무기’만으로 전쟁을 바꿀 수는 없다. 이 약물로 치유된 사람이라고 해도 다시 전장에 투입되면, 혹은 비슷한 상황에 처하기만 해도 괴로운 기억은 떠오른다. 2007년 115명의 자살자가 미군 내에서 사망했다고 했는데, 이들 중 40%는 이미 항우울제를 복용하던 사람들이었다.
전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참상은 계속되고 있다. 약으로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약만으로 세상을 바꿀 쑤는 없는 법이다. 평화로운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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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