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사진하면 당연히 흑백 사진이었다. 1970년 봄, 제주도로 단체 수학여행을 갔을 때 한라산 정상 근처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한 장이 평생 처음으로 찍어본 유일한 칼라사진(당시는 총천연색 사진이라고 부름)이었다. 칼라사진은 필름이나 인화 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기념으로 한 장 밖에 찍을 수 없었다. 사실 당시는 흑백사진도 아무나 찍을 수 없었다.
카메라(당시는 사진기라고 부름)는 일반 서민들이 구입하기에는 너무 비싼 사치품이었다. 우리 집은 시골에서는 밥술이나 먹는 집이었지만 그 정도로는 카메라를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부자로 사시는 이모부 댁에 카메라를 빌리러 갔다. 이모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카메라(아마 ‘캐논’)를 내 주셨다. 애지중지(愛之重之)하는 귀중한 물건을 빌리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 그러나 그 때는 그런 무례가 예사(例事)로 있던 시절이었다. 이모는 내가 그걸 고장을 내거나 잃어버릴까 봐 내심 불안하셨을 것이다.
내가 결혼한 1975년 전후(前後)에는 신혼 부부 집에 놀러 가면 사진 앨범부터 내놓는 것이 관례이었다. 신혼 부부가 열심히 사진 설명을 하면, 방문한 사람은 흥미가 없더라도 예의상 “멋지다, 예쁘게 나왔다” 같은 호의적 감탄사를 적당히 섞어가며 앨범을 ‘봐 주어야만’ 하였다. 1979년 동경 유학 시절, 일본인 부부 집을 방문하였다가 혼이 난 생각이 난다. 일본인 부부는 자기들이 유럽여행 중에 찍은 8미리 영화를 보여주었다. 방의 불까지 끄고 1시간 가량 그들의 설명을 들으며 동영상을 보느라 좀이 쑤셨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당시는 비디오 카메라나 8미리 촬영기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로망이었다.
세월이 흘러 필름이 필요 없는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자 사진을 무한대로 찍어도 돈이 들지 않게 되었다. 또 흑백사진이냐 칼라사진이냐 하는 말이 사라질 정도로 사진하면 당연히 칼라사진을 의미하게 되었다. 누르기만 하면 찍히는 자동카메라가 등장하고부터는 사진을 찍는데 아무런 기술이 필요 없게 되었다. 카메라의 크기와 무게도 예전에 비해 엄청 줄어들었고, 덩달아 카메라 가격도 엄청 싸졌다. 막말로 이제는 개나 소나 마구 사진을 찍어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래저래 칼라사진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고 보니, 그에 따라 사진의 존귀함도 덩달아 땅에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번거롭게 사진을 인화해서 보지도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수많은 사진(영상)을 컴퓨터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감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사진이 지천(至賤)으로 넘쳐나다 보니 이제는 신혼 부부 집에 놀러 가도 사진 앨범을 내놓지 않는다. 해외 여행 중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도, 또 보려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아들 며느리조차 부모님의 해외 여행 사진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 가끔은 “좋은 구경 많이 하셨어요?” 하면서 사진 몇 장이라도 보는 척 해 주면 좋을 텐데. 사진이 흔해진 만큼 우리는 더 삭막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이 흔해져서 인지 무조건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특히 늙어가는 사람에 많다. 그 바람에 사진 찍는 시간만 길어진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에게 말한다. “얼른 찍히고 빨리 가자, 어차피 찍혀도 사진 안 줄 텐데 뭘 걱정해”. 그리고는 덧붙인다. “지금이 가장 젊을 때야, 나중에는 지금보다 더 늙을 테니까 차라리 지금 한 장 찍혀 주고 얼른 가자”
과거 결혼식장에 가면 예식이 끝나고 가족 사진을 찍을 때, 누군가가 앞에서 외치곤 하였다. “이모, 고모 사진 찍게 빨리 나오세요” 그러면 객석에 앉아 계시던 이모 고모 할머니는 “뭘 나까지 찍어”하며 사양하며 느릿느릿 나온다. 속으로는 불러주는 것을 고마워 하면서 말이다.
사진 찍히는 호강을 사양하며 좋아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사진 경시 풍조(?)는 살짝 씁쓸한 느낌이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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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사진하면 당연히 흑백 사진이었다. 1970년 봄, 제주도로 단체 수학여행을 갔을 때 한라산 정상 근처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한 장이 평생 처음으로 찍어본 유일한 칼라사진(당시는 총천연색 사진이라고 부름)이었다. 칼라사진은 필름이나 인화 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기념으로 한 장 밖에 찍을 수 없었다. 사실 당시는 흑백사진도 아무나 찍을 수 없었다.
카메라(당시는 사진기라고 부름)는 일반 서민들이 구입하기에는 너무 비싼 사치품이었다. 우리 집은 시골에서는 밥술이나 먹는 집이었지만 그 정도로는 카메라를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부자로 사시는 이모부 댁에 카메라를 빌리러 갔다. 이모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카메라(아마 ‘캐논’)를 내 주셨다. 애지중지(愛之重之)하는 귀중한 물건을 빌리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 그러나 그 때는 그런 무례가 예사(例事)로 있던 시절이었다. 이모는 내가 그걸 고장을 내거나 잃어버릴까 봐 내심 불안하셨을 것이다.
내가 결혼한 1975년 전후(前後)에는 신혼 부부 집에 놀러 가면 사진 앨범부터 내놓는 것이 관례이었다. 신혼 부부가 열심히 사진 설명을 하면, 방문한 사람은 흥미가 없더라도 예의상 “멋지다, 예쁘게 나왔다” 같은 호의적 감탄사를 적당히 섞어가며 앨범을 ‘봐 주어야만’ 하였다. 1979년 동경 유학 시절, 일본인 부부 집을 방문하였다가 혼이 난 생각이 난다. 일본인 부부는 자기들이 유럽여행 중에 찍은 8미리 영화를 보여주었다. 방의 불까지 끄고 1시간 가량 그들의 설명을 들으며 동영상을 보느라 좀이 쑤셨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당시는 비디오 카메라나 8미리 촬영기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로망이었다.
세월이 흘러 필름이 필요 없는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자 사진을 무한대로 찍어도 돈이 들지 않게 되었다. 또 흑백사진이냐 칼라사진이냐 하는 말이 사라질 정도로 사진하면 당연히 칼라사진을 의미하게 되었다. 누르기만 하면 찍히는 자동카메라가 등장하고부터는 사진을 찍는데 아무런 기술이 필요 없게 되었다. 카메라의 크기와 무게도 예전에 비해 엄청 줄어들었고, 덩달아 카메라 가격도 엄청 싸졌다. 막말로 이제는 개나 소나 마구 사진을 찍어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래저래 칼라사진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고 보니, 그에 따라 사진의 존귀함도 덩달아 땅에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번거롭게 사진을 인화해서 보지도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수많은 사진(영상)을 컴퓨터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감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사진이 지천(至賤)으로 넘쳐나다 보니 이제는 신혼 부부 집에 놀러 가도 사진 앨범을 내놓지 않는다. 해외 여행 중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도, 또 보려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아들 며느리조차 부모님의 해외 여행 사진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 가끔은 “좋은 구경 많이 하셨어요?” 하면서 사진 몇 장이라도 보는 척 해 주면 좋을 텐데. 사진이 흔해진 만큼 우리는 더 삭막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이 흔해져서 인지 무조건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특히 늙어가는 사람에 많다. 그 바람에 사진 찍는 시간만 길어진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에게 말한다. “얼른 찍히고 빨리 가자, 어차피 찍혀도 사진 안 줄 텐데 뭘 걱정해”. 그리고는 덧붙인다. “지금이 가장 젊을 때야, 나중에는 지금보다 더 늙을 테니까 차라리 지금 한 장 찍혀 주고 얼른 가자”
과거 결혼식장에 가면 예식이 끝나고 가족 사진을 찍을 때, 누군가가 앞에서 외치곤 하였다. “이모, 고모 사진 찍게 빨리 나오세요” 그러면 객석에 앉아 계시던 이모 고모 할머니는 “뭘 나까지 찍어”하며 사양하며 느릿느릿 나온다. 속으로는 불러주는 것을 고마워 하면서 말이다.
사진 찍히는 호강을 사양하며 좋아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사진 경시 풍조(?)는 살짝 씁쓸한 느낌이다. 아 옛날이여!